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단편 역시 몹시 마음에 드는 소설이다. 짧아서 더욱 강하고 깊게 잔상을 남긴다. 코끼리의 소멸을 보게 된 주인공은 알 수 없는 상실감을 느낀다. 코끼리의 소멸을 보게 된 후 적극성이 몸에서 빠져나가 버린다. 우선순위가 사라지는 것이다. 회사에서 사장이 시킨 중요한 일보다 눈앞에 보이는 쓰레기통을 치우는 일을 먼저 해버리는 것처럼.


어느 날 도시의 한 동물원에서 코끼리와 사육사가 사라졌다. 신문과 뉴스에 보도가 되었다. 코끼리가 문을 통해 빠져나간 흔적도 없고 사육사가 끌고 나간 흔적도 없는데 깜쪽 같이 사라진 것이다. 동물원의 배경과 코끼리가 어떻게 이 동물원에 들어오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도 소설에 나온다. 그런데 주인공이 코끼리와 사육사가 사라지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사육사는 코끼리와 아주 친밀한 관계처럼 보였다. 동물을 오랫동안 돌보다 보면 그런 관계가 된다.


주인공은 어느 날 작은 구멍으로 보이는 동물원의 모습 속 코끼리와 사육사가 점점 작아지는 것을 본다. 원거리에 있어서 작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코끼리와 사육사의 물리적인 크기가 작아져서 없어지는 모습을 본다. 주인공은 그 이후 옳은 일이라고 선택을 하는 것도 힘겨워지고 상실의 깊고 깊은 터널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마치 하나레이 만에서 서퍼를 꿈꾸는 아들 타카시가 상어에게 목숨을 잃고 알 수 없는 공백에 갇혀 10년을 하나레이 만을 찾아가는 사치처럼 말이다. 그러나 사치는 다리 한쪽이 잘린 일본인 서퍼를 보는 순간 마음속의 공백에 대해서 알게 된다, 망나니 남편이 듣던 음악을 타카시가 듣고 아들이 듣던 그 음악을 들으면서 사치는 알게 된다.


코끼리의 소멸을 본 주인공이 가지는 상실의 공백은 몹시 폭력적이다. 이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이 전혀 모르는 사실을 주인공 혼자 알고 있다는 진실이 점점 주인공을 폭력의 세계로 서서히 밀어 넣는다. 그로 인해 주인공은 조금씩 자신도 코끼리와 같이 실오라기처럼 자신이 소멸해 간다는 걸 느끼게 된다.


주인공은 결국 파티에서 만난 여성에게 이 모든 사실을 털어놓는다. 우리는 가끔 자신만 떠안고 있는 사실이 힘겨워할 때가 있다. 코끼리의 소멸에 등장하는 사육사의 이름은 와타나베 노보루다. 단편 패밀리 어페어에 등장하는 여동생 애인의 이름도 와타나베 노보루. 태엽 감는 새에 나오는 아내의 오빠도 와타야 노보루다. 우리가 좋아하는 안자이 미즈마루 씨의 본명이 와타나베 노보루 인 것으로 보아 하루키 씨는 아무래도 미즈마루 씨를 만나고 나서 소설 속에 그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았나 싶다.


안자이 미즈마루 씨는 항상 젊은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분위긴데 여자들에게는 하루키를 소개해줄게,라고 하지만 한 번도 하루키에게 젊은 여자들을 소개해준 적이 없는 안자이 미즈마루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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