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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심사 프로그램에서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전혀 없었는데,
연달아 통과하자 이제는 멈추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달라진 마음가짐 때문에 내 약점이 드러나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내꿈이 외부의 승인과 타인의 인정에 좌지우지되는 건 아닐까, 하는의구심도 들었다. 그러나 혹시 그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그렇게 이상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어쩌면 꿈도 생명체처럼 크게키우려면 보살핌이라는 품이 필요할지 모른다. 약간의 격려로 흙에서 머리를 빼꼼 내민 내 꿈은, 이제 작은 새싹처럼 빛을 향해 스멀스멀 뻗어나가고 있었다. - P189

너무 캄캄해서 시계를 확인하고서야 아침이 왔다는 걸 알았다.
창밖의 진흙탕에 빗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누워 있었다. 쓸쓸함이 반가웠다. 한동안 누워 있다가 하릴없이 침대에서 일어나 고통스러운 하루로 걸어 들어갔다.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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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봄,
하얀 물감 한 방울 ‘똑’ 떨어트려 놓은 분홍빛 세상.
포근하고 좋다.

요즘은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스콧 알렉산더 하워드의 <시간의 계곡>을 읽고 있다. 저자는 친한친구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을 안고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라는 아이디어를 시작으로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총 2부로 나눠져 있고 아직 1부도 다 못 읽었다.

동쪽으로는 20년 후 미래의 시간, 서쪽으로는 20년 전 과거의 시간이 흐르는 마을이 있다.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 보낸 상실감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각자의 사연을 담아 자문기관에 신청 후, 심사를 통해 승인을 받은 이들로 한해서 ‘애도여행’을 다녀올 수가 있다. 멀리서 관망하며 말이다.

나는 양쪽 다 서글프게만 느껴진다.


소재가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다.
”가능만 하다면 과거든 미래든, 가 볼 의향이 있어?” 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주고 받으며 사뭇 진지하게 고민해 본 경험이 다들 있지 않은가?

철학자인 저자가 상실감을 어떤식으로 풀어나갈지 궁금하면서도 무거운 마음이 드는 것은 역시 피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현재 읽고 있는 부분은 반짝이기만 한 10대 소년 소녀들의 천진난만함을 느낄 수 있는 모습들이 많이 담겨져 있고, 부끄러움으로 붉어진 얼굴을 숨기지 못하는 아이들의 순수함으로 읽는 내내 마음이 정화 되는 것 같았다.

여름 날, 숲 속 깊은 곳에서 쏟아질 듯한 별을 바라보며 온 세상이 행복으로만 가득 찬 것 같은 느낌이 주는 충만함과 고만고만 한 녀석들이 자기네들끼리 신나서 킥킥 거리는 와중에 코를 자극하는 풀내음에 들숨 한번, 날숨 한번 해 보는 그런 감성.

예상되는 슬픔은 잠시 안 보이는 곳으로...
저 깊숙한 곳으로..


봄을 만끽할 수 있도록 피어있는 꽃들로 출퇴근길이 풍성해서 좋다. 곧 꽃비를 맞게 되겠지?

생각지도 못한 적립금 선물로 기쁨이 대기권을 뚫고 올라가는 바람에 감사한 마음을 담아 이 미천한 먼지가 할 수 있는 것이 ‘독서’뿐이라 책을 몇 권 샀다.

히죽히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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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5-04-09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수린, 김연수 작가님의 작품들 좋습니다~!! 시간의 계곡 표지랑 내용이 마음에 드네요~!!!

곰돌이 2025-04-09 18:04   좋아요 0 | URL
시간의 계곡은 책 크기도 살짝 큼직하고 자간 간격도 맘에 들어요!! 그리고 감정 묘사가 섬세해요...술술 읽혀집니다 ^^
 

한때는 간절한 마음이 전부였던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었건만 이제는 서로를 비추는 두 개의 거울처럼, 서로의, 서로에 대한 기억들만이 원망의 목소리도 흐느낌도 한숨 소리도, 웃음소리도 없이 순수한 묵음으로 남아있을 뿐이니. - P173

거기에는 그저 어둠뿐이었어. 세상 누구도 기억하지 않을, 그저 캄캄한 밤바다. 그런데 가만히 바라보노라니까 그 어둠 속에도 수평선이 있어서 어둠과 어둠이 그 수평선을 가운데 두고 서로 뒤섞이는 거였어.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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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인생도 바꿀 수 있지 않겠어? 누가 도와주는 게 아니야. 이걸 다 우리가 할 수 있어. 우리에게는 충분히 그럴 만한 힘이 있어. 그게 나의 믿음이야. 하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순간은 찾아와. 그것도 자주. 모든 믿음이 시들해지는 순간이 있어. 인간에 대한 신뢰도 접어두고 싶고,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때가. 그럴때가 바로 어쩔 수 없이 낙관주의자가 되어야 할 순간이지. - P121

그가 늘 믿어온 대로 인생의 지혜가 아이러니의 형식으로만 말해질 수 있다면, 상실이란 잃어버림을 얻는 일이었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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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과 함께 온 책 그리고 끄적거림 -

김연수 작가님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읽고 있다.
아직 진도가 많이 나간 건 아니지만 삶의 본질을 알려주는 내용이 철학적으로 다가왔다. 부담스럽지 않고 딱딱하지 않으며 다정하다.

(P. 58) 섣불리 희망을 가질 수도, 그렇다고 무기력하게 절망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 속에서 일희일비하는 동안 검게 물든 삶은 느리고 더디게 흘러갔다.


원치않는 이별로 황망함에서 빠져 나오지 못 한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영혼이 죽어버린 것 처럼 삶의 비관과 낙담으로 일말의 기대없이 어쩔 수 없이 매일 아침 눈이 떠져서 사는 사람들 분명 있을 것이다. 행복을 꿈꾸기에 불행을 느낀다.

진부한 말이지만 내 맘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책을 만났다.
이럴 때 나는 ‘안심’을 하게 된다. 내가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겪고 사는 감정을 느끼며 살고 있구나 하는 안심.
여러 감정 중 내 안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상실감의 귀퉁이 하나라도 닮은 모양만 발견해도 그게 그렇게 반갑다. 그리고 내 맘에 꽂히는 단어 하나에도 마음을 일렁이게 한다. 나는 그렇다.

필요한 건 하나였다.
남아있는 의심이나 삶의 대한 회의감을 아직 말끔히 치우지 못 했어도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을 만큼의 자리는 남겨둘 수 있도록, 스스로 마음 청소를 해야 한다는 것.

비관적이고 낙담했던 내가 그리고 당신이, 이 책까지 마음에 품을 수 있다는 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삶의 본질을 알아가는 중이라는 ’신호‘ 아닐까? 후훗.


(P.70) 그 막막한 자유속에서 그녀는 끊임없이 어떤 이야기를 만들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변화’가 절실했던 시기가 있었다. 내 삶의 우선순위에 일, 연애, 여행 말고 ‘가족’이 빠져있던 그때. 매일같이 휘몰아치는 업무에 눈이 빠져라 규정은 들여다봐도 ‘책’은 적당히 몇 권 책꽂이에 꽂아두고 장식처럼 방치 하면서, 놓치고 있는게 뭔지도 모르고 꽤 괜찮은 삶인 줄 착각하며 해망쩍은 생각을 하며 살았던 그때.
망아지 날뛰듯 했던 그때를 떠올리니 겪어보지 않고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인생에 딱 한번 선물로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럼 난 숫제 후회의 길을 들어서지도 않았을텐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에 또 잠시 젖어본다.

(P. 23) 시간의 끝에, 모든게 끝났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에 이르렀을 때 이번에는 가장 좋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기를


기다리던 소식과 함께 반가운 책들이 도착했다.
괴나리봇짐 둘러메고 어디 한적한 곳에 틀어박혀서 먹을 것 잔뜩 옆에 두고 책만 읽으면 딱 좋겠다......찡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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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5-04-03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다정한 김연수 작가님입니다 ㅋ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를 잘 쓰셨네요~!! 책탑에 반가운 책들이 많이 보입니다~!!

곰돌이 2025-04-03 09:20   좋아요 1 | URL
새파랑님 덕분에 <빈 자리> 잘 모셔왔습니다 :) 김연수 작가님 책 너무 잘 읽고 있어요. <일곱 해의 마지막> 도 제가 좋아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기웃기웃..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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