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웰의 장미 - 위기의 시대에 기쁨으로 저항하는 법
리베카 솔닛 지음, 최애리 옮김 / 반비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주 긴 여행을 한 기분이다. 실제로도 오래 읽었다. 202212월에 떠나 20231월에 마쳤으니. 현재의 물리적 시간은 그렇고 책 속에서 유령처럼 돌아다닌 시간은 수십 년을 오갔다. 20<1984>를 택시 안에서 읽던 시간과 30대 도서관에서 솔닛의 책을 처음 본 오후, 수많은 장면들이 회전하듯 빙글거렸다.

 

존경하는 작가들의 이야기라 가늠할 엄두는 못 내면서도, 예전의 이상화된 삶의 한 조각도 독자인 내게 남아 있지 않다는 쓸쓸하고도 안심이 되는 자각도 있었다. 오웰은 자신이 그렇다고 주장한 적이 없고, 솔닛은 이 책에서도 지적한 어리석고 애틋한 완벽의 추구... 상당히 가까워질 수 있다고 믿은 철없던 시절이 내게 있었다.

 

인간됨의 본질은 완벽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고, 때로 신의를 위해 기꺼이 죄를 저지르는 것이며, 정다운 육체관계를 불가능하게 만들 정도로 금욕주의를 밀고 나가지 않는 것이고, 결국에 생에 패배하여 부서질 각오를 하는 것이라고

 

이상화하지 않고 완벽을 추구하지 않으면 덜 폭력적이 된다. 불완전하고 유한한 모든 존재들은 제각각의 형태대로 아름답다. 그 화해는 몸의 긴장을 풀게 하고 두통을 낫게 한다. 물론 그렇더라도 자신의 선택이 어떤 내용과 방향이어야 하는지 평생 맑게 보는 시선을 가진 작가들이, 사상가가 있었다.



 

오웰이 장미를 이야기한다고 해서, 오웰의 변절과 정체停滯를 의심하고 비난하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의 비판의 언어가 장미 정원에 묻혀 소멸되었다고 여기는 이도 없을 것이다. 비판은 물론 장미도 묻어버린 것은 오늘의 현실이 아닌가 한다. 저 많은 혐오와 폭력은 어디서 숨었다 터져 나오는 것인지 어딘가에서 대량생산 중인 것인지.

 

전제주의 지배의 이상적인 신민은 확신에 찬 나치나 확신에 찬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사실과 허구 사이의 구분(즉 경험의 현실성), 진실과 허구 사이의 구분(즉 사유의 기준)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 파탄에 이른 정신 상태, 내 정신 상태에 들락거리는 것들...

 

지적 굴복, 믿기 편리한 모든 것을 기꺼이 믿으려는 주눅 든 순응성, 때로는 냉소주의, 아무것도 믿지 않으려는 태도, 모든 것이 다 똑같이 썩었다는 단언...




 

별 일 없이 사는 듯해도 매일 다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그러듯이 다른 이들도 살기 위해 귀를 막아 보기도 하고 눈을 돌려 보기도 하고 어딘가로 도망을 가서 숨을 고르기도 한다. 그 자구책들이 모두 성공해도 어딘가에 상흔이 남는다. 때론 날카롭게 밖을 향해 무작위로 누군가를 공격하기도 한다.

 

내가 품은 기대와 희망이 서늘한 만큼 세상의 온기도 식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나무 장미의 꽃들이 피려다가 병들고 시들어버릴 기온일지도... 상상 속에서도 서글픈 풍경이다. 솔닛이 찾아간 오웰은 따뜻하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장미를 심고 가꾸었다. 아름다운 조우였다.

 

빵과 장미라니 (...) 거기에는 생존과 신체적 복지 이상의 것이 필요하고 또 권리로서 요구된다는 맹렬한 주장이 들어 있다. (...) 장미란 인간이라는 존재가 복잡하고 욕망들은 환원 불가능하며 우리를 지탱하는 것은 종종 훨씬 더 섬세하고 손에 잡히지 않는 무엇이라는 생각을 나타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