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 - 인도 우화집
류시화 지음 / 더숲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널리 영향력을 미치고 많은 이들이 닮았으면 하고 바라는 일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인도의 인구수로만 생각하면 채식인구가 많은 것이 반가운 일이나 그 숫자가 무색하리만큼 축산 산업의 폐해를 엄청나다.

 

배출되는 메탄, 탄소량은 늘어가고, 사료 재배를 위한 토양과 숲의 파괴도 막을 길이 없고, 기아로 사망하는 인구는 버려지는 식재료를 만나볼 수 없다. 생물다양성은 이미 망했다 싶은 수치이다. 인간과 축산동물을 제외한 야생동물은 3% 내외이다.

 

이런 숫자들을 차치하고도 식재료가 되기 위해 태어나고 학대당하고 갇혀 살다 죽임을 당하는 동물들을 그냥 둬도 되는 걸까. 가격만 저렴하면 기쁘게 잔뜩 먹고 살아도 되는 걸까.

 

아무리 바라도 먹방은 줄지 않는다. 구독자수가 일정 정도만 되면 퇴직하고 전업으로 한다는데, 그만큼 자본이 모여드는 곳이라면 돈벌이로서의 먹방은 더욱 진화할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귀가 사라질 듯 추운 날 반갑게 우화 속에 잠시 머문다.




네미 쿠마르는 수많은 동물들이 울부짖는 소리에 현실로 돌아왔다.

닭과 염소를 비롯한 동물들이 길가의 커다란 우리에 갇혀 몸부림치고 있었다. (...)

 

코끼리 조련사는 결혼식에 참석한 대규모 하객들의 음식을 마련하기 위해 그 동물들을 잡아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

 

이 모든 동물이 정말로 나의 결혼식 대문에 죽임을 당한다는 말인가?” (...)

 

자신의 행복한 결혼식을 위해 신성한 생명들이 이유를 모른 채 죽임을 당해야 한다는 생각에 역겨움을 느꼈다. 주위를 돌아보았지만 누구도 그 사실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는 것 같지 않았다. 모두가 즐겁게 웃고 떠들었다. (...)

 

생명을 죽이는 일에 이토록 무관심하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전쟁을 일으키고, 병자와 노인들을 내다 버리고, 온갖 잔인한 행위들을 하는 것이 아닐까? 모든 존재 안에 신성한 자아가 있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해 우리 자신도 파멸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다른 생명체에게 슬픔이나 불행을 안겨 줘도 되는 권리가 우리에게 있기는 한 걸까?’ (...)

 

네미 쿠마르는 오랜 명상과 금욕 생활 끝에 자이나교의 22대 티르탕가르(자이나교에서 영적 깨달음에 도달한 성자)가 되었으며, 그의 비폭력과 불살생 가르침으로 인해 인도 대륙에 채식주의가 퍼지는 계기가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와 내가
쉰네 레아 지음, 스티안 홀레 그림, 김상열 옮김 / 북뱅크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인 쉰네 레아는 오슬로 태생인 노르웨이 시인이자 작가입니다. 바이킹이 생각나시나요? 바이킹의 역사는 북유럽 땅에서 생존하는 사람들의 고단한 생존기입니다. 북극에 가까운 추운 지역, 농사짓기도 마땅치 않지요. 얼어붙은 땅을 떠나 바다로 떠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있습니다.


 

적은 물자를 잘 나누며 가능한 모두의 협업으로 살아야했던 역사 속에서 양성평등과 민주주의적인 제도도 잘 정착했습니다. 솔직하고 담백하고 생존력이 강한 허례허식을 배제한 모습들이 멋진 적이 많았습니다.

 

꼭 자연환경 탓만은 아니지만, 소외, 고독, 공포, 죽음, 이별에 대한 공동의 대처 방식과 의식과 심리가 필요한 일들도 많았겠지요. 시인인 저자는 연령을 불문하고 깊이 내재한 질문들을 들려주고 고민하고 아름다운 그림과 서사로 기록했습니다.

 

부모의 부재, 유일한 보호자인 고령의 할아버지, 남매의 하루는 함께 노를 저어 바다로 나갔다가 귀가하는 것입니다. 유사한 경험이 없는데도 차분하게 물든 쓸쓸하고 애틋하고 두렵기도 하고 힘겹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사하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뿌듯함을 느낍니다.


 

노르웨이어를 잘 몰라서 단어들에 담긴 어감까지 느낄 수는 없지만, 베스테벤(가장 좋은 친구), 베스테파르(할아버지), 보르테(사라진)... 이 단어들은 어쩔 수 없는 운명, 이별, 삶의 면면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직감하는 것만으로도 두렵고 슬프지요.

 

삶이 죽음과 한 공간에 존재한다는 것을 이 책은 삽화와 대화를 통해 솔직하게 보여주고 독자는 깊이 절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이 더 흐리고 그림책의 메시지가 더 선명하게 닿습니다. 혼자라 아니라서 위로와 희망의 말을 건넬 수 있어서 삶은 이어지겠지요.

 

노르웨이에서 원작을 출간한 카펠렌담 출판사에서는 이 작품의 대상이 5세에서 99세라고 했습니다. 저는 출생이라는 과거를 가진 죽음이라는 미래를 맞을 누구나라고 생각합니다. 텍스트가 잘 읽히지 않은 괴로운 시기라 그림책들을 보는데... 여기저기 몹시 흔들립니다. 좋은 일이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창작과 비평 194호 - 2021.겨울
창작과비평 편집부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0년 전쯤 혹은 더 이전에 본 기사 생각이 난다.

 

교복처럼 갖춰 입은 유행하는 브랜드 등산복들을 단체로 입고

사람들은 웰빙 열풍과 함께 산으로 향했다.

노래를 틀고 노래를 부르며 떠들썩한 수다를 떨며

음식을 해 먹기도 하고 술을 마시기도 하고

그렇게 전국의 산들은 주말의 인파를 견뎌야했다.

 

도시에 넘쳐나는 식재료들로는 뭐가 부족했는지

산에 떨어진 도토리도 줍고 더덕도 캐고...

산짐승들은 겨울을 날 먹이가 없어졌다.

일간지에 경기도 어느 산의 다람쥐가 뱀을 잡아 먹는 사진이 실렸다.

나는 그날 이후로 맛있는 도토리묵을 먹지 않는다.

 

다른 것들도 열심히 찾아 먹지 말자고 생각했다.

살 곳도 먹을 것도 없어진 산짐승들이

인간의 땅에 내려와

쓰레기를 뒤지고 밭을 뒤지다 길을 잃으면

잡아 죽였다.

 

이 시의 세계처럼

산중 계곡 산 밤은

오직 산짐승이 주인이길 바란다.

제 입맛만 중요한 뻔뻔한 탐욕은

죄가 맞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눈 내린 날
사카이 고마코 지음, 김숙 옮김 / 북뱅크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눈 오는 날 읽고 싶은 책인데 눈을 기다리며 읽어 보았다판데믹 우울이라는 것이 정말로 있는 것인지어느 계절도 전만큼 설레고 반갑고 감각적으로 온전히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도 눈이 오면 지금의 현실에 죄 없는 아이들은 신이 나서 눈 구경을 하러눈을 만지러눈을 빛내며 나가고 싶어 할 것이다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눈은 참 반갑고 감사한 눈님이시다.

 

춥고 조용하지만 어디선가 포근포근한 사락사락 소리가 눈꽃으로 떠다니는 세상이 함박눈이 오시는 날이다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지 못할 정도의 눈 덮인 세상은 아이들의 눈에 어떻게 보일까어떻게 느껴질까.


 

두 돌이 지나 생전 처음 세상이 눈에 덮인 광경을 본 꼬맹이는 엉엉 울었다왜 우냐고 물으니 무섭다고 했다아주 어리지만 열심히 익혀 둔 세상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아마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그 순간이 그립고 애틋하다.

 

잠잘 시간이지만 눈이 온 날이다 잠깐만 나가도 좋다고 허락해 준 엄마함께 나가 준 엄마가 지켜봐주는 뒷모습이 따스하다어쩌면 엄마도 이런저런 일상의 걱정과 내일의 염려를 잠시 멈추고 하얀 눈밭에 뽀드득 들리는 자신의 걸음만을 귀 기울여 들었을 지도 모르겠다.


 

토끼 가족인데아파트의 풍경이 지극히 현실적이라서 그림책인데 완전한 기시감을 느끼며 보았다눈 오는 날의 토끼... 말랑하고 귀엽고 작은 그들이 풍경을 더 완벽하게 만든다.

 

눈소식이 들리면 나도 잠시 복잡다단한 생각들을 접어 두고 집을 나와 바깥세상의 눈을 구경하고 싶다눈처럼 하얀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이 잠시 신나는 겨울의 외출을 하는 풍경을 미리 상상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눈아이
안녕달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안녕달님의 그림책여러 해 팬이라 계절감이 가득한 이전 그림책들도 모두 반갑게 떠오른다아이들이 아직 어릴 적 함께 읽는 즐거운 추억과 함께.

 

이번엔 그리운 시절에만 남은 듯한 포근하고 그리운 겨울의 풍경이다눈사람이라고만 부르고 한 번도 눈아이라고는 불러볼 생각을 못했다아이라고 하니 어찌나 애틋한 지...

 

어릴 적 털장갑을 뚫고 스며든 눈 녹은 물에 손이 저릿저릿 아파왔다그래도 눈덩이가 점점 통통하게 커지는 것이 재밌고 좋았다온 몸의 힘이 다 빠질 때까지 눈사람을 만들고 나면 친구가 된 듯 반갑고 행복했다.


 

눈아이가 움직이고 말하고 눈물까지 흘린다혼자 노는 아이의 쓸쓸한 시간이 덕분에 통통해지고 밝아진다단어들이 얼마나 예쁜지 차가운 눈덩이도 눈빵이라 불리니 군침이 돈다.


 

눈아이가 오래 살아남도록 녹일 일 없는 추위가 한동안 계속되었으면 했지만... 어릴 적 우리의 눈사람도 눈아이도 그렇게 녹아 스러져갈 존재라서그 유일함이 사라짐이 더 귀하고 깊고 진한 애정과 순전한 그리움을 경험하게 해준다.


 

울고 싶지 않아서 이건 그냥 두 줄 선일 뿐이야... 라고 참아 보려 했는데 차라리 담담한 친구임을 확인하는 이별의 대화에 마음이 쓰리게 녹아내린다우리 모두에게도 어릴 적 떨어지는 것이 무섭고 세상에서 가장 슬픈 소중한 사람들마음 꽉 찬 사랑만을 주고받던 그리운 분들이 계셨으니...

 

물이 되고 수증기가 되고 구름이 되었다 비로 내리고 눈이 되어 다시 날아들겠지만그 때 그 눈아이는 사라진 걸까다시는 못 만나는 걸까이런 이별을 겪어야 우리는 모두 성장할 수 있는 걸까.


 

내게 귀한 소중한 사람들의 부재를 나는 얼마나 오래 잊지 않았는지 찾아 다녔는지 믿고 기다렸는지 얼굴에도 마음에도 눈물이 흐르는 시간을 선물해 준 그림책이다감사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