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예술가 : 고백과 자각 직업으로서의 예술가
박희아 지음 / 카시오페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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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 2권으로 출간되었는데 그 중 고백과 자각에 인터뷰가 담기 예술가들은 내가 잘 알지 못하는그들의 예술 작품을 접한 적이 없는아마 그렇게 서로 지나쳐갈 이들이 더 많은 목차였다. 2권으로 먼저 읽고 싶은 조급한 마음을 참고모르기 때문에 더 먼저 찬찬히 읽자는 기특한(?) 생각을 했다목차를 보고 한 고민 덕에 아주 조금 철이 들었을지도.



인터뷰집은 자료 확보가 용이해서 마치 녹취한 내용들을 손질해서 모아 놓은 거라고 오해할 수도 있지만어쩌면 작가 한 사람이 자기 생각을 오롯하게 표현하는 것보다 어려울 지도 모른다중요한 것은 답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답변을 할 가치가 있는 질문을 하는가가 책의 중요한 가치 판단이자 가장 치열한 출판의 시작이 아닌가 한다.

 

저자이자 인터뷰어인 박희아는 프리랜서 기자라는 점에서 예술가들과의 공감 접점들이 많을 지도 모르겠다. ‘프리라는 말은 예술이라는 말은 듣기에는 그토록 달달하지만 직업으로서는 무시무시한 영역이다특히나 사회안전망이 약하고 얕은 한국사회에서는 굶어 죽을 자유에서 그리 멀지 않는 지점에 자리한 불안정 고용이다나는 저자 역시 한 사람의 예술가라 믿는다그래서 저자의 말에 한참 머물렀다.

 

남의 이야기를 듣지 말고 네 글을 쓰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를 통해 함께 완성해나가는 글쓰기가 즐거웠다그래서 여기까지 왔다후회하지 않는다.”

 

고백을 통해 창작자도 작품도 모르던 이들의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여러 번 스쳐갔다.

 

자각을 통해 예술가들이 인지하고 통찰한 현실과 현재를 함께 보았다.

전 존재를 부딪쳐 알아내는 예술의 본질

이렇게 편안히 읽기만 해도 되나 싶었다.

 

저는 그 누구보다 철이 들어야 하는 사람들이 배우들이라고 생각해요. (...) 옳고 그름의 문제에 대해 고민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거죠우리의 공연을 통해 누군가에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면나쁜 짓을 하는 모습을 보여줘도 이런 행동을 하면 안 돼요라는 설정이 들어가야죠그 나쁜 짓이 너무 화려해 보이면 안 된다는 거예요. (...) 관객분들이 돌아가는 길에 범죄에 박수를 보낸 것 같은 느낌을 받으시면 안 되잖아요.”

 

멋진 깡패들 영화가 더 이상 생산되지 않아 다행이다.

한 때 참 역겹고 걱정스러웠는데.

이 책을 읽은 덕에 잠시 안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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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시크릿 - 어제보다 더 행복해지기 위한 56가지 마음 훈련법
류창장 지음, 정은지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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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인가 행복에 관한 연구와 설문 조사를 실은 기사를 읽었다인상 깊었던 질문 두 개가 아직 기억난다.

 

1. “지난 1년간 행복한 척해본 적 있는가?”

2. “지난 1년간 행복에 관한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본 적 있는가?”

 

놀랍게도 저만 그런가요 - 1번이 60%가 넘었고, 2번이 50%에 육박했다그 통계를 보고 그럼 누가 정말 행복한걸까 잠시 의아해하며 서글펐던 감정이 들었다그래서 SNS는 날로 더 성황을 이루는지도 모르겠다행복한 척하는 모든 활동이 그것에 기록되고 있을 지도그리고 타인의 그런 척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이들도 여전할 지도슬프다.

 

어쨌든 진짜 행복해질 방법이 있다고 말하는 저자와 책들은 출간되고 있다훈련법이 56가지나 되다니선택과 집중의 방식으로 읽어 봅니다.

 

05 주어진 시간을 모두 일에 쓰지 마라

07 자신에게 괜찮다는 위로를 건네라

17 보이지 않는 미래에 전전긍긍하지 마라

19 성급하게 결론 내지 마라

28 오늘을 감당해야 내일이 온다

19 곁에 있는 행복을 보라

34 정신적 빈곤에서 빠져 나와라

50 행복은 아주 가볍고 단순하며 쉽다

 

대개 행복하게 지내는 사람은 노력가이다. (...) 노력의 결과로써 오는 어떤 성과의 기쁨 없이는 누구도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성실하고 바쁜 듯 살지만 사실 근본적으로 나는 게으르다생각도 감정도 말도 행동도 게으르기 때문에 절제가 가능한 유형이다간혹 의지가 강한 편이라고 오해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게을러서 그런 경우가 많다성과에서 오는 기쁨과 행복알 듯도 하고 더 이상 유의미하지 않은 항목인 것 같기도 하고.

 

자신이 얻지 못할 것을 추구하면서 그것이 있어야만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열심히 추구하진 않지만 심정적으로 결핍을 느끼며 변명으로 삼으려는 태도가 없진 않다반성한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위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는가등을 토닥여주는 손길응원을 보내는 웃음따뜻한 격려사랑한다는 고백그리고 고마움을 전하는 말 등 눈을 감고 그때의 감동을 고스란히 되살려보자.”

 

그때도 고맙고 지금은 더 고마운 일들이다감사합니다.

 

완벽하려는 마음에 행복을 놓친다면 (...) 그 대신 우울과 좌절이 그 자리를 채운다.”

 

전혀 아닌데도 완벽하려는 성향과 우울을 결합해서 설명하는 예들을 워낙 자주 만나니 이젠 헷갈리기도 한다내 우울 역시 완벽 추구와 관련이 있는 걸까그럴 리가그런데 아니라면 어떤 이유일까너무나 오래된 우울이젠 약 조절도 맘대로 하고 그냥 친근하다그래도 가능하면 이만 헤어지고 싶구나.

 

뜻밖에 반가운 이들이 많이 등장한다그래서 잠시 행복하고 즐겁다이 책의 효용을 나는 여기서도 발견한 셈이다.

 

나 자신의 삶은 물론 다른 사람의 삶을 삶답게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정성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다.” 톨스토이

 

행복의 원칙은 첫째 어떤 일을 할 것둘째 어떤 사람을 사랑할 것셋째 어떤 일에 희망을 가질 것이다.” 칸트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를 읽었는데어디 이런 구절이 있었을까아무리 20년도 넘은 일이라지만일과 사랑과 희망 중에... 일만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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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너에게 필요한 말들 - 막막한 10대들에게 건네는 위로·공감·용기백배
정동완 외 지음 / 미디어숲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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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셨는지 기억나시나요전 별로 큰 고민을 안 했던 것 같습니다진로보다 성적을 고민했던 듯합니다언제부터였을까요초등학생 때부터 수학경시대회에 참여했으니당연히(?) 이과전문직이 적성이라 믿었습니다실제 이런저런 테스트에서도 늘 결과가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커서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꿈이 무엇인지 집요하게 물어보는 사람들도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비교적 옛날(?) 사람이라 부모님 세대는 문과는 법대이과는 의대 이런 공식이 있었고부모님께선 누가 봐도 이과형 자식에게 뇌외과Brain Surgeon를 한두 번 권해보시긴 하셨지만 갈등 상황에 이르진 않았습니다의학은 멋진 과학이지만 결정적으로 암기가 세상에서 가장 곤란한 저로서는 뭐고등학생 때는 그나마 덜 외워도 되는 물리화학 선택했습니다.

 

어차피 사람들은 누가 말려도 누가 권해도 결국엔 자신이 되고 싶은 하고 싶은 일로 향하게 되겠지요물론 여러 난관들이 그 방향을 틀거나 끝내 주저 앉히기도 합니다그런 일은 갈수록 더 적어져야겠지요.

 

며칠 전 생일을 맞은 꼬맹이가 열 살이 되었으니 십 대가 두 명 살고 있습니다직접 물어보긴 뭣하고 궁금하긴 하지요어떤 생각들을 하고 어떤 사람으로 자신을 상상하고 있을까요어쩌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다 잘 알고 있는데 나만 내가 뭐가 되고 싶은지 모른다고 걱정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생에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결정하는 것이다.” 벤 스타인



이 책은 그런 10대를 위해 기획된 다정한 책인데직장 진로 고민을 반복하는 이로서 제가 먼저 읽어 보았습니다. 10대에 들었다면 감동 받았을 내용도 전혀 그 뜻을 헤아릴 수 없을 듯한 내용도 골고루(?) 있습니다.

 

인생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경험해야 할 현실이다.” 소렌 키에르 케고르

 

인생 자체는 모두 경험이지만 단기적으로 해결해야할 문제들도 없진 않습니다그래도 모두 다 경험이라고 전제하면실패나 실패에 가까운 결과에도 완전히 좌절하거나 이후를 모두 포기하게 되진 않겠지요결과보다는 그 순간 다음을내일을희망을 상상해 볼 수 있는 그런 태도를 지성이라 생각합니다그런 힘을 갖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하지요.

 

지금 네 삶이 두렵고 당황스럽다면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지금 낯선 곳을 여행 중이라고 말이야모든 것이 새롭고 두려움의 연속이고내가 선택해야만 하고 겪어 내야만 진정한 여행의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거야.”

 

저는 지구 반 바퀴 정도 돌아다니면 살았지만 그 시절이 전생 같습니다 두려웠던 경험이 없습니다그땐 행운이 가득한 시절이었는지 어디를 가나 참 좋은 사람들을 늘 만나 필요한 도움을 받아 소소한 것들부터 다소 심각한 일들까지 모두 잘 해결한 행복한 기억이 더 많습니다그래서 더욱더 용감(?)해져서 무서운 줄 모르고 정말 잘 다니며 살았습니다세상엔 좋은 사람들이 한 가득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이 무척 간절히 바라던 일종의 진로 고민이었네요.

 

진로를 빨리 정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서 내가 스스로 준비하는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낭만적이지 않을까?”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는 인생이라는 시나리오 속에서 괴로워하며 항상 주인공의 역할만 붙들고 있기보다다양한 배역을 맡으며 유연하게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저처럼 늘 꿈이 작았던 사람들에겐 안심이 되는 말입니다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시간 속에 살아가든, (...) 롤러코스터가 됐든 회전목마가 됐든 놀이공원에서의 시간이 즐겁기를 응원한다.”

 

롤러코스터도 좋지만 회전목마를 어릴 적부터 무척 좋아하는 저는... ... 놀이공원 가고 싶어집니다그나저나 회전목마 저는 왜 여태 그렇게나 좋을까요버텨봐야 빙글빙글 같은 풍경이 돌아오는 것을.



만약 인생이라는 전시회에 똑같은 그림들만 한 가득 걸려 있다고 생각하면 그 공간 자체가 너무나 끔찍할 것입니다컬러링 하시는 이웃 분들 그림들을 보면서 다 달라서 참 좋다그런 생각을 늘 합니다각자가 살아 온 모습들도 모두 다 달라서 유일한 귀중한 시간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그러니 같지 않다고 다르다고 미워하거나 비난하거나 방해하거나 하지 않으며 좋겠습니다.

 

반듯하게 그리는 것보다 네 인생에 그리고 싶은 선칠하고 싶은 색을 먼저 떠올려 봐네가 완성해가는 너만의 그림을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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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
서미애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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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미애 소설 사회파 미스터리 + 6다 늙어도 설레는 조합이다주말 밤이 술렁술렁.

 

유월의 밤공기는 상쾌했지만 비가 지나가는 탓인지 쌀쌀했다물기가 남아 있는 공기 속에는 오래된 나무 냄새가 섞여 있었다숨을 들이켜면 차가운 공기와 함께 향긋한 나무 내음이 느껴졌다채 마르지 않은 나무 의자의 축축하고 까슬하고 딱딱한 감촉이 등에 느껴졌지만 나쁘지 않았다.”

 

청소년 범죄와 촉법소년몇 달 전인가 우리 집 10대가 무척이나 완결된 의견을 피력해서 엄청 놀란 기억이 난다십 대들이 자신의 문제로 여기고 대화를 많이 하나 보다.

 

요즘에는 휴대폰으로 청소년들에게 대출을 받아 도박 빚을 지우는 범죄가 기승을 부린다던데어른들의 돈벌이 범죄가 그칠 날이 없다우아하게 표현하고 싶지만 즉각적으로 역겹다.

 

아이들의 범죄에는 대부분 어른들의 문제가 긴밀하게 얽혀 있으니가해 당사자를 잡아 처벌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리가 없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미성년자인 당사자는 가해자가 아니고 배후의 어른은 가해 당사자가 아닌죄를 물을 대상이 사라지는 기막힌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법이라는 테두리에서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은 사적인 복수로 변모하기 마련이다최초의 범죄는 중단되지 않고 피해자는 계속해서 양산되는 비극이다.

 

한 아이의 목숨을 빼앗은 벌이 봉사 활동 몇 시간에 교육 몇 시간이라고그걸 당신은 법의 심판이라고 말하는 건가?”

 

사람들은 생각한다만약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하고그러면 잘못된 일들을 바꿀 수 있을 것처럼하지만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야 모든 것이 전과 같아질까잘못된 길로 가기 시작했다고 느끼는 그 순간으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한다고 결과가 달라질까?”

 

침묵하는 이들로 이 책의 분량을 채우는 인물들 탓에 어찌나 답답한지... 그래서 제대로 된 삶이 되겠냐고 묻고 싶지만게으른 나 역시 목소리를 더 높여야 할 때도 적당히 참여하고 빠져 나오는 경우가 없지는 않으니... 더 답답해진다.

 

그래도 스스로에게 묻고 싶다어디까지 침묵할 수 있고 어디서부터는 침묵할 수 없는지범죄를 모른 척할 수 있을까희생자를 철저히 외면할 수 있을까.

 

작가의 메시지는 선명하다.

 

누군가 그랬다.

우리가 사는 이곳이 지옥이 된 이유는 악마들이 나쁜 짓을 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침묵은 언젠가 중단될 수 있다.

진실 또한 언젠가 드러날 것이다.

다만 그 시간을 견디는 일이 누구에게든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완전히 망가진 한 가족의 이야기에는 면역이 없다. 자식을 잃고 절망한 부모에게 감정 이입을 하지 않을 도리도 없다. 전형적인(?) 여름밤 즐길 수 있는 추리소설은 아니다물론 끝까지 범인을 짐작할 수 없었다면 결론이 놀라운 반전이 될 것이다


창작이지만 현실이기도 한 주인공의 슬픔과 회환에 깊은 숨을 쉬다 보니 내 마음의 답답함도 이야기와 함께 끝나는 기분이다아프고 슬프지만 마무리를 할 수 있었던 피해자 가족의 이야기. 그래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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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 도서관
앨런 홀링허스트 지음, 전승희 옮김 / 창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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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홀링허스트Alan Hollinghurst의 첫 소설이 <수영장 도서관>입니다시대적 배경은 무려 대처 수상 집권 말기인 1988년입니다영국 런던이지만 어둡고 어려운 시기일 거란 짐작이 듭니다작가의 첫 소설이니 특히 더 농도가 짙고 자전적 밀착도가 최고조일 지도 모릅니다강렬한 감정의 파고가 높을 것 같지만 그만큼 흥미롭고 섬세하고 예민하고 용기 있는 절실한 이들을 만나리란 기대가 컸습니다또한 23년 전 작가가 작품에 드러낸 문제의식은 현재 어떤 모습인지도 궁금했습니다.

 

내가 아서에 대해 감상적인 것은 사실이었다몹시 감상적이고 살짝 잔인했다. (...) 그 관계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다우리가 결코 진짜로 함께할 수는 없다는 걸 둘 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주요 설정이 제 취향(?)에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롭습니다기록을 좋아하고 귀하게 여기니 일기장이 등장하자마자 심하게 두근거립니다. 1980년대를 사는 1900년생 동성애자 귀족과 1958년생 동성애자 귀족의 삶이 글을 통해 마주합니다귀족이고 최고의 교육 기회를 누렸지만 차별과 억압은 상상 초월입니다다큐인지 르포인지 잠시 말문이 막히게 하는 생생한 기록들은 과거의 일을 짐작한 것만은 아니란 통증을 느끼게 합니다.

 

우리의 눈길이 마주쳤고나는 고개를 들었고그는 잠시 동안 응시하다가 특유의 웃음기 없는 은밀한 태도로 몸을 돌려 나갔다내가 일어나 앉자 주먹 하나가 심장을 쥐어짜 내 안에 있던 아주 작은 플라스크에 금을 내고 그것을 사랑으로 채워준 것 같았다.”

 

시인이기도 한 작가가 젊은 시절 만들어낸 이 세계의 풍경과 인물들의 심리는 읽을 수 있는 시가 별로 없어 우울한 나에게도 시적이라는 느낌을 자주 받습니다영어로 읽어야 했을까요시란 모국어로 밖에 찬란하게 제 빛을 빛내지 못하니까요.

 

목숨을 구해준 인연으로 만나 가장 내밀하고 아픈 삶을 통째로 알게 되고 상대의 전기까지 부탁받은 상황자신의 전기를 쓰고 싶어 하는 것은 어떤 마음일까요기록으로 남겨 두어야할후대가 읽어야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야 시도할 만한 것이 아닐까 하는 단순한 생각을 해봅니다. 1900 찰스가 1958 윌리엄에게 전기를 써 달라 부탁한 일을 두고 친구 제임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그 사람 목숨을 구했잖아이제 다시 한 번 그래주길 바라는 거라고.”

 

마음이 묵직해집니다간단하게 정리될 이유가 아닌 듯도 합니다없는 듯죽은 듯부정당하며 살아 사라져가던 존재로서의 세월을 걷어 내고 글 속에서 자신을 온전히 살려내 달라는 그런 부탁인가 합니다.그래서 가감 없이 기록한 일기를.

 

나는 아직도 한달에 한번쯤 꿈에서 그때의 그 탈의실을널빤지를 깐 마루와 벤치들을 본다우리는 고풍스러운 속어로 그것을 수영장 도서관이라 불렀고더 줄여서 도서관이라고도 했다.”

 

제목이 궁금했는데 200페이지가 넘어가서 이유가 나온 듯 했습니다이것 역시 영어 원문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드는 구절입니다번역문으로서는 어째서 고풍스러운 속어’ 표현인지 짐작이 어렵기만 합니다새삼스럽게 영국 영어와 문학에 접근하고픈푹 빠져 머무르고픈 욕구가 맹렬해집니다이토록 불성실한 저라도 무척 좋아한 언어이고 문학이었던 기억이 많아서 그렇습니다게다가 이 책 곳곳에 드러나 뽐내는 유럽의 건축음악미술문학 등 작가의 예술적 지식의 함량은 가늠이 안 됩니다부럽고 시샘이 나는데 심취하고 배우고 싶은 욕망이 화라락. 이상한 부작용입니다.

 

남자들끼리도 공공연히 함께 걸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함께 걸을 남자가 있었으면 했다.”

 

이 문장이 슬픕니다어째서 사랑하는 이들이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고 함께 걷는 일조차 혐오의 대상이 되고 용기가 필요한 일인가요저는 심정적으로도 이성적으로도 동서고금의 완고한 거부들을 잘 모르겠습니다제가 사회화가 덜 돼서 이 모양인가요 예전에 이런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어 기억이 납니다.

 

혐오를 혐오한다라는 구호가 있습니다전하려는 메시지는 이해하지만 저는 결국에는 무엇도 혐오하지 않아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좋아요나 공감이나 박수를 보내진 못했습니다그래도 무슨 말인지는 알아듣고 이해는 합니다. 21세기인데... 여전히 혹은 더 가시적으로 국적이 다르다고 인종이 다르다고 성별이 다르다고 연령이 다르다고 이런 저런 이유들로 길거리에서 공공연히 타인에게 일면식도 없는 이들에게 단죄하듯 처벌하듯 폭력을 가하는 장면이 참을 수 없이 역겹고 끔찍합니다저보다 약자에게만 발휘되는 비열하고 비겁한 증오와 혐오와 폭력성이 구역질납니다.

 

그가 숙청이라고 부른 이 일남성의 악행을 박멸하려는 이 운동의 가장 중요한 영감이 되었던 사람이니까.”

 

마치 추리소설처럼도 전개되는 내용에서 저는 추리를 하는 짜릿함보다 예의 고달픔어려움두려움폭력을 읽습니다엄청나게 고생하고 힘들었겠지요귀족이라 해도.

 

아무도 내게 말해줄 수 없었던 그 한가지 말할 수 없는 일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었다.”

 

 사적인 것이란 정치적인 것이다 Personal is political.” 이란 문장을 고스란히 설명해 주는 작품입니다등장인물들을 따라 다녔을 뿐인데 각자의 시대를 경험한 느낌이 가득합니다박완서 선생님 이야기가 문득 떠오르고 그리워지기도 합니다눈치도 못 채게 한국근대사를 느끼게 해주셨던 분이었지요여성이 등장하지 않는 문제적(?) 소설저는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영어책으로 읽어봐야겠습니다얼마나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를 일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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