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 김려령 장편소설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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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려령 작가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으로 꼽히는 [완득이]의 분위기만 해도 사회와 생활 저변의 소재들이 가득한, 통속적이고 대중적인 의상을 입고 있지만, 무척이나 강렬한 에너지로 쓰인 원칙과 도덕을 추구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 김려령 작가 작품들도 예외없이 그의 폭넓은 시각에서 비롯된 사회 여러 분야에 대한 성숙한 의견을 개진하며, 묵직한 주제에 진지하게 집중하고도 다소 도발적인 소재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가는 필력이 늘 돋보인다고 느꼈다.

이렇듯 언제나 무척 대중적이랄 수밖에 없는 서사를 맛난 화법으로 다루는 능력은, (썩 좋은 비유는 아니지만) 통속을 예술로 완성시키는 김려령 작가만의 능수능란함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작가는 '증조할머니'에게 옛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것이 자양분이 되었다고 하는데, '증조할머니'를 뵌 적도 없는 나로서는 그런 행복하고도 따스한 양육의 경험이 몹시 부러웠다.

마치 막장아침드라마 소재와 같은 이 책의 얼개에 다소 멈칫하고 자신 없어하면서도 읽어 보자고 한 결정은 그러한 작가에 대한 믿음에 순전히 기인한다.

 

사랑은 찾아나서는 것이 아니라 나타나는 것이다. 어느 날 그곳에서 불현듯. 69

 

결혼, 실패, 여행지, 일주일, 재회, 사랑, 전처, 위기, 비난, 상처, 고난, 극복.

 

마치 드라마의 회 차처럼, 전개되는 이야기는 등장인물들 개개인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서술, 관계 속에서 얽히고설키는 인간 군상에 대한 섬세한 통찰, 늘 궁금하고 어렵지만, 누구도 정답을 알려줄 수 없는 사랑의 여러 모습들. 그리고 숨 막히는 속박이 될 수도 있지만, 한층 더 자유로워 질 수 있는 사랑,이라는 관계의 양면성. 이 모든 생각들이 책을 읽는 동안 복잡한 마음과 함께 머릿속에 떠다녔다.

 

이 모든 사건들의 전제는 등장인물들의 삶을 뒤흔든 '일주일', 독자 누군가의 삶을 뒤흔들 수도 있는 '일주일'이 발단이 된다. 또한 이는 가장 흥미진진하고 결정적인 소재로서, 소설 전반에 걸쳐 한 번의 동일한 경험이 설레는 사랑의 시작으로, 삶을 위협하는 함정으로,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의 실마리로 탈바꿈하며 달리 해석된다.

누군가에게는 공감할 수 있는 경험으로서의 일주일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겠지만, 그 과정을 실제로 겪는다고 상상해 보면, 너무나 억울하기도 하고 어이없어 화가 나기도 하고 헛된 싸움이란 생각에 허무하기도 하는 등 실로 다양한 감정을 맛볼 것 같았다.

 

대개는 '첫 눈에 반한다'라거나, '사랑에 빠진다'와 같은 경험에 별반 공감이 쉽지 않은 나로서는, 더구나 연애감정이라는 것 자체가 지극히 사적인 감정을 가시적으로 증폭시킨 것이기도 해서, 가끔 어떤 연애소설이나 드라마나 영화는 이해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그보다는 각자의 상처와 좌절과 비틀린 마음과 고조되는 갈등, 언론의 부정적 기능과 사회적 몰이해에 휘둘리는 고난 등의 배경과 사회 환경 전반이 더 생생하게 아픈 느낌이다.

 

서로를 바라보지 않은 채 오래였고 혐오만 남은 부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니?

 

이런 명료한 표현은 어떤 칼날 같은 말보다 정말 서글프다.

 

결국 관계 속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아늑함과 따뜻함이고 그러면서도 자유를 보장받는 것일까. 이런 이상적으로 들리는 관계 설정일지라도, 현실적으로는 그런 상대를 알아보고 서로 사랑을 주고받고 관계를 성립하고 함께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또 얼마나 복잡하고 촘촘하고 생생하고 온갖 개성이 끊임없이 부딪치는 전투일까 싶다.

 

인간의 성장과 관계와 사회적 존재로서의 위치 매김에 대한 이야기는 항상 오래되고도 매번 어려운 질문들,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는 '어른 혹은 성인'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 '사랑,' 혹은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를 묻고,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매번 이 질문들 앞에서 답이 궁색하다.

 

부부는 숨김없이 모든 것을 함께하는 거였다. 그러므로 잠시의 혼자도 용납되지 않았다. 역설적으로 늘 붙어 있는 아내로 인해 혼자일 때보다 더 외로웠다. 사람들은 아내가 곁에 있는 그의 곁을 피했다. 유철은 늘 발목에 긴 끈이 묶인 것 같았고, 저 앞에서 정희가 그 끈의 끝을 잡고 있는 것만 같았다. 216


목적지를 두고 가면 늘 헤매서 차라리 길이 보이는 대로 가다가 좋은 데를 발견하면 그곳을 목적지로 삼는다는 여자. 그렇게 정처 없이 다니면 숙소는 어떻게 찾아와요? 택시요. 꼭 그녀의 방식대로 즐긴 여행이었다. 그렇게 가다보면 신기하게도 궁전이 나왔고 탑이 나왔고 공원이 나왔고 맛있는 아이스크림집이 나왔다. 56


도연은 사랑하므로 희생한다는 자기희생성 낭만을 경멸했다. 그런 사람들은 희생한 자신에게 숭고함을 부여하고 절대적 존재로 인정받길 바랐다. 희생을 사랑으로 갚아야 하는. 나한테서 돌려받을 희생 말고 날 위해 그냥 떠나주는 희생은 손해라서 안 되니? 희생으로 장사해? ()

상대가 원하지 않는 것은 하지 않는 거, 그게 사랑이야. 68-69

 

아프지 않기도, 다치지 않기도 바람으로만 존재하겠지만, 아프거나 다칠 수는 있어도 모욕당하거나 비참해지지 않는 배려와 존중이 있는 인간관계는 가능하지 않을까, 나는 그 정도의 작은 바램을 가져본다.

 

사랑이라고 하지만, 나도 상대도 죽음으로, 혹은 그와 같은 고통으로 몰아넣는 집착. 새삼 참 두려운 일이구나 싶다.

 

작가가 건네는 무척이나 어려운 사랑, 결혼, 관계에 대한 메시지를 다른 독자들은 어떻게 읽었을까 너무 궁금하다. 내공 깊은 분들이, 그렇지 않더라도 되도록 많은 이들이 감상이나 서평을 올려 주면 무척 반가울 것이다.


사족: 글자로 디자인한 표지가 정말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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