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보고 영화 자체도 감동이지만 장예모 감독에 대한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요즘에, 중국 사회에서 체재에 반하는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더불어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한중 축구전에서 패배한 중국 선수들에 대해서 중국 해설자들의 해설 역시 한국 축구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 축구에 대한 비판과 발전이 필요한 부분을 말했다.  


역시 탁구 선수들의 매달을 수여하는 방송에서 금메달을 따고도 얼굴이 굳은 중국 선수들을 안타까워하며 메달의 종류에 상관없이 즐거워하며 행복해하는 한국 선수들을 축복하는 중국 해설자들이었다.


그동안 얄팍하게 알고 있던 중국은 그들의 체재에 반하는 언행, 언동을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구속이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코로나 때 의사, 기자들은 비록 구속될지언정 제대로 된 정보를 알리려고 했다. 후에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무서운 바위에 계란인 자신의 몸을 던졌다.


이번 부국제의 판빙빙을 보라. 그렇게 중국정부에 탄압을 받았지만 이주영과 함께 영화를 찍고 레드 카펫을 밟았다. 이런 사람들이 중국을 건강하게 만들 것이다.


이 영화 제목 ‘원 세컨드’는 30분 정도 지나면 왜 제목이 그런지 알게 된다. 이 영화는 많은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당연하지만 시네마천국의 알프레도와 토토가 떠오르고, 조지 오웰의 1984 속 윈스턴이 살아가는 세계도 떠오르고 인도영화 천국의 아이들도 떠오른다.


장이머우, 우리에게는 장예모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중국 감독. 첸 카이거와 함께 거장으로 불렸으나 홍콩 반환 이후 중국정부가 원하는 영화를 만들어낸다는 소리를 들었다. 첸 카이거의 패왕별희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울렸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그의 영화는 빛을 잃어갔다.


장이머우 역시 붉은 수수밭에서 세상의 조명을 받았고 영웅에서 재능이 아직 남아 있었다. 하지만 역시 그레이트 윌 같은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점점 빛이라는 것이 소멸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영화 ‘원 세컨드’에서 – 과연 지금 시대에, 현재 시대에 장예모 감독은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를 만들었다. 우리나라도 예전보다 방송이 더 열약해졌다.


예전 김혜수 토크쇼에 나훈아가 나왔을 때 김혜수가 웃으며 여러 번 이혼한 것에 대해서 묻고 나훈아가 대답하면서 풍자 섞인 말들이 오고 갔다. 그런데 지금 이런 이야기를 공중파에서 할 수 있느냐 한다면 그러지 못한다. 한석규, 최민식 주연의 영화 넘버 3의 길거리 포스터에서는 한석규가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고 있는 장면이 크게 있다. 하지만 요즘 그렇게 했다가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더불어 풍자로 정부를 비판하는 예능이나 토크 쇼 방송은 공중파에서 전부 사라졌다.


중국은 예전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우리나라 보다 더 정부의 간섭이 심하다. 강력하다. 영화계에도 칼바람이 불었다. 성룡도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아들 때문에 중국 정부에 굴복하고 말았다.


첸 카이거와 함께 장예모 역시 무너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영화 원 세컨드를 보면서 장예모라는 감독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했다. 더불어 주연을 맡았던 배우들 역시 생각했다.


주인공 장주성은 딸이 영화에 등장한다는 소리에 감옥에서 탈출하여 영화를 상영하는 마을에 온다. 딸은 영화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영화시작 전 중국뉴스를 보여주는 영상에 등장한다. 그 속에 1초 동안 나온다.


당시의 중국은 마오쩌둥이 집권하고 있었던 1960년대다. 나이를 떠나 모든 인민이 전부 먹기 위해, 살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 운동을 해야 한다! 같은 분위기가 강했다.


아이들도 즐겁게 쌀 가마니는 나른다고 뉴스 속 내레이션이 나온다. 그 1초 안에 주인공 장주성의 14살 딸이 쌀가마니를 울러 매고 웃으며 스쳐간다. 장주성은 그 장면만 몇 십 번을 돌려 본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딸의 모습, 그 딸이 웃으며 무거운 쌀가마니를 나르고 있다.


장주성은 말한다. 고작 14살이다. 14살 여자 아이가 즐거워서 저 무거운 쌀가마니를 나르고 있을까. 장주성은 어린아이까지 사회 운동에 동원하는 중국정부를, 이 중국이라는 나라의 체재에 분노 같은 것을 느낀다. 그 짧은 대사는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편에서 시저가 했던 한 마디만큼 강하게 느껴졌다.


소녀는 어린 동생이 태워버린 필름으로 만든 전등갓 때문에 필름을 훔쳐 그것을 다시 만들려고 하고, 그 필름 속에 장주성 딸의 1초 영상이 있다.


1초는 너무 하찮지만 그 1초가 모여 영화 한 편이 된다. 1초만 나오는 딸의 모습을 보기 위해 목숨을 건 한 남자와 동생을 위해 필름을 훔치는 한 소녀의 이야기가 처절하고도 아름답게 펼쳐진다.


희망이라고는 1도 보이지 않는 중국의 시골 마을 사람들은 모여서 영화 한 편을 보는 게 삶의 낙이다. 그 영화 필름을 운반하는 도중에 딸을 위해 탈주한 남자와 동생을 위해 필름을 훔친 소녀가 만나서 서로를 위해주는 이야기다. 아주 재미있다. 소녀 역의 2000년 생인 류 하오춘은 라이드 온에서 성룡의 딸로 나와서 연기를 했고 성룡에게 존경의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장예모 감독의 영화에 대한 집념과 애정이 보이는 영화 '원 세컨드'였다.


예고편 https://youtu.be/0v5B7ujnfao?si=UWHM4eOSRkt-zZ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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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카를 보니 만달로리안의 재미가 슬슬 기어 올라오려고 한다. 만달로리안 시리즈와 보바 펫은 스타워즈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재미있게 봤다. 나는 스타워즈 광팬이 아니라서 그 세계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깊게 빠지지도 않았지만 스타워즈 영화- 한 솔로 번외 버전의 영화, 스타워즈 드라마 시리즈는 다 봤다.


스타워즈는 일종의 추억의 음식 같은 것이다. 어린 시절에 늘 구정이나 신정에 티브이에서 방영을 해줬다. 한 번 서울의 친척집에 가게 되었는데 모여든 친척들이 서먹서먹할 땐데 한 이불이 발을 넣고 전부 스타워즈를 보며 귤을 까먹었다. 그러다가 스타워즈에 점점 빠져들어 모두가 와와 하며 보면서 친해졌다. 뭐 그런 기억 때문인지 겨울이 되면 스타워즈를 찾아서 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만달로리안을 보게 되었는데 정말 너무 재미있었다. 만들기도 엄청나게 잘 만들었고 보는 내내 사랑스러운 그로구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만달로리안 시즌 1

영화가 생긴 이래 역사상 가장 못생긴 수백 살인 요다가 50살 아가였을 적에는 이렇게 귀욤귀욤 터지는 아이였다는 걸, 이 정도로 미친 귀여움을 장착하고 포스를 사용하는 걸 본다는 거 자체만으로도 눈이 하트로 변한다.


만달로리안에서 요다는 우리가 아는 요다의 어린 시절은 아니고 그냥 같은 종족인 아기 요다인데 이름은 그로구. 만달로리안은 만달로어인 중에서 딘 자린과 베베(베이비) 요다인 그로구의 티키타카 로드무비다. 기존의 스타워즈와 접점이 없기 때문에 스타워즈 생각지 않고 보면 됨.


시작부터 재미있다. 시즌 1만 해도 한 편당 보통 극장의 영화에서 볼 정도의 엄청난 볼거리가 터져 나온다. 스타워즈 세계관에서 볼 수 있는 기상천외한 존재들의 모습과 드로이드들의 총질, 그리고 은하철도 999에서 차장을 닮은 듯한 난쟁이들, 자와의 움직임과 그들의 언어는 마치 미니언즈를 보는 것처럼 재미있다.


만달로리안의 갑옷 속에 숨겨진 여러 무기들의 사용과 아가아가 요다와의 캐미는 보는 재미를 더 한다. 또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여자 지나 카라노의 액션도 보는 재미가 있다. 지나 카라노의 정말 멋진 액션은 2012년 영화 ‘헤이와이어’에서다. 그게 아마 종합격투기에서 패배하고 은퇴 후 처음 찍은 액션 영화로 알고 있는데


그 영화에서 주인공 지나 카라노 빼고 이완 맥거리그, 마이클 패스벤더, 마이클 더글라스, 안토니오 반데라스 등 엄청난 배우들이 나오는데, 지나 카리노에게 다 터진다. 마이클 패스벤더와 일대일 격투신은 와우 정말 끝장난다. 종합격투기 선수 출신으로 여지없이 멋진 액션을 보여준다.


만달로리안 시즌 3까지 있는데 시즌 1부터 보면 재미있다. 스타워즈 팬이 아니더라도 보면 재미있게 볼 수 있다. 스타워즈 영화 버전으로 나온 시리즈보다 훨씬 재미있다. 귀요미 요다를 뺏으려는 자들과 절대 빼앗기지 않으려는 만달로리안의 전투가 볼 만한 시즌 1이었다. https://youtu.be/N0hXFxtBYz8


만달로리안 시즌 2


존 파브로는 도대체 천재야 뭐야? 다 말리는 로다 주를 데리고 아이언맨 찍더니 할리우드 최고의 배우로 만들고, 만달로리안 세계관을 창조하고 극본까지 지가 다 써버리고 뭐야 도대체. 그저 스파이더맨 뒤치다꺼리나 해주고 메이 이모에게 반한 뚱뚱한 해피해피가 아니었다고.


시즌 2는 시작부터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우주선의 비행이며, 전투신이며, 물에 빠진 우주선을 건져내는 모습까지 정말 너무나 디테일하고 세세하고 실제 같다. 시즌 2에서는 그로구의 귀염뽀짝 터지는 여러 모습을 다양하게 볼 수 있어서 재미를 더 한다.


그로구 녀석 개구리 종족의 마지막 후계자로 남은 알을 몰래 꺼내 먹는 모습이나, 녹색 마카롱 먹고 우주선이 뱅뱅 과속하니 오바이트하는 모습까지, 너무 귀엽다. 시즌 2에서는 스타워즈의 오마주 같은 모습도 많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더욱 재미있는데 갑옷을 잃은 보바 펫도 나오는데, 보바 펫의 전투력이 만달로리안을 뛰어넘는 것 같은 전투를 보여준다. 그래서 시즌 3으로 넘어가기 전에 ‘북 오브 보바 펫’을 보는 것도 좋다. 마지막에는 다크 트루퍼(이것도 벌써 피규어로 나와서 팔리고 있는 것이 신기함)들을 전부 한칼에 날려 버리는 제다이가 등장하는데 얼굴이 두둥.


만달로리안과 그로구가 헤어질 때 모습을 보면 애절하다 못해 마치 연인이 헤어지는 것 같다.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어서 얼굴도 볼 수 없어서 표정을 알 수도 없고, 그로구 역시 표정이라고는 입을 약간 벌리는 아가 일뿐인데 뭐가 이렇게 애절하게 보이지.  이때 아소카가 잠깐 등장한다.


그렇게 해서 만달로리안이 그로구를 데리고 제다이에게 데려다주는 긴 여정이 끝나면서 시즌 2가 끝난다. 여러 영화에서 실패했다면 만달로리안에서는 실패하지 않음. 나처럼 스타워즈 팬이 아니라도 상관없이 재미있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자들은 이상하게 만달로리안을 거의 보지 않는 것 같다. 이것이 길이다!

https://youtu.be/4OyR4AD_lCY


북 오브 보바 펫

이렇게 재미있을 일이가, 이게 이렇게나 재미있어도 된단 말이가. 근래의 마블 영화들, 디씨 영화들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잘 만들고 재미있다. 초반에는 만달로리안만큼은 아니지만 뭐 어때, 하는 마음이었는데 5화부터 흑화 하더니 점점 달아오르는 불덩이처럼 마지막 회차까지 재미가 떨어질 줄 모르고 솟아오른다.


보바 펫은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한 솔로에게 한 방 먹고 사막 밑으로 떨어져 주둥이 이빨이빨 괴물에게 먹혔다. 자바 더 헛이라고, 배가 축 늘어진 찰흙을 물에 불려 창문에 집어던져 흘러내리는 듯한 얼굴을 한 쌍둥이를 지키다가 사막 밑으로 떨어져 생사를 알 수 없다가, 현생으로 40년이 흐른 지금 디즈니의 자본과 존 파브로의 극본과 로드리게즈의 연출력이 만나 다시 태어났다.


보바 펫이 초반에는 샌드족에 잡혀서 노예로 있다가 그들을 도와주며 그들에게 인정받기까지의 과거 여정이 나오는데 이 이야기가 무척 좋다. 마치 회사에 취업하여 보잘것없던 내가 하나하나 일을 배워 경쟁업체를 물리치는 뭐 그런 짜릿함이 있다. 보바 펫은 그래서 어쩌고 저쩌고 수장이 되었는데 널리 인간을 복되게 하고 싶은데 시민은 시민대로 대들고, 반대 세력은 반대 세력대로 대든다. 만만치가 않어.


5화에서는 만달로리안이 등장하는데 이때부터 진짜 재미다. 보바 펫과 만달로리안이 합세하여 거대세력과 전투를 벌이는 이야기가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만달로리안이 등장해서 헤어진 그로구를 찾아간다. 그로구는 열심히 마스터 루크에게 포스를 배우고 있다.


귀염 터지는 아가아가 지천명 그로구의 행동 하나하나가 보는 이들을 미치게 만든다. 하지만 만달로리안은 그 멀리까지 가서 그로구를 만나지 못하고 보바 펫에게 온다.


그로구는 그 사실을 알고 제다이가 되기를 포기하고 지를 키워준 양 아빠 만달로리안을 만나러 비행선을 끌고 온다. 그때 그 둘이 만나는 장면 뭐지? 왜 눈물 나려 하지? 가면 때문에 얼굴 표정이고 뭐고 안 보인다고. 그로구의 표정 역시 눈만 뜨고 있을 뿐인데 이 감격은 도대체 뭐지? 하게 된다.


포스를 배운 지천명 귀염 뽀짝 요다인 그로구의 포스 활약 덕분에 만달로리안은 생명을 잃지 않는다. 만달라로리안도 그렇고 보바 펫도 그렇고 스타워즈 영화 속에서 하찮게 지나쳤던 캐릭터들이 여기서는 전부 입체적이 되어 진짜 살아서 자신의 몫을 하는 게 너무 좋다.


그로구는 그래픽이 아니라 인형으로 촬영을 했다고 한다. 이제 만달로리안 시즌 3으로 넘어가자. https://youtu.be/alfhlyY-oH0


만달로리안 그로구

시즌 3에서 세계관이 넓어지려 한다. 제국이 소멸하고 신공화국이 건설되고 모두가 풍요롭게 생활할 것 같은데 어쩌고 하면서 뭔가가 만달로리안과 그로구 앞에 펼쳐질지 기대가 팝콘벚꽃처럼 부풀어 오른다.


지천명 귀염뽀짝 그로구가 양 아빠 만달로리안에게 온 것은, 마스터 루크(스타워즈 시리즈의 그 루크. 어찌나 얼굴이 똑 닮은 배우를 섭외했던지)에게 포스를 열심히 배우고 있을 때 양 아빠 만달로리안이 보바 펫과 합세하여 전투 전에 그로구를 만나러 행성으로 간다.


양아빠는 어찌나 아가아가 그로구를 생각하는지 베스카(블랙팬서의 비브라늄, 울버린의 아다만티움 같은 무적의 물질)로 만든 그물 조끼를 들고 왔지만 제다이가 못 만나게 한다. 자꾸 정을 붙이면 포스를 배우는데 실패하니 어쩌니 하면서 만달로리안을 잘 타일러 쫓아낸다.


어찌나 이 부분에서 말 잘 듣는 만달로리안. 가면 쓰고 있어서 표정을 알 수 없지만 고분고분 듣는 착한 초등학생 같은 딘 자린. 그래가 딘 자린은 선물을 그로구에게 전달해 달라며 결국 만나지 못하고 행성을 나오게 된다.


포스를 열심히 귀염귀염 훈련하던 그로구에게 마스타 루크가 너에게 선물이 왔다며 베스카로 만든 그물조끼를 꺼낸다. 그로구가 와아 기뻐하며(라고 보는 이들이 상상할 뿐이다) 울 아빠의 선물이구나, 조끼를 만지려고 하는데 루크가 잠깐! 하며 그로구에게 제다이의 라이트 세이버를 꺼낸다. 이건 말이야, 나의 스승 요다의 것이었지, 이제 그로구 너에게 줄게.


다만, 선물을 잡는다면 포스 배우는 걸 멈추고 제다이가 되길 포기하고 딘 자린에게 돌아가서 그곳에서 영원히 살면 된다, 하지만 라이트 세이버를 잡는다면 나를 뛰어넘는 제다이가 되어서 제국이 부활해도 맞설 수 있게 된다,라고 한다. 두둥.


그런데 모두의 예상을 깨고 그로구는 그물 조끼를 입고 양 아빠 딘 자린을 찾아서 비행선을 몰고 만달로리안이 전투하는 곳까지 와버린다. 그렇게 둘이 해후(는 뜻밖에 다시 만나는 거지?) 하여 좋아 죽으며 시즌 3까지 달려온다.


시즌 3, 1화에서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한 편이 끝나면 마지막에 이렇게 이름들이 올라가면서 그 화의 포인트를 캡처해서 보여주는데, 물에서 기어 나온 악어 닮은 괴물은 왜 다르죠? 얘네들이 허술하게 다르게 표현했을 리가 없을 텐데. 아무리 찾아봐도 이 궁금함을 해결해 주는 곳이 없더라. 만달로리안 팬들이 있다면 알려주십쇼. 라고 SNS네 올린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스타워즈 팬 분이 그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리스펙.


이렇게 죽 쓰고 보니 만달로리안을 보지 않고서는 이게 무슨 똥 같은 말이지? 할 것 같다.


그로구 모음 무한 귀여움에 좋아 죽음 ㅠ https://youtu.be/qYJWHkZfQx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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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방학 때 실컷 놀다가 집으로 들어가야 하는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내일을 다짐하고 콧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채 뿔뿔이 흩어졌다. 아버지도 퇴근하고 오시고 저녁을 먹기 전에 씻어야 엄마한테 혼나지 않는다. 여름 저녁에는 저녁만의 냄새가 있었다. 타오르던 해가 꺼지는 냄새, 집집마다 저녁을 만드는 냄새, 노을의 냄새, 논다고 흘린 땀 냄새. 그런 냄새들이 섞인 여름 저녁의 냄새가 있었다.


에어컨도 없었는데 어떻게 여름 저녁을 보냈을까. 집으로 들어가면 여름인데도 보글보글 끓은 된장찌개의 냄새를 맡으며 씻고 아버지가 오시면 계란 프라이를 잘라 된장찌개와 함께 맛있게 밥을 먹었다. 고작 선풍기 한 대로 어떻게 지냈을까.


요즘에도 에어컨을 켜지 않고 잠을 자는데 어제는 더워서 푹 잠들지 못했다. 어릴 때 여름방학 때에는 토마토를 섬등섬등 썰어서 설탕을 넣고 얼음을 가득 넣어서 그렇게 자주 먹었다. 요즘도 매일 토마토를 먹고 있지만 방울토마토라서 그때의 그 느낌은 없다. 방학도 길어서 일주일 씩 외가가 있는 시골에서 보내기도 했다. 우리 집이 바닷가 근처라서 사촌동생들이 우리 집으로 와서 여름을 보내기도 했다.


복작복작 무척 더웠을 텐데 사진들을 보면 그렇게 더워 보이지도 않는다. 참 이상한 일이다. 그때의 여름이라고 해서 덥지 않았을 리도 없다. 유튜브로 옛날 영상을 보면 여름은 똑같이 더워서 사람들이 더위에 허덕였다.


조깅을 저녁에 하다 보면 바람이 시원해졌다는 게 느껴졌다. 아직 이런 폭염이 일주일 정도 계속되겠지만 분명 8월에 접어들고 저녁에 조깅을 하다 보면 해가 짧아졌고 바람이 조금 시원해졌다. 무턱대고 숨이 막히는 그런 바람은 아니다. 조깅을 매일 나오다 보면 매일 마주치는 러너들이 있다. 항상 비슷한 시간에 달리고 있으면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러너와 인사를 주고받는다. 파이팅!이나 수고하십니다! 같은 인사를 주고받으며 스쳐 지나간다.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에 사는지, 어디에서 오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궁금하지도 않다. 그저 저 사람도 매일 이 시간에 나와서 달리고 있구나,라는 마음으로 서로 지나칠 때 인사를 주고받는다. 겨울의 저녁과는 달리 여름의 저녁에는 하늘과 풍경이 경이롭게 보인다. 그런 모습이 매일 달라진다.

저기는 바다가 있는 곳으로 동해, 동쪽이라 노을은 아닐 텐데 워낙 더워서 일까. 아직 저 붉은빛이 남아서 아름다운 하늘을 만들어내고 있다.

며칠 전에는 서핑보드를 타는 사람을 봤다. 전문 서퍼같았다. 너무나 매끄럽게 저어어어기에서 여기를 지나 저어어어어어기로 그저 슈우우욱 가는 것이다. 물살은 반대인데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어떻게 물살과 역행하며 잘도 가는 것일까. 한참을 바라보았다. 멋있기도 했지만 참 시원해 보였다.


이 부분만 이렇게 금계국, 만수국들이 가득하다. 꽃들은 왜 예쁠까. 꽃은 봄에 대부분 피는데 그래서 조금 예쁘지 않은 꽃들은 봄에 외면받는다. 너무 예쁜 꽃들이 봄에 다 피어버리니까. 그렇기에 어쩌면 제일 예쁠 시기에 외면받아서 슬플지도 모르는 꽃들이 있다. 하지만 봄날만 피하면 이렇게 예쁨을 활짝 드러낼 수 있다. 하찮고 흔한 꽃인데, 그래서 더 예쁜 것 같다. 꽃들을 보고 있으면 인간과 다를 바 없다는 걸 느끼기도 한다. 설증매가 아름다운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마찬가지로 동쪽하늘인데 붉게 물들어 있다. 분명 노을과는 다른 붉은 색감이다. 연분홍 같은 색감. 딱 이 시기에만, 그것도 이 시간에만 볼 수 있는 황홀한 색감이다. 며칠만 볼 수 있기 때문에 볼 수 있을 때 실컷 보기 위해서는 이 시간에 이 자리로 조깅을 해서 나와야 한다.

다음 날에도 비슷한 하늘의 색감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달이 수줍게 얼굴을 내밀고 있다. 늘 생각한다. 이럴 때 좀 좋은 폰카메라였다면. 그러면 달의 모습을 좀 더 달답게 담을 수 있었을 텐데.

사진에는 저래 보여도 아주 근거리에 떠 있는 장면이다. 저어기 아파트를 지나면 공항이기 때문에 비행기들이 낮게 날아다닌다. 비행기 소리는 때로는 공포다. 특히 전투기 소리는 무섭게 들린다. 그런 소리가 도심지에서 분당 간격으로 들리면 사람들은 두려움에 벌벌 떨 것이다. 소리로 사람을 무섭게 하는 것 중에서는 단연 최고가 아닐까.

역시 동쪽 하늘에 연분홍빛이 발하고 있는 저녁이다. 세상의 시끄러운 사건사고와 동떨어진 평온하고 평화로운 모습이다. 그저 고즈넉하다. 고즈넉이라는 말은 고요하고 아늑하다는 말이다. 잠잠하고 아늑한 곳이 세상에는 분명 존재하고 우리는 그런 곳을 찾아서 여행을 하기도 한다.


조깅을 하는데 앞에서 노부부가 손을 잡고 함께 산책을 하는데 너무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노년에 같이 손을 잡고 산책을 할 수 있는 부부가 몇이나 될까. 모르는 이들이 서로 만나 가족이 되면 쉬울 리가 없다. 내일도 행복하세요.

이날부터(한 이 삼일 된 것 같다) 비슷한 시간이지만 온통 그늘이다. 해가 짧아졌다는 말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 시간에 아직 해가 비치는 곳이 있었는데 이제 온통 그늘이다. 서서히 여름이 빠져나가고 있다. 매년 그걸 느낀다. 자연은 절대 그럴 리 없는 일은 하지 않는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물러가고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다. 그 주기, 그 반복이 무섭도록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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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시간이나 되는 이 영화를 멍하게 그저 푹 빠져서 봐 버렸다. 이 영화는 진정 놀라운 영화였다. 어떤 사람에게는 힐링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복수극이며, 어떤 사람에게는 가족 드라마이며, 어떤 사람에게는 공포 또는 코미디다.


아무튼 놀라운 영화였다. 아리 에스터의 전작들처럼 가족이라는 게 늘 평화롭게만 흘러가지 않는, 피로 이어져서 서로 행복하게만 보이지 않는다는 걸 이 영화에서도 여실히, 깡그리 보여주었다.


정신과 상담 의사가 보에게 엄마가 죽기를 바란 적이 있죠?라고 묻는다. 보는 깜짝 놀라서 그런 적인 없다고 한다. 여기서부터 이 영화는 경계가 무너진다.


사랑과 복수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편집증과 정상의 경계도 무너진다. 그놈의 거미는 눈앞에서 사라지나 없어지는 건 아니다. 모서리, 이 영화에서도 전작들처럼 모서리의 무서움을 보여주는데 인간 거미가 욕실의 모서리에 붙어서 나타난다.


세 시간이나 빠져서 보게 된 생각대로 흘러가는 장면이 1도 없어서다. 꿈에서 깨어났는데 다른 꿈인 거 같고. 만나는 사람들은 마치 각본에 의해 움직이는 거 같고. 진실이 알고 싶지만 진실이라는 게 너무 무서워서 기이한 형태로 앞에 나타나고.


나는 나를 이렇게 만들어 버린 엄마를 사실 죽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인간이 단단하게 가질 정서가 연하디 연할 시기에 학대를 받게 되면 바로 이 영화의 보처럼 되는 것 같다.


보는 어른이 된 후 망가진 외모가 되었다. 어른이 되어서 다시 만난 일레인에게 나야 보. 그러나 일레인은 보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래 너야 보, 얼굴과 몸은 너 아닌 것 같지만. 어린 시절에 정서적으로 학대를 받고 자라면 정신이 망가지는 것은 물론이고 보의 외모를 통해서 알 수 있듯 망가진다는 것이다.


정신과 몸이 망가진다.


보는 다행히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행동에서도 이타성이 발효된다. 토니가 페인트를 마시려고 할 때 막으려고 한다거나. 그러나 결국 억눌러왔던 분노가 엄마의 목을 조른다. 이 분노라는 건 억제할 수가 없다. 분노를 억누를 수 없는 사람들은 대체로 어린 시절에 정서적으로 학대를 받았을 가망성이 많다.


분노를 억누를 수 없는 것이다. 온 세상이 자신을 무섭게 보고 죽일 것 같다고 느낀다. 그래서 결국 칼을 들고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한다. 많은 정서적 학대를 받은 이들이 제대로 상담도 받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서 시동을 걸고 있었을 뿐이다. 한 명이 칼부림 난동을 시작하니 너도나도 여기저기서 이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 버렸다.


그러나 이런 분노를 교묘하게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소위 잘 배운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무기인 머리와 돈, 지위를 가지고 글을 써서 인터넷에 올려 공격하고자 하는 대상에 공격을 한다. 사회 구조에 대한 분노가 가득하지만 그 구조를 바꿀 수는 없으니 누군가 공격할 대상을 찾아서 공격을 하고 괴멸시킨다.


이 영화를 보면 요즘의 일들이 스쳐 지나간다. 이 영화는 현실이 환상인지 또는 악몽을 꾸는 건지 경계가 알 수 없는 곳에서 헤매게 된다. 가족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 단위는 엄마와 아빠다. 이 엄마와 아빠의 기본이 무너지고 정서에 타격을 받게 되면 어제오늘 끔찍하게 발생하는 사건의 결과물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이 영화가 공포 영화에 가까운 이유는 영화가 가족 이야기라서 그렇다. 가족에게 학대를 받고 자라지만 가족이라 연을 끊을 수도 없다. 뫼비우스처럼 끝나지 않고 관계가 이어지는 공포. 그 공포를 끝내는 건 사라져야 하는 것. 정서적으로 받은 학대가 기묘한 꿈으로, 망상과 환상과 현실이 모호하지만 경계가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는 걸 말하는 영화 같다. 정신분석한 공부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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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라면을 먹으며 질질 짜거나, 울컥하거나, 눈물을 흘려본 적은 없다. 라면을 먹다가 눈물이 나오는 경우는 매운 고추를 먹었거나, 매운 김치를 먹었거나, 라면이 맵거나 해서 눈물이 찔끔 나온 것이 아니라면 라면에 울컥한 사연 따위는 없다.


사람들은 맛있는 라면은 누가 끓여주는 라면이라는데 나는 그것도 별로다. 내가 끓여 먹는 게 나는 가장 맛있다. 학창 시절에 친구집에 놀러 가면 누나가 늘 라면을 끓여 줬는데 파를 엄청 많이 넣어서 끓여 줬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라면을 건져 먹으면 라면과 파가 일대 일 비율로 씹혔던 기억이 있다.


나에게 라면이란 학창 시절에는 불편한 어른들과 고기를 구워 먹는 것보다 친구들과 라면을 끓여 먹는 게 가장 맛있었고, 지금의 라면이란 라면은 전부 너무 맛있어서 자주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라면만 하루 세끼 먹고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 라면은 종류를 막론하고 전부 맛있어졌다. 그러나 매일 라면을 먹으면 안 된다. 사실 매일 라면만 먹어도 괜찮다. 집에서 해 먹는 갖은양념을 부어서 만든 찌개보다 라면이 훨씬 낫다. 그러나 라면은 국물을 마지막으로 끝을 내야 하기 때문에 면만 호로록 먹기에는 아직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영화 속에서도 라면은 캐릭터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고마운 음식이다. 검색을 해보면 영화 속 라면 먹방만 모아놓은 영상이 있어서 보고 있으면 정말 맛있게 보인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라면이 슬픈 음식으로 나오는 경우도 많다.

봄날은 간다에 나오는 라면은 너무나 슬픈 음식이다. 상우와 은수의 첫 날밤의 팡파르는 라면과 함께 시작되었다. 소주와 몹시 어울리는 라면은 금방 식어 버리지만 또 금방 끓어오른다. 그 뜨거운 사랑을 상우는 은수와 한다. 화분의 꽃이 더디게 피듯 상우의 시간은 차근차근 흘러가지만 은수의 시간은 라면처럼 너무나 금방 끓어오른다. 후루룩 입으로 빨려 올라오는 라면은 어느 순간 바닥을 보이는 냄비의 허무를 나타낸다. “라면이나 끓여” 은수의 말에 이제 고작 라면이나 끓이는 놈이 된 상우.


누군가와 마주하고 먹으면 더없이 행복한 라면이지만 혼자 먹으면 더 맛있기에 라면은 슬픈 음식이다. 사랑하는 이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을 때 끓이는 라면은 슬프다. 결국 상우는 은수에게 “내가 라면으로 보이냐고!” 소리를 지른다. 라면은 그렇게 슬프다. 라면이 끓어오르면 비로소 외로움과 마주하게 된다. 스프를 넣고 팔팔 끓일수록 자극은 극에 달한다. 라면은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어서 젓가락으로 자꾸 휘젓게 된다.

https://youtu.be/vf6TWmxJZxY


몸부림을 바라는 라면은 외로워서 슬픈 음식이다. 라면의 많아진 종류만큼 슬픔도 전부 제각각이다. 오늘도 우리는 라면을 마주하며 슬픔을 젓가락질한다. 영화 속에서 라면이 그렇게도 슬프게 나온다. 표면적으로 슬프게 라면이 보이는 건 선생 김봉두에서다. 선생 김봉두에서 불쌍한 녀석 소석은 라면이 그렇게 좋다.

김봉두가 김치 없는 라면이 맛없어서 먹지 않을 때 소석은 그 맛없다는 라면을 맛있게 허겁지겁 먹는다. 이 장면은 잘 보면 라면을 먹는 것처럼 보이지 실제로 먹지는 않는다. 황비홍 1편을 너무나 재미있게 봤지만 지금 보면 이연걸의 대역의 티가 너무나 심하게 나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소석은 비가 쏟아지는 날에 김봉두에게 바칠 삼을 캐다가 들어와서 부뚜막에서 쭈그리고 앉아 라면을 끓여 먹는다. 라면은 소석의 삶을 파고든 곰팡이와 같다. 한 번 꽃을 피우면 걷잡을 수 없다. 라면은 슬픈 음식이다. https://youtu.be/yKDQz_v1VDQ


천하의 나쁜 노무 새끼 필제는 화를 내도 웃기고, 짜증을 내면 더 웃기고, 웃기면 대책 없이 웃겼다. 세상 무서울 것 없고 껄렁해 보이는 그 역시 그럴수록 더 슬프다. 그런 필제가 좋아하는 건 왕뚜껑 라면. 필제가 기가 찬 동네에 왔지만 기똥찬 동네라는 것을 알게 되고 거기서 어떻게 해야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지 알게 된다.


그 중심에 슬픈 라면이 있었다. 라면은 필제의 슬픔을 같이 했다. 하지만 필제에게 라면이 없었다면 해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절망의 끝에서 날개를 달고 날아가면 희망이 보인다는 것을 이 영화가 보여줬는데, 실제의 임창정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일까. https://youtu.be/1FuzcwV3AN4


한 청년이 라면을 끓여 밥상 위에 올려놓다 밥상 다리가 힘이 없어 기울면서 라면이 전부 방바닥에 쏟아졌다.

그저 멍하게 바라봐야만 했다.

그저 멍하게.


5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아침밥은 고사하고 씻고 옷을 입고 마을버스를 타고 대로변까지 나가서 다시 416 버스를 타야 한다. 늘 그 버스를 그 시각에 타지만 언제나 사람들로 터져 나간다. 양보라든가 친정을 찾다가는 버스를 타지 못한다. 버스를 놓치면 그다음을 상상하기도 두렵다. 버스 문에 매달리는 한이 있어도 어떻게든 올라타야 지하철을 탈 수 있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버스 속은 사람들이 뿜어내는 숨 냄새와 비 비린내로 먹은 것도 없는데 구토가 인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지옥철에 오르는 순간 전혀 다른 세계가 되어 버린다. 보이는 건 사람들의 등과 길고 짧은 머리카락이 달린 머리통뿐이다. 고개를 꺾어 천장을 바라보며 오늘도 무사히 회사에 도착하기를 빈다. 이렇게 난리를 피워야 회사에 제대로 출근할 수 있다. 소변이 마려워도 참아야 하고 앞사람의 머리에서 냄새가 나도 참아야 한다.


이렇게 모든 걸 참아가며 서울에서 생활한 지도 벌써 7년째다.

하지만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나에게 편지를 쓰며, 힘없이 서 있던 나를 안아주며 나의 길을 두려움 없이 상경했지만 현실은 나의 발끝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기만 한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것이 미래인 현재에 오직 희망 하나만 믿고 달려왔다.

하지만 희망이라는 것이 세상에서 배신을 잘한다는 것을 알아버린 순간 이 세계에서 홀로 되어 버렸다.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가기만 하는데 나만 같은 곳에 머물러 있다.

레이먼드 카버의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서 아들을 잃어버린 하워드와 앤이 된 느낌이다.


마음의 심한 공백이 생기면 마왕의 노래를 들었다.

고흐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에 더 이상 도움 될 것이 없다고 마왕이 말했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구좌의 잔고 액수가 모든 가치 척도인가

돈, 큰 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휘

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라며 늘 나의 등을 토닥여 주었는데.

마왕도 가 버리고 남은 것이 없다.


이젠 지친다.

라면이 쏟아졌다.

밥상 위에서 흐르는 라면 국물이 바닥으로 퍼지는 꼴이

마치 머리가 터져 뇌하수체가 흐르는 모습처럼 보인다.


오늘의 선곡은 신해철의 나에게 쓰는 편지

https://youtu.be/HRlwPwqC-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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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오장원 2023-08-01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라면 참 좋아하는데, 파김치 사서 끓여먹어야겠습니다.

교관 2023-08-02 11:21   좋아요 0 | URL
파김치 조합 정말 맛있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