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 해 동안 읽은 책 중에서 꼭 다시 읽어보고 싶은 작가의 책 위주로 몇 권 구매를 했다. 물론, 처음 읽게 된 작가의 책도 있다. 앞서 읽고 평을 올려주신 분들 덕분에 힘들이지 않고 도움받아 고를 수 있어서 반갑고도 감사한 마음으로 품에 들였다. 무사히 도착한 책들을 차가운 냉기로 가득한 상자 속에서 꺼내 한 권 한 권 만지작거리다가 빳빳한 종이에 지문이라도 남겨 정도 쌓고 분위기만이라도 느껴볼 겸 앞부분만 가볍게 읽어보았다.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헤르쉬트 07769>, <죔레가 사라지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부터!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가시덤불땅에 헝가로셀 패널 오두막에서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 있는 한 남성(직업은 교수)! 창문 밖에는 그의 딸이 지역 TV 방송국 취재진과 신문 기자들을 우르르 데리고 와서 무언가 받아야 할 것을 받아낼 때까지 떠나지 않을 기세를 보이며 버티고 있다. 혼외로 얻은 딸이 있다는 사실도 기억나지 않는데 19년이나 지난 뒤에 “이제 빚을 갚으시지.”라는 팻말까지 들고 와서 설쳐대고 있으니, 교수는 모든 것이 적절히 계산되고 의도된 계획 앞에 지금 무진장 심란하다. 아니, 그런데 교수의 대응 방식도 만만치 않다. 냅다 방아쇠를 당겨 사람들을 쫓아내는 게 아닌가! 아직 벵크하임 남작도 못 만났으니 더 읽어봐야 알겠지만, 전에 읽은 <사탄탱고>보다는 시작이 덜 무겁게 느껴진다.

자신이 마땅히 기억해야 하는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자신을 보호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므로 그는 모든 조각을 맞추려고 발작하듯 애썼으나 모든 것이 아무 의미도 없었으니 아무것도 예상 가능한 방식으로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요,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p. 27)

라슬로의 신작 <헤르쉬트 07769>는 구매 전 책 소개를 읽자마자 개인적인 취향을 자극해 이건 재미가 없을 수가 없겠다 싶어 바로 구매했다. 종말 앞에 선 인간의 정당한 태도를 고민하게 한다는 점이 내가 느낀 라슬로의 매력 중 하나인데, 그의 작품은 대체로 음울하고 불안한 심리를 다루는 것으로 보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헝가리 유대계 중산층에서 자란 라슬로가 보고 듣고 느낀 세상을 떠올려보면 그렇다. 쉼 없이 이어지고 반복되는 비극적인 언어라도 현실의 붕괴 그 안으로 진입하려는 시도 자체가 삶의 가치를 찾으려는 노력, 스스로 삶의 방향을 설정하려는 의지로써 읽힌다. 긴말이 필요 없다. 상당히 재미있다! 누군가 생사와 직결된 중요한 문제를 담은 편지를 독일 연방공화국 총리, 앙겔라 메르켈에게 보내려 한다. 보내는 이 주소를 적는 왼쪽 상단에 헤르쉬트 07769만 적은 이 수상한 편지의 목적은 확실하다. 문제의 중요성을 파악하고 즉시 안보리를 소집할 것! 편지를 보내려는 이의 정체는 독일 튀링겐 동부 전역에 이름난 담벼락 청소 사업을 하는 독일인 보스 밑에서 일하는 ‘플로리안’이다. 일단, 그의 보스가 어떤 인물인지부터 간략히 설명해야 할 것 같다. 네오나치 성향인 인물로 플로리안에게 서독의 국가를 부르라고 명령하며, 목소리가 맥이 없으면 너는 유대인이나 뭐 그런 거냐고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독일인은 음악에 분명하고, 멋진 귀를 가지고 있다나 뭐라나…. 암튼, 독일에 ㄷ만 나와도 칭송부터 나오는 사람이다. 그 와중에 눈치는 또 얼마나 빤한지 자기 혼자만 재미있는 농담에 지루함을 느끼는 플로리안을 절대 그냥 못 넘어간다.

다아아앙연히 이 모든 것이 지루하지, 딱 봐도 그래! 보스는 엔진 넘어 고함을 질렀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플로리안은 목을 한 대, 보스가 농담으로 부르듯이, 찰싹 맞았다, 말 그대로, 난데없이, 한 대 찰싹, 그리고 그걸로 끝, 플로리안이 오랫동안 당연시하던 손찌검으로 막을 내렸다, 보스는 대화에 오른 이런저런 주제는 한 대 때리는 일로 마무리했고, 그는 어깨만 한 번 으쓱하고 자신의 운명이 이런 것이려니, 털어버렸다, 보스가 자신의 운명이고 그것은 바꿀 수 없기에, (p. 25)

보스의 위압적인 태도에 입도 벙긋하지 않고 기분 나쁜 내색 한 번 하지 않는 다소 순종적인 플로리안은 시민대학 강좌를 진행하는 ‘쾰러’ 선생님에게 물리학 수업을 듣고 나와 집으로 가던 중, 선생님이 전하려는 말을 뒤늦게 파악하고 벼락에 맞은 듯한 충격에 휩싸여 지금 보스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상태다. 세계가 붕괴할 것이라는 우주론적 예측에 사로잡혀 있는 플로리안과 그를 진정시키는 쾰러의 대화는 이 소설의 맨 처음 장면인 생사와 직결된 문제를 담은 편지를 플로리안이 왜 써야만 했고, 왜 독일 총리, 그것도 자연과학자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게 보내야 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해 준다.

하늘을 봐, 저 구름을 봐, 이렇게 들어오는 햇살을 봐, 이것들은 다 만져지는 실제적인 것들이야, 너는 이 모든 진공 문제니 뭐니에 너무 깊이 정신을 팔 필요가 없어, 결국 네가 아예 완전히 잠겨 헤어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특히 너를 무겁게 짓누르는 것은 양자물리학의 무력한 실패가 아니라 제한적인 인간 정신의 파탄인 탓이야,

나는 하늘을 올려다봐도, 쾰러 선생님, 더 이상 행복하지 않습니다, 나는 두려움에 완전히 사로잡혀요, 왜냐면 내가 얼마나 무력한지, 우주가 얼마나 무방비한지 느껴져서 공포에 사로잡혀요, (p. 35)

물리학 지식이라고는 어린 시절부터 읽었던 책 정도에 불과한 데다가 직업학교를 졸업한 뒤 받은 중등학교 졸업장만 가지고 있는 플로리안은 이런저런 계기로 쾰러가 멘토가 되어 매주 대화를 이어가며 지내왔다. 조금은 어리숙하고 부족하지만, 물리학적 종말론에 대한 플로리안의 고뇌는 굉장히 심오하고 철학적이다. 휴, 그건 그렇고 편지를 다시 써야 할 지경이다!! 감히 총리에게 보내는 편지에 “젠장”이라고 적어버린 게 아닌가. 흠...



<순수 박물관> 오르한 파묵

최근에 오르한 파묵의 <눈>을 읽고 그의 책을 좀 더 검색해 보았다. 현재 소장하고 있는 <내 이름은 빨강> 외에 가장 눈에 들어온 것은 <순수 박물관>이었다. 곧 약혼하고 결혼할 참인 이스탄불 상류층의 서른 살 케말과 그의 먼 친척이자 가난한 열여덟 살 퓌순의 사랑. 서로를 강하게 그리고 격정적으로 끌어안으며 희열을 위해 서로를 이용한다. 퓌순이 내지른 고함과 케말의 행복한 외마디 신음 외에, 극도의 정적에 휩싸인 방 안의 침대 위 두 남녀는 벌거벗은 채 서로를 껴안고 누워 있다. 별로 이해하고 싶지 않은 이들의 흥분과 더없는 기쁨의 감정이 케말에게는 인간의 가장 순수하고 가장 원초적인 감정을 주고받았던 일과 오랜 세월 동안 후회할 말들과 행동일지 몰라도 내 눈엔 불순한 과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구태여 시간이 흘러 기억해 내고 꺼내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 혹시라도 마음 한구석에 있던 외로움을 들먹거리며 회유하는 어조로 다가오거나 현학적인 말로 교묘히 속아 넘어가게 한다면 비난을 마구 퍼부어주겠다고 다짐하며 읽어 내려갔다.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비밀과 불안, 두려움이 있다고 생각했다. 저 잘 차려입은 손님들 가운데 몇 명에게 이상한 불안과 정신적 상처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사람들 속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한두 잔을 마시면, 우리가 고민했던 것들이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그저 순간적이라는 것이 드러날 것이다. (p. 62)

무한하고, 어린아이 같은 섹스의 희열 이외에, 나를 그녀에게 매이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혹은 어떻게 그녀와 그렇게 진심 어린 형태로 사랑을 나눌 수 있었을까? 사랑을 낳은 것은 섹스의 희열과 계속해서 반복되는 그 욕구였을까, 아니면 이 욕구를 낳게 하고 키웠던 다른 것들이었을까? 퓌순과 매일 몰래 만나 사랑을 나누었던 그 행복한 나날에는 나 자신에게 이런 질문들을 전혀 하지 않았고, 그저 사탕 가게에 들어간 행복한 아이처럼 쉬지 않고 열정적으로 게걸스럽게 사탕을 먹곤 했다. (p. 93)

모든 것을 잊고 사랑을 나누었던 그 순간, 창문으로 불어오는 봄바람과 지저귀는 새 소리부터 시야에 들어오는 물건 하나하나를 추억처럼 떠올리는 케말의 모습을 보자니, 공간과 사물에 대한 기억을 예민하게 끄집어내는 사람인 것 같다. 이것이 퓌순을 그리워해서인지, 퓌순과 사랑을 나눴던 그 때의 나 자신을 그리워하는 것인지, 그 어느 것도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당시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가 불안정하게 공존했던 사회적 분위기와 여전히 폭력과 차별에 시달리는 튀르키예 여성의 모습을 미화하지 않는 이 소설을, 누군가의 인생이 옳았는가 아닌가보다는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한 시선으로 보려 한다. (아직 이 소설의 끝을 보지도 못했고...) 니샨타쉬의 세속적인 부르주아로 지내면서 그에 걸맞은 여성과의 결혼을 앞둔 케말은 퓌순을 잊겠다며 마음먹지만, 그게 그리 쉽지는 않고 이슬람의 보수적인 분위기 속에서 서구화된 자유로움이 드러나는 퓌순은 현실적인 욕망이나 삶에 대한 주체적인 계산 또한 하지 않는 모습이다. 그런 퓌순을 계속 옆에 둘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는 케말의 모습에서 가난한 이슬람권 여성을 바라보는 평면적인 시선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렇다면 케말은 배덕감에서 쾌감을 느끼는 인간 이었단 말인가? 쉽게 벗어날 수 없는 퓌순과의 만남에 죄책감과 두려움을 바꿔주는 무언가를 찾으며 지내는 그의 있는 그대로의 삶의 한순간, 꿈의 세계가 아닌 현실 세계의 일부라고 느끼게 해 준 그날을 좀 더 따라가 본다.



<모비 딕> 허먼 멜빌

모비 딕은 평소에 읽어보고 싶었으나, 선뜻 고르기가 쉽지는 않았는데 허먼 멜빌의 단편을 읽고 난 뒤 고민할 필요 없이 바로 구매했다. 분량으로만 치면 바라만 봐도 심사가 고달파지지만, 허먼 멜빌의 글을 안 읽어봤으면 모를까 절대 외면할 수가 없었달까.

“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고 해두자.”

불구덩이 같은 가슴 속 열기를 좀 식히고 우울한 기분을 떨쳐버릴 겸 배를 타고 나가 두루 둘러볼 생각인 남자, 이슈메일. 내가 멜빌의 글에 이끌려 모비 딕까지 덥석 들었듯, 이슈메일도 나침반 바늘의 자력에 이끌리듯 모여들게 만드는 바다에 승객으로서가 아닌 (뭐, 주머니 사정이 좋지도 않고...) 선원으로 나갈 생각이다. 시련이나 고생 따위는 딱 질색이라고 말하지만 꿈보다 해몽이 좋은 것처럼 나름 현실에 자신을 맞춰가는 사람처럼 보인다. 자존심이 박박 긁히는 상황 속에서도 뭐, 별 수 있나. 고달파해야 나만 손해이니 괴로움 따위는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사라진다고 생각할 수밖에! 바닷물 못지않게 적잖은 짠내와 전혀 개의치 않다는 듯 쿨내를 동시에 풍기는 이 남자.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해봤자 먹고 싸고 자고 남다를 게 없는 인간 세계에서 벌어진 비극에 신물이라도 난 걸까. 어찌 됐든 저항할 수 없는 힘에 의해 고래잡이 항해에 뛰어들었다. 경이의 세계로 통하는 거대한 수문이 열리고, 나 역시 마치 놀이기구를 타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곧 입장하기 직전에 두근거림처럼 바다에서의 모험에 설렘으로 가득 차 있다. 아, 그런데 출항은커녕 배에 타기까지도 영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아직 여행 가방도 안 싸놓은 이슈메일이 멜빌과 닮아 말이 여간 많은 게 아니라서 포경업의 비상지이기도 하고, 미국에서 최초로 고래의 사체가 해안에 떠밀려 온 곳이라는 낸터컷 섬 얘기도 해야 하고, 지갑이 두둑하지 못하니 날씨도 더 춥게 느껴져 불안한 마음에 주머니도 괜히 일없이 뒤져봐야 하고 그 외 뭐뭐뭐뭐 다 들려줘야 하니 말이다. (헥헥) 입담이 워낙에 좋아 나름 술술 읽히게 해주니 요 맛에 보는 재미도 있다. 별 의도를 갖고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닌 듯하면서도 내뱉는 말 속에 철학을 품고 있는 멜빌의 글은 역시나 굿이다!



<두 도시 이야기> 찰스 디킨스

사실적이고, 강렬하며, 날카롭게 적힌 문장이 18세기의 런던과 파리 두 도시의 상대적인 모습을 단숨에 눈앞에서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도록 한다. 단 몇 장만 읽어도!

깊이 생각해볼 놀라운 사실 하나, 모든 인간이 서로에게 심오한 비밀이자 수수께끼라는 것. 밤에 대도시에 들어설 때면 숙연하게 떠오르는 생각 하나, 저기 시커멓게 옹기종기 서 있는 모든 집들이 나름대로 비밀을 품고 있으리란 것, 저 모든 집의 모든 방도 나름대로 비밀을 품고 있으리란 것, 저곳의 수십만 가슴 속에 뛰고 있는 심장들도 저마다의 생각 속에서는 가장 가까운 심장에게조차 비밀스러운 존재란 것! 무엇인가 경외로운 것, 심지어 죽음 자체도 이와 비슷할지 모른다. (p. 28)



<흥분이란 무엇인가> 장웨이

기회가 닿으면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폴스타프님의 리뷰를 읽고, 주저 없이 모셔 왔다. 옌롄커와 위화 과가 아니라 츠쯔젠에 가깝다는 말씀에 어떤 느낌일지 짐작은 조금 가지만, 뭐든 읽어봐야 알 수 있으니 가장 먼저 실린 「대추나무 지킴이」와 표제작 「흥분이란 무엇인가」부터 읽어봤다. 그런데, 책 제목이 좀... ㅋㅋ 한 장, 두 장 책장은 넘어가고 이내 미소가 지어진다. 갑자기 뜬금없는 얘기지만, 작년 12월 내란 우두머리 피고인석에 앉은 전직 대통령이 ‘통닭 계엄론’을 주장하는 모습을 보고 기가 찼던 기억, 그리고 예능에 나와서 맥주는 통닭이랑 먹어야 탈이 안 난다는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를 한 것까지 떠올라 사람 참 한결같다며 헛웃음 짓다가, 모진 삶 속에서도 균형을 알고 조화를 이루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그야말로 정말 환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이야기를 읽으니, 마음까지 산뜻해지는 것 같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다. 장웨이 탓이다!) 시대적 혼란을 잊게 할 만큼 때 묻지 않은 순박함이 느껴지는 시골 소년 네 명이 나누는 대화에는 실컷 소리 내 따라 읽다가도 마음 한편이 쓰라리기도 했지만 말이다.

인민공사 사원 모임이 시작되었을 때 다전쯔를 비롯해 그녀와 같이 어울려 다니는 처녀 몇 명은 어둑어둑한 그림자 속에서 한참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는 중이었다. 몇 번이나 누군가의 제지를 받고서야 겨우 잠잠해졌으나 그것도 잠시, 얼마 안 돼 또 히히 하하 웃음이 터진다. 스웨터 뜨개질을 하며 웃고, 가장자리 레이스 처리를 하면서 웃고, 땅바닥 풀주기를 비틀며 웃고... 손을 가만히 두지 않는 건 물론, 입도 쉬지 않는 그녀들이었다. ( 「대추나무 지킴이」, p. 7)

“이게 인삼하고 거의 비슷한 보약이여. 많이 먹어도 안 되고. 울 아부지 말이, 젊은이가 많이 먹으면 코피 난단다.”
“어메— 진짜, 향기 좋네!” 징둥이 더덕을 씹으며 말하자 장유취한도 말했다.
“모름지기 ‘삼(蔘)’자가 들어가는 건 다 천연 보양식이지. 해삼, 인삼, 현삼⋯⋯ 또 ‘당(黨)삼.’ 공산당원이라야 먹을 수 있는 삼.” (「흥분이란 무엇인가」, p. 184)



<후리> 카멜 다우드

알제리 내전 동안 일어난 참혹한 비극을 담았다는 것에서 고민 없이 바로 구매한 책이다. 기억을 금지하는 곳의 이야기를 드러내며 기억을 되살리려는 작가 카멜 다우드의 메시지가 담긴 2018년의 알제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티 없이 맑고 파란 하늘에 휘날리는 하얀 천을 담은 표지가 온몸을 바람에 맡긴 듯 자유롭게 다가오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스치는 바람에도 쓰라린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추위에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처럼, 온몸이 멍에 들어버린 것처럼 아파진다.

내가 네게 말은 하고 있지만, 네가 듣는 내 목소리는 소리가 아냐. 종잇장을 넘길 때 나는 소리, 겨우 그 정도겠지. 게다가 바다를, 개들을, 한 척의 배를, 야자수들을, 아니면 어둠 속에 희미하게 드러난 내 얼굴을 정의 하는 게 무슨 소용이겠니. 정의란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일 뿐이잖아. 다 안심하기 위해 필요한 거지. (p. 15)



비탄 없는 완전한 삶을 누리고 사는 사람이 지구상에 존재할까? 책에 등장하는 인물의 저마다 다른 삶의 궤적이 때로는 새로운 하루가 저 멀리 내려오는 것처럼, 또 때로는 금방이라도 장대비가 쏟아질 것처럼 먹구름에 휩싸이듯 했다. 어디에서도 토로할 수 없는 내면의 고뇌를 가진 인물의 삶 속에 내 삶을 비추는 지점들이 분명 있었다. 어떤 경계에 서서, 그 경계선 너머 무언가를 혼자 그려보는 동안 느꼈던 고독은 상황과 환경이 달라도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라 생각한다. 내가 별다른 재주는 없지만 나한테 잘 맞는 재미있는 책 고르는 재주만큼은 있는지 각기 다른 개성과 매력을 느끼면서 꽤 만족스럽게 있었다. 읽었다? 아니다! 읽었다고 말하기도 뭐할 만큼의 분량만 읽어서 맥락을 잘못 짚은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하긴, 그럼 뭐 어떤가. 즐겼으면 그만이다. 일상의 고단함에 보상처럼 다급함 없이 안으로 향하는 감각에 평화로움을 느껴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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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6-01-17 2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 도시 이야기를 다시 읽으려고 주문했어요. 감사합니다.

곰돌이 2026-01-17 21:24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 저도 호시우행님 따라서 잘 읽어 보겠습니다!!

rainbass 2026-01-19 0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들의 앞부분만 읽으신것 맞아용?? 😮😮😮

곰돌이 2026-01-19 06:36   좋아요 1 | URL
넵! 어쩌다 보니 말은 길어졌지만...(풉) rainbass님 덕분에 <두 도시 이야기>를 읽어볼 수 있었네요. 감사합니다! 책마저 아주 예뻐서 더 마음에 듭니다.

그레이스 2026-01-19 21: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 도시 이야기 지난달 재독했어요.
모비딕도 반갑네요.
헤르쉬트..도요 반갑네요.
막 기대됩니다.
설산의 사랑도 샀어요.
저항의 멜랑콜리 먼저 읽어야해서 조금 지체 될듯합니다 ^^
저렇게 세워놓으니 아름답습니다. ^^

곰돌이 2026-01-19 21:42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 저는 안 읽어본 책이 워낙 많아서 홍수가 났습니다. 철철철... 대신에 야금야금 읽어볼 거리가 많아서 좋다고 해야겠지요? 큭! 헤르쉬트 몇 장 읽어봤는데 꽤 재미있었어요.
 

<백년보다 긴 하루> 중에서...

사로제끄의 간이역들에서 살아가려면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파멸한다. 스텝은 광대하고 인간은 비소(小)하다. 스텝은 어느 누구의 편도 들지 않으며 누군가가 곤란에 처해 있건 사정이 두루 다 좋건 그런 데는 상관하지 않는다. 스텝이란 결국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에 언제까지고 무심할 수가 없다. 그는 자기가 어딘가 다른 곳에서라면 더 행복할 터인데도 다만 운명의 장난으로 거기까지 오게 되었다는 생각에 불안해하고 괴로워한다. 그리고 이 때문에 그는 거대하고 가차 없는 스텝 앞에서 좀 더 진득하게 참질 못하고 의지를 잃는다. 마치 샤이메르젠의 삼륜차 배터리가 전압을 잃어 가듯이, 그 차 주인은 차를 손질하기는 해도 그 차를 타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빌려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 차는 마냥 세워져 있을 뿐이고, 얼마 안 있으면 배터리가 다 닳아 시동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사로제끄의 어느 간이역에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 P21

그는 자기가 늙은이로 변할 때까지 여기에 남아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때때로 그 시절의 오래된 사진들을 들여다볼 때면 지금 그의 모습은 얼마나 형편없이 달라져 있는가! 그는 반백의 노인으로 변했고 이제는 눈썹까지도 하얗게 세었다. 그의 얼굴 모습 역시 변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체중이 불지는 않았다. 그 기간을 죽 지나오면서 처음엔 그는 구레나룻을 길렀었다. 그리고 다음에는 턱수염을 길렀지만 이제는 말끔히 면도를 해버린 탓에 얼굴이 휑해 보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 시절로부터 한 시기의 모든 역사가 다 지나가 버렸다고. - P48

이제 관자놀이의 실핏줄처럼 중동 지방의 거대하고 누런 스텝 한쪽 끝에서 다른 한끝까지를 가로지르는 가느다란 실과도 같은 그 철도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그러나 아직은 그 핏줄이 고동을 멈추지 않았고 기차들은 계속 오가고 있었다. - P116

예지게이는 그 자신에게, 그가 이 가족을 대신해서, 마치 그들의 문제가 자신의 문제이기라도 한 것처럼, 느끼는 분노와 쓰라림에 놀랐다. 그들이 과연 그에게 누구였을까?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이건 내 일이 아냐.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지?>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는 자기와 상관없는 일에 판단을 내리거나 편을 들려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을까?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 스텝 지방의 사내 -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런데 어째서 그가 속이 뒤집혀야 했을까? 어째서 그가 세상일이 옳거나 옳지 못하다는 문제로 그의 양심을 괴롭혀야 했을까? 분명히, 아부딸리쁘의 곤경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그보다, 부란니 예지게이보다 천배는 더 잘 알 것이다. 그들은 사로제끄에 뚝 떨어져 있는 그보다 사리를 더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더구나, 그것이 그의 일도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도 그는 평온해질 수가 없었다. - P174

만꾸르뜨로 변해 버린 아들을 보고 나이만-아나는 괴로워하며 미칠 듯한슬픔과 절망 속에서 이렇게 한탄했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으로 네 비명이 사막을 가득 채웠을 때, 밤낮으로 애타게 신을 부르고 몸부림치며 헛되이 하늘의 도움을 기다렸을 때, 네 고통받는 몸에서 뿜어져 나온 가래로 숨길마저 막히고 네 발작으로 뒤틀린 몸의 역겨운 배설물로 더럽혀졌을 때, 그 더러운 오물에 빠져 이성을 잃고 구름같은 파리 떼에게 시달리며 뜯어 먹힐 때 - 그때 네가 어찌 마지막 숨을 몰아 이 버려진 세상에 우리들 모두를 태어나게 한 신을 저주하지 않았겠느냐?

어둠의 그늘이 고통으로 갈가리 찢긴 네 영혼을 영원히 덮어 갈 때, 억지로 부서진 네 기억이 지난날과의 연상을 영원히 잃어 갈 때, 거친 몸부림 속에서 네 어미의 모습과, 네가 어릴 적 뛰어놀던 산중의 개울물 소리를 잊어 갈 때, 네 황폐한 의식 속에서 네 자신의 이름과 네 아버지의 이름을 잊고 네가 둘러싸여 자랐던 사람들의 얼굴이며 네게 얌전히 미소 짓던 처녀의 이름마저 희미해져 갈 때 - 그때 너는 어찌 바닥 모를 망각의 구렁텅이 속으로 떨어져 내리면서 고작 이런날을 살게 하려고 너를 자궁 속에 품었다가 신의 빛 속으로 내질렀다며 가장 지독한 욕설로 네 어미를 저주하지 않았겠느냐?」 - P185

그가 통나무로 엮어 만든, 높이가 사람 키만큼이나 되고 튼튼한 쇠사슬로 잠긴 문을 채 다 열기도 전에 까라나르가 그를 밀쳐 넘어뜨리더니 사납게 울부짖고 으르렁거리며 그 길쭉한 다리를 한껏 뻗어 달려 나왔다. 그러고는 탄탄하고 검은 혹을 흔들어 대며 쏜살같이 스텝으로 내달았고, 잠시 뒤에는 발굽에 채어 오른 구름 같은 눈에 가려 흐릿해지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저 염병할 놈!」 낙타 주인이 뒤에다 대고 욕을 해댔다. 그러나 다음에는 진심 어린 동정이 배어들었다. 「그래, 달려라! 서둘러라, 이 바보야. 안 그러면 너무 늦을 게다!」 - P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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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리얄리 2026-01-13 1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열린책들의 깝깝한(!) 편집에 처음 중독된 책이기도 하고, 정말 개인적으로 잊을 수 없는 책인데, 표지를 보니 갑자기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이번에는 눈물 한 방울 찔끔하지 않을 것을 목표로...

곰돌이 2026-01-13 17:26   좋아요 0 | URL
저는 처음에 인물들의 이름이 영 입에 붙지 않더라고요. 표정이 고스란히 그려지는 섬세한 묘사 때문인지 중간에 읽다가 육성으로 탄식이 나오기도 했고요. (훌쩍) 문장은 왜 이리 아름다운지! 그쵸? 아, 그리고 얄리얄리님, 분명 또 눈물 한 방울 찔끔하신다에 손 들어봅니다!
 

<눈 1> 중에서...

눈은 그에게 희망 없는 빈곤을 말하고 있었다. - P23

눈 속에 버려진 듯 보이는 칼레알트 마을의 작은 빈민가에서 피어오르는 가느다란 연기가 얼마나 슬펐던지 눈에 눈물이 고였다. 개천의 반대편에서는 심부름을 나온 듯한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품에 따끈한 빵을 안고 서로 밀고 당기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얼마나 행복하게 웃는지 카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그의 가슴을 저며오는 것은 가난도 속수무책도 아니었다. 다만 앞으로 계속해서 보게 될 외로움이 문제였다. 도시의 사방에서, 사진관의 텅 빈 쇼윈도에서, 카드놀이로 시간을 죽이는 실업자들로 북적대는 찻집의 성에 낀 창문에서, 눈 덮인 텅 빈 광장에서 마주하게 될 이상하고도 강력한 외로움. 이곳은 모두에게 잊혀진 장소인 듯했고 소리 없는 눈은 세상의 끝에 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 P23

이 모든 이야기 속에는 카를 사로잡는, 평범한 삶의 흐름에서 죽음으로 넘어가는 전이 과정에 존재하는 속도와 절망이 있었다. - P29

끊어진 그네와 부서진 미끄럼틀이 있는 유스프파샤 마을의 공원 옆 공터에서, 석탄 창고를 비추는 높은 가둥주(街燈柱) 밑에서 축구를 하는 고등학생들을 바라보았다. 눈 속에서 미끄러지는 아이들의 고함 소리와 욕설을 들으며 전등의 희미한 노란 빛과 하얀 눈 빛 속에 있으려니, 이 지역이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너무나 적막한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이 어찌나 강렬하던지, 마음속에 신이 자리하고 있는 것 같았다. - P35

인민당원인 전임 시장 무자페르 씨는 때로는 자랑스럽게 때로는 울분을 토하며 터키에 서구화가 진행되던 시기에 관해,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 비극 『오이디푸스 왕』을 공연하기 위해 앙카라에서 온 연극인들은, 그리스와의 전쟁이 끝난 지 20년도 채 지나지 않았건만, 카르스의 공화주의 중산층에게 환호의 갈채를 받았고, 모피 코트를 입은 나이 든 부자들은 장미와 반짝이로 장식된 건강한 헝가리 산 말들이 끄는 썰매를 타고 산책을 나가곤 했다. - P38

모두 함께 순간적으로 빈 역사에서 밖을, 네온 가로등 불빛 아래의 빈 철로로 내리는 눈을 바라보았다. 나는 이 세상에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카는 생각했다. 멀리서 보이는 눈송이들은 정말로 가련해 보였다. 가련한 인생. 사람은 살고, 지치고 나이 들고, 사라진다. 그는 자신이 한편으로 사라지고 있다는것을,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자신을 사랑했다. 한 송이의 눈처럼,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사랑과 슬픔으로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면도 후 로션을 사용했다. 문득 그것의 향이 되살아났다.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하는 어머니. 슬리퍼 속에 있는 그녀의 차가운 발, 빗, 밤에 기침을 할 때 마시곤 했던 분홍빛 달콤한 시럽, 입에 있던 수저, 그의 삶을 구성하고 있던 사소한 것들, 그 모든 것의 총체, 눈송이들・・・・・・ - P131

나중에 이 시를 어떻게 썼는지를 생각했을 때, 그의 머릿속에는 한 송이 눈이 떠올랐다. 그 눈송이는 자신의 인생을 보여주는 어떤 형태였다. 이 시는 그의 인생의 중심에 서 가까운 곳에, 인생의 논리를 설명하는 어떤 지점에 자리 잡아야 했다. 이 시의 탄생이 그러했듯이, 그가 이러한 마음가짐 중 어느 정도를 그 순간에 내린 것인지, 어느 정도가 이 책에서 밝히려고 하는 그의 인생의 은밀한 균형의 결과인지는 말하기 어렵다. - P134

"나의 불행은 나를 삶에 대항하게 만들지. 내 걱정은 하지 말게."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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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소민아 2025-12-28 07: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곰돌이님, 2025년 서재의 달인, 축하드려요~~저도 달았어요~처음이라 넘 기쁘네요 ㅎㅎ

곰돌이 2025-12-28 09:21   좋아요 1 | URL
축하드려요 젤소민아님!ㅎㅎ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되겠죠?ㅎㅎ 활기가 전달되는 감사한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꾸벅꾸벅)
 

<기나긴 하루> 중에서...

시골 우리 마을의 집은 서로 멀찍멀찍 떨어져 있었고 한눈에 누구네 집이라는 걸 알아볼 수 있는 표정을 가지고 있었다. 영희네 집은 영희네 집같이 생겼고 수돌이네 집은 수돌이네 집같이 생겼다. 우리 집에 오는 편지는 할아버지의 성함만으로도 우리 집을 잘만 찾아왔다. 아무리 가르쳐도 주소를 제대로 못 외는 딸은 엄마를 실망시켰고 아둔하다는 탄식을 자아냈다. 소명하다는 칭찬을 듣던 아이가 환경이 바뀌자 하루아침에 아둔한 아이로 변했다. - P21

내가 꿈속에서 찾는 건 친구네 집도 아니고 우리 집도 아니고 다만 사람 사는 동네다. 저 등성이만 넘으면 동네가 보이겠지, 혹은 인가로 통하는 찻길이나 교통편이라도. 그러나 길은 점점 더 험해지고 뛰어넘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협곡이나 직각으로 선 단애를 만나게 된다. 차라리 단애에서 추락을 하자. 그래야 꿈을 깰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고비만 넘으면 사람 사는 세상으로 통하는 길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미련을 못 버리고 계속 허우적대다가 깬다. - P22

내가 누려온 안일이 한없이 누추하게 여겨졌다. 사람이란 고통받을 때만 의지할 힘이나 위안이 필요한 게 아니라 안일에도 위안이 필요했던 것이다. 증언의 욕구가 이십 년 동안이나 뜸을 들였다가 결실을 맺게 된 것은 아마도 최초의 욕구가 증오와 복수심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증오와 복수심만으로는 글이 써지지 않는다. 우리 가족만 당한 것 같은 인명피해, 나만 만난 것 같은 인간 같지 않은 인간, 나만 겪은 것 같은 극빈의 고통이 실은 동족상잔의 보편적인 현상이었던 것이다. - P32

내 붙이의 죽음을 몇백만 명의 희생자 중의 하나, 곧 몇백만 분의 일로 만들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의 생명은 아무하고도 바꿔치기할 수 없는 그만의 고유한 우주였다는 게 보이고, 하나의 우주의 무의미한 소멸이 억울하고 통절했다. 그게 보인 게 사랑이 아니었을까. 내 집 창밖을 지나는 무수한 발소리 중에서도 내 식구가 귀가하는 발소리는 알아들을 수있는 것처럼. 몇백, 몇천 명이 똑같은 제복을 입고 운동장에 모여 있어도 그 안에서 내 자식을 가려낼 수 있는 것처럼. 내자식이 딴 애들보다 덜 똘방똘방하고 어리숙해 보일수록 사무치게 사랑스러운 것처럼. - P33

나는 오슬오슬 춥다가 오싹오싹 떨린다고 말하고 싶다. 내 몸은 지금 불화로를 얼음조각으로 포장해놓은 것 같다고 말하고 싶다. 삭신이 쑤신다고 말하고 싶다. 입맛이 소태 같다고 말하고 싶다. 죽어도 이 나라에선 죽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아무도 통역할 수 없을 것 같은말만 생각났다. 그걸 참고 따라다니자니 하루가 여삼추였다. - P39

나의 시골집 마당은 아직도 흙바닥이지만 양회 바닥처럼 단단하다. 내 친구의 어머니 시신까지 하룻밤 사이에 동해바다로 토해낸 폭우도 우리 마당의 견고함을 범하진 못했다. 나의 입과 우리 마당은 동일하다. 다 폭력을 삼켰다. 폭력을 삼킨 몸은 목석같이 단단한 것 같지만 자주 아프다.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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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의 매력에 점점 더 빠지고 있다. 누군가의 스치는 감정이기보다 스포이드로 쏙 뽑아 올려놓기라도 한 것처럼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그 순간에 내가 놓여 있는 듯한 문장과 마주할 때의 쾌감도 좋고, 핀 조명으로 주목한 것 뒤로 드러내지 않아 가려진 것, 그 보이지 않는 것을 헤아려보는 시간이 나에게 소소한 즐거움이 되어주기도 한다. 짧지만 잊지 못할, 그 찰나의 감정을 바로 흘려보내지 않고 조금 천천히 놓아주고 싶어진 내면의 변화 때문일지도 모른다. 잘 흘려보내고 싶다. 좋은 것은 오래도록 기억하게 어떤 식으로든 남겨두고, 스스로를 괴롭히는 옹글게 맺혀 있는 감정은 모난 모서리 부분을 잘 다듬어서 잘 흘려보내고 싶다.

뚱카롱을 좋아하고 뚱낭시에도 좋아하는 내가 뚱책마저 좋아하기에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시리즈로 눈길이 가 몇 권을 구매했다. 여섯 권 중 세 권은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작가지만, 먼저 읽은 분들의 평과 작품의 분위기를 가지고 결정했고, 맨 처음에 실린 글과 표제작 위주로 조금씩 읽어보았다.



<왕이 되려 한 남자 외 24편>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

<정글북>으로 유명한 영국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은 1865년 인도 봄베이에서 태어나 그동안 자신이 경험한 인도의 문화와 생활상 등을 관찰하여 글을 써오다가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아들을 잃고 난 뒤로 내면 세계로 눈을 돌렸다고 한다. 25편의 단편 중 맨 앞에 실린 「백 가지 슬픔의 문」을 펼치자, 백인과 인도인 혼혈인 한 남성과 인도의 뒷골목 비좁은 통행로와 담배 파이프 자루 상인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편굴에 가득한 검은 연기와 아편 향에 취한 한 남성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헛소린지 아닌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독한 기운을 내뿜는 통에 나마저 대나무 파이프에 연기를 빨아올린 느낌이 들면서도, 밀폐된 공간에서 홀로 맨정신으로 참담함을 목격하는 기분이 들게 했다. 아편 거래로 수익을 올리며 배를 불리고 있는 영국의 모습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충분히 그려지다 보니, 검은 연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 눈알만 돌리다가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는 이들의 모습이 이토록 허탈할 수가 없다. 아편에 중독되어 죽어 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똑같이 그 길을 걸어가는 남성은 내 시선에는 비극적인 상황에 놓여 있는 것 같기만 한데, 지난 기억들이 연기와 함께 전부 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그는 평온함을 느끼고 위로를 얻고 만족해하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괴상하다고 부를 만한 것들을 보아왔다. 그러나 당신이 검은 연기를 들이마시고 있으면 그 연기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것도 괴상하지 않다. (「백 가지 슬픔의 문」, p. 16)



<오랜 죽음의 운명 외 19편> 캐서린 앤 포터

보수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미국 남부 태생인 캐서린 앤 포터는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고, 안타깝게도 그 불행이 남편과의 결혼 생활까지 이어졌다. 정신적·육체적 폭력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그녀는 이혼 후 과거로부터 자신을 떼어놓기 위해 ‘칼리 러셀’이라는 이름을 지우고, 길러 준 조모의 이름을 따라 ‘캐서린 앤 포터’로 개명한다. 소개 글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니, 파란만장한 삶의 궤적이 느껴졌다. 작가를 꿈꿔왔다고 한다. 이 꿈을 위한 노력이 그녀에게 버티는 힘을 주고, 살아 움직이게 하며 가슴 뛰게 했을 것 같다. 책장을 넘기자마자 멕시코의 어느 마을에 사는 한 여성의 발걸음에서 느껴지는 고단함과 마주하게 된다. 응달진 길에 잠시 쉬었다 가면 좋으련만, 그쪽은 선인장이 무성하기에 괜히 가시 돋친 길을 걷다가 발에 박힌 선인장 가시를 뽑으며 지체할 시간이 없다며 계속해서 조심조심 걸어 나간다. 그런 그녀의 눈앞에 남편과 한 여성의 다정한 모습이 마음을 괴롭힌다. 그럼에도 정작 그녀는 삶에 불만이 전혀 없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그런 태도가 나를 더 어쩌지 못하게 만들었고, 언제쯤에야 이 어쩌지 못하는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싶어 발걸음을 계속 따라가 본다. 계속해서 걸어야 하고, 살아 나가야 하는 그녀를 불안하게 흔들거리는 촛불을 보듯 바라만 봐야 했다.

“기도는 혼자 조용히 하세요, 할머니. 아니면 기도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해 주든가요. 나는 내가 이 세상에서 원하는 걸 하느님께 직접 구할 테니까.” (「마리아 콘셉시온」, p. 23)



<내가 우체국에서 사는 이유 외 31편> 유도라 웰티

이 책의 서문을 위에 소개한 캐서린 앤 포터가 썼다. 그녀의 정성스러운 글 덕분에 유도라 웰티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 올리비아 콜맨의 얼굴을 떠올리게 하는 외모의 웰티는,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하는 캐서린 앤 포터와 달리 미시시피 잭슨 출신의 풍족한 가정에서 별다른 걱정 없이 글쓰기에만 몰두하며 지냈다고 한다. 대학에서 따로 글쓰기를 공부한 적이 전혀 없고 자신이 방향과 목표를 잡고 도전하며 그 길을 닦아 나가다가 스물여섯 살에 첫 단편을 발표했다.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을 떠나지 않았다고 하니 그런 그녀의 시선에 자주 들어온 것은 아마도 주변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맨 처음에 실린 「릴리 도와 세 부인」은 지적 장애가 있는 ‘릴리’라는 한 여성을 향해 보이는 사람들의 손길이 과연 진실한 친절이자 배려이자 보호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겉으로 보기엔 점잖아 보이는 여성들이 모두 한목소리를 내며 릴리를 향해 다가가는 모습은 오히려 그녀가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없게 만드는 것만 같아 이 강압적인 분위기가 조금 숨 막히고 불편한 감정을 만들어냈다. 어쩌면 이 불편한 감정이 틀에 박힌 생각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의 삶에 미묘한 틈을 만들어 주는 게 아닐까 싶다. 사진작가이기도 했던 웰티가 카메라 셔터를 내리는 순간 포착한 것처럼 그녀의 눈에 들어온 수많은 것 중 글로 담고 싶은 순간은 무엇일지 나머지 31편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진다.

릴리가 웃었다. 카슨 부인의 가슴 앞에서 손을 뻗어 창문 밖의 한 남자를 가리켰다. 그는 기차에서 내려 그저 거기에 혼자 서 있었다. 모자를 쓴 그는 외지인이었다. “저거 봐요.” 릴리가 대충 입을 가린 채 낮게 웃었다. “보지마라.” 지금까지 한 얘기를 다 통틀어 엄숙한 이 단어가 모자란 릴리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게 하려는 듯이 카슨 부인이 아주 또렷하게 말했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엘리스빌에 도착할 때까지는 아무것도 보지 말거라.” (「릴리 도와 세 부인」, p. 33)

조심성이 있지만 어떤 단단함이 느껴지는 웰티의 글을 따라가 보니 역시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왠지 얌전하고 차분할 것 같은 그녀가 생각보다 꽤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 표제작 「내가 우체국에서 사는 이유」는 특별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창문을 열어도 눈에 들어오는 것이 늘 별반 다를 게 없는 곳에서 살아가는 여성의 이야기다. 가족과 한 공간에서 공존하며 살아가는 것이 현재 몹시 피곤하게 만드는 상황까지 벌어져 미쳐버리기 일보 직전인데, “되바라진 년!”이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던 여성과 가족 사이의 일상이 펼쳐진다.

“전 제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는 거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예요.” (「내가 우체국에서 사는 이유」, p.119)

그녀의 말 한마디는 공감을 자극했고, 무엇이 필요한지 충분히 알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의 평온을 위해 개인의 삶을 희생할 수밖에 없었던 보수적인 미국 남부 지역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던 이 소설에서 내가 흥미롭게 바라본 부분은 주인공 여성이 자신의 짐을 실은 수레를 이동시키기 위해 도움을 요청한 검둥이 소녀(소설 속 표현 그대로)에게 삼촌이 5센트 동전을 ‘던져 준’ 장면이었다. 아홉 번을 왔다 갔다 해야 할 만큼 짐이 적지 않았다고 했다. 웰티는 이 장면을 흑인 차별이 극심했던 그 당시의 보편적인 분위기 그대로 찰나의 순간처럼 담았다.



<선원, 빌리 버드 외 6편> 허먼 멜빌

읽어보고 싶은 책 중 하나가 <모비딕>인데, 이렇게 맛도리 단편들을 먼저 만나게 되었다. 가문의 사업이 파산하고 부친이 세상을 떠나면서 학업도 중도에 포기해야 했던 허먼 멜빌은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열세 살 때부터 여러 일자리를 전전했다고 한다. 힘겨운 시절 속에서 고통스러운 시련을 겪으며 보고 느낀 것들이 그의 작품에 깊이 반영되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읽기 전에는 알 수가 없으니, 일단 분량도 적고 제목부터가 왠지 재미있을 것 같은 「꼬끼오! 혹은 고귀한 수탉 베네벤타노의 노래」를 펼쳤다. 빚에 쪼들리는 한 남성(입담이 상당히 좋음)이 등장한다. 입에 모터를 달았는지 험난하고 가혹한 세상을 향해 알아듣는 사람들이나 알아듣겠지 하는 심정처럼 쉴 틈 없이 말을 쏟아낸다. 가진 게 없어 문제지, 마음만큼은 고상한 이 남성에게 세상이 도와주질 않아 비참할 따름인데… 아, 일단 재밌다. ㅋㅋㅋ (모비딕은 급행으로 장바구니로!) 이따금 부담을 낮춰주는 듯한 안녕! 흥!처럼 가벼운 표현으로 거리감을 좁혀주기까지 하고 말이다. 그러나 쓴웃음을 주는 입담 뒤로 부조리한 세상을 살아가며 세월을 보내다가 삶의 불행에 초연해지는 인간의 마음에 가득 찬 음울함이 무겁게 내리누른다. 자본주의의 비극과 불행 속에서 그가 본 것,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나는 드넓게 굽이치는 평원, 산들, 마을,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농가들, 큰 숲과 작은 숲, 시내, 바위, 초원을 둘러보면서 생각했다. 결국 이 거대한 대지에 인간이 만들어 내는 자취들이란 얼마나 하찮은가. 그러나 대지는 인간에게 자취를 남긴다. (p. 71)

저 아래 평원에서 배고픈 주인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목숨을 빼앗길 운명에 처해 있는 하잘것없는 수탉 한 마리가 아무 뜻 없이 뉴올리언스에서의 영광스러운 승리를 기리는 계관시인처럼 소리를 지르고 있을 때, 나는 언덕 위에서 부루퉁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p. 75)

썩은 가로장 울타리를 녹슨 못들로 오래 지탱시키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60년의 겨울과 여름에 걸쳐서 얼었다가 달궈지는 과정을 거듭해 온 막대기들에 무슨 수로 사라져 버린 나뭇진을 다시 주입시킬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썩어 빠진 가로장 울타리를 썩어 빠진 가로장들로 수리하려는 한심한 시도이며, 많은 농부들이 그런 작업을 하다가 결국은 요양원에 들어가고 만다. (p. 85)



<내가 연주하는 블루스 외 40편> 랭스턴 휴스

‘할렘의 셰익스피어’라고 불리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 랭스턴 휴스의 소개 글을 통해 그는 흑인 고유의 정체성을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접했던 흑인문학과는 또 다른 면을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이들의 표현 수단이었던 연주가 내 감성을 자극했고, 그런 의미로 제목부터 끌리는 표제작 「내가 연주하는 블루스」를 가장 먼저 펼쳤다. 예술가들을 후원해 주는 백인 ‘웰즈워스’ 여사와 그녀가 후원하는 흑인 소녀 ‘오시올라’에 관한 이야기다. 가난했지만 학교에서 독일 선생님께 피아노 레슨을 배웠기에 기초를 다질 수 있었던 오시올라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교회에서 성가대 반주를 하며 돈을 모아 대학에 다닐 수 있었다. 웰즈워스 여사는 오시올라의 뛰어난 실력을 소문으로 듣고 오로지 예술성에 대한 확신으로 후견인이 되어주기로 한다. 그런데 예술에는 품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녀의 가치관에 이 소녀를 끼워 맞추려고만 한다. 이 작품은 흑인의 고통과 저항을 드러내기보다는 오시올라가 자기만의 삶의 리듬을 따르는 모습에 마음을 무척 개운하게 해주었고, 그녀가 연주하는 흑인 블루스와 경쾌한 재즈는 당당함과 얽매임이 없으며 통제받지 않는 앞으로의 삶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오르게 했다.

그녀가 블루스를 연주할 때 저음은 작은북들의 소리처럼, 고음은 작은 플루트들처럼 소리를 냈다. 땅속 깊은 곳과 까마득하게 높은 하늘의 두 음들의 경계 안에서 그녀의 음악은 모든 것을 이해하는 듯했다. 클럽의 손님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블루스 음악에 맞춰 춤을 출 때면 브릭톱은 “헤이! 헤이!” 하고 추임새를 넣곤 했다. 오시올라는 크릴용 살롱에서 그녀의 음악에 감탄을 금치 못하는, 연미복을 빼입은 청중들 앞에서 쇼팽의 에튀드를 연주할 때만큼이나 행복했다. (「내가 연주하는 블루스」, p. 102)



<그 시절의 연인들 외 22편> 윌리엄 트레버

단편소설의 거장이라고 하는 윌리엄 트레버의 「욜의 추억」이 나를 방구석에서도 지중해의 고요함과 산들바람을 느끼게 해주더니, 갑자기 지저분한 남자가 나타나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하며 만끽하고 있는 여유를 침범하려 한다. 묻지도 않았거늘 자신의 이름은 ‘퀼런’이며 추방당한 아일랜드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아일랜드 출신이지만 영국으로 이주한 윌리엄 트레버가 이 남성의 심정을 잘 알 수밖에 없겠구나 싶다. 소외감과 죄책감을 느끼는 이방인의 심정을 말이다. 고맙게도 ‘아그네스’라는 여성이 그의 눈에 담긴 불안함에 동정을 느끼며 인내심 있게 이야기를 들어준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다. 기억 속에 담고 있는 어린 시절의 아픔을 말하는 입과 고통을 담은 눈빛에서 슬픔을 알아봐 주며 상처받은 손등에 손가락 끝을 조심히 갖다 대는 것으로 위로의 마음을 전하는 아그네스의 모습은 나 역시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한다. 그저 설익은 마음으로 그치더라도 말이다. 퀼런이 불운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기 전까지 욜은 나에게도 멋진 해변 휴양지였지만, 지금은 마냥 그럴 수가 없다.

생전 처음보는 이 남자가 감상적인 이야기를 계속하기를 바랐다. (「욜의 추억」, p. 13)


자로 잰 듯이 살 수 없는 내가 흘린 먼지를 주워 담을 순 없기에 나와 같은 사람의 모습에 공감해 보고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일을 상상하며 또다시 대충 구겨서 안 보이는 구석으로 치우기도 해봤다. 이들의 삶은 누구나의 인생처럼 아름답기만 하지 않았고 사랑도 다양했다. 빛바랜 할머니의 물건들, 주인은 떠나고 세월만 쌓여가는 장신구를 보며 이유도 모른 채 울적해진 소녀의 마음처럼 불가사의한 사랑을 느껴보기도 하고, 권태로운 결혼 생활을 이어가던 중 세월만 흐를 뿐 사랑을 갈망하는 것은 젊을 때의 그것과 다를 바 없이 마침표가 없기에 새로운 외면의 세계를 향해 미친 듯이 달리는 남자를 통해 체념할 수 없는 마음의 위험과 포기할 수 없는 그의 마음에 부질없음을 내내 읊조려 보기도 했다. 특히, 고되거나 포기하고 싶거나 누구를 원망하고 싶은 심정이 들 수밖에 없는 삶을 더 주목했는데, 대체로 동정심과 연민이 담긴 손길을 바라지 않았고, 우려의 시선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없을 만큼 이 모든 것이 지나갈 일처럼 받아들이고 사는 듯했다. 이런 모습에 나는 권여선 작가님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엄청난 위로가 필요한 일이 아니었다. 사랑이 보잘것없다면 위로도 보잘것없어야 마땅하다. 그 보잘것없음이 우리를 바꾼다. 그 시린 진리를 찬물처럼 받아들이면 됐다. (<내 정원의 붉은 열매>, p. 80)

그리고 윌리엄 트레버는 등장인물 아그네스의 목소리를 빌려 “세상은 우리한테 가장 좋은 것을 허락하지 않아”라고 말한다. 두 사람의 말이 냉혹한 현실을 알려준다. 그럼에도 나는 왜 단 한 줄의 글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머무는 것일까? 분명 무언가 내 마음을 건든 것이 분명하다. 누군가 말로 옮기지 못해 닿지 못한 말들을 대신 적어 알려준다는 마음이 들어, 굳게 닫힌 문을 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고민하는 삶으로 방향을 틀도록 만든 것일까? 말하려 했던 수많은 시도에 귀를 기울여 그 감정을 하얀 종이 위에 짧은 호흡으로 써 내려가기까지 겪었을 글쓴이의 노력이 감동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대부분 공감이 가는 대상이나 와닿는 이야기를 만나면, 그다음 장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책을 덮고 나면 또 다음에 들려줄 이야기를 기대한다. 기대한다는 것! 순수한 이 감정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에너지가 아닐 수 없다. 모두가 잠든 늦은 밤 혹은 이른 새벽, 나 홀로 떠진 눈을 끔벅거리며 더디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떠올려지는 생각들을 따라가다가 나는 오늘 하루 몇 번의 기대를 하며 지냈는지 물어본다. 아무런 기대 없이 하루를 움직였던 긴 터널을 지나고 나니, 이제서야 단 한 권의 책만으로도 기대감으로 들뜨게 하는 이 순간의 값어치가 절대 작지 않음을 실감한다.

흐트러져 있던 마음을 움켜잡아 한 곳으로 모아보는 시간 그 자체를 즐겼다. 어쩌다 보니 습관적으로 늘 올곧은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던 나 자신을 잊고 말이다. 몇 주에 걸쳐 시간 날 때마다 조금씩 읽다 보니 6권의 책에 대한 애정이 그새 많이 쌓였다. 인도의 후덥지근한 공기와 무거운 흙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 그리고 지중해의 산들바람을 타고 날리는 담배 연기와 잔에 담긴 독한 술의 향기까지, 아편 향에 취해, 술에 취해, 이야기에 취해 아주 어질어질하지만, 아직도 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그저 좋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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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5-12-09 1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두 이거 전집 있으요~~~ 아직 읽은 책은 없지만 언젠가는 읽으려고 항상 대기중인 전집..^^;;

곰돌이 2025-12-09 10:10   좋아요 0 | URL
저도 이따금 하나씩 쏙쏙 뽑아먹으려고 합니다. yamoo님의 리뷰를 읽어볼 날을 기다릴게요!! 언젠가는 볼 수 있겠죠 ㅋㅋㅋ

새파랑 2025-12-09 18: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현대문학세계문학단편집 모으는데...
사긴 사는데 너무 방대해서 몇권 못읽었습니다 ㅋㅋ

곰돌이 2025-12-09 18:18   좋아요 1 | URL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뚱실함…ㅋㅋ 천천히 여유를 두고 읽어보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