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휴가비를 안준다고 한 게 미안했는지 소장은 오늘 회식을 하자고 했다. 그럴 줄 알았으면 어제 괜히 술마셨다. 술도 별로 안좋아하는데 이틀 연짱으로 술을 마셔야 하다니. 다른 사람은 술에 취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데, 난 왜 이렇게 머리가 아플까. 소장과 나처럼 술과 나도 과히 궁합이 맞는 짝은 아닌 듯 싶다.
보통 사람 같으면 이런 질문을 할지 모른다.
"그 회식비 가지고 차라리 휴가비 주지 그래?"
하지만 그게 아니다. 우리 쫀쫀한 소장은 여덟명이 참가한 오늘 회식에서 겨우 6만원을 썼다. 회식 하면 실컷 먹는 광경을 생각하지만, 우리 회식은 다르다. 일인분에 5천원짜리 삼겹살집을 용케 찾아내서 매번 거기만 간다. 그거라도 실컷 먹이냐면 그것도 아니다. 처음에 4인분 시키고 그다음에 2인분 추가한 다음에 공기밥(냉면 시키면 째려봐서 다 공기밥 먹는다)을 먹잔다. 찌개 두개 시키고 소주 두병 해가지고 6만원이 못나온다 (외상할 때도 있다). 그거 시키면서 어찌나 당당한지, 반찬이 떨어졌다면서 오뎅 반찬을 몇번을 더 달라고 한다. 주인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눈치건만, 경기도 어려운데 6만원이 아쉬워서 쫓아내지는 못하는 듯하다. 어찌나 민망한지 내가 살테니까 실컷 먹자고 해버리고 싶다.
그렇게 회식을 하고나면 기분만 더 나빠지고, 허기가 밀려온다. 그럼 왜 회식에 따라가느냐. 안가면 무슨 욕을 할까 불안하기 때문이다. 오늘 빠진 S양에 대해서 몸매가 영 아니라는 둥 배가 나왔다는 둥-사실이긴 하다-갖은 헛소리를 다 해댄다. 이슬이 영롱하게 맺혔다든지 얼마나 아름다운 얘기가 많은데 겨우 그딴 소리나 하는 걸까. 지난번에 내가 빠졌을 때는 내가 정력이 약해서 갈라섰다는 얘기를 하면서 웃었다니, 기도 안찬다. 1차가 끝난 뒤 소장은 어디론가 가고-보나마나 세컨드에게 갔겠지. 열나게 전화하는 눈치더니-우리끼리 2차를 갔다. 서비스 안주에 생맥주를 마셨다. P가 내 옆에 앉아서 또 노무현 욕을 한다.
"노무현 개구리처럼 생기지 않았냐? 한 나라의 대통령이 말이야..."
같은 욕을 이틀 연속 들으니까 지겹다. 욕하면서 닮는다고, P도 참 갑갑하다. 노무현 빼면 할 얘기가 없나? 난 노무현이 아무리 죽일놈이라고 해도 우리 소장만큼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지하철로 열정거를 가서 내렸다. 소주 한잔에 맥주 500cc를 마셨을 뿐인데 속이 영 거북하다. 간만에 하늘을 바라봤다. 내 삶은 왜 이렇게 찌글찌글하기만 한건지, 한숨이 나온다. 가는 길에 503호 아가씨나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5층에 사는 뚱뚱한 아저씨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다. 한마디도 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