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클린
콜럼 토빈 지음, 오숙은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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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일리시가 뉴욕에서 겪는 것들. 내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이한 노스텔지어에 휩싸이고 말았다. 브루클린의 아일랜드계 교회에서 열리는 무도회, LA로 연고지를 변경하기 전의 다저스(5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에서는 아직 LA다저스가 아니라 브루클린 다저스) 홈 경기, 코니 아일랜드에서의 해수욕, 브루클린 칼리지에서의 야간 학습, 야학을 끝내고 하숙집까지 돌아오는 길, 친해지기 어려운 하숙집 주인과 하숙생들, 세일하는 스타킹을 사기 위해 스토어로 몰려드는 인파들… 그래서 이 소설은 아마도 아일랜드 이민자들에게는 직접적으로 향수병을 불러 일으킬 것이고, 아일랜드인이 아니더라도 옛 추억을 더듬거릴 나이의 모든 이들에게 청춘의 한 시절을 고스란히 보여줄 것이다.

하 진의 단편보다 훨씬 지역적이고 시대적인 분위기가 물씬 나는 풍경들. 토이 카메라로 찍은 주변부가 어둑한 옛 사진 같다. 인물들이 풍기는 분위기도 다르다. 하 진의 인물들이 나쁘지 않은 사람들임에 반해 콜럼 토빈의 인물들은 착한 사람들이다. 나쁘지 않은 것과 착한 것의 차이점, 리얼리스트와 로맨티스트의 차이.

크게 세가지 사건이 발생하는데, 그 사건들을 간단히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소설 전체의 스포일러가 되어 버릴 것이다. 그만큼 소설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하 진의 단편 하나가 장편소설 같았던 것에 비하면 이 작품은 스토리로만 보면 단편소설 같다.  

느낀 것이 노스텔지어였다면,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일랜드에서 브루클린으로, 다시 브루클린에서 아일랜드로 장소가 바뀔 때의 아일리시의 태도에서… 사람에게는 참 떼어내지 못하는 ‘관성’이 있음을… 어렵게 ‘처음’을 겪은 후에 우리가 얼마나 현실에 쉽게 익숙해지는 지를.. 그리고 또 얼마나 ‘새로운’ 처음을 갈망하게 되는지를 보게 된다. 하. 사랑은 삶은 그래서 또 다른 이야기들을 풀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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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추락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시공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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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이한 문장을 따라 쉽게 읽다가 어느 순간 멈칫. 끝을 먼저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진다. 참다 참다가 결국 패배감을 느끼며 끄트머리 페이지를 슬쩍 본 게 서너 편에 이른다. 현실 그대로를 담고 있다는 걸 알기에, 삶. 그 독한 일면에 멈칫, 숨을 죽인다.

뉴욕 퀸스 플러싱을 배경으로 중국 이민자들의 삶을 그리고 있어, 미국 현지인들이나 다른 민족 이민자들과의 마찰이 주를 이루지 않을까 하는 처음의 내 예상과는 달리 갈등의 중심은 오히려 같은 중국인 사이, 가족 사이다.

중국 현지의 동생과 뉴욕 언니간의 갈등(인터넷의 해악), 동향 출신의 약점을 잡아 괴롭히는 인간(미인), 할아버지 할머니를 미워하는 뉴욕에서 자란 손주들(원수 같은 아이들), 뉴욕에 들른 시어머니와 아내와의 갈등 사이에 낀 남자의 고민(십자포화 속에서), 주미 중국 뉴욕영사관의 중국 인민들에 대한 정서적 폭력(부끄러움), 동족을 착취하는 사람들(연금 보장, 벚나무 뒤의 집, 멋진 추락), 부부 관계가 채권채무자 관계가 되어버린 커플(계약 커플) 등

짧은 소설 안에, 쉽게 읽히는 문장 사이마다 흠칫 놀랄만한 이민자 개개인에 대한 뛰어난 관찰의 결과들이 녹아 있다. 그들의 행동과 그것의 동기를 암시하거나 직접 드러내는 그 문장들을 볼 때마다, 큰 대로변 작은 골목 안 또 그 안에 숨겨지듯 존재하는 어두운 뒷골목을 보듯(마치 프랙털 구조처럼) 각자의 고통을 겪고 있을 사람들, 그들의 복잡한 정서를 실감하게 된다. 50밀리 표준렌즈로 보듯 과장되거나 축소되지 않는 삶. 그대로를 직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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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지식 - 책의 바다를 항해하는 187편의 지식 오디세이
고명섭 지음 / 사계절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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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의 독서기록을 읽는 일은 괴롭다. 읽으면 읽을수록 그런 확신이 든다. 나의 리뷰도 아마 그럴 것이다. 읽은 것들이 거의 겹치지 않거나 너무 많이 중복되거나. 둘 다 힘들다.


언론지(한겨레)에 올린 신간리뷰들을 모아 놓았다. 파토스가 넘치는 리뷰 블로거들의 포스팅 조차도 어쩔 때는 지루하지만, 소개 정보에 치중한 언론사의 기사 묶음을 이렇게 한꺼번에 읽어 보니 아. 이건 더 지루하군. 후반으로 갈수록 같은 말의 반복이 눈에 치인다. 가끔 신문으로 봤을 때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다.


그런데도 간만에 정말 열심히 읽었다. 내가 읽었던 것들은 별로 없었지만, 이해 못할 내용 또한 별로 없었기 때문에 일단 나아갈 수 있었다. 지젝, 네그리, 고진의 북 리뷰를 전진 배치한 것이 아마 내게는 크게 주효했던 것 같다. 지젝은 풍부한 글감으로 고진은 선명한 문체로 네그리는 문제적 개념의 제시로, 관심을 끊임없이 불러 일으키는 철학자들이기에..


괴로운 데도 리뷰들을 찾아 읽는 가장 큰 이유는 ‘발견’하고 싶어서다. 보물찾기처럼, 내 무딘 소유욕과 호기심에 불을 지펴줄 것을 탐색해 보고 싶어서다.


자크 랑시에르, 김상봉,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 책을 통해 발견했다고 말해야겠다. 이름들은 들어 봤지만 리뷰를 읽어보니 끌리는 게 많다. 그리고 미하일 바흐친, 이진경은 리마인드가 됐다. 더 찾아 읽어봐야겠다.


‘배제를 뚫고 일어서 자신의 언어를 되찾고 자신을 보이는 자리에 세우는 것이 랑시에르적 정치’라는 글을 읽으니, 내가 책을 읽는 이유가 그냥 단순히 좋아해서이거나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서 또는 위안을 얻고 싶어서가 아니라는 것이 갑자기 분명해졌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나의 언어’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이 물질적 자유 만큼이나 내게 절실한 것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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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와 사이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커뮤니케이션 강의 지식여행자 12
요네하라 마리 지음, 홍성민 옮김 / 마음산책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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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사람이나 가장 작은 사람, 가장 무거운 사람, 이런 사람들도 대부분 남자다. 마니아나 오타쿠, 성격 이상자, 비정상적인 흉악범죄자 역시 여자에 비해 남자가 훨씬 많다. 이것은 분명 샘플로서 그 폭이 넓기 때문이다. 샘플이라면 가능한 한 다양한 유형이 있는 게 좋으니까.’


남녀의 차이와 사이를 유쾌한 어투로 전달하는 이 부분과 고립어, 교착어, 굴절어에 대해 말하는 마지막 부분, 커뮤니케이션을 잘 할 수 있는 테크닉에 대한 예시 부분. 세 가지가 이 책의 앙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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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독자 보통의 독자 1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인용 옮김 / 함께읽는책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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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름다움의 가르침은 아름다움의 목소리와 떼어놓을 수 없으며’

그러기에 울프는 소설가 개인의 기질에 그렇게나 많은 관심을 보인다. 제인 오스틴, 브론테 자매, 조지프 콘래드 등. 울프는 항상 작가의 기질을 주의 깊게 감지함으로써 그네들이 품고 있는 일종의 모순(매력적 모순)을 간파하려 노력한다.  


2.
나 같은 경우, 소설 속 인물들보다 작가를 상위 카테고리에 두고 보는 게(피라미드 식으로) 익숙한데, 울프는 작가를 등장 인물과 같은 위상에 두고 볼 줄 안다. 소설의 외부든 내부든 ‘인물’을 중심으로 글을 풀어나간다.

이것은 내가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에 꽤 익숙해져 있고, 학창시절 작품의 ‘분석’에만 치중했던 문학 교육에 대한 깊은 반발로 인해 ‘인물’을 전보다 덜 중요하게 보게 된 내 시각과도 관련이 있을 것 같다. 또 하나는 남자이기 때문에 여성인 울프 보다 인물간 관계/갈등 보다는 소설의 구조/플롯/배경 등에 더 관심이 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인물’에 포커싱을 맞추는 울프의 시각은 내 고정된 프레임을 자각하게 해 준다.  


3.
‘여자’이면서 ‘영국인’임을 항상 의식하고 있는 모습이다. 당시(그때뿐 아니라 현재도 어떤 면에선 그렇듯)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러시아 작가들(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체호프)에 대한 질투 어린 감상과 옛 그리스 비극 작가들의 그리스적 기질에 대해 논할 때, 오스틴과 브론테 자매와 조지 엘리엇을 추켜 세울 때.. 울프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즉, 이 보통의 독자는 그들과 마주침으로써 또한 스스로를 보여주고 있다. 기질을 드러내고 있다. 문학이 소통이라는 울프의 인식은 자연스럽게 글에 묻어 나고 있다.  


4.
‘그것은 다른 것보다 더 높이 올라가는 순간, 그 자체적으로는 웅변적이거나 격렬하거나 또는 언어의 아름다움이 두드러지지 않지만 책 전체의 무게가 그 말의 뒤에 놓이는 순간이다.’

‘책 전체의 무게가 뒤에 놓이는 순간’
아. 멋지다. 맞다. 기억이 오래가는 소설은 늘 그런 순간이 있었다. 속력을 높여 직진하던 차가 방향을 틀 때 느껴지는 가속감, 중력감 같은 것. 스윙바이의 순간. 장편소설을 읽을 때 가장 큰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을 표현한 울프의 한 문장은, 정말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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