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내지 마 민음사 모던 클래식 3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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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 페이지에 이르러 터져 나온 캐시의 흐느낌은 한 사람의 생짜배기 모습이 온 몸으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헤일셤에서의 토미와 루스와의 추억들을 회상하는 캐시. 조심스럽게 선택된 듯한 단어들… 담담한 듯 거리감을 두듯 이야기하던 캐시가 흐느끼는 그 장면은 소설이라는 몸의 안과 밖을 확 뒤집어 놓은 듯한 기분을 들게 만들었다. 감정이 복받쳐 오른다.

줄리언 반스가 가장자리를 두들겨 한복판의 ‘메시지’를 울리게 하듯, 이시구로는 ‘복제인간’과 ‘헤일셤의 미스터리’라는 아이디어를 두들겨 캐시라는 한 존재의 진짜 쌩얼을 드러내고야 만다. Never let me go라는 노래를 왠지 좋아하던 그 소녀. 그 여리고 사려 깊고 외로운 존재의 맨 얼굴을.

그러니 ‘나를 보내지 마’가 성취한 첫 번째는 복제인간으로 대표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에서의 인간실존의 문제를 건드렸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인간스러움’을 너무나 ‘인간스럽게’ 표현해 내고 있다는 데 있다. 복제인간을 ‘영혼이 없는 인간’이라고 믿는 보통의 인간들에 대하여 이시구로는 말이 아니라 ‘직접적인 증거’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캐시’라는 너무도 인간적인 존재를 느끼게 함으로써.

또 하나 이 소설을 유니크 하게 만드는 것은 아름답게 느껴지는 장면 장면들이다. 베개를 가슴에 꼭 안고 춤을 추는 캐시, 코티지 부근 교회의 공터에서의 캐시와 토미와 루스, 노퍼크에서 다시 never let me go라는 곡이 담긴 카세트테이프를 찾았을 때 그리고 셋이서 늪에 있는 배를 보던 장면에서, 영화 네버 렛 미 고를 보진 않았지만, 내가 만약 감독이었다면 나는 아마도 주연배우의 캐스팅에 절반의 노력을 퍼부은 다음에 장면 장면에 어울리는 ‘음악’을 만드는 데 남은 힘을 모두 쏟아 부었으리라. 그 만큼 이 장면들에서는 그에 합당한 음악이 울려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음악가적 작가인 것이다. 오르한 파묵이 화가적 작가인 것처럼.

특히 셋이서 늪에 있는 배를 보는 장면에서는 베토벤 소나타 8번의 2악장 아다지오 칸타빌레가 딱 맞는 것처럼 여겨졌다. 슬픔을 슬픔으로 노래하는 듯한 그 곡. 되풀이해 듣고 있는 에밀 길렐스의 연주라면 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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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 빔 벤더스의 사진 그리고 이야기들
빔 벤더스 지음, 이동준 옮김 / 이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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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고 마른 가장자리 같은 사진들
관광객의 눈이 아니고
방관자의 눈도 아니며
모험가의 눈은 더욱 아니고
흥행가의 눈도 아닌

루이넨루스트(Ruinenlust)라는 독일어를 알랭 드 보통에게 배웠는데
폐허에서의 기쁨이라는 뜻이다.
‘그들 자신의 성취의 덧없음을 떠올리며 정신을 차리고 구원을 얻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라고 알랭 드 보통은 말한다.
오만하고 퇴폐적인 느낌이다.

빔 벤더스 감독의 사진들은 그렇다면 루이넨루스트가 아니다.

폐허에 속해있는 사람이 느끼는 폐허에 대한 진정성
이 사진들에서 내가 느끼는 것은 그런 것이다.
관광객, 방관자, 모험가, 흥행가.
이런 제삼자의 시선이 아닌,
이미 거기에 속해 있는 사람이 겪는 거기. 그 삶. 단 한 번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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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dja2 2011-08-01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보면서 왜 나는 이 사진과 글들에서 진실하다 느낄까, 문장으로 풀기 힘들었습니다. "폐허에 속해 있는 사람이 느끼는 폐허에 대한 진정성"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 교양인을 위한 구조주의 강의
우치다 타츠루 지음, 이경덕 옮김 / 갈라파고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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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두 가지의 기쁨을 선사한다.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을 쉽게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 하나다. 정말 쉽게 얘기한다. 이 이상 쉽게 얘기하기도 힘들만큼(물론 그래도 숙고하면서 읽어야 한다) 그 정도로 쉽게. 바로 전에 읽었던 서동욱의 <<철학 연습>>보다 더 친근하게. 쉽다는 것은 가깝게 얘기한다는 뜻이다. 나와 멀리 떨어진 얘기라면 더 어렵게 느껴질 것이 틀림없다. 확실히 그는 이들 구조주의 사인방(이라고는 하지만 좀 흐릿한 관계)의 철학을 소가 여물을 씹듯 그렇게 넉넉하고 여유롭게 제대로 소화한 후 독자에게 내놓은 것 같다.

두 번째 즐거움은 시간상으로는 첫 번째로 맞이하는 기쁨이다. 서문(들어가는 말)에 정말 감탄하게 된다. 읽는 맛이 난다. 입문자용 철학 해설서를 주로 읽는다는 말로 시작하는 이 서문은 그 자체로 너무 멋지다. 본문 내용에는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더라도 서점 책꽂이에 기대어 서서 서문만이라도 읽어봤음 좋겠다. 책을 펴낸 목적을 이렇게 심플하면서도 힘있게 쓴 글은 거의 못 본거 같다. 그 목적에 내가 너무 공감하기 때문에 그런 걸까? 그래 그런지도 모르지만.

몇 번 다시 읽어보고 싶다. 대부분의 철학 관련 책들은 다시 ‘읽어야겠다’ 라고만 생각이 들지 다시 ‘읽어보고 싶다’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 까닭에 이 책이 더 소중하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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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케이크의 특별한 슬픔
에이미 벤더 지음, 황근하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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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러운 소설이 있다. 주인공 때문도 아니고 화자의 말투 때문도 아니고 작가 때문도 아니고 더더군다나 이야기의 엔딩 때문도 아닌, 소설 전체. 작품 하나 전체로서, 실존으로서 사랑스럽다 라고 느껴지는 소설들이 내게는 있다. 꽤 오래 전 에쿠니 가오리의 <<반짝반짝 빛나는>>을 읽었을 때, 처음엔 잘 몰랐었지만 그건 확실히 사랑스러운 작품이란 것을 나중에 느끼게 된 이후, 그 이후로 나는 종종 사랑스러운 소설들을 만나게 되었다. <<책도둑>>과 <<건지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 <<길버트 그레이프>> 같은 작품들이 그런 소설들이다. 여기에 한 권을 더해야 할 것 같다. 바로 이 작품.

로즈(주인공)가 엄마와 아빠와 오빠와 대화할 때, 진심과 겉모습, 알지 못하는 것과 아는 것 사이에서, 마치 짝사랑하는 이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바로 그러한 때, 로즈의 ‘시선’이 닿은 것들을 주의 깊게 본다면 아마도 호흡이 조금은 길어짐을 깊어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빠지게 될 것이다.


‘The particular sadness of lemon cake’
원제목의 ‘particular’라는 단어가 정말 마음에 든다. 이 형용사가 실은 이 작품에 대해 내가 말할 수 있는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special’이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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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위의 남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7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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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갖고 되겠니? 이야기로 보여줘야만 해.
소설이 다른 목적에 복무하는 것에 대해 꺼려하는 풍조가 있다. 나도 역시 그런 쪽에 가깝다. 따라서 철학소설이니 과학소설이니 하는 말들은 꺼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을 안 꺼낼 수 없어. 그 동안 읽은 것들이 서로 얽혀 있기 때문에 따로 분리하기가 몹시 곤란하거든. 칼비노의 이 작품은 이야기가 어떻게 철학을 직조해 내는지, 철학과 이야기가 어떻게 한바탕 어울리는지 환하게 보여주고 있다.

어떤 철학?
존재론이지. 물론 그렇기 때문에 관계론이고. 이진경의 <<노마디즘>>을 읽고 들뢰즈 철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우리의 주인공 코지모는 들뢰즈 계열 철학의 구현체인 거 같아.

이야기가 곧 캐릭터야.
코지모라는 캐릭터. 어찌할 수 없이 존경하고 사랑하고 싶은 캐릭터. 1인칭 시점이거나 전지적 시점이 아니기 때문에 독자가 그의 심리를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가 자세히 봐야 하는 것은 그의 행위뿐. 그 행위가 곧 이야기고 그 행위가 곧 그이기 때문에. 그 행위들이 너무나 새롭고 갑작스럽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연하게 느껴지는 이 놀라움.

나무 위에 올라갔다고 해서 세상을 등진 사람의 이야기라고 착각하면 곤란해.
딱 제목만 보면 자연으로 돌아가자. 라거나 숲 속의 은자 얘기 같기도 하다. 물론 그런 측면도 많이 있다. 하지만 코지모는 땅에 사는 사람들보다 땅에 사는 사람들과 더 멋진 관계를 형성하지. 세상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그 안에서 새로운 나무줄기를 만들어 내거든. 이 줄기가 뻗어 나오는 지점과 방향이 기가 막혀. 눈을 휘둥그래 하게 한다니까.

비올라(여주인공)와의 사랑을 좀 봐.
그 아이를 어떻게 만났는지. 처음에 코지모가 달팽이요리를 거부하고 나무로 올라간 것은 그저 반항이었지. 바로 그때 비올라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바로 끝나버리고 말. 귀족의 딸이지만 좀도둑들과 알고 지내고 좀도둑들로부터 신포로사 라고 불리는 그녀. 그런 그녀를 만나고 대화를 나누고 호감을 느낀 뒤에 어떻게 됐니. 나무 위에 사는 것이 신념이 됐지! 이런 남자 이런 여자, 독자가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인노첸티의 그림책 <<마지막 휴양지>>에 나무 위의 남작 코지모도 나와. 아주 오래 전 이 소설을 사놓고 읽지 않다가 그 그림책으로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마지막 휴양지>>를 본지도 한참이 지난 지금에야 읽었는데, 이 책을 샀던 십여 년 전에 읽었다면 어쩌면 그저 재미있는 환상소설쯤으로 치부했을지도 몰라. 그래도 좀 늦게 찾게 된 거 미안할 만큼. 그만큼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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