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기억 (양장본) -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박예진 엮음, 버지니아 울프 원작 / 센텐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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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시절, 한창 친구들과 ‘시’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풋내 나는 얄팍한 ‘감성’으로 어쭙잖게 ‘문학’을 찾아 헤매던 그 시절,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에서 버지니아 울프를 처음 만났다. 그 시의 시적 화자처럼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당시 우리들은 모두 문학적 소양은 형편없고 사춘기 감성에 따라 겉물만 들었던 터라 이국의 “늙은 여류작가” 이름만 읊조린 듯하다. 어른이 된 후에는 그렇게 학창 시절의 기억으로 남아 있던 버지니아 울프를 <자기만의 방>으로 만났다.

일반적으로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을 페미니즘의 정전이라고 말하지만, 어쩌면 울프는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를 극렬히 바라며 끊임없이 자기의식을 성찰했던 것을 글로 썼을 수도 있다. 소설 기법의 하나인 ‘의식의 흐름 기법’을 개척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은 나의 유추일 뿐이지만 이 책에 실린 울프의 여러 작품의 문장들을 읽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I am I: and I must follow that furrow, not copy another. That is the only justification for my writing, living.”

“나는 나입니다. 나는 누군가를 모방하지 않고, 나만의 길을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내 글, 삶의 유일한 정당성입니다.”

위 문장은 이 책에 부록으로 실린 <버지니아 일기> 중 일부다. <버지니아 일기>는 버지니아가 죽은 이후 남편 레너드 울프가 엮어 출판한 것이라 한다. 엮은이가 이 책의 본문에 담고 있는 버지니아의 주요 작품들에서 추린 문장에서도 버지니아를 읽을 수 있었지만, 이 일기에 기록한 저 문장이야말로 버지니아 울프가 평생 되새겼을 자신의 정체성이며 삶의 방향성이 아닐지 생각했다.


엮은이가 울프의 작품 중에서 골라 실은 문장 중에는 탁월한 묘사로 감탄케 하는 부분도 많다. 그중에서 의식의 흐름 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이라는 <벽에 난 자국>에 쓰인 문장으로, “나무껍질의 주름을 따라 힘겹게 나아가는 곤충들의 발은 차가울 것”(76쪽)이라는 문장을 읽으면서 그 묘사를 통해 그려지는 이미지가 얼마나 또렷하고 감각적인지 감탄하면서 읽었다.

이 책은 각 작품을 마무리하면서 그 작품의 주제 문장을 제시한다. 그리고 독자에게 그 문장을 음미해 보고 필사해 본 후 자기만의 해석을 해보기를 권한다. 이들 페이지는 시간을 잠시 붙들어 조금 더 생각이 세밀해지도록 해주었다.

아직 읽어보지 못한 울프의 작품들이 많다. 올해 독서 목록에 울프의 작품 몇 권을 목록에 포함해 놓고 꼭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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