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리 - 2024 공쿠르상 수상작
카멜 다우드 지음, 류재화 옮김 / 민음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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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군부 중심)와 이슬람주의 세력 간의 충돌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알제리 내전. 이 비극적인 사건을 다룬 점과 번역가 류재화님이 옮기셨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고민 없이 책을 집어 들었다. 작년에 샤를로트 델보의 《우리 중 그 누구도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를 통해 경험한 류재화님의 섬세한 감각이 깊이 인상에 남았기 때문이다. 참혹한 현실 속, 그때의 기억을 지닌 사람들의 말해질 수 없는 슬픔과 트라우마, 그리고 감정의 흔들림이 마치 잔잔한 빛살처럼 가슴에 스며들어 시처럼 읽혔다. 읽다가 숨이 멎는 듯한 순간도 있을 만큼 그 정서적 울림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고, 이번 알제리 작가 카멜 다우드의 《후리》에서도, 류재화님의 세심한 번역 덕분에 원작이 담고 있는 고통과 감정을 천천히 음미할 수 있었다.

티 없이 맑은 하늘 아래 흩날리는 하얀 천. 알제리 내전의 잔혹함과 달리,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이 책의 표지만으로도 전하고 싶은 뜻을 헤아려보게 된다. 한 조각 천이지만, 숨죽인 세상 속에서 자유를 향해 흔들리는 저항이 담겨 있는 듯했다. 전쟁과 비극 속에서도 길을 찾아 나서는 인간의 굳센 마음과, 동시에 처연한 마음을 함께 느꼈다. 총 3부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각 부가 고통이 밀려오고 마음이 아려오는 순간에 숨구멍이 되어주듯 여러 장으로 나뉘어 있어, 천천히 숨을 고르며 읽을 수 있었다.

“난 한 권의 책이야. 서서히, 내가 너를 위해 빛을 밝혀 줄게. 왜냐면 내 안의 언어가 마침내 나 아닌 다른 출구를 찾아냈거든. 그게 뭔지 알아? 바로 너한테 있는 두 귀야”

‘오브’라는 이름의 여성이 자신의 뱃속 아기에게 속삭인다. 그녀가 내는 소리는 분명 내 귀에는 닿지 않을 말일 것이다. 다섯 살 때 테러리스트들에게 목이 잘린 뒤 성대가 손상되어 목소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온갖 손짓과 몸짓과 표정이 결합해 터져 나오는 그 소리에서 부드럽고 고운 숨결이 느껴진다. 불안의 흔적처럼 차디찬 떨림까지도. 사랑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은 그녀의 가슴은, 기억이 금지된 곳의 이야기를 드러내려 한다. 이는 침묵을 강요하고 잊으려는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 것이다. 존재 자체가 증언인 그녀가 기억을 되살리려 하기 때문이다.

이곳, 내 머릿속에선, 내 기억에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할 단어들이 줄줄이 나와. 바깥 세상을 마주할 때 내 안의 언어는 정교함의 경이, 그 자체야. 그 안에서 저 옛날이야기가 꿈틀거리며 되살아나. 그 경이와 함께라면 모든 것이, 거의 모든 것이 태양 없이도 빛날 거야. (p. 20)

오브의 뱃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그녀의 어머니 하디자는 유명한 변호사다. 한 간호사 부부에게 입양되어 자란 그녀가 내전 중 학살로 일가족을 잃고 홀로 생존한 오브를 입양했다.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언제나 목숨을 건 일인 이 나라에서, 오브를 어떤 마음으로 키워냈을지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혼자서 딸을 안고 하루하루를 버티는 마음이 어땠을지, 나는 그 불안과 두려움을 다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딸을 위해 온 힘을 다했던 그녀의 마음은 분명 느껴진다. 하디자는 딸의 목소리를 되찾기 위해 성대 이식과 후두 복원을 꿈꾸며, 세계 각국의 의사들을 찾아다닌다. 절망과 희망이 뒤섞인 마음으로, 그녀는 딸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려 한다. 사람을 구하는 판결을 위해 법정에서 강하고 열정적인 목소리를 내는 하디자가, 목소리를 잃은 딸을 바라보는 심정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오브가 마음으로 속삭이는 혼잣말을 들여다보는 동안,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아 이 이야기가 소설로 탄생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오브의 목에 남은 내전의 상처만큼 끔찍한 현실이, 가짜가 아니라 진짜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오브의 현재 삶을 따라가 본다. 내전에서 희생당한 생존자들에게 국가가 내민 조건은 연금을 받느냐, 아니면 관청에서 지급하는 상업 시설을 얻느냐였다. 오브는 연금 대신 미용실의 소유주가 되었다. 상처를 봉합하고, 치유를 안겨주는 듯 보였지만, 그 겉모습 뒤에는 침묵이라는 무거운 대가가 숨어 있는 건 아니었을까?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에게 받은 손에 쥔 세 알의 약. 목구멍 속으로 삼키면 언제든 뱃속의 아이, ‘후리’를 천국으로 보낼 수 있다. 짧은 원피스만 입어도 생명이 위태로운 이곳에서, 오브는 단 하나, 아이를 이 위험한 세상에 내놓을 수 없다는 결정을 붙들고 있다.

뭘 원해? 여기 와서 죽은 살덩이가 되고 싶어? (p. 66)

아직 콩알만 한 후리에게는 설명이 필요하다. 귀가 생겼는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 작은 생명을 향해, 어떤 때에는 생명을 죽이는 일이 오히려 살리는 일이 되어버리는 이 잔인하고 기막힌 현실을 말해주어야 한다. 그렇게 오브는 한 아이에게 닿을 설명을 준비하듯, 우리를 또 다른 여성들의 삶으로 데려간다. 미래에 대한 기대를 쉽게 품을 수 없는 곳, 사방에서 위험이 도사리는 어둠 속을 지나고 있는 여성들의 삶으로.

오브의 미용실에서 함께 일하는 두 여성, 침묵을 지키는 하난과 재치 있고 유쾌한 메리암. 나름의 사정을 지닌 이들의 삶이 그저 연약하고 애처로운 숨결처럼만 묘사되었다면, 그 삶을 끝까지 바라보는 일은 때때로 버겁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다르다. 세 여성 모두 자기 안에 분명한 언어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 언어는 때로 위로가 되고, 잔잔한 미소를 불러오기도 한다. 이런 모습이 반가웠던 나는 잠시 오브의 미용실 단골손님이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묵을 원한다면 조용히 함께 앉고, 잊히지 않는 과거를 꺼낸다면 함께 분노하고 싶다. 서로를 조금씩 흔들어 주며 마음이 굳지 않도록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애처로운 시선 대신, 하난과 메리암에게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내어준 오브에게 고마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녀의 강인함이 든든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난과 메리암의 삶을 향한 절실함을 깊이 이해했을 오브는 주변을 세심하게 바라볼 줄 아는 여성이다. 조각난 고향의 기억을 온몸에 남긴 그녀. 문신을 하고 담배를 피우며 염색한 머리로 히잡을 쓰지 않는 여자들은 반드시 교정되어야 한다고 흥분하는 일부 이슬람 신도 남자들을 향해, 세 여성이 터뜨리는 웃음. 이야기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남성 중심의 알제리 사회에서 그 반란의 기쁨이 담긴 웃음을 마주하고서, 내가 어찌 통쾌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제서야, 오브는 나에게 아무도 기억하지 않거나 기억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이야기들을 들려주기 시작한다.

“난 내 꿈속에 머물고, 그 꿈속에서 다른 이의 꿈속으로 들어가고, 내 발자국은 야자수 가지에 쓸려 사라진다”


얼마 전, 늦은 밤 내 방 창문 밖에서 ‘쿵’ 하고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순간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고, 숨을 죽인 채 혹시라도 이어질지 모를 바깥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평소라면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을 소리였다. 하지만 이란과 이스라엘의 군사 충돌 소식이 연일 뉴스를 통해 전해지다 보니, 세상의 먼 전쟁 이야기가 내 일상 속 작은 소리에도 스며들어 있었던 모양이다. 혹시 우리나라에도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예전 같으면 엉뚱한 생각처럼 여겼을 상상이지만, 이제는 그 어느 것도 장담할 수 없다는 기분이 든다. 생각은 또 다른 생각으로 이어졌다. 전쟁이 나 피난을 가야 한다면 짐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싸야 할까 하는 현실적인 고민에서 시작해, 이런 계산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모든 것이 아쉬우면서도 한없이 부질없게 느껴지는 허무함으로 이어졌다. 나의 생명이 마치 보증수표라도 되는 것처럼 오직 일상만을 걱정하고 있던 그 순간, 여러 감정이 뒤엉켰다. 그리고 안전한 양지에서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보내는 나와, 매 순간이 살얼음판 같은 누군가의 하루가 겹쳤다. 나 자신을 향해 비위가 뒤틀리는 듯한 불편하면서도 부끄러운 감정이 올라왔다.

비극과 고통을 담은 이야기는 반복해서 읽을수록, 그 안에서 인간이 겪는 삶과 죽음, 두려움과 결심이 조금씩 더 가까이 느껴진다. 단순히 과거의 기록만이 아니라, 오늘 하루가 녹록지 않아 숨조차 고단한 삶 속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작은 틈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이런 이야기들에 마음을 열고, 귀 기울여 읽게 될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상처와 고통 속에 남겨진 목소리를 느껴주는 것뿐이다. 나는 그 아픔과 고통을 함께 느끼며 읽어주고 싶다. 다 알고 있다고 믿는 눈을 하고 바라보는 대신에 말이다.

내 안에 무엇이 죽어 있는지, 무엇이 살아 있는지 알려면 내 몸을 더듬거려야 해. 그래야 어떤 부분이, 또 어떤 다른 부분이 더이상 숨을 안 쉬고 있는지 알 수 있어. (p.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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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리 - 2024 공쿠르상 수상작
카멜 다우드 지음, 류재화 옮김 / 민음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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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금지된 세계에서 인간은 어떻게 증언할 수 있을까. 목소리를 잃은 한 여성이 존재 자체로 그 질문에 답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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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없는 사람
커트 보니것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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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땅 위, 보니것의 날카로운 시선과 자욱한 담배 연기 사이로 흐르는 삶과 세상을 향한 쓸쓸한 애정. 그의 농담은 인간이 변하지 않으면 세상이 웃음을 거둔다는 경고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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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3-11 1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니것 소설 6권 읽었습니다. 블랙 유머가 좋습니다만...항상 2퍼센트 부족한 느낌입니다. 그래서 항상 별4개...아직 읽지 않은 책 중에 5개가 있을 듯한 기대는 합니다...ㅎㅎ 저두 이 책 재밌게 읽었습니다..역시 평점은 별4개..

곰돌이 2026-03-11 12:58   좋아요 0 | URL
저는 다음에는 <제5도살장>을 읽어볼까 해요. 담담하게 농담을 툭 던지면서도, 뒤에는 묘하게 씁쓸한 냉소가 남는 느낌이 있어 더 읽어보고 싶습니다. 야무님 리뷰는 항상 솔직한 시선이 느껴져서 읽는 재미가 있어요!! 다음 보니것 작품 리뷰가 올라오면 저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ㅎㅎ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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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과 햇살에 데워져 따뜻한 숨을 품고 있는 툇마루에 나란히 앉아본다. 눈앞에 산과 들은 초록초록 신록의 물결로 넘실거린다. 살랑이는 바람에 아직 아물지 못한 상처를 얹어보고 눈부신 풍경 속에서도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마음을 위로하듯 서로의 침묵에 기대어본다. 어르신은 말씀이 없으시고, 나 또한 굳이 말을 보태지 않는다. 말 대신 나누는 침묵 속에서 숨을 고요히 맞춰본다. 박완서 작가의 마지막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펼치자,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 그녀가 자연으로부터 얻은 위로가 어떠하였는가를 상상해 볼 수 있었다. 가장 깊은 위로를 건네는 것은 결국 바람과 나무와 흙이라는 듯 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껴보며 나의 오래 묵은 마음도 겨울을 벗어본다.

믿음과 기회를 잃은 채 얼어붙은 희망 속에서 성장이 멎어 버린 듯했던 한 소녀가 세월이 흘러 삶의 소소한 즐거움의 놀이터가 되어주는 작은 마당을 가꾸며 맨손으로 흙을 주무른다. 손톱 밑이 까맣게 물든 자기 손을 들여다보며, 며칠만 이 흙을 간직하면 열 손가락 끝에서 푸릇한 싹이 돋아나지 않겠느냐고 엉뚱한 상상을 하는 나이 든 여인에 이르기까지의 긴 세월. 저 멀리 산등성이에 겹겹이 쌓인 초록의 결처럼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나는 따뜻한 빛을 가만히 받아들이듯 그 풍경 속으로 스며든다. 우리 할머니였다면 옆구리 쿡 찔러서 눈치 한번 쓱 주고 싶을 만큼 솔직하면서도 통통 튀는 매력을 지닌 분께서 이곳저곳 뚫고 올라오는 잡초를 매일 뽑아내며 몸을 쓰는 동안, 평생 이고 지고 살아온 수만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얼마나 세차게 소용돌이쳤을까. 우리 외할머니도 꽃과 식물을 유난히 사랑하셔서 정원을 곱게 가꾸는 분이신데, 안부 전화를 드릴 때마다 늘 무언가를 뽑고 계신다. 애당초 쇠심줄 같은 고집을 꺾을 생각조차 없긴 하지만 그렇다고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니, 허리 아픈데 그만 쉬시라고 하면 “뽑는 동안에는 안 아프다”라고만 하신다. 아마도 잡초를 뽑는다는 것은 단지 풀을 솎아 내는 일이 아니라, 마음속 응어리를 하나씩 드러내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분명, 잡초라도 뽑아야 하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손길을 쉽게 말릴 수 없다.

그동안 내가 읽어온 박완서 작가의 작품들은 대체로 들려주는 이야기를 건네받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경청하는 이의 마음에 가까웠다면, 이 책은 조금 달랐다. 나 역시 이야기 속에 슬며시 발을 들여, 한 마디쯤 보태도 괜찮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이 책에 담긴 몇 편의 영화에 대한 짤막한 감상과 그녀에게 영향을 준 여러 권의 책 이야기 덕분에 거리감이 좁혀져서인 것 아닐까 싶다. 생각지도 않게 평소 관심을 두고 있던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이 불쑥 등장하여 반가운 마음이 앞서 장바구니에 슬며시 담고, 언젠가 그 책을 펼쳐 들었을 때 그때의 나는 또 어떤 감상을 얻게 될지 궁금해지면서 잠시 생각은 삼천포로 빠지기도 했다. 실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책 구경만 또 실컷 했지만, 그마저도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지금의 젊음을 당연하게 여기며 건방을 떠는 나 역시, 시간이 흐르면 번화가의 화려한 불빛이 그저 어지럽게만 느껴질 날이 올 것이고, 목적지를 잃은 사람처럼 방향 감각을 잃고 헤매는 순간 또한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세월의 흐름이 두렵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동안 시간은 무언가를 빼앗아 가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잃어버렸다고 믿는 방향 감각은 어쩌면 상처를 지나온 뒤에야 비로소 얻는 또 하나의 감각일지도 모른다는 걸 일러주는 박완서 작가의 단단함과, 사소한 일상에서 느끼는 살맛 나는 순간들이 조용히 곁을 내주고, 쉬엄쉬엄, 편안한 호흡으로 읽히도록 이끈다. 저자의 책을 하나 둘 야금야금 읽어왔기에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한다기보다는 어떤 문장에서 나의 마음이 붙들릴지, 어느 대목에서 오래 묵은 생각이 조용히 흔들릴지 그저 천천히 받아들이고만 싶을 뿐이었다. 분명 처음에는 어르신과 툇마루에 나란히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기분이었는데, 다 읽고 난 지금은 마치 만개한 꽃으로 가득한 마당에 나와 있는 것처럼 마음 한편이 포근하다.

외침으로써 위로받고 치유받고 싶었다. (p.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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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리얄리 2026-03-06 13: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이 나를 솎아낸다‘라는 부분을 보니, 뭔가 마음이 서글프네요.
나이가 들면서 점점 자신을 필요없다 느끼셨을까요...
그런 점에서 ˝정신의 탄력˝이 부분이 참 여러 생각을 하게 합니다.


곰돌이 2026-03-06 16:27   좋아요 0 | URL
저도 그 한 문장이 마음 한켠을 서늘하게, 또 쓸쓸하게 찌르는 느낌이었어요. 누구에게나 세상 속에서 ‘내가 점점 필요 없어지고 있나?’ 싶은 순간이 분명 있잖아요. 그래서 ‘정신의 탄력’이라는 말이 더 깊게 와 닿는 것 같아요. 마음을 붙들고, 나 자신을 끝까지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일은 쉽지 않고 무겁기만 한데, 그런 사람들에게 박완서 작가의 글은 참 울림 있고, 소중하게 느껴지죠.
 
악마의 시 2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8
살만 루시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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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현실이야. 우리는 현실 속에서, 바로 여기서 살아야 해. 계속 살아야 한다고”

지브릴은 그토록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고 바랐던 신을 보게 된다. 비록 기대했던 전능한 신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신성한 ‘말씀’의 축복을 내리기로 마음먹었다. 더 이상 꿈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의심을 버리고 나니 새로운 결심이 빈자리를 채웠다. 천사의 눈으로 들여다보면 겉모습이 아니라 실체가 보인다. 이 도시를 구하리라. 이 도시, 진짜 런던. 악의 힘이 얼마나 완강한지 실감할 수밖에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진 도시의 주민들을 바라보며 선을 널리 펼치겠다는 결심을 더 굳혔다. 앞서 1권에서 내출혈로 죽을 고비에 처했다가 회복과 동시에 ‘믿음’을 잃었던 지브릴. 비행기 추락사고 이후 천사의 모습으로 변신한 무신론자 영화배우 지브릴 파리슈타가 천사의 역할로 활동했던(?) 꿈에서 더 나아가 현실에서도 그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환상이 더 이상 환상이 아니라고? 대천사 지브릴의 존재에 대해 코웃음을 치는 사람들도 그의 꿰뚫는 시선을 떨쳐버리지는 못한다. 속마음을 털어놓고 나면 개운해지면서 꼭 해야만 하는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는 힘을 전달받아 대천사 지브릴과 하나됨을 느낀다. 오호! 분명 그럴싸한 변화가 있겠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앗! 영 기대치에 못 미치는 현실이 이어진다. 게다가 지브릴의 머리 뒤에 환하게 비치던 황금빛 후광마저 꺼져버렸다. 뭐지?

여기 이렇게 천상의 존재가 나타났건만, 눈부신 빛과 선을 뿜어내는, 빅벤보다도 거대한, 템스강 양쪽에 발을 걸칠 수도 있는 거인 같은 대천사가 나타났건만, 저 조그마한 개미들은 여전히 교통방송에 귀를 기울이며 다른 운전자들과 말다툼을 벌일 뿐이었다. ˝나는 지브릴이다.˝ 그의 목소리는 강변에 늘어선 빌딩들을 뒤흔들었다.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흔들리는 건물에서 지진을 피하려고 뛰쳐나오는 사람도 전혀 없었다. 눈멀고 귀먹고 잠든 자들. (p. 71)

최악의 바람둥이 영화배우 지브릴을 애인으로 둔 알리의 이야기도 조금 해야겠다. 그녀의 어머니는 바람이라면 자신의 죽은 남편만 떠올려도 진절머리가 나는데, 소중한 딸의 애인이 최악의 바람둥이 영화배우, 그것도 이제는 회까닥 돌아버려 천사라고 말하는 지브릴인 것이 못마땅하다. 지브릴에게는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기란 힘든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가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으로밖에 안 보이니 말이다. 알리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으며 안정을 찾아보지만, 연속적인 꿈은 여전했고, 자기가 알지도 못하는 언어인 아랍어로 된 시를 읊어대는 등 결국 ‘천사’를 또 하나의 인격체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리고 영화계의 슈퍼스타였던 지브릴에게 다시 영화를 찍을 기회가 찾아온다. 인도 라자스탄의 시소디아 왕조에서 따온 이름인 것으로 보이는 유명한 영화감독 ‘시소디아’를 만나게 된 것인데, 시소디아는 지브릴의 요양 기간 동안에 맛있는 음식이 가득한 상자를 가져와 중국식 사탕옥수수부터 봄베이식 요리까지 골고루 맛보게 해주며 회복을 돕는다. 화려한 제국이면서도 외부의 침략을 많이 받은 라자스탄의 역사처럼 시소디아는 지브릴에게 다시 한번 화려한 영화계에 발을 담그도록 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느낌상 평탄하게 잘 굴러가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이다. 어쨌든 지금은 알리가 집을 비워야 할 때 지브릴의 곁을 지켜주는 고마운 사람의 모습이다. 단지 혀만 짧을 뿐이다.

“괘괜찮아요. 돗돗 돌아올 때까지 여기 잇잇 있을게요. 지지브릴과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건 오히려 틋틋 특권이니까.” (p. 80)

이래나저래나 지브릴은 살만한 것 같은 분위기인데 애처로운 우리의 염소? 악마? 참차는? 머리에 뿔이 달린 털복숭이 악마이지만, 어딘가 애처롭게 느껴지는 참차의 이야기로 화제를 전환해 본다. 이런저런 과정을 겪고 난 뒤, 다시 인간의 모습을 찾은 참차! 지금 그는 자신이 살던 집 골방에 틀어박혀 언젠가 자기 부인과 함께 읽었던 단편 소설을 떠올린다. “겉으로 드러난 상처나 구멍 크기만 봐서는 내상이 얼마나 심한지 가늠할 수 없어.”라고 말한 소설 속 인물의 말을 떠올리며 세상의 온갖 눈물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기 시작한다. 나와 당신이 타인의 삶을 헤아려보듯이 말이다. 평범한 삶을 회복하겠다는 소망과 모순되는 현실의 일면들에 주저앉아버린 시간을 갖고 난 뒤에 참차는 분명 가슴 깊숙이 파고드는 무언가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일상생활의 진부함과는 전혀 양립할 수 없는 그 모든 일이 날이 갈수록 어쩐지 터무니없게만 느껴졌다. 얼굴에 물을 끼얹고 이를 닦고 무엇이든 진하고 뜨거운 것을 마시고 나면 제아무리 끈질긴 악몽도 저절로 잊히듯이. (p. 174)

참차의 삶을 들여다보는데 결국 우리네 삶과 다를 바 없는 모습에 동질감과 측은함이 밀려왔다. 나는 실제로 용기가 부족하고 무언가를 바꾸려 한다기보다는 관조하며 인정하는 태도에 더 가까운 사람이라서 참차의 삶에 더 관심을 두고 읽었다. 현재의 삶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고 결국엔 원하는 삶에 가까워졌지만, 내 맘처럼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삶이 아니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비행기 사고를 당했고, 또 기적처럼 살아났고, 그러나 그 기적이 불행의 씨앗이 되어 고통에 시달려야만 했던 그의 삶도 참 고단하다. 뿔 달린 악마의 모습을 했을 때, 사람들은 참차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겉모습만으로 판단하고 편견을 갖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은 채 상처를 주었다. 그때 그가 선택한 건 ‘순응’이었다. 모든 것을 감수해야 할 것으로 여기는 듯 구태여 숯검정 같은 속을 드러내지 않는 모습이 더 짠하다.

예전의 삶을 재창조하려고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그 사실을 되돌릴 수 없음을 이해한 것이다. 참차는 골방에만 틀어박혀 온갖 괴물들이 튀어나오는 텔레비전 채널을 마구 돌려본다. 마치 언젠가는 위안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며 점점 빠르게만 변화하는 세상을 구경하는 사람처럼. 그리고 수많은 비극 속에서 영국 땅에 자리 잡았다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긴다. 그의 의식적인 노력과 속세에 초연해진 듯한 모습은 무언가 휩쓸고 지나간 뒤 남은 좌절감과 고독함을 더 드러냈다. 그러나 참차는 허무와 패배의 감정에 그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준다. 다시 세상으로 나온다. 그가 세상에 다시 뛰어들게 만든 것,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나 역시 처한 상황을 타인과 연관 지어 더 깊게 파고들고 괴로워하고 분노하는 것이 자신을 더 힘들게 한다고 생각해서 비우려고 하는 쪽이다 보니 골방에만 틀어박혀 있지 않고 세상 밖으로 나온 참차의 발걸음이 내 마음을 개운하게 해주었다. 어쩌면 지브릴을 만난 뒤로 겪은 시련으로 인해 그의 존재 자체가 참차에게는 최악의 인연처럼 여겨지겠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 것일지도 모른다. 앞으로의 삶을 더 잘 살아갈 수 있는 강인함을 얻게 되었을 수도 있다! 살다 보면 여러 갈래의 길이 나타나는데, 분명한 것은 선택은 내 몫이라는 것이다.

워낙에 이야깃거리가 많아 인상 깊었던 것 한두 가지만 더 말해보자면, 이 소설은 막바지에 이르러 1666년 런던 대화재 사건부터 1879년 대영제국과 줄루 왕국 간에 일어난 줄루 전쟁까지 과거의 역사를 연결 지어 현재 런던의 한 카페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으로 우리의 시선을 이끈다. 이곳에 지블리와 참차가 있다. 사방에서 연기가 자욱하고 불길이 치솟는 상황에서 두 사람은 각자 본성을 드러내는 선택을 한다. 실제로 런던 대화재 사건은 영국 시민들이 악마의 숫자 666이라 하여 분명 이것은 신이 내린 재앙이라 보고 가톨릭교도를 공격하기도 했다고 한다. 빵집에서 일어난 불이 도시로 번졌던 것인데 말이다. 그러나 이런 재앙 속에 인간의 위대함도 드러나기 마련이다. 재건 작업을 위해 시민들이 연대하였고 정치 시스템은 여러 목소리를 수렴하였다. 결국 질서가 무너지고 공포로 가득 찬 분열한 사회 속에서도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듯한 이 장면이 2권의 핵심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다. 온갖 환상과 기괴한 설정에 정신없이 따라가게 만들지만, 결국 헤매며 따라갔던 내 두 발이 딛고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명확하게 보여주니 말이다. 지브릴의 꿈속 이야기 중에 대천사 지브릴의 계시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인도 농촌 마을에 사는 소녀 아예샤가 마을 사람들을 설득해 걸어서 메카로 순례를 떠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거부와 수용, 만류와 설득이 오가면서 위기와 기회가 공존했다. 서로에 대한 불신과 거부감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종교적 신념의 충돌을 담았다. 단순히 신념 차이로만 바라보기에는 종교적 대립이 사회적 요인과 얽히면서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인지 조금은 갑갑한 마음으로 읽어 내려가야만 했다. 물론, 각자의 신념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것이다. 그런데 이 장면은 종교 권력의 문제만을 드러냈다기보다는 분열한 세계를 포용하는 손길의 중요성을 보여준 것으로 읽혔다.


저자의 도발적이고 위험한 발상이 누군가에게는 자극으로 다가갈지도 모르겠지만, 언어의 자유를 통해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계기로 받아들이는 것이 어떨까? 나 또한 이 책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는지 종교와 관련한 이야기가 주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루슈디의 다른 소설보다 특정 나라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가 살아온 삶, 살아가는 삶, 그리고 살아내야 하는 삶에 더 가까이 다가가 있다고 느꼈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인의 지배에 따라 움직이며 현혹되는 사람들의 모습을 이 소설에서는 환상과 종교와 관련한 믿음 등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는데, 우리 삶에서 통제력을 상실하거나 삶의 균형이 무너지게 만드는 것은 많지 않은가. 거창한 것뿐 아니라 매스컴 등 사소한 일상과 연결되는 것들에서 너무나 쉽게 혼란에 빠질 수 있다. 꿈과 현실을 오가는 정신 사나움? 나는 오히려 이런 설정과 역사와 신화가 섞인 복잡한 이야기가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우리는 하늘에 헬리콥터들이 몰려오던 모습을 목격했고, 여기저기서 물대포가 사람의 머리를 향하고 있던 모습도 보았다.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당하고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배척당하는 사람을 보았다. 도대체 무엇을 얻기 위한 일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이들의 모습도 함께 보았다. 온통 분노에 휩싸이고 온갖 사건이 줄을 잇는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을 지키는 것이 어려워 용기를 내는 것이 점점 갈수록 두려워져만 가는데, 누군가 우리를 향해 전속력을 다해 돌진한다. 목소리를 잃고 가장 힘겹고 소외당하는 이들을 대신해 주는 이들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우리를 향해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이를 주시하는 자들의 공격이 시작될 것이 염려되어 아슬아슬하기만 한대, 그럼에도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바라보니, 분명 그들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살만 루슈디도 마찬가지다.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언젠가는 괜찮아질 거라는 자기 위안을 삼는 것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씩씩하게 목소리를 내는 그의 용기가 값지다.

나의 지적 수준이 루슈디의 발뒤꿈치에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눈만 끔벅거리며 읽는 순간도 종종 있었지만, 이슬람 이전 아라비아 시대의 설화라든지 그가 영향받은 작가와 작품들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에 개인적으로 루슈디의 작품 중 가장 읽기 수월하지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쉽게 손에서 내려놓지 못할 책이었다. 만약 이 책을 가장 먼저 읽어봤더라면 그의 다른 책으로 손이 쉽게 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혼자 내적 친밀감을 쌓고 나름 팬심을 가진 상태라 평균 이상의 ‘좋음’을 느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안개 속을 거치면서 끝끝내 밖으로 나오는 수고와 노력을 할 수 있었다. 2권의 후반부로 가면 신화와 역사가 뒤섞인 이야기, 마치 상상 속 이야기가 현실 세계로 빠져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뒤죽박죽 정신을 흔들어 혼란스러움을 겪은 독자의 널뛰는 감정에 ‘죽음’이라는 경건함과 장엄함을 느끼게 하는 주제가 담긴 서사가 더해지면서 코끝을 찡하게 만들어준다. 아주 잘 읽었다. 작품 바깥의 소음에 휩쓸려 소홀히 대하기에는 너무 아깝고 소중한 작품이라는 번역가 김진준 님의 글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마지막 장을 덮었다.

삶을 되비추는 거울인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면 삶의 모든 원망과 다툼, 그리고 질투심을 씻어내려 준다는 것을 경험했던 살만 루슈디. 복수를 용서로 극복했던 사람.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 난 이들을 바라보며, 이 모든 것을 깨달을 때쯤이면 너무 늦는다는 것, 이 가혹함을 경험하지 않길 바라는 그의 진심이 녹아들어 있는 소설로 기억될 것 같다.

“우리는 아직도 숭고해질 수 있는 존재다, 우리는 아직도 한계를 초월할 수 있는 존재다” (p. 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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