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의 시간 교유서가 다시, 소설
김이정 지음 / 교유서가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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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시간은 삶과 죽음의 아주 흐릿해진 경계에서 오래 머물다 가신 내 아버지의 마지막 날들을 상기시켰다. 엉망이 된 기억으로 헷갈리던 시간, 아버지는 자주 웃으셨고 나는 더 자주 속이 상했다. 안동출생 작가와 안동 사람 이섭의 이야기, 안동에서 태어나 같은 불꽃 섭()’자를 쓴 내 아버지는 8월의 한 날, 잘 드시고 이발을 하시고 오수를 즐기다 떠나셨다.



 

피난 다닌 얘기를 또 해달라고 아버지에게 조르던 철없고 완벽하게 안전하던 밤들, 30대에 과부가 된 할머니가 칼과 함께 품고 매일 밤잠에 든 아들은, 한국전쟁이 터지고 평양까지 걸어 피난을 다녀왔다. 혼돈의 시절에 뜻은 더 높고 날카롭게 벼려져서, 이삼십 대를 정치판에서 살다가 수감된 채로 첫째인 내 입학 날을 맞았다고 하셨다.

 

짓눌릴 듯 묵직한 공기를 순식간에 뿜어내는 그 시절을 물을 용기가 내게는 없었다. 아버지의 꿈과 이상이 무엇이었고, 어떤 좌절을 겪었는지 몰라서 이 책이 데일 듯이 부럽다.

 

허약하지만 아름다운 꿈을 꾼 이섭,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모든 사람들의 생각을 존중한 장인, 말만이 아니라 몸으로 뜻을 살아간, 사람에 상하도 귀천도 없다고 믿은 숙부,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과 상실 속에서도 죽을힘을 다해 책임을 다하고 견디며 일상을 이어간 이들이 모두 친지 같다.

 

살아남고 살아가는 일의 고단함과 엄중함을 몸 여기저기의 통증으로 이해하는 나이에 읽어서 다행이다. 경험하지 않은 것은 알 수 없다. 부친의 별세 이후에야 그 이별과 부재가 무엇인지 배웠다. 이 책은 가장 적당한 순간에 만났다.

 

언젠가 산책길에서 아버지는 한국사회가 실패를 낙인처럼 명시하고, 다른 기회에 인색하다고 하셨다. 신원조회도, 사회안전법도, 일상의 검열도, 이유가 없으면 만들어내서라도 행하는 혐오도 경쟁을 교리로 믿고 차별과 위계를 공고히 하려는 이데올로기이다.

 

쓰리고 아프던 이섭의 유령의 시간이 저물었다. 내 아버지의 유령의 시간도 저물었다. 자서전을 이어간다는 건 유령의 시간으로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록물은 위임된 권력보다 힘이 세다. 두 명의 ()”이 자유롭게 지구상의 어디라도 널리 멀리 다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 본 하늘은 그 불꽃들로 높고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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