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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지키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평점 :
죽음을 목전에 두고 기울어져 가는 한 남자.
82년의 세월 동안 숱하게 많은 이들을 떠나보내 이제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도 강인함과 차분함을 갖추고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침대에 몸을 늬운 채, 자신을 지켜보는 수도사들의 어렴풋한 형체를 향해 버둥거리며 무언가를 말하려 한다.
삶을 채워 준 모든 기쁨과 비극에서 이제는 아스라이 멀어져가고 목소리마저 힘을 잃고 희미해져 가지만, ‘내 나라’ 이탈리아의 건물과 사람들의 형체만큼은 점점 선명해져 갔다.
왔던 길을 되짚고 묻힌 시간을 되새기며,
그가 들려주려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태어날 때부터 누구도 자신에게 별다른 희망을 걸지 않았을 거라는 그의 말이 아직 윤곽이 드러나지 않아 흐릿한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나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1904년에 프랑스에서 태어난, 이탈리아인 ‘미켈란젤로 비탈리아니’는 공방을 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 돌에 대한 애정이 무척 깊다. 미켈란젤로처럼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은 이름보다는 부모님께서 붙여준 별명 ‘미모’를 더 좋아했기에 앞으로도 사람들에게 미모로 더 많이 불린다.
더 나은 생계를 기대하며 부모가 결혼 후 이탈리아를 떠나 프랑스에 정착했지만, 전쟁이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죽였다.
그 후, 가세가 기울어 조국도 아버지도 없이 이탈리아에 사는 조각가 삼촌인 ‘알베르토’에게 돈 봉투와 함께 맡겨진다.
(P. 32) 그 안에는 비탈리아니 집안의 저금이 거의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타국살이, 노동, 태양과 소금기에 그을린 피부, 여러 번의 재출발로 점철된 세월이 통째로 말이다.
열두 살짜리 아이가 홀로 기차에 올라 머지않아 만나게 될 거로 생각한 어머니와의 만남을 상상하며 전쟁냄새 가득 한 이탈리아에 도착한다. 날뛰는 세상을 버티며 살다 곧 만날 줄 알았던 어머니와 떨어져 지낸 세월이 20년이나 지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두 눈 활짝 뜨고 주변을 둘러보며 만족할 줄 알아야 했다.
난쟁이로 태어나 부모를 원망한 적 없듯이 말이다.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삼촌의 악질적인 폭력쯤이야, 전장에 추악한 짐승보다야 나을 테고 그가 손을 쳐들어 한 대 치려고 하면 다급하게 테이블 밑으로 몸을 숨기면 된다. 차가운 현실과 짙은 슬픔을 삼킨 무덤덤한 미모의 모습은 말 없는 흐느낌으로 번지듯 다가왔다.
주어진 시간을 있는 그대로 그저 품을 뿐이다.
불행을 받아들이는 데 한계가 없는 사람처럼 말이다.
다듬어지지 않은 단단한 돌을, 감정을 다스리는 재료로 삼아 지저분한 소음을 밀어내듯이 깎고 또 깎았다.
오롯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에 빠져들다가 어느새 멋있는 조각상을 탄생시키듯, 미모는 그렇게 스스로 자신을 완성해 나가고 있었다.
힘을 잃지 않고 나아가는 미모를 마음으로 응원해본다.
(P. 27) 나는 행복했고 여전히 내 앞에 놓인 그 모든 것에, 타고 올라가야 하고 나에게 맞게 깎아야 할 그 미래라는 덩어리에 취해 있었다.
이탈리아의 평화로운 소도시 피에트라달바에 도착했다.
미모가 삼촌과 함께 좋은 돌을 구하기 위해 갔던 그곳을, 나는 아이의 호기심 가득 한 눈빛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시선으로 숲의 가장자리에 우뚝 솟아 있는 저택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영롱하면서도 신비스러운 형체가 눈앞에 보였다가 사라진다.
고원지대에서 시원한 바람을 타고 맡아지는 오렌지와 사이프러스 향의 상쾌함은, 이 순간의 평화로움이 오래가길 바라는 희망을 품게 한다. 그러나 지중해 햇살이 자리를 비추는 따사로움과 불필요한 소리가 싹 걷어진 고요함을 앗아가는 대포들이 숨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1919년 여름, 전쟁은 끝났지만 경제가 무너지고 여기저기에서 폭동이 일어나 마을에서는 매캐한 탄내를 풍겼다.
한 때 사회주의자였던 무솔리니가 사회주의자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강한 이탈리아”에 대한 열망으로 권력을 더 가까이하면서 혁명적 폭력을 정당화했던 파시스트들의 폭력은 일상화되어갔다. 평화로운 천국, 피에트라달바도 불길을 피할 수는 없다.
(P. 289) 그 시절은 비겁함의 차지였다.
불어닥친 바람으로 깨진 조각상을 복원하기 위해 방문한 이탈리아 명문가 오르시니 가문의 저택에서 미모는 우연히 ‘비올라’라는 동갑내기 여자아이를 만나게 된다. 고착된 상식이 콘크리트처럼 단단하게 굳어 깨지지 않는 후작과 후작부인의 총명한 막내딸인 비올라는, 꿈이라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라 여겨 온 미모를 또다시 꿈꿀 수 있게 해준다.
(P. 199) 미모. 나는 네게 한계가 없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어. 위로도 아래로도, 큰 걸로도 작은 걸로도. 모든 경계는 만들어 낸 거야.
의식도 못 한 채 내뱉는 말들 속에서 누군가는 획득할 상처받을 기회를 조금도 내주지 않는 사려 깊은 소녀 비올라.
보통의 아이와 다른 난쟁이 미모의 체형, 자라온 환경, 그 아무것도 중요치 않고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를 첫 만남부터 친구로서 대했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자신의 키밖에 되지 않았을 미모에게 아버지의 서재에서 몰래 빼 온 책을 보여주며 지식의 황홀함을 아낌없이 나누었다.
비올라는 고루한 남녀 차별 의식 속에서 경계를 허물고, 한계를 두지 않는 세상을 바라며 훨훨 날고 싶었다.
그녀의 내면의 세계에 자신을 비춰보며 인식의 틀을 조금씩 깨트릴 수 있었던 미모는 비올라와 함께 빽빽한 숲 속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우정을 키워나갔고, 이들이 나누는 대화는 마치 순수한 감정이 담긴 아리아가 되어 퍼져 나가는 듯했다.
그러나, 작은 기쁨 뒤에 가려져 알아채지 못한 폭풍우가 어슬렁거리며 불길한 조짐을 내비쳤고 서서히 그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감정의 낙차를 드러내지 않고 살아온 미모는,
숨겨진 걱정과 슬픔으로 알 수 없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없이 벌어지는 수많은 시련을 겪었다.
쉽게 나타나지 않는 기적에 세상을 원망하거나 하소연할 시간도 갖지 못한 채 세상은 급진적으로 변했고, 미모는 자신이 가진 체형 때문에 쫓아가는 것조차 남들보다 몇 제곱은 힘들었을 거다.
그렇다고 현실을 피할 수만은 없다.
결핍 많은 한 사람이 멸시와 배제 속에서만 존재하면서도 꿋꿋하게 일어섰고, 다시 걸었다.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신이 그에게 멋진 얼굴과 체형을 주지 못한 미안함에 버티게 해 주는 묘약으로 준 천재적인 재능이 그를 일어서게 했을까?
누군가에게는 아주 당연하게 여겨질 만한 일어서고 걷는 행위가 미모에게는 가장 소중한 행위였다는 것을 부모님께서 알려주셨고, 그 가르침을 간명하여 태어나자마자 누구도 별다른 희망을 걸지 않았던 운명을 끝까지 저버리지 않고 나에 대한 믿음으로 일어서고 걸었던 게 아닐까.
하나도 아프지 않을 수가 없는 아픔과 고통은 어디로 갔을까?
미모는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비울 줄을 알았다.
아니, 태어날 때부터 만족하는 법을 배웠어야 했다는 게 더 정확할거다. 그럼에도 자신이 가진 서글픔을 딛고 아픔과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켜 결국에는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조각상과 창작품은 인생의 여정을 찬란하게 채웠다. 실로 대단한 의지이자 인간승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화려하고 반짝거리는 찬란함이 고뇌의 세월을 피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위험에 빠뜨리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거리를 유지하고 인간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일찍이 알려 준 비올라를 떠올리게 하는 순간과 마주하게 되는 일이 기어코 그의 삶을 관통한 것이다.
이탈리아의 예술적 화려함과 상류층 남자들의 부도덕한 생활에 너무 취했던 걸까. 조각상으로 이름을 날리며 부를 얻게 된 미모가 손목에 까르띠에를 차고 이 도시 저 도시를 다니며 지내는 동안, 부유한 삶과는 거리가 먼 미모의 오랜 친구들의 삶마저 잊고 지냈다.
그 시대를 고스란히 반영한 듯이 포착하기 어렵게, 치워져 있다가 뒤통수를 때리며 등장한다. 그것은 여성의 외침이었다.
(P. 414) 세상은 변하고 있고, 나는 아이들이 그런 변화에서 비켜선 채 살아가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가난한 집안에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밭일로 종일 시간을 보낸 남자의 인생에 가려져, 여성의 외침은 힘을 잃고 숨죽여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사회적 불평등과 동시에 여성으로서 겪어야 했던 고난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숨겨져 있었기에, 나마저도 거짓 약속과 처박힌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비올라의 목소리만 주목하느라 또 다른 여성의 목소리를 의식하지 못했다.
정말 아는 것만큼만 보였구나 싶어, 한쪽 가슴이 따끔하다.
어디선가 비올라가 나를 향해 소리칠 것만 같다.
(P. 495) 이 모든 게 당신 눈에 보이는 그대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겠지?
억압과 한계 너머의 삶을 향해, 자유와 꿈을 향해, 간절한 염원의 날개를 달고 혼란스러운 세상을 향한 날갯짓이 드넓은 세상으로 힘차게 날아오르며 비상하느냐 아니면 거칠게 끌어당기는 땅끝으로 추락하느냐와 같은 결과에서 잠시 한 발자국 물러나 본다.
그리고 ‘행동하는 것’의 가치를 생각해 본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등장인물의 인생이 필름처럼 지나간다.
열두 살 아이가 홀로 기차를 타고 이탈리아를 향해 갔을 때만 해도, ‘희망’을 안고 있었다. 프랑스에 남겨진 어머니와 곧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그 희망 말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사랑하는 자식의 재능을 지켜주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내 손으로 자식을 떠나보내야만 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종교적인 엄숙한 느낌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피에타>와 달리 미모의 <피에타>는 삶을 겪어본 얼굴을 한 마리아가, 두려움과 고뇌는 찾을 수 없는 미소로 아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 표정에서 읽힐 수 있는 ‘희망’은 미모의 바람이 아니었을까.
가끔 추천사에 기대했다가 실망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은 기대 이상이었다.
웅얼거리지 않고 당당하게 아름다움을 표현한 문장들에 나 역시도 마음껏 그 아름다움을 누려본 것 같다.
차분함 속 자연스럽게 녹아든 적당한 재치로 웃음 짓게 하는 소소한 즐거움이 있고, 실존했던 인물의 등장은 소설의 생명력을 불어넣어 줘서 읽는 재미를 더해줬다.
처음에 책 소개를 읽고, 예술과 정치가 섞인 이야기 속 신비로움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피에타 석상, 천재 석공, 자유, 투쟁, 수도원, 비밀, 유폐 등의 단어만으로도 머릿속에서는 어느 정도의 밑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는데, 막상 읽어보니 정말 놀라웠다.
이렇게나 풍성한 이야기를 담고 있을 줄이야.
며칠동안 잡고 있던 이 책을 놓는 것이 퍽 아쉽다.
그리고 맘 한쪽 편이 아려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