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개의 이야기
디노 부차티 지음, 김희정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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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좋아하세요저는 압도적으로 장편을 즐겼습니다소설의 세계에 푸욱 빠져서 한참 머무르는 것이 정말 좋았거든요그러다 작년에 단편집을 읽었는데 상황 때문이기도 하고 작품들이 워낙 좋아서이기도 하고 매일 한편씩 읽는데 무척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그러면서 단편의 매력에 대해서도 느끼고 배웠습니다구성이 이렇게 다르구나메시지가 이렇게 읽히는구나한 호흡에 읽는 문학의 매력이란 또 다르구나 등등.

 

덕분에 올 해도 단편집들이 눈에 띄면 최초의 즐거움을 기억하고 두근거립니다물론 만족도는 오르락내리락합니다사는 게 다 그렇죠그러니 무려 60개의 이야기가 담긴 환상문학 출간 소식이 얼마나 기뻤겠어요무려 문학동네신뢰하고 기대할 만한 요건들이 충분하지요정말 좋은 점은 시간이 없다고 슬픈 날에도 한 편 정도는 쏙 맛있게 읽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60개의 이야기이 단편집은 놀랍게도 1958년 출간되었습니다저자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작품은 1940년 출간된 <타타르인의 사막>이라고 합니다 또 저만 모르는 유명한 저자와 작품입니다.


신기한 점은 저자가 저널리즘 기자로 30년을 일했다는 점입니다문학부도 아니고 종군기자특파원범죄사망 기사들그러다 이탈리아 미스터리를 주제로 한 기사를 쓰기도 했답니다극한의 현실과 미스터리에 대한 경험이 문학으로 만났나 봅니다멋진 일입니다.

 

참 이상한 것이 기사소설희곡오페라 대본삽화까지 대단한 재능을 가진 예술가인데 자국에서는 비주류였고알베르 카뮈의 소개로 프랑스를 비롯해 해외에서 주목을 받습니다어쩌면 그리 드문 일이 아닌가요.


아무튼 저자에 대해 궁금해서 책을 이리저리 들춰보니 독자의 재미와 감동을 위해서 단편을 쓴다.”라는 말이 있네요독자로서 신나고 기분이 좋아집니다재미와 감동을 위해 첫 단편을 골라 읽었는데내가 생각한 깊이와 넓이의 재미와 감동이 아니네요.

 

소재와 사건의 다양함사고의 깊숙함... 정신 바짝 차리고 찬찬히 낱낱이 읽어야할 내용이 여러 편일 듯합니다. 60개 작품이 모두 다 다른 재미와 감동을 여러 강도로 전해줄 거란 생각을 하니 기대로 소름이 돋습니다.

 

위에 언급한 알베르 카뮈가 친히 번역까지 해서 극장에서 상연도 하였다는 작품을 제일 먼저 읽습니다<7저자가 실제 투병한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고도 하네요여러모로 관심이 갑니다.


주인공은 열이 조금 나서 가벼운 감기라 생각하고 추천을 받아 유명한 요양원에 입원합니다불길한 느낌이 들어 감기로 무슨 입원까지가지 말라 말리고 싶네요일단 외관은 호텔처럼 멋진 건물입니다아주 체계적으로 관리합니다.

 

숫자 7이 주는 통상적인 기분 좋은 느낌처럼, 7층은 가벼운 증상 환자들입니다그러면...! 1층은죽음이 멀지 않은 위중한 증상을 앓는 이들이 입원한 곳입니다그러다 1층에서 이중으로 된 덧문이 닫히면... 입원 환자들 중 누군가 죽음을 맞았다는 뜻입니다.

 

제 불길한 느낌이 틀리길 바랐지만... 미열과 감기 증상으로 입원한 주인공은... 멈추지도 저항하지도 뛰쳐나올 수도 없는 환경에서 매 순간 어떤 이유들로 입원실을 옮기게 됩니다결국에는 1층에 도착합니다.

 

결과가 안타까운 것보다는그 과정이 기막히게 무섭고 섬뜩합니다입원 전에 어떤 멀쩡한 생활을 했다고 하더라도 입원 후에는 바로 그곳의 축소된 사회와도 같은 시스템에 휘둘려 의지와는 별개로 흘러가는 개인의 삶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악인이 있어 명확한 의도가 있어 그런 것도 아니고 근무하는 의사와 간호사들도 자신이 환자에게 무슨 일을 행하고 있는지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충실히 업무를 수행합니다그 결과가 1죽음절망좌절.... 이런 단어들이 떠오르게 하는 장면들입니다.

 

요양원에 가지만 않으면 되는 일 아닌가잘 살펴 이런 곳을 피하면 문제가 없지 않아싶기도 하지만우리 사회에 이 요양원과 같은 장소들이 얼마나 많을 것이며어쩌면 사회 전체가 부분 부문 이런 역학으로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일이 없다고도 말 못하겠습니다.

 

특히 해외 파병 논란이 있을 때마다 인터뷰 내용을 보면 참 섬뜩한 발언들이 많이도 보였습니다편견과 악의와 차별과 혐오의 발언은 오히려 노골적이니 덜 끔찍합니다저런 생각은 잘못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느낄 수 있으니까요.

 

제가 제일 충격을 받는 것은, “뭐가 문제인가요군인들은 그저 자기 일을 할 뿐인 걸요.” 이런 유형의 대답입니다반복해서 한나 아렌트가 소환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뭐가 문제인가요나치 공무원들은 그저 자기 일을 했을 뿐인 걸요.”

 

이 다음 단편으로 하고 싶지만 게을러서 자꾸 미뤄두는 손 편지를 다시 기억나게 한 작품 <연애편지>를 읽었습니다연애는 아닐지라도 그리운 이들에게 손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 클래식한 방법으로 보내고 싶네요비록 글씨는 형편없어도이 편지지와 봉투를 고를 때도 쓸 때도 부치러 갈 때도 그리고 지금도 네 생각을 했다고 그런 마음을 제대로 담아서.


한 달이 걸릴 지도 모르겠습니다이 책을 다 즐기려면신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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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지킵니다, 편의점 - 카운터 너머에서 배운 단짠단짠 인생의 맛
봉달호 지음, 유총총 그림 / 시공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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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근거였는지는 몰라도 나는 편의점을 최소한도로 이용하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계획하고 목표로 삼아 가는 장소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을’ 경우 방문하는 예외적인 곳이라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그러니 편의점에서 제공하는 편의들을 잘 모를 뿐더러 추억도 거의 없다편의점에 낯선 독자로서 이 책을 읽었다계기는 공구상인 작가의 에세이를 아주 재밌게 읽어 잘 모르는 직군의 저자가 들려주는 세계의 이야기에 마구 흥미가 생겼기 때문이다.

 

내용 소개 전에 미리 짧은 평을 하자면엄청 재밌다부끄럽게 입 밖으로 감탄을 내뱉으며 소리 내어 웃으며 간혹 마음 졸이며 즐겁게 읽었다그리고 이 편의점에 슬쩍 가보고 싶어졌다뭘 사면 좋을까.

  

그렇잖아도 편의점 매출은 여름보다 겨울에 뚜둑 떨어지는데매년 1월에는 새해의 결심이란 오래된 저격수까지 만나 고전을 치른다. (...) 그래도 역시 지나치게 슬퍼하거나 애달프다 가슴 치며 통곡할 필요까진 없을 것이니, (...) 그런 결심들은 대부분 돌아서더라는 경험적 확률언젠가 돌아올 당신이여믿고 기다렸어요편의점의 탕자여.”

 

새해 결심과 편의점의 매출 변동은 꿈에도 연결해본 적이 없다오묘하고 재밌다.

 

제야의 종소리가 울리면 전국 편의점에는 동시에 신기한 일이 벌어지지 시작한다. (...) 5초 전까지는 쭈뼛 눈치 보던 사람들이 5초 후 갑자기 당당해지지 시작한다. (...) 오호라두 분께서 어른이 되신지도 벌써 2분 51초가 지났단 말이지요.”

 

“1월 1일생이든 12월 31일생이든 같은 해에 태어난 사람은 한날한시 성인이 되는 우리나라의 쾌도난마 같은 제도 덕분에우리는 신년과 더불어 쿨하게 평등해진다.”

 

역시연말연시 편의점 앞 풍경이 이럴 줄이야늙어서 밖에서 오래 안 노니 모르는 세상이 많구나싶다쾌도난마*제도덕분에 통쾌하게 웃었다네네사전 찾아보고 정확한 뜻을 배우고 웃었습니다~


쾌도난마 (快刀亂麻) [명사잘 드는 칼로 마구 헝클어진 삼 가닥을 자른다는 뜻으로어지럽게 뒤얽힌 사물을 강력한 힘으로 명쾌하게 처리함을 이르는 말.

 

매년 편의점에서 시간의 흐름을 읽는다. (...) 회전목처럼 돌아가는 풍경을 편의점 안에서 감상한다그런 시간 가운데 내가 있음을 가늠한다탕자처럼보류했던 꿈들도 제자리로 돌아와 하나둘 이루어지기를.”

 

갑자기 글 온도가 확 달라져서 자세를 바로 했다사람을 잘 관찰하고 허투루 보지 않는 분들의 통찰은 참 힘이 있다남들만 보는 게 아니라 더불어 자신도 만난다오래 살아 재미난 거 좋은 사람들 많이 더 보고 싶단 생각이 마구 커지는 순간들이기도 하다신나게 웃다가 경건.

 

“111년 만의 폭염이 이어졌다는 2018년 여름세계는 더위와 싸웠고 편의점은 우유와 싸웠다. (...) 편의점에서 판매하난 수천수만가지 상품 가운데 오롯이 한 생명체의 힘만으로’ 만들어지는 유일한 상품이 우유이기 때문이다. (...) 젖소는 여름에 힘이 달린다힘이 달리니 우유 생산량이 확 준다그럼에도 인간들은 라테니 빙수니 아이스크림이니 하면서 여름에 유독 우유를 더 달라고 아우성이다. (...) 젖소들에게 우리 인간들이 필요해서 그래요좀 분발해주세요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인데 생각할 기회가 없어 몰랐다편의점이란 취급하는 물품만큼의 세상이 시야가 넓어지는 일이었구나마음만 먹으면(?) 세상만사의 역학을 다 배워볼 수도 있겠구나마치 편의점이란 장소가 구도에 최적화된 훈련장처럼도 느껴진다.

 

젖을 짜내기 위해 암소는 늘 임신 상태여야 한다죽을 때까지 임신또 임신젖소 한 마리가 만들어내는 원유는 매년 9톤 정도그렇게 7-8년 정도 주구장창 우유만 뽑아내다 수유 능력을 상실하면 폐사하게 된다. (암소야미안해) (...) 내가 채식주의자이거나 대단한 동물권 보오주의자인 건 아니고괜히 이런 글이나 써서 우리 편의점에 우유 판매량이 줄지 않을까 걱정하는 일개 장사꾼일 따름이다글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편의점 냉장고에 있는 우유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유통기한을 걱정하는 우주의 먼지 같은 존재다.”

 

갑자기 저 부르시는 줄 알고 그만 우주먼지라고 불리는 일이 잦아서우주의 먼지 같은 독자가 우주의 먼지 같은 저자의 글을 읽고 있다우주적 관계 성립.

 

그 손님은 자랑을 많이 한다주로 부모님 자랑을 많이 하고자신의 알록달록한 소장품을 내보이며 노골적으로 자랑하기도 하고묻지도 않았는데 지난 주말 어디에 갔는지 불쑥 자랑하는가 하면한번은 여자 친구 자랑을 참기름 볶듯 고소하게 하기에 샘나 어쩔 줄 몰랐다올봄 그 손님이 우리 편의점에 찾아와 또 자랑했다아저씨저 초등학교 가요한껏 우렁찬 목소리로 턱까지 비스듬히 세워 올리고 뻐기며 말했다거참초등학교 못 나온 사람 서러워서 살겠나 싶을 정도로 야무진 자랑이었다그래 나는 국민학교 나왔다.”

 

편의점의 시간은 손님과 함께 흐른다. (...) 편의점을 운영하는 일이란 늘 이렇게 내가 있는 자리를 지키고 앉아변해가는 주위 풍경을 바라보는 일이다사람과 함께 세월을 가늠하는 일이다초등학교 입하가고 통 볼 수 없던 자랑쟁이 총각은 얼마 전 우리 편의점에 다시 얼굴을 내밀었다아저씨 저 방학했어요이거 원방학 없는 사람은 서러워 살겠나 싶을 정도로 하늘을 날 듯한 자랑이었다.”

 

읽으며 내가 모르던 풍경들을 찾는 재미가 대단히 좋았다그러다 불쑥 깨달음(?)이 왔다예전 김영하 작가가 대한민국 카페는 초단기 임대사업이라고툇마루느티나무 아래 평상 등이 사라진 시대에 사람들은 카페로 모여 책도 읽고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며 대화를 나누는 거라고.

 

편의점이 일종의 비상상황에서 편의를 제공하는 소매상이라고 생각했는데그게 아닌 것 같다그 동네 편의점에 그 동네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며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그 모든 풍경들이 차곡차곡 수렴하는 느낌물론 듣고 기억하고 떠올리고 이렇게 글로 쓰는 편의점 점장이 있어야 더 선명해질 일이긴 하다.

 

사람보다 물건들을 위해 최적화된 공간의 일부에 머물며오랜 시간 머물며오고가는 사람들과 세상을 향해 시선을 열어 두고 이야기들을 모으는 이미지처럼 영상처럼 떠오르는 낯설고 신기하고 재미난 세상 이야기이다


피곤이 뒷목을 자꾸 움켜잡아 소개를 총총 마무리하지만 이러저러 쓴 분량도 끝없이 늘어날 듯 하고 일상만이 아니라 일상적인 공간과 직업이 문학이 된 이 멋진 책을 만나는 분들이 많으면 좋겠다


직업 별로 문화재 보호하듯 에세이들이 매년 출간되면 얼마나 재미날까 그런 상상을 해본다로또 당첨되면 그런 문화재단 만들어야지일단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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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렉시테리언: 때때로 비건 - 완전한 채식이 힘들 때
김가영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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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채식주의자로 산 세월도 짧진 않았는데 의지가 강해서라기보단 시스템이 편리했습니다채식주의자들이 많은 환경에는 채식식당도 가게도 있게 마련이라 어려움이 없었거든요그런 의미로 한국에서 뭐라도 조금이라도 다른 거 시도하고 꾸준히 하시는 분들은 참 대단하십니다.

 

그렇다고 다 망한(?) 섭식은 아니지만 지금은 냉정하게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이라 해야겠지요형체가 분명한 고기를 씹고 뜯는 건 아니지만 철저하게 비건식만 고집하지도 않으니까요그래봐야 우유버터계란스톡 정도제가 넣어 먹는 건 아니고 이런 재료들이 사용된 음식을 거부하지 않고 종종 먹습니다버터... 참 맛있습니다오늘은 냉면 생각이 많이 났겼습니다갑자기 빵 씹는 일이 확 피곤해지는 기분이 들어서.

 

어쨌든 표지에 제가 좋아하는 매일 먹을 수도 있는 병아리콩으로 만든 후무스가 있어 기분이 좋습니다이집트산 콩어릴 적 먹지도 않았는데 왜 이리 좋아하는지 이집트 전생을 믿을 뻔어차피 우리 조상은 아프리카에서 태어나셨으니 그게 그건가요.



대략 10분 정도면 가능할 레시피들입니다.

93개 중에 7개입니다.

마음에 드시는 것 골라 맛있게 해서

기운 나고 힘나는 건강한 식사 다들 잘 챙겨 드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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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 종말론적 환경주의는 어떻게 지구를 망치는가
마이클 셸런버거 지음, 노정태 옮김 / 부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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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주장이든 일리는 있을 수 있다문제는 주장의 논거와 물증이 얼마나 충실한가이다만약 진실한 연구나 고찰의 결과가 아니라 다른 의도가 배후에 있다면 이 모든 논의는 소용이 없다혹은 인기에 영합하기 위한 체리피킹*식 주장들도 마찬가지이다.

 

체리피킹Cherry Picking일반적으로 자기에게 불리한 사례나 자료를 숨기고 유리한 자료를 보여주며 자신의 견해 또는 입장을 지켜내려는 편향적 태도를 지칭하는 말이다과수업자들이 질 좋은 과일만 보이고 질 나쁜 과일은 숨기는 행동에서 유래했다동의어로는 불완전 증거의 모순(fallacy of incomplete evidence), 증거 억제(suppressing evidence), 아전인수 편향성(myside bias)이 있다<상식으로 보는 세상의 법칙 경제편>에서 요약.

 

성실한 연구결과들은 대부분의 경우 그리 재미있지도 흥미롭지도 기대충족적이지도 우리 마음에 들지도 않는다그러니 연구 이전에 이미 대중이 선호할 내용들을 선행 조사하고 그에 맞춰 방대한 정보지식에서 합치하는 내용을 정리해둔 책들이 훨씬 더 주목을 끌게 마련이다.

 

문제는 이런 책들 혹은 여타 각종 분야들 -을 개별 독자가 의문을 가진다고 해서 논거의 근거를 모두 정확히 찾아 반박할 수 없다는 점이다그런 점에서 일단 내뱉고 제가 원하는 이익을 챙기는 이런 행위는 비난받고 이상적으로는 처벌 받아 마땅하다.

 

이렇게 말하면 그 기준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저작이 있을 수 있냐는 반문도 가능하지만 판단 기준은 의도와 정도이다독자들은 바보가 아니다영합에 동참하고자 하는 생각이 없다면 읽어서 증명할 순 없다 하더라도 수는 있다.

 

잠깐오늘날 브라질에서 농경을 위해 숲을 개간하는 일이 그렇게 충격적인가?”

 

탄소 배출과 기후 변화는 위험하다하지만 우리는 기후 변하가 불러올 모든 영향이 자연환경과 인간 사회에 나쁜 방향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환경주의자들이 언론의 관심에 힘입어 거론하는 미세 플라스틱은 실험을 통해 바다에서 생분해된다는 것이 증명되었으므로(...)”

 

어조의 경박함은 차치하고라도 이도저도 아닌 입장은 무엇이며 미세 플라스틱 관련 괴변은 폐기물 처리 과정에 대한 지독한 무지를 확인도 없이 실은 글인가 기가 막힌다. Shame on you!

 

생분해성 플라스틱이라야 사용 후에도 생분해가 된다또한 생분해성’ 플라스틱이라 하더라도 아직 처리시설 기반이 잘 갖춰진 나라로 별로 없지만한국 국내 폐기물 처리 시스템에서는 무용지물 섭씨 58도 내외의 조건에서 6개월 이상 두어야 90% 이상 생분해될 가능성이 있으니 이 조건을 충족시킬 자연 환경은 없다고 봐야 한다.

 

2015년 기준 전 세계에서 생산된 플라스틱 폐기물의 47%가 포장재이고국내 생활폐기물 중 포장 폐기물은 30%이상이다이후 매년 5%씩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급진적인 비정부환경단체가 아니라 <세계경제포럼>*에서 보고되었다판데믹 이후의 급증은 통계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세계경제포럼 The World Economic Forum매년 스위스의 다보스에서 개최되는 국제회의로 전 세계 기업인경제학자정치인 등이 참여한다. 1970년 시작되어 논의된 사항들은 세계무역기구(WTO), G7 등 국제 경제에 큰 영향력을 미친다. https://www.weforum.org/


<지구를 위한 착각>은 애쓰는 사람들을 배려하지 못한 냉소적인 제목이다. 정확히 누가 누구더러 착각이라고 말하는 것인가원제 <Apocalypse Never: Why Environmental Alarmism Hurts Us All>는 얼마간의 예의를 갖췄다종말 말고 희망을 갖자라는 톤으로도 들릴 수 있으니허나 누가 us인지 역시 정확히 밝혀야 한다.

 

이상기후 및 환경보호운동가로서 그리고 환경저널리스트로서 활발히 활동하던 2008년의 셸런버거는 환경진보를 창립하고 회장으로서 멘토 강의를 하는 2020년의 셸런버거와 동일 인물인가냉동수면 상태로 지낸 것이 아니라면 그렇다고 해도 문제이다추천사를 쓴 인물들의 면면으로도 합리적 의심을 할 이유가 가늠이 된다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가져다 비교한 것은 서늘한 분노를 유발한다. How dare you!


(feat.) Greta Thunberg at UN

 

공격을 위해 책을 읽은 것이 아니었다팩트체크하는 식으로 내용이 전개된다고 들어서 혹시나 유의미한 팩트나 자료들이 잘 정리되어 있을까구호 이상의 정책화할 수 있는 통찰이나 제안들이 있을까 기대했다죄책감을 더는 방식으로 일상이건 사회건 실천 가능한 일들이 많아지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부디 현상을 뛰어 넘어 한 발 더 다음과 미래로 옮겨 가는 그런 디딤돌이 되어 주지 않을까 바랐다.

 

경박한 인용들과 요약본에 지나지 않을 얄팍한 주장들 끝에 대안은 사랑과 환경휴머니즘인가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중심주의에 더 집중하자는 말인가빈 말보다 나을게 없는 긍정과 함께 성장하자는 제안일 뿐인가몰역사적 사고와 대안 제시가 없는 허술한 저작이다적어도 나보다 적은 연령의 모든 사람들은 이 책을 공들여 읽는 허무함과 낭비를 겪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도 나는 저자의 주장 중에 환경위기가 관리 가능하다는 낙관인지 선언인지가 맞는 말이길 간절히 바란다간절함만으로 바뀌는 일이 드물긴 하지만 이런 무성의한 태클을 거는 일이 줄어들면 세계 곳곳에서 이런저런 계산 없이 공존과 양심을 위해 매순간 정직하게 연구하는 이들이 조금쯤은 덜 힘들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의 가치는 어쩌면 국내에서도 기후위기에 관한 활기찬 담론을 새롭게 형성하는데 기여할 지도 모른다는 것검증된 바 없는 해외작가의 좋은 게 좋은 거란goody-goody 전망서를 비판 없이 신뢰하지 말자는 교훈환경보호와 기후위기 관련 내용들에 불편한 이들이 생각보다 많구나 싶은 확인 정치사회 베스트셀러 1위 기록인간은 도덕성을 요구받는 일을 진심으로 힘겨워 한다는 애틋한 사실의 재확인.

 

나는... 종종... 변하는 건 없는 건가 하는 무력감이 짓쳐든다.

그럴 땐 산개하는 생각을 멈추고 뭐든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 작은 성공에 힘을 얻어 잠시 주위를 둘러본다.

흔들려도 멈추지 않고 함께 하는 이들이 가득하다.



@NASA 미국 나사의 기상위성(GOES-14)이 촬영한 지구 영상


@phillipsastrophotography in 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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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초식동물과 닮아서 - 초보 비건의 식탁 위 생태계 일지 삐(BB) 시리즈
키미앤일이 지음 / 니들북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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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와 열정이 모자란 덕분인지 식습관을 바꾸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익숙한 육식 재료의 혼합식보다 공들인 채식 음식들이 더 입에 맞는 경우도 많았다그래서 식습관을 바꾸고 싶어도 이전에 맛있게 먹던 너무 먹고 싶어 포기하지 못하는육식으로 힘들어 하는 이들의 심정을 사실 나는 잘 모를 지도 모른다마치 수학이나 물리에 대해 누가 물어도 왜 그 부분이 그토록 어려운지 몰라 잘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처럼.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에너지원은 식물에서 얻을 수 있도록 태초에 누군가가 만들어 놓았다는 생각인간에게 꼭 맞는 에너지는 육식으로부터 공급받는 것이 아니라 식물에서 시작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분명 잘못된 채식은 영양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그러나 정확히 이야기하면 채식이든 육식이든 영양불균형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20년도 더 전의 일이지만 당시의 자료로도 육식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거나 선호하지 않을 이유는 내게는 충분했다이타적이고 환경적이고 철학적이고 고상한 이유를 다 두고라도 사육환경이 충격적이었다도무지 식재료로서의 고기들을 신뢰하기가 힘들었고 일단 사진이든 영상이든 자료를 보고 나면 그 이전으로 돌아가 잊어버리고 사는 일이 불가능했다.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동물을 학살하는 한 서로를 죽일 것이다.”

대문호 톨스토이는 또 이렇게 말했다.

도살장이 존재하는 한 전쟁터도 존재할 것이다.”

이 말이 어떤 의미를 품고 있는지 이젠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무엇을 먹는지 말아라그러면 나는 그대가 누군지 말해보겠다.” (...)

나는 그동안 뭘 먹은 건가.

적어도 내가 먹는 것이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알고는 먹어야 하는 것 아닌가. (...)

어쩐지 속이 메스꺼워지는 것만 같다.

 

당시엔 대학원생이었고 주변의 친구나 지인들은 뭐든 충분히 존중하는 이들이어서 별 다른 어려움을 실감하지 못했다유학을 가서는 더욱 더 채식하기 편한 환경이었고 초보 채식주의자인 나는 눈에 띄지도 않을 정도로 다양한 채식/완전채식하는 이들이 많고도 많았다채식 메뉴도 쉽게 찾아 먹을 수 있었고 정말 맛있었으니 불만도 어려움도 몰랐던 세월이었다.

 

그렇게 학교와 학계와 친구와 지인들이라는 안전한 울타리를 벗어나 취직하고 귀국을 하니 2010년에 가까운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것이 매일 어려웠다더구나 거대 조직사회에서 과중 업무와 야근과 출장이 일상인 일이라 섭식을 선택할 수 있는 창은 점점 더 좁아졌다그제야 한 식당 건너 하나씩 고기집인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고 거의 모든 반찬에 설탕과 (육식재료가 포함된)조미료가 들어갈 가능성이 높은 한식의 정체(?)도 입맛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인 일반적인 것을 선택하는 건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다.

일반적이지 않은 것에는 반드시 차별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다만 어떤 것들은 너무 미비하여 차별이라고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다르면 차별받는다는 것을.

 

다시 10년이 더 지나 현재체력약화에 비례하는 느슨함과 적당주의로 나는 베지테리언이나 비건보다는 플렉시테리언에 더 가까운 섭식 생활을 한다물론 할 수 있는 한 채식 메뉴를 선택하려 하지만 원칙 고수와 저항의 강도가 더 높아질 수 없을 것도 같다그러니 종종 다른 채식주의자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찾아 읽게 된다상상과는 달리 그들이 사는 모습이 우울하고 심각하고 고통스럽지 않고 유쾌하고 즐거워서 참 좋다.


 

이 책은 귀여운 일러스트는 물론 솔직하고 명쾌하고 따뜻한 이야기들이 아주 멋지고 감동적인 책이다뭔가 인간적인 것들이 결여된 내 경험과는 달리 이분들은 비건으로 사는 삶의 어떤 부분들이 정말 힘든지 잘 적어 주셨다공감의 토대를 마련해 주어 좋아하실 독자들이 많을 것 같다.

 

우리 영혼에 깊숙하게 새겨진 음식에 대한 이해와 맛의 정의영양소에 대한 상식이 기본 값으로부터 벗어나는 음식이나 식단은 어색할 수밖에 없다.”

 

변명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나로서는 채식을 방해하는 최대의 적이 향수다그렇게 시킨 통닭을 한 입 베어 물고 나면 곧장 후회가 밀려온다.”

 

보송보송하고 포근포근한 분위기의 글이 전해주는 분위기에 해탈을 경험하게 해주는 날카로운 논거의 깨달음이 없어도 심정적으로 동조하고 싶어진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배우는 것들이 참 많다아내와 내가 서로 사랑하며 배운 감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채식에 닿았다그리고 채식은 동물과 이 땅을 사랑하라고 우리에게 말했다.”

 

흙길이 이토록 푹신푹신한지, (...) 하늘에 별이 이렇게 많은지밤이 이토록 어두운지모든 것을 녹일 것같이 무더운 여름조차 밤이 되면 얼마나 시원한지자연과 가까이 지내면서 알게 됐다.”

 

사랑스럽고 무해한 이들의 목소리로 전달되는 생명체들 중에 우위에 있는 것들이 있을까요’, ‘이웃을 사랑하고 동물도 지구도 사랑해야하지 않을까요’, 이런 질문에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싶다동시에 외식이 힘들고버터 냄새가 참기 힘들고금연도 힘들다는 얘기들에 토닥토닥하는 격려의 말을 전하고 싶다.

 

여러 번 얘기하지만 뭐가 되었든 사람들이 죄책감을 느껴서 불편함을 감수하고 힘들여 뭘 하지 않았으면 한다이유는 많지만 무엇보다도 그런 식으로는 꾸준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무리하지 말고 조금만 다르게 살짝만 바꾸며 살아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어떤 저자는 아침식단만 바꿔도 지구를 구한다는 행복한 낙관을 열정적으로 펼치기도 했다 정말 그럼 좋겠다!

 

대신이라기엔 뭣 하지만 부디 내가 하지 못하는 좀 더 큰 변화나 노력을 하는 이들을 미워하지도 않으면 좋겠다상대를 모욕하고 부정하고 올라서려는 곳이 어디인지 잠시만 찬찬히 생각해보면 누구라도 잘 볼 수 있는 열띤 감정을 흥분시키는 대신 가라앉히시길그렇게 바꾸며 바뀌며 다 같이 즐겁게 오래 안심하고 사는 것이 오래되고 지친 나의 꿈이다.

 

다정한 책을 읽고 레시피까지 발견했다오늘 늦은 저녁은 이것으로! 메이플 시럽은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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