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혜린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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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샘 위에 떨어진 돌멩이였으며 그 샘은 내 어린 영혼이었다.”

 

이 작품을 어떻게 10대에 읽었지, 싶은 생각이 드는 재독이다. 당시엔 줄거리를 알고 있으면 작품을 안다고 생각한 시절이었고, 이후 30여 년간 너무 자주 너무 많은 이들이 언급해서 지겹기도 했다. 그런데 전혜린 번역 복원본이라는 소식에 모든 핑계가 말끔히 사라지고 다시 펼치고 싶었다.

 

읽다보니 줄거리만 아는 모르는 문장들이 한 가득이다. 새로 읽는 것인데 처음 읽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원작에 몰입하기보다 역자를 계속 의식하며 문장에서 그를 느끼려하는 기분이 유일한(?) 독서의 걸림돌이자 즐거움이랄까. 안개 짙은 겨울 냄새로 기억되는 그리움 같은 전혜린.

 

나의 생애에 있어서 그 당시처럼 그렇게 깊게 경험하고 괴로워한 적도 없었다.”

 

60년이란 시간이 느껴지지 않는 문장들이 편하게 읽힌다. 그 편함이 기억도 가물가물한 나의 십대도 얼핏 설핏 기억나게 만든다. 삶도 세상도 많이 몰라서, 많은 것들이 예감과 가능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으로 들락거리던 시절. 이 재독이 크느라 한참 힘든 중2 꼬맹이를 가만히 지켜볼 힘을 키워준다.

 

예민하게 판단하려는 이 시절의 감수성, 불안, 두려움, 그리고 자책. 어떤 감정은 신생아처럼 연약해서 이 시절의 인간은 아프기도 하고 앓아눕기도 하고 실수를 크게 저지르기도 하고 엉망진창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의지하고 의논한 도움을 줄만한 사람이 없으면, 엉뚱하거나 유해한 영향을 받기도 한다.

 

“‘운명과 감정이란 같은 개념의 다른 명칭이다.’ 그 말을 나는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당기면 당기는 대로 끌려가는 탄성 존재처럼, 방종과 신성 사이를 오고가며 고민하는 우리의 주인공, 나이가 들어서 더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기대보다 적었다. 오히려 그 나이대의 사고방식과 언어가 내게서 사라져버린 탓에, 공감의 폭이 줄어들었다. 아쉽고 씁쓸하지만 도리가 없다. 언어화되지 못한 공감과 이해는 애초에 짐작 이상이 아니었을 지도 모르니까.

 

데미안에게도 헤세에게도 예전만큼은 매혹 당하지 못하는 독자가 되었지만, 애초에 나는 전혜린에게 끌려 이 책을 펼쳤고, 해설에 전혜린의 글이 실려 있어서, 가장 마음에 드는 선물을 마지막에 발견한 아이처럼 기뻤다. 영향력은 다르지만, 전혜린은 어리고 젊은 내게 데미안적 존재였을 수도 있다. 기존의 것들 중 틀린 것이 있다고 알려주는 많은 선지자들 중 한 명.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해석은 각자가 각자에 관해서밖에는 할 수 없는 것이다.”

 

30년 후에도 종이책을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이미 삶을 마쳤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재독을 하고나니, 이번 생에 한번은 더 읽고 싶다는 기분이 든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일 그 독서에서 나는 무엇을 새롭게 이해하고 발견하고 느끼게 될지, 조금 궁금하고 많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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