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열의 교양 - 알고도 모른 척해야 하는 지위의 법칙 세계척학전집 7
이클립스 지음 / 모티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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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이 시리즈의 책을 꾸준히 읽어 왔다. 매번 흥미진진하다고 생각하면서 다음 주제를 기대 속에 기다렸다. 이번 주제는 ‘정치’이다. 제목부터 흥미롭다. ‘서열의 교양’이라니. ‘교양’과 ‘서열’이 어울렸던가? 그런데 이 제목이 내용을 아우른다. 왜냐하면 서열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라든가, 내가 점거해야 할 서열의 위치라든가 하는 것을 대놓고 말하면서 사회관계를 형성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은근하게 이루어지는 지위의 법칙. 그러므로 ‘교양’이라는 단어가 지닌 함의의 어느 부분에서 서열과 만났을 때 꽤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57쪽을 읽다 보면 ‘아무르 드 수아’와 ‘아무르 프로프르’에 대한 개념 설명이 나온다. 루소가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다룬 ‘인간이 자기를 사랑하는 방식 두 가지’를 명명한 것이다. 전자는 ‘자기애’라고 할 수 있지만, 후자인 ‘아무르 프로프르’는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우리말로 ‘자존심, 허영, 이기심’ 등으로 옮기려고 할 때 어느 것도 딱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번역서에는 ‘이기심’으로 번역되어 출간된 모양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번역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아무르 프로프르’는 남의 눈길을 통해서만 작동하는 자기애라고 한다.

내용 중에 ‘보엠’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인류 최초의 무기가 뒷담화라는 것이다. 일견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최초의 무기는 글로벌 시대에 디지털 기기의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더욱 강력한 무기로 그 지위를 차지했다. 가십은 그 대상을 자신이 가진 지위에서 끌어내리기도 하고, 재산을 파산시키기도 하며, 심지어 목숨을 잃게 하기도 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하나의 이론을 풀어내고, 그것을 현재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를 짤막한 인사이트 박스에 남긴다. 촌철살인과도 같은 문장들이 많아서 곱씹게 되기도 하고, 어떤 글은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정말 유용한 팁을 제공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자하비의 ‘값비싼 신호 이론’ 편에서 수컷 공작의 화려한 꼬리가 세대를 지나면서도 이어지는 이유에 ‘핸디캡 원리’를 적용하면서, ‘자신을 소개할 때 형용사를 줄이고 숫자를 늘려라’는 조언으로 이어진다는 점이 놀랍다.

이 저자의 글이 늘 그러하듯, 참으로 각 개념이나 원리를 명쾌하게 해석해 놓은 후 그것을 바탕으로 독자의 마음을 파고들 방안이나 문제 해결안을 툭 던진다. 이번에도 흥미롭게 읽었고, 다음에는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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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사생아들 : 레프 톨스토이 x 오귀스트 르누아르 세계문화전집 3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외 지음, 홍선기 엮음 / 모티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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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몇 년 전 베르나르 뷔페 전시회에 갔는데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흘러나오던 음악이 작품과 참으로 잘 어울려서 좋았다. 반복해서 흘러나온 음악은 <브람스 교향곡 3번 3악장>이었다. 2시간 넘게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귀에 반복적으로 들린 그 곡은 이제 서로를 환기시킨다. 뷔페 작품을 보면 브람스의 그 교향곡이 떠오르고, 브람스 교향곡 3번을 들으면 뷔페가 떠오른다.

이 책은, 이 책을 읽을 때 곁들이면 좋은 클래식을 소개하며 시작한다. 그래서 선별된 곡 중에서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체르’>를 반복해서 들으며 읽었다. 이 곡에 대한 톨스토이의 감상평을 읽으면서 예술가들의 교감은 정말 예민하단 생각을 했다. 한편 이 소개글을 통해 르누아르가 화가가 되기 전에 소년 합창단원이었단 사실이 놀랍다. 만약 작곡가 구노의 권유에 따라 음악을 선택하고 그 분야에서 성공했다면 19세기 사람들은 오페라에서 르누아르를 만났을 있었을까. 바그너에 대한 두 거장의 서로 다른 시선에 관한 글에서 그 둘의 가치관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주인과 일꾼>이라는 중편 소설이 실려 있다. 읽다 보니 전에 읽었던 작품이다.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톨스토이의 묘사 문장들을 곱씹기도 하고 신앙적인 부분도 다시금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작품의 제목이 ‘일꾼’으로 번역·출간된 적이 없었다는 엮은이의 글을 읽고 새삼 놀랐다. 그렇다면 전에 읽었을 때는 <주인과 하인>이었던 듯하다. 당시에는 당연하게 ‘하인’인 줄로 알고 읽었는데, 톨스토이가 ‘일꾼’이라는 단어를 일부러 사용했다는 글을 읽고 나니, 등장인물들의 행동이 다르게 와닿았다. 단어 하나가 인물의 행동을 바라보는 감정의 결을 달리하게 한다.


이 책의 서문은 이 소설이 끝난 후에 나온다. 그 이유가 어떠한 사전 지식 없이 온전하게 두 거장의 작품을 감상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엮은이는 이 서문을 통해 두 거장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내용이 꽤 강렬하기 때문이다. 또한 왜 이 서문에 앞서 톨스토이의 작품 중에 <주인과 일꾼>을 두었는지도 알게 된다. 그리고 엮은이가 던진 질문에 잠시 책을 내려놓기도 했다.

두 편의 톨스토이 작품이 더 실려 있다. 그중 한 편은 줄거리 요약본이다. 엮은이가 이 두 작품을 고른 것도 톨스토이의 내면을 읽기에 무척 중요한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르누아르의 작품을 떠올릴 때면, 살구빛 뺨을 가진 소녀의 행복한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햇빛에 반짝이는 풍경과 여인들도 떠오른다. 밝고 환한 작품들 이면에 르누아르의 삶을 포착할 수 있는 그림이 여러 편 수록되어 있지만 엮은이의 말대로 <화가의 가족>에서 그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두 거장의 삶을 ‘거울과 창문’으로 묘사한 부분은 정말 탁월하다. 잊히지 않는 묘사로 오래 기억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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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가슴을 후벼파는 대사 한마디가 있다 - 우리가 사랑한 드라마 명대사 필사집
정덕현 지음 / 서교책방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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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머리말을 읽다가 고개를 들고 생각에 잠겼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시간을 채집한다는 것’이라는 대사가 준 울림 때문이었다. 저자는 이 대사를 떠올릴 때마다, 부서지고 빛바랜 벽들이 남루한 게 아니라 시간이 채색한 흔적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쓴다. 그 문장은 나에게도 다른 깨달음을 안겼다. 낡아가는 모든 것은 시간이 남긴 흔적을 품은 추억거리이며, 그 시간을 사진에 담는 순간 남루함은 더 이상 구차하지 않다는 것.


이 책은 저자가 메모해 둔 명대사들을 선별해 수록하고, 여기에 저자의 에세이를 더한 구성이다. 몇 줄의 대사에서 비롯된 생각과 마음의 결을 자신의 경험과 감상으로 풀어낸 에세이는 인용된 명대사 못지않게 묵직한 울림을 준다. 저자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처럼 세상의 비정상을 꼬집는 인물로 시라노, 돈키호테와 함께 피노키오를 말한다. 피노키오라니! 이상하고 별난 삶도 그 자체로 가치 있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말해주는 주인공으로 피노키오를 택한 대목이 특히 마음에 와닿았고, 덕분에 어떤 형태로든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지닌 무게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또한 <스타트업>에서 할머니가 전한 위로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너는 코스모스야.”라고 용기를 줄 수 있기를 바라게 되기도 했으며, <미생>의 대사인, “네가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체력을 먼저 길러라. 정신력은 체력의 보호 없이는 구호밖에 안 돼.”라는 글에서는 나에게 던지는 말처럼 느껴져 그 페이지에서 오래 머물기도 했다.


이 책은 필사집이기도 해서, 명대사가 쓰인 페이지 옆에 그 대사를 필사할 수 있도록 빈 노트를 마련해 두었다. 처음에는 곧바로 이 자리에 써 볼까 했지만, 연습을 거쳐 단정한 글씨로 옮기고 싶어 우선 비워 둔 채 글을 읽어나갔다. 그러다 문득, 이 공간에 대사 필사 대신 나만의 에세이를 써넣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날은 이 대사가 마음을 두드리고, 어떤 날은 다른 대사가 가슴을 후벼파지 않던가! 같은 대사도 때에 따라 다르게 와 닿으니, 이 책처럼 나도 나만의 에세이집을 만들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호구의 사랑>에 나온 “아끼지 마, 그러다 굳어버려.”라는 대사처럼, 빈 노트를 아끼지 않고 뭐든 그날의 감상을 써 내려가다 보면 다 채웠을 때 큰 성취감이 들 것이고, 그 흔적은 나의 시간과 생각과 경험으로 채워져 책장에 꽂히게 될 것이다. 맨 뒤에는 마음에 남은 문장을 자유롭게 적을 수 있는 노란 노트도 있다. 구성 면에서 참 마음에 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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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지 않은 쌍둥이 - 프란츠 카프카 x 에곤 실레 세계문화전집 2
프란츠 카프카.에곤 실레 지음, 홍선기 엮음 / 모티브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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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카프카와 에곤 실레의 삶은 어릴 때부터 질곡의 시간이었다. 그들의 불운한 나날들은 카프카에게는 글로, 에곤 실레에게는 그림으로 승화되었다. 마음속 사무치는 ‘무언가’를 표출할 수 있는 도구가 있었다는 점이 그들 삶에서 찾을 수 있는 희망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쌍둥이처럼 닮은 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은 카프카의 문장에 에곤 실레의 그림을 곁들인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삽화를 목적으로 그린 것이 아님에도 딱 들어맞는 에곤 실레의 작품이 카프카의 작품과 어울리게 그려져 있다는 것이 놀랍다. 에곤 실레의 <서 있는 소년>의 모습은 마치 카프카의 어린 시절을 그린 듯하여 인상적이었다. 이 책을 읽은 후엔 카프카 글을 읽을 때 에곤 실레의 그림이, 실레의 그림을 볼 땐 카프카가 떠오를 것이다.


카프카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영향이 상당하다. 물론 선한 영향력이 아닌 극심한 공포에 가까운 영향을 받았지만, 이는 극단적인 부자지간의 기질적 차이로 보인다. 카프카가 바라보는 세상은 세 부류로 나뉘는데, 첫째가 자기와 같은 노예가 사는 부류이고, 둘째는 자신과는 무한히 먼 세계, 즉 아버지와 같이 명령하고 ‘화를 내느라 바쁜’ 세계에 사는 부류이고, 셋째는 나머지 사람들이 명령 없이 행복하게 사는 부류라고 적고 있다. 카프카에게 아버지가 어떤 대상이었는지 짐작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었다. 아버지와의 관계에 따른 그 정서적 영향은 고스란히 카프카의 작품 속 인물들의 내면으로 투영된다. 이토록 숨 막힌 아버지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글쓰기’라고 한다. 카프카는 자신의 글쓰기는 아버지에 관한 것이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에곤 실레의 아버지는 광기에 전 재산을 불을 지르고 매독으로 숨진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광기는 실레의 그림 속에서 “타오르는 색채와 텅 빈 응시”로 나타나는데, 실레가 자기 몸을 100점이 넘게 그렸다고 해서 놀랐다. 이제껏 자화상을 많이 그린 화가로 렘브란트를 떠올렸었다. 63년을 살다 간 렘브란트가 그리기 시작한 첫 자화상부터 가늠하면 40여 년 동안 80점 안팎의 자화상을 남긴 것에 비하면, 고작 28년을 산 실레가 100점이 넘은 자화상 작품을 남겼다니 말이다.


이 책에 실린 다양한 작품들을 감상하고 읽으면서 정말 즐거웠다. 카프카의 작품들과 함께 카프카의 드로잉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은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실레의 산문시를 비롯한 클림트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 실레의 풍경화 등도 매우 흥미로웠던 부분이다. 에곤 실레의 열 살 무렵의 <기관차> 그림이 실려 있는데 타고난 예술적 감각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316,317쪽에 나란히 실린 카프카와 실레의 사진은 한참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눈빛이 정말 닮은 듯했다. 읽는 내내 참 흥미진진한 시간이었다.

덧붙여, 이 책을 읽기 전에 382쪽을 먼저 펼쳐 보는 것도 추천한다. ‘이 책을 읽을 때 곁들이면 좋은 클래식’이 소개되어 있다. 여기에 실린 여덟 곡과 함께 이 책을 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다 읽고 난 후에 알게 되었다. 여하튼 역자의 말을 빌려 본다. “빈에서 그림과 음은 같은 식탁에 앉아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살았던 시대의 공기를 귀로도 한번 만져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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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전
시라카와 시즈카 지음, 장원철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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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공자를 떠올리면 따라 떠오르는 사람이 소크라테스다. 둘 다 살아생전 남긴 저작이 없다는 것과 제자들과 나눈 대화가 제자들에 의해 책으로 쓰였다는 점이 닮아서일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도 일화가 나오는데, 공자가 제자들에게 이제는 말을 하지 않으려 한다고 했을 때 제자 ‘자공’이 놀라서 “만일 말씀하지 않으시면 저희는 무엇으로 조술하겠습니까?”라고 했다고 하니 아마 저술하지 않는 스승을 따르면서 스승이 하는 말들을 끊임없이 적어가며 그 뜻을 묻고 답을 적어간 제자들도 참으로 대단하다고 느꼈다.

우리에게 <논어>는 얼마나 익숙하게 들어본 책인가! 한자 문화권에 속한 우리나라는 일찍이 어릴 때부터 <논어>를 필독서로 꼽곤 한다. 충분한 사색을 거쳐 <논어>를 읽었든, 해설이 곁들여진 <논어>를 읽었든, 혹은 <논어>의 일부를 읽었든 읽은 사람이 참으로 많을 것이다.

이 <공자전>은 그 <논어>의 주요 ‘화자’인 사상가 공자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유교는 어떻게 확립되었는지, ‘인’이란 도대체 무엇인지가 궁금한 이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나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너무 많았다. 공자의 일생, 유교의 발전, 유교의 경쟁자, <논어>에 담긴 뜻, <논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등 각 챕터마다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그중 일부를 소개하고자 한다.


어떤 체제든 확립되기 전에는 반체제적 성격을 띠듯 유교도 그러했다고 한다. 반체제 이론으로 출발한 유교는 이제 중국 사회체제의 뿌리가 되었다. 유교가 오랜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중국의 사상적 전통을 형성해 온 것이다. 저자는 선진 사상가들에 의해 많은 사상이 싹을 틔웠지만, 유교처럼 하나의 ‘전통’을 수립한 경우는 없었다고 쓴다. 그것을 처음으로 이룬 사람이 바로 공자라는 것이다.

<논어>에는 충신이라는 사고방식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놀라기도 했다. 당연하게도 ‘충’은 나라에 충성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자는 자신을 등용해 준다면 다른 나라에도 ‘충’할 수 있다고 했다고 한다. 공자에게 ‘충’은 성실 정도의 의미였기 때문이다. 조선의 유교에서 ‘충’은 곧 ‘충신’을 뜻했기에 사뭇 의아하기도 했지만 흥미로웠던 부분이다.

출생을 보면, 공자는 무녀가 낳은 사생아라고 한다. 무축의 전통을 이어받았을 터이지만 그 전통에서 공자가 걷어내고자 한 것은 걷어냈다고 한다. 책에 따르면 공자는 “고대 신무의 삶의 방식을 자신의 전형으로 삼고, 사상과 문화가 의거해야 할 바를 구해 멀리 주나라 예교 문화의 창시자였던 주공을 자신의 이상으로”(116쪽) 삼았다. 사생아로 태어나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그런 환경에서 자신의 사상을 세우고 제자들을 두었다는 것이 참 놀랍다.


저자는 ‘인’이라는 말을 공자가 만든 조어로 본다. 공자 이전에는 ‘인’의 용례가 두 가지에 불과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교의 핵심인 ‘인’ 사상을 정확히 이해하기란 참으로 어렵다고 하는데 그저 ‘어질다’ 정도로 알고 있던 나 또한 그 ‘인’에 대해 공자 자신도 규정한 경우가 단 한 곳도 없다고 하니 그 또한 놀라웠다. 저자는 인을 규정하는 것이 공자에게도 불가능했을 것으로 본다. 규정한다는 것은 곧 한정하는 것이기에 공자가 의도적으로 회피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대신 인은 엄격한 실천이 요구되는 행위 규범으로 이해된다고 쓰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논어>의 공자를 실제적인 모습으로 만날 수 있었다. <논어>를 읽거나 읽고자 하는 독자라면, 공자의 삶을 통해 <논어>의 배경과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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