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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나무 숲
권여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3월
평점 :
쉬는 날이 되면 반드시 늦게까지, 정말 늦게까지 잠만 자야지라고 생각하지만, 기계처럼 잠에서 깬 나는 베개에 눌려 찌그러진 눈을 하고는 아직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않아 굼뜬 손으로 핸드폰만 연신 뒤적거리다가 차라리 이럴 바엔 책이나 읽는 게 낫겠다 싶어서 독서등을 켜고 책상에 앉아 7편의 중단편으로 엮인 권여선 작가님의 <비자나무 숲>을 펼쳤다.
기획출판을 전문으로 하는 「팔도기획」 출판사에서 일하는 이십 대 여성 ‘김 작가’는 읽는 내내 정이 1도 가지 않았던 홍 팀장 밑에서 몇 명의 선배 작가와 함께 자비 출판을 원하는 고객의 요구에 맞게 대필하거나 원고를 수정하고 가필하여 최소한 출판 가능한 수준으로 만드는 일을 한다.
어느 날 한 여성이 원고를 가지고 사무실을 방문했다.
출판 의뢰를 하러 온 줄 알았더니, 대필 같은 아르바이트를 원해서 왔다면서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마침 급하게 마감해야 할 작업도 있어서 ‘윤 작가’라 불리며 투입되는데, 근무를 막 시작한 직원의 모습으로 보기에는 말문이 막힐 만큼 대쪽 같은 자기만의 색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다들, 이건 뭐지?라는 표정일 수밖에 없었다. 대놓고 안 한다, 못 한다 소리 한 번도 못 해보면서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눌러 담고 지냈던 김 작가는 뒤에서 윤 작가에 대해 숙덕거리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껴서 눈치껏 한마디 얹어보고 앞으로 닥칠 일들이 아득하고 험난해 보이기만 한 그녀의 당당함에 잽싸게 고개만 돌릴 뿐이었다.
나는 더듬더듬 중얼거리며 몹쓸 개를 끌 듯 힘겹게 길쭉한 삼각형의 꼭짓점을 계단 밑으로 질질 끌고 내려왔다. (p. 34)
누울 자리 봐 가며 발 뻗는다고 기대감 따위 저 깊숙한 곳에 넣어두어야만 하는 곳의 기분 나쁜 냄새를 단박에 알아내고 헛헛함에 친숙해져야 하는 사람이었던 김 작가와 달리 매사 결기 있게 대처하는 당찬 윤 작가의 말과 행동에 잠시 현실을 떠올려봤다. 분명, 직장 상사와 선배를 앞에 두고 물과 기름처럼 융화되지 않는 윤 작가의 태도에 나머지 직원들은 괜히 눈치를 살피며 양쪽 귀만 엄청나게 커진 채로 업무용 PC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말 없이 손만 괜히 바빠지고, 당사자 못지않게 다들 온몸이 뻐쩍 지근해지고 있을 게 눈에 훤하다. 아니, 그런데 윤 작가에게 인내심이라도 베풀 듯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지는 것이 눈에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한다!! 당연히 며칠 못 버티고 그만둘 거라 생각했던 김 작가의 예상과 모든 것이 달랐던 것이다.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어긋남은 점점 무력감을 주고, 불합리함 속에서도 온몸이 물 먹은 솜처럼 추욱 내려간 듯 책상에 고개를 처박고 지내온 김 작가에게 윤 작가의 뚜렷한 신념은 마음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리게 만든다.
5년이나 함께 살다가 홀연히 떠나 이제는 요양소에서 지내는 ‘심 여사’를 만나러 간 ‘오 여사’의 이야기를 담은 「은반지」는 다사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기에는 꽤나 사연이 있는 듯한 두 사람의 관계를 보며 멍하니 상념에 빠진 채 나 자신에게도 현실을 제대로 보며 살아왔는지 질문하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어디 아픈 데는 없어요, 심 여사?”
“아픈 데가 왜 없겠어요? 이도 시원찮고 무릎도 아프고 그렇죠, 오 여사님은요?”
그 말에 오 여사는 반색을 했다.
“아이. 나도 그런데. 나도 무릎이 안 좋아서 한동안 병원다니느라 고생했어요. 이는 겁이 나서 아직 못 가봤고. 심 여사는?”
“저는 그냥 참아요. 늙어서 아픈 걸 어쩌겠어요?”
심 여사의 말이 자신에 대한 비난처럼 들려 오 여사는 기분이 좀 상했다.
“늙어서 아프든 젊어서 아프든 아플 때 가라고 있는 게 병원인데 안 가면 자기만 고생이지 뭐.”
“그건 그렇죠. 형편 따라 하는 거죠.”
내 집에서 5년이나 살다가 갑자기 떠나버린 심 여사가 괘씸해도 서울에서 꼭두새벽에 출발해 몇 시간 걸려 이놈의 요양소까지 얼굴 보러 와줬거늘, 어째 말끝마다 어깃장 놓는 듯한 심 여사 때문에 오 여사는 기분이 상했다. 그런데 두 여성의 대화는 점점 음침하면서도 오싹한 기운을 만들어내 잔잔한 수위의 스릴러 영화 한 편을 보는 것만큼이나 숨죽이며 몰입하게 만들었다. 절대 잊지 못할 거라 다짐했던 순간조차 서서히 기억에서 지워지듯, 혹시 오 여사가 미처 알지 못한 채 흘려보낸 세월 속에 심 여사만 아는 기억이라도 있는 걸까?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라는 궁금증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심 여사의 증오와 원망에 대한 두려움에 압도된 그 순간 오 여사의 머릿속을 헤집는 말들은 이제서야 아귀가 딱딱 들어맞게 되는데...
사랑하는 이가 떠난 뒤, 올려다본 하늘은 어떤 색일까.
자신이 마주치는 삶에서 잊히는 것의 애달픔과 통증이 에워싸고 있어 아무런 색도 느낄 수 없었을 한 여성이 사랑하는 애인이 죽은 후, 오랜만에 그의 동생과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제주도로 향한다. 같이 근무하는 미영 씨의 생일 선물로 고르는 ‘비니’ 하나도 어떤 것으로 정할지 꽤 망설인 그녀가 죽은 애인의 동생의 전화를 받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제주도행 표를 예매한 것이다.
서로의 만남 자체가 슬픔을 상기시키는 것이 될지 모를 「끝내 가보지 못한 비자나무 숲」에 등장하는 세 사람이 겪고 있는 아픔은 단 한 마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수천, 수만 가지, 아니 그 이상. 어쩌면 단 한 마디조차도 표현할 수 없는 그 아픔 속에서 아직은 회복되지 않은 이들에게 나는 희미한 가능성마저 접어둘 순 없었다. 하늘에서 반짝이는 햇살을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어 내려갔다. 비통한 마음을 조금 거두고 올려다본 하늘이 희끄무레한 잿빛이어도 말이다.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만들어낸 빈 공간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견디는 것만이 전부인 사람들이 보여주는 변화된 일상과 슬픔을 진부한 말로 채워 넣지 않아서 좋았던 것 같다.
사방에 부딪혀 깨진 달걀처럼 곤죽이 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눈을 뜨게 될 것이고 숨을 쉬게 될 것이고 그때쯤이면 비자나무 숲 한가운데에 있을 것이다. (p. 117)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많은 선택의 갈림길 앞에 놓이게 된다.
스스로 내린 결정으로 어긋나버린 인생을 포장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오히려 극단적이고 불쾌한 전개를 통해 운명의 폭력성을 보여준 「길모퉁이」와 「소녀의 기도」에는 불행한 삶 안에 갇혀 기다리는 사람이라고는 사채업자와 빚쟁이, 그리고 구역질 나는 완전 건덕지 같은 새끼(p. 160)뿐인 여성들이 등장한다.
평생 악몽처럼 따라붙을 자신의 잘못된 선택 앞에 새로운 삶을 살기를 바라는 욕망이 만들어 낸 상상 속 내 모습을 움켜쥔 채, 길모퉁이를 지나 무엇이 기다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애먼 길을 돌고 돌며 살아가야만 하는 이를 향해 자유의지로 내딛은 발걸음의 의미를 스스로 알고 있느냐고 물어본다면, 인간이 증오와 원망의 마음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운명을 탓하는 것이고, 살아남기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길로 그 운명이 밀어 넣었다고 답하는 것만 같았던 두 작품은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없었다. 특히 「소녀의 기도」는 불행, 폭력, 탐욕이 오물과 뒤범벅되어 나락으로 빠지는 듯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재생이라니. 그건 간단한 만큼 불가능한 개소리였다. (p. 148)
그리고 어떤 길이 펼쳐질지 모를, 아니면 알기에 더욱 지독하고 쓰라린 그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담은, 읽고 난 뒤 가장 오랫동안 머릿속에 머물렀던 「꽃잎 속 응달」은 책 속의 문장으로 줄거리를 대신한다.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제 딴에는 잘해보려고 온갖 발버둥을 쳤지만 결국 돌아보면 온 청춘을 다 바쳐 망조가 드는 길로만 숨 가쁘게 치달려 온 셈이었다. 자신이 가려던 곳과 전혀 다른 곳에 와버렸음을 실감하는 이 순간, 이 절대적인 낯섦은 차라리 이곳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녀가 애초에 가려던 곳에 대해 느껴지는 것이었다. (p. 227)
그 시절이 영영 가버렸으며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엄연한 사실이 과연 기쁜 일인지 슬픈 일인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p. 229)
지나온 삶을 기억한다는 것은 선물과도 같은 기쁨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치욕스러움이자 끔찍한 고통일 수도 있다.
이 소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착각에 빠져 살아왔을지 모를 삶을 그대로 흘려보내지 않고, 치욕스러움이자 끔찍한 고통일 수도 있는 조금은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감춰진 기억을 집요하게 건져 올려,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내가 가고 있는 길에 대한 의문, “나는 도대체 어디로 가려고 했던 것일까?”라는 물음에 내 삶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게 했던 것 같다.
아직은 삶을 더 많이 살아보고 난 뒤에 삶에 대해 말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분명하게 느꼈던 것은 계획한 대로, 의도한 대로 살아지지 않는 삶, 허무할 수도 있고 절망적일 수도 있는 그 삶을 붙들고만 있는 것이 과부하가 될 때, 그 마음을 헤아려 주는 것은 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단순하지 않은 관계 속에 후회가 가득한 기억들만이 존재하더라도 조바심 내지 말고, 괜찮다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모두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삶, ‘끝내 가보지 못한 비자나무 숲’을 향해 걸어가고 있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