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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그날 그곳에 있었습니다 - 계엄의 밤, 국회의사당에서 분투한 123인의 증언
KBS 〈그날 그곳에 있었습니다〉 제작팀.유종훈 지음 / 이야기장수 / 2025년 12월
평점 :
오늘이 벌써 12월 3일, 가짜뉴스 같았던 뜬금없던 계엄, 내란 발발 이후 1년입니다. 씹히지 않는 음식을 뱉지 못하고 씹어야하는, 소화되지 않은 시간을 잘 듣는 약 없이 버텨야하는, 그런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다시 카운트 할 1년 내에는 관련 범죄가 모두 소명되고 합당하게 처벌되고, 재발 방지도 확실히 마련될까요. 그럴까요.

“우리가 그동안 싸워서 지켜왔던 민주주의, 정말 어렵게 어렵게 한 발 한 발 디뎌온 민주주의인데, 이걸 한 방에 이렇게 해칠 수 있나? (...) 담 넘을 때 마음은, 되게 슬펐어요.”
날이 밝기 전에 계엄이라도 해제시켰으니, 신경이 찢기던 허둥대던 상황도 타임라인을 찾아갔지만, 그 밤부터 여러 달을 통과하던 시간은, 다시 정신이 하나도 없는 와중에도,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버텨온 날들이었다.
시청한 지도 까마득한 KBS에서 이 기록물을 만들었다는 게 생뚱맞고 반발감도 들었지만, 이야기장수에서 출간했다는 사실이 책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품게 한다. 윤석열 파면까지 참 많은 분들을 새롭게 알게 되었는데, 이 책 덕분에 함께 한 더 많은 분들을 만나게 되니 잠시 분노 대신 온기가 몸을 채운다.
“대한민국 건국 후에 계엄군이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온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 국회 경내에 계엄군을 투입한다는 것 자체가 의도가 명백한 일인 거죠. (...) 잡혀갔으면 당연히 죽임을 당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건 친위 쿠데타였기 때문입니다.”
내란 청산은 나와 지인들의 체력 회복만큼이나 더디다. 그래도 그 어두운 밤에서 제대로 방향을 잡아 걸어 나왔다. 나와 보니, 살던 세상의 문제들은 더 커 보이고, 때론 더 악화되기도 했다. 법치주의의 속도를 약점 삼아, 반성 대신 발악을 하는 내란 세력과 동조 세력들의 흉측한 언행은 계절의 아름다움도 잊게 만들었다.
아직 십대인데 대통령 탄핵을 두 번이나 경험한 우리 집 아이들이 내게 화를 내거나 비난하지는 않지만, 미안함과 부끄러움에 요즘도 문득 얼굴이 달아오르곤 한다. 동시에, 내가 누리고 산 얼마만큼의 민주화된 세상을 위해 갖가지 희생을 한 선배들의 삶을, 이제야 기록과 숫자가 아닌 역사로 체험하기도 한다.
“저는 국민들께서 또 다른 국민적인 영웅이 될 검사가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 필요하지도 않고요.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윤석열 검사가 다시 돌아올 수 있습니다.”
12.3을 어떻게 기억하냐고 평생을 질문 받아도 대답은 같다. 그날 그곳에 계셨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다. 그 후 여러 곳들에 계셨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여전히 필요한 ‘광장’에서 다시 만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다.
오늘도 내란 가담자들은 구속조차 되지 않고, 우두머리는 여전히 헛소리 같은 변명을 자유롭게 남발한다. 그토록 큰 위기를 겪어도, 세상의 어떤 면면은 달라지지 않았고, 이익 카르텔은 견고하며, 민주주의는 위태롭다.
할 일이 참 많다. 할 일이 많아서 다행이라고, 바꿀 수 있는 게 많으니 다행이라고 그렇게 나도 주변도 다독인다. 내년 12월 3일에는, 내란은 다시 시도조차 못할 체계가 형식이라고 구비되었기를, 범죄를 예방 효과가 확실한 수준으로 합당하게 처벌할 법도 제정되었기를, 근본적으로 변화를 이뤄 낼 교육 내용도 충분하게 마련되었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