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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평점 :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다보니 ‘허삼관 매혈기’가 있다. 작가 이름은 처음 들어보지만 이 책의 명성은 전부터 듣고 있었다. 아직 난 헌혈을 한번도 안해봤다. 내가 헌혈을 할라치면 어머니는 이런다.
“그런 거 절대 하지 마. 큰일 나”
평소에는 어머니 말씀을 잘 안듣지만, 그 말은 잘 따라왔다. 그래도 헌혈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게 미안하긴 했다. 특히 TV 같은 데서 피가 모자란다는 얘기를 들을 때면 그게 내 책임인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이런저런 생각에 이 책을 집어들고 집에 왔다.
제목에도 나와 있지만 이 책은 피를 말아 먹고사는 허삼관의 일대기를 그린 것이다. 가난에 찌든 사람의 안타까운 삶을 애절하게 그린 소설인 줄 알았는데, 내 생각과 달리 피를 파는 과정이 지극히 유쾌하게 그려져 있다. 내가 유쾌하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허삼관이 생존의 귀로에서 피를 파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굳이 피를 팔지 않아도 굶어죽지 않을 수 있다는 전제가 나로 하여금 소설을 한층 여유 있는 마음으로 읽을 수 있게 한 것이다. 허삼관은 처음 피를 팔아 얻은 돈으로 마음에 둔 여인에게 거하게 저녁을 산 뒤 이렇게 말한다.
“너, 내가 밥사줬으니까 나랑 결혼해”
여인은 말도 안된다면서 원래 사귀고 있던 남자에게 밥값을 갚아달라고 하지만 그 남자는 냉정하다. “싫어. 니가 먹은 걸 왜 내가 내?”
결국 허삼관은 그 여인과 결혼한다. 여자와 결혼하는 게 이렇게 쉽다면 좋으련만, 내 처지에서는 여자와 같이 밥을 먹는 것조차 힘들다. 우리 사무실에 있는 S, 솔직히 말하면 미와는 거리가 먼 아가씨지만 내가 저번에 저녁이나 먹자고 하니까 단호하게 거절한다. “나 바빠요!” 어찌나 찬바람이 쌩쌩 불던지 그 다음부터는 말을 붙이기도 겁이 났다. 자기나 나나 애인 없는 처지긴 마찬가지인데 외로운 사람끼리 밥을 같이 먹는 것에 그렇게 거부감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그녀도 허삼관을 읽어서 밥을 같이 먹는다는 게 결혼에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난 그녀에게 그냥 저녁만 먹자고 말했을 뿐, 일말의 사심도 없었는데. 그냥 남자랑 마시면 재미도 없고, 술도 마셔야 하는 게 싫어서 그랬던 것인데. 미와 거리가 먼 S조차 날 싫어한다면 세상에 날 좋아할 여자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중국으로 가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