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천국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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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하다. 초반 적응과 파악하는 시간이 지나면 무서울 정도로 스토리에 몰입된다. 이번엔 꽤 따끔거리며 저항감을 주는 설정이라서, (혼자서)성질을 불쑥 부리기도 했지만, 스토리텔링의 힘은 강력하다.

 

롤라가 무엇인지 개념과 구성과 작동 방식을 잘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이 선결조건인 문학이다. 과학을 조금 알아서 동시에 몰라서 느끼는 반발심도 이 작품을 즐기는 재미다.



 

어쨌건, 하고 싶은 일은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고 도덕적 부담조차 없다는 무서운 가상 세계를 열심히 상상해본다. 어릴 적부터 순간이동 초능력만을 탐냈던 나는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조건에 혹하고 만다.

 

공용 극장 롤라 말고, “자신의 실제 인생을 두 번째로 살게 된다는 개인용 극장인 드림시어터에 몹시 끌린다. 이번 생에서 만나고 사랑하고 이별한 이들이 그리워서, 결말은 같을 지라도 꼭 다시 만나고 싶고 보고 싶어서.



 

일견 근미래 SF 같아 보이지만, 실은 지치도록 반복된 욕망과 주제다. 절대 명령인 생존. 현재 인간의 몸은 일회용이지만, 작품의 설정처럼 현 존재를 모두 정보로 전환하여 영생할 수 있다면, 다음 세대로의 번식은 불필요하다.

 

그 방식을 구원이라고 부를 지는 다른 논쟁의 문제이고, 과학기술이란 매력적일수록 접근 기회가 불평등하다. 과학적으로도 몸을 뺀 나머지를 정보로 전환한다는 건 어불성설이기도 하다. 우리가 가진 실체는 몸뿐이니까.

 

같은 논리로 실제와 똑같은 가상현실이란 모순이다. 동일 존재가 차원적으로 동시에 존재할 수는 없다. 물론 이건 최신과학기술에 대한 정보부족과 무지에서 비롯된 생각일 지도 모른다. 양자역학도 아직 이해 못하면서 뭘.

 

마지막 설계는 충격적이었다. 기발하도록 아름답지 않아서 일종의 상처를 입었고, 가만 생각해보니, 야성을 깨우고 적극 저항하기 위한 대처상황으로 완벽했던 것도 같다. 잘 녹지 않는 사탕처럼 오래 입 속에서 굴려볼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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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왕 형제의 모험 -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장편동화 재미있다! 세계명작 4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김경희 옮김, 일론 비클란드 그림 / 창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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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이란 언제까지나 지켜지는 게 아니거든. 더구나 자유에 대한 우리의 꿈은 자칫 부서져 버리기 쉬운 거야.”


어릴 적 아동문고로 읽은 작품을 잊고 살다가, 아이들이 십대가 되자 초등학생 때 읽을 기회가 없었던 것이 뒤늦게 아쉬웠다. 어릴수록 경계가 낮은 상상력이 이 작품을 충분히 만끽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새롭게 펼쳐든 작품은 도입부터 중년 독자의 눈을 질끈 감기게 한다. 인류 역사 내내 가차 없이 저질러진 일이긴 하지만, 여전히 어른들이 아이들을 죽이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의 죽음은 문학 속이라도 심장에 전해지는 충격이다.


상대를 죽여서 범죄를 은폐하고 권력을 유지하려는 이들에게 가하는 둔중한 경고처럼, 작품은 죽음 이후와 이상의 메시지를 전한다. 다만 용기를 배우고 따르기란 쉽지 않아서, 죽음으로만 완벽한 이상세계에 도착할 수는 없다.


얼핏 고단한(?) 이 구조는 용기가 없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고 자신감을 잃은 이들에게 다시 힘을 얻고 기회를 주도록 격려한다. 겁먹은 동생 칼의 모습을 많이 지닌다는 점은 비난 받을 약점이 아니라, 성장할 여지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왜 사람들은 평화롭게 살지 못하는 걸까!”


현실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불행들을 모두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너무 힘들거나 때론 불가능하게 느껴진다. 촉발한 이유나 계기는 분명 있겠지만, 인간의 의도는 때론 기막히게 하찮거나 무의미하거나 용맹무지한 탐욕이다.


어른들은 다 피할 수 없고 막을 수 없는 비극들에 지혜롭게 답하거나 해법을 제시하는 대신 절망하기 일쑤다. 모르니 고통스럽다. 그래서일까, 린트그렌이 명확하고 단선적인 구도를 설정하지 않는 점이 고맙고 뭉클하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면 ‘사람다운’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한다. “누구나 겁날 때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한다. 그런 자신과 타인을 비난하고 포기하지 말아야한다. 그리고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 가치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무엇보다 목적을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아주 많이 숙고해야 한다. 망가진 것들의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특히나 수명을 가진 존재들이 다치게 하거나 죽게 만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해가 떴다가 지고, 달이 뜨고, 별들이 반짝이고, 그 모든 것이 말할 수 없을 만큼 좋아.”


마침내 동생 칼이 형을 업고 낭길리마로 한 발을 내딛은 것처럼, 진짜 “사랑”이란 무섭고 겁이 나지만 용기를 내어 행동하는 것이다. 충분히 사랑하지 않아서 아이들이 살아갈 현실이 이 모양인가 자책과 통증이 떠나지 않는 나날이다. 이렇게 아프지만 다시 만날 수 있어 감사한 작품이다.


“그 열두 살의 나에게, 이제야 더듬더듬 나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절망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우리의 고통이야말로 열쇠이며 단단한 씨앗이라고.” 한강 작가 [여름의 소년들에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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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행의 순례자 캐드펠 수사 시리즈 10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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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어디에서고 세속의 권력자들과 종교계의 권력자들은 여태껏 이 땅에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해온 법과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서라도 상호 긴밀하게 협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권력은 국민이건 신민이건 노동력을 제공하는 이들에게서 나온다. 그럼에도 동서고금 권력 다툼은 권력의 수혜를 받지 못하는, 권력에서 가장 먼 이들의 삶을 가장 크게 흔들고 망친다.

 

여름에 1권부터 읽으며, 작품 배경과 세계관에 점점 익숙해지던 캐드펠 시리즈의 10권을 겨울에 다시 만난다. 21세기의 권력 다툼의 풍경이 기막히고 저질스러울수록 작품 속 세계의 갈등과 스토리가 더 농밀하게 읽힌다.

 

성당에 모인 사람들은 대체로 경건한 순례자들 같았지만 한두 명쯤 의심스러운 구석이 엿보이는 자들도 눈에 띄었다.”

 

이전 스토리에서 고생하신(?) 성녀님이 다시 등장해서 반가웠고, 죽음으로 더 번다해지는 존재가 되는 처지가 애틋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모이면 사연도 많아지고 사건도 깊어진다. 순례 행렬이 길어지는 장면들이 긴장을 고조시킨다.

 

하지만 또 다른 살인을 예방할 기회는 아직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수도원장님께서 절 보내주시기만 한다면요.”

 

캐드펠 시리즈의 내용은 냉담한 하드코어적인 면이 있다. 아니 인류 역사가 대체로 살해로 점철된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그 점이 역사 추리 소설인 이 시리즈가 한층 더 설득력 있는 재밌을 제공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위니프리드 성녀가 슈루즈베리에서 몇몇 이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준 요 며칠은, 성녀보다 미약한 자비심과 그보다 못한 지혜를 지닌 자들에 이해 잉글랜드 전체의 운명이 결정된 중요한 날들이기도 했다.”

 

각자가 믿는 바, 포기할 수 없는 가치들을 이유로 행동하고, 그 모든 선택과 결정과 행동은 어딘가에서 언제인가 모두 수렴한다. 작품 속 시대에는 종교와 신과 선한 끝을 믿을 수 있어서 한편 부럽기도 했다.

 

그 이상을 깨달았지요. (...) 오래 지체될 수도 있고 이상한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죄에 대한 응보는 확실히 온다는 점을요.”

 

모든 일에는 인과가 있고, 변화는 오직 인간의 행동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안다. 다만... 아주 잠시 독서 여운을 즐기며, 인간의 계산을 벗어난 섭리가 역사 속에서 사필귀정事必歸正을 펼치길 종교도 없이 기도하고 싶어졌다.

 

본디 기적이란 번개가 그렇듯 인간의 상식으로는 가늠할 수 없다지 않은가.”

 

뜻밖에 출생의 비밀(?)로 끝나는 마무리가 이어지는 시리즈를 더욱 고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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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인터넷 - 지구를 살릴 세계 최초 동물 네트워크 개발기
마르틴 비켈스키 지음, 박래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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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동물의 연결이라는 방정식을 인간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것, 이것이 바로 내가 일생을 바쳐 해온 일이다.”

 

이 책 덕분에 사진이나 전시 자료로는 만날 수도 알 수도 없는 인간 아닌 존재들을 경이롭게 다시 만난다. ‘분류라는 방식은 개별 존재가 가진 고유함을 거의 모두 지워버리고, 건조한 명명만 남긴다.

 

이러저러하게 살 거라고 생각한 두터운 오랜 무지를 걷어내고, 살아있는 동물들에 붙인 인식표가 전하는 데이터로 비로소 알아내고 이해한 동물들을 집단이 아닌 존재로 새롭게 배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누구나 자기만의 개인적 역사가 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지구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장소에서 다채로운 사건을 경험한다.”

 

생물이 버겁고 두려워 사물 쪽으로 오래 걸은 내 발걸음, 그래서 이 책 안에서 머무는 시간이 특별하게 더 안도가 된다. ‘지구생태학global ecology’이란 단어 앞에서, 인류에게 가장 중요하고 아름다운 생존공간을 떠올리며 설렌다.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외면하고 심지어는 너무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우리가 가진 것을 잊고 마는 인간의 습성(...).”

 

정보를 저장, 공유, 보관할 수 있는 동물 인터넷Internet of Animal”이라는 아이디어, 겉보기에 고립된 섬이 실제는 모든 생물다양성이 긴밀하게 연결되었다는 발견, 그 세상에서 동물은 인간이 투영하는 물리적, 정치적 경계를 넘어 상호작용하고 있다.”

 




그런 동물들을 인간이 조사 대상으로 삼는 게 아니라, 동물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흥미로움을 넘어서는 놀라움이다. 특히 자신의 무리를 떠나 백로와 여행하고, 인간 가족을 입양하는, 황새 한지의 스토리는 동화 같은(?) 야생 스토리이다.

 

가제본에 담긴 내용은 1, 4, 10, 15, 18장이다.* 아주 재밌는 에피소드와 발견으로 채워진 과학이야기라서 순식간에 읽었다. 맛있는 요리를 딱 한 입만 맛본 것 같아서 많이 아쉽다. 출간본에 실린 더 많은 내용들이 무척 기대된다.

 

* 생물학, 단지 더 아름다워서/탐험하고 실패하고 틀린 것을 발견하기/누가 누구를 길들이는가?/인식표, 작고 가볍고 튼튼하게/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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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쿼크 - 강력의 본질, 양자색역학은 어떻게 태어났는가
김현철 지음 / 계단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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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서 오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고갱Paul Gauguin

 

고전물리학은 이제 지겹고, 전자기학은 재미가 없고, 양자역학은 잘 모르지만 불편했다. 작은 습관 하나 바꾸는데도 지칠 정도로 힘이 드는데, 인간으로 내가 경험한 모든 것이 무용한 세계를 배우는 일이 불편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양자역학이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서 살면서 물리학을 여전히 좋아하지만, 관련 과학책을 읽는 일은 덥석 반가워지지 않았다. 이 책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수식이 없는, 재밌는 과학사 같은 양자역학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얇지 않은 책이 도전일 거라 생각했는데 술술 읽힌다.

 

물론 관련 물리학 지식이 있으면 - 관심이 있으면 더 좋다 - 채워가고 보충하며 이해하는 기분으로 만나볼 수 있다. 하지만 언급했듯이 수식 없는 이야기책 같은 구성이라서 누구나 읽고 즐길 수 있다.자연에는 네 가지 근본적인 힘이 있다”*는 것은 꼭 기억하시길.

 

* 중력, 전자기력, 강력(상호작용), 약력(상호작용)

 

양성자는 쿼크로 이루어져 있지만, 쿼크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양성자 바깥으로 끄집어낼 수도 없었다. 세 개의 쿼크는 영원히 양성자 안에 머물렀다.”

 



물리적으로 입증할 수 없다면 과학이 아니다. 아무리 수학적으로 정합하다고 해도 그렇다. 아인슈타인의 예언 같은 추론은 인류가 우주를 깊이 들여다보고 신호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한 기계(과학기술)가 탄생한 후에야 인정받았다.

 

낯선 입자strange particle인 쿼크의 발견도 마찬가지다. 입자물리학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가속기, CERN(핵물리 연구를 위한 유럽 위원회)같은 명칭을 알아차릴 것이다. 간략하게 알고 있던 발견의 역사를, 이 책 덕분에 처음으로 상세하게 배울 수 있었다. 인물들과 연구들이 무척 흥미진진하다.



 

쿼크가 등장하면서 그제야 비로소 강력의 모습도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갔다.”



 

쿼크의 색깔강력의 근본 이론인 양자색역학(quantum chromodynamics, QCD)을 세우는 데 주춧돌이 된다. (...) 양자전지역학에서 전자기력의 원천이 전하이듯, 색깔은 양자핵역학에서 강력의 원천이었다.”



 

물리학자들이 우여곡절을 겪는 시간을 편안하게 읽는 호사를 누리며, ‘눈에 보이지 않아도 실재하는 입자로 쿼크가 자리매김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물론 영원히 강입자 속에 갇힌 사실을 증명할 명징한 수학적 방법은 아직 없다.

 

그러니 이야기꾼인 저자가 다음 책에서 풀어낼 다섯 개의 쿼크로 이뤄진 중입자관련 이야기들이 더 궁금하다. 물리학의 난제,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면, 수학언어에 대한 두려움 없이 책을 펼쳐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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