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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의 세계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5
김미월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6월
평점 :
주인공은 박물관 탐방 프로그램 강사이다. 월요일 아침, 불편한 감정, 황당하고 우연한 사건이 촉발한 생각들이 덩치를 불려가다 오랜 인연을 정리하기에 이른다.
일주일 동안 일어난 일들이 이전의 일상을 확실하게 뒤집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제목을 <일주일의 세계>라고 명명한 것에 공감한다.
연민과 사랑은 반드시 헷갈리지 말아야 할 감정들일까. 선택과 판단의 기준이 확실하다면 원하는 대로 정리하고 바라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맞거나…… 필요한 일일 것이다. 혹은 어떤 사소한 이유라도 결정적 계기가 될 만큼의 허약한 관계였을 뿐.
“그것이 계기였을까요? 그런 것도 계기라고 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애초에 계기 같은 건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이라 감출 줄 모르는 감정은 상대를 더 깊이 상처 입힐 수 있다. 정신병을 앓는 교사였던 엄마의 딸인 어린 정은소가 외할머니와 사는 왕따 오원화에게 가지는 우월감의 정체는 자신의 처지를 덜 힘겹게 견뎌보려는 약은 선택이었을 지도 모른다.
“저는 제 말 속에 들어 있던 즉흥적이지도 감정적이지도 않던 그 견고한 악의를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우연히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그 애에게 상처를 주고자 했던 저의 깊고 단단했던 진심을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으니 사과할 일도 없고 결국 화해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상황을 좋아지게 하기 위해 원화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어요.”
그 기억을 품고 자란 주인공이 선택한 남자 봉수는 어른이 된 남자 원화처럼 보인다. 소외되고 따돌림 당하는 인물이다.
결국 은소는 어릴 적 원화에 대한 악의를 스스로도 설명하지 못하는 관계 속에서 재현해오다 월요일 아침의 뒤통수 가격을 봉수에게 고스란히 옮긴 것일까.
“그에게는 마치 한파에 수도관이 얼어붙어 당장 세수도 못 하게 생겼는데, 그 원인이 자그마치 지구 상공의 제트 기류가 힘을 잃으면서 북극의 찬 공기가 밑으로 내려왔기 때문이라는 텔레비전 날씨 뉴스를 볼 때처럼 비현실적이고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을 겁니다.”
뒤통수를 맞은 건 내가 아닌데 마음이 후려치기 당한 것처럼 얼얼하다. 제 아무리 자기 합리화에 능숙하다 하더라도 인간은 말은 아니라 행동으로 판단하는 편이 정확하다.
눌어붙은 자국처럼 긁어도 벗겨지지 않는, 착하지도 사랑스럽지도 않은, 자비 없고 가감 없는 존재의 여전히 이기적인 참회록 같은 이야기다.
“저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연민이 중요한 사람. 그러나 그 연민이 곧 아무 것도 아닌 게 되어버려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 선배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었습니다. 원화에게 아무 잘못이 없었던 것처럼.”
한 삼십 분 읽었나 싶었는데 끝에 다다랐고 사흘은 질문으로 맴돌 작품이다. 타인에게 가한 악의는 자신에게도 확실히 새겨진다는 강렬한 경고문처럼 섬뜩하기도 히다.
잠시…… 노골적이진 않아도 결국 우월감에 기반을 둔 선의는 그래도 추구해야할 선택지인지, 낱낱이 분석하고 비판하며 지양해야할 태도인지 고민하였다.
이토록 불확실한 삶, 도무지 모를 다채로운 모순 덩어리인 우리, 시간이 지나도 어느 아침 불시에 뒤통수를 가격 당할 정도로, 잊지도 못할 악의를 반복하는 일만은 적기를 바란다.
“제가 제안하듯 명령하면 그 애가 동의하듯 복종했던 거지요.
(...)
그래서 그 애가 처음으로 뭔가를 제안했을 때 저도 모르게 흠칫했습니다.”
“전화하지 마. 때가 되면 내가 할게.”
(...)
“그럼, 나는 기다리기만 하라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