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재발견 - 잘될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진짜 잘되는 이유
조셉 T. 핼리넌 지음, 이은경 옮김 / 흐름출판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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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 모두는 인생이라는 공이 굴러가는 방향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어쩌면 우리 중 일부는 실제로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보통 어느 정도 자기기만이 필요하다. 그러나 괜찮다. 우리가 믿는 대상은 상상에만 존재할지 몰라도 그것이 산출하는 결과는 실제일 수 있다. 우리가 실제로 세상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우리가 그렇다고 '믿는' 것만큼 중요하지는 않다. 그것이 스스로 속이는 행동에서 비롯되는 숨겨진 힘이다. - '머리말' 중에서

 

 

긍정은 성공으로 이끌어준다

 

책의 저자 조셉 T. 핼리넌하버드대학교의 니먼 펠로우 과정을 마쳤고 <월스트리트저널> 기자로 일했으며 <뉴욕타임스>, <시카고 트리뷴>, <선데이타임스> 등 유명 언론에 기사를 썼다. 〈인디애나폴리스 스타〉 기자 시절, 수전 헤든과 함께 인디애나 주의 의료 과실을 보도하여 1991년 퓰리처상 탐사보도 부문을 수상했다.

 

2001년에 출간한 첫 책 <Going Up the River>는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올해의 주목할 만한 책'으로 꼽혔고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올해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2009년 출간된 <우리는 왜 실수를 하는가>는 미국에서 10만 부 이상 판

 

 

 

 

 

 

 

 

 

 

 

 

 

 

 

 

 

 

 

 

우리 경험 중 얼마나 많은 부분이 주관적인지 생각하면 정말 놀랍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우리가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바, 즉 자신이 처한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그 상황을 더 좋거나 더 나쁘게 바꿀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봄철에 병실에 입원했는데 창밖으로 나무에 꽃이 핀 모습이 보이는 경우, 건너편 건물의 벽이 보이는 병실에 입원한 경우보다 통증을 덜 느끼고 합병증을 덜 겪으며 수술에서 더 빨리 회복한다. 의사에게 곧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와 격려의 말을 들었다면, 그런 말을 듣지 못한 환자들에 비해 우리는 더 빨리 낫고 호전될 가능성이 높다. 복부 수술을 받은 뒤 회복중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유명한 연구에서 담당 의사에게 격려를 받은 환자들은 그렇지 않은 환자들에 비해 이틀 이상 빨리 퇴원했다.

 

튜린의과대학교파브리치 베네데티 박사가 이끄는 팀이 기발한 실험을 했다. 진통제 네 종류를 골라서 이를 두 환자 집단에 투여했다. 첫 번째 집단은 입원했을 때 주로 사용하는 방식, 즉 침대 옆에 매단 정맥 주사용 수액을 통해 눈에 잘 보이는 투여법을 사용했다. 반면 두 번째 집단은 진통제가 투여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이론상 두 가지 주사 방식은 동일한 효과가 나타나야 한다. 연구 결과, 그렇지 않았다. 주사의 투여가 눈에 보이지 않았던 환자의 경우 그 효과가 훨씬 떨어졌다. 약물이 투여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던 환자들에겐 진통제의 효과가 더 컸다. 진통제 네 종류 모두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

 

 

기대의 위력

 

영화 <이창>의 한 장면

 

히치콕 감독의 서스펜스 영화 <이창裏窓>(1954년)의 숨은 일화이다. 여주인공은 그레이스 켈리였는데, 그녀의 회상에 따르면 촬영장에서 의상 문제 때문에 사소한 트러블이 생겼다는 것이다. 의상 디자이너가 히치콕 감독의 명을 받고 드레스의 가슴 부위에 패드를 넣으려고 하자 켈리는 이를 거절하고 재빨리 옷의 기장을 줄여 최대한 꼿꼿하게 서 있었다고 한다. 촬영장에 들어서는 그녀를 보고 감독은 디자이너에게 이렇게 말했다.

 

"봐, 훨씬 낫잖아?"

 

기대란 이런 것이다. 감독은 그곳에 없는 패드를 본다. 지난 반세기 동안의 수많은 연구에서 기대는 정신과 신체 모두에 영향을 끼치는 강력한 힘이란 사실이 밝혀졌다. 우리는 우리가 볼 것이라고 기대하는 바를 볼 뿐만 아니라 우리가 경험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바를 경험한다. 히치콕 감독의 사례가 이를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1980년대에 국립정신보건원은 다양한 장소에서 우울증 치료에 있어 항우울제와 심리요법의 유효성을 평가하는 대규모 연구를 후원했다.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각 환자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치료 결과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심리학자 어빙 커시가 언급했듯이 이 질문에 대한 환자들의 대답은 치료 성과를 예측했다. 이 치료에서 호전될 것 같다고 기대한 환자들은 가장 많이 개선되었고 호전될 것 같다고 기대하지 않은 환자들은 가장 적은 차도를 보였다.

 

 

정신은 강력한 존재이다

 

찰리 벨잔은 28세의 프로 골퍼다. 그는 큰 대회에서의 우승 기록이 전무하고 세계 랭킹도 165위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는 2012년 11월 한 스포츠 전문 기자가 격찬한 그런 경기를 펼쳤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플로리다 주 레이크부에나비스타에서 열린 이 경기에서 하마트면 죽을 뻔했다는 것이다.

 

그는 PGA 출전자격을 유지하려면 최하 125위 안에 드는 성적을 내야만 했다. 모두 4라운드로 펼쳐지는 이 대회에서 첫 라운드는 괜찮은 경기를 했다. 두 번째 라운드 직전에 팔이 마비되는 것을 느끼는 동시에 빠른 심장박과 함께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결국 그의 무릎이 꺾이면서 넘어지고 말았다. 

 

급히 응급진이 투입되어 그에게 혈압이 좋지 않다고 말했지만, 그는 경기를 계속해 버디 6개와 이글 2개를 성공시켰다. 그의 캐디에 의하면 1971년부터 일해 왔지만 이런 성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라운드 후 그는 결국 쓰러졌다. 그럼에도 의사의 충고를 무시하고 3라운드 경기에 나섰다. 고통스런 네 시간을 견디며 근소한 차이로 앞 선 채 경기를 마쳤다.

 

대회 마지막 날, 컨디션이 무척 나쁜 것을 알고도 또 무리해서 그는 4라운드 게임에 들어섰다. 그리고 결국 그는 선수 경력 최초로 우승을 차지했다. 2위와의 격차도 크게 벌어졌던 것이다. 그는 우승 상금 84만 여 달러를 받음으로써 상금 순위도 63위로 뛰어 올랐고, 다음 해 투어 출전권도 부여받았다. 그는 트위터에서 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신은 강력한 존재다"

 

 

 

그렇다. 온갖 심리적 변수 중에서 통제감은 행복하고 건강하고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다. 통제감이 미치는 영향력은 결혼부터 스포츠, 학업 성취 등 다양한 인간 활동에 걸쳐 증명되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통제감은 우리 내부에 장착된 충격흡수장치처럼 작용하여 우리가 삶에서 받는 충격을 흡수한다. 통제감이 없다면 인생 여정은 한층 더 험난하다.

 


통제감이 사라지면 우리는 금방 엉망이 된다. 건강이 나빠지고 일이 잘 되지 않으며 심지어 인간관계마저도 악화된다. 현실 지각에 왜곡이 발생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잃는 경우도 많다. 갑자기 '재능'을 잃어버린 투수(또는 골퍼)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왜 통제력을 잃었는지 또는 통제력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지만 그것을 되찾아야 한다는 사실, 그것도 빨리 되찾아야 한다는 사실은 안다.

 

 

난관적인 태도를 가지려면 때때로 처한 현실을 스스로 속여야 한다

 

<머니볼>의 작가 마이클 루이스는 "제가 가장 잘했던 결정 중 상당수는 자기기만 상태에서 내린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1980년대에 월스트리트에서 여섯 자리 연봉을 받는 일자리를 그만두었다. 프리랜서 작가로 4년 동안 일하면서 그가 올린 수입은 총 3,000달러에 불과했다.

 

"작가로서 경력을 쌓으려고 한다면 약간의 망상적인 생각이 도움이 됩니다"

 

이 문장에서 핵심은 '약간의'라는 구절이다. 약간의 망상은 인내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요소인 '낙관주의'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건강과 행복에 반드시 필요한 듯하다.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태도는 자신과 미래 전망을 항상 정확하게 평가하는 관점이 아니라 낙관적인 관점을 지니는 것이다. 

 

현실주의는 분명히 수많은 장점이 있지만 한계도 있다. 사물을 정확히, 즉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항상 득이 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방해가 된다. 전망이 정말 암울할 때에는 특히 그렇다. 예를 들어 우울과 현실주의 사이에는 강한 연관성이 있다. 우울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주사위 굴리기부터 학교 성적, 빚 조절 능력에 이르는 다양한 결과를 예측하도록 했더니, 우울한 사람들은 우울하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더 정확한 평가를 내놓았다.

 

반면에 세상을 낙관적으로 보고 설명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뛰어난 경우가 많다. 특히 삶을 밝게 바라보는 그들의 관점이 부정확하거나 근거 없는 경우에도 그렇다. 이는 다양한 상황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더 확실한 입증 사례는 실제로 생계를 꾸려나가고자 노력하는 실재 인물인 '생명보험설계사'를 대상으로 한 연구였다.

 

 

자기기만은 인간의 타고난 기질이다

 

긍정주의 또는 낙관주의라고도 할 수 있는 자기기만은 우리 인간의 타고난 기질이다. 책의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이 바로 이를 지적하려고 함이었다. 결정적인 상황에서 자기기만은 우리가 인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무명 골퍼 찰리 벨잔의 첫 우승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처럼 높은 통제감을 지닌 사람들은 더 행복하고 더 건강하며 더 오래 산다.

 

약간의 자기기만은 도움이 되고 필수적이다. 분명히 우리 삶에 도움이 된다. 그럼에도 '헬조선'을 외치고, '흙수저 타령'만 하겠는가? 힘들다고 낙담만 하지 말고 견딜만 하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우리의 인생이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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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니 샌더스의 모든 것 - 99%의 희망을 위한 8시간 37분의 명연설과 철학.공약.정책
버니 샌더스 지음, 이영 옮김 / 북로그컴퍼니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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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은 세상이 굴러가는 방식에 염증을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힘들게 낸 세금이 불필요한 전쟁이나 대기업의 안녕을 위해 흥청망청 쓰이는 현실에 염증을 느끼고 있습니다. 사회복지 예산이나 사회보장 같은 중요한 프로그램들을 자꾸만 축소시키자는 목소리에 염증을 느끼고 있습니다. 끔찍한 무역협정을 등에 업은 기업들이 미국 노동자들의 공정한 임금인상 요구는 묵살한 채 자신들의 주머니만 채우는 현실에 염증을 느끼고 있습니다. 거액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막대한 돈을 쏟아부으며 정치를 어지럽히는 탐욕스런 기업들에 염증을 느끼고 있습니다. - '저자 서문' 중에서

 

 

미국 대통령을 노린다

 

가파른 지지율 상승과 함께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인물이 나타났다. 2015년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 투표에서 단독 선두를 유지하고 있는 인물임에도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그는 바로 차기 대선 민주당 경선 후보 버니 샌더스다. 과연 그는 누구일까?

 

"더 이상은 안 됩니다(Enough is enough). 우리에겐 정치 혁명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외치며 미국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한 그는 1941년 뉴욕 시 브루클린에서 가난한 페인트 판매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시카고 대학교 재학 시절부터 진보적 학생운동에 참여하고 1981년 버몬트 주 벌링턴 시장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된 이후 벌링턴 시장 4선, 미국 연방 하원의원 8선을 연임하고 현재 재선으로 미국 연방 상원의원직을 수행 중이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야합野合으로 2010년 12월 부자 감세 연장 법안이 상정되자 상원에서 8시간 35분 동안의 의사진행방해 연설을 펼쳐 일약 전국적인 진보 정치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2015년 4월 '상위 1%가 아닌 99%의 희망'을 위해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참여하고 있다.

 

'99%의 희망을 위한 8시간 37분의 명연설과 철학, 공약, 정책'이란 부제副題가 붙은 이 책은 그에 대한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줄 모든 정보가 총망라되어 있다. 그는 2010년 12월 10일 오마바 대통령과 공화당이 부자 감세 등을 포함한 감세법안을 '날치기'로 합의한 후 그대로 통과시키려 하자, 이를 막기 위해 상원 회의장에서 8시간 37분에 걸쳐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해)를 감행함으로써 유명해진 인물이다.

 

 

 

 

그는 연설을 통해 부자 감세를 해서는 안 되는 이유와 법인세를 비롯한 각종 영업세 혜택의 불합리함, 대기업의 탈세 현황, 긴급구제를 받은 월가의 탐욕, 대형은행 CEO들의 부도덕한 연봉 인상, 공화당의 사회보장제도 민영화 시도의 역사에 대해 낱낱이 밝혔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미국의 아동빈곤율, 자유무역정책으로 인한 실업문제 등 각종 국가 경제 파탄에 대해서도 정확하면서도 충격적인 데이터에 입각해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쳤다.

 

이 연설은 중산층이 붕괴하고 빈곤층이 늘어가는 현실과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일들을 해야 하는지 역설한 명연설로 평가받았고, 이 연설을 통해 그는 전국구 정치인으로 거듭났으며 대선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이 책에는 8시간 37분에 걸친 명연설이 전문 그대로 실려 있다. 아울러 버몬트 주 벌링턴 시장으로서, 또 25년간 연방의원으로서 국민을 위해 어떤 일들을 했는지 자세히 기술되어 있으며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대선 공약 17개가 그의 가치 철학과 함께 실려 있다.

 

버니 샌더스의 대선공약

 

소득과 부의 불평등 해소

대학 무상교육

정계에서 거대자금 추방

적절한 보수의 일자리 창출

생활임금 지급

기후변화와 환경 문제 대처

인종 평등 실천

공평하고 인도적인 이민정책

여성 인권 신장

사회보장의 강화 및 확대

재향군인에 대한 예우

성소수자 평등 실현

처방약 가격 인하

월가 개혁

진정한 가정의 가치 확립

전쟁 종식, 평화 수호

이란 핵협상 지지

 

 

미국 대선의 풍향계가 어디로 향할까? 

 

미국 대선의 풍향계가 될 아이오와 코커스(2월 1일)를 앞두고 민주당의 유력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부 장관과 각축을 벌이며 선전 중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27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전격 회동했다. 사실상 클린턴 후보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오바마 대통령이 샌더스 의원을 만나 '중립'을 언급함에 따라 오바마 행정부 지지자들이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샌더스 쪽으로 기우는 모습을 연출할 수도 있어 관심이 집중된다.

 

나는 1992년부터 6년간 미국 메릴랜드 주에서 살았다. 당시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국가였다. 그런데 이 연설 속의 미국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추락해 있었다. 내가 경험했던 미국, 내가 기억하는 미국과 너무나도 달랐다. 놀라움을 가지고 번역을 해나갔다.

 

추락하는 미국의 모습과 현재의 한국의 모습이 겹쳐 보이면서 점점 무서워졌다. 한국인들도 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열심히 일하는데 앞으로 형편이 더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어려워질까 봐 불안해한다. 청년들과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면 더욱 걱정이다. 3포세대, 5포세대, 7포세대… 결국 N포세대라는 말까지 나왔다. 인내하고 인내해도, 노력하고 노력해도 바뀌는 건 없고 부는 소수에게 집중된 채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 '역자의 말' 중에서

 

 

상속세의 진실

 

제 생각에는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저는 공화당 친구들과 그들의 여론조사요원들과 홍보팀이 일을 아주 잘 꾸몄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미국 전역의 많은 사람들이 상속세가 끔찍한 세금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은행에 5만 달러를 저축하고 있고 그 돈을 나의 자녀들에게 남겨주고 싶은데, 그중 55%, 또는 35%를 정부에서 가져간다면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세금은 오직 상위 0.3%의 미국 가정에만 적용됩니다. 99.7%의 미국 가정은 상속세를 한 푼도 내지 않을 것입니다. 심지어 이 세금은 웬만한 부자들에 대한 세금도 아닙니다. 아주, 아주, 아주 잘사는 부자들에 대한 세금입니다.

 

저의 공화당 친구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일, 즉 상속세를 완전히 폐지하는 일을 성공적으로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만약 정말로 그렇게 되면 10년 동안 국가부채가 약 1조 달러 늘어날 겁니다. 마트(Walmart)의 월튼(Walton) 가와 같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게 될 텐데, 그 금액만도 300억 달러에 이를 것입니다.

 

저는 거대한 국가부채 때문에 노동자 가족을 위한 프로그램들에 대한 대규모 삭감을 논의하고 있는 이때, 상속세를 500만 달러까지 공제한 후 세율을 35%로 낮추자는 데 대통령과 공화당 지도부가 합의했다는 사실을 믿기가 어렵습니다. 이 법안은 그런 것입니다.

 

이 합의가 통과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모두 제정신이 아닙니다. 저는 이 문제에 대해 솔직히게 말슴드리고 싶습니다. 공화당은 현재 적자가 심각하고 국가부채가 어마어마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법안을 통과시켜 국가부채가 더 늘어난다면, 공화당원들은 노동자 가족과 중산층을 위한 재정과 지원을 대폭 축소하고픈 충동을 강하게 느낄 것입니다.

 

많은 공화당 동료들이 원하는 바를 저는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이 나라의 정치, 경제체제를 거대한 금전적 이익에 따라 통제하던 1920년대로 돌려놓고 싶어 합니다. 노동자들과 중산층들이 경제적 상황이 나빠지거나, 나이 먹거나, 병들었을 때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도와주는 프로그램이 없었던 시절로 돌려놓고 싶어 합니다. 노동조합의 설립이 매우 어려웠던 시절로 돌려놓고 싶어 합니다. 그들은 환경보호국 같은 조직을 믿지 않습니다. 사회보장, 메디케어, 메디케이드, 펠 그랜트 같은 프로그램들을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하는 싸움입니다. 이 법안에 굴복한다면 우리는 곧 아주 기나긴 싸움에 뛰어들게 될 것입니다.

 

(주)펠 그랜트~ 미연방정부에서 운영하는 저소득층 대상 장학금

 

 

고리대금업을 하는 금융기관

 

미국 4대 은행, 뱅크 오브 아메리카, JP모건 체이스, 웰스 파고, 시티그룹 등은 전체 주택담보대출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고, 모든 신용카드의 3분의 2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커다란 문제입니다. 이러한 금융기관들에는 제재를 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연방정부가 은행들에게 거액의 긴급구제금을 제공하면서도 신용카드 이자율을 낮추라는 요구조차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황당합니다.

 

같은 원칙을 주택담보대출에도 적용해봅시다. 우리는 수백만 명이 집을 압류당하는 걸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세금으로 은행들을 구제해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은행들은 우리들에게 어떠한 책임도 없습니까? 연방정부가 은행들에게 비밀 대출금을 받는 조건으로 주택담보대출 이자를 낮추라고 요구했더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자신의 집을 지킬 수 있었을지 생각해보셨습니까?

 

 

낙후된 기반기설과 뒤떨어진 에너지 시스템

 

중국 경제가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굳이 말씀드릴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중국은 기반시설에 미국의 거의 4배, 연간 GDP의 9%를 투자하고 있습니다. 수년 전 저는 의회 대표부의 일원으로 중국 상하이를 방문했습니다. 공항에서 시내로 이동하려고 버스에 오를 때 아내가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제게 물었습니다. "저건 뭐지?" 창문으로 흐릿한 형체가 휙 하고 지나갔습니다. 저 역시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곧 알아차렸습니다. 그 흐릿한 형체는 중국의 실험용 고속열차였습니다. 지금은 중국에서 운행 중이며, 다른 모델들도 끊임없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재 모습은 전혀 다릅니다. 수년간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했던 미국은, 이제 전국적인 고속철도망을 가지고 보다 생산적이고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중국 같은 신흥국가들을 그저 바라만 볼 뿐입니다. 미국 도시의 지하철들도 망가져가고 있습니다. 암트랙(Amtrak)은 시간당 50에서 60마일로 달립니다. 중국과 유럽의 기차는 시간당 수백 마일을 이동합니다.

 

 

대기업들의 세금 회피

 

2008년 8월 회계감사원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 3개 중 2개가 1998년부터 2005년 사이에 연방소득세를 납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13조 8000억 달러의 국가부채를 짊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 기업들은 연방소득세를 납부하지 않았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 기업들이 총 2조 5000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조세정의를 위한 시민단체'의 보고서에 따르면 '포춘(Fortune)'에서 선정한 미국 500대 기업 중 82개가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연방소득세를 거의 한 푼도 내지 않았습니다. 다음은 조세정의를 위한 시민단체가 발행한 보고서에 실린 내용입니다.

 

"이 회사들은 미국에서 1020억 달러의 수익을 올렸지만 수년 동안 소득세를 내지 않았다. 법정 법인세율 35%를 적용하여 소득세 356억 달러를 내는 대신에 오히려 많은 세금 혜택을 받았다. 재무부로부터 정확히 총 126억 달러의 세금환급을 받은 것으로 확인된다"

 

13조 8000억 달러에 달하는 국가부채의 원인을 포괄적인 관점에서 살펴볼 때, 중산층은 세금 부담을 온전히 지고 있는데 많은 대기업들은 연방소득세를 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세금 환급까지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회보장세 감면기간의 진짜 목적

 

이 법안은 소위 말하는 사회보장세 감면기간을 다루고 있습니다. 저는 부통령과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이 문제를 다루어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것이 노동자들의 주머니에 보다 많은 돈을 남길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노동자이고 사회보장을 위해 6.2%의 분담금을 내고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1년 동안 4.2%의 분담금만 내면 됩니다. 우리 모두 노동자들의 주머니에 보다 많은 돈이 흘러들어가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싸우는 목적입니다.

 

소위 말하는 사회보장세 감면기간은 표면적으로는 노동자들을 위하는 훌륭한 아이디어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아주 나쁜 생각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미국 국민들은 이 사회보장세 감면기간을 애초에 공화당원들이 제안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저를 믿으십시오, 공화당원들의 목적은 노동자 가족의 주머니에 더 많은 돈을 넣어주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들의 목적은 사회보장을 파멸시키는 것입니다. 이 아이디어가 궁극적으로 사회보장의 재정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하려는 일은 우리 자신의 종잣돈을 갉아먹는 것과 같습니다.

 

 

부모보다 못살게 될 최초의 아이들

 

우리는 아동의 약 25%가 푸드 스탬프에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미국이 주요 국가들 중 가장 높은 아동빈곤율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핀란드의 아동빈곤율은 2.8%이고, 노르웨이는 3.4%, 스웨덴은 4.2%, 스위스는 6.8%, 네덜란드는 9.8%입니다. 미국은 20% 이상입니다. 이것이 미국의 미래입니다. 우리가 지금 논의하는 법안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억만장자들에게 막대한 세금 혜택을 줍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요? 우리가 아동빈곤율 면에서 주요 국가들보다 압도적으로 앞서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푸드 스탬프~ 대표적인 저소득층 식비 지원 제도

 

 

충격적인 경제적 불평등

 

저는 부시 전 대통령을 비난하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가 집권한 8년 동안 미국의 400대 부자들은 극부층, 즉 우리가 아무리 넓은 의미로 정의해도 중산층이 '아닌' 사람들 소득이 2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반면 소득세율은 1995년부터 2007년까지 거의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현재 400대 미국 갑부들은 연간 평균 3억 4500만 달러를 벌고 있지만 실효세율은 평균 16.6%입니다. 이것은 부자들에게 부과된 세율 중 역사상 가장 낮은 수치입니다. 반면, 더 낮은 임금을 받으며 더 오랜 시간 일하는 국민 대부분의 평균 가구소득은 감소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현대 역사상 최초로 자신들보다 자녀들이 더 낮은 생활수준을 영위하게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 많던 일자리는 다 어디로 갔을까?

 

젊은 세대는 믿기 어렵겠지만, 제가 아이였을 때는 미국에 거대한 글로벌 경제, 로봇산업, 컴퓨터가 등장하기 이전 중산층의 경우 가장이 1주일에 40시간만 일해도 가족을 부양하기에 충분한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버몬트 주와 이 나라 전역에서는 대부분의 남편과 아내가 맞벌이를 하면서 매우 오랜 시간 일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맞벌이 가족은 30년 전 외벌이 가족보다 가처분소득이 적습니다. 왜냐하면 임금이 인플레이션을 쫓아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건강관리 비용과 교육비, 주택비, 기본 생필품 가격이 치솟았는데 임금은 별로 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맞벌이 가족이 30년 전 외벌이 가족보다 가난한 데는 또 다른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뒤에서 좀 더 다루겠지만 그 이유 중 하나는 규제 없는 무역정책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재앙과도 같은 무역정책 때문에 이 나라에 있던 수만 개의 공장이 문을 닫았습니다. 2001년 이후 4만 2000개의 공장이 사라졌고, 제조업 일자리는 1700만 개에서 1200만 개 이하로 줄어들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높은 임금을 주는 일자리들이 사라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아이들이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다면

 

매년 17만 명의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대학 진학을 준비하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 포기합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대학에 진학하길 원하는 이 나라 젊은이 약 17만 명이 돈이 없어 진학을 포기합니다.

 

이 젊은이들의 특별한 지적 잠재력을 낭비하게 만들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돈이 없기 때문에, 대학 등록금이 너무 비싸기 때문에, 연방정부가 억만장자에게 세금 혜택을 주고 전쟁을 2개나 치르느라 너무 바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투자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입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투자하는 것은 곧 미국의 미래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곧 미국입니다. 아이들이 잘 교육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사회의 생산적인 일원이 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우리가 교육에 열심히 투자하는 중국과 유럽과 전 세계 다른 나라들과 경쟁할 수 있을까요?

 

 

비정상적인 세금혜택

 

저는 특정 개인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절대 저의 목적이 아닙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시키기 위해 몇몇 사례를 들고 싶습니다.

 

자, 뉴스코퍼레이션 CEO인 루퍼트 머독은 내년에 1300만 달러의 세금 혜택을 받습니다. 머독은 이미 억만장자입니다. 그에게 이러한 세금 혜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연방준비제도에서 긴급구제금을 받은 JP모건 체이스의 수장 제임스 다이먼은 110만 달러의 세금 혜택을 받을 것입니다. 그는 지금도 잘 벌고 있습니다. 시티그룹의 CEO인 비크람 팬디트는 78만 5000달러의 세금 혜택을 받을 것입니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의 전 CEO인 켄 루이스는 이미 놀라울 정도로 부유하지만 71만 3000달러의 세금 혜택을 받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큰 은행인 웰스 파고의 경영진들은 이미 막대한 보수를 받고 있음에도 CEO인 존 스텀프는 매년 31만 8000달러의 세금 혜택을 받을 것입니다. 100억 달러의 긴급구제를 받은 모건 스탠리의 CEO인 은 92만 6000달러의 세금혜택을 받을 것입니다. 애트나의 CEO인 로날드 윌리엄스는 87만 5000달러의 세금 혜택을 받을 것입니다. 이미 억만장자인 주요 은행의 CEO들은 2년에 600만 달러, 700만 달러, 800만 달러를 버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세금 혜택을 주는 것은 국가로서 우리가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찌그러진 통조림을 파는 가게

 

버몬트 주에 사는 한 남자의 편지입니다.

 

"저는 몸이 아파서 일할 수 있는 능력이 매우 제한되어 있습니다. 시간당 10달러를 버는데, 운이 좋다면 1주일에 35시간을 일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봅시다. 시간당 10달러는 버몬트 주에서 흔한 임금입니다. 미국 전역에서도 흔한 임금입니다. 사람들은 시간당 10달러를 받으면 대개 주 40시간을 일합니다. 하지만 편지를 보낸 남자는 40시간을 일할 수 없습니다. 그는 1주일에 350달러를 법니다. 10 곱하기 40은 400입니다. 여기에 50주를 곱하면 연소득이 2만 달러가 됩니다. 놀랍게도 이것이 현실입니다. 이 돈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습니다. 이들이 우리가 도와야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도와야만 하는 사람들은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1년에 100만 달러의 세금 혜택을 받게 되는 월가의 CEO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공화당 친구들이 10년 동안 약 1조 달러의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상속세를 폐지하여 도와주고 싶어 하는 상위 0.3%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찌그러진 통조림으로 식사를 하는 사람들, 그리고 휘발유값이 없어 일요일에 교회에 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나라를 만들고, 우리를 의회로 보내준 사람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필리버스터를 끝맺으며

 

오랜 시간 경청해주신 모든 분들께 사과드립니다. 제가 같은 이야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법안은 거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제 사무실로 전화한 사람 중 2122명이 이 법안에 대한 거부 의사를 표시햇습니다. 100여 명은 찬성을 표시했고요. 계산해보면 오늘 제게 전화한 유권자의 95%가 이 법안에 반대하고 있는 겁니다.

 

전 국민이 "이보다 더 나은 법안을 만들 수 있습니다. 백만장자와 억만장자에게 세금 혜택을 주어 국가부채를 늘리지 말아주십시오"라고 말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가 이 법안을 거부하고 이 나라의 노동자 계층과 중산층 가족, 무엇보다도 우리 아이들의 요구를 반영하는 보다 나은 법안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유세 중인 버니 샌더스

 

그의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장장 8시간 37분의 연설을 마친 오후 7시, 샌더스는 비틀거리며 연단에서 내려왔다. 회의장은 텅 비어 있었다. 그의 곁에는 그의 직원들과 보좌관들, 상원 회의장에서 근무하는 몇몇 직원들과 속기사들, C-SPAN 2채널 직원들, 그리고 방청석의 방청객 몇 명만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회의장 바깥은 꽉 차 있었다. 격려 전화가 빗발쳤다. 모두가 그의 연설에 대해 이야기 꽃을 피웠다.

 

사람들은 그에게 새로운 애칭을 선물했다. '필리버니', 이는 필리버스터와 버니 샌더스의 합성어이다. 그는 왜 이런 연성을 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당지 부자 감세를 연장하는 것보다 더 나은 방안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답했다. 2년 뒤인 2012년, 부시의 감세 연장법은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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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생 세금쟁이 나남신서 1849
조용근 지음 / 나남출판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지금 내가 밝히는 이야기들은 어떤 언론이나 책에서 흔히들 만날 수 있는 그런 감동적인 스토리가 결코 아니다. 그저 최말단 9급에서 출발하여 8급, 7급 등을 거쳐 한 단께 한 단계를 살얼음을 딛듯이 올라가면서 겪은 조조마했던 순간들의 연대기年代記이자 고백록告白錄일 뿐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어느 세무공무원의 인생 발자취 

 

이 에세이의 주인공 조용근 천안함재단 이사장은 1946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국세청이 개청되던 1966년, 9급으로 출발하여 대전지방국세청장까지 36년간 공직생활을 하였으며, 2011년까지 4년간 한국세무사회 회장을 역임했다. 또한 천안함재단 이사장, 국세공무원교육원 명예교수, 기획재정부 세제발전심의위원, 행정안전부 정책자문위원, 국세청 국세행정위원, 법제처 국민법제관과 서울고등검찰청 항고심사위원 등으로 활동하였거나 활동하고 있다.

 
'나눔 전도사'라는 그의 별칭처럼 청량

 

 

 

"무슨 경천동자경천돈지할 비화비화를 털어놓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성실한 세금쟁이'로서의 직분을 충실히 이행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해 왔던 치열한 구도求道의 기록이라 할까" - 조용근

 

9급 공무원에서 시작해 지방국세청장에 오르기까지 35년 동안의 국세청 생활과 4년 동안 세무법인 대표를 지내며 '세금쟁이'로 살아온 조용근 천안함재단 이사장의 삶을 되돌아본다. 그가 부동산 투기 업무를 전담할 때의 경험들과 언론사 특별 세무조사로 한창일 때 공보관으로서 좌충우돌한 에피소드들이 소개된다.

 

 

스무 살의 세금쟁이

 

1966년 1월, 그는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지독한 가난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한 채 몹시 낙심에 빠져 있던 어느 추운 겨울 아침, 집으로 배달된 <서울신문>의 희한한 채용광고 하나가 그의 눈길을 강하게 끌었다. 이는 바로 그를 세무공무원으로 이끈 운명적 만남이었던 것이다.

 

 

 

 

 


"사세직司稅職 5급을乙류 공무원 임용시험 공고"

 

당시 사세직의 의미도 모르던 약관 20세의 고등학교 졸업생인 그가 그 광고를 주목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시험 과목 때문이였다. 국어, 영어, 수학, 일반상식, 그리고 맨 하단에 '상업부기商業簿記'라는 시험과목의 소개가 그의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상업고등학교 출신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는 인문계학교를 다녔기에 상업부기라는 교과과목이 없었다. 그런데 고교 2학년때 우연히 자신이 다녔던 중학교의 김석규 선생님이 그의 고등학교로 전근 발령이 났는데, 그 선생님의 담당과목이 바로 상업부기였다. 참고로 그가 가려 했던 대학교의 상과대학에서는 입시과목으로 '독일어'와 '상업부기'를 선택과목으로 택하게 되어 있어서 독일어를 공부하고 있었다.


어느 날  김선생님께서 교무실로 그를 호출해 당장 본인이 가르치는 '상업부기'를 수강하라고  엄명(?)을 내렸다. 아울러 친구들도 많이 데리고 오라는 당부까지 했다. 그때 그는 몹시 난감했지만 선생님과의 개인적인 친분관계를 생각해서 몇몇 친구들과 함께 상업부기 과목을 수강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고는 마치 자신을 위한 것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500명을 신규로 채용하는 그 시험에 무려 응시자는 5만 명이었다. 하지만 그는 살인적인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합격했다. 성적도 상위권에 속했다. 합격자 발표 후 국세청에서 근무희망지를 선택하라는 연락을 받고 잠시 서울로 가고 싶었지만 그 마음을 접고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 근처의 대구서부세무서를 택했다. 1966년 6월 20일, 그는 발령지로 첫 출근을 했다.

 

 

서울로 가다

 

또래 친구들이 대학생 제복을 입고 다니는 모습과 말단 공무원인 자신의 처지가 대비되어 대학생이 되고픈 열망이 마음 한 쪽에 활활타고 있었던 그는 이듬해에 야간대학으로 꽤나 유명한 청구대학(현, 영남대학교의 전신)에 응시해 야간부 전체 수석으로 합격했다. 4년간의 등록금이 전액면제되는 전면장학생이 된 것이다. 낮엔 초보 세금쟁이, 밤엔 대학생이라는 주경야독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하루는 세무서장이 자신의 방으로 조용히 불러 계속 뒤를 봐 줄테니 공부를 계속하라고 격려를 해주었다. 참고로 그 서장님은 이미 작고하셨다. 한편, 착하고 어리숙한 관내의 사업체는 그에게 식사대접과 약간의 금품을 대접하면서 과세자료를 누락시켰다. 그는 자신의 실수를 반성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스스로를 단련해갔다. 이후 당시 그를 아꼈던 주위의 선배들이 세금쟁이로 성공하려면 반드시 법인세 업무를 배워야 한다면서 그를 조사과 조사계에서 법인세과로 전근배치해 근무하게 했다.

 

법인세과에 발령받고 두 번째 실수를 하게 되었다. 술대접을 잘못 받아 재산관리과(관재과)로 전출되고 말았다.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 약1년 동안 국유재산 관련법을 열심히 배울 수 있었다. 1968년 1월 중순, 경북 고령군 외딴 산골에 위치한 방앗간의 체납세금 2천 원을 받고자 하루 한 번 운행하는 시골버스를 타고 수금한 후 현지 막걸리 양조장 직원숙소에서 잠을 자고 이틑날 걸어서 면사무소 우체국에 납부했다. 이처럼 몸으로 때우는 일을 정말 열심히 했다.

 

서울에서 공부하고픈 그의 열망은 결국 성균관대학교 2부 상학과 편입시험으로 이어졌다. 2명 뽑는 시험에 68명이 응시했다. 시험을 마치고 곧바로 야간열차로 내려와 대구에서 근무하는데 합격 축하 전보를 받았다. 별 생각 없이 치른 시험의 결과에 그는 난감했다. 현실적으로 대구에서 서울로 야간대학을 다닐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당시 세정감독관으로 재직중이던 집안 형님뻘인 분에게 편지를 썼다. 세무공무원이 된 사연과 성균관대 야간대학에 편입시험에 합격했다는 내용을 적어 도움을 청했던 것이다. 곧 국세청 본청에서 수도권에 많은 세무공무원을 배치할 계획이므로 그때 발령 받도록 힘을 쓰겠다는 답장을 받았다. 대학교 수강신청 즈음에 서울 동대문세무서로 배치 발령을 받았다. 열심히 일한 보답으로 8급으로 진급했다. 그때 그의 나이 22살이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한창 젊음을 불태울 때였다. 일요일만 되면 서울에 올라와 있던 친구들과 흥청망청 어울렸다. 중간고사나 학기말고사, 그리고 리포트 과제들은 그에게 큰 골칫거리였다. 그는 군입대를 계기로 더 이상 학업을 계속하지 않았다. 다른 재미가 생기니 자연히 공부는 멀어졌던 것이다. 그의 학력은 성균관대학교 중퇴다.

 

 

군 전역 후 복직하다

 

1973년 3월 15일, 그는 35개월 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서울 용산세무서로 복직했다. 군복무 시절 어려운 가정형편에 모친의 죽음을 맞는등 개인적으론 고통의 긴 터널을 빠져나왔다. 그 즈음 그의 부친은 남가좌동 모래내시장에서 1평짜리 좌판을 얻어 양말 등 생활용품을 팔고 있었다. 그래서 가족들과 상의해서 시장 부근에 위치한 단독주택에 전세를 얻었다. 그 당시 부친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가난이다. 그러니 너는 악착같이 일해서 부자가 되어 남에게 돈을 꾸는 자가 되지 말고 꾸어주는 사람이 되거라!"

 

입사한지 꼭 9년 만인 1975년 6월 25일, 그는 7급으로 승진했다. 열달 후엔 마포세무서 법인세과로 발령받았다. 그런데, 그 해에 종합소득세 제도가 처음 실시되었는데, 부득이 개인세과 업무 지원을 위해 차출이 필요했고, 그도 여기에 포함됐다. 당시엔 여의도 일대가 마포세무서 관할이었기에 불가피한 조치였다. 똑 부러지게 업무 처리를 한 그를 눈여겨 본 개인세 과장이 그를 붙잡았다. 이후 갑자기 국세청 본청 소득세과로 발령을 받았다. 1976년 9월 하순이었다.

 

 

 

재산세계 양도소득세 업무를 배정받았다. 그즈음 마포세무서에서 대형 사고가 터졌다. 교과서 제작회사로부터 금품수수와 술접대 등을 받은 것이 드러나 잠시 그가 적을 두었던 법인세과 법인2계 전직원이 검찰에 송치되었던 것이다. 이 비리에서 살아난 사람은 당시 개인세과 업무지원에 차출된 2명뿐이었다. 당시 법인세 업무를 떠나게 돼 매우 섭섭했는데, 전화위복인 셈이었다.

 

국세청 소득세과 재산세계는 계장 밑에 모두 3명이었다. 차석은 상속세, 증여세, 주식이동조사 업무 등을, 다른 한 분은 양도소득세 법령 업무를, 저자는 관련통계 업무와 일반 서무를 맡았다. 당시 서른 살, 나이가 제일 어렸기에 각종 행사에 둥원되는 일을 전담할 수밖에 없었다. 그후 선임자 둘 모두 일선 세무서로 전출됨에 따라 혼자서 북치고 장구 쳐야만 했다. 일복이 터졌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제산세제 관련 업무에 능숙해졌다.

 

 

 

1977년경부터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개발지역 등에서 부동산 투기 광풍이 불었다. 당시엔 부동산 투기 전담반이 없었기에 양도소득세를 담당하던 저자가 이 일을 맡아야만 했다. 여의도 목화아파트, 도곡동 개나리아파트, 반포아파트 등 강남 요지에 신규 아파트가 분양되면서 아파트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 틈에 미등기 전매업자와 부동산 중개업자들이 세금 없이 큰 돈을 벌 수 있었다.

 

 

 

1978년 1월, 서울 강남 4개 아파트 지구와 개발 붐이 이는 전국 158개 동洞을 부동산 투기 지역으로 고지하고 이 지역에서 부동산을 거래할 때는 실지거래금액을 조사하여 양도소득세를 중과했다. 이를 시작으로 그는 한자리에서 이 업무만 계속했다. 당시 매년 연초에 사무관 이상 간부들의 인사이동이 단행되어 상관들은 예외없이 1년만 되면 교체되므로 그는 붙박이가 되고 말았다. 그는 1988년 7월 말 일선 세무서장으로 자리를 옮길 때까지 양도소득세와 투기 억제 업무만 담당했다.

 

 

결혼하다

 

하루는 일찍 귀가하라는 여동생의 연락을 받고 일찍 집으로 도착을 해 보니 왠 낯선 여성이 함께 우리 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순간 평소 그가 그렇게도 꿈꾸던 환상이 현실이 되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예쁘기도 했지만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데 당시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더구나 고향도 같은 지역이었다.

 

이튿날부터 여동생을 부추겨 그녀에 대해 자세히 알아 보라고 재촉했다. 며칠후 동생은 그녀가 1남6녀 중 맏딸이며 경북여고를 거쳐 이화여대 법대를 졸업하고 가정법률상담소(당시 소장은 작고하신 이태영 박사)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귀뜸해 주었다. 여고 3학년때 그녀의 부친이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으며 또한 그녀도 자기 집안 식구들을 잘 챙겨 줄 남편감을 찾고 있다고 했다. 그의 평생 짝꿍이 된 그녀는 현재 성석장학회 재단이사장이다.

 


 

삼수 끝에 그는 사무관 시험을 통과했다. 나이 마흔, 세금쟁이 30년째였다. 아버지의 사망, 두차례의 사무관 낙방 등 삼재三災라는 고통의 긴 터널을 빠져나온 기분이었다. 1988년 7월 말, 사무관 인사이동 때 그는 비교적 업무가 단순한 부천세무서 부가세2과장으로 발령받았다. 그러면서 국세공무원교육원에서 재산세제 관련 교관직을 함께 겸했다. 오전은 부천세무서, 오후엔 수원 교육원에서 근무했다.

 

 

국세청 공보관이 되다

 

2001년 초, 그는 국세청 공보관실 업무를 맡게 되었다. 부임 첫날부터 매일 국세청 관련 기사를 살펴보고 틈날 때마다 출입기자들과 친분을 교류했다. 당시 중앙 언론사는 통신사, 중앙 일간지, 방송사 등 총 23개였다. 어느 한 곳이라도 가볍게 대할 수 없었다. 해당 매체에서 파견한 출입기자 모두 소중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어느 날 출입기자들이 떼를 지어 몰려와 항의를 했다. 내용을 파악해보니 "국세청, 전국 23개 중앙 언론사에 대한 특별 세무 조사 실시"라는 기사 송고 때문이었다. 황당한 건 공보관인 자신도 국세청에서 미리 통보받은 바가 없었다. 그는 바로 국세청장에게 항의했다. 돌아오는 답변은 오전에 담당국장한테서 연락 못 받았냐는 것이었다.

 

진실은 보안을 지킨답시고 공보관까지 제치고 출입기자 한 명 한 명을 불러 개별적으로 통보했던 것이다. 불과 한두 시간 후면 세상에 다 알려질 일인데 말이다. 그래서 그는 국세청장에게 "수십 년 공직자 생활 중 이렇게 심한 모멸감은 처음 느껴 봅니다"라고 말했다. 지금도 그는 그때의 일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나눔과 섬김을 실천하다

 

2002년 8월 하순, 그는 서울지방국세청 납세지원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은 세수稅收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징세과와 세금 부과에 불복하는 납세자들의 고충과 심사 업무를 담당하는 법무 1,2과를 비롯해 전산 시스템을 관리하는 전산관리과 등 업무 성격이 전혀 다른 4개 과로 조직되어 있었다. 이곳은 대부분 발령을 기피하는 곳으로 근무자들의 사기는 바닥 수준이었다.

 

며칠 간 고심 끝에 그는 '다일多一' 정신을 일깨워 주기로 했다. 그는 1998년부터 청량리에 있는 '다일 밥퍼나눔운동본부'와 인연을 맺고 있었다. 이를 주관하는 최일도 목사에 따르면 다일이란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추구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즉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일들을 하지만 목표는 하나라는 것이다.

 

그는 어깨가 축 처져 있는 150여 명의 소속 직원들에게 비록 환경이 어렵더라도 마지 못해서가 아니라 즐기면서 일해 보면 나중에 그것들이 우리에게 큰 재산으로 되돌아 올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 주었다. 그러면서 틈틈이 세금쟁이 선배로서 지난 30여 년의 경험들을 진솔하게 들려주기도 햇다. 그러자 많은 직원들이 공감했고, 그를 신뢰하고 따랐다. 

 

그때부터 그도 본격적으로 '다일 밥퍼나눔운동'에 적극 관여했다. 2007년에는 '명예본부장'이라는 귀한 직함을 받아 지금까지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이젠 '다일'이 널리 알려져 '나눔과 섬김'의 대명사로 통한다. 아내의 제안으로 시작한 부부사랑모임인 '마태모임'을 2003년 4월부터 2010년 4월까지 운영하면서 많은 세금쟁이 천사 부부들이 이곳을 거쳐갔다.

 

 

 

 

명예퇴임 그리고 인생 후반전

 

2004년 12월 30일, 대전지방국세청장을 끝으로 그는 국세청 조직을 떠났다. 2005년, 서울 강남 테헤란로에 위치한 법무법인의 회장직을 제안받고 주주로서 당당하게 일하고 싶어 전체 지분의 3분의 1을  퇴직금 등으로 투자했다. 마침내 2015년 11월 11일 세무법인 석성石成이 출범되었다. '석성'은 그의 부모 이름의 가운데 글자를 따온 것이다.

 

 

 

사실 석성은 1994년에 이미 출범되었다. '석성장학회'가 바로 그것이다. 아버지가 작고하면서 물려준 구의동의 한옥 한 채를 팔아 생긴 5천만 원을 종잣돈으로 10년 간 재테크해서 조성된 2억 여원으로 장학사업을 시작했고, 2001년도에 재단법인화했다. 그의 부인이 이사장이다. 석성장학재단을 모태로 세무법인 석성이 설립되었다.

 

 

 

세무법인 석성에서 발생하는 매출액의 1%를 성석장학재단에 기부하는 조건은 다른 곳에서 좀처럼 찾기 힘든 케이스이다. 마치 교회의 십일조처럼 지금까지 이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잘 준수하고 있다고 한다. 과거의 어려웠던 시절이 이런 약속의 실천을 충분히 감당하도록 만드는 듯하다.

 

 

 

검찰청 앞마당에 세금쟁이 조각상이 세워지다

 

2011년 11월, 서울고등검찰청으로부터 현직 간부 검사들과 사회 각계 전문가로 구성되는 항고심사위원회에 민간위원으로 추천하겠다는 연락을 받고 부당한 수사로 억울한 국민이 생기지 않도록 한다는 자문 역할이기에 그는 이를 수락했다. 이를 계기로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2012년 5월 31일 서울고등검찰청에선 전용 청사 준공식 행사를 가졌다. 그는 법무부장관, 일선 검사장 및 검찰 간부들과 함께 민간인 대표 자격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특별히 동 행사엔선 시민과 함께하는 검찰상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청사 앞 잔디광장에 청동으로 만든 조형물을 설치했다. 여기에 그의 얼굴이 포함되었다. 그간의 나눔과 섬김의 활동들이 참작된 것이다.

 

   

 

"다시 태어나도 세금쟁이로 살아갈 거야!"

 

이는 그가 지금도 가족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그러면서 그는 후배들에게 지금부터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인생 후반전'을 잘 설계해 보라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지금 서평을 쓰고 있는 나는 부당한 세무조사를 당한 경험과 이로 인해 사업체를 접었던 불운을 겪었기에 세무공무원에 대해서 나쁜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훌륭한 공무원도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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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DNA 비밀 - 실패퇴치 Knowhow 비법노트
한효신 지음 / 롱테일 오딧세이(Longtail Odyssey)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실패의 사전적 정의는 "일을 잘못하여 뜻한 대로 되지 아니하거나 그르침"이라 되어 있다. 실패는 본질적으로 특정 목적이나 목표를 미리 정한 상태에서 이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목표 대비 성과 평가'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목적이나 목표를 달성하기까지 그 과정에 숱한 실수, 차질, 시행착오 등의 시련을 경험하는 게 일반적이다. 전투에서 여러 번 패하고도 전쟁의 최종결과는 얼마든지 승리로 이끌 수 있다는 논리와 같다. 따라서 진정한 실패란 실수, 차질, 시행착오, 시련 등의 '과정적 실패'가 아니라, 모든 결과가 일단락되는 '최종적 실패'를 의미한다. - '프롤로그' 중에서 

 

 

실패를 초래하는 근본원인은 무엇인가?

 

'실패'에 대한 정확한 개념과 의미는 사람마다 또는 사안에 따라 규정하는 기준이 매우 다양하다. 따라서 실패를 논하기 위해서는 실패의 개념, 성격, 유형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실패의 주체는 곧 사람이다. 국가운영, 기업경영, 정책운영 등의 실패 원인은 결국 사람으로 귀착된다. 

한편 실패의 개념을 '목적지향성' 기준으로 따져보면, 실패의 형태는 '미션실패', '목표실패', '가치실패'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미션실패는 주어진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결과를 말한다. 기업체 CEO나 대통령의 직무가 여기에 해당된다. 목표실패는 성취하고자 목표했던 일을 아예 시도하지 못했거나, 실행했지만 당초 목표에 어긋난 것을 말한다. 결혼, 창업, 신규사업, 취업, 진학, 승진, 학위 등 수많은 삶의 과제들에서 발생한다. 가치실패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삶의 원천'이 내실內實이 없거나 비루하다고 판단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행복, 인간관계, 가정화목 등을 들 수 있다.

 

책의 저자 한효신은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으며(마케팅 석사, 경영학 박사), SK그룹 경영기획실, 베타리서치앤컨설팅 근무했다. 현재는 프리랜서 경영컨설턴트, 실패경영 전문강사, 작가이자 롱테일 오디세이 출판사 대표이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계속 실패의 쓴맛을 보지만, 이를 예방할 수 있는 마땅한 방안이 없다는 현실이 안타까워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책의 핵심은 실패방지 해법이다. 첫째 성공실패를 결정짓는 핵심요인을 살펴보고, 둘째 실패를 초래하는 근본원인에 따른 24가지 실패DNA 유형을 도출하며, 셋째 개인별 실패위험지수를 평가하고, 넷째 실패 방지를 위한 구체적 대안으로 스티브 잡스 백신, 헬렌 켈러 백신 등 7가지 예방방신을 제시한다. 책의 내용이 객관적 검증을 거친 학술적 이론서는 아니지만 실패에 대한 흥미로운 접근법이다.

 

 

 

링컨은 성공했나, 실패했나?

 

책은 실패의 진정한 의미를 확립하고자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험 링컨의 생애를 살펴본다. 정계에 입문한 링컨은 주의회 의원, 연방 하원의원, 연방 상원의원 등의 선거에서 연거푸 고배를 들었다. 하지만 이는 실패가 아니라 대통령으로 가는 길에서 겪은 시련, 시행착오 등에 해당하므로 '과정적 실패'이다. 물론 대통령이 되지 못하고 이런 경력에 그치고 말았다면 실패로 봐야 할 것이다.

 

그의 인생을 살펴보면 그리 행복한 삶이 아니었기에 '실패'라고 판단된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은 슬품과 누나의 요절에 따른 상실감은 커다란 불행이다. 청년시절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슬품도 마찬가지다. 또 4살과 11살의 어린 아들들이 병으로 죽고, 가치관과 행동양식의 차이로 평생 아내와 갈등을 겪어야만 했던 점도 결코 행복한 삶이 아니다.

 

수많은 자기계발서에는 제각각 성공 원칙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중엔 중복되는 항목들도 많다. 그런데, 이많은 원칙 내지는 조건을 모두 갖추어야 성공하는 것인지에 대해선 명쾌한 설명이 없다. 자기계발 분야의 대가인 나폴레온 힐도, 맥스웰 몰츠도 13가지 내지는 16가지를 제시하면서도 그 구체적인 실행 방법에 대해서는 설명이 부족하다.

 

야구경기에는 '끝나기 전에는 끝난 게 아니다'라는 멋진 말이 적용된다. 9회말 투아웃에서도 크게 뒤지던 팀이 역전승을 이끌어내는 경기가 심심찮게 발생하기 때문에서다. 그렇다. 과정적 실패란 누구나 감당할 수 있는 시련에 불과하다. 오히려 이런 역경의 길에서 깨달음을 얻고 지난 과오를 반성하면서 더 성숙할 수 있다. 이는 바로 성공을 위한 배움이자 자산인 것이다.

 

 

 

 

성공달성 필요충분조건

 

자신의 꿈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일정한 조건이 구비되어야 성공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성공달성 필요충분조건'을 우리들에게 제시한다. 이는 크게 역량, 테도, 복운복운으로 구분되고, 여섯 장르에 12개의 기본요소를 소개한다. 이는 나중에 '성공실패 식스틴 모형'과 연결된다.

 

제1장르~ 통찰력, 총명

제2장르~ 능력, 재능

제3장르~ 신념&의지, 열정&노력

제4장르~ 인품, 사교성

제5장르~ 선천적 복, 후천적 복

제6장르~ 행운, 불운

 

       

실패 DNA란 무엇인가?

 

실패유발 행태는 어떻게 해서 생성될까? 이는 유전자, 교육, 환경, 경험 그리고 밈(Meme: 리처드 도킨스가 말한 문화유전자) 등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여 만들어진다. 따라서 실패유발 행태를 구성하는 인자는 수없이 많을 수밖에 없다. 나아가 실패유발 행태 역시 다양한 종류로 나타난다. 결국 전체 실패유발 행태는 성격이 다른 각각의 ‘단위행태’가 모아져 이루어지게 된다.

 

이러한 단위행태를 이른바 '실패 DNA'(총체적 속성을 이르는 별칭)라 부른다. 실패 DNA가 중요한 것은 실패의 씨앗을 잉태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실패 DNA는 하나도 없을 수도, 여러 개를 보유할 수도 있다. 만약 여러 개의 실패 DNA가 내재되어 있을 경우에는, 추진하는 과업 내지 목표의 성격과 난이도, 환경조건, 경쟁관계 등과의 상호 연관성에 따라 실패를 유발시키는데 각기 차별적 영향을 끼치게 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영웅들이 정상에 있을 때, 흔히 큰 실패를 맛보게 된다. 잘나가는 영웅들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드는 요인이 바로 실패 DNA다. 통상 1단계 성공을 거두기까지 성공달성 필요충분조건의 위력이 실패 DNA의 힘보다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성공이 가져다 준 부, 권력, 명예의 달콤한 맛에 넋을 잃는 순간, 그때부터 '2가지 기본현상'이 실패 DNA를 싹 틔우고 요동치게 한다.

 


하나는 4가지 마음의 창(조하리의 창) 중 '보이지 않는 창'(눈먼 자아Blind Self)가 발동해 교만을 부리는 것이다. 눈먼 자아란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만 정작 자기자신은 보지 못하는 자아를 말한다. 나머지 3가지 마음의 창인 열린 창(공개된 자아Open Self), 숨겨진 창(숨겨진 자아Hidden Self), 미지의 창(미지의 자아Unknown Self) 등은 상대적으로 실패 DNA를 약동시킬 여지가 낮다.

눈먼 자아가 유발하는 가장 큰 폐해는 성공달성 필요충분조건의 '통찰력과 총명'이란 요소를 망가뜨리는 것이다. 지금까지 성공을 이루게 한 나름의 '생각의 틀'이 천하불변의 진리이고 원칙인 양, 무슨 일이 있어도 바꾸거나 개선하려 들지 않는다. 그로 인해 결국 안목, 혜안, 유연성, 융통성, 열린 사고, 변화대응, 혁신, 상상력, 영감 등의 보석들이, 아집과 독선 그리고 타성이라는 실패 DNA 그물 안에 갇혀 꼼짝달싹 못하는 재앙이 초래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는 작용에는 항상 반작용이 존재하며, 그 크기는 같고 방향은 정반대가 된다는 법칙을 말한다. 이 법칙이 낳는 치명적 폐해는 성공달성 필요충분조건의 '인품'이라는 요소를 훼손시킨다는 것이다. 일단 성공의 자리에 올라서면 아첨꾼들이 달라붙게 된다. 아부와 칭찬에 익숙하게 되면, 바른 소리나 쓴 소리를 듣는 순간 자신의 권위에 도전한다는 불쾌감이 앞서 화부터 내게 된다. 당연히 열린 소통은 불가능하다. 

 

또 주위에는 시기와 질투 때로는 음해하는 적들이 산재하기 마련이다. 이들을 모두 힘으로 제압해야 할 적으로 여기게 되면서, 안하무인 인품으로 추락하게 된다. 당연히 품격, 절제, 관용, 배려, 겸손, 교양, 덕망, 이해, 인내, 경청 등의 주옥 같은 보물들은 실패 DNA 늪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결국 영웅들의 실패는 부, 권력, 명예의 달콤한 맛을 즐기는 사이, 눈먼 자아와 작용 반작용 법칙이 잠재해 있던 실패 DNA를 싹 틔우고 약동시킴으로써, 통찰력, 총명, 인품 등 성공달성 조건의 주춧돌을 파손시켜 야기되는 것이다. 

 

 

 

 

성공과 실패를 결판 짓는 관건은 결국 성공접시와 실패접시 중 어느 쪽이 더 무겁냐 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싱공실패 패러다임' 또는 '실패작동 매커니즘'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성공접시는 성공달성 필요충분조건을 가리키며 접시엔 성공촉진 요소가 담긴다. 실패접시는 실패위험 지수를 말하며 여기엔 실패 DNA가 담긴다. 성공달성 필요충분조건의 위력과 실패유발 영향력 간의 정면 승부에 의해 판결이 난다.

 

 

 

 

실패예방 백신

 

성공실패 결정모형은 '성공달성 핵심요인'과 이를 토대로 한 '성공실패 결정 메카니즘'으로 구성된다. 꿈과 목표, 역량, 태도, 복운 등의 4가지 변수를 계량화하여 '성공실패 형태'를 나눌 수 있다. 계량적 수준을 몇 단계로 하느냐에 따라 수백 가지로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대소로 단순화시켜 16가지 모형을 제시한다.

 

 

 

 

우리 속담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말이 있다. 이런 우愚를 범하지 않으려면 미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매우 흥미로운 대책을 내놓는다. 즉 예방백신을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 장군은 23전 23승이라는 불멸의 기록을 전쟁사에 남겼다. 

 

 

당시 조선의 조정은 수군의 연전연승 이유를 이순신 장군의 개인적 역량 때문이 아니라 조선 수군 자체의 전투능력에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백의종군에 나선 이순신의 자리를 원균이 물려받아 곧바로 칠천량해전을 가졌는데, 이 전투에서 조선 수군은 참패했으며 원균도 전사하고 말았다. 그 차이가 무엇일까?

 

사실 당시 조선 수군의 실패위험 지수는 매우 높았다. 즉 실패 DNA가 무수히 잠재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순신은 독특한 영감과 기지를 발휘했다. 그는 '지피지기 백전불태'라는 전쟁철학을 기반으로 외부환경과 내부여건을 면밀하게 'SWOT(강점, 약점, 기회, 위협)' 분석했던 것이다. 전쟁의 패배를 막기 위해 실패 DNA를 무력화시켰다. 바로 '지피지기 백전불태'라는 예방백신을 사용했던 것이다. 이는 바로 맞춤형 백신인 셈이었다.

 

이와 같은 맥락을 토대로 실패 DNA 예방백신의 작용원리를 정리하면, 인지주의 동기이론의 '귀인歸因'과 자기충족예언의 '아브라카다브라'가 상호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쳐, 특정 사안에 대한 '인지적 판단'과 이에 대한 반복적 '언어 표현'이 강력한 '실천력'을 발휘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실패를 저지할 수 있는 구체적인 생각, 의지, 태도, 행동, 방법 등을 충분히 인지하고, 이를 말로 표현하고 믿음으로 체득하여 의식구조화시킨 다음, 실패위험에 직면하여 심리적 자극을 받게 되면, 즉각 실천할 수 있는 행동양식을 구축하는 일련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실패예방 백신 작동메커니즘의 요체는 실패를 저지할 수 있는 '관념적 해결책'이 어떻게 행동으로 구현되느냐다. 이를 위해서는 예방백신별 구체적 대응방안이나 지침에 대해 분명히 효과가 있다고 믿어야 하고, 이를 말로 옮김으로써 끊임없이 되새겨야 한다. 다시 말해 생각하고(판단하고), 믿고(긍정하고), 그것을 표현함으로써(말하고) 비로소 예방백신의 효력이 발생되는 것이다.

 

실패 DNA그룹별 예방백신

 

스티브 잡스 백신~ 생각고착 DNA그룹

마하트마 간디 백신~ 천박인성 DNA그룹

조지 워싱턴 백신~ 충동무절제 DNA그룹

윈스턴 처칠 백신~ 심지허약 DNA그룹

이순신 장군 백신~ 천방지축 DNA그룹

테레사 수녀 백신~ 도덕불감증 DNA그룹

헬렌 켈러 백신~ 자연섭리 DNA그룹

 

 

 

 

실패는 진정 유익한가?

 

잠시 주식시장으로 돌아가보자. 천정부지로 가격이 뛰던 국제 원유가가 폭락을 거듭하고 있다. 이는 지구촌 경기가 침체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다. 얼마 전만 해도 증권회사나 펀드회사들은 투자희망자에게 원유펀드를 추천했다. 최근의 보도에 의하면 원금의 70퍼센트를 이미 까먹었다고 한다.

 

흔히 실패는 좋은 경험이자 값진 자산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실패를 장려하라는 훈수도 있다. 그런데, 스포츠경기에서 패배에 익숙한 팀은 소중한 승리를 눈 앞에서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처럼 실패가 자산으로서 인정을 받으려면 재도전의 기회가 제공될 때나 할 수 있는 말이다. 원금의 70퍼센트를 까먹은 펀드가 과연 원금을 회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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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독서 - 심리학과 철학이 만나 삶을 바꾸는 지혜
박민근 지음 / 와이즈베리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힘든 시절, 내가 10년간 살았던 마을 근처에는 조그만 호수가 있었다. 아픈 마음을 추스르지 못해, 자살하려고 찾았던 호수는 마치 지옥불과도 같았다, 떨어지면 온몸이 타버릴 것만 같은. 하지만 상처를 치유하고, 의욕을 회복한 뒤 다시 바라본 호수는 생명의 젖줄처럼 정겹게 느껴졌다. 왜 이다지 포근하고 따뜻한 곳을 그토록 차디차고 살벌한 공간으로 바라보았던가 하며 깊이 반성했었다.

마음의 평정을 어느 정도 회복한 어느 날, 우연히 들른 호숫가에는 한 무리의 기러기가 내려와 머물고 있었다. 시베리아로 날아가던 기러기들이 지친 날개를 쉬기 위해 호수에 내려앉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날 나는 눈앞에서 창공으로 날아오르는 한 무리의 기러기 떼를 지켜보았다. 감동에 목이 멨다. 그날 나는 나 역시 저들처럼 날아오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상처는 영원하지 않다. 지금은 상처 입은 사람도 그때의 나처럼 반드시 다시 날아오를 것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독서를 통한 심리치료

 

"우울한 생각들에 사로잡혔을 때, 내게는 책들에게 달려가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없다. 그러면 나는 곧 책에 빨려들고 내 마음의 먹구름도 이내 사라진다" - 몽테뉴

 

그렇다. 책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 나름 빛나는 이십대를 보냈던 저자는 문학연구가나 시인을 꿈 꾸었다. 그리고 이 꿈은 이뤄지라고 믿었다. 하지만 서른 되던 해에 이 꿈을 접고 긴 방황이 시작됐다. 피치 못할 운명적 상황에 빠지면 학교를 떠나야 했고, 공부를 중단했으며, 어느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 인고忍苦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저자 박민근어린 시절 미술과 글쓰기에 빠져 살았다. 꿈은 늘 화가였다. 10대 후반 화가의 꿈을 포기하며 첫 번째 우울증에 걸려 힘든 시간을 보냈다. 독서를 통해 우울증을 극복하며 문학가의 꿈을 갖게 되었다. 20대에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문학 공부에 힘썼다. 그 시절 꿈은 문학비평가와 시인이었다. 서른 즈음 학내 사태를 겪으며 찾아온 극심한 우울증으로 고통의 시간을 보냈고, 한때 심각한 자살충동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때에도 치유서 읽기를 통해 우울증을 극복하며 내적 성장을 이루어냈다. 그 시절의 경험과 공부를 바탕으로 독서치료 연구와 임상에 15년째 매진하고 있

 

 

비평가 해럴드 블룸은 책 읽기, 문학작품 감상의 목적 가운데 하나가 '치유의 효과'라고 말한다. 세계적인 작가 알랭 드 보통도 자신이 설립한 인생학교에 독서치료 과정을 개설했다. 서구에선 독서치료가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1920년 옥스퍼드 사전에 독서치료Bibliotherapy라는 용어가 수록되기 시작했다. 이는 그리스어 biblion(책)과 therapeia(병을 고치다)의 합성어다. 

 

영국 <가디언>지에 따르면 2014년부터 영국에서는 가벼운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증상을 겪는 환자에게 약물 대신 자기구제self-help도서를 우선적으로 처방하는 소위 '책 처방'이 전국적 의료서비스로 제공되고 있다. 이미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시학詩學>에서 잘 빚은 문학작품은 인간의 감정을 카타르시스한다고 적고 있다. 이런 서구의 전통이 현대에 이르러서는 미술치료, 음악치료, 놀이치료 등처럼 독서와 문학을 활용한 독서치료가 가장 영향력 있는 심리치료 방법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아직 국내에서는 독서치료의 대중화가 요원한 실정이다. 독서치료라는 분야 자체가 문학, 철학, 심리학 등을 종합하는 통합적 학문인데 반해, 국내 학문 풍토는 학문 간 장벽이 높아 체계적인 독서치료사 양성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심리학 대학원에 가고, 심리학 석사를 받은 사람이 철학 박사과정에 진학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외국과는 달리, 우리는 여전히 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한 분야에 올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도 학사, 석사 과정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자신의 우울증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심리치료사가 된 독특한 이력을 통해 국내에서는 드문 독서치료 전문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 책은 저자가 책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했던 경험과 15년간 심리치료사로서 내담자들을 치유한 임상 결과를 토대로 실제로 효과가 입증된 50권의 책을 소개한다. 각 장은 내담자들의 실제 사례와 함께 그들에게 처방한 책에 대한 소개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소개하는 책들은 일기에 난해한 고전들이 아니다. 예컨대 불교 철학과 관련해서는 법륜 스님의 <인생수업>을, 스토아 철학과 관련해서는 이정우 교수의 <사건의 철학>을 소개하는 것처럼 독자가 읽을 수 있는 책들을 선정했다.

 

 

 

 

 


 

몸의 치유


힘겨웠던 시절,  저자에겐 건강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만들었던 몇 권의 책이 있다.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의 실체와 그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의학적 설명을 다룬 일본의 세계적인 면역학자 도오루의 <면역혁명>과 20세기의 대철학자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가 평소 의학과 질병, 건강, 치료에 대해 적은 글인 <철학자 가다머 현대의학을 말하다>이다.

 

심리치료보다 심신의 균형을 되찾는 일이 먼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신과 신체의 균형은 항상 중요한 문제였다. 특히 퇴계 이황에게는 평생의 화두였다. 퇴계 선생은 대학자이지만 천재는 결코 아니었다. 연달아 세 번이나 과거에서 낙방하고 절치부심 끝에 스물일곱 살에 급제했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자주 비교되는 율곡 이이는 열세 살에 초시, 스물두 살에 대과에 장원급제한 천재였으니 이에 비하면 대기만성형 학구파였던 셈이다. 그의 학문적 깊이는 나이가 들수록 무르익어 죽을 때까지 성장을 계속했다.

 

이런 그가 정성들여 필사하고 평생 아낀 건강서가 한 권 있다. 명나라 주권이 지은 <구선활인심법>이다. 퇴계의 <활인심방>은 수신을 돕는 일종의 양생서이다. 그리고 평생 익힌 도인기공법導引氣功法도 여기에 실려 있다. 이는 현대적 의미의 요가, 명상, 복식호흡 등으로 구성된 양생 체조이다. 그는 평소에 자신의 병약함을 간파하고 이를 극복하려고 꾸준히 노력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게 '중화탕中和湯'인데, 이는 평정심을 가져다주는 심리처방이다.

 

중화탕의 보기

 

사악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思無邪

좋은 일을 행한다行好事

마음을 속이지 않는다幕欺心

사나운 언행을 하지 않는다戒暴

조심하고 두텁게 한다愼獨

 

 

 

심신의 균형에 대한 저자의 주장은 경험적 사실에 근거한다. 그 또한 마음과 몸의 평형을 완전히 놓쳐버렸던 아픈 기억이 있다. 건강ㅇㄹ 잃으며 마음의 기력마저 급격히 소진됐던 경험이다. 서른 살이던 그는 바람 빠지는 풍선처럼 몸과 마음이 동시에 고갈되었다. 마음 안의 에너지도 신체적 건강도 최악의 상태로 치달았다.

 

 

 

우리 인생은 줄 한 가닥을 잡고 정상을 향하는 암벽 등반이 아니라, 여러 마리의 개들이 끄는 썰매와 같다. 한 가닥 줄이 끊어지면 생명을 잃는 절체절명의 상황이라기보다는 비록 한 마리 개를 잃더라도 다른 개가 그 자리를 대신해 수레를 끌 수 있는 통합과 조화의 과정인 것이다.

 
모든 썰매견이 조화롭게 보조를 맞춰 각자의 힘을 최대로 발휘하면 멋진 인생 여행이 가능하다. 그리고 특히 여러 마리의 썰매견들 가운데 건강한 체력과 마음근력이라는 두 가지는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선두 썰매견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우울증 상담에서 심신의 상관성과 운동, 햇빛 보기의 중요성, 우울증과 무기력증 해방을 위해 꼭 필요하고 긴급한 생활적 실천을 담고 있는 스티븐 S. 일라디<나는 원래 행복하다>를 자주 권한다고 한다. 일라디 박사는 이 책을 통해 기존의 심리치료 중심 방식에서 벗어나 생활 전반의 불균형 요소들을 개선해 심신의 균형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명명한 치료법이 바로 '생활개선요법'이다.

 

 

무의식의 치유

 

무의식이란 단어와 관련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은 아마도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일 것이다. 대부분의 심리문제는 헝클어진 무의식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무의식을 돌보지 않는 일은 매우 위험하다. 즉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 심적 고통은 거의 대부분 무의식적인 사실에 기인한다. 

 

심리학자이자 의사인 댄 베이커<인생 치유>란 책에서 잠재된 부정적 감정이나 정신 문제에 집중하기보다는 육체적 건강을 증진시키는 편이 오히려 치료 효과가 큰 이유를 설명하며, 기존의 프로이트 이론에 근거한 심리치료가 가진 한계들을 설명한다. 즉 프로이트 이론에 따른 카타르시스 치료나 고통스런 무의식적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정신분석 치료는 오히려 부정적 감정이나 심리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긍정심리학의 초기 공헌자 중 한 명이다.

 

"행복은 인간 존재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우울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움이 되는 건설적인 말하기 훈련 중에는 '건강한 버전으로 인생을 이야기하라'는 지침이 있다. 이는 긍정심리치료를 사용하는 심리상담가 대부분이 매우 중요하게 활용하는 기법이다. 베이커 박사는 긍정적이고 건설적으로 자신을 설명하고 자신이 경험한 일들을 표현하는 일이 우리 무의식을 부여잡고 있는 공포와 슬픔의 파충류 뇌를 잠재우고, 고등 뇌의 긍정적 반응을 활성화하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인생 치유>에서 베이커 박사는 긍정적인 표현, 타인에게 감사하는 말, 건설적인 언어로 자신의 건강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일, 그리고 사랑, 감사, 건강, 이타주의, 용기, 낙관성과 같은 긍정적 정서를 고양시키는 여러 가지 실천들이 가져오는 긍정적 효과와 행복에 대해서 알려준다.

 

지금 정서적 고통을 심하게 느낀다면 좀 더 자신의 마음, 특히 인지하기 힘든 자신의 무의식에 집중해 고통의 기억과 정념情念의 사이즈를 줄여야 한다. 그러자면 자신의 무의식을 포획하고 있는 관념과 감정, 욕망들을 이해하고 그 잘못된 매듭을, 긍정적 관념과 정서, 스토리, 행동변화를 통해 풀어나가야 한다. 긍정적 의식으로 자신의 무의식을 다시금 빚어내야 한다.

 

 

 

 

인생의 치유 

 

20대 대학원생이 상담을 받으러 저자를 찾았다. 그녀는 서울 소재 한 여대에서 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중극의 명문대로 유학 가 중국어와 경영학을 전공했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다시 모교 대학원에서 중어학을 전공하고 있었다. 그녀는고향 출신 반기문 UN사무총장처럼 훌륭한 외교관이 되고 싶어 이를 목표로 삼아 외교관후보자 선발시험 준비를 했지만 시험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시며 낙담에 빠져있었다.

 

낙담이 결국 무력감으로 이어졌다. 알고보니 그녀는 여고를 다닐 때부터 자취생활을 하면서 부모와 떨어져 지냈다. 그랬기에 그녀는 지나칠 정도로 지켜야 할 것이,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할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살아가는 내내 자신의 내적 욕구보다는 타인의 시선과 요구에 더 신경 쓰는 사람이었다. 외교관이라는 꿈 역시 본디 자기 소망이었는지 의심스러웠다.

 

역시나 의심이 현실이었다. 그녀의 다중지능 검사와 진로적성 검사에서 예술이나 방송 쪽 직업이 상위를 차지했다. 외교관과는 좀 거리가 멀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노래를 잘했다. 음악시간과 피아노 연습이 삶의 낙樂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보수적이고 완고한 아버지나 성공과 명예에 목을 맨 어머니의 기대에 맞춰 사느라 결국 자신의 꿈을 내보이지 못했으며, 남에게 성공한 것으로 통하는 자신이 정말 성공한 것인지 확신이 없었다.

 

불교에 별다른 이질감이 없길래 저자는 "절에 꼭 가야 하는 것은 아니고"라고 말하며 몇 권의 불교 서적을 적어주었다.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 <틱낫한의 명상>, 법륜 스님의 <인생 수업>, 법정 스님의 <무소유> 등이었다. 이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추천한 책은 바로 틱낫한 스님의 <틱낫한의 명상>이었다.

 
마음챙김 명상은 동남아시아의 남방불교에서 발달한 명상법이다. 쉽게 말하자면 집착을 내려놓은 채 자신의 판단을 중지시키고, 텅 빈 충만을 경험케 하는 수행법이다. 상담녀는 저자의 권유대로 <틱낫한의 명상>을 평소의 독서 속도보다 훨씬 느리게 읽고서는 큰 효과를 체감했다고 한다. 마음챙김 명상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에 관한 것이다. 

 

 

사고의 치유

 

고등학생 K군은 중증 우울증을 앓는 사람만큼이나 사고가 부정적이었다. '그래도 희망이 있지 않을까?' 같은 물음에 "아뇨. 전 이미 완전히 글렀어요"와 같은 답을 거침없이 뱉었다. 초등학교 때는 소문난 영재였고, 중학교에서도 전교 상위권 등수를 놓치지 않았던 그는 고등학교에 들어서면서 성적이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PC방을 전전하며 함께 어울리는 친구 집에서 무단외박을 하기도 했다.

 

공부가 버거워졌고 공부의 의미도 잃은 K군의 가장 큰 문제는 뇌리에 새겨진 '실패한 자기 서사敍事'였다. 여러 가지 이유들, 특히 부모의 억압, 불합리한 교육제도, 사악한 선생들 탓에 자신의 공부가 망가졌으며, 이젠 구제불능의 상태가 되고 말았다는 줄거리였다. 비뚤어진 생각을 갖고 있는 셈이다.

 

인지행동치료의 창시자로 알려진 아론 벡앨버트 엘리스는 우울증에는 무의식을 탐구하는 정신분석 치료보다 인지적 오류를 논리적 대화로 바로잡아주는 인지교정이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울한 이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사회나 세계에 대해 비관적 편향을 가진다. 그들이 가진 비관적인 생각들을 합당하고 낙관적인 것으로 바꾸면 우울증도 따라서 호전된다. 이를 '인지행동교정'이라 부른다. 인지행동치료는 우울증 치료나 불안장애 치료에 탁월하고, 현재 가장 널리 쓰이는 치료법이기도 하다.

 

 

 

 

 

 

현명하게 방황하라

 

대학 2학년인 상담녀는 복학과 휴학을 반복하고 있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 탓이었다. 상담할 당시 그녀는 작은 회사에서 비정규직 경리로 일하고 있었다. 아침 일찍 출근해 저녁 늦도록 회사 잡무를 도맡아했다. 그러면서도 뒤쳐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틈틈이 자격증에도 도전하고, 인터넷 강의로 토익도 공부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비관적인 생각이 많아졌다. 동기들은 벌써 졸업반에다 한창 취업준비 중인데 본인은 이제 겨우 3학기를 마쳤을 뿐이기 때문이다. 돈들여 공부해서 자격증을 따본들 동기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의문들에 대해 별다른 묘수가 없을 뿐더러 어찌 해본들 그 결과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냉정한 대답이 이미 그녀의 마음을 채우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왜 본인만 이럴까 하는 원망만 커졌다. 부모에 대한 원망, 도움이 되기보다는 짐이 되는 형제들, 조금도 자신을 돕지 않는 세상에 대한 증오심에 물들어갔다. 그런 상담녀가 도피처로 찾은 것은 연애였다. 말이 연애지 6개월을 넘기는 상대는 없었다. 그녀는 유독 대여섯 살 많은 직장인하고만 연애했다. 데이트 비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그녀를 위해 돈을 쓰는 남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연애를 할때는 데이트, 드라이브, 여행, 섹스 등에 빠져 딴 걱정을 까맣게 잊었다.

 

문제는 공백기였다. 짧은 연애가 끝나고, 다음 상대를 만나는 잠깐 사이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어김없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고민과 맞닥뜨리면 잠 못 이루며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다시 의무적으로 소개팅에 나가고 별로 맘에 들지 않는 상대와 곧 연애를 시작하는 패턴을 보였다.

 

이렇게 그녀가 말해준, 마음을 공유하지 않은 연애 얘기는 무척이나 아프고 안타깝게 들렸다. 이에 저자는 그녀에게 20대의 방황은 필수라고 설명했다. 충분히 방황하지 않고 이 시기를 보내거나 성급하게 진로를 택하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위로했다. 선구적인 심리학자 에릭 H. 에릭슨은 청년기의 방황은 피치 못할 일이라고 말한다.

 

충분히 방황하고 고뇌하여 청년기의 자아정체성 위기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다면 사회인으로 나아가는 성장을 멈춘 채, 정체와 퇴행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누구나 보내야 하는 이 방황의 시간에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더 많은 취업 공부, 스펙 쌓기, 학벌 세탁 같은 건 분명 아닐 것이다. 방황의 끝에 얻어야 할 것은 충분한 자기이해와 자성自省이다. 자성이 충분히 이루어진다면 방황도 멈출 것이다. 

 

 

 

 

운명을 사랑하라

 

'나는 멍청하게 태어났다(그는 자신의 지능이 낮은 것을 비관하며 유전자의 문제에 대해 자주 언급했다). 부모 역시 못 배우고 가난했다. 어리석은 아버지가 사업을 벌였다가 바보처럼 망하고 말았다. 바보가 사업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엄마 역시 늘 무능하고 자식 뒷바라지를 제대로 못했다. 그러니 나 역시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없었다. 겨우 지방의 전문대학을 나왔는데, 그것도 빚으로 학비를 충당해야 했고, 졸업 후에도 변변치 않은 일들을 전전했다. 마침 시작하게 된 그 선배와의 사업이 나에게 최선의 기회라고 여기고 죽을힘을 다했고, 잠시 성공의 향기를 맡기도 했지만,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나는 지금 세상의 루저 중에서도 루저이다'


그는 상담 초기 운명과 자신을 탓하는 내용으로 대화를 채웠다. H는 사는 내내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고, 증오해왔다. 그는 절대 불가능한, 자기 없이 자기를 만드는 바벨탑을 쌓고 있었다. 그는 자기 것이 아니라며 외면했던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다. H에게 운명을 긍정하는 스토아 철학을 알기 쉽게 소개한 책들을 권했다. 바로 이정우 교수의 <사건의 철학>이었다.

 

자신의 마음을 바꾸는 것은 할 수 있는 일이며, 타인의 마음을 바꾸는 것은 할 수 없는 일이다. 할 수 있는 일에 힘을 쓰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며, 할 수 없는 일에 신경 쓰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 에픽테토스, 로마의 철학자 

 

 

 

 

 

 

상처에 연고 바르듯 마음 아플 때 책을 읽어라

 

독서치료는 우리의 인생 그 자체와 삶의 과정에서 마주치는 문제들에 대해 토론하는 인생학교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사람들 각자가 새로운 삶의 단계에 나아가도록 해방시키는 책들을, 그 사람의 처지와 상황에 딱 맞게 제시하기란 정말 어렵다. 독서치료는 이런 면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두어왔다. - 알랭 드 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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