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김민섭 지음 / 창비교육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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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경계인 #부글부글 이란 해시태그로 연재를 하시던 김민섭 작가의 책이 출간되었다짧은 연재에서도 이마가 시원해지는 마음이 따끔해지는 문장들을 거의 매회 만났으니 반갑고도 겁이 났다체력이 약해지면 휘둘리게 될 모든 상황이 부담스러워지기도 한다.

 

그러다 가만 생각해보니 이런 제목의 책이 전해 줄 이야기들을 만나는 일을 주저하는 일이 인지오류인 듯했다잘 되면 좋겠다는 다정한 마음이 가득할 터인데.

 

인문학적 사유하는 건 대개 타인에게 간편하고 가혹하게 적용되는 법이다.”

 

개인과 개인이 존재하는 모든 공간에는 서로가 만들어낸 공기의 무게가 있다그것이 모두를 짓누르지만약한 사람에게는 조금 더 가혹하게 적용되는 듯하다.”

 

일상을 깊고 넓고 첨예하게 날카롭게 다루는 작가들이 많이 계시고 그런 이야기들은 늘 좋다김민섭 작가의 시선 역시 그야말로 매일의 일상보통평범늘상일반에 가장 가까운 것들에 머문다.

 

나랑 가족친구지인들 이야기 같은데 예상보다 더 따뜻한 시선과 마음에 내내 뭉클하다언제나 타인을 이해해보려고 하는 열심인 노력들알고 보면 늘 도움을 받고 사는 일상을 단단하게 지켜 나가는 이들.

 

나에게 코로나는 헬스장에 나오지 않을 핑계이자 선택의 문제였지만누군가에게는 헬스장에 나올 수 없는 이유이자 생존의 문제였다. (...) 육아를 하는 여성들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서야 운동을 한다든지 공부를 한다든지 하는자신을 돌볼 여유를 가졌을 것이다. (...) 그들은 이제 24시간 동안 아이를 돌봐야 하는 몸이 되었다.”

 

결국 코로나가 먼저 무너뜨리는 것은 약자들이다그들의 연약함은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모두가 자신을 돌보며 잘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저자는 이렇게 자신이 있는 공간에서 만난 이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는다멀리서 대상으로 놓고 고공 관찰을 하듯 무늬만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닮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과 닮은 사람들이 자신이 먼저 겪은 같은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같은 일을 겪더라도 약하게 지나가기를 바라면서’ 옆에 앉아 조곤조곤 위로와 조언을 해주듯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나를 닮은 사람들에게는 화를 내지 않기로 한 것이다그도그의 책임자도결국 자신의 자라에서 노동하는 나와 닮은 한 개인일 뿐이다분노는 그들이 아니라 그들을 감싼 구조를 향해야 한다그러한 분노를 잘 간직해 두었다가 나와 닮은 사람들과 함께 분노하면 그건 잘못된 일이라고 함께 말하면우리 주변의 잘못된 제도와 문화를 조금씩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나와 닮은 개인에게 분노하는 것으로 무엇도 바꿀 수 없다고나는 믿고 있다.”

 

나의 아버지는 택시나 버스를 보면 무조건 양보하라고 했다운전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과 경쟁하면 안 된다고사람의 밥벌이라는 것은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 나보다 더 간절한 사람을 배려해야 하고 나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을 존중해야 (...) 그래야 나도 내가 밥 먹고 사는 자리에서 배려와 존중을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어찌나 따뜻한지 없는 경험이라도 만들어 옆자리에 앉아 경청하고 싶어진다자신의 가치 체계가 분명하고 그것을 지켜나갈 이유가 확실하면 열심히 용감히 지키는 이들이 보수라고 나는 늘 생각한다한국 사회에 보수라고 자칭하는 세력의 참담한 행태들은 떠올리기도 입에 담기도 싫지만 한편으로는 오직끈질기게 사적 이익만 도모한다는 점에서 최하질의 보수이라 할 수도 있겠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줄 때 우리는 쉽게 오만해진다거기에 뒀으니까 가져가세요싫으면 마시고요하고 자신도 모르게 갑질을 하게 된다 (...) 한 개인의 격이라는 것은 이처럼 받을 때가 아니라 줄 때 드러나는 법이다.”

 

자신보다 연약한 모두에게 무례하게 대했다. (...) 그러한 이들에게는 몸과 마음을 다해 저항해야 한다적어도 당신의 행동이 잘못되었으며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한편으로는 저자와의 공통점을 아주 많이 자주 찾아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저자의 행동력에 자신을 비춰보며 괴로워할 지도 모른다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부모님이 가르치신 것들은 많고도 많겠지만유독 사고에 큰 영향을 미치고 도저히 잊지도 무시하지도 못한 가르침도 있다. “똥이 더럽다고 피하면 세상이 똥 밭이 된다.”고 하던 아버지 말씀이다. “똥을 보면 치워라!”는 얘기셨는데그렇게 살아보려 애써봤지만 똥도 못 치우고 좌절을 많이 했다.

 

내 비겁한 변명 혹은 타협은 똥 치우는 일을 나보다 여러모로 더 잘 하는 이들을 열심히 돕겠다인데직접 말씀 드렸다면 혼이 된통 났을 것이다내가 생각해도 비겁하기 그지없다처음부터 똥 잘 치우는 법을 아는 이는 누가 있을 것이며쉬워지지 않는 그 일은 매번 새롭게 어려울 테니까.

 

나는 나의 입장만 가지고 무작정 그를 찾아왔다내가 정의로운 일을 하고 있기에 그가 여기에 동참할 것이라고아니 당연히 동참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 역설적으로 그는 약자이기 때문에 약자를 위해 움직일 수 없다.”

 

우리는 일상의 모욕을 감내하는 데서 나아가 저마다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그들의 방식으로 함께 맞서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괴물에게 맞서기 위해 괴물의 방식을 따라 할 필요는 없다.”

 

앞으로도 당신이 가진 연약함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이들이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그러한 폭력에 당장 대처할 수 없더라도이것을 기억하고 용기를 낼 수 있으면 좋겠다무례한 이들에게는 모욕의 책임을 지게 해야 할 책임이우리에게 있다.”

 

대면이든 비대면이든 타인과 맞서는 일은 참 어렵고 성가시다다행인 점은 그래도 사정을 알리면 분명 도울 사람들이 있을 거란 믿음이고 운 좋은 경험이기도 하다.

 

두렵고 무서워도 내가 삼켜버린 무례한 이들의 무례한 행위들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할지 모른다는무례한 이들이란 본질적으로 찌질한 이들일지도 모른다는 용기를 갖고 어떤 강도든 어떤 방식이든 알릴 수 있다면 좋겠다어떤 방식이든 저항을 받지 않으면 그들은 절대 멈추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정말 쉬운 일은 아니다망설임과 두려움에 깊이 공감한다그러니 혹 못 하게 되더라도 자책을 너무 오래 깊이 하진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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