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손을 흔드는 대신
박솔뫼.안은별.이상우 지음 / 민음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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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히지 않는 그때의 나와 그리고 사람들을 그려보며 재밌기도 했고 울적하기도 했다. 무슨 자신감에 그 시간을 내 기억력에만 의존한 채 놓아준 건지 너무 아쉽다. 이제는 언제 들여다봐도 그때의 모습과 감정이 더 많이, 더 선명하게 오래 이어질 수 있도록 뭐로든 남겨 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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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지키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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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목전에 두고 기울어져 가는 한 남자.
82년의 세월 동안 숱하게 많은 이들을 떠나보내 이제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도 강인함과 차분함을 갖추고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침대에 몸을 늬운 채, 자신을 지켜보는 수도사들의 어렴풋한 형체를 향해 버둥거리며 무언가를 말하려 한다.
삶을 채워 준 모든 기쁨과 비극에서 이제는 아스라이 멀어져가고 목소리마저 힘을 잃고 희미해져 가지만, ‘내 나라’ 이탈리아의 건물과 사람들의 형체만큼은 점점 선명해져 갔다.

왔던 길을 되짚고 묻힌 시간을 되새기며,
그가 들려주려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태어날 때부터 누구도 자신에게 별다른 희망을 걸지 않았을 거라는 그의 말이 아직 윤곽이 드러나지 않아 흐릿한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나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1904년에 프랑스에서 태어난, 이탈리아인 ‘미켈란젤로 비탈리아니’는 공방을 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 돌에 대한 애정이 무척 깊다. 미켈란젤로처럼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은 이름보다는 부모님께서 붙여준 별명 ‘미모’를 더 좋아했기에 앞으로도 사람들에게 미모로 더 많이 불린다.

더 나은 생계를 기대하며 부모가 결혼 후 이탈리아를 떠나 프랑스에 정착했지만, 전쟁이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죽였다.
그 후, 가세가 기울어 조국도 아버지도 없이 이탈리아에 사는 조각가 삼촌인 ‘알베르토’에게 돈 봉투와 함께 맡겨진다.

(P. 32) 그 안에는 비탈리아니 집안의 저금이 거의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타국살이, 노동, 태양과 소금기에 그을린 피부, 여러 번의 재출발로 점철된 세월이 통째로 말이다.

열두 살짜리 아이가 홀로 기차에 올라 머지않아 만나게 될 거로 생각한 어머니와의 만남을 상상하며 전쟁냄새 가득 한 이탈리아에 도착한다. 날뛰는 세상을 버티며 살다 곧 만날 줄 알았던 어머니와 떨어져 지낸 세월이 20년이나 지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두 눈 활짝 뜨고 주변을 둘러보며 만족할 줄 알아야 했다.
난쟁이로 태어나 부모를 원망한 적 없듯이 말이다.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삼촌의 악질적인 폭력쯤이야, 전장에 추악한 짐승보다야 나을 테고 그가 손을 쳐들어 한 대 치려고 하면 다급하게 테이블 밑으로 몸을 숨기면 된다. 차가운 현실과 짙은 슬픔을 삼킨 무덤덤한 미모의 모습은 말 없는 흐느낌으로 번지듯 다가왔다.

주어진 시간을 있는 그대로 그저 품을 뿐이다.
불행을 받아들이는 데 한계가 없는 사람처럼 말이다.


다듬어지지 않은 단단한 돌을, 감정을 다스리는 재료로 삼아 지저분한 소음을 밀어내듯이 깎고 또 깎았다.
오롯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에 빠져들다가 어느새 멋있는 조각상을 탄생시키듯, 미모는 그렇게 스스로 자신을 완성해 나가고 있었다.
힘을 잃지 않고 나아가는 미모를 마음으로 응원해본다.

(P. 27) 나는 행복했고 여전히 내 앞에 놓인 그 모든 것에, 타고 올라가야 하고 나에게 맞게 깎아야 할 그 미래라는 덩어리에 취해 있었다.


이탈리아의 평화로운 소도시 피에트라달바에 도착했다.
미모가 삼촌과 함께 좋은 돌을 구하기 위해 갔던 그곳을, 나는 아이의 호기심 가득 한 눈빛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시선으로 숲의 가장자리에 우뚝 솟아 있는 저택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영롱하면서도 신비스러운 형체가 눈앞에 보였다가 사라진다.

고원지대에서 시원한 바람을 타고 맡아지는 오렌지와 사이프러스 향의 상쾌함은, 이 순간의 평화로움이 오래가길 바라는 희망을 품게 한다. 그러나 지중해 햇살이 자리를 비추는 따사로움과 불필요한 소리가 싹 걷어진 고요함을 앗아가는 대포들이 숨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1919년 여름, 전쟁은 끝났지만 경제가 무너지고 여기저기에서 폭동이 일어나 마을에서는 매캐한 탄내를 풍겼다.
한 때 사회주의자였던 무솔리니가 사회주의자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강한 이탈리아”에 대한 열망으로 권력을 더 가까이하면서 혁명적 폭력을 정당화했던 파시스트들의 폭력은 일상화되어갔다. 평화로운 천국, 피에트라달바도 불길을 피할 수는 없다.

(P. 289) 그 시절은 비겁함의 차지였다.


불어닥친 바람으로 깨진 조각상을 복원하기 위해 방문한 이탈리아 명문가 오르시니 가문의 저택에서 미모는 우연히 ‘비올라’라는 동갑내기 여자아이를 만나게 된다. 고착된 상식이 콘크리트처럼 단단하게 굳어 깨지지 않는 후작과 후작부인의 총명한 막내딸인 비올라는, 꿈이라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라 여겨 온 미모를 또다시 꿈꿀 수 있게 해준다.

(P. 199) 미모. 나는 네게 한계가 없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어. 위로도 아래로도, 큰 걸로도 작은 걸로도. 모든 경계는 만들어 낸 거야.

의식도 못 한 채 내뱉는 말들 속에서 누군가는 획득할 상처받을 기회를 조금도 내주지 않는 사려 깊은 소녀 비올라.
보통의 아이와 다른 난쟁이 미모의 체형, 자라온 환경, 그 아무것도 중요치 않고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를 첫 만남부터 친구로서 대했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자신의 키밖에 되지 않았을 미모에게 아버지의 서재에서 몰래 빼 온 책을 보여주며 지식의 황홀함을 아낌없이 나누었다.

비올라는 고루한 남녀 차별 의식 속에서 경계를 허물고, 한계를 두지 않는 세상을 바라며 훨훨 날고 싶었다.

그녀의 내면의 세계에 자신을 비춰보며 인식의 틀을 조금씩 깨트릴 수 있었던 미모는 비올라와 함께 빽빽한 숲 속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우정을 키워나갔고, 이들이 나누는 대화는 마치 순수한 감정이 담긴 아리아가 되어 퍼져 나가는 듯했다.
그러나, 작은 기쁨 뒤에 가려져 알아채지 못한 폭풍우가 어슬렁거리며 불길한 조짐을 내비쳤고 서서히 그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감정의 낙차를 드러내지 않고 살아온 미모는,
숨겨진 걱정과 슬픔으로 알 수 없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없이 벌어지는 수많은 시련을 겪었다.
쉽게 나타나지 않는 기적에 세상을 원망하거나 하소연할 시간도 갖지 못한 채 세상은 급진적으로 변했고, 미모는 자신이 가진 체형 때문에 쫓아가는 것조차 남들보다 몇 제곱은 힘들었을 거다.

그렇다고 현실을 피할 수만은 없다.
결핍 많은 한 사람이 멸시와 배제 속에서만 존재하면서도 꿋꿋하게 일어섰고, 다시 걸었다.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신이 그에게 멋진 얼굴과 체형을 주지 못한 미안함에 버티게 해 주는 묘약으로 준 천재적인 재능이 그를 일어서게 했을까?

누군가에게는 아주 당연하게 여겨질 만한 일어서고 걷는 행위가 미모에게는 가장 소중한 행위였다는 것을 부모님께서 알려주셨고, 그 가르침을 간명하여 태어나자마자 누구도 별다른 희망을 걸지 않았던 운명을 끝까지 저버리지 않고 나에 대한 믿음으로 일어서고 걸었던 게 아닐까.

하나도 아프지 않을 수가 없는 아픔과 고통은 어디로 갔을까?

미모는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비울 줄을 알았다.
아니, 태어날 때부터 만족하는 법을 배웠어야 했다는 게 더 정확할거다. 그럼에도 자신이 가진 서글픔을 딛고 아픔과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켜 결국에는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조각상과 창작품은 인생의 여정을 찬란하게 채웠다. 실로 대단한 의지이자 인간승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화려하고 반짝거리는 찬란함이 고뇌의 세월을 피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위험에 빠뜨리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거리를 유지하고 인간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일찍이 알려 준 비올라를 떠올리게 하는 순간과 마주하게 되는 일이 기어코 그의 삶을 관통한 것이다.

이탈리아의 예술적 화려함과 상류층 남자들의 부도덕한 생활에 너무 취했던 걸까. 조각상으로 이름을 날리며 부를 얻게 된 미모가 손목에 까르띠에를 차고 이 도시 저 도시를 다니며 지내는 동안, 부유한 삶과는 거리가 먼 미모의 오랜 친구들의 삶마저 잊고 지냈다.

그 시대를 고스란히 반영한 듯이 포착하기 어렵게, 치워져 있다가 뒤통수를 때리며 등장한다. 그것은 여성의 외침이었다.

(P. 414) 세상은 변하고 있고, 나는 아이들이 그런 변화에서 비켜선 채 살아가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가난한 집안에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밭일로 종일 시간을 보낸 남자의 인생에 가려져, 여성의 외침은 힘을 잃고 숨죽여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사회적 불평등과 동시에 여성으로서 겪어야 했던 고난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숨겨져 있었기에, 나마저도 거짓 약속과 처박힌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비올라의 목소리만 주목하느라 또 다른 여성의 목소리를 의식하지 못했다.

정말 아는 것만큼만 보였구나 싶어, 한쪽 가슴이 따끔하다.
어디선가 비올라가 나를 향해 소리칠 것만 같다.

(P. 495) 이 모든 게 당신 눈에 보이는 그대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겠지?


억압과 한계 너머의 삶을 향해, 자유와 꿈을 향해, 간절한 염원의 날개를 달고 혼란스러운 세상을 향한 날갯짓이 드넓은 세상으로 힘차게 날아오르며 비상하느냐 아니면 거칠게 끌어당기는 땅끝으로 추락하느냐와 같은 결과에서 잠시 한 발자국 물러나 본다.

그리고 ‘행동하는 것’의 가치를 생각해 본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등장인물의 인생이 필름처럼 지나간다.
열두 살 아이가 홀로 기차를 타고 이탈리아를 향해 갔을 때만 해도, ‘희망’을 안고 있었다. 프랑스에 남겨진 어머니와 곧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그 희망 말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사랑하는 자식의 재능을 지켜주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내 손으로 자식을 떠나보내야만 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종교적인 엄숙한 느낌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피에타>와 달리 미모의 <피에타>는 삶을 겪어본 얼굴을 한 마리아가, 두려움과 고뇌는 찾을 수 없는 미소로 아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 표정에서 읽힐 수 있는 ‘희망’은 미모의 바람이 아니었을까.


가끔 추천사에 기대했다가 실망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은 기대 이상이었다.

웅얼거리지 않고 당당하게 아름다움을 표현한 문장들에 나 역시도 마음껏 그 아름다움을 누려본 것 같다.
차분함 속 자연스럽게 녹아든 적당한 재치로 웃음 짓게 하는 소소한 즐거움이 있고, 실존했던 인물의 등장은 소설의 생명력을 불어넣어 줘서 읽는 재미를 더해줬다.

처음에 책 소개를 읽고, 예술과 정치가 섞인 이야기 속 신비로움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피에타 석상, 천재 석공, 자유, 투쟁, 수도원, 비밀, 유폐 등의 단어만으로도 머릿속에서는 어느 정도의 밑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는데, 막상 읽어보니 정말 놀라웠다.
이렇게나 풍성한 이야기를 담고 있을 줄이야.

며칠동안 잡고 있던 이 책을 놓는 것이 퍽 아쉽다.
그리고 맘 한쪽 편이 아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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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5-08-06 1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게 그리도 좋다니, 사 놓고 읽어야 하는데 벽돌 분량이라 선뜻 시도를 못하고 있네요...하~
별 5개인데...^^;;

곰돌이 2025-08-06 11:12   좋아요 0 | URL
꽤 두껍긴 한데 몰입해서 읽다 보면 또 휘리릭 넘어가더라고요.(너무 당연한 이야기네요. ㅎㅎㅎ) 책 좋아하는 분들이 읽으면 와 닿을만한 문장도 곳곳에 담겨 있어서 이따금 꺼내먹는 즐거움도 있었답니다. :)
 
인생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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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아빠랑 처음 등산을 갔던 기억이 난다.
날은 덥고 올라가도 끝이 없는데 마실 물마저 똑 떨어진 거다.
칭얼거리면서 도대체 언제까지 올라가야 하느냐고 우거지상을 하고 물으니까,

“예전에 나폴레옹이 알프스 산맥을 넘을 때 지금 너처럼 목이 말라 힘들어하는 군사들을 향해 말했어. 저 너머에는 살구나무가 있다고. 그랬더니 군사들이 군침을 꿀꺽 삼키고는 그 산을 넘었다고 해. 결국, 그 힘으로 전쟁에서도 잘 싸울 수 있었던 거야.”

속에서 열불이 터졌다.
나폴레옹이고 할애비고 지금 더워는 죽겠고, 목은 마르고, 끝은 보이지가 않고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짜증에 심지어 웃고 있는 아빠 얼굴까지 모든 걸 다 갖춘 날이었다.

된비알을 지나 정상에 올라 두 팔 번쩍 올려본다.
가슴 속까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활짝 웃고 찍은 사진을 보면 아직도 그때 생각에 잔웃음이 나온다.
하산길에 얻어먹은 오이는 귤처럼 달았다.
그 기억에 오이와 귤 몇 개 정도는 더 챙겨 나눌 줄 알게 된 것 같다.


위화의 <인생>을 펼쳤다.
한국어판 서문이 인상적이다.

(P.8) 사람과 그의 운명은 서로 상대방을 포기할 방법이 없고, 서로 원망할 이유도 없다. 그들은 살아가는 동안은 흙먼지 풀풀날리는 길을 함께 가고, 죽을 때는 빗물과 진흙 속으로 함께 녹아든다.

그리고,
저자는 우리에게 공간을 내어준다.

(P. 9) 문학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그것은 작가가 의식하는 것뿐만 아니라 의식하지 못한 것까지도 이야기한다. 독자는 바로 이러한 순간에 일어나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푸구이’라는 이름의 한 노인이 자기가 살아온 인생길을 들려준다.
지금은 남루한 모습의 자신을 쏙 빼닮은 늙은 소 한 마리 이끌고 밭을 매고 있지만, 옛날에는 소유하고 있는 땅이 백 묘가 넘었던 쉬씨 집안의 도련님이었다. 아버지와 둘이 길을 갈 때면 신발 소리가 동전이 쩔렁거리는 소리처럼 들렸을 거란다.

노인과 소의 대화(?)만으로도 어쩜 이렇게 웃긴지.
콧방귀를 뀌게 하고 뱃속이 간질간질하고 비죽비죽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런데, 허파에 바람 든 사람처럼 웃을 때가 좋았다.
푸구이가 개망나니였던 시절 이야기는 욕도 아깝구나 싶었는데 이내 곧 그와 가족들의 삶이 마음을 찌릿찌릿 아프게 했다.

백 묘가 넘었던 땅을 도박 빚으로 고스란히 내어줬다.
네 살이었던 딸과 부인 뱃속에 둘째까지 자라고 있어 뭐라도 해서 먹고 살아야 하니 다섯 묘를 빌려 받는다.

고단하지만, 이제야 진짜 삶을 살아가게 된 게 아닐까?
내가 싫은 건 남도 싫다는 것도 알게 되고, 나의 모자란 행동의 결과가 미치는 영향이 나로서만 끝나지 않는다는 실로 무서운 현실을 마주하며 얻은 교훈으로 손톱에 낀 진흙이 깊게 박힐수록 가족을 향한 책임감 또한 깊어졌을 테니 말이다.

알 수 없는 인생, 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희망으로 고난도 이겨내 보면서.

(P. 70) 나는 우리 쉬씨 집안도 처음에는 병아리에 불과했으니 내가 이렇게 일을 하면 몇 년 안에 병아리가 거위가 될 거라 생각했어. 그렇게 되면 언젠가 다시 일어설 날이 있을 거라고.


온 천지 국민당군이 총검을 들고 코앞에서는 총알이 날아가고 무덤에서 꺼낸 관을 땔감으로 쓰던 시절의 이야기부터, 마오쩌둥의 대약진 운동의 일환이었던 농업 집단화로 배정받은 밭일을 해 가며 머리가 허옇게 세는지도 모르고 지낸 세월 속에서 너무 어린 나이에 철이 든 자식을 바라보며 기쁘기도 하고 괴롭기도 했을 시절까지, 푸구이의 입에서 샘물처럼 흐르는 말들은 신세타령 같아 보이지만 실은 사람의 도리를 일러주고 있었다.
후회하는 만큼 정말 쉼 없이 흘러나왔다.

(P. 210) 사람도 때가 되면 익어야 하는 법이라네.


저번에 읽은 류전윈의 <말 한 마디 때문에> 를 읽을 때도 그랬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도 지난 기억이 많이 떠올랐다.

나는 밥 먹는 속도도 어찌나 느린지, 아까부터 먹던 밥을 여태 먹고 있느냐는 소리를 꽤 듣고 자랐다. 사실, 부지런히 먹으려고 마음먹고 있다가도 아빠가 한 소리를 하고 나면 일부러 더 소 여물 먹듯이 했다.
엄마는 원래 천천히 먹는 게 좋은 거라고 해줬다. 천사다.

“너는 전생에 소였을 거야. 그래서 나를 부를때도 엄마라고 안 부르고 음메~ 음메~ 하고 부르잖아.”

욕인지 아닌지 뭔가 찜찜한 엄마의 말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도 모르고 게으름만 뚝뚝 떨었던 그때를 떠올려보니, 무지몽매했던 내가 어느새 다 커서 사람의 형태를 하고는 부모님께 착착 부닐면서 지내는 막냉이로 자란 게 참 다행이 아닐 수가 없다.

몇 해 전, 인생 처음으로 이별의 아픔을 겪었을 때 나는 다른 것보다도 엄마가 잘 견뎌낼 수 있을까 걱정이 컸다.
그런 내게 직장 상사가 진심을 담아 한마디 해 주셨다.

“엄마는, 엄마이기 때문에 견뎌내실 거다.”

그랬다.
엄마는, 엄마이기 때문에 견뎌냈다.

푸구이의 아내 ‘자전’도 마찬가지다.
부잣집 딸로 태어나 고생 한번 안 했을 그녀가, 조상이 물려준 재산 하나 지키지 못하고 제 손으로 날려 먹고 망아지 날뛰듯 했던 푸구이와 삼순구식 하는 형편에 늘 사로잠을 자면서도, 앓는 소리 한 번을 내지 않고 중심을 잡고 길을 닦아 나갔다.
곰처럼 참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텐데도 말이다.

뒤숭숭한 상황 속에서 딸 ‘펑샤’와 아들 ‘유칭’에게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 주었던 자전이 있었기에, 지금의 푸구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더는 생에 미련은 없고 쇠심줄같이 질긴 자신의 목숨을 원망해보지만, 인명은 재천이라 하니 눈 떠지면 늙은 소 데리고 뙤약볕 내리쬐는 밭으로 나가 일하다, 쉬다, 일하다, 쉬다를 반복하며 삶을 ‘다시’ 따라가는 푸구이의 신세가 가련하다. 그러니 젊은 시절의 잘못을 탓하지만도 못하겠다.

내 손등, 내 뺨의 흉터와 통증 따위에는 무뎌지고, 과거의 고달픈 기억쯤이야 한 걸음 물러나 관망하며 볼 수 있을 정도가 돼 버린 푸구이가 들려준 이야기는 일상을 보내다가도 피식하고 웃게 하는 재미도 담겼고, 어쩌면 삶에서 가장 익숙한 것이 ‘버티는 것’이었을지 모를 그의 애달픈 상황에 착잡도 했지만, 다 읽고 나니 묘하게 마음의 정화를 일으켰다.

그렇기에 시간이 쌓이고 쌓여도 국적과 언어의 장벽을 허물고 위화의 글이, 귀를 기울이는 모든 이들을 향해 흐르는가 보다.

더운 여름의 어느 날,
누군가의 희로애락이 담긴 인생 이야기를 묵독하며 무거웠던 마음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쉬엄쉬엄 읽으니, 얼음 한 덩이 띄운 찻물로 데워진 몸을 식혀주는 기분이다.

위화의 <인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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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07-31 2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리 주연의 영화도 수작입니다.

곰돌이 2025-08-01 05:38   좋아요 0 | URL
영화에서는 푸구이가 그림자 연극을 하네요? 평샤와 유칭이 나오는 장면은 너무 슬플 것 같아요. 잉크냄새님 덕분에 볼 영화가 하나 더 늘었으니 주말에 고스란히 여운을 이어나가 볼게요. :)

2025-08-03 0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8-03 0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광대 샬리마르
살만 루슈디 지음, 송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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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면 생기는 변화가 당연하여 눈도 녹고 꽃들이 꽃눈을 틔우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씨에 눈이 떠져 하루가 시작될 테지만 실은 당연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저자는 폭력이 흘러넘치는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도 인생의 참된 의미를 알아챌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써내려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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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 샬리마르
살만 루슈디 지음, 송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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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만 루슈디와의 두 번째 만남이다.

저번에 읽은 <무어의 마지막 한숨>은 주인공 무어가 시작부터 넉살 좋게 다채로운 이야기를 잘 풀어내 주며 이끌어줘서 그의 세계로 입장하는 것이 수월해 참 재미있게 읽었다.
<광대 샬리마르>는 광대를 상징하는 듯, 발가락이 밧줄을 단단히 움켜쥔 표지가 인상적이다. 핏줄 선 발등이 주는 강렬함에 압도된 건지 멈칫하게 하여 내심 매콤한 후추향 풍기는 익살스러운 무어를 찾고 싶게 만들었다.

그런데 ‘올가’라는 인물이 나에게 한 줄기 빛이 되었다.
자칭 감자 마술을 이용하는 마녀의 후예라고 하는 어딘가 청승맞아 보이기도 한 이 러시아인 여성이,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며 감자를 손에서 빙빙 돌리며 이런저런 그간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P. 25) “우리는 그런 혼란 속에서 살아남으려니 당연히 생쥐처럼 약삭빨라야 했지요. 그렇잖아요? 물론 남자들은 다른 곳으로 떠날 꿈만 꾸지요.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겨도 한곳에 머무르지를 않아요. 자기 삶은 자기 것이라는 식이야. 그냥 왔다 가는 거예요. 전쟁은 또 어떻고. 남편을 잃었지요. 슬픈 얘기니까 더 묻지 말아 주세요.”

아무도 물어본 사람은 없지만, 암튼 그녀는 더 묻지 말아달라더니 책 한 페이지 분량을 다 채울 만큼 한숨을 쏟아냈다.
잃어버린 행복과 평화의 나라를 떠올리며 이제는 지는 해가 돼 버린 자신의 속 얘기를 꺼낸 올가의 이기죽거리는 모습 뒤로, 앞으로 펼쳐질 먹구름이 드리워지는 듯하다.


어머니가 인도와 파키스탄의 경계 지역인 카슈미르 출신이라는 것 외에 아는 게 없는 ‘인디아’는 미국대사 ‘막스 오퓔스’가 쉰일곱에 얻은 늦둥이 딸이다. 호색한인 아버지의 영향인지 인디아도 앙큼스러운 구석이 있는데, 운전사로 들어온 카슈미르 출신인 ‘샬리마르’를 바라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 거다. 물론, 그 눈빛 안에는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출신이라는 것이 그녀를 자극한 요인 중 하나일 테지만 인디아의 가슴 속 들끓고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아까 감자를 손에서 빙빙 돌리던 올가는 인디아가 사는 아파트의 관리인이다. 얇지 않은 책을 읽을 때, 잠시 부담을 덜어내고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인물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큰 것 같다. 읽는 재미를 더 해주는 올가가 시작을 잘 열어줬다. 심지어 모성의 향기가 그리울 인디아에게 심적으로 의지가 되어주는 고마운 인물이다. 그런 의미로 주인공은 아니지만, 그녀를 가장 먼저 소개했다.

책장을 더 넘겨보니, 비극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비극의 주인공은 인디아의 아버지 막스 오퓔스.

(P. 62) 억누르려고 최대한 애썼음에도 막스의 손에 들린 일정표가 떨리기 시작했다.

핏빛으로 번진 바닥에 나뒹굴어질 자신의 운명을 예상했을까.
하나뿐인 딸이 보는 앞에서 정체를 숨기고 들어온 운전사 샬리마르에게 칼에 찔려 숨진다.

어떤 원한이 있었던 걸까.

시간을 거슬러 카슈미르의 계곡마을 파치감으로 가 본다.
각자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쫓겨 나온 사람들이 자연이 아낌없이 베푸는 은혜를 실컷 누릴 수 있는 이곳에서 쇼, 연극, 희극, 줄타기 등의 공연을 하는 배우로서 요리사로서 터를 잡고 지냈다.

이 마을에 사는 힌두교 집안의 딸 ‘부니’와 무슬림 집안의 아들 ‘노만’은 사랑을 키워나갔다. 파치감에는 모든 게 다 뒤섞여 있는 곳이라 그 어떤 차이도 뛰어넘는 공통의 끈이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이 두 사람의 사랑에 종교가 방해되어 양측 간 우호 협정이 붕괴할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모를 뿐이다.

달을 못 채우고 태어났지만 뭐든지 남보다 앞섰고 운명에 맞서려는 의지가 강했던 부니는, 노만에게 나무 꼭대기까지 데려다 줄 날개와 같은 존재였다. 노만과 부니의 사랑 못지않은 사랑이 또 있다.
보석과도 같은 자식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도 얼마나 절절한지, 이따금 코끝 찡하게 했다.

(P. 101) 아버지의 손바닥은 부자의 손처럼 부드럽거나 푹신하지는 않았지만, 단단하고 노련하고 모르는 것이 없었다. 세상이 어떤 곳인지 아는 손이었고, 앞길에 놓인 고난을 모르고 살도록 무조건 감싸주지는 않는 손이었다. 그러나 억셀 뿐 아니라 그 고난으로부터 지켜줄 수 있는 손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귀한 사랑을 받으며 노래도 잘 부르고 춤도 잘 추고 부드러운 성품을 타고난 ‘광대 샬리마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노만이, 도대체 어떤 연유로 몇 해가 지나 암살자가 되어버린 걸까. 착잡해져 온다.


당시 인도와 파키스탄은 분리되어, 카슈미르 지역 영유권을 두고 충돌을 벌였다. 이 지역에 있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경계선이 국경선이 아니라 통제선이었다는 것이 재앙의 시작이었던 것.
역사와 종교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그어버린 선 때문에 충돌은 끊임이 없고, 마을 사람들은 경멸감과 두려움이 뒤섞인 목소리로 소문을 주고받으며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사람이 바글거리는 도시의 생활은 꿈에서조차 꿔본 적이 없던 사람들에게는 소문 속 강간, 방화, 살인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아비규환이었을 것이다.

한편, 늘 충동적이었던 부니는 채워지지 않는 부정한 욕망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굶주린 갈망이 채워지길 바랐고 벗어나길 꿈꿨다.
파치감으로부터, 아버지로부터, 노만으로부터.

곧 그녀의 허기를 채워줄 한 남자가 등장한다.
특별공연을 하라는 명령과 함께 정부가 파견한 사절이 카슈미르에 왔고, 미국 대사인 막스 오퓔스가 수행단과 잔칫상을 즐기고, 축제를 즐기러 오게 된 것이다.

유부남이었던 막스 오퓔스는 눈앞에 펼쳐지는 공연 속 파치감 최고의 무희 부니의 예술적 재능에 감탄하며 그녀의 영혼을 꿰뚫고 싶은 욕망에 휩싸이고, 노만의 아내였던 유부녀 부니는 그의 눈빛을 피하지 않는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막스 오퓔스의 과거가 참 다채롭다.

그는 나치 치하에서 인쇄업을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독일이름을 가진 프랑스인으로서 동네에서도 유명한 유대인 집안이었다. 부교수로 일하면서 시간을 쪼개 아버지의 일까지 도왔던 그가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던 과거까지 들여다보니, 어쩌다가 또 이 사람은 미래의 난봉꾼이 되어 잔혹한 운명을 피할 수 없게 된 걸까 싶다.

(P. 255) “만사가 다 지랄맞아. 나치 놈들은 보나마나 작업장을 총 만드는 데 써먹으려 할 거야. 개새끼들.”

어둠이 팽팽해지고 위험하지 않은 곳이 없었던 시기에 부모님을 지켜내지 못했던 막스 오퓔스는 애국주의를 드러내 프랑스를 독일로부터 되살려내고자 최고의 기술을 가진 조종사가 되어 전쟁 영웅이 되고, 반들거리는 광택을 내뿜는 신세계 미국으로 시선을 돌리게 된다.

복수심에 불타 폭파기술을 배우고, 아우슈비츠로 가는 죽음의 기차에서 유대인 아이들을 탈출시키고 데려오는 역할까지, 레지스탕스로서의 활동 업적이 많았던 그는 승리의 기쁨보다는 쓰러져간 동료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었다. 이렇듯 터지는 폭탄과 탄내 풍기는 삶을 거쳐 연합국 스파이였던 영국인 ‘그레이 랫’과 결혼해 미국에서의 결혼 생활을 이어나간다.

시간은 흘러 막스 오퓔스는 1965년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끝난 직후 인도의 대사직을 제안받는다.

그는 욕망의 명령에 따르듯 뱀처럼 꿈틀대는 경계선이 그어진 불안정한 중간지대 카슈미르로 향했고, 이 선택이 인도와 미국 간 외교 분쟁 못지않은 해골 복잡한 문제를 일으키게 될 부니와의 만남을 성사시킨 것이다.

만약, 막스 오퓔스가 수많은 일을 견디고 살아남은 아내와 균형 잡힌 결혼생활을 이어나갔더라면, 샬리마르 칼의 칼집이 되는 불행을 피하고 막스 오퓔스가 안겨주는 선물 속에 담긴 편의주의에 뱃속 지방만 늘려가며 킬킬대는 부니의 파멸을 막을 수 있었을까.

카슈미르에 그어진 경계선이 마을 사람들의 삶의 줄을 당기며 유혹하고 배신하는 동안 단순한 행복의 열망은 그을음만 냈다.
잠에서 깨는 순간부터 악몽이었을 비극적인 삶과 끝나지 않은 현실의 불행을 담은 이야기에, 다시 한 번 대단치 않은 것에 즐거움을 느끼며 사는 나의 소박한 삶이 감사하게 여겨진다.


계속 아른거리는 문장이 있다.

(P. 143) 삶은 계속된다. 눈은 녹고 새로운 꽃이 피어날 것이다. 죽음은 끝이 아니다.

이 책 속에서는 부인을 잃은 남편에게 애도의 뜻을 전하며 용기 잃지 말고 살아나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말이었는데, 나에게는 겸허한 마음을 들게 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해 준 게 없지만, 자연은 잃어버린 삶의 의미를 채워주기 위해 모든 것을 내어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생기는 변화가 당연하여 눈도 녹고 꽃들이 꽃눈을 틔우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씨에 눈이 떠져 하루가 시작될 테지만 실은 당연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삶이 준 시련에 마음마저 염세적으로 변하여 모든 것이 근사한 포장지를 두르고 있는 말처럼 와 닿지 않고 눈을 씻고 다시 들여다보고, 귀를 씻고 다시 들어봐도 여전히 그 말의 가치를 찾을 수 없다 할지라도, 위협과 위험에 둘러싸인 세상에서 죽음을 눈앞에 두었던 이가 우리에게 삶은 계속되고 눈은 녹고 새로운 꽃이 피어날 것이고 죽음은 끝이 아니라고 말하는데 이 말을 어떻게 허투루 들을 수 있을까.

아직은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한 나로서는 울림을 주는 메시지를 스치듯 지나가는 말처럼 흘려보낼 수가 없다.

평화로운 공존이 환상처럼 여겨질 만큼 비극을 머금은 의구심 드는 현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소설에서도 나는 ‘희망’을 끄집어내고 싶다.
살만 루슈디는 흔적도 남지 않은, 이제는 카슈미르 지도 상에만 존재하는 파치감 마을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며, 폭력이 흘러넘치는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도 인생의 참된 의미를 알아챌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써내려간 것 같다.

그리고,

끊임없이 종교, 정치, 역사, 예술 등을 다루며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P. 372) “그러지 말고 똑바로 앞을 보려고 노력해보세요. 여기 없는 것을 보지 말고, 지금 있는 것을 봐요.”

과거에 매달려 복수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파국으로 이끄는 광대 샬리마르를 향한 외침 그 안에는 살만 루슈디의 간절함이 담겼다.

이 외침은 뚜렷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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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5-07-29 18: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밤의 아이들 하고 몇작품외에는 아직 못읽었는데,,, 이 소설 읽어보고 싶네요.
기억해두겠습니다.

곰돌이 2025-07-29 20:42   좋아요 1 | URL
특유의 재치가 많이 담기지는 않았지만, 너무 재밌게 잘 읽었어요. 전 살만 루슈디가 던지는 메시지가 와 닿아서 더 좋게 읽었는데 그레이스님은 어떠실지 모르겠네요. 한밤의 아이들은 못 읽어봤는데 저도 다른 작품 또 기웃기웃해 봐야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