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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 3권 합본 개역판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2014년 12월
평점 :
전쟁터로 변한 도시를 떠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엄마 아빠와 떨어져 낯선 시골 할머니 집에 맡겨져야 하는 상황을 오롯이 이해할 수 있는 아이가 있을까. 정확히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이미 집안에 감도는 불안한 기운을 느낀 순간부터 이 모든것이 현실이 아니기를 바랐을지도. 그래서 헐레벌떡 뛰어나와 두 팔로 맞이하며 쌍둥이 손자들을 향해 “우리 강아지들”이라며 반겨주는 게 아닌, “개자식들”이라고 부르는 할머니를 마주하면서도 겁먹거나 눈물을 쏟지 않을 수 있었는지 모르겠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과 사람들이 너무나 현실 같지 않아서, 도저히 놀랄 수조차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정말 상처받지 않았는지, 놀라지 않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지극히 감정을 배제하고, 사실적인 묘사만으로 쓰인 글을 읽으며 추측할 뿐이다.
작년에 이 책의 앞부분만 대충 훑었을 때, 할머니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은 채로 덮었던 기억이 난다. 하도 입이 험하고 해도해도 너무한다 싶어서. 그런데 다시 찬찬히 읽다 보니, 지옥 같은 날들을 살아온 할머니의 드러나지 않은 삶을 자꾸 유추하게 된다. 내가 이 할머니에게 연민을 느끼게 될 줄이야. 그래도 이름 한 번 불러주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손자들에게 아픈 말만 쏟아냈을까 싶다. 그런데 이 녀석들이 한 번쯤 대들 법도 한데, 대들기는커녕 오히려 할머니가 고운 말 한마디 없이 자신들을 찔러대는 이유마저 이해한다는 듯 굴어댄다. 아니지, 할머니와 피붙이 손자의 관계라기보다는, 지옥 같은 세상을 먼저 살아낸 생존자와, 그 곁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워가는 아이들의 기묘한 동행 같았다. 그러나 그 모습을 안쓰러워하는 나를 향해, 아이들은 오히려 기가 차다는 듯 콧방귀를 뀔 것만 같다.
“우는 건 소용없는 짓이에요. 우리는 절대로 울지 않아요.” (p. 49)
전쟁터에 나가 행방을 알 수 없는 종군기자였던 아버지의 기질을 닮아서인지 탐구욕이 대단해, 할머니 몰래 집안 곳곳을 살펴보기도 한다. 가진 돈도 없이 찾아간 문방구에서 주인에게 기어이 노트와 연필을 얻어내는가 하면, 집에서 챙겨온 사전과 할머니의 다락방에 있는 성경책으로 공부하며 글을 쓰기 시작한다. 둘만의 작문 시간에는 규칙이 존재하는데, 감정을 나타내는 말들은 너무나 모호하다는 이유로 배제한 채 오직 ‘사실에 충실한 묘사’만으로 적어야 한다는 것이다. 집념과 근성이 대단하지만, 때때로 어린아이답지 않은 냉혹함과 잔인한 결을 비출 때면, 마치 생존이라는 목적만 남은 것처럼 보여 그 모습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뭔가 이건 아닌데,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기껏해야 초등학생 정도밖에 안 된 아이들인데, 정말 기가 막히고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어쩌면 이미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하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는 무조건 버텨야 한다는 마음으로 할머니 집 문턱을 넘은 것이 아닐지.
그런데 1부가 끝이 나도록 이 쌍둥이들의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다. 대도시에서 살았다는 사실만 있을 뿐 어디인지는 알 수 없고, 시골이라는 공간만 있을 뿐 할머니의 집이 어디인지도 지워져 있다. 그래서인지 분명 1부는 ‘우리’라는 1인칭 복수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이야기인데도, 마치 타인의 삶을 냉정하게 관찰하고 기록한 듯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들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으리라. 슬픔도, 두려움도, 상실의 고통도, 일단은 살아남기 위해, 엄마와 다시 만나 본래의 삶으로 돌아갈 그 이후로 미뤄둔 것뿐인지도 모른다.
전쟁통 속에서 오직 생존이 우선이었기에 평생 억척스럽게 일만 하며 사람의 온정 따윈 사치로 여기며 살아온 할머니. 그리고 그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단 한 번도 온전한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채 신체적 결함 때문에 마을 안에서도 짐승 취급을 당하며 밀려나, 기어이 짐승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하는 언청이 소녀. 지워지지 않는 비극의 껍데기를 씌운 채 살아가는 이들을, 나 역시 끝내 그 껍데기를 벗겨내지 못한 채 할머니를 순수한 노인으로, 소녀를 평범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로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 참 지독하리만큼 슬픈일이다.
이 모든 것들을 “그냥 이런 일들이 있었다.” 하고 쓱 베어내듯 보여주는 1부를 지나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인물인 서점 주인 빅토르가 등장하는 2부에 이르자, 자꾸만 이런저런 생각들이 끼어드는 탓에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더뎌졌다. 평화롭고 정상적인 일상에서는 오히려 숨을 쉬지 못하고, 스스로 지옥을 만들어내야만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끼고 글을 쓸 수 있다고 믿게 된 알코올중독자 빅토르. 그의 삶을 마주하면서, 그제야 내가 이 소설에서 ‘붙잡게 된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지옥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는 몸부림과, 모든 것이 끝난 뒤에도 이미 내면이 지옥이 되어 평화 속에서조차 구원받지 못하는 삶. 어느 것이 더 지옥일까.
내가 무엇을 쓸 수 있었겠는가? 내 생활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결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 주변을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쓸 거리라고는 전혀 없었다. 누나는 끊임없이 내게 차를 날라다주고, 가구를 닦아주고, 내 장롱 안의 내 옷들을 정리해주었다. 누나는 내가 글을 얼마나 썼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내 어깨 너머로 넘겨다보곤 했다. 그래서 나는 종이를 자꾸 메워나가야 했다. 나는 무엇을 써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아무 책이나 닥치는 대로 베껴놓았다. 가끔씩 누나는 내 어깨 너머로 그 문장들을 한두 장 읽어보고는 멋진 문장이라고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나를 격려했다.
누나가 나의 속임수를 알아챌 염려는 없었다. 누나는 책이라고는 통 읽지 않으니까. 누나는 평생 동안 단 한권의 책도 읽지 않았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만 해왔기 때문에 책을 읽을 시간도 없었다. (p. 338)
3부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안다고 믿었던 것이 무너지고 그 자리에 또 다른 얼굴이 나타나는 경험을 하게 만든 소설이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더 눈길이 갔던 것은 인간의 존재 자체보다, 상처가 한 인간을 만들어가는 방식이었던 것 같다. 인간의 영혼을 안에서부터 서서히 무너뜨리는 상처는 대체 어디부터 어디까지, 또 어떤 방식으로 선을 그어 말해질 수 있는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