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편지 바벨의 도서관 1
에드거 앨런 포 지음,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 김상훈 옮김 / 바다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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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가 그린 어두운 패러독스의 세계.
만든 이야기의 중심엔 물의 이미지가 존재하는데, 그것은 시원(始原)적이고 신비한 비합리성의 세계로서 공포를 자아낸다. 그런 반면 그가 쌓아 올린 문장의 건축물은 다른 어떤 이의 그것보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다. 섬세한 관찰과 이성적 추론의 문장이다. 주제는 액체성을, 주제에 대한 접근 방식은 고체성을 띈다. 이런 방식이 단편들에서 제대로 효과를 발휘한다. 포는 합리성의 그림자와 비합리성의 그림자라는 쌍으로 된 이미지를 극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물의 이미지에 대한 생각은 첫 단편 <도둑맞은 편지>에서 바로 이런 사고 과정이 D장관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을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네. 라는 뒤팽의 말 때문이었다. 거울(水面)의 이미지다. 그는 D장관의 생각을 비추어 본다. 그리고 결론에서 D장관의 도둑질 방식 그대로 D장관에게 반사함으로써 그를 끝장낸다. <병 속에서 나온 수기>는 전체가 바다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엄청난 폭풍우의 한 가운데로 수직 낙하하는 마지막 이미지는 강렬하다. <밸더머 사례의 진상>의 끔찍함은 썩어 녹아 내린 부패덩어린 시신의 액체성에서 온다. <함정과 진자>는 어둠(악몽이자 빠져나올 수 없는 水中)의 한가운데서 오는 공포를 가장 압도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군중 속의 사람>은 극도로 민감해진 감수성이 사건의 전제가 된다.  

액체인 물이 갖는 매개성, 소통을 위한 중간자로서의 물(고약한 전염병을 유발시킬 것 같은 이미지를 포함한)이라는 이미지는 살기 위해 이용해야 하지만 그것 자체가 지극한 위험성을 내포한 어떤 것(문명의 도구)들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 어머니 뱃속 양수의 따뜻하고 모성적인 이미지는 안 보인다. 신경증적 불안과 안개처럼 모호하지만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공포만이 바탕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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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율표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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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누구인가? 하나의 키워드로 얘기해 보라.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물음이다. 문장이 지목하는 것은 독자인 나였지만, 그 물음에 스스로 답하기 위해 내가 취한 방식은 읽은 책, 사랑한 책, 자국을 남긴 책을 하나의 키워드로 정해 보는 것이었다. 아주 어렵다. 늘 생각이 바뀌었고 하나의 키워드로 포섭되지 않는 다른 단어들이 생각나기 일쑤다. 존재를 표현하는 단 하나의 키워드, 이 책에 대해서 지금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이거다.  

<주기율표>는 금()이다.    

 

도라 강은 얼음이 뒤섞인 자신의 심장 속에 금을 싣고 옆으로 무심히 흘러갔다. 불안정하지만 너무나 자유로운 자신의 생활로, 금이 끝없이 흐르는 그 강물로, 영원히 이어질 나날들로 돌아갈 수 있는 그 정체불명의 죄수에 대한 질투심 때문에 가슴이 조여 드는 것 같았다.”   

 

얼음과 뒤섞인 금. 레고 블록 한 개가 프리모 레비의 삶 전체를 지목한다. 그 삶이 그랬듯 <주기율표>도 책들 사이에서 이다.  

언제나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내 인생의 책, <월든>만큼이나 레비의 글은 생생하고 초점이 분명하며 깊은 관찰의 결과들이 문장 처음부터 끝까지 펼쳐져 있다. 모든 파시즘에 대한 반대, 각각 고유하여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없는 주기율표의 원소들을 등장시킨 레비의 진정성. 그래서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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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4일 거리
요시다 슈이치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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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4일 거리 옆 제방에서 몸통에 핀이 꽂힌 채 죽은 나비를 본다는 첫 장면은 <<죄와 벌>>에서 라스콜리니코프가 두려움에 떠는 스스로를 나비에 비유했던 장면과 오버랩 되어, 흐릿한 슬픔의 색조가 수채화처럼 번져 오는 듯 했다. 그런데 바로 이어지는 목소리는 빨강머리 앤이 친구 다이애나에게 행복한 상상으로 숲과 오솔길 등등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던 바로 그 음성이다. 앤의 들뜬 어린아이 같은 목소리까지는 아니었지만 상상의 나래를 펴 이 세상의 무게라는 걸 덜 느끼는 듯한 그 목소리는 슬픔을 예감하는 첫 이미지를 슬며시 밀어낸다. 짙은 커피에 흰 우유가 나선형으로 섞여들 듯.     

전형적인 성장소설이자 연애소설이지만 묘하게 매력적인 색채를 띄는데, 이것이 순전히 소설의 힘 때문인지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읽었던 경험과 믹스되어 나에게만 나타나는 효과인지 구분할 수 없다.   

포르투갈의 바다의 남자가 던진 물음과 남동생의 여자친구 메구미의 자기 분석은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고 뛰어들 수 있게 된 사유리의 인격적 성장의 촉매가 되는데, 한 존재가 시적 변화를 이루는 이 필연적이고 우연적인 과정.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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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크리틱 - 칸트와 마르크스 넘어서기
가라타니 고진 지음, 송태욱 옮김 / 한길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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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크리틱>>이 다루는 것을 내 몸과 바짝 붙여 생각해 본다. 일주일 전, 일 개월 전, 일 년여 전. 짧은 기간 동안 아는 이들의 잇따른 자살이 있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소화기처럼 사용할 만한 뭔가를 찾지 않을 수 없었다.  

칸트의 문장 하나가 대문짝만하게 크게 붙여져 있다. 너의 인격과 모든 타자의 인격에서 인간성을 결코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동시에 항상 목적으로 대하라.  

칸트가 말하는 타자는 죽은 자, 미래에 태어날 자 등 훨씬 먼 존재도 포함한다고 고진은 말한다. 롤스가 장막을 설정하고 타자를 본 것처럼 나도 내 식으로 그 타자를 설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라는 2인칭 타자는 배제. 그건 내가 투사한 의 모습. 내 머리 속 너일 뿐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나는 노천극장을 생각해 본다. 무대에는 나와 너(상대배역)가 있다. 객석에는 관중이. 하지만 나는 관중을 의식하고 있고, 관중도 내가 서 있는 무대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이니 배제해야겠다. 노천극장 주변에서 사랑하는 연인을 기다리는 행인1을 설정하고, 그가 3류 배우인 먼 무대 위 나를 본다는 설정은 어떨까. 딱 그 정도 무관심의 시선으로 나를 보는 타자를 설정해 볼 필요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살의 충동이 느껴질 때, 타인의 시선의 도입은 요긴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으로써 견고하게만 느껴지는 나를 둘러싼 현실을 조금은 말랑말랑하게 생각해 볼 수 있고, 나만의 단독성, 유니크한 존재로서의 자신을 새롭게 발견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세계는, 고진의 말에 따르면 자본제-네이션(민족)-스테이트(국가)의 삼위일체다. 기존의 자본주의에 대항한 체계들이 실패한 이유는 자본제만을 대처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것도 자살의 충동을 느끼는 개인의 시점에서 바꿔보기로 했다. 그러면 자본제-가족(결혼제)-사회(국가/기업)의 삼위일체가 내가 보는 세계가 될 터이다.  

결국 말하고 싶은 것은 반항이기심감정에 괄호치기 일지도 모르겠다. 설사 고진이 말한 물리적 정신적 이동을 통한 사고의 전회(강한 시차)를 이뤘더라도, 우리가 세계에서 행동으로 보일 수 있는 것들은 이기심이라고 욕 얻어 먹는 것들일지 모르겠다. <<화이트 타이거>>의 자유인 발람처럼 스스로 족쇄를 깨부수고 나오기 위해선 감정에 괄호치기를 하고 실천에 옮기는 수밖에 없다.  

그들의 자살이 이런 죽음을 각오한 도약을 실천해서 나온 사후적 결과라면 그것에 대해선 침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한 실천 없이, 남아있는 사람에 대한 원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이거나 유약한 자기합리화의 결론이라면 정말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르크스의 화폐 분석도 괜찮은 아이디어 하나를 품고 있다. 화폐를 가진 자는 이고 물건(상품;몸뚱어리)을 가진 자가 이라는 아이디어. 내가 발행하는 감정(심리)의 화폐를 하루하루 내게 선물하는 것. 자기가 한국은행이 되어 보는 것. 자기계발서 어디선가 비슷한 아이디어를 본 적이 있는데, 이것은 화폐라는 언어(또는 실체)가 갖고 있는 자기증식, 자기강화를 스스로에게 호혜적으로 증여하는 행위가 될 터이고 그건 인 나를 조금은 더 멀쩡하게 세워줄 터이다.  

자살이 옳은지 그른지, 자본이 옳은지 그른지, 삶이 옳은지 그른지.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것은 부조리 밖에 없을지 모르지만 그 길을 굳세게, 때론 헤매며 가는 모든 이들에겐 파이팅을. 혹 마무리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마치 이혼 숙려기간에서처럼, 자신을 타인의 시점으로 바라보려고 한 번 만이라도 더 노력해 보길. 자신은 더 이상 무언가로 환원할 수 없는 고유의 무엇이라는 것을 잊지 말길. 한 없이 작고 약한 것일지라도 유일한 그 가능성을 제발.. 너무 쉽게 등지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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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VS 철학 - 동서양 철학의 모든 것, 철학 대 철학
강신주 지음 / 그린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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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요약’을 좋아하진 않는다. 요리사는 집에서까지 요리하기 싫어한다는 말이 있듯 직장에서 기획을 하고 보고를 하며 늘 ‘요약’이란 것을 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요약을 하면 복잡하고 거대한 것들을 나름 손 안에서 가지고 놀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강신주의 이 책은 요약이 힘들다. 아니, 요약이 너무 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나의 문제를 가지고 2명의 철학자를 등장시켜 복싱을 하게 하는 식인데, 해설자는 또 다른 제3의 철학자의 이론까지 들먹인다. 그래서 좀 복잡하다는 인상이다. 내 머릿속에 철학의 계보가 주르르 꿰어 있지 못해서 그런 것이겠지만.

일단, 문제는 문제의 ‘선정’이다. 2명의 철학자를 하나의 테제를 놓고 다투게 할 때, 독자인 내게 제일 중요한 것은 2명의 철학자와 해설자의 이론이 아니라 그 ‘테제’가 나에게 절실한가. 하는 점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총 56개의 꼭지들 자체에 문제가 있다. 뭐랄까. 거의 유혹적이지 않다. 특히 2부 동양편은 더욱 그렇다.

두 번째는 문제에 적합한 방법인가. 즉 적합한 인선(人選)인가 하는 점이다. 이것은 당연히 저자 자신의 지식연마의 종합일 터여서 뭐라 말할 수는 없겠지. 철학사적으로 그렇다 라고 고정된 것들도 있고 저자 자신이 공부한 이력에 의해 정해진 것일 테니. 하지만 아쉬운 점은 훨씬 불꽃 튀길만한 상대들로 대진을 짤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니 그렇게 대진을 짰는데 여전히 내가 그것들이 불꽃 튀긴다고 느끼지 못하는 문제일 수도 있겠다.)

세 번째는 너무 폭이 넓지 않은가에 대한 의심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이렇게 넓은 범위를 저자 혼자서 썼다는 사실 자체가 내용의 충실, 또는 투명함에 대한 의구심을 머릿속에서 지우지 못하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목록으로써 생각거리로써 참조할 만 하다. 철학자와 철학자가 어떤 입장을 지녔었는지 개념과 개념이 어떤 극명한 차이점을 가졌는지 알고자 할 때 유용하다. 하지만.. 차라리 강신주 자신이 가장 관심 갖고 있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밝힌 비트겐슈타인, 나가르주나, 스피노자, 알튀세르, 들뢰즈(장자가 없다는 게 의외)의 목소리로 각 철학자들의 주요 개념들을 설파하는 작품이 나온다면 더 호기심이 발동할 것 같다. 이런 작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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