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정요 강의 - 리더십, 천 년의 지혜를 읽다
타구치 요시후미 지음, 송은애 옮김 / 미래의창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창업이나 수성이라고 하면 기업인을 대상으로 한 이야기라고 느낄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회사나 기업이 아니더라도 어떤 조직에서 리더를 꿈꾸는 젊은이들, 현재 리더를 맡아 조직 운영에 관여하는 사람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새로운 부서로 이동하거나 승진하는 일은 물론이거니와 사생활면에서 결혼해 가정을 이루는 등, 인생에서 겪는 변화의 시기는 대부분 '창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조직의 영구적이고 안정적인 발전(수성)을 목표로 하는 사람에게도 <정관정요>는 분명 훌륭한 실천서가 되어줄 것입니다. - '서문' 중에서



정관정요의 리더십 지혜를 배운다

저자 타구치 요시후미는 니혼대학교 예술학부를 졸업한 후 신인 기록물 영화감독으로 활약하던 중, 만 25세 때 태국에서 중상을 입는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처음으로 <노자>를 만났고, 이를 계기로 중국 고전사상 연구에 몰두하게 된다. 40년 이상 동양 사상을 연구해 왔으며, 현재 동양 윤리학, 동양 리더십의 일인자라 불린다. 

1972년 주식회사 '이미지 플랜'을 창업, 대표이사 겸 사장을 맡아 수천 개 회사에서 기업 개혁을 지도했으며, 또 기업, 관공서, 지방자치제, 교육기관 등, 일본 전국을 돌며 활발히 강연 및 강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주로 '동양 사상으로 배우는 인간의 힘'에 관한 그의 강연을 수강한 인원이 만 명을 넘는다. 국내에 출간된 저서로는 <사장을 위한 손자병법>, <40대, 강해져야 살아남는다>, <논어 한마디>, <노자의 무언>, <손자의 지언>, <초역 노자의 말>, <초역 손자병법>, <비즈니스 리더를 위한 노자 도덕경 강의> 등이 있다. 


소위 '제왕학'의 고전으로 불리는 <정관정요>는 천년의 긴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경영인과 지도자들에게 리더십의 비결을 알려준다. 598년, 혼란에 빠진 수나라 말기에 이연李淵의 차남으로 태어난 이세민은 아버지를 도와 당나라 창건에 큰 공을 세운다. 하지만 당 건국 초에는 곳곳에 여전히 세력을 자랑하는 군벌들이 다수 남아 있었기에 이세민은 각지를 돌면서 토벌에 나섰했다. 비록 이세민이 2대 황제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당 건국의 주역이자 중국 통일의 최대 공로자인 셈이다.


이미 무장으로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던 이세민은 황제에 즉위하자마자 180도 달라진다. 연호를 새롭게 '정관貞觀'으로 정하고(627년), 무단武斷정치에서 문치정치로 탈바꿈했다. 나라를 일으키는 창업創業 시기에는 힘이 닿는 한 공격을 계속하는 무단정치를 펼쳐야 하지만 정권을 수립한 후 수성守成의 시기에 접어들면 상황이 달라진다. 태종은 나라의 법률과 제도를 정비하고, 유학을 통해 백성을 교화하는 일에 온힘을 쏟았다. 


이런 태종의 국가 경영은 훗날 '정관지치貞觀之治'라 불리며 극찬을 받게 되는데, 이런 공적은 간의대부 위징魏徵을 비롯한 측근들의 간언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정관정요>에는 군주의 이상적인 자세, 올바른 국가의 조건을 둘러싸고 태종과 신하들 사이에 오갔던 깊이 있는 논쟁 등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따라서 재미와 함께, 이를 응용하고 실천할 때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창업創業과 수성守城


태종이 '창업과 수성, 어느 쪽이 어려운가?'라는 주제를 놓고 위징, 방현령과 함께 문답을 주고 받는다. 이에 위징과 방현령의 의견은 정반대로 나뉜다. 그러자 태종은 어느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않는다. 이는 배려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태종이 원하는 바는 "창업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으니, 수성의 시대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한마음으로 진력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창업에서 수성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현대의 비즈니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예를 들어, 회사를 창업했거나 임원으로 승진했을 때, 해당 리더는 매우 기세등등한 상태이다. 사내에서는 물론, 세상도 그를 크게 주목하고 높이 평가할 것이다. 언론조차 '시대의 영웅'이라며 추켜세울지도 모른다. 또 수많은 역경을 극복하고 실력이 엇비슷한 자들과 경쟁해 끝내 승리한 과정을 반추하면서 자아도취에 빠져버릴 우려도 있다.

 

"나는 정말 열심히 했다. 이 성공은 내 노력의 대가이다. 좋아, 더 힘차게 달려 나가자!"

 

이럴 때 바로 자만심이 싹튼다. 즉 창업으로 얻은 권력을 믿고 독선적으로 행동하기 쉽다. 부하들을 독려하면서 채찍을 휘두르기도 하는데, 오늘날의 창업주들도 이런 태도를 보인다. 자기 자신은 사업 초기의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결국 성공했으므로 모두 자신을 본받아야 한다는 듯이, 직원들을 혹사시키며 '예스맨' 조직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런 후 회삿돈을 횡령하거나 분식회계 부정을 저지르기도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태종처럼 "창업의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며 스스로 확실하게 선을 긋는 일이다. 그리고 이후에는 모든 활동의 초점을 '수성'에 맞추고 조직을 다지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따라서, 창업기를 벗어났다면, 일단 저돌적인 공격형 기세를 늦추고, 전체 구성원들과 힘을 합쳐서 조직을 안정시키고 계속 유지해 나가는 쪽으로 사고방식을 바끄어야 한다.



느슨함과 팽팽함을 구분해 사용하라

정관 3년, 태종은 신하들에게 '군주란 참으로 어려운 자리'라고 토로한다. 끊임없이 노력하여 정치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던 중, '배움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같은 일을 3년이나 계속하면 어느 정도 익숙해지지만, 앞으로 더욱 성장할지, 그 자리에서 멈출지는 본인의 자기 평가에 달려 있다. 스스로 자질 높은 리더라고 만족해버리면 성장은 멈추고 만다. 아니, 오히려 퇴보하게 된다.

 

하지만 '아직 갈길이 멀다'고 생각한다면 한층 더 성장하게 될 것이다. 때때로 열심히 일하면 일할수록 자신의 부족함이 더욱 두드러져 보이곤 한다. 업무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해서 그것으로 만족한다면 훗날 결국엔 위기를 맞게 된다. 따라서 태종처럼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 태종은 대체 무엇을 어렵다고 느꼈을까? 태종은 이렇게 말한다.

 

"지나치게 엄격한 법은 오히려 선한 사람에게 법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식의 악행을 저지르게 할 우려가 있다. 반대로 느슨한 법은 악한 사람을 제멋대로 날뛰게 만드는 꼴이 된다. 이를 조절하는 일이 실로 어렵다"

 

이에 관해 간의대부 위징은 "마음에 여유가 없을 때는 법을 관대하게 하고 반대로 마음이 느슨해졌을 때는 법으로 엄격하게 단속해야 한다. 시대나 사회 정세는 계속 변하는 법이니, 법률의 운영 방식이 역시 바뀌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요컨대 상황에 따라 느슨함寬팽팽함猛을 구분해 사용하라는 의미인 것이다.



인재를 알아 볼 수 있어야 한다

"재능이 특출한 인물을 찾기 힘들다고 그대는 말하지만 무엇보다 짐은 그런 인재를 원하지 않소. 그릇에도 제각각 용도가 있듯이, 인재 역시 '이 사람의 이런 능력은 이러이러한 일에 활용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찾으면 되지 않소? 요즘 시대에 훌륭한 인재가 없다 해서 다른 시대에서 데려올 수도 없는 노릇이오. 역대 어느 정권이나 당대의 인물을 채용했을 뿐, 다른 시대 인물을 채용한 것이 아니지 않소. 은나라 고종(무정武丁)의 측근 중 한 사람은 고종이 꿈에서 봤다는 인물의 얼굴 생김새를 가슴에 깊이 새기고 전국으로 찾으러 다녔소. 그리고 어느 공사 현장의 인부가 이 자와 매우 흡사하다는 말을 듣고 그를 천거했다고 하오. 그렇게 찾아낸 인물이 훗날 실제로 2인자가 되었소. 또 주나라 문왕은 사냥을 나갔을 때, 낚시를 하는 여상呂尙을 보고는 비범한 인물이라 생각하고 말을 걸었소. 그 여상이 후에 뛰어난 재상이 되었다는 전설까지 있소. 어느 시대나 인재가 없는 게 아니오. 짐은 실제로 뛰어난 인재가 있는데도 이쪽에서 그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되오"

 

이는 태종 이세민이 상서우복야 봉덕이封德彛를 엄하게 훈계하는 장면이다. 마땅한 인재가 없다고 푸념만 늘어놓고 적극적으로 인재를 찾으려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말이다. 즉 단지 특출난 인물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는 행위는 마치 감이 익어 자기 입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직무태만'이라는 지적인 셈이다. 복지부동伏地不動의 자세를 미덕으로 삼는 공무원들이 이 글을 읽었으면 좋겠다.

 

 

교만을 경계하라

 

군자주야君者舟也, 서인자수야庶人者水也. 수즉재주水則載舟, 수즉복주水則覆舟

 

이는 <순자荀子>에 나오눈 유명한 구절로, "군주는 배와 같고, 백성은 물과 같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엎기도 한다"는 뜻으로, 군주를 배, 백성을 물에 비유하고 있다. 배는 물의 흐름을 타고 전진하지만, 한번 물살이 거칠어지면 순식간에 뒤집히고 만다. 마찬가지로 군주는 백성이 섬기는 덕으로 존재하지만 반대로 그 백성에게 쫓겨날 때도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대한민국은 이를 실제로 경험한 바 있다. 위징도 이 말을 인용해 다음과 같이 태종에게 간언한다.

 

"군주에게 교만함이 싹트기 시작하면 신하는 물론, 핏줄조차 정이 뚝 떨어질 것입니다. 백성의 마음도 멀어져 가겠지요. 그러면 생각대로 아랫사람이 움직이지 않는다며 혹독한 형벌을 내리거나 권세를 휘두르게 되니, 민심은 더욱 멀어집니다. 겉으로는 공경을 표하는 듯 보여도 진심으로 군주를 따르지 않습니다. 이런 원망이 점점 쌓이면 백성은 몹시 두려운 존재가 됩니다. 모두 군주를 쓰러뜨리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지요. 백성이 있어야만 군주 역시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디 명심하셔야 합니다"

 

 

사리사욕을 멀리하라

 

태종은 즉위한 후, 곧 바로 궁녀 3천여 명에게 자유를 주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자는 애첩을 여럿 두는 게 관례였다. 비단 임금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귀족도 그러했다. 특히, 왕이라면 후계자를 많이 두어 나라의 존속을 튼튼히해야 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세민은 3천여 명의 후궁들이 자유로운 삶을 즐길 수 있도록 조치했다. 그가 이렇게 한 이유는 많은 후궁을 거느리는 것 자체가 바로 '백성의 재산을 맘대로 사용하는 행위'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요즘 말로 환언하면 '혈세의 낭비'로 간주한 셈이다. 당 태종 이세민의 이런 조치를 가슴에 담아야 할 사람들이 있다. 바로 정치인들이다. 한국 정치인들은 이를 따끔한 굴욕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툭하면 연말연시에 남은 예산을 다음 회기로 이월시키지 않고 '탕진잼'에 나선다. 왜 그렇게 외국 정치 순방이 많은지 말이다. 실제로는 놀러가는 외유이면서. 이 많은 돈은 누구의 것인가? 바로 국민의 '혈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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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인포그래픽스 - 우주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지식, 2018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수과학도서 푸른지식 그래픽로직 12
스튜어트 로.크리스 노스 지음, 김부민 옮김 / 푸른지식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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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와 천문학은 실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주다. 어린 시절 밤하늘을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 않았던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주에 관한 설명은 대개 복잡하고 미묘해서 이해하기 어렵게 느껴지지만, 밑바탕에 깔린 기본적인 발상은 어떤 면에서 보면 매우 친숙한 개념이다. 광대한 우주를 설명할 때 쓰이는 거리와 단위는 너무나 커서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그래서 단순히 그 엄청난 숫자를 적는 것만으로는 우주를 이해하기 어렵다. - '들어가며' 중에서

 

 

우주의 모든 것을 그림으로 배운다

 

책의 저자 스튜어트 로는 어려운 과학 지식을 꼬맹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하는 우주과학자로, 조드럴뱅크천문대에서 연구원으로 일했으며, 영국과 폴란드 천문대가 사용하는 전파망원경의 천문학 장치를 공동 개발했다. 맨체스터대학교 연구원 재직 시절에는 유럽우주국과 함께 플랑크 위성 작업에도 참여했다. 또 그는 영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정기적으로 녹음된 천문학 팟캐스트 방송 '조드캐스트'의 공동 창립자이며, 최근에는 라스쿰브레스글로벌망원경천문대와 협력해 천문학 전문가부터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까지 누구나 접속할 수 있는 우주과학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공저자 크리스 노스는 우주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물리 현상을 탐구하는 천문학자로, 현재는 허셜우주망원경팀에 소속되어 우리 은하와 전 우주에서 별들이 내뿜는 원적외선을 바라보고 있다. 카디프대학교의 물리천문학 학술연구원이기도 한 그는 대학교의 지역 봉사활동 프로그램에도 활발히 참여하면서 교사와 학생을 포함해 우주와 천문학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우주를 관측하는 수많은 실험과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여러 해 동안 BBC의 <밤하늘 쇼>에 정기적으로 출연해 거대한 우주의 풍경을 대중에게 전했다.

 

총 9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선 우주를 이해하는 과정과 우주에 대한 개념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코스모스 인포그래픽스다. 저자들이 다룬 주제는 지구에서 달까지 가는 인류의 달 탐사에서 수십억 광년 거리에 걸쳐 모든 우주에 흩뿌려진 수많은 은하계까지, 천국을 찾고자 망원경을 만들려던 시도에서 외계 문명에 접촉하려는 시도까지 실로 다양하다. 비록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읽어가다 보면 분명 흥미로운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인류의 우주 비행

 

우주를 비행한 인류 최초인은 소련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이다. 그는 1961년에 처음으로 지표면에서 1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상공에 위치한 우주에 도달했다. 이어서 1963년엔 소련의 우주비행사 발렌티나 테레시코바가 여성 최초로 우주로 나갔다. 이후 우주로의 비행이 점점 늘면서 미국의 아폴로 11호 발사 당시엔 정점을 찍었다.

 

우주라는 공간에서의 비행은 위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주에서 사망한 비행사는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1967년, 소련의 우주비행사 블라디미르 코마로프는 우주 비행을 마치고 지구로 재진입하는 과정에서 낙하산 고장으로 충격을 받아 사망했다. 최초의 사망 사례이다. 1971년엔 3명의 소련 우주비행사들이 우주선을 우주정거장에서 분리하는 과정에서 사망했다. 미국의 우주비행사들도 위험을 비켜갈 수 없었다.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 호의 폭발사고로 7명이 사망했고, 2003년 우주왕복선 컬럼비아 호의 공중분해 사고로 미국인 비행사 6명과 이스라엘 비행사 1명 등 총 7명이 사망했다. 이후 미국은 유인 우주비행을 일시적으로 중단했다.

 

 

우주에서 발생하는 일

 

순식간에 얼어 죽지는 않고 서서히 식아갈 것이다

피가 끓지는 않는다

태양이 방출한 자외선은 심각한 화상을 입힌다

전신 노출은 극히 위험하다

공기가 없어서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뱃속에서 가스가 팽창하면서 고통스러울 수 있다

우주선에 구멍이 난다면 심각한 저산소증에 빠질 수 있다

 

 

우주정거장

 

우주에 머무르기 위해선 숨 쉬는 데 필요한 산소를 공급받아야 하고, 먹을 식량도 보충받아야 한다. 또 폐기물을 처리할 수도 있어야 한다. 이런 역할을 해주는 장소가 바로 우주정거장이다. 세계 최초의 우주정거장은 러시아의 살류트 1호(1971년 발사)였으며, 미국은 최초로 1973년에 스카이랩호를 궤도에 올렸으며(1979년 호주에 추락), 중국도 2011년 톈궁1호를 쏘아 올렸는데, 지난 4월 2일 수명이 다해 남태평양에 추락했다.

 

러시아는 1986년 미르 우주정거장을 발사, 10년 동안 우주비행사들이 쭉 거주해왔다. 이는 장기간의 우주여행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는 기회가 되었다. 1998년, 세계 16개 나라는 사상 최대 크기의 우주정거장을 공동으로 건설하기 시작했다. 국제우주정거장인 셈이다. 이곳도 2000년부터 쭉 승무원이 탑승해 왔다.

 

 

 

소행성의 지구 충돌

 

우리는 매년 수만 개의 소행성을 발견한다. 대부분 지구와 멀리 떨어져 있어 크게 위협되지 않지만 때때로 큰 소행성이 지구 가까이 접근할 때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날아오는 것을 아예 목격하지 못했던 소행성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1908년 러시아 툰구스카에 추락해 넓은 면적의 나무들을 납작하게 만들어버렸다.

 

2013년 2월, 전 세계는 경악했다. 러시아 첼랴빈스크에 10~20미터 크기의 소행성이 지구 대기권에 진입, 운석이 되어 낙하하면서 폭발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 폭발로 인해 1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쳤다. 이처럼 우리들이 관측하지 못하고 놓치는 소행성이 무수히 많지 않을까 싶다. 2029년에 소행성 아포피스가 지구에서 4만 킬로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지점을 통과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만약에 이보다 조금만 지구와 가까워진다면, 엄청난 파괴를 일을킬 수도 있을 것이다.

 

 

우주는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밤에 우리들은 하늘에서 주로 별을 보지만, 실상 별은 우주의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질량으로 따져보면 별은 성간가스(인터스텔라 가스)의 1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성간가스는 먼지와 아원자입자로 구성되며, 이는 광학망원경으로는 볼 수가 없다. 즉, 암흑 물질은 일반 물질보다 다섯 배나 더 무겁다. 이처럼 우주의 은밀한 구성 요소인 암흑 물질은 빛을 방출하지도, 흡수하지도, 산란하지도 않지만 중력은 있다. 우주에 있는 에너지 대부분은 불가사의한 '암흑 에너지' 때문에 생긴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라는 평법한 말이 진리인 듯 싶다.

 

 

물이 존재하는 행성은?

 

지구는 지표면에 액체 상태의 물이 있는 유일한 천체이다. 그렇다고 지구에서만 물을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대부분 화성처럼 얼음 상태로 물이 존재하는데, 지표면에 또는 지표면 아래의 암석층에 존재할 수도 있다. 지하 얼음은 햇빛에 가열될 때 잠시 녹아서 증발하기 전까지 시냇물이 되어 화구벽을 따라 흐른다.

 

목성의 달인 유로파는 표면에 두꺼운 얼음층이 있다. 이 표면 아래에 물로 이루어진 바다가 있다. 어쩌면 지구의 바다 전체를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물이 있을지도 모른다. 또 토성의 달 엔켈라두스도 표면 아래에 액체 상태의 물이 있다. 이는 엔켈라두스의 남극에서 소금기 있는 온천수가 분출되면서 관측되었다. 이처럼 지구의 바다와 동일하지 않을지라도 외태양계의 여러 달은 지하 바다가 존재하는 걸로 추정된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고대 인도인의 세계관이자 불교의 교리이기도 한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는 바로 우주관이기도 하다. 즉 풍륜風輪에서 대범천大梵天에 이르는 범위의 세계를 하나의 세계로 구성, 여기엔 하나의 태양과 하나의 달이 있다고 한다. 바로 태양계를 뜻한다. 이런 세계가 1000개 모인 것이 소천小千세계(현대과학으론 은하계), 소천세계가 1000개 모인 것이 중천中千세계, 중천세계가 1000개 모인 것이 대천大千세계라고 말한다. 다시말해 대천세계란 1000의 3제곱으로 10억개의 세계를 가르킨다. 바로 우주이다. 우리들의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책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인 우주를 들여다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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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할수록 똑똑해진다 - 멍때림이 만드는 위대한 변화
마누시 조모로디 지음, 김유미 옮김 / 와이즈베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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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동안 유모차를 끌고 동네를 배회하던 나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동네를 산책하는 일과의 리듬을 타게 되면서 이전까지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장식용 처마 돌림띠와 괴물 석상들이 낯익은 친구처럼 느껴졌다. 이웃 동네에서 꽃이 피는 시기와 종류까지 훤히 꿰게 되었다. 심지어 보도의 갈라진 부위와 울퉁불퉁한 곳까지 정확하게 기억했다. 몸은 고단했지만 목적지 없이 돌아다니는 것이 오히려 자유롭고 감사하게 느껴졌다(밤새도록 사무실에 갇혀 있을 때 그런 자유를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무엇보다 아이와 깊은 일체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창조한 이 아름다운 생명체와 완전한 조화를 이루기 위해 내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불편하고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차츰 편안함과 행복을 느꼈다. - '들어가는 말' 중에서

 

 

심심한 것을 즐기는 워킹 우먼의 이야기

 

책의 저자 마누시 조모로디는 뉴욕 공영 라디오 방송WNYC의 인기 팟캐스트 라디오 프로그램 <노트 투 셀프NOTE TO SELF>의 진행자인데, 그녀는 수만 명의 청취자들과 함께 디지털 기기로부터 언플러그하고 지루함을 즐기면서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녀는 이 책에서 IT 기기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최고의 창의성을 끌어내기 위해 지루함(심심함)을 이용하는 방법을 탐색한다. 

 

한 아이의 엄마이자 열혈 워킹 우먼으로 바쁘게 살던 그녀가 몇 주 동안 배앓이를 하던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하면서 겪었던 놀라운 변화를 기록했다. 7일 동안 IT 기기 사용을 중단하고 잘못된 디지털 습관을 확인하고 싶은 참가자들과 함께 '지루함과 기발함 프로젝트'를 진행, 견디기 힘들 정도의 따분함, 반복되는 단조로움, 지루함이 극에 달한 어느 지점에서 창조의 영감, 통찰력과 아이디어가 봇물 터지듯 폭발하는 과정을 심리학과 뇌 과학, 행동 경제학 측면에서 흥미롭게 탐구한다.

 

지하철을 이용해서 출퇴근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승객들이 고개를 숙인 채 스마트폰만 뚫어지게 바라보는 장면을 목격했을 것이다. 그렇다. 현대인들은 스마트폰 없이 살기가 어려워 보인다. 이 뿐인가. 사무실에 출근해서는 책상에 놓인 컴퓨터를 응시할 수밖에 없다. 업무 지시나 통지가 쪽지 또는 이메일을 통해 전달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느 하나라도 간과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들은 디지털 기기에 이미 노예가 된 것과 진배없다. 저자는 우리들에게 이런 환경에서 탈피할 것을 주문한다. 

 

총 9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지루함과 기발함'에 대한 의미를 알아 보는 것을 시작으로, 2장부터 9장까지는 '지루함과 기발함 프로젝트'의 7단계 도전을 각각 소개한다. 각 단계는 지루함을 즐기는 능력을 길러주고, 테크놀로지와 우리들의 관계, 우리들의 뇌와 테크놀로지가 충돌하는 부분에 대해 설명함으로써 디지털 기기로부터의 해방을 일깨워준다.

 

 

 


 


ϻ

 

 

최근에 인지한 내용인데, 서울 한강에선 '멍 때리기 대회'가 열린다고 한다. 올해로 3회 째를 맞아 지난 4월 22일 열려서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이 우승했다는 소식이다. 이 대회는 90분 동안 수면 금지, 휴대폰 사용 금지, 음식물 섭취 금지, 잡담 금지 등의 규칙을 엄수해야 하며, 말 그대로 안정적인 '멍 때리기'에 성공한 참가자가 1등을 차지한단다.

 

촛점 없는 흐릿한 눈동자에 정신 줄을 놓고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는 상태가 바로 '멍 때리기'다. 현대인들의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을 고려할 때 성질 급한 이들이 이를 보고 당연히 "속 터진다"고 말할 것이다. 특히, 직장에서의 이런 모습은 아마도 금기 중의 금기 사항일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멍 때리기'가 과학적으로 우리들의 뇌에 크게 도움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즉 뇌의 '디폴트 모드'가 활성화될 때 특정 신경망이 자극되면서 지금까지 받아들인 정보들을 처리하며, 새로운 정보들을 수용할 준비 태세를 갖추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들이 헬스 클럽에서 강도 높은 운동을 마친 후 휴식을 취해야 잔뜩 긴장해있는 몸과 근육이 풀리는 것과 같다. 그리고 풀가동하는 기계에 잔 고장이 잦다가 결국엔 새 것으로 교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처럼, '멍 때리기'의 중요성은 바로 적절한 휴식인 것이다. 특히, 우리의 뇌는 휴식기를 가짐으로써 창의성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밝혀졌다.

 

하지만 지루함이나 무료함을 못 참는 현대인들은 스마트폰이 마치 필수 휴대품인 양 여긴다. 지나칠 정도로 가까이 함으로써 중독 증세가지 보인다. 일반적으로 하루에 60번 이상 앱을 사용한 사람을 소위 '중독자'로 분류하는데, 세계적으로 이런 사람들이 약 2억 8천명을 상회한다는 통계도 있을 정도이다. 그렇다고 책의 저자는 무조건 디지털 기기를 멀리하라고 우리들에게 강요하진 않는다.

 

'지루함과 기발함 프로젝트'의 도전 7단계를 소개하면서 이를 통해 우리들 스스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성찰하도록 만든다. 이 프로젝트에는 직장인, 사업가, 작가, 10대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수만 명의 참가자들이 도전에 나선다. 이들 참가자들의 공통된 소감은 대체로 "정신적 동면冬眠 상태에서 깨어난 것 같다"라고 말한다.

 

 

도전 7단계

 

1. 자신을 관찰하라

2. 이동시 기기를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두라

3. 하루 동안 사진 찍지 않기

4. 앱은 삭제하기

5. 페이크케이션을 떠나라

6. 다른 것들을 관찰하기

7. '지루함과 기발함 도전'

 

 

"출근길 지하철에서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심한 첫날이었다. 그날따라 비가 내렸다. 나는 휴대폰을 열거나 팟캐스트를 포함한 모든 것을 하지 않기로 굳게 다짐했다. 대신 신문(전날 밤에 출력한 기사)을 읽었다. 처음에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많은 청취자들이 그랬듯이 아이러니하게도 스크롤을 하지 않으니 집중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산만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몇 정류장을 지나는 동안 마음이 점점 안정되었다. 이전 같으면 읽다 말았을 기사를 끝까지 읽었다"(121쪽)

 

 

새로운 작업 환경

 

우리들은 창의적인 생각에 양분을 공급하는 것과 같은 생각하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업무나 직접적인 자극에 반응하지 않는 시간,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하지 않고 멍때리기나 마음 방황을 하는 시간이 우리의 뇌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들의 상사가 생각하는 것처럼 게으름을 피우는 나태한 시간이 결코 아니다.

 

이러한 사색의 시간에 우리들은 감정, 기억, 생각이 저장된 깊고 은밀한 장소에 들어갈 수 있다. 이 때가 바야흐로 뇌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활성화되고 최상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잉태된다.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새로운 영역과 방법(그리고 새로운 상품)을 상상할 때 뇌의 많은 영역에 불이 켜진다.

 

우리들에게는 혼자 조용히 보낼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주머니 속에 항상 사무실을 넣어 다닌다면 그런 시간을 결코 가질 수 없다. 항상 메일을 확인하면서 메일함을 많이 비울수록 자신이 더 중요한 존재가 된 듯 착각하는 것은 영광의 상처와도 같은 것이다. 또 단체 메일이나 메시지에 답하지 않으면 팀 플레이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역시 착각이다.

 

 

정신적인 동면에서 깨어나다

 

반응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예상보다 수만 명이나 더 많은 사람들이 도전에 참가했다. 모든 연령대, 모든 장소, 다양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참가했다. 그들의 열정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뜨거웠다. 첨단기기의 장기적인 영향력을 점검할 필요성을 느낀 사람들은 우리만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참가자들은 간단한 도전을 통해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더 주목할 만한 변화를 경험했다.

 

학교 수업이 더 이해하기 쉬워졌다는 10대 청소년들, 지지부진하던 원고를 완성한 작가들, 심한 피로감을 덜 느낀다는 직장인들, 자신과 비즈니스의 문제점을 깊이 인식하게 된 기업가들. 브루클린에 사는 카터는 "마치 긴 정신적인 동면冬眠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들은 자신과 휴대폰의 관계를 변화시켰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백견불여일행百見不如一行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처럼 우선 스스로의 행동 습관을 관찰함으로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캐치해야 할 것이다. 그런 후에 가급적 디지털 기기를 자기 자신과 멀리 둠으로써 사용빈도를 줄이고 그런 유혹에서 벗어나는 일상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꽃, 고양이, 음식 등의 사진을 찍지 않고 앱을 삭제하는 도전에 나선다. 여기서 페이크케이션이란 '페이크fake와 베케이션vacation'의 합성어로, 사무실에 있되 마치 휴가를 떠난 사람처럼 디지털 기기에 연결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습관적으로 이메일에 자주 접촉하는 사람이라면 귀 담을 만하다.

 

 

 



 

 

"우리의 뇌에 새로운 연결고리를 만들어주는 지루함은

창의성을 자극하는 가장 효과적인 뮤즈다"

 

이처럼 하루 동안 휴대전화를 우리들의 손에서 멀리 떨어뜨려 놓고서 자기 자신의 익숙한 일상의 모습인 사진 찍기를 금하는 등 구체적 실천을 행동에 옮김으로써 '멍 때리기'의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나아가 더 심심할수록 우리들의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자아自我가 깨어난다는 것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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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은 어떻게 최고의 엔터테인먼트가 되었나 - 리테일 비즈니스, 소비자의 욕망을 읽다
석혜탁 지음 / 미래의창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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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비즈니스의 대부분은 '유통'이라는 카테고리를 벗어나는 것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통이란 무엇일까. 유통은 사전적으로 '상품 따위가 생산자에서 소비자, 수용자에 도달하기까지 여러 단계에서 교환되고 분배되는 활동'이자 '생산과 소비를 이어주는 중간기능으로, 생산품의 사회적 이동에 관계되는 모든 경제활동'으로 정의된다. - 들어가며' 중에서

 

 

우리의 일상은 유통으로 연결된다

 

이 책의 저자 석혜탁은 본명이 아닌 필명이다. 동아일보와 채널A 인턴기자를 거쳐 YTN 기자로 합격, 현재는 대기업에서 일하며 경영 칼럼니스트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경영경제 연구공간 '비즈코노미'의 대표로서 집필과 강연을 병행한다. 특히 주목하고 있는 것은 유통산업을 중심으로 한 '리테일 트렌드'인데, 이는 비즈니스의 대부분이 '유통'이라는 카테고리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매일경제신문>에 '만사유통'이라는 주제로 칼럼을 기고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 따른 것인데,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결국 리테일 비즈니스가 가장 중요한 산업이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러한 그의 문제의식이 집약되어 탄생한 셈이다. 리테일 비즈니스 현장의 각계각층 인사들을 취재했고, 매우 실질적인 비즈니스 트렌드 분석을 실행했다.

 

어려운 학술용어나 전문용어를 걷어내고 한자어 '유통流通'을 살펴보면 우리들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상품이나 서비스가 흐르고流 통하는通 활동이라는 개념이니까. 책은 이제 사야 할 물건이 있어서 쇼핑몰을 찾는 시대가 지났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레저핑', '쇼캉스'란 신종 합성어처럼, 물건을 사고파는 것에서 벗어나 힐링과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는 종합적인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는 의미다.

 

물건만 잔뜩 쌓아놓은 그저그런 과거의 쇼핑몰은 이제 인기가 없다. 지금의 소비자들은 쇼핑몰에서 운동을 하고 학습을 하며 공연을 보고 또 휴식을 취한다. 그래서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제품을 팔고 싶어하던 쇼핑몰이 진작 이런 트렌드를 감지感知, '고객만족'이란 슬로건을 내세우고 다른 방식과 해법으로 접근하기 시작한다. 유통업의 '신풍속도'인 셈이다.

 

 

 

 

거대 쇼핑몰의 탄생

 

미국 최초의 현대적 실내 쇼핑몰은 미네소타주의 사우스데일 센터인데, 이곳은 문을 연 지 이미 60여 년이 지났다. 이 쇼핑몰은 오스트리아 출신 건축가 빅터 그루엔의 손에 의해 탄생했었다. 이후 그루엔은 미국 전역에 수십 차례 넘게 백화점을 설계했으며, 그는 이런 상점을 '상거래용 기계'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런데, 소비 자본주의의 상징적 공간을 만들어낸 그루엔이 사회주의자였다는 점은 퍽 흥미롭다. 사회주의자로서 쇼핑몰을 이웃들을 위한 모임장소로 설계하고자 구상했던 것이다. 그는 당시 좌익 성향의 유대인 지식인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나치가 유럽 곳곳으로 힘을 뻗치자 신변의 위협을 느껴 미국으로 도피했다.

 

그의 설계는 세계 도처에 복제되었다. 그래서 말콤 글래드웰은 그루엔을 20세기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건축가로 꼽았다. 1950년 대의 미국은 소비 붐이 일어나는 시기였다. 쇼핑몰이 '번화가보다도 더 번화가 같다'고 평가받더니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미국인들이 일터 외엔 쇼핑몰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북미 지역에서 쇼핑은 TV 시청 다음으로 중요한 문화활동이 되었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스타필드, 롯데몰 등 복합쇼핑몰은 현재 유통의 대세로 떠올랐다.

 

 

미용, 건강 부문을 특화한 유통업태

 

미국에서는 20세기 초에 드러그스토어가 탄생한다. 이는 의사의 처방전 없이도 구매할 수 있는 의약품, 화장품, 그리고 건강식품 등을 판매하는 소매 잡화점이다. 1901년 미국은 시카고에 현재와 같은 형태의 드러그스토어가 처음 오픈했으며, 일본도 1987년 도쿄에 드러그스토어 1호점이 등장했다. 그런데, 이 업태는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새로운 형태로 자리잡았다. 바로 H&B 스토어다.

 

미용과 건강 부문이 특화되어 차별성을 갖춘 이 매장의 주고객은 10대 후반에서 30대까지다. 그래서 유동인구가 많은 대학가, 유흥가, 주거밀집지역에 출점, 화장품과 샴푸 등 비식품 상품군이 전체 상품의 60%를 차지한다. 기존의 편의점에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고객들이 주로 이 매장을 이용한다. 그래서 여성 고객의 비중이 높다.

 

국내 H&B 스토어의 성장은 네 가지 키워드로 분석할 수 있다. 여성(female), 편리성(convenience), 체험(experience), 불황(recession)이 바로 그것이다. 주고객층인 '여성'들이 건강과 미용에 갖는 관심, 원스톱 쇼핑이 주는 '편리성', 셀프 셀렉션 형식과 테스터 공간을 통한 상품 비교 '체험', '불황'으로 인해 합리적 소비를 추구하게 된 현상 등이 맞물린 것이다.

 

 

17억 무슬림을 향한 구애求愛

 

무슬림을 향한 유통업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이들의 소비력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산아 제한을 두지 않는 이슬람 가정과 사회문화를 고려할 때 향후 그 수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관광공사의 통계에 따르면, 2016년 무슬림 관광객은 약 98만 명으로 2015년(74만 명)보다 무려 33%가 증가한 수치이다. 그리고 한국 방문 관광객 중 무슬림이 차지하는 비중 또한 증가세를 띈다.

 

롯데백화점은 에비뉴엘 잠실점에 무슬림 고객을 위한 15평 규모의 기도실을 설치했다. 하루에 5회 메카를 향해 기도해야 하는 무슬림 쇼핑객을 배려하기 위해서다. 여기엔 경전인 코란의 비치는 물론이고, 예배 카펫과 기도 전 손발을 깨끗하게 씻을 수 있는 공간까지 마련하고 있다. 게다가 남성과 여성의 기도실을 따로 분리 운영하고 있다.

 

대체로 우리들은 무슬림하면 중동을 떠올린다. 정확히 구분하자면 무슬림과 아랍인은 같은 말이 아니다. 아랍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이 아랍인인데, 전체 무슬림의 약 20%를 차지한다. 무슬림은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이다. 비록 한국인일지라도 이슬람교를 믿는다면 이 사람은 바로 무슬림인 것이다. 세계적으로 이슬람교도가 가장 많은 나라는 아시아에 위치한 인도네시아, 그 다음이 인도이다.

 

그런데, 왜 무슬림을 주목하느냐 하면 이들은 먹고 사용하는 것을 율법에 정해놓고 있기에 이를 판매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무슬림들은 이슬림식으로 도살된 신선한 고기만 먹는다. '할랄'이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일습에 목숨을 끊어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한 소, 양, 닭고기는 할랄에 속한다. 세계적으로 할랄 시장은 급성장 추세인데, 2021년엔 2조 7천억 달러 규모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에 반해 고양이, 개, 잔인하게 도축한 고기는 '하람(금지된 것)'으로 분류하기에 절대 먹지 않는다.

 

농심~ '할랄신라면'(돼지고기를 사용 않는다)

대상그룹~ '할랄 인증' 마요네즈(인도네시아 시장점유율 40%)

 

따라서, 맹목적인 이슬람포비아(Islamophobia)도 경계해야 한다. 이슬람포비아는 '이슬람 공포증+혐오증'의 합성어로, 심리적으로는 혐오증에 무게중심이 더 실리는 경우가 많다. 테러리즘은 비난 받아 마땅하지만, 전체 무슬림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간주하는 편협한 태도는 옳지 못하다.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부정적 이미지의 테러리스트 낙인은 미국의 반反 이슬람 미디어가 쏟아낸 보도에 기인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새로운 노년의 니즈를 파악하라

 

나이 든다는 것은 세월이 흘러 저절로 나이를 먹으면서 노화가 된다는 현상이다.  그래서 다소 초라하고 슬픈 감정을 초래한다. 자신의 신체가 쇠약해지고, 현직에서 은퇴해야 하며, 나아가서는 죽음과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과 맞닥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전통적인 인식에 변화가 생겨났다. 멋지고 당당하게 나이 들 수 있다는 믿음, 바로 '비엥 비에이르(만족스럽게 나이 들기)'이다. 

 

'찬란한 미래'는 젊은 세대만 전유하는 것이 아니다. '비엥 비에이르'를 외치는 노인들의 멋진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 이것이 요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존재미학이다. 앞으로 '비엥 비에이르'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기업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액티브 시니어들은 상대적으로 풍부한 경제력을 갖췄음에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 역시 느끼고 있기 때문에 무턱대고 지갑을 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이 지갑을 여는 명분과 이유를 의식하며 소비활동을 한다. 요실금 전용 언더웨어의 인기가 이런 흐름을 대변한다.

 

 

쇼핑 시간을 극대화하라

 

최근 쇼핑몰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는 식음료와 엔터테인먼트다. 롯데월드몰의 5층과 6층엔 테마 식당가와 영화관이 있다. 식당가와 영화관은 목적 지향성이 강하다. 즉 그냥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방문의 목적이 분명하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이곳은 늘 사람들이 붐비는 장소이다. 식사를 하기 전후, 영화를 보기 전후의 고객들은 아래층에 내려가 쇼핑을 즐기며 시간을 보낸다.

 

이렇게 롯데뤙드몰은 위층의 집객 효과를 아래층까지 확산시켜 쇼핑몰 전체의 매출을 상승시킨다.  이런 샤워 효과를 고려해 MD를 구성했다. 롯데월드몰 각 층에 숨어 있는 '쇼핑의 과학'은 그 모습은 각기 다르지만, 궁극적으로는 '고객 만족'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갖고 있다. 유통업체 관계자라면 고객 중심의 디자인과 콘텐츠를 다채롭게 선보일 수 있도록 국내외 다양한 사례를 면밀히 연구해야 할 것이다.

 

마케팅 담당자라면 스포테인먼트 시설과 식음료 공간의 연계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고객들이 자연스럽게 이동할 있도록 하는 게 포인트다. 스포테인먼트 티켓 소지자에게 식음료 할인 혜택을 주거나,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에 인기 메뉴를 찍은 사진을 인증하면 스포테인먼트 입장권 할인을 해주는 등 다양하고 기발한 연계 프로모션을 구상해볼 필요가 있다.

 

 

소비자의 욕망을 읽어라

 

바야흐로 쇼핑은 과학이다. 책은 소비자의 욕망을 읽어야 시장을 지배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불황과 불확실의 시대일수록 유통의 최종단계인 쇼핑이 더욱 더 중요해진다. 그래서 대형 유통업체들이 고객들의 쇼핑 트렌드에 빠르게 반응하고 이를 철저히 연구해서 콘텐츠화하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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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 교수의 조선 산책
신병주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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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다" 필자가 항상 강조하는 말이다. 역사가 단지 과거의 옛 이야기로만 흘러가고, 현재에 되살아나지 못하면 그 역사는 의미를 갖지 못한다. 역사 속 인물들의 행적과 사건의 과정들이 현재 속에서 되살아나 새로운 방향과 의미를 제시해 줄 때 역사의 힘은 빛을 발하는 것이다. - '머리말' 중에서

 

 

역사는 현재에 다가오는 역사일 때 빛을 발할 수 있다

 

이 책은 민초들의 생활상부터 왕실의 암투에 이르기까지 미시사와 거시사를 아우르는 다양한 내용들과 그것이 지니는 현재적 의미까지 담으려고 노력했다. 즉 선비들의 육아일기, 선조들의 설 풍속과 무더위를 피하는 방법, 한강의 얼음, 바둑 이야기, 살인 코끼리에 대한 대응, 남한산성에서의 주화파와 척화파의 갈등, 반정의 단서를 제공한 국정 농단 여인들, 세종 시대의 국민투표 등에서 이를 느껴볼 수 있다.

 

책의 저자 신병주현재 건국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역사 대중화에 관심을 두어 2013~2014년 팟캐스트 방송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고정 패널로 활동했으며, KBS 1 TV에서 <역사저널 그날>을 진행했다. 또 KBS의 <역사추리>, <TV조선왕조실록>, <역사스페셜>, EBS의 <역사극장> 등의 자문을 맡기도 했다.

 

현재 궁능 활용 심의위원, 인문학대중화 운영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KBS 1 라디오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과 EBS 라디오 <신병주의 이야기가 있는 역사여행>을 매주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왕으로 산다는 것>, <조선과 만나는 법>, <조선평전>, <조선왕실 기록문화의 꽃, 의궤>, <규장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들>, <조선후기를 움직인 사건들>, <고전소설 속 역사여행>, <이지함 평전> 등이 있다.

 

우리들은 조선시대를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왕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왕정 시대이기에 아마도 그때는 지금보다 고지식할 것이라는 편견을 가진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조선을 잘 모르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를 들어 세종은 새로운 세법의 적용을 위해 독단적인 지시가 아니라 모든 백성들의 의견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했음이 이를 대변한다. 어쩌면 지금보다도 훨씬 더 민생을 우선으로 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조선 역사의 전문가답게 기록물과 문화재를 통해 당시를 살피고, 사건 현장과 유물들을 짚어가면서 우리들에게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청계천 광통교廣通橋

 

1394년 10월, 한양漢陽(현재의 서울)이 조선의 도읍지로 결정된 데는 그만큼 이점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하여 지역을 통합하기에 좋다는 점, 도성의 동서남북 외곽에 낙산, 인왕산, 목멱산(남산), 북악산 네 개 산이 둘러싸고 있어서 이들 산을 연결하면 도성의 방어에 매우 유리하다는 점, 한양은 북한강과 남한강으로 이어지는 내륙의 수운과 서해를 통해 한강이 연결되는 해상 교통의 요지라는 점이 수도로 선정될 수 있었던 주요 이유였다.

 

그렇다고 전혀 문제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네 개 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집중적으로 도심을 관통하는 바람에 홍수 시에는 도성 안 전체가 잠길 수밖에 없었다. 즉 청계천에 모인 물들이 남산에 막혀 바로 한강으로 유출되지 못함에 따라 비가 많이 오면 청계천이 범람하는 통에 홍수로 인한 몸살을 피해 나갈 수 없었다. 이를 해결코자 1406년 태종은 도성을 관통하는 개천의 조성 작업을 착수, 1412년 마침내 청계천 공사를 완료했던 것이다.

 

그런데, 청계천 공사를 완료하면서 기존의 흙다리나 나무다리 대신에 돌다리를 만들었다. 이 돌다리 가운데 바로 광통교가 있었다. 이 유적지에는 깊은 사연이 있다. 태종 이방원의 아버지 태조 이성계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던 신덕왕후 강씨(태조의 계비繼妃)는 정도전 등을 앞세워 자신이 낳은 아들 방석을 후계자로 삼을 계획을 획책했다. 이에 이방원은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방석과 정도전 등을 제거, 1400년 제2차 왕자의 난을 거쳐 스스로 왕위에 올랐던 것이다.

 

1396년 계비 강씨가 죽자 태조 이성계는 그녀를 신덕왕후에 봉하고 왕릉도 경복궁에서 잘 보이는 곳에 조성, 정릉貞陵이라 불렀다. 이후 왕이 된 이방원은 아버지가 죽자 정릉을 파괴하고 이를 이전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1409년, 마침내 정릉은 도성 밖 양주지방(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현재의 정릉)으로 이전했던 것이다. 1410년 8월 청계천의 흙으로 만든 광통교가 홍수로 붕괴되자 정릉의 병풍석屛風石과 신장석神將石을 광통교 복구에 사용, 이후 백성들이 이를 밟고 다니게 만들었다. 인간의 증오심이 이렇게 무섭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셈이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김정호는 왜 평생을 지도 제작에 올인했을까? 이를 팔아서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는 오직 그의 열정 때문이었다. 그가 살았던 조선후기에는 상업이 발달함에 따라 상인들에게는 전국을 자세하게 파악할 수 있는 정보가 필요했던 때이다. 실제 대동여지도는 접었다 펼 수 있는 절첩식 형태였기에 상인들이 휴대하기엔 무척 편리했다.

 

1책에서부터 22책에 이르는 책자가 모두 펼쳐지면 우리나라 전도全圖가 되는 형태였다. 축적은 약 16만분의 1로 각 책은 세로 30센티미터, 가로 20센티미터의 크기인데, 8폭으로 접을 수 있도록 제작했다. 전체를 펼치면 세로 6.7미터, 가로 3.3미터의 사이즈로 실로 방대한 크기이다. 여기서 더욱 흥미로운 것은 널리 보급코자 이를 목판까지 새겼다는 사실이다. 대동여지도에 각 고을의 거리를 10리마다 표시한 것이나 역이나 원 등 상업과 관련된 정보가 자세한 것도 상인용임을 나타내고 있으며, 목판은 지도의 수요가 많았음을 보여준다. 오직 고산자의 발과 열정으로 탄생한 대동여지도의 가치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선비의 육아일기

 

계절의 여왕 5월은 '가정의 달'이기도 하다. 이 때에 어울리는 무척 인상적인 기록물이 있다. 바로 600년 전에 선비 이문건에 의해 쓰여진 <양아록養兒錄>인데, 이는 현존하는 유일한 할아버지 양육 일기다. 흥미롭게도 아들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손자에 대한 기록물이라는 사실이다. 저자 이문건은 중종 때 과거에 합격했지만, 명종 때 외척정치가 시작되어 경상도 성주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그의 자식 대부분은 천연두 등으로 일찍 죽고 유일하게 장성한 둘째 아들도 어릴 적의 열병 후유증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고 있었다.

 

이런 모자란 아들을 교육시키려고 무척 애를 썼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찾아온 희망이자 복이 바로 손자을 얻은 것이었다. 나이 58에 2대 독자인 손자 수봉에게 그는 온통 관심을 집중했다. 이에 아이가 차츰 일어서고, 이빨이 나고, 걷기 시작하는모습 모두를 생생하게 기록으로 남겼다. 노년에 귀양살이까지 하는 그는 오직 손자 돌보는 것으로 고독을 이겨낸 셈이다.

 

"아이가 장성하여 이것을 보게 되면 아마 글로나마 할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양육 일기의 곳곳에서 조선시대 생활사의 모습을 읽을 수가 있는 학술적 가치가 있다. 할아버지의 손자에 대한 애정과 엄한 교육 방법, 여종의 아이 젖 주기, 유아 사망의 최대 주범이었던 천연두, 단오의 그네놀이, 지금 보다 현저히 낮은 아이들의 음주 문화 등은 <양아록>이 단순한 양육 일기가 아니라, 조선시대 역사 사료로서의 가치까지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조선에도 국민투표가 있었다

 

왕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생각하는 조선시대에 세종이 모든 백성을 대상으로 하는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토지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새로운 세법인 '공법貢法'을 추진하면서 세종은 최종적으로 백성들의 찬반 의견을 묻고자 했다. 투표 3년 전인 1427년 세종은 창덕궁 인정전에 나가 과거시험 문제를 내면서 공법에 대한 견해를 묻는 등 세법을 확정하기 전에 미리 분위기를 조성해갔다. 조령모개 식으로 정권이 바뀌면 마음대로 부동산 관련법을 개정하는 현재의 정부에 비하면 이 얼마나 민생 정치인가 말이다.

 

1430년 3월 5일부터 8월 10일까지 장장 5개월 간에 걸쳐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이는 <세종실록>의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정부 육조와, 각 관사와, 서울 안의 전함前銜 각 품관과, 각 도의 감사 수령 및 품관으로부터 여염閭閻의 세민細民에 이르기까지 모두 가부可否를 물어 아뢰게 하라"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 세종은 "백성이 좋지 않다면 이를 시행할 수 없다"는 근본을 밝히면서 농작물의 작황을 조사할 때 공정성을 잃은 경우가 많았고, 간사한 아전들이 잔꾀를 부려 부자들은 이롭게 한 반면 빈자들을 괴롭히고 있음을 우려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각 도道의 보고가 도착하면 공법의 편의 여부와 폐해를 구제하는 등의 일을 관리들이 깊게 논의해 결과를 보고하라고 주문한다.

 

 

조선시대는 고리타분하지 않았다

 

이밖에도 책은 관료들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유급휴가를 도입했고, 조선의 법전 <경국대전>에는 과거시험의 합격에 관해 지역별로 그 수를 명시함으로써 현재의 공공기관 지역별 인재 할당제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영조시대엔 나라에 충절을 지킨 후손들을 특별 채용하는 시험인 '충량과忠良科'를 실시하기도 했음을 소개한다. 이만하면 '조선은 고지식한 왕조였다'는 우리들의 선입견이 틀렸음을 알 수 있다. 이에 이 책 한 권을 손에 쥐고 조선의 역사 현장으로 발걸음하기를 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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