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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호랑이
네주 시노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3월
평점 :
트라우마란 실제적인 위협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뒤 정신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감정적 충격을 말한다. 이러한 외상이 반복적으로 경험되면 일상 기능에서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고 하며, 이 장애는 질환으로 진단되어 치료를 요구한다. 트라우마의 치료와 관련하여 흔히 오해하는 것이 있다. 그림이나 글로 마음을 표현하는 행위가 그 자체로 치유가 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저자는 들뢰즈의 글을 인용하며 이에 반박한다. “사람들은 신경증을 지닌 채로 글을 쓰지 않는다. 신경증이든 정신병이든 그런 병들은 삶이 실현되는 통로가 아니라, 삶의 진행이 중단되고 방해되고 막힐 때 사람들이 빠져드는 상태이다. 그런 질병은 삶의 절차나 과정이 아니라, 과정의 중단이다.”(116쪽) 즉, 문학적 글쓰기는 치료의 수단이 아니라 무언가가 이루어진 이후에야 비로소 가능해지는 행위라는 것이다.
이 구절이 내게 깊은 울림을 준 것은, 심리적 손상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삶이 시간의 흐름 속에 있지 않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그들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고’ 있을 뿐이며, 삶의 흐름 자체가 중단된 상태라는 것이다. 가혹한 외상을 겪은 이후 육체는 자라고 시간은 흐르지만, 그들의 실제적 삶은 그 순간에 멈춰 있다. 그러니 글쓰기뿐 아니라 그 어떤 것도 온전히 해낼 수 없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어떤 사건에 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사건이 진짜 고통에서 떨어져 나와 비현실의 양상으로 있기 때문이다. 그 사건은 언어를 통해서 포착될 때에만 현실이 된다.”(117쪽)
이 책이 “증언 문학이 지닌 기존의 문법을 파괴했다”는 평가가 왜 나오는지, 독자라면 누구라도 읽어가며 자연스럽게 수긍하게 된다. 어린 시절 의붓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한 저자가 그 기억을 회고하며 쓴 자전적 소설이자 회고록인 이 책은 형식이 매우 파격적이다. 책 소개에서 어느 정도 가늠하기는 했지만, 직접 읽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획기적이었다. 문체 면에서도 그러한데, 저자가 객관적인 시점에서 의도적으로 건조하게 쓴 듯하다. 저자는 이 글이 순수 문학이 아닌 일종의 증언이기 때문에 굳이 정중하게 쓸 필요가 없으며, 그렇게 할 경우 오히려 작위적인 느낌을 주어 전달하고자 하는 진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67쪽). 또한 조금 더 거리를 두고 쓸 수 있으면 좋겠다(132쪽)고도 고백하고 있어서 이 책을 쓰는 일이 저자에겐 견뎌야 할 일이었겠구나 싶어 안타깝기도 했다. 특히 저자가 이 책을 쓰고 싶지 않은 이유 일곱 가지를 두 페이지에 걸쳐 나열하는 대목에서는 저자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저자는 자신에게 닥친 혐오스러운 상황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는데, 여러 작품과 작가의 이야기, 인류학자와 역사학자의 연구 자료를 끌어와 숙고하듯 써 내려간다.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실제로 벌어진 일들을 툭툭 던지듯 서술할 때면, 그 나이의 소녀가 감당해야 했던 가혹한 현실이 생생하게 그려지며 깊은 먹먹함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