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리나 강의 다리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39
이보 안드리치 지음, 김지향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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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지르. 오스만 제국의 고위 관료를 가리키는 이 말은 마을 아이들에게 대단하고, 어마어마하고, 환상적이고 묘한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대베지르에 오른 메흐메드 파샤 소콜로비치가 16세기 후반 비셰그라드에 다리를 세우게 한다. 지금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동쪽, 서로 다른 믿음과 풍습을 지닌 사람들이 한데 살아가던 작은 마을이다. 이보 안드리치가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다리를 세우는 일이 처음부터 마을 사람들에게 반가운 일만은 아니었다. 가난한 농민들은 강제로 노동에 끌려 나왔고, 누군가는 저항하다 목숨을 잃었다. 당시 오스만 제국에서 ‘라야’라 불리던 일반 백성들, 그중에서도 기독교 농민들이 특히 고통을 겪었다. 잠 못 이루는 인부들 사이에서 몬테네그로 출신의 남자가 구슬레(발칸 지역의 전통 현악기)를 꺼내 콧소리 섞인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장면이 생각난다. 농부 한 사람은 마구간 밖에서 터키인들이 오는지 망을 보고, 나머지는 노랫말을 되뇌며 잠깐 노래에 홀린다. 경쾌한 가락이 이어지자, 축 늘어져 있던 사람들도 잠시 모든 걸 잊은 것 같다. 노래가 고된 노동을 덜어주지는 못했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다른 무언가에 지친 마음을 맡길 수 있지 않았을까.

다리 주변으로 집이 늘고 카사바라 불리는 작은 읍내에는 장터가 선다. 기독교도 아이들은 세례를 받으러 다리를 건너고, 무슬림 아이들은 다리 주변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친구들과 논다. 장사를 하는 사람들과 다리 한가운데 작은 광장 같은 카피야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그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구경하다 보면 낯설기만 했던 이곳이 어느새 가까워진다.

흥미를 끌 생각은 없어 보이는 무심한 표지. 지난번 같은 출판사(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이반 곤차로프의 <오블로모프>를 읽고, 책도 사람마냥 생긴 걸로 판단하면 안 되겠구나 싶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그렇다. 오스만 제국 시절부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기를 거쳐 1차 대전까지, 굵직한 역사가 다리 위를 지나가는 사이사이에 여러 에피소드가 담겼다. 일일이 세어보진 않았지만, 책 소개 글을 보니 그 숫자가 무려 200여 개라고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눈에 불을 켜고 읽을 수야 없기에 별 감흥 없이 책장이 넘어가는 순간도, 페이지가 줄어드는 것이 아까워 남은 분량을 손으로 만지작거려 가며 읽는 순간도 있었다.

유독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18세기 후반, 비셰그라드에 큰 홍수가 닥친 날 밤이다. 물을 피해 높은 지대로 올라온 사람들 가운데 일부가 마을의 한 집, 널찍한 1층 방에 모여든다. 사람들을 대피시키느라 바빴던 이들부터 상인과 성직자, 무슬림과 기독교인, 유대인까지 다 뒤섞여 있다. 처음엔 사람 구하고 대피시키는 일을 의논하다가, 밤이 깊어지자 커피와 발칸의 전통주 라키야를 나누며 눈앞의 재난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이야기를 꺼낸다. 평소에는 한자리에 모일 일이 드물었을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 서로 안부를 묻고, 옛날이야기를 하며 웃기도 한다. 불안과 걱정을 농담으로 숨기고 잠깐의 평온 속에서 시린 몸을 녹여보는 거다. 다른 이야기들에서도 종종 보이는데, 카사바 사람들은 웬만한 소란쯤은 먼 산 보듯 하는 구석이 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또 한편으론, 그러니까 사람이 살아지는 거겠지 싶기도 했다.

인생살이에 지치고 걱정이 태산 같은 백발의 아버지들이 그들의 생애에서 가장 크고 쓰라린 사건이었던 그 ‘대홍수’에 화제가 미칠라치면 언제나 활기를 띠고 갑자기 말이 많아졌다. 그들이 다시 재산을 복구하고 집을 다시 지어 15년 또는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간 뒤에는 이 ‘홍수’도 엄청나고 끔찍하기는 했지만 그러면서도 정다운 것으로 회상되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직도 살아있는 그 세대의 인간들 사이를 정답게 묶어주는 하나의 정겨운 유대와도 같은 것이었으니 극복해낼 수 있는 공동의 불행으로 그것만큼 사람들은 서로 친밀하게 결속해주는 것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p. 107)

단지 그들과 그들 세대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이 그렇게 꼬리를 물고 계속되었다. 모두 순수하지만 또 아름답고 힘겨웠던, 카사바에서 산 모든 사람의 일반적인 회상들이었던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은 예전에 있었던 얘기들로 그들과 가장 관련이 있는 것들이었지만 오늘 이렇게 환상적인 원을 만들게 된 이 밤의 드라마와는 아무 관련이 없었다. (p. 114)

나는 이런 대목이 좋았다. 어디 기록에 남을 일도 아닌데, 거기 살던 사람들한테는 두고두고 입에 올릴 하루였을 법한 이야기들.

누군가는 사랑하고 다투고, 누군가는 지난날을 곱씹고, 누군가는 내일이 두렵고, 또 누군가는 별것 아닌 이야기를 꺼내며 웃는다. 그 사이에는 민족의 독립과 민중의 해방을 두고 정치가 먼저냐, 당장 하루를 살아내는 일이 먼저냐며 한바탕 논쟁을 벌이는 학생들도 있다. 세상은 몇 번이고 달라지고 사람들은 그 변화에 휩쓸리기도 하지만, 좀처럼 변하지 않는 풍습과 기질을 붙들고 “사람이 얼마나 빨리 가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어디를 가는지 어떤 일로 가는지가 중요하다”며 제 속도로 살아가는 이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씩 그려지는데, 별일을 다 겪으면서도 살아가는 모습이 때로는 기막히고 서글프다. 모순되게도 문장은 참 아름답게 읽혔다. 별 가득한 밤하늘 밑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한평생을 살아낸 노인 옆에 앉아서,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를 옛날이야기를 듣는 기분이랄까. 이놈의 불은 대체 언제 다 타는 거야 싶다가도, 막상 마지막 장작이 타닥 소리를 내며 무너지고 불씨마저 사그라들면 괜히 장작 하나쯤 더 얹고 싶어지는 그런.

눈앞에 풍경이 펼쳐지고 인물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해서 장면이 그려지는 것과는 조금 다른, 그 시대가 문장 안에 그냥 들어앉아 있는 느낌. 이런 책을 방구석에서 세상 편한 자세로 읽을 수 있다는 것. 이 정도면 꽤 소박한 근사함 아닌가? 그런데 점점 마음이 착잡하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오고 거의 반세기가 흐른 뒤, 비셰그라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서다. 1992년, 보스니아 전쟁. 한때 같은 다리 위에 모여들던 사람들이 살던 곳에서 말이다. 대홍수의 밤에 둥글게 모여 앉은 사람들을 보며 잠시 가슴 한구석을 데워보기도 했는데, 그들이 아직 모르는 일을 나 혼자 알고 있는 채로 끼어 앉아 있는 것만 같았다.

오래도록 이웃으로 살아왔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그럴 수 있는 건 아니었고, 함께 살았다고 서로를 다 이해했던 것도 아니었을 테다. 대홍수 장면이 더 오래 내 마음에 남는 것도 그래서인 것 같다. 그 밤에 오가던 웃음과 훗날 그곳에서 벌어진 끔찍한 일이 좀처럼 한데 겹쳐지지 않는다. 다 현실 같지가 않다. “땅과 권력과 인생관과 질서를 위해서” 그토록 많은 것을 걸고 서로를 밀어내는 동안에도 시간은 곁을 스치듯 지나가고 있다.

“과연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p. 196)

이제는 기억하는 사람도 드물어진 이야기들, 아니, 나 먹고사는 일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이야기들 속에서 모든 집착과 이런저런 압박을 내려놓아 본다. 그리고 어쩔 도리 없는 여러 재앙 앞에서, 가련하고 애달프긴 해도 ‘기꺼이 웃어넘길 수 있는 힘’을 보여주는 인간의 모습에 숨을 돌려본다. 그러는 동안 내가 붙들고 있던 것들이 잠시나마 전부는 아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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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11-05 14: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
이 근사한 리뷰 읽고나서 저는 이 책 읽고 뭘 써놨나 찾아서 읽고 왔습니다. 저는 이 책 속의 가슴 아픈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썼었네요. 조르카, 나쁜 남자 사랑한 조르카.. 크.. 그래서 조르카가 어떻게 됐는지.. 기억은 나질 않습니다. 조르카여.....

참 재미있어요.
같은 책을 읽고 완전히 다른 부분에 꽂혀서 다른 감상을 갖게 된다는 것이요. 곰돌이 님의 리뷰를 읽으니 이 책은 험한 역경 속에서도 어떤 연대가 피어나는 책인데, 저는 나쁜 남자 사랑한 여자의 책이 되어버려...

잘 읽고 갑니다. 재차 말씀드리지만, 읽고 쓰기를 멈추지 마십시오!!

곰돌이 2026-11-05 14:55   좋아요 0 | URL
평생 남한테 싫은 소리도 한 번 안 해봤고, 열심히 일만 했고, 절약했고, 개미 한 마리도 밟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그렇게 앞만 내다보며 살았는데, 마지막에 남은 거라고는 군인들 사이에서 총살당할 차례를 기다리는 일뿐이었다는 어느 상인의 이야기... 땀이 뚝뚝 떨어지는데, 그 땀이 모든 것을 앗아가고 자기만 두고 가버리는 인생처럼 느껴졌다던 그 장면, 또 아흑 ㅠ

워낙 에피소드가 많은 작품이라 눈여겨보게 되는 장면도 참 다양할 것 같아요. (쓰는 건 몰라도, 읽는 건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큭. 전 책에게 빚진 게 있어서요. 갚으면서 살아야 하거든요. ㅋㅋ)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52
알프레트 되블린 지음, 권혁준 옮김 / 을유문화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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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 그때 대답이 들려왔다. 이게 바로 형벌이야”

지금 막 4년의 형기를 마친 사내가 교도소 담장 밖으로 나왔지만, 여름 외투 하나 걸친 그는 이내 풀썩 주저앉고야 만다. 자유를 얻은 사람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주저앉는 것이라니. 왜? 무엇 때문에? 그는 지금 담장 안으로 되돌아가고만 싶다. 그러나 형을 다 마쳤으니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상 속으로, 저 많은 사람들 속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을까? 막막함과 두려움이 엄습해온다. 이 사내의 불안함을 눈치챈 어느 붉은 수염의 유대인이 다가와 던지는 한마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눈과 발이오. 세상을 제대로 볼 줄 알아야 하고, 세상에 뛰어들 수 있어야 하니까요.”

사흘이 지났다. 출소한 사내, 프란츠 비버코프는 이제 겨울 외투에 모자까지 쓰고 활력을 찾은 모습이다. 이번만큼은 진실하게 살아보겠다 맹세한다. 그러나 그가 다시 마주한 세상은 결심만으로 건너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새사람이 되어보겠다는 건 프란츠의 마음이고, 세상이 그를 대하는 방식은 별개의 문제다. 그가 어떤 죄목으로 교도소에 들어갔는지, 그리고 나온 이후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내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새사람? 개코나, 인간이 어디 그리 쉽게 변한다니?’ 욕도 아까웠다. 그래서인지 앞서 붉은 수염의 유대인을 향한 프란츠의 대꾸 안에서 느껴진 삶의 의지와 자신감이 새삼 다시 떠오르면서 괜히 같은 말도 더 괘씸하게 다가왔다.

“당신은 발과 눈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죠. 내게도 아직 눈과 발이 있어요. 아무도 그것을 뺏어 가진 않았죠.”

이 책은 베를린에서 시멘트 공장 노동자이자 가구 운반 인부였던 프란츠 비버코프에 관한 보고서다. 왜 하필 범죄자 프란츠일까? 그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아니아니, 알렉산더 광장 앞을 오가는 벌떼같이 많은 사람들 중 사소한 인물일 뿐이다. 심지어 그의 친구들 사이에서는 ‘선량한’ 프란츠라는 거.

갑자기 뜬금없는 작가의 TMI인데, 정신과 의사이기도 한 알프레트 되블린은 영화광이라고 한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영화를 보듯 조각조각 난 장면을 머릿속으로 이어 붙이게 된다. 지금 읽고 있는 이야기만 쭉 이어지는 게 아니라 도시 전체의 풍경을 비롯한 여러 요소가 다소 이질적으로 끼어들 때가 있고, 화자의 말이 이어지다 말고 인물의 혼잣말이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처럼 구분도 없이 섞이기도 한다. 현기증 날 정도는 아니다. 맨날 먹는 밥은 지겨워서 새로운 거 먹을 때 입이 즐겁듯, 그저 즐기면 될 뿐. 따라가다 보면 금세 리듬에 적응이 되고, 이 소설 특유의 공허함과 머리가 무거워지는 엄숙함에 서서히 감기게 된다.

마치 한 방향으로 바람이 부는 게 아니라 이쪽에서 불었다가 저쪽에서 불고, 거리의 먼지와 종잇조각이 정신없이 휘날리는 날의 느낌이다. 도시는 부산스럽고 활기찼지만, 프란츠처럼 전과를 안고 다시 살아보려는 사람에게 이 분주함은 기회인 동시에 언제든 자신을 휩쓸어갈 바람이기도 하다. 주머니에 얼마 안 되는 지폐를 만지작거려보기도 하고 외투 깃을 바짝 세워보지만 춥다, 더럽게 춥다. 마음이 추우니 더 춥다. 그렇게 1920년대 말 베를린이 한꺼번에 품고 있었을 활기와 불안을 느껴볼 수 있었다.

프란츠는 이것저것 팔기 시작한다. 넥타이핀을 팔다가 알렉산더 광장을 떠돌며 민족주의 성향의 신문까지 판다. 그러다 옛 전우, 지금은 연마공으로 일하다 직장에서 쫓겨난 게오르크를 만나면서 이야기는 전쟁과 혁명, 공화국을 둘러싼 정치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런데 프란츠가 꺼내놓는 건 전쟁의 승패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먹을 게 없어 농부의 감자를 훔쳐 먹었던 일, 고기와 버터조차 구하기 어려운 현실 같은 것들. 전쟁을 겪고 혁명까지 일어났는데, 정작 달라진 게 뭐냐는 거다. 건물은 높이 올라가고 도시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세상이 변한다는 건 대체 누구의 삶이 변한다는 뜻일까? 거리에서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고, 헌법에 자유가 적혀 있어도 경찰의 곤봉 앞에서는 소용이 없다고 외치고 있다. 자유가 있다고 쓰여 있는 것과 실제로 자유롭게 사는 건 다른 문제라는 듯이. 겉으로는 “나하고는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야.”라고 되뇌는 프란츠. 세상이 무슨 색을 내걸든, 먹고사는 일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듯이 말이다.

“어떤 친구가 갖고 있는 시가의 띠가 빨간색이든 금색이든, 아니면 흑백적이든 그것 때문에 시가 맛이 더 좋아지는 것은 아니잖아. 중요한 것은 연초 그 자체야.” (p. 118)

빵 한 조각도 벌어야 내 입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그 벌이조차 힘겨운 세상이니 목구멍에 술이 안 들어갈 수가 없고, 남는 거라고는 그다음 날의 숙취와 그사이 흘러간 세월뿐. 멀미 나는 배 위에서 아무 기둥이라도 얼른 껴안고 싶은 사람처럼, 불안한 세상 속에서 프란츠는 대단한 신념이 아니라 그저 움직이지 않는 무언가가 필요해서 움직이는 사람으로 보였다.

프란츠는 평온함을 원한다. 깨끗해지길 원한다. 말끔히 치워지길 바란다. 무엇이? 자기 안팎의 나쁜 기운이나 불쾌한 감각이. 자기가 옳다고 믿는 상태를 억지로라도 만들어내려는 사람처럼, 일부러 창문을 열고 차디찬 바깥바람을 쐬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자신과 안 좋게 엮인 인물이 자기가 사는 집에 왔을 땐, 그 사람을 향해 계속해서 찬물을 뿌리는 모습도 같은 맥락으로 보였다. 지금 당장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당장 감당할 수 있는 크기로 줄여 놓는 것. 나는 이게 프란츠가 살아가는 방식 중 하나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차근차근 받아들일 여유조차 없는 사람처럼. 그런 그가 막상 자기한테 엄청난 일이 닥쳤을 때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세상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사람이 자기 삶에 대해서만큼은 어떻게든 포기하지 않으려 하는 모습. 대단한 생존 본능일까,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일까.

줄거리를 최대한 드러내지 않고 적으려니 영 가슴팍이 갑갑하다. 이 책과 어울리는 표현은 아닌 것 같지만 요 며칠 정말 신나게 읽었다. 프란츠의 이야기 사이로 다른 사람들의 일상이나 가축들이 도축되는 과정, 성경 속 이야기와 시의 한 구절이 불쑥 끼어든다. 그런데 이 구성이 참 묘하다. 어떤 장면에서는 프란츠가 겪는 엄청난 일들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수많은 일 중 하나처럼 보였다. 특별히 이상할 것도, 놀라울 것도 없는 일상처럼. 그런데 도살장의 풍경이나 성경 속 이야기가 끼어들면 방금까지 따라가던 프란츠의 삶이 갑자기 다른 무게를 갖게 된다. 도축대 위에 올라와 있으면서도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 채 평온한 가축들의 모습에 인간의 죽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어서였을까. 감옥에서 나온 뒤 새롭게 살아보려 하지만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 프란츠의 인생도 떠올랐다. 인간이 언젠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살아보려고 애쓴다고 해서, 어떻게든 다시 시작해보겠다고 마음먹는다고 해서, 자기 앞에 놓인 일을 다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 어떤 일을 맞닥뜨리게 될지 모른 채 살아가다가, 자기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것. 더는 희망도, 절망도, 분노도 없이 유약한 나 자신을 인정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이 참담함.

목에 무거운 무게추를 매단 채 알렉산더 광장의 한복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고개를 들고 앞으로 나아가려 해도 벗어날 수 없고, 내려놓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 무게에 익숙해질 수도 없는 상태로. 각자 옳다고 믿는 게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도 다른, 누구 하나 딱 집어 마음을 주기도 어려운 사람들의 모습이 안쓰럽다고 편들 수도 없고, 밉다고 외면하기도 어려웠다. 사정이 있다고 해서 다 이해되는 것도 아니고,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그 사람의 삶까지 들여다볼 필요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니까.

모든 것은 의미를 드러낼 것이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섬뜩한 의미를. 그 숨바꼭질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이 친구야. (p. 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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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bass 2026-10-28 16: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광장 한복판에서 여러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정신없는(?) 느낌을 주는 책인가봐용😮

곰돌이 2026-10-28 16:46   좋아요 1 | URL
광고판에 적힌 글, 신문 기사, 시와 성경 구절이 갑툭튀 하는데요, 그런 장면들이 한데 모여 당시 베를린과 사람들(특히, 노동계급)이 먹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소설이에요. 주인공이 범죄자 인데, 그 외 등장인물들도 대체로 선량하고 착실한 쪽은 아닙니다! 입이 간질간질 하지만 더 이상 입을 털지 않으렵니다. ㅋㅋ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52
알프레트 되블린 지음, 권혁준 옮김 / 을유문화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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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이 제법 되는 책은 읽다가 글자가 눈에서 그냥 지나가버리기도 하고, 또 그게 딱히 아쉽지 않을 때도 있다. 이 책은 거의 지루할 새가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재밌는 책에 리뷰가 왜 이리 적을까. 아! 그냥 내가 뒷북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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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25 1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10-25 2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oolcat329 2026-10-30 19: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곰돌이님 추천으로 구입했어요. 다른 글들도 잘 읽고 있습니다. 😊

곰돌이 2026-10-31 07:48   좋아요 1 | URL
쿨캣님 안녕하세요! 곧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에서 온갖 인간군상을 만나보시겠군요? 저 작년에 <아라비아의 로렌스>에 관심 두고 있었는데, 그때 쿨캣님의 글을 접한 뒤로 혼자 열심히 훔쳐 읽고 있었어요. 그런 분과 이렇게 인사까지 나누게 될 줄이야!! ㅋㅋ
 
오블로모프 2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11
I.A. 곤차로프 지음, 최윤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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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나! 내가 누굽니까? 도대체 나란 사람이 누구란 말입니까? 자하르에게 가서 물어보세요. 이렇게 말할 겁니다. ‘주인님!’이라고. 맞아요. 나는 주인 나으리,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전혀 없는 지주올시다!”

그래도 사랑의 힘이 강력하긴 한가 보다. 침대 붙박이 오블로모프를 다시 밖으로 나오게 만드는 걸 보면. 이 남자의 사랑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짚고 넘어갈 사람이 있다. 오블로모프와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친구 슈톨츠다. 오블로모프가 생각과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기까지가 어려운 쪽이라면, 슈톨츠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줄 아는 쪽이다. 그렇다고 어느 한쪽이 더 나은 인간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한 사람에게는 삶을 꾸려갈 능력이 있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그 능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어쨌든 슈톨츠를 통해 오블로모프는 올가를 알게 되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오블로모프가 아무 일도 안 해봤을 법한 만년 백수처럼 보이지만, 짧게나마 관청에서 일하기도 했다. 하루 종일 일하고 또 일하고, 일하면서도 또 다른 일을 찾아 움직이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도무지 버텨나갈 수가 없었는지, 서류를 잘못 보내는 실수를 한 끝에 병가를 내고 결국 사직해 버렸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상황은 아니니 이를 악물고 버틸 까닭이 없었을지도? 이런 오블로모프를 답답해하면서도 슈톨츠는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고 자꾸 세상 밖으로 끌어내려고 한다. 이렇게나 다른 두 사람이 오랜 친구라는 것이 꽤 의외다. 오블로모프 때문에 천불이 끓어오르려다가도 슈톨츠가 등장하면 속이 좀 뚫리는 것 같았다. 인간 개비스콘!

올가와 오블로모프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마음이 영 편치가 않다. 올가와의 만남에서는 매번 뭔가를 해야 하고, 오블로모프는 그때마다 등 떠밀려 단추를 끼워 나가면서도 빠져나갈 구실을 찾는다. 그러다 마땅한 변명거리가 떠오르면 그 자체가 적잖이 기쁜 오블로모프다. 물론 이렇게 해서라도 관계를 이어 나가려 하는 것은 올가를 사랑하고, 그녀가 보여주는 삶의 방향은 자신에게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다만 그 방향을 향해 마음을 먹는 것과 실제로 그 삶을 살아가는 것은 오블로모프에게 전혀 다른 문제라는 거다.

사실, 올가도 오블로모프가 다시 침대 붙박이 시절로 돌아가지 않도록 애쓰며 만남을 이어가는 중이다. 매사 쉽게 쉽게 넘어가는 게 좋아 읽지도 않고 서류에 서명하는 바보 천치 같은 인간에게 어떻게든 생의 활력을 불어넣으려니 속이 타들어 갈 만도 하다. 그런데도 보고 싶고, 만나면 좋고, 함께 있는 순간만큼은 행복한 모양이다. 그런데 왜인지 두 사람의 사랑은 불꽃이 언제 연기만 남기고 사라질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들여다보게 된다는 것.

오블로모프에게 사랑이란 뭘까. 사랑하는 마음이야 있을 테지만, 그 마음만으로 되는 일은 별로 없어 보인다. 결혼을 생각하면 그에 딸린 온갖 일들이 따라오고, 올가의 마음에 발맞춰 자기 감정을 키워가는 일도 오블로모프에게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녀가 기쁨에 푹 빠져 있는 모습을 보며 오블로모프가 도리어 시샘을 느꼈다는 대목이 그랬다.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면서도 자신은 그 감정 한가운데로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 어쩌면 오블로모프는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던 마음마저 오래전에 잃어버린 건 아닐까.

“행복이란 얼마나 허약하고 미덥지 못한 것이란 말인가!” (p. 74)

그런데 올가와는 결이 다른 여성이 등장한다. 새로 지낼 집 문제로 찾아간 곳에서 만난 여주인, 미망인 아가피야 마트베이브나. 호사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낡고 소박한 옷차림, 순박한 두 눈에 억센 두 팔로 쉬지 않고 일하는 사람. 어랏? 올가와 함께 있을 때의 오블로모프를 생각하면 묘한 차이가 느껴진다. 뭔가 자연스럽고, 편안하단 말이지! 마치 기름칠이 잘 된 톱니바퀴가 매끄럽게 돌아가는 느낌이랄까. 온종일 일만 하느라 앉을 새도, 딴생각할 새도 없이 살아온 아가피야. 그런 그녀의 삶에 오블로모프가 등장하면서 해도 해도 끝이 나지 않던 집안일에도 활기가 돈다. 이건 또 무슨 일이야! 재채기와 사랑은 뭐라더라?

160여 년 전의 러시아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은 뭐, 다 거기서 거기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삶이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들 보이지 않는 밤을 뚫고 저마다의 방향으로 가듯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거겠지, 짐작만 칠 뿐이다. 곤차로프가 그려낸 여러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며 이런 사람이 있으면 저런 사람도 있는 거 아닌가 생각하다가, 마음 한편이 무거워지는 순간에 다다르기도 했다. 지주랍시고 영지 문제를 자기 손으로 처리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오블로모프는, 어떤 사람인지 깊이 알지도 못하는 남자에게 도움을 청하며 이렇게 말한다.

“어린애에게 이야기한다 생각하시고 말씀을 해주시고 또 충고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갑갑한 마음도 더는 들지 않더라. 그 순간엔 이 사람의 인생이 그저 짠하게 느껴졌다. 누구에게도 드러내고 싶지 않았을 연약한 ‘구석의 것’을 내보이면서까지 뭔가 해보려는 모습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그가 살아가는 세상은 가만히 기다려주지 않는다. 가진 게 없어 억하심정만 늘어나는 이들에게는 “다른 사람 귀에다 속삭이거나 글 한 줄 받아 적게 하거나, 아니면 그냥 제 이름을 서류에 적기만 해도 베개처럼 호주머니가 빵빵해지는 작자들”을 보며 욕지기가 나고, 뼈 빠지게 일해봤자 뭐 하냐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판국이다. 순한 마음을 지녔지만, 가진 것도 스스로 간수하지 못하는 오블로모프는 날강도들에게 먹잇감이 되는 게 현실이다. 그러니 누군가는 오블로모프를 보며 혀를 끌끌 찰지도 모르겠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도 시원찮을 판에 무력하기만 하니 말이다.

온종일 드러누워 남이 가져다주는 커피나 마시고 빵이나 뜯어 먹으며, 남이 출근하는 모습이나 바라보고 사는 지주라니. 호되게 욕하면서 읽을 것 같지만, 막상 읽어보면 또 마냥 흘겨보지 않게 되니 환장하겠다. 오블로모프의 선함을 인정하면서도 그의 한계까지 이해하고, 그렇다고 모든 것을 정당화하지는 않으려 했다. 한계에 갇혀 살아가는 그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할 때가 있어서인지, 어느 순간부터는 계속 부딪히고 실수하고 아프더라도 마음에 불을 확 지피고 멈추지만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좀 더 컸던 것 같다. 물론 그 순간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갈지는 그의 몫이겠지만.

1권을 읽을 때만 해도, 도대체 침대에서 떨어지지 않는 인간의 이야기로 무슨 할 말이 쏟아지려나, 게다가 2권씩이나? 하는 생각에 갸우뚱했다. 시대와 상황은 달라도, 지금 사람들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그들의 삶을 다각도에서 들여다보게 됐다. 그중에서도 발밑이 어디에 닿을지 모른 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불안과, 매일 벌어지는 낯선 상황에 좀처럼 뿌리내리지 못해 온갖 생각으로 머릿속을 꽉 채워야만 했던 이의 심정이 꽤 가깝게 다가왔던 것 같다.

인생이란 게 참 무거운 것이구나 하는 걸 또 한 번 차갑게 들이마셔본다. 예전의 난 어쩜 그리도 안일했던지, 큰 고민도 없이 얼마나 성큼성큼 내디뎠던지. 그렇게 내 인생을 한 번 훑어보다가 2권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정작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한 인간이 되레 나를 흔들어 깨우고 있다는 걸 느꼈다. 에잇, 보드카 한 잔이 급 땡기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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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26-10-15 10: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리뷰 감사합니다~! ^^ 사랑이란 무엇이고 인생이란 무엇일까요... ˝에잇, 보드카 한 잔이 급 땡기는군.˝ ㅎㅎㅎ

곰돌이 2026-10-15 14:06   좋아요 1 | URL
오블로모프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만 있는 사람과 달리, 바쁘게 살아가는 것만이 정답이라면 바쁜 사람들은 모두 행복하고 잘 살고 있어야 하잖아요. 이런 등식의 허술함을 보여주는 걸 보면, 작가가 오랜 관직 생활과 세계일주를 통해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지켜봤을지 슬쩍 짐작하게 되기도 해요. 어떤 삶이야말로 충분한 걸까, 답도 없는 생각을 하다가 그런 생각 자체가 무슨 의미일까 싶어지더라구요. 그렇게 머릿속만 데굴데굴 굴려봤습니다.

보드카 땡기십니까ㅋㅋㅋㅋ

blueyonder 2026-10-15 16:17   좋아요 1 | URL
정성스런 댓글 감사합니다~ 삶에 정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합니다. 낭비하지 말고요... 하지만 생각과 실천은 늘 다른 문제라서... ㅋ

전에 예쁜 병에 든 보드카를 마셔봤는데, 괜찮더라고요. 하지만 한 잔만 마실 수 있습니다. ^^;

다락방 2026-10-15 1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드카 드실 때 저를 불러주시죠. 흠흠.

곰돌이 2026-10-15 14:07   좋아요 0 | URL
그런 일이 생긴다면 오죽이나 좋을까 싶어요. 일단 보드카 대신 땡투가 먼저 갈 겁니다, 다락방님. ㅋㅋ

잠자냥 2026-10-15 1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뭐... 그렇게 게으른 와중에도 애도 만들고 그러지 않습니까....

곰돌이 2026-10-15 14:08   좋아요 0 | URL
인생의 대부분은 미뤄도 본능까지 미룰 순 없었나 봅니다. 앙큼하다. 오블로모프! 할 건 다 했다! ㅋㅋㅋ 팔꿈치 플러팅이 들어오니 뭐...
 
오블로모프 2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11
I.A. 곤차로프 지음, 최윤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3월
평점 :
품절


잘 살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문제는 그 마음이 어디까지 데려다주느냐다. 바라는 것과 해내는 것 사이의 아득한 거리는 누구도 대신 좁혀 줄 수 없다는 걸 새삼 차갑게 들이마셔본다. 답답해서 속이 터지다가도 끝내 미워할 수 없는 침대 붙박이 오블로모프가 되레 나를 흔들어 깨울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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