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양이는 대체로 누워 있고 우다다 달린다
전찬민 지음 / 달 / 2024년 10월
평점 :
느릿하고 느긋하게 사는 법을 이번 인(人)생에는 못 배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느릿하고 느긋하면서도 충분히 잘 사는 묘(猫)생을 더 많이 쳐다봐야할 지도. 나른하게 누웠다가 깊이 잠들거나, 오래 잠들었다가 깨고도 누워 있고 싶다. 까슬까슬한 표지가 좋아서 여러 번 쓸어본다.
제목에 끌린 독자는 비슷한 의문을 가질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는 유쾌한 속임수에 속은 것처럼 크게 웃었다. 읽는 내내 고양이를 찾거나 기다리지는 않았다. 에세이는 워낙 작가와의 거리가 가까운 문학이지만, 모르던 이의 구체적 삶의 풍경에 이렇게 밀착되는 느낌은 무엇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빈틈없이 사로잡혀서 읽었다.
“‘어떤 나’도 모른 척하지 않았다. 괴롭고 고통스러워도 꼭 불러다 뒤에 태웠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햇볕에 쓰러질 것 같은 날에도 상관없이 달렸다.”
친한 친구들이 일본에 산다. 취업 한국인, 일본인 배우자와 사는 친구, 일본인 이렇게 세 명이다. 만난 시기는 모두 다른데 첫 만남의 풍경은 비슷하다. 첫눈에 반갑기만 해서 멈추지 못하는 대화가 이어지고 그 순간부터 친해진 경우. 이런 만남이 살다보면 가끔 있는데, 친밀도가 아주 강력해서 사용하는 언어조차 의식이 안 되기도 한다.
“울어. 제때 할일을 하고 살아야 살아지는 거야. 지금은 울어야 할 때야.”
사적인 경험이자 관계라서 일까, 일본, 일본인, 일본의 삶과 일상이란 카테고리로 물으면 아는 게 거의 없다. 친구들의 국적을 헤아리는 건 무용해서 내 친구인 사람들일 뿐이다. 안부를 주고받고 오가는 중에 보고 들은 건 있지만, 피상적인 분위기와 에피소드일 뿐이다.
“도와달라고 내밀어진 손을 뿌리치지 말고 잡아주자. 그럼 언젠가의 어느 날, 씩씩해진 그가 덥석 나를 붙들어줄 거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붙들고 가는 거다,”
그래서 이 책은 낯선 이의 일기장 같기도 한 문학이지만, 일본에서의 삶에 관한 일종의 학습 텍스트 같기도 했다. 무척 재미있다. 구체적인 사례들로부터 시작해서 숙고와 사유를 통해 간결해진 생각을 단정한 문장에 정리해(?) 주어서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읽었다.
“그런 마음도 있는 거란다. 괜찮다.”
같은 표현인데 상황이 다르니, 신기하게 위로를 받기도 했다. 요즘 계속 아프고 무거운 몸을 “질질 끌고 억지로 살아가는 느낌”이 나도 들어서, “딱 다음 날 하루치만” 더 살아보자, 란 간신히 세운 결심이 좀 더 오래 계속되는 희망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위안을 얻는다.
“휘청거리지 않은 날이 1년에 몇 번 있을까? 내가 날 흔든 날, 누군가 나를 흔든 날, 모두 매일을 흔들리며 살고 있다.”
대체로 누워 있고 싶고, 다시는 우다다 달리지 못할 거란 기분도 들지만, 어쨌든 일어나서 걷기라도 할 수 있으면 당분간은 괜찮다 싶다. 작가가 자신을 마주하고 반성한(?) 가차 없는 내용들이 적지 않지만, 내가 보기엔 대단하게 성실하게 살아온 시간들이다. 덕분에 읽는 시간 내내 진하게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