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여름이 되었습니다.

저는 여름을 사 계절 중에 가장 좋아합니다.

여름의 그 열기와 숨을 못 쉴 정도로 뜨거운 공기가 마음에 듭니다.

여름에 흘리는 땀은 온당한 것처럼 다가옵니다.

겨울에 나는 땀은 비집고 나온다는 느낌인데 여름에 땀은 흘린다는 기분입니다.

그래서 깨끗합니다.

어제는 올 들어 처음 매미 소리를 들었습니다.

저는 매미 소리 듣는 것 또한 좋아합니다.

그래서 어제는 서서 매미들의 합창을 녹음까지 했습니다.

매년 그해 여름에 듣는 첫 매미소리에 대해서 기록을 하는 것 같습니다.

여름에는 까맣게 태운 피부와 땀과 맥주와 매미 소리가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비교적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습득할 수 있습니다.

산들바람이 부는 평상에 앉아 맥주를 홀짝이며 매미소리를 실컷 듣는 삶이 여름을 제대로 대하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한 번은 집 방충망에 매미가 한 마리 붙었습니다.

그때는 여름의 끝물이었는데 한 마리가 붙어서 울었습니다.

매미가 우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매미를 가까이서 보기는 했지만 우는 모습은 말입니다.

매미는 음절을 끊어서 웁니다.

음절이 끊길 때 어찌나 힘이 드는지 배를 말아 올리고 공기를 서서히 뺍니다.

그 소리에 한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 같았습니다.

가만히 두었더니 매미는 방충망에 삼일이나 붙어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홍어가 온몸으로 소변을 배출하듯이 매미는 온몸으로 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생에서 사로 가는 길목에서 매미는 생명을 위해 울었습니다.

칠 년의 결실 끝에 나온 매미는 절박한 생의 기간 중에 삼일을 방충망에 붙어서 울었습니다.

방충망을 탁 두드리면 추락하여 영롱한 생성(생의 소리)의 소멸이 두려워 두었더니 매미는 목 밑까지 차오른 말들을 매 밑으로 삼켜 소리로 뽑아냈습니다.

매미를 떼어내지 못한 나와 다른 곳으로 갈 수 없는 매미 사이에는 ‘삶’이라는 결박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갑옷 같은 몸을 열고 나온 매미는 진정으로 소리를 내고 감옥으로 들어간 저는 소리를 삼켰습니다.

세상이 잡아당기는 저 무서운 힘을 이겨내며 생을 노래하는 십오일의 삶, 세상은 시끄러운 매미가 싫어 짧은 삶을 주었지만 매미는 세상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여름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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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다가 화장실이나 세면장에 들어가면 순간 꿉꿉하고 후끈한 열기가 확 나는데 그게 뭐랄까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때만큼은 아 여름을 즐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수영장에서 몸을 담그고 물놀이를 할 때는 못 느끼다가 찝찝하고 꿉꿉한 열기가 나는 화장실이나 세면장에서 여름을 느끼고 그 시간이 싫지 않음을 느꼈다. 그게 이상하게도 어린 시절이었다. 그런 순간이 어른이 되어 갈수록 좀 더 확장되어 간다. 정작 행복한 순간보다 그 행복한 순간은 순식간에 지나간다는 걸 알아서일까, 행복한 순간이 오기 직전의 그 시간이 싫지 않았다. 힘든 일을 하고 있어서 좋다고만은 할 수 없지만 싫지는 않았다. 이 시간을 지나면 행복한 순간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비록 금방 지나갈지라도.


사는 게 어려워졌다. 뉴스, 기사, 영상, 곳곳에서 사는 게 어렵다고 한다. 소수의 몇몇을 제외하고 대부분 사는 게 힘들다고 한다. 어쩌면 그 소수의 몇몇도 그 자리에서 살아가는 게 그렇게 또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돈이 많다고 해서 꼭 사는 게 쉬운 것은 아니다. 억만장자 재벌가의 막내딸이 오래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을 보면 사는 건 누구에게나 다 힘이 드는 것 같다.


정말 힘든 순간이나 또는 몹시 행복한 순간에서 잠시 비켜간 순간에서 나를 바라보면 그 찰나의 시간이 그렇게 싫지 만은 않았다.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 때 그 순간만 지나갈 수 있다면 좋지는 않으나 고통을 느껴봤기 때문에 또 헤쳐나갈 수 있어서 싫지만은 않다. 우리는 고통을 두려운 것으로 의미를 두는데 고통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면 그건 곧 살아있다는 말이다.


김영하의 신작 ‘작별인사’를 보면 고통에 관해서 언급한 부분이 있다. ‘달마’라는 휴머노이드가 철이와 선이에게 하는 말이다.

[우리는 쉬지 않고 그들을 처리했습니다. 당연하게도 그들은 모두 살고 싶어했습니다. 인간들이 휴머노이드에게 스스로를 보호하고 생명을 유지하도록 삶을 향한 의지를 프로그래밍해두었기 때문이지요. 삶을 향한 의지라고 하면 뭔가 심오하게 들리지만 그저 그들에게도 고통이라는 감각 체계를 내장해 스스로를 보호하도록 만들었다는 의미일 뿐입니다. 고통은 그 자체로는 악이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고통은 생물체를 보호하는 필수적 장치입니다. 고통을 느껴야 위험을 피해 자신을 지키려 할 것이고, 그래야 인간은 비싼 돈 주고 산 소유물을 보존할 수 있으니까요. 어쨌든 그렇게 고통과 공포, 불안을 느끼도록 만들어진 존재를 계속 비활성화하는 작업이 간단할 리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역시 그들의 고통에 공감을 하니까요]라고 달마가 말을 한다.


고통이라는 건 그렇다. 고통 그 자체는 나쁜 게 아니다. 고통을 통해서 우리는 다시 마주할 고통에 대한 내성을 가지게 된다. 시시티브이를 통해 보게 된 축 늘어진 조유나 양의 영상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는데 안 좋은 예감은 안 좋은 소식으로 전해졌다. 사는 게 힘들고 고통이다. 너만 힘든 게 아니야, 다 힘들어, 같은 말을 하려고 하는 건 아니고 사는 건 원래 그런 거라, 카니발의 그땐 그랬지를 봐도 사는 건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미생에서 그랬듯이 그래도 전쟁이 지옥보다는 낫다. 이렇게 바닷속에서 생명이 다 한 가족의 소식은 안타깝기만 하다.


어제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암 환우들의 영화를 봤다. 그들은 언제 죽을지 몰라 하루를 너무 열심히 살아내고 있었다. 그들도 하루하루 사는 게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고통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사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행복한 건 정말 잠깐이다. 사람들의 행복은 다 엇비슷하고 추상적이다. 그러나 불행은 길고 아주 구체적이며 제각각이고 명확하다. 우리의 일생은 짤막한 행복의 순간과 그 외의 대부분은 덜 행복하거나 불행하지 않을 시간을 보내고 있을 뿐이다. 그 사이사이에 고통이 파고들어 온다. 삶이란 언제나 그렇다. 무너져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개지만 살아가야 하는 이유 한 가지만 있다면 어떻게든 해 볼 수 있다.


엄마 아빠와 여행 간다고 그 전날 들떠서 짐 싸고 했을 유나 양을 생각하면 참 슬프다. 정작 행복한 순간보다 그 전의 시간이 나쁘지 않을 시간이 되었기를 바라며. 유나 양에게 그 시간이 그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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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싫어질 때가 있습니다. 빛의 익숙함이 낯설어서 싫습니다. 사실 빛은 자인해서 빛을 그렇게 원하지 않습니다. 빛은 늘 눈을 아프게 하고 시리게 합니다. 낯익은 서늘함의 그늘 속으로 빛을 피해 몸을 움직여보아도 빛은 꼬박꼬박 영역을 넓혀가며 나를 따라옵니다. 등으로 빛줄기 한 가닥이 내릴 때면 종이 끝이 말려 올라가면서 타들어가는 통증을 동반할 때가 있습니다. 그늘로, 구석으로 슬금슬금 도망을 가 보지만 레이저 같은 빛은 따라와 나를 파괴합니다. 빛에 닿으면, 저 바짝 마르고 반짝이는 빛에 닿는다면 등에서 살아가고 있는 추억이 타버릴 것 같습니다. 집이 타는 것도, 산이 타는 것도 무섭지만 추억이 새까맣게 타버리는 건, 그저 검은 벽을 마주하고 그을음의 냄새를 맡으며 살아간다는 건, 마음의 모든 부분이 저미는 일입니다. 저에게 빛은 잔인합니다.


세상에서 빛이 사라진 날 덴마크적인 바다에 나왔습니다. 바다는 한 껏 성난 뿔소처럼 흰 포말을 일 미터 이상 만들어서 포효했습니다. 6월의 끝물이라 그런지 7월의 혹독한 더위를 머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다는 보기와는 달리 몹시 차갑습니다. 바다는 그런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빛도 그렇습니다. 안 그런 척 하지만 잔인한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방파제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면 세상에 만연하지 않은 ‘절대’가 팽팽하게 도사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변하지 않을게'라든가 ‘절대로 잊지 않을게’ 같은 말을 함부로 합니다. 절대라는 건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다에 나와서 이렇게 바다를 보면 절대적이라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이곳에 서서 바람을 맞습니다. 바람이라는 물질도 지구에서만 가능할 겁니다. 공기라든가 빛과 비슷한 물질이지만 다릅니다. 바람은 그렇습니다. 바람도 때론 잔인합니다.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느껴집니다. 얼굴을 약간 들고 손바닥을 펴 바람을 느껴봅니다. 유월에 부는 바람은 심각한 기시감을 몰고 옵니다.


지난 시간으로의 회귀.

기억이 몰고 온 지난날의 풍광.

꿈같은 장면의 반복.

돌아가고픈 미역 냄새가 나던 새벽의 바닷가.


기억도 믿을 것이 못됩니다. 그건 분명 기억이 만들어낸 '얄읏한 공' 같은 것입니다. 감시자의 눈 같은, 어딘가 삐뚤어진. 기억은 왜곡되고 비틀어진, 조금 더하거나 보태서 추억 속의 풍경을 만들어 낼 뿐입니다.


지난날의 기억 속에서 저는 늘 외롭게 서 있습니다. 한없이 고독합니다. 고독의 끝에서 더 이상 절망할 수도 없을 정도로 고독하고 또 고독합니다. 거기서 빛을 봅니다. 빛이 눈을 찌르고 등에 내려앉습니다. 모든 것을 메마르게 합니다. 잔인합니다. 희망이 보인다면 그 희망은 절대적이어서 더 잔인합니다. 희망이라는 건 우리는 늘 배신합니다. 희망은 저를 타락으로 이끕니다. 몸을 지배하는 허기처럼 희망은 배신으로 가슴을 새까맣게 태웁니다. 빛이 거기를 또 태웁니다. 바람이 태운 재를 몰고 갑니다. 잔인하고 또 잔인합니다.


희망이 타락으로 이끄는 순간 허기마저 포말이 되어 뜨겁게 타올라 하얗게 무화됩니다. 타락적인 희망을 바람처럼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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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중턱에 해무처럼 안개가 군집을 만들어 걸쳐있었다. 손을 뻗으면 꼭 만져질 것처럼 보이는 그런 구름 같은 안개였다.


비가 많이 오는데 할머니는 개울 건너 밭에 갔다 온다며 나갔다. 비닐로 된 우비가 있는데 답답하다며 우산 하나를 들고 밭으로 갔다. 할머니가 나가고 천둥이 치고 비가 억세게 퍼부었다. 마루에 앉아 비가 쏟아지는 외가의 마당을 보고 있는데 또 천둥이 쳤다.


할머니는 언제 오나. 금방 온다고 했는데.


콰쾅하며 천둥이 주는 두려움에 잠시 귀를 막았다. 비가 퍼붓는데 안개가 낀 저 산은 비에 젖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비가 조금만 내렸다면 지금 개울에 가서 가재를 잡을 수 있을 텐데. 할 수 있는 건 쪼그리고 앉아서 천둥소리에 귀를 막아가며 할머니가 오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그때 또 천둥이 쳤다. 이번 천둥은 너무 무서웠다. 나는 무릎을 감싸 쥐고 그 사이에 고개를 숙였다. 쿠쿵하는 소리가 세상을 부숴버릴 것처럼 들렸다. 낮인데도 날이 어둡고 비가 떨어지는 소리가 심하게 들렸다.


그때 오전 일찍 나갔던 외삼촌과 외숙모가 들어와서 나를 안아 주었다. 외할머니 밭에 갔어요,라고 말했다. 외숙모와 외삼촌은 나를 보며 곧 오실 거라며 얼굴에 난 땀을 닦아 주었다. 할머니도 곧 들어오셨다. 할머니는 우산을 들고나갔지만 홀딱 젖었다. 비를 맞아서 머리가 얼굴에 다 붙었다.


나는 할머니 하며 할머니에게 달려가 안겼다. 할머니는 내 옷 젖는다며 나를 떼어놓고는 우리 똥강아지 밥 묵으야지,라고 하며 주방으로 가서 외숙모와 점심밥을 차렸다. 외할머니는 된장국을 끓으면 꼭 깍두기를 같이 넣어서 끓였다. 깍두기를 전혀 먹지 않는 나를 위해 된장국에 깍두기를 넣어서 젓가락으로 콕 집어서 주었다. 그러면 나는 앞니로 뜨겁게 잘 익은 깍두기를 야금야금 먹었다.


외삼촌과 외숙모와 외할머니와 시골집 마루에 앉아서 비가 쏴아 쏟아지는 모습을 보며 밥을 먹었다. 한쪽 다리는 마루 밖으로 내서 흔들흔들하며 밥을 먹었다. 나는 으레 신나면 그렇게 했다. 된장국에는 감자도 있어서 외할머니는 내 밥에 감자를 으깨 주었다.


나는 5살인가, 그때쯤에 집안 사정 때문에 외가에서 외할머니와 함께 1, 2년을 살았다. 여름 장마 기간에 외할머니와 외숙모는 깍두기를 넣어서 된장국을 끓였다. 우리는 같이 앉아서 밥을 먹었다. 그 모습이 낭만적으로 그려지는 건 그렇게 밥을 먹고 있으면 행복했다. 할머니는 등에서 땀이 난 나의 옷을 잡고 부채질을 해주었다.


바람이 불영계곡의 자락을 휘잉 지나가고 비가 여러 차례 녹음을 적시고 나면 여름 햇살이 얼굴을 내밀 때 나는 할머니 손을 잡고 개울에 가서 발을 담그고 외삼촌과 가재를 잡고 놀았다. 매년 여름 레인 시즌이 되면 할머니의 된장국이 생각이 난다.


깍두기와 감자를 넣어서 끓인 된장국. 외할머니도 없고, 외숙모도 없도 시골집 냄새도 나지 않지만 된장국에 깍두기를 넣어서 비를 보며 먹다 보면 미소가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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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치소에서 교도대가 생활하는 막사에는 야외 빨래 건조 장소가 있습니다. 거기는 좀 기묘한 곳으로 막사 안에서는 볼 수 없고 순찰을 돌아도 그 안으로 들어가야만 볼 수 있는 장소라서 야간 순찰에도 그곳에 체크포인트가 있습니다. 야외이기는 하나 삼면이 구치소 건물로 둘러싸여 있어서 바람도 잘 불지 않고 밖의 소음도 차단되어 그 안에서는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안에서 빨래를 널고 있으면 꼭 진공관 같은 곳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듭니다. 빨래 건조하는 장소에 선임들은 거의 들어오지 않습니다. 애매한 장소로 짝대기 하나짜리도 그 안에서 머무르기를 꺼려했습니다. 빨래만 빨리 널거나 걷어서 막사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안과 밖의 개념도 아닌데 그 안으로 들어가는 건 이상하게도 몸속의 숨어 있는 영혼을 흔드는 것 같았습니다. 빨래 건조대가 내무반별로 설치되어 있었는데 바람이 잘 불지도 않는데 빨래는 잘 말랐습니다. 그것도 좀 이상하다면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어쩐 일인지 빨래는 언제나 바짝 잘 말랐습니다. 그곳에는 호봉이 오른 짝대기 두 개짜리들이나 세 개짜리들이 막내나 막내 바로 위의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장소였습니다. 그 안에서는 구타가 심하게 일어나도 전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쫄다구들에게는 그 장소는 공포의 장소였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갈 때에는 혼자서 빨래를 널러가는 것보다 될 수 있으면 이인일 조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는 다른 내무반 선임을 만나도 혼이 나거나 구타를 당했습니다. 그곳에서의 선임들은 얼굴에서 표정이라는 것이 몽땅 빠져나가 있는, 그림 속의 몽타주 같은 얼굴로 그곳에 오는 쫄다구들을 을 차례를 주었습니다. 쫄다구들은 선임들을 만났다가 그곳에서 나가면 땀을 연심 흘리거나 기운이 다 빠져서 나갔습니다. 그 장소에서 타 내무반 선임에게 구타를 당하고 나면 재수가 없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선임들은 을 차례를 주고 구타를 하다가 제풀에 더 화가 나서 군화를 벗어서 군화를 들고 군화의 뒤꿈치로 머리를 마구 때렸습니다. 머리를 구타당하면 띵 하는 영혼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강하게 들뿐 외관상으로 표가 전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군화로 머리를 많이 내려쳤습니다. 하지만 어떤 선임은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내키는 대로 주먹질을 하기도 했습니다. 교도대는 법무부 소속의 군인들로 국방부 소속의 군인들과는 좀 달랐습니다. 국방부에서도 구타가 일어나면 쉬쉬하는 분위기가 있지만 예전보다는 나아졌습니다. 그러나 법무부 소속의 교도대 중소 대장들은 다 일반 직원들입니다. 군인들의 구타가 밖으로 새 나아가 청으로 보고가 올라가면 감봉에 전출에, 가족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구타는 어떻게든 안에서 해결하려고 하고 듣지도 보지도 않으려 합니다. 막사에는 100명의 대원들 중에 가장 악질로 소문난 선임이 있었습니다. 멀리 떨어진 섬에서 온 선임이었는데 그 지역 방언을 심하게 쓰며 구치소 가까이 사는 애들이 이 구치소로 배정을 받으면 집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외박을 받아도 집으로 가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며 집이 가까운 신병들을 이 잡듯 때려잡았습니다.


 어느 날 빨래 건조 장소에 거위 두 마리가 들어왔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릅니다. 구치소 근처에는 종합운동장과 축구전용 경기장이 있고 큰 호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주위가 온통 숲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호수를 따라 오리구이나 장작 집 같은 이름의 가든식 식당이 많습니다. 거위 두 마리는 어쩌면 그 식당 중 한 곳에서 탈출하여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거위 두 마리는 서로 목을 꼬기도 하고 아주 다정해 보였습니다. 쫄다구들은 거위가 먹을 음식을 준비해서 돌아가며 거위에게 먹이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거위인데 마치 강아지처럼 우리를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여러 날 동안 거위와 친해져서 머리에서 긴 목으로 떨어지는 그 가냘픔을 쓰다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격스러운 촉감이었습니다. 그 선임이 술을 많이 마신 날이었습니다. 사방(감방)에 올라가 독방에 갇힌 향정신성의약품 취급 재소자에게 담배를 팔려고 했는데 부르는 값을 쳐주지 않았습니다. 그 선임의 동기들은 그 가격에 해주었는데 자기만 그 가격에 해 줄 수 없다는 것에 격노한 것이었어요. 자존심이 무너졌다고 생각이 들었겠죠. 재소자 주제에 자신을 무시했다는 분노가 가장 컸습니다. 그러나 재소자라고 하지만 구치소에서 담배를 피우려고 버젓이 거래할 정도인 사람은 조직폭력에 가담하고 향정신성 의약품 – 마약을 취급하는 무서운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이 이제 갓 군인이 된 스무 살 안팎의 어린애가 터무니없는 담배 가격으로 후려치려 하니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 악질 선임은 술에 취해서 인간의 입으로 할 수 있는 욕을 다 하며 빨래 건조 장소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거위를 본 것입니다.


 거위 두 마리는 서로 붙어서 사랑을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부리로 서로의 털을 핥아가며 더러운 것들을 깨끗하게 해 주었습니다. 술에 취한 선임은 느닷없이 달려가서 군홧발로 거위의 얼굴을 냅다 걷어찼습니다. 거위가 이렇다 할 소리도 내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꼬꾸라졌습니다. 발발 떨고 있는 거위를 다시 한번 군화로 걷어찼습니다. 그때 거위의 생명이 그대로 끊어졌습니다. 다른 거위가 꽥꽥거리며 당황해하고 있을 때 선임은 다시 군홧발로 거위의 얼굴을 걷어찼습니다. 거위가 저만치 날아가서 떨어졌습니다. 나는 초소 근처에서 거위의 밥을 챙겨서 안으로 들어가다 그 모습을 봤습니다. 거위들이 종이처럼 쓰러지고 발로 걷어차여 생명이 없어졌습니다. 분이 풀리지 않은지 선임은 씩씩거리며 거위를 계속 걷어찼어요. 입에서 지역방언의 욕이 엄청나게 흘러나왔습니다.


 거위들은 내가 밥을 주로 가면 나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머리에서 목으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목덜미는 인간의 아름다움처럼 미질이었습니다. 인간과는 다른 묘한 소리를 내며 인간을 아이처럼 따라다니며 좋아했습니다. 숨어서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나는 잠시 정신을 잃은 듯했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대략 5분 정도가 흘렀습니다. 그 5분 동안 나는 아마도 그 자리에서 그렇게 정신을 깜빡하고 있었나 봅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습니다. 도대체 5분 동안 나는 코마 상태에 있었던 것일까요.


 다음 날 빨래건조대 장소에는 노란 거위의 발 네 개만 잘려 버려져 있었습니다. 날도 흐리고 습기도 많은데 잘려버린 거위의 발은 바짝 말라있었습니다. 선임은 운전병을 시켜 거위를 삶아서 선임 몇몇 들과 함께 먹어 버렸습니다. 그 후로 선임은 조금 이상해졌어요. 혼자서 말을 하는 날이 늘어갔고 쫄다구들을 괴롭히거나 구타를 하지 않는 대신 곁에 갈 수 없을 정도로 무섭게 혼자서 말을 쏟아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러 갔던 2 내무반의 누군가가 그 선임이 화장실 벽에 고개를 숙이고 맞대고 있었는데 조용하게 말을 읊조렸습니다. 조용하게 내뱉는 말은 “저리 가라고”같은 말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머리를 화장실 벽에 그대로 박았다는 것입니다. 피가 터져 화장실 벽에는 아직 금이 간 곳에 스며들어있었습니다. 선임은 미쳐버렸습니다. 행정본부에 연락을 해서 중대장이 오고 사람들에게 잡혀서 병원으로 이송이 되었습니다. 그 뒤로 그 선임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소문으로는 병원에서도 혼자서 미쳐서 따로 격리시켜놓았는데 몸에서 발진이 심하게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발진은 보통 여러 가지가 동시에 오지 않는 것에 비해 선임의 몸에는 두드러기와 피부염과 건선 그리고 돌발진과 각화증이 온몸에 꽃처럼 피었다는 것입니다. 하루가 지나면 그 정도가 심해졌습니다. 정말 기이한 일은 그 선임의 목이 평소에 비해서 약간 길어졌다는 것입니다. 앉아 있으면 고개가 심하게 앞으로 숙여질 정도로 목이 평소에 비해서 늘어난 것입니다. 병원에서는 원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피부발진 같은 경우 거위를 잡아먹었는데 그것 때문이라면 같이 먹은 선임들도 그래야 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괜찮았습니다. 같이 먹은 선임들은 먹다가 이 닭이 닭이 아니라 거위라는 걸 알고는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그 행동이 그 선임을 다시 분노케 했습니다. 선임이 의가사제대를 하고 막사에는 평온이 찾아왔습니다.


 이상한 것은 그 선임이 미치기 전 하루 전에 나와 화장실에서 마주쳤습니다. 나는 무서워서 선임을 피하려고 양변기에서 일어나지 않았는데 선임이 발로 쿵쿵 문을 차며 어서 나오라는 것입니다. 나는 무서워서 고개를 숙이고 나갔습니다. 경례를 하려고 하니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때 선임이 나를 보더니 순간 움찔하면서 말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마치 봐서는 안 되는 것을 본 것인 양 몸을 사시 떨듯 떨었습니다. 그리고 “저리 가, 저리 가”라는 말을 했습니다. 나는 선임에게 괜찮냐고 하며 손을 올렸는데 선임이 갑자기 주저앉더니 바지에 소변을 지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시간이 대략 5분 정도였습니다. 그 뒤로 가끔 그 선임의 소식이 궁금했습니다. 피부병은 다 나았는지, 정신병은 괜찮아졌는지. 그리고 나는 지금도 정신을 잃은 5분 동안이 어떻게 된 일인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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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2-06-28 13: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통스럽거나 부정하고 싶은 기억을 스스로 봉인해 버리는 해리성 기억장애같네요.
저도 예전에 잃어버린 6시간이 가끔 궁금한 때가 있습니다.

교관 2022-06-29 11:40   좋아요 0 | URL
기억장애는 대체로,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