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다가 화장실이나 세면장에 들어가면 순간 꿉꿉하고 후끈한 열기가 확 나는데 그게 뭐랄까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때만큼은 아 여름을 즐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수영장에서 몸을 담그고 물놀이를 할 때는 못 느끼다가 찝찝하고 꿉꿉한 열기가 나는 화장실이나 세면장에서 여름을 느끼고 그 시간이 싫지 않음을 느꼈다. 그게 이상하게도 어린 시절이었다. 그런 순간이 어른이 되어 갈수록 좀 더 확장되어 간다. 정작 행복한 순간보다 그 행복한 순간은 순식간에 지나간다는 걸 알아서일까, 행복한 순간이 오기 직전의 그 시간이 싫지 않았다. 힘든 일을 하고 있어서 좋다고만은 할 수 없지만 싫지는 않았다. 이 시간을 지나면 행복한 순간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비록 금방 지나갈지라도.


사는 게 어려워졌다. 뉴스, 기사, 영상, 곳곳에서 사는 게 어렵다고 한다. 소수의 몇몇을 제외하고 대부분 사는 게 힘들다고 한다. 어쩌면 그 소수의 몇몇도 그 자리에서 살아가는 게 그렇게 또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돈이 많다고 해서 꼭 사는 게 쉬운 것은 아니다. 억만장자 재벌가의 막내딸이 오래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을 보면 사는 건 누구에게나 다 힘이 드는 것 같다.


정말 힘든 순간이나 또는 몹시 행복한 순간에서 잠시 비켜간 순간에서 나를 바라보면 그 찰나의 시간이 그렇게 싫지 만은 않았다.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 때 그 순간만 지나갈 수 있다면 좋지는 않으나 고통을 느껴봤기 때문에 또 헤쳐나갈 수 있어서 싫지만은 않다. 우리는 고통을 두려운 것으로 의미를 두는데 고통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면 그건 곧 살아있다는 말이다.


김영하의 신작 ‘작별인사’를 보면 고통에 관해서 언급한 부분이 있다. ‘달마’라는 휴머노이드가 철이와 선이에게 하는 말이다.

[우리는 쉬지 않고 그들을 처리했습니다. 당연하게도 그들은 모두 살고 싶어했습니다. 인간들이 휴머노이드에게 스스로를 보호하고 생명을 유지하도록 삶을 향한 의지를 프로그래밍해두었기 때문이지요. 삶을 향한 의지라고 하면 뭔가 심오하게 들리지만 그저 그들에게도 고통이라는 감각 체계를 내장해 스스로를 보호하도록 만들었다는 의미일 뿐입니다. 고통은 그 자체로는 악이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고통은 생물체를 보호하는 필수적 장치입니다. 고통을 느껴야 위험을 피해 자신을 지키려 할 것이고, 그래야 인간은 비싼 돈 주고 산 소유물을 보존할 수 있으니까요. 어쨌든 그렇게 고통과 공포, 불안을 느끼도록 만들어진 존재를 계속 비활성화하는 작업이 간단할 리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역시 그들의 고통에 공감을 하니까요]라고 달마가 말을 한다.


고통이라는 건 그렇다. 고통 그 자체는 나쁜 게 아니다. 고통을 통해서 우리는 다시 마주할 고통에 대한 내성을 가지게 된다. 시시티브이를 통해 보게 된 축 늘어진 조유나 양의 영상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는데 안 좋은 예감은 안 좋은 소식으로 전해졌다. 사는 게 힘들고 고통이다. 너만 힘든 게 아니야, 다 힘들어, 같은 말을 하려고 하는 건 아니고 사는 건 원래 그런 거라, 카니발의 그땐 그랬지를 봐도 사는 건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미생에서 그랬듯이 그래도 전쟁이 지옥보다는 낫다. 이렇게 바닷속에서 생명이 다 한 가족의 소식은 안타깝기만 하다.


어제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암 환우들의 영화를 봤다. 그들은 언제 죽을지 몰라 하루를 너무 열심히 살아내고 있었다. 그들도 하루하루 사는 게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고통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사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행복한 건 정말 잠깐이다. 사람들의 행복은 다 엇비슷하고 추상적이다. 그러나 불행은 길고 아주 구체적이며 제각각이고 명확하다. 우리의 일생은 짤막한 행복의 순간과 그 외의 대부분은 덜 행복하거나 불행하지 않을 시간을 보내고 있을 뿐이다. 그 사이사이에 고통이 파고들어 온다. 삶이란 언제나 그렇다. 무너져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개지만 살아가야 하는 이유 한 가지만 있다면 어떻게든 해 볼 수 있다.


엄마 아빠와 여행 간다고 그 전날 들떠서 짐 싸고 했을 유나 양을 생각하면 참 슬프다. 정작 행복한 순간보다 그 전의 시간이 나쁘지 않을 시간이 되었기를 바라며. 유나 양에게 그 시간이 그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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