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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리를 기억해 ㅣ 사계절 아동문고 73
유영소 지음, 홍선주 그림 / 사계절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옛날이야기...참말이지 요고 요고 듣는 재미가 꿀떡이다. 어릴 적에 잠자리에서 듣던 옛날이야기들 중에 최고는 뭐니뭐니해도 무서운 도깨비 나오는 이야기, 여우에게 홀린 이야기, 묘지가 배경이 되는 이야기들이였다. 듣고 나서는 잠도 제대로 못자고 설쳐댈거면서도 이야기 한 개로는 성이 안차서 하나만 더~ 하나만 더~해달라 졸라대며 들었었는데...^^
어떤 이야기는 너무 무서워~ 이야기 다 해주시고 이미 주무시는 엄마의 다리를 꼭 잡고서 이불 안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잠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확연하다~하하.
이 책에 실린 여섯가지 이야기는 입으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우리의 옛이야기를 슬쩍 바꾸기도 하고 새로 쓰기도 한 이야기들이란다. <아침에 심어 저녁에 따 먹는 가래>에서는 '웅녀 이야기'가, <불가사리를 기억해>에서는 '불가사리 이야기'가, <우리 누이 여우 누이>에서는 '여우 누이'와 여우 누이를 만나기 위해 그림족자 속으로 들어가는 부분을 읽을 땐 '신비한 그림 족자'이야기랑 접목된 듯한 느낌도 들었다.
이파리에 생긴 어떤 글자 모양의 상처로 범인의 이름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는 어데선가 읽은 기억이 나는데 그 이야기가 접목된 <책 속 책, 빗살에 햇살>, 그리고 조금은 내게 생소한 이야기 <달래 달래 진달래>, <산삼이 천 년을 묵으면>도 옛이야기에서 씨앗을 얻은 이야기들이라 한다.
처음 책을 읽기 전에는, 조금은 기존 옛이야기와 비슷한 맛이 나지 않을까란 생각도 없잖아 했었는데... 읽고보니 왠걸~ 완전히 색다른 맛의 새로운 옛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거기다 한술 더 떠 꿀떡같은 옛이야기가 찰떡같이 마음에 차악~착 감겼는데, 그 이유는 익히 알던 옛이야기의 다른 결말, 다른 구성, 다른 시각을 통해 맛보는 새로움과 함께 좀 더 내 마음을 쿡 치고 찌르고 갉아대는 이야기였단 말씀~~!!^^ 원전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었던 <우리 누이 여우 누이>와 <불가사리를 기억해>는 눈물샘까지 자극했으니 말이다.
막내아들은 아버지한테 간밤에 본 일을 그대로 일렀어. 하지만 아버지는 오히려 막내아들에게 화를 냈어. "아비, 어미가 어린 누이를 좀 예뻐하기로서니, 오라비라는 녀석이 샘을 부리는 게냐? 그런 터무니없는 말로 누이를 헐뜯으려거든 당장 이 집에서 나가거라." 막내아들은 집에서 쫓겨나고 말았지. - <호롱불 옛이야기 / 여우 누이> 중에서
이 집 아들 삼 형제 저희가 범인을 잡겠다며, 밤새 외양간을 지켜보겠다고 나섰지. 그러나 아버지 생각은 달랐어. "너희가 나설 일이 아니다! 내 좀 더 두고 보고 일을 행할 터이니, 너희들은 글공부나 게을리 말거라." 흉측한 범인 잡고 싶어 삼 형제 안달이 났지만, 그래도 엄하신 아버지 명령이니 어째! 다들 밤마다 술렁술렁 책 읽다가 불안스레 잠들었지. - 본문 이야기 중 <우리 누이 여우 누이 - 61쪽>
<우리 누이 여우 누이>의 시작은 비슷하다. 외양간의 소가 하룻밤사이에 죽어 자빠지는 해괴한 일이 일어나기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그 뒤를 이어, 이어지는 이야기는 다르다. 원전에서는 아버지가 아들 삼형제에게 하루씩 지켜보게 하는 반면, 그런 일이 생기자 이 이야기에서는 아들 삼형제가 잡겠다는 것을 아버지가 그러지 말라~ 말하며 원전과 비껴나가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이렇게 틀어진 이야기의 끝은, 원전은 공포를... 유영소님의 이 이야기는 형제애, 의리, 부모사랑을 느끼게 해준다. 그 햇머리를 키우고 같이 자라났으니 오빠들에게 누이가 여우인들 무섭기만 한 존재였을까? 못된 짐승도 보듬어 키우면 그 정을 느낀다는데...여우인들 부모,형제 다 해하고 싶었을까? 원작을 읽었을 때 설핏 들었던 생각들이 이 이야기에서는 뼈대를 갖추고 튼실하게 씨실날실 엮어서 맛깔스럽고 옴팡진 우리네 옛이야기같이 구수하고 정감어린 이야기로 그려 내었다. 어디 이 이야기 뿐인가. 불가사리 입장에서 불가사리의 마음을 담아낸, 표제작 <불가사리를 기억해>에서는 불가사리가 감옥에 갖혀 있는 동안 자신을 만들어준 아주머니를 보고 싶은 마음에 기다리고 기다리다 몇 년만에 찾아 왔건만 자신을 괴물 취급하는 아주머니를 보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모습에서 코가 시큰해지기도 했으니 말이다.
마지막 여섯번째 이야기인 범인을 찾는 흥미진진한 이야기 <책 속 책, 빗살과 햇살>에서 작가는, 자신처럼 옛이야기에 새롭게 자신만의 생각으로 덧입혀 남은 이야기를 지어 보라고한다. 글 재주라고는 없는 내가 괜히 비어 있는 마지막 페이지를 보니~ 무언가 채워 넣고 싶은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나오는건 또 뭔지~~^^. 앞서 작가가 풀어 놓은 이야기를 따라 머리 속에 이런 저런 이야기줄을 그어 보면서, 요런저런 재미난 상상도 해볼 수 있게 해주는... 우리시대, 지금 우리가 만들어보는 옛이야기의 재미에 풍덩 빠지게 해준다.
안읽으면? 후회할 것이다~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