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라쉬 브런치 - 번역하는 여자 윤미나의 동유럽 독서여행기
윤미나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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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탈리아 구두>>에서 프레드리크와 하리예트가 숲 속 연못을 찾아가는 도중에 먹었던 굴라쉬. 그 맛을 경험해 보고 싶어 홍대까지 다녀 왔었다. 더불어 이 책 제목이 떠올라서 생각난 김에.

2.
표지와 내용.
표지가 먼저고 내용이 나중이라서 알게 되는, 반전이 있다. 음울하고 차가운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명랑 순정만화에 어울릴 법한 목소리.

3.
발랄하고 약간 깜찍스러운 캐릭터가 입만 열면 욕을 한다고 치자. 그럴 때 굉장히 재미있는데, 이 책의 저자 윤미나의 목소리가 그렇다. 물론 욕은커녕 지젝이니 고진이니 카프카니 하는 우리 시대 고급문화로 인정되는 것들을 얘기하고 있으니 적합한 표현이 아니다. 그런데도 왠지 나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재미있었다는 얘기.

4.
책들은 또 다른 상품에 대한 카탈로그의 기능이 있다. 소설을 읽다 보면 배경이 되는 장소로 가보고 싶어지고 주인공이 먹은 음식, 듣는 음악, 읽은 책을 함께 경험하고 싶어진다. 모든 텍스트는 욕망을 자극하고, 우리 사회는 돈이 있으면 거의 대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소비자가 되면 된다. <<굴라쉬 브런치>>를 읽고 내가 구입한 것은 Stacy Kent의 앨범 [Breakfast On The Morning Tram] 이었고, 1번 트랙인 'The Ice Hotel'은 정말 좋다. 매력적인 재즈 보컬.

5.
여행 사진들을 각 챕터의 전면에 배치하고, 후면에는 글만 자리하게 한 것은 잘 한 것 같다. 글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덕분에 재미난 입담을 즐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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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릿하고 따뜻하게
이시은 지음 / 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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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한 갑옷을 입고 움직이는 것처럼 살다가도
이처럼 감수성 움직이는 적시는 글을 읽게 되면

세상이 촉촉해진다.
세상이 촉촉해져.


카피는 곧 현대의 詩리니,
이 말이 이처럼 직격탄으로 와 닿는 경우 별로 없지..

긍정적이다 못해 윤리책처럼 느껴지는 작가의 말도
그다지 기분 나쁘지 않은 걸.

사람이 지적으로 이성적으로 진리를 찾고 더듬어 가도 말이지..
바로 앞에 있는 보다 소중한 것들에 대한 촉수가 무디어진다면..
그 무슨 소용 있을까? 
 

내 무딘 신경에
여름처럼 다가온 글귀들. 
 


어디에서 다시 한 번 크게 불러 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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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 울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한성례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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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 내린 뒤에 쏴하게 느껴지는 흙 맛이 밴 수풀 내음 같다. 젖은 몸이 마르면서 나는 냄새 같기도 하고. 달에 울다.의 문장은 향토성이랄까 그런 낌새가 짙게 느껴진다. 번드르르하게 빛나는 광기의 냄새도 나고. 읽고 나니 후각과 더불어 기온을 알아채는 감각이 함께 활성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후끈하게 달아오르다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오싹해지기도 한다.

육체성의 미학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몸의 미학. 이라는 말로는 좀 약하다. 육체성. 이 낱말이 달에 울다. 전체를 표상하는 것 같다. 비린내 나는 생선 껍질 옷, 사과, 야에코의 몸, 야에코 아버지의 주검, 무거운 눈(雪). 생각이 아니라 감각을 직접적으로 일깨우고 만다. 문장이 그런 식이다.

그래서 광기는 더 미쳐 보이고, 성애(性愛)는 더 자극적이 된다. 비비고 문질러댄다. 그런 문장이고 그런 서사다. 비애(悲哀)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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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구두
헤닝 만켈 지음, 전은경 옮김 / 뮤진트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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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구멍, 얼어붙은 바다 가운데의 섬, 집 안 개미집, 숲 속 연못, 해무(海霧) 속의 배. 반복되어 나오는 낱말과 이미지들은 내게 ‘우물’을 떠올리게끔 했다.

외할머니가 사는 동네 한가운데에 우물이 있었다. 정월대보름이었는지 추석이었는지 지금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어느 날 밤, 우연히 우물을 내려다 보게 되었다. 그 밑바닥에 물에 비치는 보름달이나 별이 보였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우물 한가운데 일렁이는 짙은 어둠이 친근하면서도 기이하게 무서웠던 기억은 뚜렷하다. 이것은 명징하게 기억하는 어렸을 적 몇 안 되는 이미지 중 하나다.

십여 년이 흐른 후 누나가 천안의 성정동에 유아복 가게를 차렸을 때, 나는 그 동네 이름에서 뭔가를 느꼈다. 성정동의 성정은 星井이었다. 별 우물. 깊은 바닥의 우물과 높은 하늘의 별. 상반된 듯 모순된 듯 보이면서도 기이한 대칭으로 짝을 지은 그것은 어렸을 적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면서 이전의 이미지에 뚜렷한 이름까지 지어주었다.

그때쯤 만난 작가가 무라카미 하루키다. 하루키의 소설에는 거의 언제나 ‘우물’의 이미지가 주요하게 반복되고 있다. <<태엽감는 새>>에서는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고 다른 작품들에서도 그 이미지는 빈번하게 나온다. <<1Q84>>는 아직 읽지 않았지만 두 개의 달이 떠오른다는 광고 카피를 처음 대했을 때 내가 떠올린 것도 다시금 우물 이었다. 하루키를 통해서 내 어릴 적 우물의 기억에.. 뭔가의 스토리가 덧붙여 졌고 녹아 들어 갔다. 그것은 고독, 평안, 회복이었으며 무엇보다 나 자신 이었다.

헤닝 만켈의 이 소설에서 만난 얼음 구멍과 섬과 개미집과 연못과 해무 속 배와 캠핑카와 日本刀는 나의 ‘우물’과 같았다. 하지만, 미처 내가 느끼지 못한 것을 작가는 더 끄집어 냈다. 그리움.

여기, 구멍과 대칭점에 있는 게 이탈리아 수제 구두다. 구두 자체의 의미와 선물로서의 의미가 동시에 덧붙여진다. 발 치수를 재는 데만 두 시간이나 소요될 만큼 정성을 다해 만드는 구두, 그런 구두를 수십 년간의 원망에도 불구하고 선물하는 루이제의 태도. 관심과 정성 그리고 용기.

휴. 너무 교훈적인 걸 떠올린 것 같다. 하지만 구멍과 구두. 이것은 별과 우물처럼 짝을 이뤄 멋지게 조응을 이루고 있었다. 내 ‘우물’은 또 다시 한 뼘 정도 자란 것도 같다. 그것만으로도 이 소설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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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구애 - 2011년 제42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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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 없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명동역의 지상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만난 여자아이. 할머니 손을 잡고 한성화교소학교 가방을 메고 노란색 외투에 초록색 신발을 신고 깜찍하게 웃는 아이, 내 딸로 삼고 싶을 만큼 귀여운 아이를 보고서야 이 소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설이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가 보였다.

현대의 ‘일’ 때문에 펼쳐진 그림이라는 점에서 알랭 드 보통의 에세이와 우연히도 공유되는 측면이 있었다. 알랭 드 보통은 일과 일하는 공간, 이뤄낸 것들의 지리학을 넓게 펼쳐 놓고 있었는데, 편혜영은 그 중 한 지역에 중독된 듯 맴돌고 있는 품세였다. 그곳은 동일성의 반복이라는 근대의 ‘일’이 갖는 가장 큰 특징이 개인의 내면에까지 미친 끔찍한 영향이 전장처럼 펼쳐진 곳이었다. 생화학무기에 당한 듯한 모습이 인물들의 저변에 기이하게 깔려 있었다.

불안과 공포.
끓는 냄비 속 개구리는 혁신을 거부하는 이들의 종말을 표현한 우화로 이름이 높다. 그 우화는 현실을 잘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데, 설사 물의 온도가 서서히 오르고 있음을 재빨리 눈치채고 펄쩍 뛰어 냄비 밖으로 나가려는 개구리가 있다손 쳐도 말이다. 사실, 그 냄비는 잠실종합운동장만 하다는 것이다. 뛰쳐나가고 싶어도 개구리의 능력으로는 역부족인 ‘구조’일 수도 있음을 이 우화는 놓치고 있다. 편혜영의 소설 속 등장인물과 우리가 현실의 개구리라면 모든 잘못이 개구리 자체에 있음을 말하는 것은 공허하기만 하다. 구조는 개체에 우선한다. 습식 사우나에 들어가 있는 모양,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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