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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커처 ㅣ 창비청소년문학 140
단요 지음 / 창비 / 2025년 8월
평점 :
“귀화 허가를 받았다지만 한국인 대접은 받지 못하는 사람이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게 얼마나 어려웠을지 짐작이 간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건 아는 이가 없어도 민망하다. 단요 작가님 작품인데, 청소년 문학이라고 또 느긋하게 펼쳤다가 혼쭐이 제대로 났다. ‘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이 전체 출생아의 6%를 이미 넘었다는데, 친한 이웃으로 살아본 적이 없어서 무지하고 막연했다.
경험과 사유와 고민이 부족한 채로, 관련 문제는 또 적지 않게 알고 있다는 자만과 자기 오해가 더해진 상태로 살았으니, 사람 사는 일은 숫자나 이미지와는 이렇게 다르다고 포장 없이 보여주는 글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부끄러운 자각에 호흡을 고르며 읽은 문장이 무수하다.

“그런 말이 차별이고 혐오 발언이라는 건 모두가 알지만 세상일은 배운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기껏, “한국인 다 됐네” 등의 무신경한 발언 정도 안 하고 살면서, 온라인에 익명으로 조롱하지 않는 정도로 살면서, 너무 안도하며 살았다. 다문화 교육의 상세 내용에 어떻게 상세하게 상처를 입히는 효과적인 장치가 되는지 아냐고 묻는 대화에 짐작과 현실의 괴리가 한없이 멀어졌다.
“중립 기어란 없다. 그저 가만히 지켜보는 것조차 일종의 선택이다.”
2년 전, <말리의 일곱 개의 달>이란 작품을 판타지 문학처럼 재밌고 신기해하며 읽는 순간만 봐도, 나는 “타인의 사정을 참작하고 공감할 능력이 있”다고 나는 상상했을 뿐이라는 걸 깨닫는다. 얼마나 노력해야 “자기 문제”가 아닌 것들도 자기 문제처럼 받아들일 수 있을지. 어려운 일일지, 불가능한 일일지.
“캐리커처”란 제목에 내가 떠올린 것은 유쾌한 풍경이다. 그런데 작가가 차용한 의미는 “가면”이다. 심리학에서, 어느새 일상의 여러 분야에서, 익숙하게 사용하는 “페르소나” 혹은 “마스크.” 원하지 않아도 생존하기 위해 사회 속에서 갈아 써야 하는 슬프고 아프고 불편한 ‘탈들.’
“이 나라 사람들은 소속감 없는 상태에 소속된 사람들 같다. 돈만 잘 벌면 되는 나라라는 건 그런 의미 같다.”
위계가 공고하고 돈 되는 일이면 부끄러움도 죄책감도 법도 아랑곳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역할로 포장된 계급과 계층은 아주 촘촘하게 배격적이다. 한국 만큼 법의 제재와 보장 없이 각종 차별이 난무하는 잘 사는 - 돈 많은 - 사회도 드물다. 그래서 친구, 호의, 위안, 고마움, 다짐... 같은 온기 있는 단어가 등장할 때마다 온전히 반갑지 못하고 서글프다.
이렇게 또 혼이 나고 정신이 반짝 차려지는 작품을 만난 시간이 고맙다. 또 잊고 또 방만해질지라도, 한동안은 결코 타인의 심판하려 들지 말아야지, 가능한 많은 질문을 생각해내야지, 나 자신도 이 세계도 더 차분히 바라봐야지... 덕분에 그런 결심을 새롭게 한다.
“당사자들을 위해서는 좀 더 적극적으로 미워하고 두려워하는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