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척학전집 : 사랑은 오해다 세계척학전집 4
이클립스 지음 / 모티브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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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질문이 가지는 힘은 분석을 통한 객관화이다.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테노브의 질문은 “지금 내가 느끼는 이것은, 대체 무엇인가.”(28쪽)이다. 그 감정을 데이터로 살펴볼 수 있어야 진실한 사랑을 알게 되는 것이다.

첫 페이지를 열고 만난 테노브의 ‘리머런스’ 개념은 나에게 생소해서, 더 흥미로웠다. 이 개념을 다룬 원전이 아직 번역되지 않아 영어 원전으로만 읽을 수 있다고 한다. 난이도가 별 두 개여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그렇지만 저자는 10여 쪽 분량으로도 충분히 그 개념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적절한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이 시리즈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 바로 그 부분이다. 저자는 정확한 요점 정리의 달인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사랑의 본질은 무엇인가. “왜 하필 그 사람이었는가.”(31쪽)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저자는 쇼펜하우어에게서 찾는다. 그의 저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사랑의 형이상학’ 챕터의 첫 문장은 충격적이다. “모든 종류의 사랑은, 아무리 숭고하게 보일지라도, 그 뿌리는 오직 성적 충동에 있다.”(33쪽) 누군가에게 끌리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유전적 보완’을 위한 종의 의지라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결혼 후 부부 사이에 닥치는 환멸 역시 목적이 달성된 종의 의지로 설명한다. 그가 활동 당시 외면받다가 책 출간 30년이 지나서야 재발견된 이유가 조금은 이해된다.


사랑의 본질에 대한 분석이 이어지는 가운데, “완전한 사랑은 가능한가.”(63쪽)라는 질문은 또 다른 차원을 열어준다. 스턴버그는 가능하다고 보았다. 단, 어떤 부분이 사그라들고 있을 때 그 부분에 힘을 실어야 한다고 했다.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리 위대한 사랑도 죽을 수 있다.”라는 그의 말처럼, 사랑하는 사람과의 간극은 표현으로 메워 가야 한다. 그것은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을 통해서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또한 바우만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영구적인 유대는 없다고 주장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주장보다 그와 아내와의 관계이다. 그의 표현대로 ‘액체 근대’를 논한 그의 사랑은 오히려 ‘고체’처럼 단단한 유대였다는 점에서, 그의 이론과 실제 삶 사이의 간극이 역설적이라, 이 또한 사랑의 또 다른 형태가 보여 주는 듯했다.

사랑의 원인을 묻는 말도 이어진다. “왜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가.”는 피셔의 저서 제목이기도 하다. 피셔에 따르면, 사랑이라고 오해했던 끌림·애착·욕망은 뇌에서 보내는 각각 다른 화학물질에 의해 작동되는 것이며, 그래서 누군가에게 끌리면서도 성적 욕망은 전혀 다른 사람을 향할 수 있다고 한다. 융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의 내면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끌리는 대상이 달라진다고 보았다.


이처럼 사랑은 이렇게도 볼 수 있고, 저렇게 분석할 수도 있으며, 심리의 문제일 수도, 뇌 시스템에 의한 욕구일 수도 있다. 저자는 그 다양한 사랑의 체계들을 한 권에 담아낸다. 그중에서 내게 “아, 그렇구나! 그래서 그랬구나!”라는 깨달음을 준 것은 채프먼의 ‘사랑의 언어’였다. “자신의 언어로 상대를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닐 수 있다. 상대의 언어로 사랑하는 것이 사랑이다.”(238쪽) 채프먼의 이 말은, 사랑이 언어적 소통의 문제임을 일깨운다. 나의 언어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과 상대의 언어적 표현이 다를 때 관계의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는 거다. 그러므로 상대가 어떤 언어로 사랑을 받아들이며 표현하는지를 먼저 살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출발점이라 하겠다. 어쩌면 스턴버그의 ‘표현’이 채프먼의 ‘언어’를 만날 때 비로소 완전한 사랑을 향해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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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명화 이야기
니시오카 후미히코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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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미술 전시회를 다녀왔다. 인상주의 화풍을 좋아하는데, 마침 구미에 맞는 전시회가 열려서였다. 작품을 읽는 눈도 없이 그저 바라보기에 아름다운 것이 좋다는 생각으로 감상하는 수준이지만, 어쩌다 수십 번을 봐 온 터라 이제는 눈에 익은 작품들이 꽤 있는 편이다. 이 책을 읽고 앞서 관람했던 미술 전시회를 떠올린 것은 바로 ‘액자’ 때문이었다. 현대미술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그림이 화려한 액자에 넣어져 전시되는 것에 익숙해서인데, 그 전시회에서는 니스조차 칠하지 않은 투박한 나무틀에 담긴 그림이 있어 생소했다. 그 작품을 보면서 왜 이런 틀에 넣었나 싶었고, 그래서 액자가 중요하다는 생각도 했다. 그 나무틀에 싸인 그림이 다른 그림에 비해 왠지 손해 보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보니, 나의 그런 생각은 당시 인상주의 화가들의 입장에 반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그림이 화려한 금테 액자에 끼워져 판매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한 액자는 구시대적 왕조풍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고집한 이는 미술상 폴 뒤랑뤼엘이었으며, 그는 인상주의 화풍에 거품을 끼워 놓은 장본인이었다. 모네의 말을 빌리자면 이렇다. “우리 모두는, 그러니까 우리 인상주의자들은 뒤랑뤼엘이 없었다면 다 굶어 죽었을 거요.”(253쪽)

당시 프랑스인들에게 잡동사니 취급받던 인상주의 작품들이 어떻게 대중의 눈에 들게 되었는지 알고 나니, 인상주의 화풍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생소한 용어이지만 설명만으로도 뭔지 알 수 있는 ‘카브리올 레그’ 장식 가구도 인상주의 작품의 가격을 높이고 판매를 촉진하는 데 한몫했다고 한다. 폴 뒤랑뤼엘의 수완이 참 대단하다 싶었는데, 그는 나중에 잡지를 창간하여 작품 비평을 실음으로써 고객의 의사결정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진정한 판매 전략가로서 놀라운 두뇌의 소유자이다.


미술 관련 책을 여러 권 읽기는 했지만, 이 책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많다는 것도 손을 놓지 못하게 만든 이유였다. 어설프게나마 알고 있던 것들을 저자가 현대적인 용어와 설명으로 풀어 놓아 훨씬 명확하게 이해된 부분도 많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를 세계 최강 미술 대국으로 자리 잡게 만든 전략을 ‘기성 작품 전시 판매’라는 현대적 판매 형태로 소개한다거나, 정물화와 풍경화가 왜 미술 소재의 중심이 되었는지를 흥미롭게 설명하는 식이다. ‘트로니’라는 익명의 인물이 기성품 형식으로 그려졌다는 것도 흥미로웠으며, 그 유명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도 트로니였을 것으로 추정한다는 내용도 재미있었다.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서로 다른 천재성을 다룬 대목에서는 감탄하기도 했다. 또한 렘브란트의 〈예순세 살 자화상〉은 책 속 한 페이지로만 감상하는 데도 ‘렘브란트의 빛’이 느껴져 좋았으며, 나폴레옹이 그림의 기능을 어떤 식으로 활용했는지도 흥미진진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덮으면서 명화가 명화인 이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명화를 관람하면서 느끼는 감동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감동일까, 아니면 그림 자체에서 비롯된 순수한 감동일까 하고. 어쩌면 그 둘 다일지도 모른다. 명화란 화가의 붓질만이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욕망’까지 담긴 것이라고 생각하니, 폴 뒤랑뤼엘의 화려한 금테 액자도, 니스 한 번 칠하지 않은 투박한 나무틀도 모두 그림의 일부로 작용하여 관람자가 그림을 감상하게 만드는 요인이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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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호랑이
네주 시노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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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란 실제적인 위협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뒤 정신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감정적 충격을 말한다. 이러한 외상이 반복적으로 경험되면 일상 기능에서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고 하며, 이 장애는 질환으로 진단되어 치료를 요구한다. 트라우마의 치료와 관련하여 흔히 오해하는 것이 있다. 그림이나 글로 마음을 표현하는 행위가 그 자체로 치유가 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저자는 들뢰즈의 글을 인용하며 이에 반박한다. “사람들은 신경증을 지닌 채로 글을 쓰지 않는다. 신경증이든 정신병이든 그런 병들은 삶이 실현되는 통로가 아니라, 삶의 진행이 중단되고 방해되고 막힐 때 사람들이 빠져드는 상태이다. 그런 질병은 삶의 절차나 과정이 아니라, 과정의 중단이다.”(116쪽) 즉, 문학적 글쓰기는 치료의 수단이 아니라 무언가가 이루어진 이후에야 비로소 가능해지는 행위라는 것이다.

이 구절이 내게 깊은 울림을 준 것은, 심리적 손상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삶이 시간의 흐름 속에 있지 않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그들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고’ 있을 뿐이며, 삶의 흐름 자체가 중단된 상태라는 것이다. 가혹한 외상을 겪은 이후 육체는 자라고 시간은 흐르지만, 그들의 실제적 삶은 그 순간에 멈춰 있다. 그러니 글쓰기뿐 아니라 그 어떤 것도 온전히 해낼 수 없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어떤 사건에 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사건이 진짜 고통에서 떨어져 나와 비현실의 양상으로 있기 때문이다. 그 사건은 언어를 통해서 포착될 때에만 현실이 된다.”(117쪽)


이 책이 “증언 문학이 지닌 기존의 문법을 파괴했다”는 평가가 왜 나오는지, 독자라면 누구라도 읽어가며 자연스럽게 수긍하게 된다. 어린 시절 의붓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한 저자가 그 기억을 회고하며 쓴 자전적 소설이자 회고록인 이 책은 형식이 매우 파격적이다. 책 소개에서 어느 정도 가늠하기는 했지만, 직접 읽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획기적이었다. 문체 면에서도 그러한데, 저자가 객관적인 시점에서 의도적으로 건조하게 쓴 듯하다. 저자는 이 글이 순수 문학이 아닌 일종의 증언이기 때문에 굳이 정중하게 쓸 필요가 없으며, 그렇게 할 경우 오히려 작위적인 느낌을 주어 전달하고자 하는 진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67쪽). 또한 조금 더 거리를 두고 쓸 수 있으면 좋겠다(132쪽)고도 고백하고 있어서 이 책을 쓰는 일이 저자에겐 견뎌야 할 일이었겠구나 싶어 안타깝기도 했다. 특히 저자가 이 책을 쓰고 싶지 않은 이유 일곱 가지를 두 페이지에 걸쳐 나열하는 대목에서는 저자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저자는 자신에게 닥친 혐오스러운 상황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는데, 여러 작품과 작가의 이야기, 인류학자와 역사학자의 연구 자료를 끌어와 숙고하듯 써 내려간다.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실제로 벌어진 일들을 툭툭 던지듯 서술할 때면, 그 나이의 소녀가 감당해야 했던 가혹한 현실이 생생하게 그려지며 깊은 먹먹함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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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척학전집 : 훔친 부 편 - 있어 보이는 척하기 좋은 돈의 문법 세계척학전집 3
이클립스 지음 / 모티브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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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완독하지 못했다. 언젠가 꼭 끝까지 읽겠다는 다짐만 반복하던 중에 그의 사상을 소설 형식으로 풀어낸 <누가 스미스 씨를 모함했나>를 읽게 되었다. 그리고는 <국부론>이 아닌 <도덕감정론>을 먼저 읽게 되었다. 애덤 스미스가 더 심혈을 기울인 책이 바로 <도덕감정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도덕감정론>도 <국부론> 못지않게 볼륨이 있는 책이지만 읽기 어렵지 않아 술술 넘어갔고, 읽는 도중에 밑줄도 많이 그었다.

이렇게 애덤 스미스의 두 책 이야기로 서평을 시작하는 이유가 있다. <세계척학전집-훔친 부편>의 저자가 <국부론>과 <도덕감정론>의 핵심을 단 몇 문장으로 압축해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 책이 관통하는 주제, ‘돈의 문법’에 맞춰 두 권을 하나로 꿰어내면서 말이다. 거기에 현재의 시장 상황과 최근 이슈까지 연결해 독자의 이해를 높여 주는데,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이 고작 몇 페이지 안에 담겨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익숙한 경제 개념과 사상들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촘촘히 다루고 있다.


책에 등장하는 여러 사상가 중에 발터 벤야민의 <종교로서의 자본주의>는 특히 흥미로웠다. 내게 벤야민은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아우라’ 개념을 통해 예술을 논한 인물로 익숙했는데, 이 책을 통해 자본주의를 ‘제의(祭儀)’로 바라본 벤야민을 새롭게 만났다.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를 통찰하고자 한 사상가답다고 생각했다. 자본주의 대한 그의 관점에 현대를 사는 누군들 수긍하지 않을까 싶다.

이 한 권의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지식의 양이 상당하다. 지식적 정보만이 아니라 ‘부’의 원리를 통찰하게 해 준다. 저자는 이 책은 ‘시간은 돈이다’로 압축되는 자본주의의 기본 공식을 의심하는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그러한 저자의 사유 체계가 이 한 권의 책을 가능하게 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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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바 AI - 매일매일 쓰는 모두의 AI 매일매일 AI 시리즈 4
신승희.앤미디어 지음 / 생능북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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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우리 속담에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또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도 있다. 뜬금없이 속담을 꺼낸 데는 이유가 있다. 이 책을 읽고 활용하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고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이 바로 이 두 속담이었기 때문이다.


캔바는 내게, 표지에 쓰인 그대로 ‘업무 파트너’나 다름없다. 디자인 작업은 물론 여러 가지 서류와 보고서 작성에도 활용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템플릿과 방대한 폰트를 지원하고 있어서 체계적으로 배우지 않고도 나름 썩 괜찮은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쉽게 접근이 가능했던 것은 직관적인 툴바 덕분이었다. 그렇게 캔바를 자주 활용하다가 어느 순간 내가 필요한 기능만 골라 쓰는, 말하자면 ‘베이직 유저’로만 머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내가 캔바를 활용하여 여러 가지 작업을 한다는 걸 알던 지인이 동영상 제작 기능에 대해 물어보던 날부터 갖게 된 생각이다. 업무상 동영상을 만들 일이 없었던 탓에 나는 아무것도 답해 줄 수 없었다. 그때부터 캔바를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마침 이 책을 만났다. 얼마나 반갑던지!


처음에는 동영상 파트부터 펼쳐 볼까 했다가, 첫 페이지부터 차근차근 읽으며 직접 따라 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알게 된 것이 ‘캔바 AI’ 기능이었다. 캔바를 열 때마다 화면에 버젓이 보이던 버튼이었건만, 한 번도 눌러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기능이었다.

활용 방법을 알고 보니 놀라웠다. 프롬프트를 입력하면 그에 맞는 이미지를 생성해 주고,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추가로 수정까지 할 수 있었다. 원하는 이미지가 나올 때까지 다듬을 수 있다는 점이 특히 유용했다. 지금껏 ‘템플릿’이나 ‘요소’에서 내가 원하는 이미지를 찾지 못할 경우, 외부에서 따로 시간을 들여 찾곤 했던 것을 생각하면, 진작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바로 눈앞에 있던 기능을 몰라보고 이제껏 지나친 것이다.

앞으로는 이 책을 길잡이 삼아 동영상 제작과 이미지 생성 기능까지 폭넓게 활용해 볼 생각이다. 캔바가 애용하는 업무 파트너라면, 이 책은 체계적인 활용법을 알려주는 캔바 도우미다. 함께 곁에 두게 되었으니, 이보다 든든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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