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독서 - 심리학과 철학이 만나 삶을 바꾸는 지혜
박민근 지음 / 와이즈베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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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시절, 내가 10년간 살았던 마을 근처에는 조그만 호수가 있었다. 아픈 마음을 추스르지 못해, 자살하려고 찾았던 호수는 마치 지옥불과도 같았다, 떨어지면 온몸이 타버릴 것만 같은. 하지만 상처를 치유하고, 의욕을 회복한 뒤 다시 바라본 호수는 생명의 젖줄처럼 정겹게 느껴졌다. 왜 이다지 포근하고 따뜻한 곳을 그토록 차디차고 살벌한 공간으로 바라보았던가 하며 깊이 반성했었다.

마음의 평정을 어느 정도 회복한 어느 날, 우연히 들른 호숫가에는 한 무리의 기러기가 내려와 머물고 있었다. 시베리아로 날아가던 기러기들이 지친 날개를 쉬기 위해 호수에 내려앉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날 나는 눈앞에서 창공으로 날아오르는 한 무리의 기러기 떼를 지켜보았다. 감동에 목이 멨다. 그날 나는 나 역시 저들처럼 날아오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상처는 영원하지 않다. 지금은 상처 입은 사람도 그때의 나처럼 반드시 다시 날아오를 것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독서를 통한 심리치료

 

"우울한 생각들에 사로잡혔을 때, 내게는 책들에게 달려가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없다. 그러면 나는 곧 책에 빨려들고 내 마음의 먹구름도 이내 사라진다" - 몽테뉴

 

그렇다. 책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 나름 빛나는 이십대를 보냈던 저자는 문학연구가나 시인을 꿈 꾸었다. 그리고 이 꿈은 이뤄지라고 믿었다. 하지만 서른 되던 해에 이 꿈을 접고 긴 방황이 시작됐다. 피치 못할 운명적 상황에 빠지면 학교를 떠나야 했고, 공부를 중단했으며, 어느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 인고忍苦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저자 박민근어린 시절 미술과 글쓰기에 빠져 살았다. 꿈은 늘 화가였다. 10대 후반 화가의 꿈을 포기하며 첫 번째 우울증에 걸려 힘든 시간을 보냈다. 독서를 통해 우울증을 극복하며 문학가의 꿈을 갖게 되었다. 20대에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문학 공부에 힘썼다. 그 시절 꿈은 문학비평가와 시인이었다. 서른 즈음 학내 사태를 겪으며 찾아온 극심한 우울증으로 고통의 시간을 보냈고, 한때 심각한 자살충동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때에도 치유서 읽기를 통해 우울증을 극복하며 내적 성장을 이루어냈다. 그 시절의 경험과 공부를 바탕으로 독서치료 연구와 임상에 15년째 매진하고 있

 

 

비평가 해럴드 블룸은 책 읽기, 문학작품 감상의 목적 가운데 하나가 '치유의 효과'라고 말한다. 세계적인 작가 알랭 드 보통도 자신이 설립한 인생학교에 독서치료 과정을 개설했다. 서구에선 독서치료가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1920년 옥스퍼드 사전에 독서치료Bibliotherapy라는 용어가 수록되기 시작했다. 이는 그리스어 biblion(책)과 therapeia(병을 고치다)의 합성어다. 

 

영국 <가디언>지에 따르면 2014년부터 영국에서는 가벼운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증상을 겪는 환자에게 약물 대신 자기구제self-help도서를 우선적으로 처방하는 소위 '책 처방'이 전국적 의료서비스로 제공되고 있다. 이미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시학詩學>에서 잘 빚은 문학작품은 인간의 감정을 카타르시스한다고 적고 있다. 이런 서구의 전통이 현대에 이르러서는 미술치료, 음악치료, 놀이치료 등처럼 독서와 문학을 활용한 독서치료가 가장 영향력 있는 심리치료 방법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아직 국내에서는 독서치료의 대중화가 요원한 실정이다. 독서치료라는 분야 자체가 문학, 철학, 심리학 등을 종합하는 통합적 학문인데 반해, 국내 학문 풍토는 학문 간 장벽이 높아 체계적인 독서치료사 양성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심리학 대학원에 가고, 심리학 석사를 받은 사람이 철학 박사과정에 진학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외국과는 달리, 우리는 여전히 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한 분야에 올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도 학사, 석사 과정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자신의 우울증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심리치료사가 된 독특한 이력을 통해 국내에서는 드문 독서치료 전문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 책은 저자가 책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했던 경험과 15년간 심리치료사로서 내담자들을 치유한 임상 결과를 토대로 실제로 효과가 입증된 50권의 책을 소개한다. 각 장은 내담자들의 실제 사례와 함께 그들에게 처방한 책에 대한 소개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소개하는 책들은 일기에 난해한 고전들이 아니다. 예컨대 불교 철학과 관련해서는 법륜 스님의 <인생수업>을, 스토아 철학과 관련해서는 이정우 교수의 <사건의 철학>을 소개하는 것처럼 독자가 읽을 수 있는 책들을 선정했다.

 

 

 

 

 


 

몸의 치유


힘겨웠던 시절,  저자에겐 건강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만들었던 몇 권의 책이 있다.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의 실체와 그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의학적 설명을 다룬 일본의 세계적인 면역학자 도오루의 <면역혁명>과 20세기의 대철학자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가 평소 의학과 질병, 건강, 치료에 대해 적은 글인 <철학자 가다머 현대의학을 말하다>이다.

 

심리치료보다 심신의 균형을 되찾는 일이 먼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신과 신체의 균형은 항상 중요한 문제였다. 특히 퇴계 이황에게는 평생의 화두였다. 퇴계 선생은 대학자이지만 천재는 결코 아니었다. 연달아 세 번이나 과거에서 낙방하고 절치부심 끝에 스물일곱 살에 급제했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자주 비교되는 율곡 이이는 열세 살에 초시, 스물두 살에 대과에 장원급제한 천재였으니 이에 비하면 대기만성형 학구파였던 셈이다. 그의 학문적 깊이는 나이가 들수록 무르익어 죽을 때까지 성장을 계속했다.

 

이런 그가 정성들여 필사하고 평생 아낀 건강서가 한 권 있다. 명나라 주권이 지은 <구선활인심법>이다. 퇴계의 <활인심방>은 수신을 돕는 일종의 양생서이다. 그리고 평생 익힌 도인기공법導引氣功法도 여기에 실려 있다. 이는 현대적 의미의 요가, 명상, 복식호흡 등으로 구성된 양생 체조이다. 그는 평소에 자신의 병약함을 간파하고 이를 극복하려고 꾸준히 노력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게 '중화탕中和湯'인데, 이는 평정심을 가져다주는 심리처방이다.

 

중화탕의 보기

 

사악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思無邪

좋은 일을 행한다行好事

마음을 속이지 않는다幕欺心

사나운 언행을 하지 않는다戒暴

조심하고 두텁게 한다愼獨

 

 

 

심신의 균형에 대한 저자의 주장은 경험적 사실에 근거한다. 그 또한 마음과 몸의 평형을 완전히 놓쳐버렸던 아픈 기억이 있다. 건강ㅇㄹ 잃으며 마음의 기력마저 급격히 소진됐던 경험이다. 서른 살이던 그는 바람 빠지는 풍선처럼 몸과 마음이 동시에 고갈되었다. 마음 안의 에너지도 신체적 건강도 최악의 상태로 치달았다.

 

 

 

우리 인생은 줄 한 가닥을 잡고 정상을 향하는 암벽 등반이 아니라, 여러 마리의 개들이 끄는 썰매와 같다. 한 가닥 줄이 끊어지면 생명을 잃는 절체절명의 상황이라기보다는 비록 한 마리 개를 잃더라도 다른 개가 그 자리를 대신해 수레를 끌 수 있는 통합과 조화의 과정인 것이다.

 
모든 썰매견이 조화롭게 보조를 맞춰 각자의 힘을 최대로 발휘하면 멋진 인생 여행이 가능하다. 그리고 특히 여러 마리의 썰매견들 가운데 건강한 체력과 마음근력이라는 두 가지는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선두 썰매견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우울증 상담에서 심신의 상관성과 운동, 햇빛 보기의 중요성, 우울증과 무기력증 해방을 위해 꼭 필요하고 긴급한 생활적 실천을 담고 있는 스티븐 S. 일라디<나는 원래 행복하다>를 자주 권한다고 한다. 일라디 박사는 이 책을 통해 기존의 심리치료 중심 방식에서 벗어나 생활 전반의 불균형 요소들을 개선해 심신의 균형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명명한 치료법이 바로 '생활개선요법'이다.

 

 

무의식의 치유

 

무의식이란 단어와 관련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은 아마도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일 것이다. 대부분의 심리문제는 헝클어진 무의식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무의식을 돌보지 않는 일은 매우 위험하다. 즉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 심적 고통은 거의 대부분 무의식적인 사실에 기인한다. 

 

심리학자이자 의사인 댄 베이커<인생 치유>란 책에서 잠재된 부정적 감정이나 정신 문제에 집중하기보다는 육체적 건강을 증진시키는 편이 오히려 치료 효과가 큰 이유를 설명하며, 기존의 프로이트 이론에 근거한 심리치료가 가진 한계들을 설명한다. 즉 프로이트 이론에 따른 카타르시스 치료나 고통스런 무의식적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정신분석 치료는 오히려 부정적 감정이나 심리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긍정심리학의 초기 공헌자 중 한 명이다.

 

"행복은 인간 존재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우울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움이 되는 건설적인 말하기 훈련 중에는 '건강한 버전으로 인생을 이야기하라'는 지침이 있다. 이는 긍정심리치료를 사용하는 심리상담가 대부분이 매우 중요하게 활용하는 기법이다. 베이커 박사는 긍정적이고 건설적으로 자신을 설명하고 자신이 경험한 일들을 표현하는 일이 우리 무의식을 부여잡고 있는 공포와 슬픔의 파충류 뇌를 잠재우고, 고등 뇌의 긍정적 반응을 활성화하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인생 치유>에서 베이커 박사는 긍정적인 표현, 타인에게 감사하는 말, 건설적인 언어로 자신의 건강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일, 그리고 사랑, 감사, 건강, 이타주의, 용기, 낙관성과 같은 긍정적 정서를 고양시키는 여러 가지 실천들이 가져오는 긍정적 효과와 행복에 대해서 알려준다.

 

지금 정서적 고통을 심하게 느낀다면 좀 더 자신의 마음, 특히 인지하기 힘든 자신의 무의식에 집중해 고통의 기억과 정념情念의 사이즈를 줄여야 한다. 그러자면 자신의 무의식을 포획하고 있는 관념과 감정, 욕망들을 이해하고 그 잘못된 매듭을, 긍정적 관념과 정서, 스토리, 행동변화를 통해 풀어나가야 한다. 긍정적 의식으로 자신의 무의식을 다시금 빚어내야 한다.

 

 

 

 

인생의 치유 

 

20대 대학원생이 상담을 받으러 저자를 찾았다. 그녀는 서울 소재 한 여대에서 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중극의 명문대로 유학 가 중국어와 경영학을 전공했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다시 모교 대학원에서 중어학을 전공하고 있었다. 그녀는고향 출신 반기문 UN사무총장처럼 훌륭한 외교관이 되고 싶어 이를 목표로 삼아 외교관후보자 선발시험 준비를 했지만 시험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시며 낙담에 빠져있었다.

 

낙담이 결국 무력감으로 이어졌다. 알고보니 그녀는 여고를 다닐 때부터 자취생활을 하면서 부모와 떨어져 지냈다. 그랬기에 그녀는 지나칠 정도로 지켜야 할 것이,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할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살아가는 내내 자신의 내적 욕구보다는 타인의 시선과 요구에 더 신경 쓰는 사람이었다. 외교관이라는 꿈 역시 본디 자기 소망이었는지 의심스러웠다.

 

역시나 의심이 현실이었다. 그녀의 다중지능 검사와 진로적성 검사에서 예술이나 방송 쪽 직업이 상위를 차지했다. 외교관과는 좀 거리가 멀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노래를 잘했다. 음악시간과 피아노 연습이 삶의 낙樂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보수적이고 완고한 아버지나 성공과 명예에 목을 맨 어머니의 기대에 맞춰 사느라 결국 자신의 꿈을 내보이지 못했으며, 남에게 성공한 것으로 통하는 자신이 정말 성공한 것인지 확신이 없었다.

 

불교에 별다른 이질감이 없길래 저자는 "절에 꼭 가야 하는 것은 아니고"라고 말하며 몇 권의 불교 서적을 적어주었다.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 <틱낫한의 명상>, 법륜 스님의 <인생 수업>, 법정 스님의 <무소유> 등이었다. 이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추천한 책은 바로 틱낫한 스님의 <틱낫한의 명상>이었다.

 
마음챙김 명상은 동남아시아의 남방불교에서 발달한 명상법이다. 쉽게 말하자면 집착을 내려놓은 채 자신의 판단을 중지시키고, 텅 빈 충만을 경험케 하는 수행법이다. 상담녀는 저자의 권유대로 <틱낫한의 명상>을 평소의 독서 속도보다 훨씬 느리게 읽고서는 큰 효과를 체감했다고 한다. 마음챙김 명상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에 관한 것이다. 

 

 

사고의 치유

 

고등학생 K군은 중증 우울증을 앓는 사람만큼이나 사고가 부정적이었다. '그래도 희망이 있지 않을까?' 같은 물음에 "아뇨. 전 이미 완전히 글렀어요"와 같은 답을 거침없이 뱉었다. 초등학교 때는 소문난 영재였고, 중학교에서도 전교 상위권 등수를 놓치지 않았던 그는 고등학교에 들어서면서 성적이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PC방을 전전하며 함께 어울리는 친구 집에서 무단외박을 하기도 했다.

 

공부가 버거워졌고 공부의 의미도 잃은 K군의 가장 큰 문제는 뇌리에 새겨진 '실패한 자기 서사敍事'였다. 여러 가지 이유들, 특히 부모의 억압, 불합리한 교육제도, 사악한 선생들 탓에 자신의 공부가 망가졌으며, 이젠 구제불능의 상태가 되고 말았다는 줄거리였다. 비뚤어진 생각을 갖고 있는 셈이다.

 

인지행동치료의 창시자로 알려진 아론 벡앨버트 엘리스는 우울증에는 무의식을 탐구하는 정신분석 치료보다 인지적 오류를 논리적 대화로 바로잡아주는 인지교정이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울한 이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사회나 세계에 대해 비관적 편향을 가진다. 그들이 가진 비관적인 생각들을 합당하고 낙관적인 것으로 바꾸면 우울증도 따라서 호전된다. 이를 '인지행동교정'이라 부른다. 인지행동치료는 우울증 치료나 불안장애 치료에 탁월하고, 현재 가장 널리 쓰이는 치료법이기도 하다.

 

 

 

 

 

 

현명하게 방황하라

 

대학 2학년인 상담녀는 복학과 휴학을 반복하고 있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 탓이었다. 상담할 당시 그녀는 작은 회사에서 비정규직 경리로 일하고 있었다. 아침 일찍 출근해 저녁 늦도록 회사 잡무를 도맡아했다. 그러면서도 뒤쳐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틈틈이 자격증에도 도전하고, 인터넷 강의로 토익도 공부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비관적인 생각이 많아졌다. 동기들은 벌써 졸업반에다 한창 취업준비 중인데 본인은 이제 겨우 3학기를 마쳤을 뿐이기 때문이다. 돈들여 공부해서 자격증을 따본들 동기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의문들에 대해 별다른 묘수가 없을 뿐더러 어찌 해본들 그 결과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냉정한 대답이 이미 그녀의 마음을 채우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왜 본인만 이럴까 하는 원망만 커졌다. 부모에 대한 원망, 도움이 되기보다는 짐이 되는 형제들, 조금도 자신을 돕지 않는 세상에 대한 증오심에 물들어갔다. 그런 상담녀가 도피처로 찾은 것은 연애였다. 말이 연애지 6개월을 넘기는 상대는 없었다. 그녀는 유독 대여섯 살 많은 직장인하고만 연애했다. 데이트 비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그녀를 위해 돈을 쓰는 남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연애를 할때는 데이트, 드라이브, 여행, 섹스 등에 빠져 딴 걱정을 까맣게 잊었다.

 

문제는 공백기였다. 짧은 연애가 끝나고, 다음 상대를 만나는 잠깐 사이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어김없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고민과 맞닥뜨리면 잠 못 이루며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다시 의무적으로 소개팅에 나가고 별로 맘에 들지 않는 상대와 곧 연애를 시작하는 패턴을 보였다.

 

이렇게 그녀가 말해준, 마음을 공유하지 않은 연애 얘기는 무척이나 아프고 안타깝게 들렸다. 이에 저자는 그녀에게 20대의 방황은 필수라고 설명했다. 충분히 방황하지 않고 이 시기를 보내거나 성급하게 진로를 택하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위로했다. 선구적인 심리학자 에릭 H. 에릭슨은 청년기의 방황은 피치 못할 일이라고 말한다.

 

충분히 방황하고 고뇌하여 청년기의 자아정체성 위기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다면 사회인으로 나아가는 성장을 멈춘 채, 정체와 퇴행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누구나 보내야 하는 이 방황의 시간에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더 많은 취업 공부, 스펙 쌓기, 학벌 세탁 같은 건 분명 아닐 것이다. 방황의 끝에 얻어야 할 것은 충분한 자기이해와 자성自省이다. 자성이 충분히 이루어진다면 방황도 멈출 것이다. 

 

 

 

 

운명을 사랑하라

 

'나는 멍청하게 태어났다(그는 자신의 지능이 낮은 것을 비관하며 유전자의 문제에 대해 자주 언급했다). 부모 역시 못 배우고 가난했다. 어리석은 아버지가 사업을 벌였다가 바보처럼 망하고 말았다. 바보가 사업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엄마 역시 늘 무능하고 자식 뒷바라지를 제대로 못했다. 그러니 나 역시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없었다. 겨우 지방의 전문대학을 나왔는데, 그것도 빚으로 학비를 충당해야 했고, 졸업 후에도 변변치 않은 일들을 전전했다. 마침 시작하게 된 그 선배와의 사업이 나에게 최선의 기회라고 여기고 죽을힘을 다했고, 잠시 성공의 향기를 맡기도 했지만,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나는 지금 세상의 루저 중에서도 루저이다'


그는 상담 초기 운명과 자신을 탓하는 내용으로 대화를 채웠다. H는 사는 내내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고, 증오해왔다. 그는 절대 불가능한, 자기 없이 자기를 만드는 바벨탑을 쌓고 있었다. 그는 자기 것이 아니라며 외면했던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다. H에게 운명을 긍정하는 스토아 철학을 알기 쉽게 소개한 책들을 권했다. 바로 이정우 교수의 <사건의 철학>이었다.

 

자신의 마음을 바꾸는 것은 할 수 있는 일이며, 타인의 마음을 바꾸는 것은 할 수 없는 일이다. 할 수 있는 일에 힘을 쓰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며, 할 수 없는 일에 신경 쓰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 에픽테토스, 로마의 철학자 

 

 

 

 

 

 

상처에 연고 바르듯 마음 아플 때 책을 읽어라

 

독서치료는 우리의 인생 그 자체와 삶의 과정에서 마주치는 문제들에 대해 토론하는 인생학교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사람들 각자가 새로운 삶의 단계에 나아가도록 해방시키는 책들을, 그 사람의 처지와 상황에 딱 맞게 제시하기란 정말 어렵다. 독서치료는 이런 면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두어왔다. - 알랭 드 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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