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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온 더 쇼우의 다무라 카프카 녀석은 오시마 상이 마련해 준 숲 속의 조그만 산장에서 홀로 며칠을 지낸다. 그때 군인 두 명을 만난다. 다무라 녀석은 홀로 지내면서 자신을 달래기 위해 라디오 헤드의 kid A 앨범을 듣는다.


15살이 듣기에는 무척이나 까다롭고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이 들다가도 다무라 녀석은 보통의 15세가 아니다. 외적으로는 고등학생정도로 보이며 터프한 소년에, 아버지를 저주하고 있으며 가출을 위해 손목시계 하나까지 철저하게 계산하는 녀석이다. 친구도 없고 운동을 좋아하며 외롭지만 고독을 보내는 방법을 안다.


키드 에이 앨범은 모든 노래가 좋다. 키드 에이는 연주도 마치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들린다. 외계의 한 지점에 교신을 하는 듯한 음악처럼 들리기도 한다.


인터뷰집 ‘작가란 무엇인가’의 하루키 편을 보면, 라디오 헤드가 kid A 앨범에서 자신을 언급해서 기분이 좋다고 인터뷰를 한다. 라디오 헤드는, 그러니까 톰 요크는 키드 에이를 기점으로 음악이 철학이 되었다. 아주 기묘한 일이지만 키드 에이 이후 나온 ‘데이 드리밍’의 뮤직비디오는 마치 하루키의 소설을 읽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해변의 카프카와 라디오 헤드의 닮은 점이라면 프랑수아 트뤼포의 유연한 호기심에 가득 찬, 구심적이면서도 집요한 정신이 깃들여 있다. 그리고 장 자크 루소의 울타리와 안톤 체호프의 자립적인 개념의 필연성, 헤겔의 자기의식, 앙리 베르그송의 물질과 기억, 헤테로(이형접합자), 티에스 엘리엇이 말하는 공허한 인간들, 소포플레스의 훌륭한 희곡 ‘일렉트라’의 이야기와 아리스토파네스와 괴테가 말하는 세계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하루키는 해변의 카프카를 태엽 감는 새보다 더 복잡하다고 언급했다. 카프카 온 더 쇼우는 인간의 관계와 잃어버린 것에 대한 것을 깊게 고찰하는데 라디오 헤드의 키드 에이 역시 그렇다.


엑시트 뮤직으로 시작해서 블랙스타를 거쳐 키드 에이와 네셔널 엔썸을 지나 이디오 테크를 접합하고 나면 모닝 벨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저 멀리 두 개의 달을 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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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오장원 2023-08-13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월이 흐르고 흐를수록 더 빛날 앨범이지요.

교관 2023-08-14 11:38   좋아요 0 | URL
정말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고 날이 갈수록 더 좋아집니다 ㅎㅎ
 


이 단편 역시 몹시 마음에 드는 소설이다. 짧아서 더욱 강하고 깊게 잔상을 남긴다. 코끼리의 소멸을 보게 된 주인공은 알 수 없는 상실감을 느낀다. 코끼리의 소멸을 보게 된 후 적극성이 몸에서 빠져나가 버린다. 우선순위가 사라지는 것이다. 회사에서 사장이 시킨 중요한 일보다 눈앞에 보이는 쓰레기통을 치우는 일을 먼저 해버리는 것처럼.


어느 날 도시의 한 동물원에서 코끼리와 사육사가 사라졌다. 신문과 뉴스에 보도가 되었다. 코끼리가 문을 통해 빠져나간 흔적도 없고 사육사가 끌고 나간 흔적도 없는데 깜쪽 같이 사라진 것이다. 동물원의 배경과 코끼리가 어떻게 이 동물원에 들어오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도 소설에 나온다. 그런데 주인공이 코끼리와 사육사가 사라지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사육사는 코끼리와 아주 친밀한 관계처럼 보였다. 동물을 오랫동안 돌보다 보면 그런 관계가 된다.


주인공은 어느 날 작은 구멍으로 보이는 동물원의 모습 속 코끼리와 사육사가 점점 작아지는 것을 본다. 원거리에 있어서 작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코끼리와 사육사의 물리적인 크기가 작아져서 없어지는 모습을 본다. 주인공은 그 이후 옳은 일이라고 선택을 하는 것도 힘겨워지고 상실의 깊고 깊은 터널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마치 하나레이 만에서 서퍼를 꿈꾸는 아들 타카시가 상어에게 목숨을 잃고 알 수 없는 공백에 갇혀 10년을 하나레이 만을 찾아가는 사치처럼 말이다. 그러나 사치는 다리 한쪽이 잘린 일본인 서퍼를 보는 순간 마음속의 공백에 대해서 알게 된다, 망나니 남편이 듣던 음악을 타카시가 듣고 아들이 듣던 그 음악을 들으면서 사치는 알게 된다.


코끼리의 소멸을 본 주인공이 가지는 상실의 공백은 몹시 폭력적이다. 이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이 전혀 모르는 사실을 주인공 혼자 알고 있다는 진실이 점점 주인공을 폭력의 세계로 서서히 밀어 넣는다. 그로 인해 주인공은 조금씩 자신도 코끼리와 같이 실오라기처럼 자신이 소멸해 간다는 걸 느끼게 된다.


주인공은 결국 파티에서 만난 여성에게 이 모든 사실을 털어놓는다. 우리는 가끔 자신만 떠안고 있는 사실이 힘겨워할 때가 있다. 코끼리의 소멸에 등장하는 사육사의 이름은 와타나베 노보루다. 단편 패밀리 어페어에 등장하는 여동생 애인의 이름도 와타나베 노보루. 태엽 감는 새에 나오는 아내의 오빠도 와타야 노보루다. 우리가 좋아하는 안자이 미즈마루 씨의 본명이 와타나베 노보루 인 것으로 보아 하루키 씨는 아무래도 미즈마루 씨를 만나고 나서 소설 속에 그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았나 싶다.


안자이 미즈마루 씨는 항상 젊은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분위긴데 여자들에게는 하루키를 소개해줄게,라고 하지만 한 번도 하루키에게 젊은 여자들을 소개해준 적이 없는 안자이 미즈마루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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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소설에는 엄청난 음악이 나온다. 2000년대 이전에는 소설을 읽으며 등장하는 음악을 가슴에 품었다가 나중에 찾아서 들었겠지만(더 이전에는 음반을 구하러 다녔겠고 – 생각해 보면 하루키 팬들이 모여 독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다 같이 음반가게 들러 음반을 고르며 소설에 등장한 음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아주 재미있었을 것 같다) 요즘은 소설에 음악이 나오면 바로 검색을 해서 틀어 놓고 소설을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게 마냥 좋은 것이냐고 한다면 나는 잘 모르겠다.


노르웨이 숲에도 재즈가 왕창 나온다. 하루키가 재즈카페를 하면서 접한 재즈의 경험을 노르웨이 숲에 많이 녹여냈다.


버드 파렐, 셀로니어스 몽크, 데사피나도, 이파네마의 소녀, 토니 베네트(토니 베넷은 지난달에 세상을 떠났다. 그와 듀엣으로 가장 핫 했던 최근의 인물이 할리 퀸으로 나올 레이디 가가였다. 둘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있으면 진정 재즈, 재즈의 중심에 서 있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든다. 레이디 가가는 토니 베넷과의 듀엣에서 마치 60년대를 빙의한 듯하다), 오네트 콜만, 마일드 데이비스 등 재즈가 잔뜩 나온다.


노르웨이 숲에 나온 곡은 아니지만 토니 베넷과 레이디 가가의 듀엣이 너무 좋아서.

Tony Bennett, Lady Gaga - I've Got You Under My Skin https://youtu.be/xyTa_gJkYwI


[일요일 아침,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책상에 앉아 나오코에게 편지를 썼다. 큰 컵으로 커피를 마시고, 마일스 데이비스의 옛 레코드를 들으면서 긴 편지를 썼다]


“비가 오는 일요일은 나를 좀 혼란스럽게 만들어. 비가 오면 빨래를 할 수 없고, 다리미질도 못하게 되니까. 산책도 못하고, 옥상에서 뒹굴지도 못하지. 책상 앞에서 앉아 [카인드 오브 블루]를 자동 반복으로 틀어 놓고 몇 번이고 들으면서 비 내리는 마당 풍경이나 멍하니 바라보는 정도가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야.”


카인드 오브 블루는 한 시간가량 정도의 마일드 데이비스의 앨범이다. 와나타베 녀석처럼 우리도 이 앨범을 반복으로 틀어 놓고 소설 노르웨이 숲으로 빠져 들어간다.


비가 오는 일요일 오전에 마일드 데이비스를 들으며 편지를 쓰는 모습은 이제 동경이 된 것 같다. 상실의 시대가 나온 시기가 일본은 전공투, 한국은 민주화 운동이 한창때라 세상이 시끌시끌했다. 무차별적인 폭력에 대항하기 위해 목숨이 사라지기도 했다.


그런 분위기가 지금 21세기에도 변하지 않고 일어나고 있어서인지 이렇게 느린 재즈로 뭉쳐있는 마일드 데이비스의 음악을 들으며 일요일 비 오는 아침 커피를 마시며 편지를 쓰고 싶은 동경이 더욱 깊어만 간다.


현실 속에 있는 비현실적인 생활. 현실 앞의 초현실의 세계가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지만 닿지 않는 세계. 그 세계를 향한 끝없는 동경의 목마름이 하루키의 소설 속에 존재한다.


마일즈 데이비스 - 카인드 오브 블루 https://youtu.be/vDqULFUg6CY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위스키소다를 두 잔 째 주문하고, 피스타치오를 먹었다. 셰이커가 흔들리고 유리잔이 부딪치고 제빙기에서 얼음을 가느라 달그락 소리가 나는 뒤쪽에서, 사라 본이 옛 러브 송을 부르고 있었다]


Sarah Vaughan - Misty https://youtu.be/lJXLqAutql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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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


하루키는 2021년에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를 출간했다. 이번에 그 2편인 ‘다시,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를 출간하게 되어서 마이니치 신문과 인터뷰를 가졌다. 아직 한국에는 소설도 출간이 안 되었는데 이러다가 클래식 2편이 먼저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루키는 아무튼 그 두꺼운 클래식 북을 쓸 때 더 길게, 왕창 써버린 덕분에 2편이 나올 예정이다. 코로나 시기에 집에만 틀어박혀 여행도 가지 못한 하루키는 글이나 쓰자,라고 해서 음악에 관한-클래식에 관한 이야기를 쓰다 보니 2권도 써버렸다.


하루키는 2권에서는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 썼다고 밝혔다.


하루키: 좋아하지 않는 레코드도 왕창 있습니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런 레코드를? 하는 것들이죠. 하지만 샵에서 바겐 세일로 100엔이나 50엔에 팔고 있으면 저는 그 유혹에 홀라당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골라온 것 들 중에는 마음에 드는 것도 있고 소위 꽝도 있기 마련이죠.


하루키는 만 오천 장 정도의 레코드를 가지고 있고 그중 일부를 기증했다.


하루키: 기증한 레코드는 일부입니다. 주로 더빙판입니다. 제가 소설을 쓸 때 레코드가 쓰이기도 해서 아직은 레코드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죽고 나면 이것들이 흩어지는 것이 아깝다 생각이 들어 죽기 전에는 전부 기증할 생각입니다. 그동안에는 계속 듣고 싶습니다.


하루키: 10대에 음악적 체험은 오래도록 가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음악을 듣던, 그 무렵에 들었던 음악과 나와의 거리, 간격을 측정하면서 들을 수 있게 됩니다. 요컨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저는 고등학교 시절 글렌 굴드의 연주가 남아 있기 때문에 누가 연주를 하더라도 거리를 측정하게 됩니다. 그런 점은 제게는 고마운 점이기도 합니다.


학창 시절 친구들도 클래식을 좋아해서 서로 교환해서 듣곤 했습니다. 좋았습니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좋은 것만 가지고, 좋지 않은 건 내팽개치는 게 아닙니다. 균형을 잡으려면 좋은 것도 좋지 않은 것도 같이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 하루키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유럽의 공연장에서 러시아 음악가가 추방되거나 러시아 작품이 중단되는 현상에 대해서는 – 작품까지 기피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입니다.


하루키는 소설에서 넌지시 말하는 것처럼 정치 시스템은 일시적인 형세일 뿐이지만 예술은 그런 것과는 관계없이 애초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다.


1편, 즉 1권과는 다른 결의 클래식 북이 나오리라 기대를 하면서, 하루키 영감님 더위 잘 이겨내시고! 여기 조용한 독자들이 고요하게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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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글 쓰는 스타일을 대부분 다 아실 텐데요. 2013년 동아일보를 보면 임경선 칼럼니스트가 하루키에 대해 쓴 칼럼이 재미있습니다. 저는 사실 임경선 작가의 도서를 한 권도 읽어 본 적이 없습니다. 여하튼 임경선 작가는 고 2였던 87년, 일본에서 하루키의 [그 유명하고 전설의] 빨강 초록 커버의 노르웨이 숲을 만나고 빠져들었다고 하는데요.


칼럼에서 하루키에게 글쓰기란 고상한 문학적 취향이나 자유분방한 풍류라기보다 차라리 노동과 수행에 가까웠다. 탈권위주의적인 태도는 그의 문장에서도 확인된다.라고 했습니다. 이제 이 정도는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도 자신의 이런 글 쓰는 생활방식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레이먼드 카버의 에세이에서 카버는 ‘시간이 있었으면 좀 더 잘 썼을 텐데 – 나는 소설 쓰는 친구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 지금도 그 일을 떠올리면 아연해진다. (중략) 만일 그가 써낸 이야기가 힘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니었다면 대체 무엇 때문에 소설 따위를 쓰는가. 결국 우리가 무덤까지 가져갈 것은 최선을 다했다는 만족감, 힘껏 일했다는 노동의 증거, 그것뿐이다. 나는 그 친구를 향해 말하고 싶었다. 제발 부탁이다, 지금 당장 다른 일을 찾아봐라,라고. 똑같이 먹고살기 위해 돈을 번다고 해도 세상에는 좀 더 간단하고 아마 좀 더 정직한 일거리가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너의 능력과 재능을 최대한 쏟아부어 글을 써라. 그리고 변명이나 자기 정당화는 안 돼. 불평하지 마. 핑계 대지 말라고' 레이먼드 카버 - 글쓰기에 대하여


또, 하루키는 자신과 비슷한 방식의 작가도 예를 들었지요.


이를테면 엔서니 트롤럽이라는 작가가 있습니다. 19세기 영국 작가로, 수많은 장편소설을 발표해 당시에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는 런던 우체국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어디까지나 취미로서 소설을 썼지만 이윽고 작가로 성공을 거둬 일대를 풍미하는 유행 작가가 됐습니다. 그래도 그는 우체국 일을 끝까지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날마다 출근하기 전에 새벽같이 일어나 책상 앞에서 자신이 정한 양의 원고를 부지런히 썼습니다. 그런 다음에 우체국에 갔습니다. 유능한 공무원이었는지 관리직으로 상당히 높은 자리까지 출세했습니다. 런던 거리 곳곳에 빨간 우체통이 설치된 것은 그의 업적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그때까지는 우체통이라는 게 없었다는군요). 우체국 일을 좋아해서 집필 활동이 아무리 바빠져도 그 일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될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마 꽤 특이한 분이었던 모양이에요.


그는 1882년에 67세로 세상을 떠났지만, 유고로 남겨진 자서진이 사후에 간행되면서 그야말로 로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의 규칙적인 일상생활이 처음 세상에 공표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사람들은 트롤럽이 어떤 인물인지 알지 못했었는데 실상이 드러나자 평론가도 독자도 너무 놀라고 낙담 실망해서 그때를 경계로 영국에서는 작가 트롤럽의 인기와 평가가 완전히 땅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나 같은 사람은 그런 얘기를 들으면 ‘와아, 대단하다. 진짜로 훌륭한 사람이네’라고 순수하게 감탄하고 트롤럽 씨를 존경해 마지않았을 텐데 그 당시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뭐야, 우리가 지금까지 이런 따분한 작가의 소설을 읽었어?” 하고 진심으로 화를 낸 모양입니다. 어쩌면 19세기의 영국 보통 사람들은 작가에 대해 - 혹은 자기의 삶의 방식에 대해 - 반세속적인 이상상을 원했었는지도 모릅니다.


나도 이런 ‘범속한 생활’을 하다가 혹시 트롤럽 씨와 똑같은 일을 당하는 거 아니야? 그런 생각을 하면 저절로 움찔움찔합니다. 하긴 트롤럽 씨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재평가를 받았으니까 그건 잘됐다고 하면 잘된 일이지만.


그러고 보니 프란츠 카프카도 프라하의 보험국에서 공무원으로 재직하며 틈틈이 꼬박꼬박 소설을 썼습니다. 그도 꽤 유능하고 성실한 공무원이었는지 직장 동료들이 상당히 높은 평가 해줬습니다. 카프카가 결근하면 보험국 일이 돌아가지 않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트롤럽 씨와 마찬가지로 본업도 빈틈없이 잘하고 부업인 소설도 진지하게 써낸 사람입니다(단지 본업이 있었다는 게 그의 많은 소설이 미완성으로 끝난 데 대한 이유가 되는 듯한 느낌은 들지만). 하지만 카프카의 경우는 트롤럽 씨와는 다르게 그런 반듯한 생활 태도가 오히려 훌륭한 장점으로 평가되는 면이 있습니다. 어디서 그런 차이가 생겼는지, 좀 신기하지요. 사람들의 훼예포폄이란 참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라고 하루키는 말했죠.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130723/566079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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