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52
알프레트 되블린 지음, 권혁준 옮김 / 을유문화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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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 그때 대답이 들려왔다. 이게 바로 형벌이야”

지금 막 4년의 형기를 마친 사내가 교도소 담장 밖으로 나왔지만, 여름 외투 하나 걸친 그는 이내 풀썩 주저앉고야 만다. 자유를 얻은 사람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주저앉는 것이라니. 왜? 무엇 때문에? 그는 지금 담장 안으로 되돌아가고만 싶다. 그러나 형을 다 마쳤으니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상 속으로, 저 많은 사람들 속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을까? 막막함과 두려움이 엄습해온다. 이 사내의 불안함을 눈치챈 어느 붉은 수염의 유대인이 다가와 던지는 한마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눈과 발이오. 세상을 제대로 볼 줄 알아야 하고, 세상에 뛰어들 수 있어야 하니까요.”

사흘이 지났다. 출소한 사내, 프란츠 비버코프는 이제 겨울 외투에 모자까지 쓰고 활력을 찾은 모습이다. 이번만큼은 진실하게 살아보겠다 맹세한다. 그러나 그가 다시 마주한 세상은 결심만으로 건너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새사람이 되어보겠다는 건 프란츠의 마음이고, 세상이 그를 대하는 방식은 별개의 문제다. 그가 어떤 죄목으로 교도소에 들어갔는지, 그리고 나온 이후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내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새사람? 개코나, 인간이 어디 그리 쉽게 변한다니?’ 욕도 아까웠다. 그래서인지 앞서 붉은 수염의 유대인을 향한 프란츠의 대꾸 안에서 느껴진 삶의 의지와 자신감이 새삼 다시 떠오르면서 괜히 같은 말도 더 괘씸하게 다가왔다.

“당신은 발과 눈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죠. 내게도 아직 눈과 발이 있어요. 아무도 그것을 뺏어 가진 않았죠.”

이 책은 베를린에서 시멘트 공장 노동자이자 가구 운반 인부였던 프란츠 비버코프에 관한 보고서다. 왜 하필 범죄자 프란츠일까? 그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아니아니, 알렉산더 광장 앞을 오가는 벌떼같이 많은 사람들 중 사소한 인물일 뿐이다. 심지어 그의 친구들 사이에서는 ‘선량한’ 프란츠라는 거.

갑자기 뜬금없는 작가의 TMI인데, 정신과 의사이기도 한 알프레트 되블린은 영화광이라고 한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영화를 보듯 조각조각 난 장면을 머릿속으로 이어 붙이게 된다. 지금 읽고 있는 이야기만 쭉 이어지는 게 아니라 도시 전체의 풍경을 비롯한 여러 요소가 다소 이질적으로 끼어들 때가 있고, 화자의 말이 이어지다 말고 인물의 혼잣말이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처럼 구분도 없이 섞이기도 한다. 현기증 날 정도는 아니다. 맨날 먹는 밥은 지겨워서 새로운 거 먹을 때 입이 즐겁듯, 그저 즐기면 될 뿐. 따라가다 보면 금세 리듬에 적응이 되고, 이 소설 특유의 공허함과 머리가 무거워지는 엄숙함에 서서히 감기게 된다.

마치 한 방향으로 바람이 부는 게 아니라 이쪽에서 불었다가 저쪽에서 불고, 거리의 먼지와 종잇조각이 정신없이 휘날리는 날의 느낌이다. 도시는 부산스럽고 활기찼지만, 프란츠처럼 전과를 안고 다시 살아보려는 사람에게 이 분주함은 기회인 동시에 언제든 자신을 휩쓸어갈 바람이기도 하다. 주머니에 얼마 안 되는 지폐를 만지작거려보기도 하고 외투 깃을 바짝 세워보지만 춥다, 더럽게 춥다. 마음이 추우니 더 춥다. 그렇게 1920년대 말 베를린이 한꺼번에 품고 있었을 활기와 불안을 느껴볼 수 있었다.

프란츠는 이것저것 팔기 시작한다. 넥타이핀을 팔다가 알렉산더 광장을 떠돌며 민족주의 성향의 신문까지 판다. 그러다 옛 전우, 지금은 연마공으로 일하다 직장에서 쫓겨난 게오르크를 만나면서 이야기는 전쟁과 혁명, 공화국을 둘러싼 정치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런데 프란츠가 꺼내놓는 건 전쟁의 승패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먹을 게 없어 농부의 감자를 훔쳐 먹었던 일, 고기와 버터조차 구하기 어려운 현실 같은 것들. 전쟁을 겪고 혁명까지 일어났는데, 정작 달라진 게 뭐냐는 거다. 건물은 높이 올라가고 도시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세상이 변한다는 건 대체 누구의 삶이 변한다는 뜻일까? 거리에서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고, 헌법에 자유가 적혀 있어도 경찰의 곤봉 앞에서는 소용이 없다고 외치고 있다. 자유가 있다고 쓰여 있는 것과 실제로 자유롭게 사는 건 다른 문제라는 듯이. 겉으로는 “나하고는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야.”라고 되뇌는 프란츠. 세상이 무슨 색을 내걸든, 먹고사는 일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듯이 말이다.

“어떤 친구가 갖고 있는 시가의 띠가 빨간색이든 금색이든, 아니면 흑백적이든 그것 때문에 시가 맛이 더 좋아지는 것은 아니잖아. 중요한 것은 연초 그 자체야.” (p. 118)

빵 한 조각도 벌어야 내 입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그 벌이조차 힘겨운 세상이니 목구멍에 술이 안 들어갈 수가 없고, 남는 거라고는 그다음 날의 숙취와 그사이 흘러간 세월뿐. 멀미 나는 배 위에서 아무 기둥이라도 얼른 껴안고 싶은 사람처럼, 불안한 세상 속에서 프란츠는 대단한 신념이 아니라 그저 움직이지 않는 무언가가 필요해서 움직이는 사람으로 보였다.

프란츠는 평온함을 원한다. 깨끗해지길 원한다. 말끔히 치워지길 바란다. 무엇이? 자기 안팎의 나쁜 기운이나 불쾌한 감각이. 자기가 옳다고 믿는 상태를 억지로라도 만들어내려는 사람처럼, 일부러 창문을 열고 차디찬 바깥바람을 쐬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자신과 안 좋게 엮인 인물이 자기가 사는 집에 왔을 땐, 그 사람을 향해 계속해서 찬물을 뿌리는 모습도 같은 맥락으로 보였다. 지금 당장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당장 감당할 수 있는 크기로 줄여 놓는 것. 나는 이게 프란츠가 살아가는 방식 중 하나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차근차근 받아들일 여유조차 없는 사람처럼. 그런 그가 막상 자기한테 엄청난 일이 닥쳤을 때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세상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사람이 자기 삶에 대해서만큼은 어떻게든 포기하지 않으려 하는 모습. 대단한 생존 본능일까,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일까.

줄거리를 최대한 드러내지 않고 적으려니 영 가슴팍이 갑갑하다. 이 책과 어울리는 표현은 아닌 것 같지만 요 며칠 정말 신나게 읽었다. 프란츠의 이야기 사이로 다른 사람들의 일상이나 가축들이 도축되는 과정, 성경 속 이야기와 시의 한 구절이 불쑥 끼어든다. 그런데 이 구성이 참 묘하다. 어떤 장면에서는 프란츠가 겪는 엄청난 일들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수많은 일 중 하나처럼 보였다. 특별히 이상할 것도, 놀라울 것도 없는 일상처럼. 그런데 도살장의 풍경이나 성경 속 이야기가 끼어들면 방금까지 따라가던 프란츠의 삶이 갑자기 다른 무게를 갖게 된다. 도축대 위에 올라와 있으면서도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 채 평온한 가축들의 모습에 인간의 죽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어서였을까. 감옥에서 나온 뒤 새롭게 살아보려 하지만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 프란츠의 인생도 떠올랐다. 인간이 언젠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살아보려고 애쓴다고 해서, 어떻게든 다시 시작해보겠다고 마음먹는다고 해서, 자기 앞에 놓인 일을 다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 어떤 일을 맞닥뜨리게 될지 모른 채 살아가다가, 자기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것. 더는 희망도, 절망도, 분노도 없이 유약한 나 자신을 인정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이 참담함.

목에 무거운 무게추를 매단 채 알렉산더 광장의 한복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고개를 들고 앞으로 나아가려 해도 벗어날 수 없고, 내려놓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 무게에 익숙해질 수도 없는 상태로. 각자 옳다고 믿는 게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도 다른, 누구 하나 딱 집어 마음을 주기도 어려운 사람들의 모습이 안쓰럽다고 편들 수도 없고, 밉다고 외면하기도 어려웠다. 사정이 있다고 해서 다 이해되는 것도 아니고,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그 사람의 삶까지 들여다볼 필요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니까.

모든 것은 의미를 드러낼 것이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섬뜩한 의미를. 그 숨바꼭질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이 친구야. (p. 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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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52
알프레트 되블린 지음, 권혁준 옮김 / 을유문화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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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이 제법 되는 책은 읽다가 글자가 눈에서 그냥 지나가버리기도 하고, 또 그게 딱히 아쉽지 않을 때도 있다. 이 책은 거의 지루할 새가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재밌는 책에 리뷰가 왜 이리 적을까. 아! 그냥 내가 뒷북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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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25 1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10-25 2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블로모프 2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11
I.A. 곤차로프 지음, 최윤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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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나! 내가 누굽니까? 도대체 나란 사람이 누구란 말입니까? 자하르에게 가서 물어보세요. 이렇게 말할 겁니다. ‘주인님!’이라고. 맞아요. 나는 주인 나으리,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전혀 없는 지주올시다!”

그래도 사랑의 힘이 강력하긴 한가 보다. 침대 붙박이 오블로모프를 다시 밖으로 나오게 만드는 걸 보면. 이 남자의 사랑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짚고 넘어갈 사람이 있다. 오블로모프와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친구 슈톨츠다. 오블로모프가 생각과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기까지가 어려운 쪽이라면, 슈톨츠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줄 아는 쪽이다. 그렇다고 어느 한쪽이 더 나은 인간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한 사람에게는 삶을 꾸려갈 능력이 있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그 능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어쨌든 슈톨츠를 통해 오블로모프는 올가를 알게 되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오블로모프가 아무 일도 안 해봤을 법한 만년 백수처럼 보이지만, 짧게나마 관청에서 일하기도 했다. 하루 종일 일하고 또 일하고, 일하면서도 또 다른 일을 찾아 움직이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도무지 버텨나갈 수가 없었는지, 서류를 잘못 보내는 실수를 한 끝에 병가를 내고 결국 사직해 버렸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상황은 아니니 이를 악물고 버틸 까닭이 없었을지도? 이런 오블로모프를 답답해하면서도 슈톨츠는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고 자꾸 세상 밖으로 끌어내려고 한다. 이렇게나 다른 두 사람이 오랜 친구라는 것이 꽤 의외다. 오블로모프 때문에 천불이 끓어오르려다가도 슈톨츠가 등장하면 속이 좀 뚫리는 것 같았다. 인간 개비스콘!

올가와 오블로모프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마음이 영 편치가 않다. 올가와의 만남에서는 매번 뭔가를 해야 하고, 오블로모프는 그때마다 등 떠밀려 단추를 끼워 나가면서도 빠져나갈 구실을 찾는다. 그러다 마땅한 변명거리가 떠오르면 그 자체가 적잖이 기쁜 오블로모프다. 물론 이렇게 해서라도 관계를 이어 나가려 하는 것은 올가를 사랑하고, 그녀가 보여주는 삶의 방향은 자신에게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다만 그 방향을 향해 마음을 먹는 것과 실제로 그 삶을 살아가는 것은 오블로모프에게 전혀 다른 문제라는 거다.

사실, 올가도 오블로모프가 다시 침대 붙박이 시절로 돌아가지 않도록 애쓰며 만남을 이어가는 중이다. 매사 쉽게 쉽게 넘어가는 게 좋아 읽지도 않고 서류에 서명하는 바보 천치 같은 인간에게 어떻게든 생의 활력을 불어넣으려니 속이 타들어 갈 만도 하다. 그런데도 보고 싶고, 만나면 좋고, 함께 있는 순간만큼은 행복한 모양이다. 그런데 왜인지 두 사람의 사랑은 불꽃이 언제 연기만 남기고 사라질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들여다보게 된다는 것.

오블로모프에게 사랑이란 뭘까. 사랑하는 마음이야 있을 테지만, 그 마음만으로 되는 일은 별로 없어 보인다. 결혼을 생각하면 그에 딸린 온갖 일들이 따라오고, 올가의 마음에 발맞춰 자기 감정을 키워가는 일도 오블로모프에게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녀가 기쁨에 푹 빠져 있는 모습을 보며 오블로모프가 도리어 시샘을 느꼈다는 대목이 그랬다.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면서도 자신은 그 감정 한가운데로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 어쩌면 오블로모프는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던 마음마저 오래전에 잃어버린 건 아닐까.

“행복이란 얼마나 허약하고 미덥지 못한 것이란 말인가!” (p. 74)

그런데 올가와는 결이 다른 여성이 등장한다. 새로 지낼 집 문제로 찾아간 곳에서 만난 여주인, 미망인 아가피야 마트베이브나. 호사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낡고 소박한 옷차림, 순박한 두 눈에 억센 두 팔로 쉬지 않고 일하는 사람. 어랏? 올가와 함께 있을 때의 오블로모프를 생각하면 묘한 차이가 느껴진다. 뭔가 자연스럽고, 편안하단 말이지! 마치 기름칠이 잘 된 톱니바퀴가 매끄럽게 돌아가는 느낌이랄까. 온종일 일만 하느라 앉을 새도, 딴생각할 새도 없이 살아온 아가피야. 그런 그녀의 삶에 오블로모프가 등장하면서 해도 해도 끝이 나지 않던 집안일에도 활기가 돈다. 이건 또 무슨 일이야! 재채기와 사랑은 뭐라더라?

160여 년 전의 러시아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은 뭐, 다 거기서 거기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삶이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들 보이지 않는 밤을 뚫고 저마다의 방향으로 가듯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거겠지, 짐작만 칠 뿐이다. 곤차로프가 그려낸 여러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며 이런 사람이 있으면 저런 사람도 있는 거 아닌가 생각하다가, 마음 한편이 무거워지는 순간에 다다르기도 했다. 지주랍시고 영지 문제를 자기 손으로 처리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오블로모프는, 어떤 사람인지 깊이 알지도 못하는 남자에게 도움을 청하며 이렇게 말한다.

“어린애에게 이야기한다 생각하시고 말씀을 해주시고 또 충고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갑갑한 마음도 더는 들지 않더라. 그 순간엔 이 사람의 인생이 그저 짠하게 느껴졌다. 누구에게도 드러내고 싶지 않았을 연약한 ‘구석의 것’을 내보이면서까지 뭔가 해보려는 모습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그가 살아가는 세상은 가만히 기다려주지 않는다. 가진 게 없어 억하심정만 늘어나는 이들에게는 “다른 사람 귀에다 속삭이거나 글 한 줄 받아 적게 하거나, 아니면 그냥 제 이름을 서류에 적기만 해도 베개처럼 호주머니가 빵빵해지는 작자들”을 보며 욕지기가 나고, 뼈 빠지게 일해봤자 뭐 하냐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판국이다. 순한 마음을 지녔지만, 가진 것도 스스로 간수하지 못하는 오블로모프는 날강도들에게 먹잇감이 되는 게 현실이다. 그러니 누군가는 오블로모프를 보며 혀를 끌끌 찰지도 모르겠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도 시원찮을 판에 무력하기만 하니 말이다.

온종일 드러누워 남이 가져다주는 커피나 마시고 빵이나 뜯어 먹으며, 남이 출근하는 모습이나 바라보고 사는 지주라니. 호되게 욕하면서 읽을 것 같지만, 막상 읽어보면 또 마냥 흘겨보지 않게 되니 환장하겠다. 오블로모프의 선함을 인정하면서도 그의 한계까지 이해하고, 그렇다고 모든 것을 정당화하지는 않으려 했다. 한계에 갇혀 살아가는 그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할 때가 있어서인지, 어느 순간부터는 계속 부딪히고 실수하고 아프더라도 마음에 불을 확 지피고 멈추지만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좀 더 컸던 것 같다. 물론 그 순간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갈지는 그의 몫이겠지만.

1권을 읽을 때만 해도, 도대체 침대에서 떨어지지 않는 인간의 이야기로 무슨 할 말이 쏟아지려나, 게다가 2권씩이나? 하는 생각에 갸우뚱했다. 시대와 상황은 달라도, 지금 사람들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그들의 삶을 다각도에서 들여다보게 됐다. 그중에서도 발밑이 어디에 닿을지 모른 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불안과, 매일 벌어지는 낯선 상황에 좀처럼 뿌리내리지 못해 온갖 생각으로 머릿속을 꽉 채워야만 했던 이의 심정이 꽤 가깝게 다가왔던 것 같다.

인생이란 게 참 무거운 것이구나 하는 걸 또 한 번 차갑게 들이마셔본다. 예전의 난 어쩜 그리도 안일했던지, 큰 고민도 없이 얼마나 성큼성큼 내디뎠던지. 그렇게 내 인생을 한 번 훑어보다가 2권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정작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한 인간이 되레 나를 흔들어 깨우고 있다는 걸 느꼈다. 에잇, 보드카 한 잔이 급 땡기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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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26-10-15 10: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리뷰 감사합니다~! ^^ 사랑이란 무엇이고 인생이란 무엇일까요... ˝에잇, 보드카 한 잔이 급 땡기는군.˝ ㅎㅎㅎ

곰돌이 2026-10-15 14:06   좋아요 1 | URL
오블로모프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만 있는 사람과 달리, 바쁘게 살아가는 것만이 정답이라면 바쁜 사람들은 모두 행복하고 잘 살고 있어야 하잖아요. 이런 등식의 허술함을 보여주는 걸 보면, 작가가 오랜 관직 생활과 세계일주를 통해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지켜봤을지 슬쩍 짐작하게 되기도 해요. 어떤 삶이야말로 충분한 걸까, 답도 없는 생각을 하다가 그런 생각 자체가 무슨 의미일까 싶어지더라구요. 그렇게 머릿속만 데굴데굴 굴려봤습니다.

보드카 땡기십니까ㅋㅋㅋㅋ

blueyonder 2026-10-15 16:17   좋아요 1 | URL
정성스런 댓글 감사합니다~ 삶에 정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합니다. 낭비하지 말고요... 하지만 생각과 실천은 늘 다른 문제라서... ㅋ

전에 예쁜 병에 든 보드카를 마셔봤는데, 괜찮더라고요. 하지만 한 잔만 마실 수 있습니다. ^^;

다락방 2026-10-15 1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드카 드실 때 저를 불러주시죠. 흠흠.

곰돌이 2026-10-15 14:07   좋아요 0 | URL
그런 일이 생긴다면 오죽이나 좋을까 싶어요. 일단 보드카 대신 땡투가 먼저 갈 겁니다, 다락방님. ㅋㅋ

잠자냥 2026-10-15 1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뭐... 그렇게 게으른 와중에도 애도 만들고 그러지 않습니까....

곰돌이 2026-10-15 14:08   좋아요 0 | URL
인생의 대부분은 미뤄도 본능까지 미룰 순 없었나 봅니다. 앙큼하다. 오블로모프! 할 건 다 했다! ㅋㅋㅋ 팔꿈치 플러팅이 들어오니 뭐...
 
오블로모프 2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11
I.A. 곤차로프 지음, 최윤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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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문제는 그 마음이 어디까지 데려다주느냐다. 바라는 것과 해내는 것 사이의 아득한 거리는 누구도 대신 좁혀 줄 수 없다는 걸 새삼 차갑게 들이마셔본다. 답답해서 속이 터지다가도 끝내 미워할 수 없는 침대 붙박이 오블로모프가 되레 나를 흔들어 깨울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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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블로모프 1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10
이반 알렉산드로비치 곤차로프 지음, 최윤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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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바탕에 <오블로모프>라는 제목과 작가 이름 정도만 덩그러니 적힌 표지. 왠지 러시아 문학의 묵직한 이야기와 웃음기 싹 빠진 인간사가 빼곡히 적혀 있을 것만 같아 괜히 읽기 전부터 허리를 한 번 펴고 앉아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자 각 잡힌 분위기가 한 번에 무너졌다.

침대. 그것도 아주 편안해 보이는 침대.

부드럽고 신축성 좋은 잠옷을 입은 삼십 대 남자가 침실이면서 서재이고 거실이기도 한 방에 누워 있다. 오블로모프다. 이 인간, 누워 있는 것이 일상이다.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은 한다. 그런데 생각만 한다. 방 안을 둘러보면 더 가관이다. 곳곳에 먼지는 쌓여 있고, 거미줄은 죽죽 이어져 있고, 널브러진 접시에 먹다 흘린 빵 부스러기까지... 이걸 누가 치우느냐? 오블로모프가 부르면 언제든 하인 자하르가 투덜대며 와 줄 거다. 그런데 자하르도 만만치 않다. 주인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아 공중제비 두 바퀴쯤은 너끈히 돌 것 같다. 집구석이 이게 뭐냐며 청소를 좀 하라고 하자 자하르는 태연하게 대꾸한다.

“치워봐야 또 쌓일 텐디유 뭐.”

아니, 그럼 안 치우겠다는 거잖아? 서로 말로 이겨 먹는 데는 도가 튼 주인과 하인, 이 둘이 붙어 있으니 집안이 멀쩡할 리가 없다. 오블로모프가 한 번 호되게 나무라면, 처지가 처지인지라 자하르는 이내 걸쭉한 사투리를 쏟아내며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린다.

“가슴이 찡한 말도 재간이 있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겨. 심장을 칼루다 도려내는 것 같어······ 내 집, 내 채소밭, 거기서 두 발 쭉 뻗구 누워보았으면!”

한때 부유했던 오블로모프 가문은 이제 가세가 기울어 다른 귀족들 사이에서도 잊힌 처지다. 아직 지방에 영지도 있고 재산도 남아 있지만, 오블로모프는 영지를 직접 돌보는 일도, 자기 삶을 꾸려가는 일도 좀처럼 하지 않는다. 늙은 하인들은 지난날의 기억을 귀한 보배처럼 간직하고 있다. 주인인 오블로모프 역시 그 시절의 흔적처럼 살아가고,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그는 여전히 침대 위에 있다. 아니, 그래서 언제 일어날 건데? 세수는 또 언제 할 거냐고! 눈앞의 거미줄이 거슬려 죽겠으면 그냥 가서 치우면 안 되는 거야? 하아, 일단 환기 좀 시키면 안 될까? 먼지가 뽀얗게 앉은 가구를 보고 있자니 내 목이 다 칼칼한 것 같다.

그. 러. 나.

오블로모프 본인은 또 별 불만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근심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시골 영지에서는 해마다 흉년이나 수입 감소 같은 좋지 않은 소식이 날아오고, 살고 있는 집까지 비워야 할 상황에 처한다. 문제는 이 모든 일을 해결하려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오블로모프에게 움직인다는 것은 귀찮음의 문제가 아니라 거의 절망에 가깝다. 집에 이따금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해보려 하지만,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 그들은 하나같이 주옥같은(발음 조심) 소리를 늘어놓고 갈 뿐이다. 그런데 오블로모프의 게으름보다 더 궁금한 건 따로 있다. 농노제 폐지를 앞두고 낡은 귀족 사회가 흔들리던 19세기 러시아에서, 곤차로프는 왜 하필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는 인간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을까?

이 책보다 수십 년 뒤에 나온 체호프의 <구스베리>를 최근에 읽다가, 오블로모프와 묘하게 겹쳐 보이는 인물을 만났다. 작품 속 수의사 이반 이바니치는 세상과 부딪히기보다 자신의 영지에 숨어 평생을 보내고 싶어 했던 동생 니콜라이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인간에게는 단지 3아르신의 땅만 있으면 된다고 하지요. 하지만 3아르신은 산 사람이 아니라 시체에게나 맞는 크기잖아요. (…) 자기 영지에 숨는다는 것―그것은 진정한 삶이 아니라, 이기주의이고 나태함이며 덕행이 결여된 엉터리 수도생활 같은 것이죠.”

이반 이바니치의 말을 읽는데 오블로모프의 침대가 떠오르는게 아닌가. 물론 약간의 차이는 있다. 니콜라이는 바라던 영지를 얻고 그 안에서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문제는 그 만족에 빠져 영지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지 못한다는 데 있다. 오블로모프 역시 자기만의 세계에 머물며 그 안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이 책은 농노제가 폐지되기 전에 나왔고, <구스베리>는 그 뒤에 나왔다. 시대는 다르지만, 두 인물을 보며 되묻게 되는 건 같다. 자기만의 만족에 안주하는 것만으로 우리 삶은 충분한 걸까.

오블로모프는 꿈도 자기 같은 꿈만 꾼다. 옛 시절에 머물러 개울물이 졸졸 흐르고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하인들이 짐수레에 건초더미를 수북하게 쌓아 올리는 모습이나 보는 삶. ‘내일도 오늘만 같아라.’ 배 두들기며 지내는 상상만으로도 벌써 입꼬리가 씨익 올라가니 말이다. 게으름이 뚝뚝 묻어나고 복장 터지는 소리나 늘어놓는 인물이었다면 진작 진력이 났을 텐데, 흥미로운 건 그가 하는 말이 마냥 웃어넘길 수만은 없다는 거다. 듣다 보면 은근히 납득도 된다. 오블로모프는 사람들이 그토록 애써 살아가는 이유부터 되묻는다. 의외인 건 정작 삶의 이유를 ‘인간’과 ‘사랑’에서 찾으려 한다는 점이다.

“인간, 제 말은 인간을 사랑하자는 겁니다······” (p. 48)

그가 영 못마땅해하는 건 사람들이 당연한 듯 받아들이는 것들이다. 쓸데없는 분주함부터 허위의식, 사교적인 말들, 체면을 위한 삶까지. 남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부지런히 따라가는 게 정말 ‘사는 거’라고 할 수 있을까. 오블로모프는 이런 의문을 품을 줄도, 다른 사람들의 삶을 생각할 줄도 아는 사람이다. 그런데 정작 자기 삶을 바꾸는 일 앞에서는 좀처럼 움직이지 못한다는 거. 2권으로 넘어가면 어떨지 모르겠다만, 지금까지는 이게 오블로모프의 한계로 보인다. 곁에 뭐든 대신 해 주는 (시답잖긴 해도) 하인이 있으니.

딱 부러진 이념을 내세우는 사람도, 무언가에 푹 빠져 몰두하는 사람도 아닌 오블로모프. 유약하고 순한 데다 생각하고 느끼는 힘은 있지만, 현실의 압력을 견디고 행동으로 옮기는 데는 영 힘을 못 쓴다. 무사태평하게 살아온 그에게 고달픈 인생이란 먹는 것이더냐! 알 리가 만무하다. 해야 할 일을 뻔히 알면서도 자꾸 미루니 내 속이 다 답답하다. 흠, 그런데 쓰다 보니 오블로모프를 두고 품평회라도 연 것 같아 마음이 썩 편치가 않군. ㅋㅋ 나 역시 첫발을 떼지 못한 채 누가 앞에 등불이라도 확 켜주길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기에, 그를 마냥 욕하지는 못하겠다.

암튼 그건 그렇고, 세상에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란 없다 했던가! 오블로모프, 그에게도 사랑이 찾아왔다.

(2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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