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과 음악 말들의 흐름 10
이제니 지음 / 시간의흐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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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지나지 않은 어느 겨울날.
나에게 전달 되어진 양장노트 한 권.
잃고 싶지 않은 기억이 많아서 였을까?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이었을까......
영원할거라 여기듯 떠올릴 필요가 없었던 절망의 가까움.
그것이 쓰게 만들었을까?
하지 못한 말들이 너무나 많아서,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이 너무 많아서 그 많은, 모든 것들을 들려주기엔 어느 하나도 빠트려질 것이 두렵고 아쉬운 마음이 쓰게 만들었을까?

가벼운 무게 만큼이나 힘없이 흘려서 쓴 기록들을 보니 피하고 싶었던 ‘그 날‘이 다가오고 있던 것이였음을 가늠하며 그 순간 목구멍에 슬픔의 덩어리로 목이 메여 차마, 더는 읽지 못하고 덮은 양장노트를 가슴에 품고, 그럼에도 ‘기억하고 싶은 그 날들’을 난 알아야 했기에, 알고 싶기에 다시 펼칠 수 밖에 없었다.

두 눈 위로 펼쳐진 정사각형 때론 직사각형의 천장이 늘 마주할 수 있는 것의 전부인 것처럼, 나의 세계인 것처럼, 그렇게 느끼고 지냈을 그 ’비참함‘으로 농축된 나날을 겪었던 이들, 아니면 그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던 누군가들에겐 와닿을 수 밖에 없는 그 깊게 박힌 감정들을 이제니 시인의 첫 산문집 <새벽과 음악>에서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시베리아 여행 중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해 그녀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오래도록 누워 지냈다고 한다.
한 시절을 잘 건너왔다고 말하는 그녀에게서 슬픔과 절망이 배인 씩씩함이 느껴졌다. 바랄 수 없는 것들을 결국엔 내려놓을 수 있게 한 용기를 다시금 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정말 죽도록 노력했을 것이란 걸 알 수 있다.
기록하지 못할 수 많은 날들의 좌절과 고통만큼, 죽도록 노력했으므로, 그렇게 했기에 다시,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P. 20) 매번 돌아오는 봄이 지난날의 봄이 아니듯이. 매번 돌아오는 꽃이 지난 계절의 꽃이 아니듯이. 언어적 문맥 속에서 하나의 세계가 스스로 움직이며 날아오는 순간을. 그렇게 자기 개시의 순간이 활짝 펼쳐지기를 기다리면서. 자신을 옭아매고 있던 오래된 의미의 그늘을 지워내고. 한없이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추론의 언어로 다시 움직여가기를. 그런 의미에서 오늘 다시 새로운 봄이고 새로운 꽃이다. 언제까지나 어리둥절한 채로. 순진무구한 아이처럼 바라보면서. 오늘 나는 다시 봄을 모른다. 오늘 나는 다시 꽃을 모른다. 그리하여 어느 날 다시. 꽃의 또 다른 이름 앞에서 문득 울게 될 때까지.


켜켜이 쌓아가는 삶 속, 행복과 불행의 무게가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쳐서, 행복에 가려진 그늘과 불행이 막아놓은 빛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균형을 이루려고 할때, 오롯이 나의 생각에 집중했던 그 찰나를 기억하게 해주는 음악이 있다. 과정의 고통과 회복의 기쁨을 모두 떠올리게 만드는 음악.

책을 읽을 때 그 책과 어울릴만한, 듣고 싶은 음악을 들으며 읽는다. 그럼, 그 음악이 어디선가 흘러 나올 때, 자세히 기억나지 않아도 어슴푸레 느꼈던 감정의 조각 조각들이 떠올려지곤 한다.
그렇기에 그 책을 기억하고, 그 음악을 기억하고, 그 사람을 기억한다. 그러니 난 늘 기억하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다. 더 많이 기억할 수 있는, 떠올려 볼 수 있는 시간들을 가질 수 있으니까.(이 책을 읽을 때는 “Wilhelm Kempff”의 연주를 들었다)

(P. 57) 애초에 음악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니까. 자신의 내부에서 울려오고 있는 타고난 울음을 다른 누군가가 만들어낸 진동을 통해 내 속에서 다시금 실감하게 되는 것이니까.

(P. 61) 노랫말과는 무관하게 어떤 인물을, 이야기를 건져 올릴 수 있는데, 이것들은 아주 모순적이게도 바닥의 어둠과 천상의 환희를 동시에 품고 있다. 나는 이들이 어떻게 이런 깊은 어둠 속에서 가장 환한 빛에 이를 수 있는지, 어떻게 그 희미한 불빛으로 어둡고 지친 누군가를 건져 올릴 수 있는지 묻는다. 당신은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죽음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일어나, 비틀거리면서 일어나, 내게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느냐고, 나는 묻는다.


늦은 새벽에 듣는 음악에서 타고 흘러오는 ‘그 때의 기억들‘이 있는 사람들의 말해질 수 없는 ‘그 슬픔’을 담고 있어서 좋았다.
어떤 책은 저자가 말하려는 의도를 파악하고 싶게 하지만 어떤 책은 그 사람의 인생을, 생각을, 내 삶에 덧대어 정리되지 않은 솔직한 내 감정들과 맞닿은 글에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케 한다. 이 책은 후자에 속한다.

강요받지 않는, 요구하지 않는, 그래서 불편함 없이, 조바심 없이, 그녀가 보내는 따뜻한 손길에, 그 다정함에, 그 배려에 난 너무 좋았다. 때론 책을 읽다가 쏟아지는 낱말들에 길을 잃을때가 있다. 그럴때마다 나의 그릇이 다 담아내지를 못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 측면으로, 이 책에서 나는 다정함과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빛나는 낱말들이 천천히, 잔잔하게, 나와 속도를 같이 해주기 때문이다. 쉼표의 갯수만큼 천천히...천천히...
사람마다 흘러가는 시간이 다르기에, 창문을 열어 어두운 방에 빛을 들이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는 속도가 다르기에, 그래서 그것을 알아주는 듯, 겪어봤기에 조금은 안전하게 일어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던, 그 마음이 나를 감동시켰던것 같다.

(P. 77) 내 손목시계는 떠나왔던 곳을 그대로 가리키고 있었다. 잊고 싶은 것들을 그대로 가리키고 있었다. 잊어서는 안 되는 것들을 그대로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내 시간을 그대로 두기로 했다. 이제부터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 보게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우리는 앞으로 앞으로 걸어갔다. 과거를 향해. 우리가 있었던 곳을 향해. 우리가 놓여 있었던 빛을 향해. 어둠을 향해.

(P. 106) 어제의 너는 죽고 싶었는데 오늘의 너는 내일을 계획하며 한줄 더 써내려간다. 작고 희미한 가능성이 되어. 이 봄의 새싹은 녹색이 아니라 검정이라고 쓰면서.


이 책을 소중한 사람들 머리맡에 놔두고 싶다.
잠들지 못하는 힘든 밤, 위안이 되어줄만한 당신이 좋아하는 곡을 들으면서, 이 순간만큼 이라도 아무 부담 느끼지 말라고.
고요한 이 새벽을 쓸쓸하고, 외로운 마음 못 느끼게 해주고 싶은 마음을 담아 그렇게 놔두고 싶다.

다시 빛나는 얼굴로 만나자며.

(P. 224) 도착하는 순간에야 알 수 있는 것을, 그 무엇을 기다리면서. 매일의 책상 위에서. 삶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흐릿한 믿음에 의지한 채로, 모든 순간을 다시 의심하고 부정하면서. 알고 있는 이름을, 얼굴을, 표정을, 색깔을, 소리를, 거리를, 공간을 잊고. 마치 처음 본다는 듯 이 세계를 바라보면서. 손가락과 심장으로. 순간속에서 순간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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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하나의 사건을, 돌이킬 수 없다라는 뼈아픈 감정 그 자체를 깊이 체화한 사람의 내면과도 닮은 채로. 너는 글쓰기를 닮은 몸짓으로 걷고 걷는다. - P104

그러니까 너는 이제 어디든 머물러도 좋고 어디로든 떠나가도 좋다. 나아가도 좋고 되돌아가도 좋다. 어느 쪽으로든 열려 있는 길을 굳게 껴안으면서 걸어왔고 걸어왔으므로. 네가 껴안은 것은 이전과 이후를 품은 오늘의 너 자신이었으므로. 어제의 너는 죽고 싶었는데 오늘의 너는 내일을 계획하며 한 줄 더 써 내려간다. 작고 희미한 가능성이 되어. 이봄의 새싹은 녹색이 아니라 검정이라고 쓰면서.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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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을 바라보며 왼쪽을 바라보며.
오른쪽과 왼쪽. 그 사이의 공백을. 그 속의 심연을 바라보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릴 때. 그 이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릴 때. 다시 그 이전. 오른쪽을 바라보다가 왼쪽을 바라보려는 그 사이에. 그 이전. 왼쪽을 바라보다가 오른쪽으로 바라보려는 그 사이에 그 사이와 사이에. 그 사이와 사이의 사이 사이에.
물빛은 아름답겠지. 물빛은 아름답고 쓸쓸하겠지. - P25

패터슨이 무언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듯이 직관적으로 바로 써 내려가는 것은, 그가 버스를 운전하면서, 산책을 하면서, 늘 오가는 거리를 걸으면서, 그렇게 일상을 살면서, 무언가를 의식적으로, 그러나 무의식적으로, 내면으로부터 작동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저 깊은 마음의 눈으로, 늘 삶의 구석구석을 면밀하게 보고 듣고 생각하고 발견하고 연결하고 다시 낯설게 보면서 세계를 확장시켜나가기 때문이다. - P52

노랫말과는 무관하게 어떤 인물을, 이야기를 건져 올릴 수 있는데, 이것들은 아주 모순적이게도 바닥의 어둠과 천상의 환희를 동시에 품고 있다. 나는 이들이 어떻게 이런 깊은 어둠 속에서 가장 환한 빛에 이를 수 있는지, 어떻게 그 희미한 불빛으로 어둡고 지친 누군가를 건져 올릴 수 있는지 묻는다. 당신은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죽음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일어나, 비틀거리면서 일어나, 내게뚜벅뚜벅 걸어오고 있느냐고, 나는 묻는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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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창밖으로 흰 눈은 끝없이 내려앉았고. 마치 꿈결처럼. - P14

잊지 않기 위해서. 잃지 않기 위해서. 무언가 기억하기 위해서. 무언가 간직하기 위해서. - P17

결국 쓴다는 것은 자신이 익숙하게 알고 있는 단어 속에서 각자 자신만의 고유한 슬픔을 발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자기가 가진 지극히 단순한 낱말 속에다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또 다른 소리와 의미를 다시 새롭게 겹쳐 새겨 넣는 것이라는 사실을. - P19

자기 개시의 순간이 활짝 펼쳐지기를 기다리면서. 시의 몸을 입은 언어가. 시의 혼이 흐르는 언어가 자신을 옭아매고 있던 오래된 의미의 그늘을 지워내고. 한없이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추론의 언어로 다시 움직여가기를. 그런 의미에서 오늘 다시 새로운 봄이고 새로운 꽃이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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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 성년의 나날들, 박완서 타계 10주기 헌정 개정판 소설로 그린 자화상 (개정판) 2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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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야 할 ’기록‘을 담고 있다.

짊어져야 할 무거운 삶의 짐을 지탱해 줄 바닥짐 하나 없는 소녀티를 막 벗은 스무살 처녀. 가족들과 얼기설기 엮인 실타래처럼 불안한 마음을 식량 삼아 감내해야 했던 비현실적인 진짜 이야기.

(P.56) 오로지 배고픈 것만 진실이고 그 밖의 모든 것은 모조리 엄살이요. 가짜라고 여겨질 정도로 나는 악에 받쳐 있었다.

(P. 61) 지난 여름의 전쟁이 박살내고 지나간 자리가 별 없는 밤 하늘을 배경으로 태고의 폐허같은 괴기하고 비현실적인 선을 시커멓게 드러내고 있었다.


식구들 먹여 살리기 위해 올케와 함께 남의 집 담벼락을 넘어 세간살이를 들쑤시며 먹을 것을 찾는 ‘나’는 밀가루 건더기 듬성듬성한 멀건 수제비국 부족하게 나눠 먹으면서 머릿속으로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당장에 식구들 배곯지 않는 ‘내일’이 간절하다. 지긋지긋한 사상이며 이념이며 다 무슨 소용인가.

한 고비, 또 한 고비.
단 하루도 맘 편히 지낼 수가 없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 하는 세상 속에서 앞날의 대한 불안감은 줄어들지를 않고 서로 색깔이 다르고 뜻이 다르다는 이유로 총구를 겨누고, 줄을 그어 버렸으니 우린 맥없이 굴복할 수 밖에 없었다.

(P. 91) 북으로 난 국도 위로 퍼부어대는 폭격과 기총소사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움직이는 거라면 쥐새끼 한 마리도 놓치지 않을 기세였다.

(P. 98) 가장 바람직한건 우리가 자는 사이에 소리없이 전선이 우리 위를 지나가서 밤 사이에 바뀐 세상을 맞을 수 있는 거였다. 우리는 어디서 밤잠을 자든 낮잠을 자든 이런 소망이 자는 사이에 이루어지길 빌면서 잠들곤 했다.


각자의 근심과 한숨을 삼키면서 내남없이 서로 내뿜는 형체없는 그림자같은 불행의 냄새로 가득 한 곳에서도, 인생은 덧없음이 아니라는 희망을 준 사람들의 온정이 전쟁과 분단이 훑고 간 상처를 잠시 잊게도 하고, 또 더욱 경멸하게도 만들었다.

(P. 184) 세상만 자반뒤집기를 안 하면 사람들은 어떻게든 적응하고 먹고 살게 돼 있었다.


뭐랄까, 희망 끝자락에 ‘딱‘ 붙어서, 이제는 조금씩 그녀와 가족들에게도 살아가는 힘 얻을 일이라도 생기려나 하는 ‘꽃망울‘을 본 느낌이랄까.
향토방위대에서 만나 함께 했던 언니에게 취업자리를 부탁해서 얻게 된 미군 피엑스 파자마부를 다니며 밥벌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첫 월급 봉투 당당히 내 놓았을 때 그 벅찬 감정이란...

(P. 226) 나는 아주 오랜만에 내 안에서 삶의 의욕이 쾌적하게 기지개를 켜는 걸 확실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것 같아도 난 이제 스물한살이었다. 미치게 젊은 나이였다.


가늠도 할 수 없는 삶의 모서리 만큼 일지언정 6.25 전쟁이 쏟아붓고 간 그 이후의 삶이 궁금했다.
살아 남는 것이 중요했고, 먹고 사는 것이 급급했으므로 , 오빠의 ‘죽음‘에서조차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없었던 그 한 서린 날들 속에서 ‘도대체 어떻게 살아냈을까?’하는 참혹함과 동시에 경외심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생전 처음 가 본 ‘스낵바’ 이야기에는 나도 같이 콜라와 팝콘을 어석어석 씹고 싶은 신기함 가득 한 즐거움을 함께 느꼈다.
거친 말도 시원시원하게 쏟아내며 이야기 보따리 잔뜩 이고 온 어느 입담 좋은 어르신 같았던 박완서 작가님의 1951년 1.4 후퇴부터 1953년 결혼까지의 시기를 담은 이 책에서, 나로썬 상상할 수 없는 거친 그때의 삶도 ’살아낸‘ 힘은 결국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 이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세상은 그녀에게 아프라고 던지는 돌덩이와 함께 ‘냉소’와 ‘환멸’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당찬 모습으로 꿋꿋하게 삶을 살아가는 강인함을 보여주었다.

(P. 7) 내가 살아 낸 세월은 물론 흔하디 흔한 개인사에 속할 터이나 펼쳐 보면 무지막지하게 직조되어 들어온 시대의 씨줄 때문에 내가 원하는 무늬를 짤 수가 없었다. 그 부분은 개인사인 동시에 동시대를 산 누구나가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고, 현재의 잘사는 세상의 기초가 묻힌 부분이기도 하여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펼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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