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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명화 이야기
니시오카 후미히코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6년 3월
평점 :
몇 달 전 미술 전시회를 다녀왔다. 인상주의 화풍을 좋아하는데, 마침 구미에 맞는 전시회가 열려서였다. 작품을 읽는 눈도 없이 그저 바라보기에 아름다운 것이 좋다는 생각으로 감상하는 수준이지만, 어쩌다 수십 번을 봐 온 터라 이제는 눈에 익은 작품들이 꽤 있는 편이다. 이 책을 읽고 앞서 관람했던 미술 전시회를 떠올린 것은 바로 ‘액자’ 때문이었다. 현대미술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그림이 화려한 액자에 넣어져 전시되는 것에 익숙해서인데, 그 전시회에서는 니스조차 칠하지 않은 투박한 나무틀에 담긴 그림이 있어 생소했다. 그 작품을 보면서 왜 이런 틀에 넣었나 싶었고, 그래서 액자가 중요하다는 생각도 했다. 그 나무틀에 싸인 그림이 다른 그림에 비해 왠지 손해 보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보니, 나의 그런 생각은 당시 인상주의 화가들의 입장에 반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그림이 화려한 금테 액자에 끼워져 판매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한 액자는 구시대적 왕조풍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고집한 이는 미술상 폴 뒤랑뤼엘이었으며, 그는 인상주의 화풍에 거품을 끼워 놓은 장본인이었다. 모네의 말을 빌리자면 이렇다. “우리 모두는, 그러니까 우리 인상주의자들은 뒤랑뤼엘이 없었다면 다 굶어 죽었을 거요.”(253쪽)
당시 프랑스인들에게 잡동사니 취급받던 인상주의 작품들이 어떻게 대중의 눈에 들게 되었는지 알고 나니, 인상주의 화풍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생소한 용어이지만 설명만으로도 뭔지 알 수 있는 ‘카브리올 레그’ 장식 가구도 인상주의 작품의 가격을 높이고 판매를 촉진하는 데 한몫했다고 한다. 폴 뒤랑뤼엘의 수완이 참 대단하다 싶었는데, 그는 나중에 잡지를 창간하여 작품 비평을 실음으로써 고객의 의사결정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진정한 판매 전략가로서 놀라운 두뇌의 소유자이다.
미술 관련 책을 여러 권 읽기는 했지만, 이 책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많다는 것도 손을 놓지 못하게 만든 이유였다. 어설프게나마 알고 있던 것들을 저자가 현대적인 용어와 설명으로 풀어 놓아 훨씬 명확하게 이해된 부분도 많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를 세계 최강 미술 대국으로 자리 잡게 만든 전략을 ‘기성 작품 전시 판매’라는 현대적 판매 형태로 소개한다거나, 정물화와 풍경화가 왜 미술 소재의 중심이 되었는지를 흥미롭게 설명하는 식이다. ‘트로니’라는 익명의 인물이 기성품 형식으로 그려졌다는 것도 흥미로웠으며, 그 유명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도 트로니였을 것으로 추정한다는 내용도 재미있었다.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서로 다른 천재성을 다룬 대목에서는 감탄하기도 했다. 또한 렘브란트의 〈예순세 살 자화상〉은 책 속 한 페이지로만 감상하는 데도 ‘렘브란트의 빛’이 느껴져 좋았으며, 나폴레옹이 그림의 기능을 어떤 식으로 활용했는지도 흥미진진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덮으면서 명화가 명화인 이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명화를 관람하면서 느끼는 감동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감동일까, 아니면 그림 자체에서 비롯된 순수한 감동일까 하고. 어쩌면 그 둘 다일지도 모른다. 명화란 화가의 붓질만이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욕망’까지 담긴 것이라고 생각하니, 폴 뒤랑뤼엘의 화려한 금테 액자도, 니스 한 번 칠하지 않은 투박한 나무틀도 모두 그림의 일부로 작용하여 관람자가 그림을 감상하게 만드는 요인이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