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방학 때 실컷 놀다가 집으로 들어가야 하는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내일을 다짐하고 콧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채 뿔뿔이 흩어졌다. 아버지도 퇴근하고 오시고 저녁을 먹기 전에 씻어야 엄마한테 혼나지 않는다. 여름 저녁에는 저녁만의 냄새가 있었다. 타오르던 해가 꺼지는 냄새, 집집마다 저녁을 만드는 냄새, 노을의 냄새, 논다고 흘린 땀 냄새. 그런 냄새들이 섞인 여름 저녁의 냄새가 있었다.
에어컨도 없었는데 어떻게 여름 저녁을 보냈을까. 집으로 들어가면 여름인데도 보글보글 끓은 된장찌개의 냄새를 맡으며 씻고 아버지가 오시면 계란 프라이를 잘라 된장찌개와 함께 맛있게 밥을 먹었다. 고작 선풍기 한 대로 어떻게 지냈을까.
요즘에도 에어컨을 켜지 않고 잠을 자는데 어제는 더워서 푹 잠들지 못했다. 어릴 때 여름방학 때에는 토마토를 섬등섬등 썰어서 설탕을 넣고 얼음을 가득 넣어서 그렇게 자주 먹었다. 요즘도 매일 토마토를 먹고 있지만 방울토마토라서 그때의 그 느낌은 없다. 방학도 길어서 일주일 씩 외가가 있는 시골에서 보내기도 했다. 우리 집이 바닷가 근처라서 사촌동생들이 우리 집으로 와서 여름을 보내기도 했다.
복작복작 무척 더웠을 텐데 사진들을 보면 그렇게 더워 보이지도 않는다. 참 이상한 일이다. 그때의 여름이라고 해서 덥지 않았을 리도 없다. 유튜브로 옛날 영상을 보면 여름은 똑같이 더워서 사람들이 더위에 허덕였다.
조깅을 저녁에 하다 보면 바람이 시원해졌다는 게 느껴졌다. 아직 이런 폭염이 일주일 정도 계속되겠지만 분명 8월에 접어들고 저녁에 조깅을 하다 보면 해가 짧아졌고 바람이 조금 시원해졌다. 무턱대고 숨이 막히는 그런 바람은 아니다. 조깅을 매일 나오다 보면 매일 마주치는 러너들이 있다. 항상 비슷한 시간에 달리고 있으면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러너와 인사를 주고받는다. 파이팅!이나 수고하십니다! 같은 인사를 주고받으며 스쳐 지나간다.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에 사는지, 어디에서 오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궁금하지도 않다. 그저 저 사람도 매일 이 시간에 나와서 달리고 있구나,라는 마음으로 서로 지나칠 때 인사를 주고받는다. 겨울의 저녁과는 달리 여름의 저녁에는 하늘과 풍경이 경이롭게 보인다. 그런 모습이 매일 달라진다.
저기는 바다가 있는 곳으로 동해, 동쪽이라 노을은 아닐 텐데 워낙 더워서 일까. 아직 저 붉은빛이 남아서 아름다운 하늘을 만들어내고 있다.
며칠 전에는 서핑보드를 타는 사람을 봤다. 전문 서퍼같았다. 너무나 매끄럽게 저어어어기에서 여기를 지나 저어어어어어기로 그저 슈우우욱 가는 것이다. 물살은 반대인데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어떻게 물살과 역행하며 잘도 가는 것일까. 한참을 바라보았다. 멋있기도 했지만 참 시원해 보였다.
이 부분만 이렇게 금계국, 만수국들이 가득하다. 꽃들은 왜 예쁠까. 꽃은 봄에 대부분 피는데 그래서 조금 예쁘지 않은 꽃들은 봄에 외면받는다. 너무 예쁜 꽃들이 봄에 다 피어버리니까. 그렇기에 어쩌면 제일 예쁠 시기에 외면받아서 슬플지도 모르는 꽃들이 있다. 하지만 봄날만 피하면 이렇게 예쁨을 활짝 드러낼 수 있다. 하찮고 흔한 꽃인데, 그래서 더 예쁜 것 같다. 꽃들을 보고 있으면 인간과 다를 바 없다는 걸 느끼기도 한다. 설증매가 아름다운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마찬가지로 동쪽하늘인데 붉게 물들어 있다. 분명 노을과는 다른 붉은 색감이다. 연분홍 같은 색감. 딱 이 시기에만, 그것도 이 시간에만 볼 수 있는 황홀한 색감이다. 며칠만 볼 수 있기 때문에 볼 수 있을 때 실컷 보기 위해서는 이 시간에 이 자리로 조깅을 해서 나와야 한다.
다음 날에도 비슷한 하늘의 색감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달이 수줍게 얼굴을 내밀고 있다. 늘 생각한다. 이럴 때 좀 좋은 폰카메라였다면. 그러면 달의 모습을 좀 더 달답게 담을 수 있었을 텐데.
사진에는 저래 보여도 아주 근거리에 떠 있는 장면이다. 저어기 아파트를 지나면 공항이기 때문에 비행기들이 낮게 날아다닌다. 비행기 소리는 때로는 공포다. 특히 전투기 소리는 무섭게 들린다. 그런 소리가 도심지에서 분당 간격으로 들리면 사람들은 두려움에 벌벌 떨 것이다. 소리로 사람을 무섭게 하는 것 중에서는 단연 최고가 아닐까.
역시 동쪽 하늘에 연분홍빛이 발하고 있는 저녁이다. 세상의 시끄러운 사건사고와 동떨어진 평온하고 평화로운 모습이다. 그저 고즈넉하다. 고즈넉이라는 말은 고요하고 아늑하다는 말이다. 잠잠하고 아늑한 곳이 세상에는 분명 존재하고 우리는 그런 곳을 찾아서 여행을 하기도 한다.
조깅을 하는데 앞에서 노부부가 손을 잡고 함께 산책을 하는데 너무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노년에 같이 손을 잡고 산책을 할 수 있는 부부가 몇이나 될까. 모르는 이들이 서로 만나 가족이 되면 쉬울 리가 없다. 내일도 행복하세요.
이날부터(한 이 삼일 된 것 같다) 비슷한 시간이지만 온통 그늘이다. 해가 짧아졌다는 말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 시간에 아직 해가 비치는 곳이 있었는데 이제 온통 그늘이다. 서서히 여름이 빠져나가고 있다. 매년 그걸 느낀다. 자연은 절대 그럴 리 없는 일은 하지 않는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물러가고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다. 그 주기, 그 반복이 무섭도록 정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