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열전 - 인생 고수들이 들려주는 지혜의 말들
김영철 엮음,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기획 / 창비교육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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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런 일을 하시는 분들이 있어, 이 세상은 살 만한 것이구나."


이 책을 읽고 난 뒤 느낌 점은 한 마디로 이것이었다. 처음 느낀 것은 아니지만, 내 속엔 매번 참 염치없단 생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가끔은 망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로 한국사회가 엉망진창 분탕질로 휘몰아칠 때가 있는데, 그 끈질기고도 깊디깊은 범죄행위들과 행위자들, 개선의 여지없이 꿈쩍 않는 범죄 양산 시스템에 절망에 절망을 더하는 때가 끝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아직 이렇듯 소위 '굴러가는' 것은 그에 못지않게 애틋할 정도로 바르고 성실하고 정직하고 더 나아가 주변을 살피는 분들이 아주아주 많기 때문일 것이다 


[공부 열전], 다른 독자들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나는 제목을 보고 헉! 많은 인구가 절대적으로 듣고 싶지 않은 단어일 텐데... 하는 신간에 대한 염려와 걱정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가만가만 생각해보면, '시험 날짜'에 맞춰 해치워야 하는 것 말고도, '살아가기' 위해서 늘 공부는 필요하다. 특히 정보가 범람하여 선택을 좌우하는 이런 시대에는, 일상 정보 판별을 위해서도 제대로 된 공부가 필수적인 법이다. 하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거라면, '바르게 잘 살고 싶다'란 소망을 현실화하고 싶다면, 그 공부란 얼마나 공을 들여 얼마나 오래 해야 하는 것일까.

 

이 책은 먼저 부모님께 일독을 권해 드렸다. 이제는 약화된 시력 탓에 큰 글자 책이 아니면 한 번에 잠시 동안만 독서가 가능하시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늘 활자 책과 출판물과 더불어 살아오신, 가족들 아무도 텔레비전을 아쉬워하지 않는 버릇을 들여 주신, 적지 않게 어린이날 선물로도 책을 받았던, 이런 기억이 있는 나로서는 부모님이 반가워하실만한 분들의 이야기들이 이 책에 여럿 있었기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로 정말 오랜만에 부모님과 함께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정말 특별히 좋은 시간이었다. 훌륭하게 살지 못하는 자괴감과 낯 뜨거움은 있지만, 귀중한 이야기들을 베베 꼬거나 비틀지 않고 알아들을 수 있고, 귀중한 삶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는 안목이 있다는 점만으로도 조금은 안심이 된다.

 

눈물이 차오르기도 하고, 속이 시원해지기도 하고, 없던 용기가 잠시 생기기도 하고, 따스한 위로를 받기도 하고, 감사한 마음이 뭉클하게 떠오르기도 한 행복한 책 읽기였다.

 

[공부 열전] 제목이 주는 떨떠름함은 더 이상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먼저 이렇듯 공부하며 바르게 살아 주시고 애기를 남겨 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동시대인이면서도 먼저 시작한 바른 삶의 이야기를 들려 주신 분들에게 존경의 인사를 드린다. 그리고 위인은 되지 못했지만, 얼굴 붉어질 일들도 자잘자잘 기억 속에 남았지만, 오늘도 바르게 열심히 사람답게 살아가고자 애쓰는 모든 동시대인들이 함께 읽고 배우고 얘기 나누고 위로 받고 용기를 얻기를 바란다.

...........................................


"사람이 그러면 못써."(......) 여기 이 서재에 있는 책들을 다 읽고 한 줄로 줄여라 하면 "사람이 그러면 안 돼." 이거 아닙니까? 공부란 사람이 되어 가는 길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던 겁니다.


"싸워야 큰다."(......) 싸우면 모순이 드러나니까, 그것을 고치고 바꾸고 맞추고 정리해서 새로운 세계로 가자는 거지요.

"남의 일 같지 않다." (......) 마을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이 다 나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말이지요. 관계의 관리를 중요하게 생각한 겁니다.


(......) 나무는 바라보는 쪽이 정면이거든요.(......) 답이 하나인 세상은 없습니다.(......) 경계가 없고, 정면이 없고, 다 받아들이는데도 느티나무는 평생 느티나무로 살거든요. 모든 것을 다 받아들여도 안 변해요. 자신의 정체성을 굳건히 지키며 자기를 귀하게 가꾸어 갑니다. 24-25


저는 살아오면서 뭘 하고 싶은 게 별로 없었습니다.(......) 그냥 산겁니다.(......) 지금도 뭐가 되고 싶은 게 없어요. 희망이 없어 편해요.(......)

바라는 게 없으니까 편하지. 살다 보면 별일들이 있지만 그런 별일들도 다 지나가지요. 늘 지금이 좋다, 생각하며 삽니다. 29


'여행이 학습'이라는 말은 그게 주입식 교육이라는 뜻이 아니에요. 사람은 그냥 놔두면, 풀만 보고 바다만 봐도 깨달을 수 있지요. 오픈해 놓고 가만 놔두면 깨닫게 된다는 걸 그때 알게 된 겁니다.(......) 제가 좋아하는 단어가 '성찰'인데, 깊이 있는 성찰은 반성으로 되는 게 아니라 객관적인 조선이 마련되어 있어야 가능해요. 자유로운 공간, 다른 걸 볼 수 있는 시간이 제공되어야 하고 그것이 바로 여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59


남에게 잘못을 떠넘기는 건 하질의 인간이 하는 짓이에요. 지금 매우 어렵겠지만 당장의 어려움이 인생을 결정하는 건 아니잖아요? 희망을 가지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세요. 절망이 절망을 낳지 않도록. 인생은 희망이니까요. 87


우리가 그냥 '시장'이라고 부르는 것과 제가 '시장 전체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같지 않아요. 시장은 경제 체제이고, 이 체제의 논리, 가치관, 사고방식이 사회 모든 영역을 장악해서 지배하는 것이 시장 전체주의요.(......) 시장 근본주의적 사고가 한국에 들어와서 경제만이 아니고 문화, 교육, 언론 등 광범한 사회 영역들을 접수하고 지배하기 시작한 지 벌써 오래됐습니다. 인문학자들은 대체로 동의하겠지만, 시장 제일주의, 시장 근본주의로는 교육도 안 되고, 사회도 지탱할 수 없어요. 95


중요한 것은 인간이 결코 포기할 수 없고 포기해서는 안 되는 가치들이 있다는 것을 사회가 망각하지 않는 일입니다. 이를테면 '진실', '인간성'(humanity)이 그런 가치입니다. 이런 가치들이 함몰되면 사회는 신뢰의 파탄이라는 커다란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변화에 휘둘리는 시대일수록 사회는 인간이 지키고 유지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잘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98


지금 우리 시대의 교육에서 크게 빠져 있는 것이 타자에 대한 나의 책임 부분입니다. 내가 왜 저 사람과 같이 살아야 하는가? 왜 우리는 공동체를 만들어서 함께 공존의 삶을 도모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고 타자와의 공존을 도모하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100


인간의 욕망은 자연 현상인데 이 욕망이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자극되고, 무한히 확대될 때에는 탐욕이 되어 버립니다. 무한 탐욕이 가져올 것은 인간의 종말이고 문명의 끝이죠. (......) 지금 인간 문명은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지구 환경 전체에, 그리고 우주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인간이 잘 먹고 잘 사는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느라 인간의 지구적 운명에 궁극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들(......)을 인간의 미래와 연결 지어 생각하는 데 소홀했습니다. 사정은 달라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운명은 지구 문명의 운명과 분리되지 않지요. 103-104


우리 사회는 지금 지독한 편협성, 불용, 협소성, 혐오와 증오의 문화 속으로 빠져들고 있고 정치가 이 경향을 더 심화시키고 있어요. 협소하고 편협하고 옹졸한 인간을 부추기는 데 정치가 기여하고 있습니다. 입만 벌렸다 하면 막말 내뱉고 욕설로 쌈박질하는 거, 그게 지금 정치권의 모습 아닌가요? 정치권의 막말 문화가 젊은 세대의 언어 습관을 크게 타락시키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소통 수단이 최고로 발달한 시대에 되레 지독한 불소통의 사회를 만들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역설 같아요. 105


그런 주장에 동의 못합니다. 그렇다면 피해자 인권은 누가 지켜줍니까? 그런 얘기를 하는 분들은 피해자 인권에 대해 아예 언급하지 않더라고요. 형사 사법 제도의 중심이 되는 사람이 범죄자다 보니 범죄자의 인권 침해에 대해서만 강조하는 것이지요. 그들이 희생양으로 삼은 피해자는 증인에 불과합니다. (......) 저는 인권을 절대 가치로 취급하는 의견에 단호히 반대합니다. 그전에 공동체의 안전과 피해자의 인권이 있는 겁니다. 132


소년원 교육 프로그램 중에서 재범률을 가장 떨어뜨리는 과목이 제과 제빵이에요.(......) 아직까지 재범이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어요.(......) 아이들의 '욕구(need)'를 충족시켜 줬기 때문입니다. 그런 아이들을 교실에 모아 놓고 뭐가 선이고 뭐가 악인지 교육해 봐야 말짱 헛일입니다. 그래 가지고는 갱생이 불가능하지요. 현실적인 장애를 넘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교소도 나오면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하고 가정은 다 해체돼 비행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어요. 그 경로에 어떤 방식으로 개입하느냐가 중요합니다. (......) 그런데 이런 정책이나 대책을 집행하려면 예산과 인력이 있어야 되잖아요? 근데 그게 확보가 잘 안 된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겁니다. (......) 정치하는 사람들이 우리같이 현장을 잘 하는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듣고 소년원에 예산을 더 배정해 주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청소년들은 투표권이 없잖아요? 그러니 예산 배정이 안 되는 거예요. 어쨌든 투입한 만큼 갱생은 가능합니다. 133-134


역사 속에서 산업화와 민주화의 공과를 따져 보면, 산업화는 가난을 벗고 밥을 먹어 보자는 것이었고, 민주화는 사람이 밥만 먹고 사냐, 말을 제대로 하고 살자는 것이었지요. 이 둘은 대립되는 게 아니라 크게 보면 서로 승수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역사의 어느 단면에서는 대결했는지 몰라도, 크고 길게 보면 밥과 말이 같이 되는 세상을 만들어 가자는 것이지요. (......) 밥도 먹고 말도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지금 안전하고 행복한가요? 그렇지 않거든요. 먼지 걱정, 물 걱정, 더위 걱정 따위를 한단 말이에요. 이런 큰 문제를 정직하게 다루는 게 중요하지, 과거에 연연해 박정희와 김대중을 말하는 건, 작은 이야기입니다. 175-176


교육은 사람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수단입니다. 엄밀히 말해 종교도 교육이지요.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고 45년간 각지를 돌아다니며 설법했고, 예수도 3년간 여기저기 다니며 설교했습니다. 저는 이들이 유목형 교육자라고 봐요. 그러니까 교육이 사람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아니지만, 가장 유력한 수단인 건 맞다는 생각입니다. 186


지혜가 많은 사람이 지식이 많으면 좋고, 지식이 많은 사람이 정보가 많으면 좋은데, 요즘 사람들은 거꾸로 돼서 지식은 없고 정보만 넘치게 알지요. 187


과거에 TV가 일반화될 때, '바보 상자'라고 하면서 문명 비판적인 용어로 조롱을 했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휴대폰을 '스마트폰'이라고 칭송한단 말이예요. 결코 스마트하지 않은데. 현재 지성 사회가 문명 비판적인 시각이 너무 약화되고 디지털에 압도되어 있다는 방증이지요. 188


남북 간에 평화가 정착되고 통일이 됐다고 칩시다. 그런데 25년 후에 지구 온난화로 이 땅에 사람이 살기 극히 어려워지면 평화가 오고 통일된 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한반도 생명 공동체의 바탕 위에서 평화를 이뤄야지, 정치적인 통일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189


내가 늘 하는 말이 있어요. "이씨 왕조가 너무 오래갔다. 임진왜란이 끝났을 때 사실은 왕조가 바뀌었어야 했다." 그랬으면 실학자들이 새 왕조의 이데올로그가 됐을 겁니다. 새 왕조가 만들어지고 그때부터 근대를 향한 움직임이 시작되었을 거예요. 그렇게 됐으면 일제 강점기 전의 애국 계몽 운동이 공화정 운동이 됐을 거고, 자력적인 근대화가 시작됐을 겁니다. 그럼 식민지 통치를 안 받았을 거고요. 조선 왕조가 너무 오래갔습니다. 229


학문이라는 게 근본적으로는 진실에 가까워지는 일입니다. 그것 말고 다른 게 있을 수 없어요. 특히 역사학은 진실을 밝히는 학문입니다. (......) 왜냐하면 역사라는 건 이렇게도 볼 수 있고, 저렇게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속에서 얼마만큼 진실된 역사적 사실을 찾아낼 것인가, 그걸 모아 놓은 게 가장 중요한 역사책이 된단 말이에요.(......) 현실에 따라붙어야 되지만, 너무 시류에 따라 가면 현실에 아부하는 학문이 될 가능성이 높단 말이에요. 그러면 진실되지 못한 학문이 됩니다. (......) 학문은 무조건 진실을 추구해야 합니다. 235-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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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소설의 시대 1 백탑파 시리즈 5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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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많은 모순 중 하나는, 동서를 막론하고, 장르를 불문하고, '역사'소설, 드라마, 영화 등의 감상을 즐기지 못하는 주제에, 호기롭게도 젊고 어린 20대에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 "죽기 전에 조선왕조실록은 한번 읽어본다!"라고 맹약(?!)을 맺은 점이다.

 

물론, 그 호기롭던 맹서는 매년 새해 결심을 업데이트할 때마다 빠지지 못하고 오르는 목록으로만 진전을 보고 있다. 그러니 내 마음 속엔, 역사 관련 문학이나 저술이 눈에 띌 때마다, 갈 곳을 잃은 맹렬한 호기심과 한편에 처박혀둔 열등감이 늘 솟아오른다. 그래서 이리저리 뒤적이는 노력은 하지만, 재밌게 잘 읽히는 경험도 학습이 제대로 되는 경험도 늘 부족하긴 마찬가지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그 언저리 어디쯤을 맴돌고 있다는 점이 가끔은 제대로 된 도움을 받거나 행복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기도 하는데, 이번 민음사 출판 [대소설의 시대 1,2]는 그런 드문 경험 중 하나이며, 실상 기대 이상이기도 하였다.

 

<소설 조선왕조실록>이란 부제가 있고, 18세기 배경으로, 들어본 적 없는 '대소설'을 소재로 삼아, 실제 학술논문과 연구 자료들을 줄줄 달고 나온 추리소설! 실로 나에게는 종합선물세트같은 유혹들이 가득해 보였다.

 

그리고... 진심으로 놀랐다. 재미있다!!!

 

디자인도 문체도 시대배경도 어찌나 단정한지 설마 이토록 죽죽 읽히는 와중에 흥미진진 추리가 논리적으로 펼쳐질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이런 거라면 <조선왕조실록> 이번 생에 읽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18세기 시대적 배경인데, 작가의 묘사력 덕인지, 배경이 되는 공간조차 생생히 떠올랐다. 인물의 대화 또한 어색한 점 하나 없이 그야말로 술술 읽힌다. 블랙아웃이 와서 뭘 빠트렸나 싶을 정도로 1권을 속도감 있게 읽었다.

 

작가의 명성은 이미 널리 알려졌으나, 18세기 대소설 작가로서의 여성을 다룬다기에, 그 부분에서는 기대를 키우지 말자 하는 생각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산해인연록]이라는 200권에 가까운 대소설을 남성을 연상시키는 필명으로 23년간 써내려온 작가의 회상, 심정, 세계관 등을 서술하는 대목을 읽으며 마음이 뻐근해져 왔다.

 

어떤 글은 눈물이 송송 차오르게 하는 반면, 이 책은 그 여성의 삶과 한과 자존심과 어려움 등을 시대는 다르지만, 삶은 그다지 나아진 것 같은 않은 사회의 여성을 살아가면서 겪은 크고 작은 직/간접 경험들을 떠오르게 하고, 무엇보다 공감의 감정을 깊숙이 느끼게 이끌어 주었다. 살짝 당황스럽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다.

 

[백탑파 시리즈]2003<방각본 살인 사건>으로 시작되어, 16년 간 510권이 출간되었다고 하는데, 이번 독서 경험을 통해 받은 감정의 흔들림이 큰 덕인지 성별을 떠나 김탁환 작가의 소설 세계를 더욱 잘 알고 싶다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커져갔다.

 

다른 한편 소설을 전공한 독자라면, 이 글은 한편으론 '소설이란 무엇인가,' '소설은 어떻게 써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친절한 내용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흥미로울 것이다. 물론, '소설은 시대의 거울'이라는 점에서 18세기의 소설과 21세기의 소설은 다르겠지만, 이런 소설의 역사에 대해 전혀 무지했던 나로서는, 방대한 분량과 대단한 구성력을 가진 여성 문학이 조선시대에 각광을 받았고, 연구자들이 그 부분에 관해 열심히 연구하고 자료를 제공해왔다는 점이 상당히 감동스럽다.

 

어쩔 수 없이 처음 접한 '대하소설' [토지]박경리 작가가 떠오르는데, 반갑게도 책의 시작에 박경리 작가의 말이 인용되어 있다

.


 

 

자주 드는 감정이고 이 분야만이 아니라 여러 분야에 무지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그 연구목록과 책의 각 장이 시작될 때마다 소개되는 대소설을 읽은 바가 없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마지막으로 명실상부 6, 여름이 시작되니, 늘 하던 버릇대로 추리소설 생각이 가득하다. 추리소설의 애독자로서 지금껏 살아 온 독자로서 단언컨대, 이 책은 '메타소설' 장르 이외에도 '추리소설'로 분류되어야 하고 추리의 재미도 발군이다. 등장인물들도 쉽게 호감을 느끼는 캐릭터들과 실제 역사 속 인물들의 적절한 등장으로 신선하고 기분 좋은 전개를 펼쳐 나간다. 마지막까지 결말이 어찌나 궁금하던지, 그래도 한 줄이라도 감히 건너 뛸 생각도 못하고 차근차근 순순히 시키는 대로 따라다녔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흔히 서평을 올릴 때 인용을 하는데, 그 분량을 극도로 줄여 본다. 스포일러는 제대로 이 소설 읽기의 재미를 결단코 망칠 것이다!)

 

한 작품에 매력적인 소재와 질문들이 가득하고 분량이 많을수록 제대로 재미를 줄 것 같고 정체를 흥미진진 드러내줄 것만 같은, 참으로 특별한 소설이다. 통상 유명세를 반기진 않지만, 오래도록 유명한 이유도 분명히 있는 게 맞는다면 김탁환 작가와 그의 작품들은 실로 그러하다. 언젠가 작가가 10권 이상의 역사장편소설을 출간한다는 소식이 들리면, 나는 의심도 주저도 없이 반갑게 그 작품을 읽을 것이다. 두 권으로 끝나 아쉽기만 한 [대소설의 시대 1,2]이다.

 

"임 작가님이 얼마나 귀한 소설가인지는 안다 이 말이오. 그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여태껏 살아오며 마음에 품었던 여인들과의 추억이 떠오르고, 또 제대로 잘 살기 위해 내게 부족한 게 무엇인지도 되돌아보게 되오. 소설이 읽는 이들에게 그처럼 귀한 선물을 준다면, 소설을 읽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오." 309


죽는 날까지 소설을 쓰다가 서안에 쓰러져 세상을 떠나고 싶다고 자랑하듯 떠드는 소설가도 있지. 무책임한 짓이야. 이야기는 끝이 없지만 소설은 마무리 지어야 해. 이 세상에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쓰기 시작하는 인간이 소설가이듯 끝내는 자도 소설가여야 하거든. 끝내지 못한 채 쓰다가 죽어 버리면, 그 소설은 영영 미완성으로 남아.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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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생태 쫌 아는 10대 - 우리, 100년 뒤에도 만날 수 있을까요? 과학 쫌 아는 십대 3
최원형 지음, 방상호 그림 / 풀빛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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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와 소개글로 보아서는 무척 기대되는 출판물입니다. 함께 사는 10대 가족들과 함께 읽어 보고 추천하고 싶은 도서입니다. 시리즈 물이 쭉 오래 나와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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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국어 표현력 사전 - 말과 글의 힘을 키우는
박수미 지음 / 다락원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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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고 유용할 것 같아 관심이 갑니다. 단지 소개된 내용 중 ‘열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 없다‘는 말은 현재 사회적 인식 변화와 관련 범죄가 떠올라 불편하고 안타깝습니다. 흔히 호감이 가는 ‘여성‘에게 끈질긴 구애를 할 때 응원?하는 표현으로 널리 쓰였는데, 자칫하면 범죄가 될 수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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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 김려령 장편소설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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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령 작가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으로 꼽히는 [완득이]의 분위기만 해도 사회와 생활 저변의 소재들이 가득한, 통속적이고 대중적인 의상을 입고 있지만, 무척이나 강렬한 에너지로 쓰인 원칙과 도덕을 추구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 김려령 작가 작품들도 예외없이 그의 폭넓은 시각에서 비롯된 사회 여러 분야에 대한 성숙한 의견을 개진하며, 묵직한 주제에 진지하게 집중하고도 다소 도발적인 소재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가는 필력이 늘 돋보인다고 느꼈다.

이렇듯 언제나 무척 대중적이랄 수밖에 없는 서사를 맛난 화법으로 다루는 능력은, (썩 좋은 비유는 아니지만) 통속을 예술로 완성시키는 김려령 작가만의 능수능란함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작가는 '증조할머니'에게 옛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것이 자양분이 되었다고 하는데, '증조할머니'를 뵌 적도 없는 나로서는 그런 행복하고도 따스한 양육의 경험이 몹시 부러웠다.

마치 막장아침드라마 소재와 같은 이 책의 얼개에 다소 멈칫하고 자신 없어하면서도 읽어 보자고 한 결정은 그러한 작가에 대한 믿음에 순전히 기인한다.

 

사랑은 찾아나서는 것이 아니라 나타나는 것이다. 어느 날 그곳에서 불현듯. 69

 

결혼, 실패, 여행지, 일주일, 재회, 사랑, 전처, 위기, 비난, 상처, 고난, 극복.

 

마치 드라마의 회 차처럼, 전개되는 이야기는 등장인물들 개개인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서술, 관계 속에서 얽히고설키는 인간 군상에 대한 섬세한 통찰, 늘 궁금하고 어렵지만, 누구도 정답을 알려줄 수 없는 사랑의 여러 모습들. 그리고 숨 막히는 속박이 될 수도 있지만, 한층 더 자유로워 질 수 있는 사랑,이라는 관계의 양면성. 이 모든 생각들이 책을 읽는 동안 복잡한 마음과 함께 머릿속에 떠다녔다.

 

이 모든 사건들의 전제는 등장인물들의 삶을 뒤흔든 '일주일', 독자 누군가의 삶을 뒤흔들 수도 있는 '일주일'이 발단이 된다. 또한 이는 가장 흥미진진하고 결정적인 소재로서, 소설 전반에 걸쳐 한 번의 동일한 경험이 설레는 사랑의 시작으로, 삶을 위협하는 함정으로,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의 실마리로 탈바꿈하며 달리 해석된다.

누군가에게는 공감할 수 있는 경험으로서의 일주일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겠지만, 그 과정을 실제로 겪는다고 상상해 보면, 너무나 억울하기도 하고 어이없어 화가 나기도 하고 헛된 싸움이란 생각에 허무하기도 하는 등 실로 다양한 감정을 맛볼 것 같았다.

 

대개는 '첫 눈에 반한다'라거나, '사랑에 빠진다'와 같은 경험에 별반 공감이 쉽지 않은 나로서는, 더구나 연애감정이라는 것 자체가 지극히 사적인 감정을 가시적으로 증폭시킨 것이기도 해서, 가끔 어떤 연애소설이나 드라마나 영화는 이해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그보다는 각자의 상처와 좌절과 비틀린 마음과 고조되는 갈등, 언론의 부정적 기능과 사회적 몰이해에 휘둘리는 고난 등의 배경과 사회 환경 전반이 더 생생하게 아픈 느낌이다.

 

서로를 바라보지 않은 채 오래였고 혐오만 남은 부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니?

 

이런 명료한 표현은 어떤 칼날 같은 말보다 정말 서글프다.

 

결국 관계 속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아늑함과 따뜻함이고 그러면서도 자유를 보장받는 것일까. 이런 이상적으로 들리는 관계 설정일지라도, 현실적으로는 그런 상대를 알아보고 서로 사랑을 주고받고 관계를 성립하고 함께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또 얼마나 복잡하고 촘촘하고 생생하고 온갖 개성이 끊임없이 부딪치는 전투일까 싶다.

 

인간의 성장과 관계와 사회적 존재로서의 위치 매김에 대한 이야기는 항상 오래되고도 매번 어려운 질문들,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는 '어른 혹은 성인'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 '사랑,' 혹은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를 묻고,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매번 이 질문들 앞에서 답이 궁색하다.

 

부부는 숨김없이 모든 것을 함께하는 거였다. 그러므로 잠시의 혼자도 용납되지 않았다. 역설적으로 늘 붙어 있는 아내로 인해 혼자일 때보다 더 외로웠다. 사람들은 아내가 곁에 있는 그의 곁을 피했다. 유철은 늘 발목에 긴 끈이 묶인 것 같았고, 저 앞에서 정희가 그 끈의 끝을 잡고 있는 것만 같았다. 216


목적지를 두고 가면 늘 헤매서 차라리 길이 보이는 대로 가다가 좋은 데를 발견하면 그곳을 목적지로 삼는다는 여자. 그렇게 정처 없이 다니면 숙소는 어떻게 찾아와요? 택시요. 꼭 그녀의 방식대로 즐긴 여행이었다. 그렇게 가다보면 신기하게도 궁전이 나왔고 탑이 나왔고 공원이 나왔고 맛있는 아이스크림집이 나왔다. 56


도연은 사랑하므로 희생한다는 자기희생성 낭만을 경멸했다. 그런 사람들은 희생한 자신에게 숭고함을 부여하고 절대적 존재로 인정받길 바랐다. 희생을 사랑으로 갚아야 하는. 나한테서 돌려받을 희생 말고 날 위해 그냥 떠나주는 희생은 손해라서 안 되니? 희생으로 장사해? ()

상대가 원하지 않는 것은 하지 않는 거, 그게 사랑이야. 68-69

 

아프지 않기도, 다치지 않기도 바람으로만 존재하겠지만, 아프거나 다칠 수는 있어도 모욕당하거나 비참해지지 않는 배려와 존중이 있는 인간관계는 가능하지 않을까, 나는 그 정도의 작은 바램을 가져본다.

 

사랑이라고 하지만, 나도 상대도 죽음으로, 혹은 그와 같은 고통으로 몰아넣는 집착. 새삼 참 두려운 일이구나 싶다.

 

작가가 건네는 무척이나 어려운 사랑, 결혼, 관계에 대한 메시지를 다른 독자들은 어떻게 읽었을까 너무 궁금하다. 내공 깊은 분들이, 그렇지 않더라도 되도록 많은 이들이 감상이나 서평을 올려 주면 무척 반가울 것이다.


사족: 글자로 디자인한 표지가 정말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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