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라딘 서재에 글을 처음 쓴 게 6월 28일이니 대략 보름 가량이 지났다. 그전에는 로그인을 안하고 다른 사람들 서재를 구경하기만 했는데, 그러다보니 어느날 내 서재를 갖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 글 쓰는 걸 보니까 나도 내 얘기를 쓰고싶어져서 그런 건데, 막상 쓰려니까 별로 쓸말도 없다.

서재에 글을 쓴 첫날 어느 분이 오셔서 정중하게 댓글을 달았는데, 그분은 다시 안오신다.그러려니 했다. 그 후 열흘간 내 서재는 아무도 찾지 않는 무인도로 남았다. 오프라인에서도 다른 사람과 소통을 잘 안하는데 온라인이라고 다르겠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글을 열심히 썼더니 요즘엔 하루 5명 이상-오늘은 7명-이 내 서재에 와주신다. 내 허접한 서재에도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사흘 전에는 '가고'라는 분이 방명록에 글을 남겨 주셨다. 그리고 오늘은 물만두님이 오셨다. 반갑긴 하지만 더 많은 사람이 올까봐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기우겠지만). 내겐 더이상 보여줄 게 남아있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다. 다른 분들은 쉽게쉽게 글을 잘 쓰는 것 같은데, 난 모든 글이 비탄조고, 소장 욕이고, 아니면 남들이 관심없는 스포츠 얘기다. 아무래도 내 서재 생활은 길지 못할 것 같다.

한가지 신기한 것은 오늘 우연히-사실은 매일 본다. 유력한 분들 이름을 익히려고-서재 순위를 봤더니 내가 주간 순위에서 99위인 거다. 난 그 쟁쟁한 리스트에 내 닉네임이 올라갈 것은 꿈도 꾼 적이 없다. 다른 분들 말씀으로는 거기 올라가는 게 서재폐인의 징표라는데, 그렇다면 난 벌써 서재 폐인일까. 즐겨찾기 해주시는 분도 5명으로 늘었다. 처음에 한명도 즐겨찾기가 없었을 때는 사실 좀 민망했는데, 다섯이 되고나니 이제 좀 겁이 난다. 갑자기 드는 생각. 이런 장치들이 나를 서서히 서재 폐인의 길로 인도하는 건 아닐까.

서재를 하시는 분들은 서로간에 친분이 좋아 보인다. 일년쯤 지나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아닐 것 같다. 내 성격이 워낙 까탈스럽고, 재미도 없으니. 이건 분명히 하자. 내가 여러 사람과 사귀기 위해 서재 활동을 하는 건 아니다. 하루에 몇명이 오는지, 내 글에 댓글이 달리는지, 순위가 얼마인지 확인하는 건 좋지만 거기 얽매이진 말자. 신경을 쓴다고 더 나아지는 것도 아니며, 어차피 난 더 떨어질 게 없는 밑바닥 서재인이다. 원래 취지대로 내 얘기를 하자. 이런, 벌써 1시가 다 되어 간다. 자야겠다. 내일이면 또 지겨운 소장 얼굴을 보러 출근이란 걸 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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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휴가비를 안준다고 한 게 미안했는지 소장은 오늘 회식을 하자고 했다. 그럴 줄 알았으면 어제 괜히 술마셨다. 술도 별로 안좋아하는데 이틀 연짱으로 술을 마셔야 하다니. 다른 사람은 술에 취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데, 난 왜 이렇게 머리가 아플까. 소장과 나처럼 술과 나도 과히 궁합이 맞는 짝은 아닌 듯 싶다.

보통 사람 같으면 이런 질문을 할지 모른다.
"그 회식비 가지고 차라리 휴가비 주지 그래?"
하지만 그게 아니다. 우리 쫀쫀한 소장은 여덟명이 참가한 오늘 회식에서 겨우 6만원을 썼다. 회식 하면 실컷 먹는 광경을 생각하지만, 우리 회식은 다르다. 일인분에 5천원짜리 삼겹살집을 용케 찾아내서 매번 거기만 간다. 그거라도 실컷 먹이냐면 그것도 아니다. 처음에 4인분 시키고 그다음에 2인분 추가한 다음에 공기밥(냉면 시키면 째려봐서 다 공기밥 먹는다)을 먹잔다. 찌개 두개 시키고 소주 두병 해가지고 6만원이 못나온다 (외상할 때도 있다). 그거 시키면서 어찌나 당당한지, 반찬이 떨어졌다면서 오뎅 반찬을 몇번을 더 달라고 한다. 주인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눈치건만, 경기도 어려운데 6만원이 아쉬워서 쫓아내지는 못하는 듯하다. 어찌나 민망한지 내가 살테니까 실컷 먹자고 해버리고 싶다.

그렇게 회식을 하고나면 기분만 더 나빠지고, 허기가 밀려온다. 그럼 왜 회식에 따라가느냐. 안가면 무슨 욕을 할까 불안하기 때문이다. 오늘 빠진 S양에 대해서 몸매가 영 아니라는 둥 배가 나왔다는 둥-사실이긴 하다-갖은 헛소리를 다 해댄다. 이슬이 영롱하게 맺혔다든지 얼마나 아름다운 얘기가 많은데 겨우 그딴 소리나 하는 걸까. 지난번에 내가 빠졌을 때는 내가 정력이 약해서 갈라섰다는 얘기를 하면서 웃었다니, 기도 안찬다. 1차가 끝난 뒤 소장은 어디론가 가고-보나마나 세컨드에게 갔겠지. 열나게 전화하는 눈치더니-우리끼리 2차를 갔다. 서비스 안주에 생맥주를 마셨다. P가 내 옆에 앉아서 또 노무현 욕을 한다.
"노무현 개구리처럼 생기지 않았냐? 한 나라의 대통령이 말이야..."
같은 욕을 이틀 연속 들으니까 지겹다. 욕하면서 닮는다고, P도 참 갑갑하다. 노무현 빼면 할 얘기가 없나? 난 노무현이 아무리 죽일놈이라고 해도 우리 소장만큼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지하철로 열정거를 가서 내렸다. 소주 한잔에 맥주 500cc를 마셨을 뿐인데 속이 영 거북하다. 간만에 하늘을 바라봤다. 내 삶은 왜 이렇게 찌글찌글하기만 한건지, 한숨이 나온다. 가는 길에 503호 아가씨나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5층에 사는 뚱뚱한 아저씨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다. 한마디도 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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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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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다보니 ‘허삼관 매혈기’가 있다. 작가 이름은 처음 들어보지만 이 책의 명성은 전부터 듣고 있었다. 아직 난 헌혈을 한번도 안해봤다. 내가 헌혈을 할라치면 어머니는 이런다.

“그런 거 절대 하지 마. 큰일 나”

평소에는 어머니 말씀을 잘 안듣지만, 그 말은 잘 따라왔다. 그래도 헌혈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게 미안하긴 했다. 특히 TV 같은 데서 피가 모자란다는 얘기를 들을 때면 그게 내 책임인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이런저런 생각에 이 책을 집어들고 집에 왔다.


제목에도 나와 있지만 이 책은 피를 말아 먹고사는 허삼관의 일대기를 그린 것이다. 가난에 찌든 사람의 안타까운 삶을 애절하게 그린 소설인 줄 알았는데, 내 생각과 달리 피를 파는 과정이 지극히 유쾌하게 그려져 있다. 내가 유쾌하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허삼관이 생존의 귀로에서 피를 파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굳이 피를 팔지 않아도 굶어죽지 않을 수 있다는 전제가 나로 하여금 소설을 한층 여유 있는 마음으로 읽을 수 있게 한 것이다. 허삼관은 처음 피를 팔아 얻은 돈으로 마음에 둔 여인에게 거하게 저녁을 산 뒤 이렇게 말한다.

“너, 내가 밥사줬으니까 나랑 결혼해”

여인은 말도 안된다면서 원래 사귀고 있던 남자에게 밥값을 갚아달라고 하지만 그 남자는 냉정하다. “싫어. 니가 먹은 걸 왜 내가 내?”

결국 허삼관은 그 여인과 결혼한다. 여자와 결혼하는 게 이렇게 쉽다면 좋으련만, 내 처지에서는 여자와 같이 밥을 먹는 것조차 힘들다. 우리 사무실에 있는 S, 솔직히 말하면 미와는 거리가 먼 아가씨지만 내가 저번에 저녁이나 먹자고 하니까 단호하게 거절한다. “나 바빠요!” 어찌나 찬바람이 쌩쌩 불던지 그 다음부터는 말을 붙이기도 겁이 났다. 자기나 나나 애인 없는 처지긴 마찬가지인데 외로운 사람끼리 밥을 같이 먹는 것에 그렇게 거부감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그녀도 허삼관을 읽어서 밥을 같이 먹는다는 게 결혼에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난 그녀에게 그냥 저녁만 먹자고 말했을 뿐, 일말의 사심도 없었는데. 그냥 남자랑 마시면 재미도 없고, 술도 마셔야 하는 게 싫어서 그랬던 것인데. 미와 거리가 먼 S조차 날 싫어한다면 세상에 날 좋아할 여자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중국으로 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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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키크더만 2005-07-14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김에 쓴 리뷰다. 확 지워버리고 싶었는데 다시 써도 그리 잘 쓸 것 같지 않아서 그냥 놔둔다.

icaru 2005-07-31 0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어서 추천버튼 누릅니다.
책을 사지 않았다면...땡스투 눌러 책 샀을 건데... 허 거참...아쉽습니다~

니콜키크더만 2005-08-01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이카루님. 추천까지 눌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땡스투까지 해주시면 제가 너무 죄송하죠. 재밌다고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싸이런스 2005-09-06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밥 먹자고 하는 남자를 만나면 절때 거절하지 말아야겠다
 

 

회사에서 기분 나쁜 일이 있었다. 사실 회사에서 기분 좋은 일이 있었던 적은 별로 없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직원이 열명인 건축사무소다. 일주일에 사흘 이상 야근을 하건만, 월급은 무지하게 짜다. 나 하나 먹고 살기에는 모자라지 않지만, 처자식을 먹여살려야 하는 L이나 K를 보면 가슴이 짠해진다. 그 돈을 받고 어떻게 살아가는 걸까?


기분이 나빴던 것은 회사 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이번달 여름 휴가비를 지급하지 않겠다는 소장의 말 때문이다. 우리 소장,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말들을 한다. 오늘 그 말도 매우 미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했다. 최소한 뻔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뭐든지 결과를 놓고 판단해야 한다. 미안한 표정으로 사람을 죽이는 연쇄살인마는 그렇다면 나쁜 사람이 아닌 건가?


떠도는 소문이 맞다면 소장은 첩을 두고 있다. 첩에게 아파트를 사주고 각종 패물을 대느라 회사 이익을 빼돌리는 거다. 건축업계가 원래 착취가 일상화된 곳이라 해도, 1인당 2억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회사에서 그 정도밖에 월급을 안준다는 건 너무한 것 같다. 내가 이런 불만을 표출하자 P가 이런다.

“그래도 다행이지 뭐. 첩이 둘이었으면 어쩔 뻔했어?”


그대로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 퇴근길에 P와 소주를 한잔 했다. P는 나보다 나이가 두 살이나 많은데 아직 미혼이다. 외모도 그럭저럭 생긴 P가 왜 아직 결혼을 못한 건지는 모르지만, 그 박봉으로 가족을 부양하는 게 어렵다는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노무현의 연정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P의 질문에 난 모른다고 했다. P는 노무현을 싫어하고, 나에게 노무현 욕하는 데 동참해 주기를 요구하지만, 사실 난 정치에 관심이 없다. 난 P의 말을 건성으로 들으면서 다른 테이블에 앉은 여자들을 훔쳐보기 바빴다. 요즘은 청치마가 유행이다. 아슬아슬하게 짧은 청치마가. 저렇게 아름다운 여인들은 나 같은 건 좋아하지 않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까 새삼 그녀들과 같이 있는 남자애가 부럽고 얄미웠다. 소주 반병씩을 나누어 먹고 일어서려는데 P가 한병을 더 시킨다. 두잔을 더 마셨더니 취기가 올라온다. 503호 앞을 지나면서 혹시 그녀가 왔는지 창문을 흘깃 내다봤다. 불은 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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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읽기의 혁명 - 개정판
손석춘 지음 / 개마고원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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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춘님은 기자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분이다. 신문지면을 통해 올곧은 목소리를 내는 것 이외에도 책과 강연을 통해서 언론개혁의 필요성과 진보의 가치를 역설하고 계시다. 우리 대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언론인으로 손석춘님을 뽑은 설문조사를 보니 이 땅에는 아직도 희망이 있다 (손석춘 52.2%, 엄기영 16%, 정연주 6%, 오연호 6%... 조갑제는 5.4%, 도대체 누가?)는 생각이 든다.


손석춘님의 저작들 중 명저로 뽑히는 <신문읽기의 혁명> 개정판을 읽었다. 변화된 환경에 맞게 예로 든 기사가 최근 걸로 대폭 바뀌었지만, 책에 담긴 문제의식은 여전했다. 책을 읽다보니 7년 전 초판을 읽을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신문은 다 똑같다면서 집에서 보던 조선일보만 읽어오던 난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깊은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독자들은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신문에 의한 세뇌 가능성 운운에 불쾌감을 표시한다. 그들은 말한다. “우리가 바보냐?” 하지만 세뇌를 당하는 건 그가 바보라서가 아니다. 매일같이 바위를 때리는 물줄기가 바위를 뚫는 것처럼, 신문에 의해 매일매일 주입되는 사상은 독자의 머리를 지배한다. 신문 사설에서 본 것을 자기 의견인 것처럼 포장해 술자리에서 떠드는 사람이 많은 것은 그들이 신문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조선일보만 보는 친척 한분은 아직도 노무현을 빨갱이라고 믿고 있으며, 반북의식이 그 누구보다 투철하다. 친일파 청산을 “과거를 들쑤셔서 뭐하냐”고 반대하는 걸 보면 영락없이 조선일보다. 그러니 “20년간 조선일보만 봐왔다”는 건 결코 자랑이 아니며, 오히려 “신문한테 속아 살았다”는 고백일 수 있다.


지난 1월 여야합의로 통과된 신문법에 대해 조선일보는 헌법소원 신청을 청구하면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했다. “신문의 자유는 발행인에게 있으며, 그 핵심은 경향 보호에 있다” 발행인의 언론 자유는 고용된 기자들의 언론자유보다 우위에 있다는 논리다. 조선일보 기자들이 “신문의 자유가 발행인의 자유라면 기자는 월급을 받고 그 대가로 사주의 의견을 대신 전달하는 메신저란 말인가”라고 반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해 보이지만, 그들이 지금까지는 메신저가 아니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제대로 된 기자가 열명만 있었어도, 불편부당을 사시로 내건 조선일보에서 ‘정몽준, 노무현 버렸다’(2002년 대선날)같은 편파적인 사설은 나오기 힘들지 않았을까. 신문이 언제나 사실만 전달한다고 믿는 분들은 이 책을 읽으시라. 같은 사실이 보는 시각에 의해 어떻게 둔갑하는지를 원없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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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런스 2005-09-06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나 자기가 보고 싶은 면만 보면서 말한다. 하물며.. 거대 언론이야 오죽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