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2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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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우리를 잊을 겁니다. 이렇게 바보 같은 삶을 살다가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보면, 삶에는 사랑 이외에 그 어떤 것도 없는 것만 같아요.”

카(Ka)는 어쩌면 불행을 선호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맹목적인 투쟁과 시련만 존재하는 곳을 벗어나 사랑하는 이펙과 프랑크푸르트에서 그들만의 둥지를 만들어 사는 것이 인생의 최대 목표가 되어버린 그에게 행복에 대한 희망은 이내 다급함과 불안함으로 다가왔다.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고향을 떠나 독일에서 십이 년 동안 망명 생활을 한 영향일까.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정적을 주는 눈도 어느새 그치듯, 그 어떤 행복도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카는 과분하게 여겨지는 행복보다는 불행을 공유하며 자신이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안정감을 바랐다. 그럼에도 행복을 갈망하며 가족과 함께 집에서 평온함을 느끼는 모습, 극장에 가서 소시지를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시는 일상의 잔잔한 행복을 상상해 본다. 이런 낙관적인 마음으로 또 잠시 마음을 놓은 카를 나는 그저 말없이 바라본다. 이해할 수 없는 충동에 휩쓸리고, 불신과 과도한 망상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카를 바라본다. 그리고 카 또한 자기 행복을 구경하는 사람처럼 바라본다. 시를 쓰는 자기 손을 다른 사람의 손인 것처럼 바라본다.

순수함과 낭만으로 여겨졌던 눈이 서서히 지겨워졌다. 사냥감을 노리는 매처럼 카르스 도시에 즐비해 있는 사복 경찰도 마찬가지고, 군용 트럭에서 내린 정보국 요원들이 사람들과 따뜻한 차를 마시고 있는 카페에 언제라도 들이닥쳐 신분증을 요구하며 나를 페인트가 벗겨진 콘크리트 담벼락으로 세우는 상상을 하는 것도 끔찍하여 생명력을 잃은 유령의 도시를 이제 그만 벗어나고 싶었다. 극단적인 이념 싸움과 끊이지 않는 논쟁, 겉돌기만 하는 사랑, 이 모든 것이 갑갑했다. 정체성 따윈 완전히 잊힌 사람들의 죽음은 늘 일어나는 일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서서히 연극을 지루하게 바라보는 관객처럼 말이다. 희망이 떠오르지 않아서였을까. 그런데도 카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터키의 카르스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홀로 지내온 카의 삶을 천천히 밟아가며 그가 전하는 삶의 의미, 외로움, 쓸쓸함, 수치심, 두려움…. 위험으로부터 인간이라면 느낄 수밖에 없는 카의 공포감은 측은하리만큼 솔직했고, 그런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모습은 참 안타까워 보였다.

청년 시절 카에게 가장 숭고한 정신적 영광은 지적이며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죽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이념을 위해 고문을 당하고 죽어 나간 사람들을 보았다. 가난에 허덕여 은행을 털다가 총격전에서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 제 손으로 폭탄을 터뜨리며 죽어 나가는 사람들도 보았다. 헛된 죽음을 맞는 사람들에게 세상은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그런 사회의 일원이었던 카는 무엇을 할 수 있었고 어떻게 살아가야 했을까. 같은 영혼을 공유하며 행복하게 살았던 카르스인들이 외부의 힘에 이끌려 자신들의 사회를 분리하고, 쿠데타가 벌어지고 학살이 되살아나는 이때, 독일에서 살다가 다시 카르스에 온 카를 사람들은 의심했고, 스파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처럼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가도 사랑하는 이펙과의 만남이나 길거리에서 마주친 고통스러운 세계와 전혀 다른 공간에 와 있는 것처럼 순수함과 천진난만함으로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금세 사랑과 연민의 감정으로 마음속 희망의 한 줄기를 발견하는 카의 모습을 보자니, 왜 이토록 그는 다양한 감정의 기복으로 하루의 일상을 맞이해야만 했는가 하는 안타까움이 어느 순간 비탄의 감정에 가까워졌다. 시대적 아픔을 뚫고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이 무엇인지 찾고자 하는 그의 고민이 외로운 분투로 다가왔던 것일까.

행복에 겨워 거리를 걷고 싶었다. 아타튀르크 대로에서 왼쪽으로 돌았다. 찻집을 꽉 매운 사람들, 켜진 텔레비전, 구멍가게와 사진관을 보면서 카르스 개천까지 걸었다. 철교에 올라가,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달아 말보로 담배 두 대를 피우며 프랑크푸르트에서 이펙과 나눌 행복을 상상했다. 개천의 맞은편에 있는, 한 때 카르스의 부자들이 밤마다 스케이트 타는 사람들을 구경했던 공원에는 끔찍한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p. 93)

사랑 앞에서도 소유욕과 좌절감이라는 양가감정에 빠지는 카에게 이펙은 어떤 존재일까. 사랑이 절실하긴 한 걸까. 내가 느끼기엔 누군가 안아주고 쓰다듬어주길, 불안하게 떠도는 자신의 영혼을 꽉 붙들어주길 바라는 간절함이 더 커 보였다.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새로운 인생과 오랫동안 지속될 행복의 문턱 앞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 카의 혼란스러움을 내가 다 알 수는 없지만, 행복에 빠지면 평범한 사람이자 평범한 시를 쓸 수밖에 없게 된다고 생각하는 시인 카는 오랜 세월 내면에 쌓인 상처와 아픔에 갇힌 사람처럼 보였다. 그리고 행복에 대해 집착하는 사람처럼 보일 만큼 자기중심적 욕망에서 사랑과 증오의 감정을 끌어올리며 써 내려간 그의 시는 불행의 감정에 더 가까울 것 같다.

아무것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자신감과 이성을 매우 혼란스럽게 하는 결핍, 질투 그리고 후회가 있었다. 고통의 이유는 짐작할 수 있었지만, 어떻게 그렇게나 치명적인지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p. 225)

격동의 터키 현대사 안에 담긴 혁명, 사랑이라고 하면 머릿속에 대충 읽히거나 연상되는 무언가가 떠올라 자칫 지루하거나 고리타분하게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특히, 쿠데타 세력과 민중을 다룬 부분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카르스 내 이슬람주의자와 세속주의자 간의 갈등과 대립이 너무나도 지긋지긋한 감정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줄도 쓰지 못했던 시를 카르스에 와서 쓰게 된 카가 평범한 독자인 나를 당장이라도 똑같이 그가 탄 버스를 타고 그가 묵은 호텔에서 창밖을 내다보고 싶게 만들었다. 빈곤에 허덕이는 실업자들의 우울함으로 가득 찬 지독히 추운 도시의 거리에서 바라본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희망을 발견한 그에게 손이라도 흔들어주고 싶었다. 아이들이 내뿜는 순수함에 생의 약동감을 느껴보는 것도 잠시, 뺨을 스치는 매서운 바람과 하염없이 내리는 눈이 수북하게 쌓인 길을 느릿하게 밟으며 떠도는 그의 뒷모습을 따라가 본다. 꾸밈과 사려 없이 내면의 감정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며 사랑을 갈구하고 확인하고 싶었던 그가 현실 세계를 감당하기 위한 선택, 우리는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이 책에 완전히 빠져서 읽게 된 이유는 차곡차곡 쌓여가는 서사도 한몫했지만, 조용한 풍경 속에서 번지는 듯한 근원적인 슬픔과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카의 애처로운 영혼이 계속해서 마음 한구석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사랑과 상처, 그리고 회복의 연결이 순탄치만은 않은 내면의 그림자를 따라가면서 고달픔과 함께 푹 절여진 감정, 사랑에 목이 말라 손길을 갈구하는 모습이나 불행에 닥쳤을 때 오히려 의연한 모습을 보이며 앞으로의 행복을 상상하는 눈물겨운 희망으로 고비를 넘기는 모습까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그리면서 깊은 내면을 연결할 수 있게 해주었다. 글쓰기를 위안으로 삼았던 사람들에게만큼은 내 마음이 누구도 풀지 못하게 꼭꼭 잠가 놓은 잠금장치가 풀어지듯 무장해제가 되어버리는 건 어쩌지 못하겠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해줄 만큼 훌륭한 소설이었다. 그래서 여운을 조금 더 오래 가두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고요히 내리는 눈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경이로운 지금, 이 순간이 멈추길 바라듯 말이다. 그래서 한 번씩 더 읽었다.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리라는 외로움에 한 줄 한 줄 글을 적어 내려갔을 카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며 더 정성스럽게 읽고 싶었다. 자신이 결점이 많고 죄가 크다고 여기며 모든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그럴 수만은 없었던 어느 한 시기를 살아낸 남성이 남긴 아릿함에 이끌려 따라가다 보니, 어느 쪽에 서지도 않고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마음만큼은 조금 알 것 같았다.

그가 내게 물었다. 의존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는 어느 날, 창문을 열어 내다본 바깥 풍경이 어떤 모습으로 비치고 있는지를. 그리고 카는, 상상과 기억 사이에서 길을 잃은 사람처럼 그쳐 버린 카르스의 눈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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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6-01-05 04: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곰돌이님 리뷰도 예술입니다! ㅎㅎㅎ

곰돌이 2026-01-05 14:02   좋아요 1 | URL
카와 카르스의 눈, 그리고 오르한 파묵까지 정말 책이 예술입니다! 푹 빠져 읽는 순간이 얼마나 좋았는지는 당연히 잘 아시겠죠?ㅎㅎ 이렇게 저와 잘 맞는 책을 조금 더 일찍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폴스타프 님의 영향이 매우 큽니다.

페넬로페 2026-01-05 10: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폴스타프님 말씀처럼 곰돌이님의 리뷰가 너무 좋습니다. 이 책을 읽지 않았지만 마치 이 글로 읽은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예요. 눈위를 걷는 느낌도 들고요. 터키의 현대사도 우리 나라와 비슷하게 격동의 시대를 지났네요.
익숙한 서사도 독자에게 감동을 주고 새롭게 읽힐수 있게 하는것이 작가의 역량인 것 같습니다.

곰돌이 2026-01-05 14:01   좋아요 2 | URL
많은 책을 읽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한 책을 다 읽고 나면 얼른 다른 책으로 넘어가곤 했는데, 이 책은 평소보다 여운을 좀 더 오래 가두고 싶은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리뷰도 정성을 담아 남기고 싶었습니다! ㅎㅎ 인생에서 행복했던 순간을 짧게 끝내버리는 이유가 과분한 행복을 견딜 수 없어서라고 대답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숙명적 우울에 갇힌 것 같아 제 마음을 자꾸 붙들더라고요. 스포를 피하려고 많은 이야기를 드러내지 않았지만, 굉장히 매력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책읽는나무 2026-01-06 0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예술입니다.3
오르한 파묵은 예전에 <내 이름은 빨강> 그 책을 읽은 게 다인데 그때 그 책도 엄청 강렬했었던 기억이 남아 있네요.
이 책은 더한 감동이 있는 것 같네요.
겨울인 지금 읽어야 더 좋을 것도 같구요.
곰돌이 님의 감동이 고스란히 전해져 옵니다.

곰돌이 2026-01-06 07:06   좋아요 1 | URL
원래 <내 이름은 빨강>을 먼저 읽어보려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겨울이기도 해서 몇 장만 읽어보려고 책을 들었다가...... 놓지를 못하게 되었어요 (쿨럭) 이미 오르한 파묵의 책을 접하셨으니 이 책 또한 굉장히 좋게 읽으실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