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은 어떻게 최고의 엔터테인먼트가 되었나 - 리테일 비즈니스, 소비자의 욕망을 읽다
석혜탁 지음 / 미래의창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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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비즈니스의 대부분은 '유통'이라는 카테고리를 벗어나는 것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통이란 무엇일까. 유통은 사전적으로 '상품 따위가 생산자에서 소비자, 수용자에 도달하기까지 여러 단계에서 교환되고 분배되는 활동'이자 '생산과 소비를 이어주는 중간기능으로, 생산품의 사회적 이동에 관계되는 모든 경제활동'으로 정의된다. - 들어가며' 중에서

 

 

우리의 일상은 유통으로 연결된다

 

이 책의 저자 석혜탁은 본명이 아닌 필명이다. 동아일보와 채널A 인턴기자를 거쳐 YTN 기자로 합격, 현재는 대기업에서 일하며 경영 칼럼니스트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경영경제 연구공간 '비즈코노미'의 대표로서 집필과 강연을 병행한다. 특히 주목하고 있는 것은 유통산업을 중심으로 한 '리테일 트렌드'인데, 이는 비즈니스의 대부분이 '유통'이라는 카테고리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매일경제신문>에 '만사유통'이라는 주제로 칼럼을 기고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 따른 것인데,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결국 리테일 비즈니스가 가장 중요한 산업이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러한 그의 문제의식이 집약되어 탄생한 셈이다. 리테일 비즈니스 현장의 각계각층 인사들을 취재했고, 매우 실질적인 비즈니스 트렌드 분석을 실행했다.

 

어려운 학술용어나 전문용어를 걷어내고 한자어 '유통流通'을 살펴보면 우리들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상품이나 서비스가 흐르고流 통하는通 활동이라는 개념이니까. 책은 이제 사야 할 물건이 있어서 쇼핑몰을 찾는 시대가 지났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레저핑', '쇼캉스'란 신종 합성어처럼, 물건을 사고파는 것에서 벗어나 힐링과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는 종합적인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는 의미다.

 

물건만 잔뜩 쌓아놓은 그저그런 과거의 쇼핑몰은 이제 인기가 없다. 지금의 소비자들은 쇼핑몰에서 운동을 하고 학습을 하며 공연을 보고 또 휴식을 취한다. 그래서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제품을 팔고 싶어하던 쇼핑몰이 진작 이런 트렌드를 감지感知, '고객만족'이란 슬로건을 내세우고 다른 방식과 해법으로 접근하기 시작한다. 유통업의 '신풍속도'인 셈이다.

 

 

 

 

거대 쇼핑몰의 탄생

 

미국 최초의 현대적 실내 쇼핑몰은 미네소타주의 사우스데일 센터인데, 이곳은 문을 연 지 이미 60여 년이 지났다. 이 쇼핑몰은 오스트리아 출신 건축가 빅터 그루엔의 손에 의해 탄생했었다. 이후 그루엔은 미국 전역에 수십 차례 넘게 백화점을 설계했으며, 그는 이런 상점을 '상거래용 기계'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런데, 소비 자본주의의 상징적 공간을 만들어낸 그루엔이 사회주의자였다는 점은 퍽 흥미롭다. 사회주의자로서 쇼핑몰을 이웃들을 위한 모임장소로 설계하고자 구상했던 것이다. 그는 당시 좌익 성향의 유대인 지식인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나치가 유럽 곳곳으로 힘을 뻗치자 신변의 위협을 느껴 미국으로 도피했다.

 

그의 설계는 세계 도처에 복제되었다. 그래서 말콤 글래드웰은 그루엔을 20세기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건축가로 꼽았다. 1950년 대의 미국은 소비 붐이 일어나는 시기였다. 쇼핑몰이 '번화가보다도 더 번화가 같다'고 평가받더니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미국인들이 일터 외엔 쇼핑몰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북미 지역에서 쇼핑은 TV 시청 다음으로 중요한 문화활동이 되었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스타필드, 롯데몰 등 복합쇼핑몰은 현재 유통의 대세로 떠올랐다.

 

 

미용, 건강 부문을 특화한 유통업태

 

미국에서는 20세기 초에 드러그스토어가 탄생한다. 이는 의사의 처방전 없이도 구매할 수 있는 의약품, 화장품, 그리고 건강식품 등을 판매하는 소매 잡화점이다. 1901년 미국은 시카고에 현재와 같은 형태의 드러그스토어가 처음 오픈했으며, 일본도 1987년 도쿄에 드러그스토어 1호점이 등장했다. 그런데, 이 업태는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새로운 형태로 자리잡았다. 바로 H&B 스토어다.

 

미용과 건강 부문이 특화되어 차별성을 갖춘 이 매장의 주고객은 10대 후반에서 30대까지다. 그래서 유동인구가 많은 대학가, 유흥가, 주거밀집지역에 출점, 화장품과 샴푸 등 비식품 상품군이 전체 상품의 60%를 차지한다. 기존의 편의점에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고객들이 주로 이 매장을 이용한다. 그래서 여성 고객의 비중이 높다.

 

국내 H&B 스토어의 성장은 네 가지 키워드로 분석할 수 있다. 여성(female), 편리성(convenience), 체험(experience), 불황(recession)이 바로 그것이다. 주고객층인 '여성'들이 건강과 미용에 갖는 관심, 원스톱 쇼핑이 주는 '편리성', 셀프 셀렉션 형식과 테스터 공간을 통한 상품 비교 '체험', '불황'으로 인해 합리적 소비를 추구하게 된 현상 등이 맞물린 것이다.

 

 

17억 무슬림을 향한 구애求愛

 

무슬림을 향한 유통업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이들의 소비력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산아 제한을 두지 않는 이슬람 가정과 사회문화를 고려할 때 향후 그 수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관광공사의 통계에 따르면, 2016년 무슬림 관광객은 약 98만 명으로 2015년(74만 명)보다 무려 33%가 증가한 수치이다. 그리고 한국 방문 관광객 중 무슬림이 차지하는 비중 또한 증가세를 띈다.

 

롯데백화점은 에비뉴엘 잠실점에 무슬림 고객을 위한 15평 규모의 기도실을 설치했다. 하루에 5회 메카를 향해 기도해야 하는 무슬림 쇼핑객을 배려하기 위해서다. 여기엔 경전인 코란의 비치는 물론이고, 예배 카펫과 기도 전 손발을 깨끗하게 씻을 수 있는 공간까지 마련하고 있다. 게다가 남성과 여성의 기도실을 따로 분리 운영하고 있다.

 

대체로 우리들은 무슬림하면 중동을 떠올린다. 정확히 구분하자면 무슬림과 아랍인은 같은 말이 아니다. 아랍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이 아랍인인데, 전체 무슬림의 약 20%를 차지한다. 무슬림은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이다. 비록 한국인일지라도 이슬람교를 믿는다면 이 사람은 바로 무슬림인 것이다. 세계적으로 이슬람교도가 가장 많은 나라는 아시아에 위치한 인도네시아, 그 다음이 인도이다.

 

그런데, 왜 무슬림을 주목하느냐 하면 이들은 먹고 사용하는 것을 율법에 정해놓고 있기에 이를 판매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무슬림들은 이슬림식으로 도살된 신선한 고기만 먹는다. '할랄'이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일습에 목숨을 끊어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한 소, 양, 닭고기는 할랄에 속한다. 세계적으로 할랄 시장은 급성장 추세인데, 2021년엔 2조 7천억 달러 규모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에 반해 고양이, 개, 잔인하게 도축한 고기는 '하람(금지된 것)'으로 분류하기에 절대 먹지 않는다.

 

농심~ '할랄신라면'(돼지고기를 사용 않는다)

대상그룹~ '할랄 인증' 마요네즈(인도네시아 시장점유율 40%)

 

따라서, 맹목적인 이슬람포비아(Islamophobia)도 경계해야 한다. 이슬람포비아는 '이슬람 공포증+혐오증'의 합성어로, 심리적으로는 혐오증에 무게중심이 더 실리는 경우가 많다. 테러리즘은 비난 받아 마땅하지만, 전체 무슬림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간주하는 편협한 태도는 옳지 못하다.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부정적 이미지의 테러리스트 낙인은 미국의 반反 이슬람 미디어가 쏟아낸 보도에 기인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새로운 노년의 니즈를 파악하라

 

나이 든다는 것은 세월이 흘러 저절로 나이를 먹으면서 노화가 된다는 현상이다.  그래서 다소 초라하고 슬픈 감정을 초래한다. 자신의 신체가 쇠약해지고, 현직에서 은퇴해야 하며, 나아가서는 죽음과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과 맞닥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전통적인 인식에 변화가 생겨났다. 멋지고 당당하게 나이 들 수 있다는 믿음, 바로 '비엥 비에이르(만족스럽게 나이 들기)'이다. 

 

'찬란한 미래'는 젊은 세대만 전유하는 것이 아니다. '비엥 비에이르'를 외치는 노인들의 멋진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 이것이 요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존재미학이다. 앞으로 '비엥 비에이르'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기업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액티브 시니어들은 상대적으로 풍부한 경제력을 갖췄음에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 역시 느끼고 있기 때문에 무턱대고 지갑을 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이 지갑을 여는 명분과 이유를 의식하며 소비활동을 한다. 요실금 전용 언더웨어의 인기가 이런 흐름을 대변한다.

 

 

쇼핑 시간을 극대화하라

 

최근 쇼핑몰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는 식음료와 엔터테인먼트다. 롯데월드몰의 5층과 6층엔 테마 식당가와 영화관이 있다. 식당가와 영화관은 목적 지향성이 강하다. 즉 그냥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방문의 목적이 분명하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이곳은 늘 사람들이 붐비는 장소이다. 식사를 하기 전후, 영화를 보기 전후의 고객들은 아래층에 내려가 쇼핑을 즐기며 시간을 보낸다.

 

이렇게 롯데뤙드몰은 위층의 집객 효과를 아래층까지 확산시켜 쇼핑몰 전체의 매출을 상승시킨다.  이런 샤워 효과를 고려해 MD를 구성했다. 롯데월드몰 각 층에 숨어 있는 '쇼핑의 과학'은 그 모습은 각기 다르지만, 궁극적으로는 '고객 만족'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갖고 있다. 유통업체 관계자라면 고객 중심의 디자인과 콘텐츠를 다채롭게 선보일 수 있도록 국내외 다양한 사례를 면밀히 연구해야 할 것이다.

 

마케팅 담당자라면 스포테인먼트 시설과 식음료 공간의 연계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고객들이 자연스럽게 이동할 있도록 하는 게 포인트다. 스포테인먼트 티켓 소지자에게 식음료 할인 혜택을 주거나,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에 인기 메뉴를 찍은 사진을 인증하면 스포테인먼트 입장권 할인을 해주는 등 다양하고 기발한 연계 프로모션을 구상해볼 필요가 있다.

 

 

소비자의 욕망을 읽어라

 

바야흐로 쇼핑은 과학이다. 책은 소비자의 욕망을 읽어야 시장을 지배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불황과 불확실의 시대일수록 유통의 최종단계인 쇼핑이 더욱 더 중요해진다. 그래서 대형 유통업체들이 고객들의 쇼핑 트렌드에 빠르게 반응하고 이를 철저히 연구해서 콘텐츠화하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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