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할수록 똑똑해진다 - 멍때림이 만드는 위대한 변화
마누시 조모로디 지음, 김유미 옮김 / 와이즈베리 / 2018년 4월
평점 :
품절


몇 주 동안 유모차를 끌고 동네를 배회하던 나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동네를 산책하는 일과의 리듬을 타게 되면서 이전까지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장식용 처마 돌림띠와 괴물 석상들이 낯익은 친구처럼 느껴졌다. 이웃 동네에서 꽃이 피는 시기와 종류까지 훤히 꿰게 되었다. 심지어 보도의 갈라진 부위와 울퉁불퉁한 곳까지 정확하게 기억했다. 몸은 고단했지만 목적지 없이 돌아다니는 것이 오히려 자유롭고 감사하게 느껴졌다(밤새도록 사무실에 갇혀 있을 때 그런 자유를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무엇보다 아이와 깊은 일체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창조한 이 아름다운 생명체와 완전한 조화를 이루기 위해 내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불편하고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차츰 편안함과 행복을 느꼈다. - '들어가는 말' 중에서

 

 

심심한 것을 즐기는 워킹 우먼의 이야기

 

책의 저자 마누시 조모로디는 뉴욕 공영 라디오 방송WNYC의 인기 팟캐스트 라디오 프로그램 <노트 투 셀프NOTE TO SELF>의 진행자인데, 그녀는 수만 명의 청취자들과 함께 디지털 기기로부터 언플러그하고 지루함을 즐기면서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녀는 이 책에서 IT 기기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최고의 창의성을 끌어내기 위해 지루함(심심함)을 이용하는 방법을 탐색한다. 

 

한 아이의 엄마이자 열혈 워킹 우먼으로 바쁘게 살던 그녀가 몇 주 동안 배앓이를 하던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하면서 겪었던 놀라운 변화를 기록했다. 7일 동안 IT 기기 사용을 중단하고 잘못된 디지털 습관을 확인하고 싶은 참가자들과 함께 '지루함과 기발함 프로젝트'를 진행, 견디기 힘들 정도의 따분함, 반복되는 단조로움, 지루함이 극에 달한 어느 지점에서 창조의 영감, 통찰력과 아이디어가 봇물 터지듯 폭발하는 과정을 심리학과 뇌 과학, 행동 경제학 측면에서 흥미롭게 탐구한다.

 

지하철을 이용해서 출퇴근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승객들이 고개를 숙인 채 스마트폰만 뚫어지게 바라보는 장면을 목격했을 것이다. 그렇다. 현대인들은 스마트폰 없이 살기가 어려워 보인다. 이 뿐인가. 사무실에 출근해서는 책상에 놓인 컴퓨터를 응시할 수밖에 없다. 업무 지시나 통지가 쪽지 또는 이메일을 통해 전달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느 하나라도 간과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들은 디지털 기기에 이미 노예가 된 것과 진배없다. 저자는 우리들에게 이런 환경에서 탈피할 것을 주문한다. 

 

총 9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지루함과 기발함'에 대한 의미를 알아 보는 것을 시작으로, 2장부터 9장까지는 '지루함과 기발함 프로젝트'의 7단계 도전을 각각 소개한다. 각 단계는 지루함을 즐기는 능력을 길러주고, 테크놀로지와 우리들의 관계, 우리들의 뇌와 테크놀로지가 충돌하는 부분에 대해 설명함으로써 디지털 기기로부터의 해방을 일깨워준다.

 

 

 


 


ϻ

 

 

최근에 인지한 내용인데, 서울 한강에선 '멍 때리기 대회'가 열린다고 한다. 올해로 3회 째를 맞아 지난 4월 22일 열려서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이 우승했다는 소식이다. 이 대회는 90분 동안 수면 금지, 휴대폰 사용 금지, 음식물 섭취 금지, 잡담 금지 등의 규칙을 엄수해야 하며, 말 그대로 안정적인 '멍 때리기'에 성공한 참가자가 1등을 차지한단다.

 

촛점 없는 흐릿한 눈동자에 정신 줄을 놓고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는 상태가 바로 '멍 때리기'다. 현대인들의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을 고려할 때 성질 급한 이들이 이를 보고 당연히 "속 터진다"고 말할 것이다. 특히, 직장에서의 이런 모습은 아마도 금기 중의 금기 사항일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멍 때리기'가 과학적으로 우리들의 뇌에 크게 도움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즉 뇌의 '디폴트 모드'가 활성화될 때 특정 신경망이 자극되면서 지금까지 받아들인 정보들을 처리하며, 새로운 정보들을 수용할 준비 태세를 갖추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들이 헬스 클럽에서 강도 높은 운동을 마친 후 휴식을 취해야 잔뜩 긴장해있는 몸과 근육이 풀리는 것과 같다. 그리고 풀가동하는 기계에 잔 고장이 잦다가 결국엔 새 것으로 교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처럼, '멍 때리기'의 중요성은 바로 적절한 휴식인 것이다. 특히, 우리의 뇌는 휴식기를 가짐으로써 창의성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밝혀졌다.

 

하지만 지루함이나 무료함을 못 참는 현대인들은 스마트폰이 마치 필수 휴대품인 양 여긴다. 지나칠 정도로 가까이 함으로써 중독 증세가지 보인다. 일반적으로 하루에 60번 이상 앱을 사용한 사람을 소위 '중독자'로 분류하는데, 세계적으로 이런 사람들이 약 2억 8천명을 상회한다는 통계도 있을 정도이다. 그렇다고 책의 저자는 무조건 디지털 기기를 멀리하라고 우리들에게 강요하진 않는다.

 

'지루함과 기발함 프로젝트'의 도전 7단계를 소개하면서 이를 통해 우리들 스스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성찰하도록 만든다. 이 프로젝트에는 직장인, 사업가, 작가, 10대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수만 명의 참가자들이 도전에 나선다. 이들 참가자들의 공통된 소감은 대체로 "정신적 동면冬眠 상태에서 깨어난 것 같다"라고 말한다.

 

 

도전 7단계

 

1. 자신을 관찰하라

2. 이동시 기기를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두라

3. 하루 동안 사진 찍지 않기

4. 앱은 삭제하기

5. 페이크케이션을 떠나라

6. 다른 것들을 관찰하기

7. '지루함과 기발함 도전'

 

 

"출근길 지하철에서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심한 첫날이었다. 그날따라 비가 내렸다. 나는 휴대폰을 열거나 팟캐스트를 포함한 모든 것을 하지 않기로 굳게 다짐했다. 대신 신문(전날 밤에 출력한 기사)을 읽었다. 처음에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많은 청취자들이 그랬듯이 아이러니하게도 스크롤을 하지 않으니 집중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산만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몇 정류장을 지나는 동안 마음이 점점 안정되었다. 이전 같으면 읽다 말았을 기사를 끝까지 읽었다"(121쪽)

 

 

새로운 작업 환경

 

우리들은 창의적인 생각에 양분을 공급하는 것과 같은 생각하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업무나 직접적인 자극에 반응하지 않는 시간,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하지 않고 멍때리기나 마음 방황을 하는 시간이 우리의 뇌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들의 상사가 생각하는 것처럼 게으름을 피우는 나태한 시간이 결코 아니다.

 

이러한 사색의 시간에 우리들은 감정, 기억, 생각이 저장된 깊고 은밀한 장소에 들어갈 수 있다. 이 때가 바야흐로 뇌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활성화되고 최상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잉태된다.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새로운 영역과 방법(그리고 새로운 상품)을 상상할 때 뇌의 많은 영역에 불이 켜진다.

 

우리들에게는 혼자 조용히 보낼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주머니 속에 항상 사무실을 넣어 다닌다면 그런 시간을 결코 가질 수 없다. 항상 메일을 확인하면서 메일함을 많이 비울수록 자신이 더 중요한 존재가 된 듯 착각하는 것은 영광의 상처와도 같은 것이다. 또 단체 메일이나 메시지에 답하지 않으면 팀 플레이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역시 착각이다.

 

 

정신적인 동면에서 깨어나다

 

반응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예상보다 수만 명이나 더 많은 사람들이 도전에 참가했다. 모든 연령대, 모든 장소, 다양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참가했다. 그들의 열정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뜨거웠다. 첨단기기의 장기적인 영향력을 점검할 필요성을 느낀 사람들은 우리만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참가자들은 간단한 도전을 통해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더 주목할 만한 변화를 경험했다.

 

학교 수업이 더 이해하기 쉬워졌다는 10대 청소년들, 지지부진하던 원고를 완성한 작가들, 심한 피로감을 덜 느낀다는 직장인들, 자신과 비즈니스의 문제점을 깊이 인식하게 된 기업가들. 브루클린에 사는 카터는 "마치 긴 정신적인 동면冬眠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들은 자신과 휴대폰의 관계를 변화시켰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백견불여일행百見不如一行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처럼 우선 스스로의 행동 습관을 관찰함으로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캐치해야 할 것이다. 그런 후에 가급적 디지털 기기를 자기 자신과 멀리 둠으로써 사용빈도를 줄이고 그런 유혹에서 벗어나는 일상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꽃, 고양이, 음식 등의 사진을 찍지 않고 앱을 삭제하는 도전에 나선다. 여기서 페이크케이션이란 '페이크fake와 베케이션vacation'의 합성어로, 사무실에 있되 마치 휴가를 떠난 사람처럼 디지털 기기에 연결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습관적으로 이메일에 자주 접촉하는 사람이라면 귀 담을 만하다.

 

 

 



 

 

"우리의 뇌에 새로운 연결고리를 만들어주는 지루함은

창의성을 자극하는 가장 효과적인 뮤즈다"

 

이처럼 하루 동안 휴대전화를 우리들의 손에서 멀리 떨어뜨려 놓고서 자기 자신의 익숙한 일상의 모습인 사진 찍기를 금하는 등 구체적 실천을 행동에 옮김으로써 '멍 때리기'의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나아가 더 심심할수록 우리들의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자아自我가 깨어난다는 것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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