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400억 원의 빚을 진 남자
유자와 쓰요시 지음, 정세영 옮김 / 한빛비즈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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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을 경영하는 분은 물론, 창업을 꿈꾸는 분, 부모님이 회사를 경영하는 분, 그리고 지금 최악의 상황에 빠졌다고 생각하는 분, 진로 문제로 고민하는 학생도 상상조차 하기 힘든 내 인생을 들여다보았으면 좋겠다. 인생에는 부조리한 일이 산더미처럼 많다. 그런 일만 생긴다고 여겨지는 날도 있다. 하지만 아침이 오지 않는 밤은 없다. 포기하기엔 아직 이르다. - 머리말 중에서

 

 

도산 직전의 회사와 거액의 빚을 물려받다

 

저자 유자와 쓰요시는 1962년 일본 가나가와 현 가마쿠라 시에서 태어났으며, 현재 주식회사 유사와 대표이사다. 그는 와세다 대학 법학부 졸업 후 기린맥주 주식회사에 입사하여 국내 맥주 영업을 시작으로 인사부 인재개발실 뉴욕 주재원, 의약 사업본부 해외사업 담당으로 일하였다. 1999년, 창업자인 아버지가 갑작스레 타계하면서 주식회사 유사와를 물려받아 40억 엔이라는 막대한 부채를 떠안게 되었다.

 

이후 그는 도산 직전의 회사를 16년에 걸쳐 재건에 성공했다. 지금은 가나가와 현에서 음식점 열네 곳을 경영하며 '사람이 빛나고 지역을 밝히며 행복을 퍼뜨린다'라는 경영이념 실현에 매진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살려 중소기업 경영자를 대상으로 '포기하지만 않으면 길은 개척할 수 있다, 아침이 오지 않는 밤은 없다'라는 주제로 강연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되었는데, 주인공인 저자가 대기업에 다니며 장밋빛 인생을 구가하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으로 부도 직전의 회사와 400억 원의 빚을 떠안게 된 사건으로 시작한다. '빚을 다 갚으려면 80년은 걸릴 것'이라는 은행의 극단적인 선고에도 불구하고, 그는 16년간의 분투 끝에 회사 재건에 성공한다.

 

주요 내용으로는 지하철에 투신할 뻔한 사건, 회생의 조짐이 보이던 무렵 터진 광우병 사태, 노로바이러스 발생으로 신문에 보도된 사건, 신뢰하던 직원의 죽음, 화재로 불타버린 가게 등이 소개된다. 불행의 여신에게 사로잡혀 악몽의 나날을 보내던 그가 어떻게 자살을 생각하지 않고 다시금 일어나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일류기업에 다니던 주인공은 어느 날 요식업 회사를 운영하던 아버지의 부고를 접한다. 장례식이 끝나자 채권 은행들이 줄줄이 방문하고, 빚을 갚기 위해 회사를 물려받아 사장 자리에 취임할 것을 요구한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회사의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잠시 휴가를 내지만 어느 샌가 이미 회사 직원들에게 '사장님'이라 불리고 있었다.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고 빚 투성이 회사를 물려받기로 했지만 아무리 필사적으로 대책을 강구해도 온갖 문제가 매일같이 덮쳐왔다. 16년간 진흙탕 속을 허우적대며 사는 동안, 시간은 흐르고 흘러 2015년 5월이 되었다. 마침내 빚의 대부분을 상환, 서른여섯이었던 그는 어느새 쉰둘이 되어 있었다.

 

일기예보에 바들바들 떠는 나날

 

음식점은 원래 현금 장사라 그날 번 돈을 바로 결제에 충당할 수 있어서 자금 변통이 어려워지기 힘든 구조다. 하지만 유사와는 그조차도 뜻대로 되지 않을 만큼 어제 매출로 오늘 결제를 메꾸며 근근이 버티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가장 낭패스러운 일은 주말의 비였다. 날씨가 궂으면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고, 수천만 원 단위로 입금액이 달라졌다. 그것은 다시 말해 월요일에 결제할 돈이 없어진다는 의미였다. 돈을 갚지 못하면 또 사죄하러 가서 결제일을 늦춰달라고 부탁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유로 주말에 비라도 내리면 머리를 쥐어뜯었다. 정말이지 환장할 지경이었다. "제발 비가 오지 않게 해주세요" 하며 정성을 다해 빌고 또 빌었다. 기상캐스터가 "이번 주 날씨입니다. 주말에는 강한 비가 내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면 우울함이 극에 달해 영상 화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비가 오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기분이 나빠졌다.

 

 

한심한 남편

아내와는 기린맥주에서 동료로 만나 회사를 물려받기 4년 전에 결혼했다. 당시만 해도 아내 역시 멋진 해외 주재원 생활을 꿈꾸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불행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아내와 함께 새벽같이 일어나 회사에 출근하고, 사무실 직원들이 모두 퇴근간 후에도 밤늦게까지 둘이 남아 일했다. 퇴근길에는 문 닫기 직전인 슈퍼마켓에서 떨이 채소를 사다가 초라한 저녁 식사를 했다. 지칠 대로 지쳐서 대화조차 없었다. 매일 그런 생활이 반복되었다.

 

직장에 다닐 때는 회사 근처에서 만나 맛있기로 유명한 음식점 이곳저곳을 다니곤 했지만 말이다. 힘든 생활의 연속으로 이제는 식탁에 마주 앉아 떨이 채소나 먹는 신세이니 말 한마디조차 나누지 않았다. 우리 두 사람 모두 운명의 장난에 농락당하고 있었다. 그에게 사생활이란 전혀 없었다. 동창회도 경조사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런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지하철 투신 미수 사건

 

회사를 물려받고 1년쯤 경과했던 어느 날, 저자는 국세국에 체납액 납부 문제로 불려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우울한 기분으로 오테마치 역 플랫폼에 서 있었다. 새 담당자는 전임자와 달리 모질고 냉정한 남자였다. 담당자에게 상당히 벅찬 납부 계획을 강요받은 그는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나저나 이제 더는 못 버틸지도 모르겠군'
'이제 한계인가'
'요구대로 납부하지 못하면 어쩌지'

 

그때였다. 갑자기 몸이 플랫폼에 들어오는 전철 쪽으로 기울어지나 싶더니 나도 모르게 선로에 뛰어들려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벌어진 일이 믿기지 않았다. 궁지에 몰려 있기는 했지만 결단코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진 빚도 아닌데, 그것 때문에 죽는다는 건 너무 억울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는데도, 그렇게까지 확실하게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있었는데도, 그때 그의 몸은 틀림없이 선로를 향하고 있었다. 분명히 삶을 중단시키려는 행동을 하려고 한 것이다. 이처럼 자신에게 처한 상황이 막다른 길에 몰리게 되면 인간의 몸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달리 움직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자살 보도 뉴스에서 말하는 '충동적으로'라는 것이었다.

 

 

 

무엇이 늘어나든 날짜만은 확실히 줄어든다

 

이 5년, 즉 1,827일분의 '일일 달력'을 만들었다. 아내의 도움을 받아 수작업으로 완성했다. 그리고 침실에 걸어두었다. '오늘도 회사는 망하지 않았어', '오늘 하루도 그럭저럭 버텼구나', '나도 회사도 아직 살아 있다…' 등의 그런 생각을 하며 잠자리에 들기 전에 달력을 한 장씩 넘김으로써 내일을 향한 집념을 굳건히 유지할 수 있었다.


잠자리에 들기 직전에 '아, 오늘 하루도 끝났다. 이제 1,800일 남았어' 하며 달력을 넘기는 그 순간만큼은 마음이 홀가분했다. 괴롭고 굴욕적인 일이 있더라도 어쨌든 하루는 지나간다. 하루가 줄면 다시 늘어나는 법은 없다. 빚은 늘어날지도 모르고 상황이 나빠질 수도 있지만 날짜만은 반드시 줄어들었다. 그것이 정말 감사했다. 카운트다운의 효과는 절대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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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톨로지 (스페셜 에디션, 양장) - 창조는 편집이다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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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경제를 부르짖던 '산업화세대의 정부'가 몰락하자 그 대안으로 새롭게 등장한 단어가 바로 '4차 산업혁명'이다. 아, 참으로 황당하다! 낡은 산업화세대가 사라진 후, 새롭게 등장한 캐치프레이즈도 지극히 '산업화시대적'이기 때문이다. 4차가 아니라 10차, 100차의 단계에 이른다하더라도 산업혁명의 개념으로는 결코 오늘날의 변화를 설명할 수 없다. '산업혁명'이 아니다. '지식혁명'이고 '인식혁명'이다! - '개정판을 내며' 중에서

 

 

창조는 나만의 독창적인 편집이다

 

책의 저자 김정운은 문화심리학자로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교 전임강사 및 명지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으며, 일본 교토사가예술대학 단기대학부에서 일본화를 전공하고 2015년 수료했다. 이듬해 한국으로 돌아와 터를 잡은 곳은 전라남도 여수. 창밖으로 바다가 내다보이는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가끔 작은 배를 몰고 나가 고기를 잡는다.

 

수많은 책으로 빼곡한 서재에서 글을 쓰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그는 현재 조선일보에 '김정운의 여수만만', 채널예스에 '김정운의 인터벨룸' 등을 연재 중이다. 그의 저서로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에디톨로지>,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남자의 물건>, <노는 만큼 성공한다> 등이 있다.

 

"창조란 유에서 무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며 '기존의 것들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데서 탄생한다"고 말하는 그는 이 책에서 '낯설게 보기'를 통해 독창적인 관점을 갖는 법, 암기형 공부가 아닌 주체적 공부로 나만의 이론과 철학을 만들어내는 법 등 실제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에디톨로지 방법들을 소개한다. 아울러 실용적인 독서법과 차별화된 글쓰기 방법 등의 핵심 노하우를 전수한다.

 

 

 

 

창조의 본질

 

창조는 편집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끊임없이 구성되고 해체되고 재구성된다. 그래서 저자는 이런 모든 과정을 '편집'이라고 정의한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에서 밝혀지듯이, 자기가 보고 싶은 것에만 집중하느라 실험 동영상에 나타난 고릴라를 보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즉 인간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해석이 된다. 

 

여기에서 편집의 방법론이 등장한다. 무슨 얘기인가 하면, 잡지나 신문의 편집자는 원고를 모아 지면에 맞게 재구성한다는 것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촬영 자료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장면을 채택한다. 이처럼 우리는 세상의 모든 사건과 의미를 각자의 방식으로 편집하는데, 저자는 이런 방법론을 '에디톨로지'라고 명명한다.

 

창조는 '창의적 사고'가 수반되어야 한다. 창의적 사고란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사물을 보는 데서 시작한다. 자극을 수용하는 단계부터 다르다. 아주 익숙하고 진부한 장면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창조적 질문이 비로소 시작된다. 우리의 삶이 힘든 이유는 똑같은 일상이 매번 반복되기 때문일 것이다. 창조적이고 싶다면 이 따분한 삶을 낯설게 만들어야 한다.

 

 

천재와 또라이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인간이 가장 창의적일 때는 멍하니 있을 때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다는 뜻이 아니다. 멍하니 있을 때, 생각은 아주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가끔 멍하니 앉아 있다가, '아니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할 때가 있다. 그러고는 그 생각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거꾸로 짚어나간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다. 생각의 흐름을 찾아냈을 때, 자신이 그 짧은 시간 동안 날아다녔던 생각의 범위에 놀라게 된다. 보통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창조적인 순간인 셈이다.

 

보통사람은 어쩌다 겪는 '날아가는 생각'이지만, 천재에게는 일상이다. 천재의 생각은 날아다닌다. 하지만 그 날아다니는 생각을 현실에서 구체화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수많은 IT 창업자 중, 오늘날 포브스 500대 부자이자, 한국의 10대 부호 안에 드는 유명 게임업체 넥슨의 창업주 김정주는 날아다니는 생각을 구체화한 특별한 인물이다.

 

그런데, 날아다니는 생각은 천재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또라이'의 특징이기도 하다. 천재와 또라이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천재는 날아다니는 생각을 잡아서 처음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또라이는 그렇지 못하다. 생각이 그냥 계속 날아다닌다. 자신의 생각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마구 날아간다.

 

오늘날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보통사람들도 천재처럼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신이 일부 천재들에게만 부여한 '날아다니는 생각'을 이제 보통사람들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어떻게 가능할까? 바로 '쥐', 즉 컴퓨터의 '마우스' 때문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은 생각을 날게 하는 도구를 갖게 된 것이다.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관심 있는 곳을 클릭하면 생각은 바로 다른 곳으로 날아간다. 방금 전의 맥락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이다. 이건 엄청난 혁명이다. 

 

 

크로스텍스트 vs 하이퍼텍스트

 

성장하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지적 충격을 받는다. '아, 나도 한번 저 사람처럼 글 쓰고, 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다. 지식욕도 일종의 허영이다. 사람은 남들에게 폼 나 보이고 싶을 때 성장한다. 어릴 때는 가까운 친구들에게, 나이 들면서는 대중에게 폼 나 보이려고 한다. 남자들이 항상 여자에게 폼 나 보이고 싶어 하는 것과도 같다.

 

헤겔의 '인정투쟁Kampf um Anerkennung'의 핵심은 나도 한번 폼 나고 싶다는 심리학적 '동기'다. 그런데, 저자의 지적 성장 과정에서는 도올 김용옥 교수와 이어령 선생이 그렇게 폼 나 보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저자도 그들처럼 글 쓰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왜 저자가 도올 김용옥과 이어령 선생을 닮고 싶었는지 살펴보자.   

 

김용옥은 학문적 텍스트에 '나'라는 주어를 처음 쓴 사람이었다. 그때까지 인문, 사회과학 텍스트에 '나'라는 주어를 쓰는 경우는 없었다. 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연과학이 학문의 전형으로 여겨진 후, 인식주체인 '나'는 학문적 글쓰기에서 사라졌다. 자연과학적 지식의 핵심은 '주체가 배제된 객관성'이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의 기초는 실험이다. 실험의 결과가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여지려면 네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즉 누가 실험해도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다는 '객관성', 반복된 실험에도 그 결과는 동일해야 한다는 '신뢰성', 측정하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측정했다는 '타당성', 그리고 그 결과를 일반화할 수 있는 '표준화'(비교 가능성)이다. 주관성은 과학성의 최대 적인 셈이다. 그럼에도 김용옥은 '자기 이야기'를 했다.

 

대부분의 한국 교수들이 두려워하는 '주체적 글쓰기'가 도올에게 가능했던 것은 그의 크로스텍스트적 사유 때문이다. 그의 무기는 '동양고전'이다. 해당되는 텍스트를 둘러싼 사회, 문화, 언어, 정치적 맥락에 대한 비판적 이해를 가능하게 했다. 이런 크로스텍스트적 독해는 개신교, 천주교, 불교를 넘나들 수 있는 무기로 장착했기에 당연히 주체적 글쓰기로 연결되면서 큰소리칠 수 있었던 것이다.

 

유학을 다녀온 소위 유학파 인문, 사회과학 분야의 교수들은 누구나 자기 전공이 있다. 흥미롭게도 모두 다 위대한 서구 학자를 전공했다. 헤겔 전공?, 그렇다면 헤겔은 누구 전공일까? 자기 텍스트를 써야 제대로 학문을 하는 거다. 오늘날 한국에서 '인문학 위기'를 거론하는 이유는 바로 한국의 맥락에 맞는 텍스트 구성의 전통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서양인들의 텍스트로 서양의 학문을 해왔으니 말이다.

 

한국의 콘텍스트에서 새로운 텍스트가 가능하려면 기존의 텍스트를 해체해야 한다. 텍스트의 해체와 재구성은 김용옥식 크로스텍스트로는 불가능하다. 탈脫텍스트, 즉 하이퍼텍스트가 가능해야 한다. 한국에서 하이퍼텍스트적 방법론을 통해 자신의 텍스트를 끊임없이 재구성해온 학자가 바로 이어령 선생이다. 소위 'IT 혁명'이라며 남들이 모두 '디지털'을 논할 때, 그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결합인 '디지로그'를 제시했다. 이 개념의 핵심은 바로 디지털의 발전이 아날로그의 변화를 초래하고, 아날로그는 여전히 디지털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주체적 학습과 데이터베이스

 

한국적 상황에서 강요받았던 공부의 방향이 상실되자, 주체적 학습의 내용과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 비로소 시작되었다. 왜 공부해야 하는가의 때늦은 질문이기도 했다. '사회Gesellschaft'와 '문화Kultur'의 개념적 차이에 관한 논의에 특히 관심이 갔다. 결국 저자는 '문화심리학'으로 자신의 공부 방향을 결정했다. 새롭게 공부를 시작했다. 정말 열심히 했다.


“Was ist deine Theorie? 네 이론은 뭔가?”

 

면담 신청 후, 몇 달을 기다려 겨우 만난 지도 교수는 저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가 펼쳐놓은 논문 계획서는 아예 읽어보지도 않았다. 그때까지 단 한 번도 자신만의 이론을 생각해본 적도, 그렇다고 그런 이론을 만들 생각도 없었는데, 지도 교수는 이제 막 독일에 정착한 그에게 '네 이론이 뭐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이에 그는 당연히 "이론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당신의 이론을 배우러 왔다고 했다. 그러자 지도교수는 "나가라고" 했다. 석사, 박사 논문을 쓰겠다는 학생이 어찌 자기 생각이 없을 수가 있느냐는 반응이었다. 게다가 남의 이론 요약하는 것으로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스스로 제시하고 싶은 이론의 방향을 생각해서 다시 오라고 했다.

 

주체적 시선으로 공부하고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학문적 문제의식이 있느냐는 질문이기도 했다. 이는 바로 자신만의 주체적 관점이 분명해야 남의 이론을 흉내 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공부하는 방법부터 바꿔야 했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그저 대가의 이론을 이해하고 외우는 것만으로 저자 자신만의 이론 구성은 아예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후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관찰해보니 아주 특이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학생들 대부분이 작은 카드에 뭔가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학교 앞 노점상들도 다양한 사이즈의 카드를 팔고 있었다. 심지어 이런 카드를 정리하는 다양한 모양의 상자까지 팔고 있었다. 재질은 나무, 가죽, 플라스틱 등 참으로 다양했다. 그럼에도 저자는 한국에서의 습관대로 노트를 사용했다.

 

그런데, 이 둘 사이엔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했다. 바로 '편집 가능성'이다. 카드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다양하게 편집이 가능했지만, 저자의 노트는 편집이 불가능했다. 예를 들어, 프로이트의 책을 읽으며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내용을 카드에 정리한다. 카드 맨 위엔 키워드를 적고, 그 밑에는 '연관 검색어'를 적고, 출처와 날짜 등을 기록해둔다. 물론 내용은 카드 앞뒤로 빼곡히 요약한다. 다소 번잡스럽긴 해도 이것들이 모이면 아주 중요한 데이터베이스가 되는 것이다.

 

 

저자의 편집력

 

1. 일단 책을 많이 산다

2. 책에 밑줄을 긋고 내 생각을 적는다

3. 중요한 내용은 '데이터베이스 앱'에 저장한다

4. 넓찍한 모니터 2개를 나란히 붙여 사용한다

5. 책상 3개를 'ㄱ'자로 연결해 아주 넓게 사용한다

6. 각 방마다 주제별로 책들을 모아 놓는다

7. 유튜브 같은 영상자료를 수시로 본다

8. 연재를 쒸지 않고 계속한다

9. 나만의 '개념'을 끊임없이 편집해내야 한다

10. 콘텐트 생산, 그 자체가 재미있어야 한다

 

 

 

축구 중계를 폼 나게 하라

 

현재 아시안 게임이 진행 중이다. 얼마전 대형 스포츠 행사인 월드컵 축구에서 한국 대표팀은 16강에 진출하지 못했다. 그나마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독일을 이긴 게 위안거리였다. 이것도 우리의 실력이라기보다는 상대의 실수로 얻은 행운의 승리였다. 며칠 전 한국 대표팀은 비교적 약체라던 말레이지아에게 패하고 말았다. 말레이지아에서 보면 우리가 독일을 이긴 것처럼, 한국 선수들의 실수로 얻은 행운일 것이다. 그나저나 손흥민 선수의 병역 특혜가 걸린 금메달인데, 출발이 영 시원찮다.

 

저자는 책에서 한국 축구의 중흥을 위해선 축구 중계를 폼나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축구를 보여주는 방식이 바뀌면 선수들의 경기 내용도 달라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공간을 읽는 경기를 펼치게 되므로 덩달아 실력이 향상되며, 축구팬들의 태도도 함께 바뀐다는 것이다. 이제 애국심에 호소하는 '애국 축구'를 그만하자. 축구팬들이 축구를 이해하는 수준이 바로 그 나라의 축구 수준이다. 애국심으로 축구 수준을 올리려는 것은 황당하기 그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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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그릇 - 돈을 다루는 능력을 키우는 법
이즈미 마사토 지음, 김윤수 옮김 / 다산북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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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는 판단을 잘못했다고 했지만, 그 경험은 자네가 장차 판단을 내릴 때 반드시 도움이 될 거야. 1억 원을 토대로 판단을 내렸던 경험은 1억 원의 그릇이 되어서 자네 속에 남게 되거든. 따라서 1억 원을 다뤄본 경험은 무엇과도 바꾸기 어려운 귀중한 재산이지" - '본문' 중에서

 

 

돈을 다루는 방법을 바꾸면 인생도 바꿀 수 있다

 

책의 저자 이즈미 마사토는 일본 최고의 경제금융교육 전문가로 일본 파이낸셜 아카데미 주식회사 대표이자 고베 슈쿠가와가쿠인 대학 객원교수이다. 그는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슬론경영대학원 이그젝티브 코스를 수료했으며, 2002년 일본에 '돈의 교양'에 대해 이야기하는 문화가 부재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경제금융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파이낸셜 아카데미를 설립하였다.

 

이 아카데미는 25만 명이 넘는 수강생을 가진 독립계 파이낸셜 교육기관으로, '경제와 돈의 교양이 몸에 배는 머니 스쿨'을 운영하고 있으며, 경제, 회계, 재산, 경제신문을 읽는 법부터 머니플랜, 주식 투자, 부동산 투자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분야를 다루고 있다. 또, 그는 1년 중 3개월을 외국에서 지내면서 교육, IT, 부동산 사업과 관련해 국내외에 총 다섯 개의 회사를 경영 중이다.

뿐만 아니라 금융학습협회의 이사장으로서 공인재단법인 일본생애학습협의회가 감수하고 인정한 '머니 매니지먼트' 검정시험을 만들었으며, 돈의 지성을 높이기 위한 보급 및 집필 활동에도 힘쓰고 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총 28권의 저서를 집필하였으며 한국, 중국, 대만에도 번역 출간되었다. <부자의 그릇>은 그의 첫 교양 소설 작품이며, 국내에 출간된 도서로는 <사고신탁>, <돈의 교양>, <금전지성> 등이 있다.

 

이 책은 저자의 실제 사업 실패담을 바탕으로 한 경제분야 교양 소설인데, 총 3장(만남, 고백, 진실)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한때 12억 연매출의 주먹밥 가게 오너에서 3억 원의 빚을 지고 나락으로 떨어진 한 사업가가 우연히 만난 부자 노인과 7시간 동안 나눈 대화가 주된 줄거리인 셈이다. 이를 통해 우리들에게 돈을 다루는 능력을 키우는 법을 제시한다.

 

나아가, '돈은 신용을 가시화한 것'이라는 게 책이 전하려는 핵심 메시지이다. 노인은 남을 위해 돈을 쓰고,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고, 사람들과의 약속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 어떻게 돈을 불러 모으는지, 그리고 '신용의 원리'에 관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준다. 이에 돈이 모이지 않는다며 좌절한 인생들에게,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어준다.

 

 

 

 

돈을 다루는 능력은 경험을 통해서만 키울 수 있다

 

"참 이상하네요. 사치만 안 하면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돈이 있는데, 왜 그러는 걸까요? 결국 계속 화려한 생활을 이어가려고 하는 욕심이나 괜한 승부욕 때문이 아닐까요? 전 자업자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니야. 돈에는 이상한 힘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사람에게는 각자 자신이 다룰 수 있는 돈의 크기가 있거든. 다시 말해, 그 돈의 크기를 초과하는 돈이 들어오면 마치 한 푼도 없을 때처럼 여유가 없어지고 정상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게 되는 거지"

 

"하지만 사람은 언제까지나 중학생으로만 있을 수는 없고, 계속 성장하지 않습니까? 당연히 다루는 돈의 크기도 자연스레 커지겠지요"

 

"맞는 말이야. 하지만 돈을 다루는 능력은 많이 다루는 경험을 통해서만 키울 수 있어. 이건 결론이야. 처음에는 작게, 그리고 점점 크게.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 분별력이 생기면 돈을 다룰 수 있다고 착각해. 분별럭과 돈을 다루는 건 별개인데 말이지. 자네는 혹시 알고 있나? '파이낸셜 플래너'라고 불리는 사람들 중에 부자는 거의 없다는 걸"

 

 

돈은 '믿음'으로부터 생긴다

 

"그럼, 반대로 돈이 없는 사람은 신용도 없는 겁니까?"

 

"지금의 자네가 거기에 해당되는지는 모르겠네만, 돈이 없는 사람은 의심이 많아서 좀처럼 남을 믿지 않고 흠부터 찾으려고 하지. 남을 믿지 못하면 신용을 얻지 못하는데도 말이야. 자연히 돈은 그 사람을 피해서 돌아가게 되고"

 

"그렇지만 부자도 남을 믿었다가 속는 일이 있지 않습니까? 특히 돈이 있으면 세상 사기꾼들은 죄다 인심 좋은 부자를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파산한 사람들도 적지 않고요. 어르신의 이야기는 저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지만, 이상론(理想論)처럼 들릴 뿐입니다"

 

"사물은 절대 한 면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아. 나는 아무나 믿으라고 하는 게 아니야. 신용도라는 건 그 사람의 인격에 비례한다고 보네. 가혹한 현실이지만 신뢰하는 사람,신뢰받는 사람은 언제나 동일한 계층에 있어. 같은 의미로, 속이는 사람, 속는 사람도 마찬가지야. 자네는 뭐를 근거로 사람을 믿나? 아직 내 이야기를 믿지 못하더라도 이것만은 기억해주게"

 

자네가 상대를 믿지 않으면, 상대도 자네를 믿지 않아. 신용이 돈으로 바뀌면, 믿어주는 상대가 있는 것만으로도 재산이 되지

 

 

돈이 '줄어드는 것'보다 '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라

 

"부자가 두려워하는 건 '돈이 늘지 않는 리스크'라네. 인생은 영원하지 않아. 그리고 인생에서 행운이란 건 손에 꼽힐 정도로만 와.

 

따라서 한정된 기회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려면 배트를 많이 휘둘러야 해.

 

물론 때로는 크게 헛스윙을 할 때도 있을 거야. 많은 사람들은 바로 이 헛스윙이 무서워서 가만히 있지. 하지만 성공하는 사람들은 배트를 많이 휘둘러야 볼을 맞출 수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 '배트를 휘두르면 경험이 되고, 마침내 홈런을 치는 방법을 익히면 행운을 얻으며 홈런을 날린다' 그게 바로 그들의 공통된 생각이야.

 

예를 들면, 250개의 제비 중 1개만이 10억 원짜리 당첨 제비라고 생각해보게. 그리고 제비를 한 개씩 뽑을 때마다 1,000만 원을 내야 해. 이때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 것 같나?

 

'당첨될 확률은 250분의 1이니까, 그처럼 무모한 건 안 하는 게 좋겠어'

 

하지만 돈을 얻으려면 이런 발상이 필요하지. '250번 연속으로 뽑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당첨된다!' 물론 250번을 연달아 뽑으면 설령 당첨이 되더라도 적자가 날 거야.

 

하지만 누구나 제비뽑기에서 100번 이내에 당첨 제비를 뽑을 정도의 행운은 가지고 있다네"

 

 

'지불하는 사람'이 있으면 '받는 사람'이 있다

 

"빚이라는 건 정말 신기하단 말이지. 사람에 따라서는 계속 얻는 편이 좋다는 사람도 있고, 빚이라면 무조건 싫다는 사람도 있어. 그런데 말일세.

 

사람들은 회사가 문을 닫거나 개인이 자기파산하는 원인이

'‘빚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수중에 '돈이 없어지기 때문'이야.


사실 이는 경영하는 사람에게는 당연한 말이야.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실패를 빚 탓으로 돌리고 사고를 정지시켜. 빚을 진 것 자체를 나쁘다고 생각하거든. 그러나 실제로는 빚 덕분에 도산을 면하는 회사도 아주 많이 존재한다네"

 

"자네도 궁금하지 않나? 애당초 왜 금리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이에 대해 내가 존경하는 한 경영자는 이렇게 말했다네. '빚은 결코 나쁜 게 아니다. 부채와 금리를 잘만 다루면 오히려 경영에 많은 도움이 된다. 부채 금액은 균형을 보고 정하고, 금리는 그 돈을 조달하기 위한 비용이라고 생각하면 가장 합리적이다' 그 뒤, 회계학을 공부하면서 '금리가 곧 비용'이라는 사고방식이 아주 타당하다는 걸 알았어.

 

다시 말해, 부채는 재료, 금리는 조달 비용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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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사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17
로버트 C. 앨런 지음, 이강국 옮김 / 교유서가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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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는 사회과학의 여왕이다. 경제사의 주제는 애덤 스미스의 위대한 저작의 제목인 '국부의 본질과 요인(국부론)'이다. 국부의 요인을 경제학자들은 시간을 초월하는 경제 발전 이론들에서 찾지만, 경제사가들은 역사적 변화의 동적인 과정에서 찾는다. 경제사가 던지는 근본적 질문- 왜 어떤 나라는 부자이고 다른 나라는 가난한가?-이 다루는 범위가 전 세계로 확장된 이래 경제사는 특히 흥미로워졌다. 50년 전 그 질문은 '산업혁명은 왜 프랑스가 아니라 영국에서 일어났는가?'였다. 그러나 중국, 인도, 중동에 관한 연구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문명들의 내재적인 동학을 강조해왔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는 경제 성장이 아시아나 아프리카가 아니라 왜 유렵에서 시작되었는지 물어보아야만 한다. - '대분기' 중에서

 

 

왜 어떤 나라는 부자이고 다른 나라는 가난한가?

 

이 책의 저자 로버트 C. 앨런은 1947년생으로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 교수를 거쳐 현재 옥스퍼드 대학교 경제사 교수로 재직중이다. 영국왕립학술원 회원. 2012~13년 미국경제사학회 회장 역임했다. 저서로 <세계적 시야에서 본 영국 산업혁명THE BRITISH INDUSTRIAL REVOLUTION IN GLOBAL PERSPECTIVE>(2009) 등이 있다.

 

우리는 과거 500년을 세 개의 시기時期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1500년에서 1800년 사이의 중상주의 시대(mercantilist era)이다. 이 시대는 통합된 세계 경제를 만들어낸 콜럼버스다 가마의 항해로 시작되어 산업혁명으로 끝이 났다. 유럽인들은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하여 은, 설탕, 담배를 수출했다. 아프리카인들은 노예가 되어 아메리카로 끌려가 이 상품들을 생산했다. 아시아는 향료, 옷감, 도자기를 유럽에 수출했다. 유럽 강대국들은 식민지를 획득하고, 유럽의 제조업은 식민지의 희생을 대가로 발전했지만, 경제 발전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었다.

 

두 번째는 19세기 추격(catch-up)의 시대이다. 1815년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패했을 즈음, 영국이 산업을 선도했고 다른 국가들을 경제에서 압도했다. 서유럽과 미국은 경제 성장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고 4가지 표준적인 정책 묶음으로 이를 이룩하고자 했다. 즉 국내의 관세 철폐와 교통 인프라 건설로 전국적인 통합 시장 창출, 영국으로부터 자국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에 대한 관세 적용, 통화 안정과 국내 산업의 투자재원 확충을 위한 은행 면허 부여, 노동력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대중교육 확립 등이 바로 이것이다. 서유럽과 북아메리카는 성공적이었기에 영국과 함께 선진국 클럽이 되었다.

 

세 번째는 20세기 빅푸시(Big Push)이다. 이전의 서유럽, 특히 독일과 미국에서 성공적이었던 정책들이 20세기엔 아직도 발전되지 못한 국가들에겐 덜 효과적이었다. 대부분의 기술은 선진국에서 발명되는데, 더욱 더 비싸지는 노동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자본을 사용하는 기술을 개발한다. 이 신기술은 저임금 국가에서는 비용 측면에서 효율적이지 않지만,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었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이 기술을 어느 정도 도입했지만, 선진국들을 따라잡을 만큼 급속하게 도입하지는 않았다. 

 

 

   

 

 

산업혁명

 

산업혁명(대략 1760년부터 1850년까지)은 세계사의 전환점이었다. 경제 성장이 지속되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은 이름에서 느껴지는 급격한 단절이 아니라 초기 근대 경제 전환의 결과였다. GDP가 8~10퍼센트씩이나 성장했던 최근의 성장 기적을 기준으로 보면, 1760년 이후 100년간의 경제 성장률(연 1.5퍼센트)은 매우 낮은 것이었다. 그러나 영국은 선도자로서 세계의 첨단기술을 계속 확장해나가고 있었다. 경제가 계속 성장하여 소득이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이것이 오늘날 대중의 번영을 가져왔던 것이다.

 

기술 변화가 바로 산업혁명의 동력이었다. 증기기관, 면방적기와 면방직기, 그리고 석탄을 사용해 철강을 제련하는 발명들이 나타났다. 또 모자, 핀, 못 등처럼 노동생산성을 상승시킨 여러 가지 단순한 기계들도 등장했다. 19세기의 기술자들은 18세기의 기계 발명을 전반적으로 더욱 확장했다. 증기기관은 철도, 선박에 의해 운송 분야에, 동력에 의해 움직이는 기계류도 초기의 방적기를 넘어 산업 전반에 적용되었다. 

 

과학의 발견들은 유럽 전역에 알려졌고, 자연철학에 대한 상류층의 관심은 보편적인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문화적 발전으로는 왜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는지 설명할 수 없다. 대신 산업혁명에 대한 설명은 영국의 독특한 임금과 가격 구조에서 찾아야 한다. 고임금과 값싼 에너지에 기초한 영국 경제에서는 기업들이 산업혁명을 일으킨 혁신적인 기술을 발명하고 사용하는 것이 이익이 되었다.

 

 

기술 진보의 거시경제적 특징

 

당시의 연구개발은 대부분 오늘날 선진국인 국가들에서 행해졌다. 이들 국가는 수익성이 있다고 예상되는 기술을 발전시켰다. 따라서 이 국가들이 선도적으로 도입한 새로운 제품과 과정은 자신들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었다. 특히 선진국의 높은 임금은 자본의 사용을 증가시켜 노동을 절약하는 제품을 개발하도록 유도했다. 이는 진보를 촉진하는 연쇄 순환을 낳았다. 높은 임금이 더욱 자본집약적인 생산을 촉진했고, 이는 또한 더 높은 임금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선순환이 선진국에서 소득이 증가한 기초가 되었다.

 

서구 선진국들은 더 높은 임금이 노동절약적인 기술의 개발로 이어지고 이 기술을 사용하면 노동생산성과 임금이 상승하는 발전의 궤적을 경험해왔다. 이러한 사이클은 반복된다. 오늘날 가난한 국가들은 엘리베이터를 놓쳐버렸다. 이들 국가에서는 임금이 낮고 자본비용이 높아서, 낡은 기술로 생산을 해야 하고, 따라서 소득이 낮다. 산업의 역사는 이러한 법칙의 사례들을 제공한다.

 

 

왜 미국 경제가 멕시코 경제보다 훨씬 더 빠르게 성장했을까?

 

이에 대한 유력한 해석은 미국의 제도가 '질이 좋았던' 반면, 멕시코의 실패는 멕시코의 제도가 '질이 나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제도가 문제였을까? 미국은 영국식 재산권 제도, 삼권분립 및 견제, 평등주의, 민주주의, 자유방임정책 등으로 멕시코에 비해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반면 멕시코는 토착민들의 토지 공동 소유, 극심한 사회적/인종적 불평등, 식민지 유산의 특징을 영속화하는 정치 체제 등이 불리한 점이었다.

 

미국과 멕시코는 왜 이렇게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었을까? 읽고 쓰는 능력과 계산 능력에 대한 수요가 식민지 시기 멕시코에 비해 식민지 시기 미국에서 훨씬 더 컸기 때문이다. 이는 북아메리카의 식민지가 고유 산품 경제였고, 그곳의 정착민들은 그들의 생산품 중 많은 부분을 판매하여 영국의 소비재를 구입하고 유럽의 생활수준을 달성하고자 기대했기 때문이다. 읽고 쓰는 능력은 상업 활동을 촉진했다. 반대로 멕시코의 토착 인구는 상업적으로 훨씬 덜 적극적이었고 따라서 이러한 능력의 쓸모가 덜했다.

 

 

무엇이 경제 성장을 결정할까?

 

책의 저자는 영국, 서유럽, 미국,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일본, 소련, 중국 등 전 세계 경제성장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하려고 한다. 그는 지리, 제도, 문화 등의 근본적인 요인들이 마땅히 경제 성장의 배경이지만 기술의 진보, 세계화, 경제 정책 등이 더욱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경제 성장을 제대로 알려면 세계사라는 역사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는 개인적인 판단을 내리고 싶다. 세계경제사가 궁금한 모든 이에게 책의 필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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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울 것
임경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책임과 통제, 자기 규율이 전제가 되어야만 한다. 험한 대가를 치러야 하더라도 나는 끝까지 자우로운 사람으로 남고자 노력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생생히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실감처럼 소중한 것이 어디 있을까. - '서문' 중에서

 

 

진정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책의 저자 임경선은 1972년생으로 물병자리에 AB형이다. 5살 때부터 17살 때까지의 유년 시절을 일본, 미국, 포르투칼, 브라질 등 남미와 유럽 등지를 옮겨 다니며 살면서 무국적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자아가 형성되었다. 서강대학교와 일본 도쿄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후 호텔, 음반사, 인터넷회사, 광고대행사, 잡지사 등의 다양한 회사를 거치며 10여 년간 마케팅 매니저로 활동해왔다. 

 

서른 살을 기점으로 여러 일간지와 잡지에 연애와 커리어에 대한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캣우먼'이라는 닉네임으로 MBC 라디오 <김C스타일>과 <세상을 여는 아침>, EBS 라디오 등에서 연애와 인생 상담을 하기도 했다. 현재 메트로, 스포츠서울, 마리끌레르, 한겨레21 등에 고정칼럼을 연재 중이다. 아이디가 '배트맨' 인 남자를 만나 3주만에 청혼을 받고, 100일 만에 결혼했다.

 

2002년에 칼럼집 <러브 패러독스>를 냈고, 또 <캣우먼의 발칙한 연애 관찰기>, <연애본능>, <하루키와 노르웨이 숲을 걷다>,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여자로 산다는 것>, 장편소설 <어떤날 그녀들이> 등의 책을 썼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비, 수국, 온천, 치즈, 조지아 오키프, 보사노바를 좋아하고 하드록, 언더문화, 갑을관계, 유교사상을 싫어한다.

 

책은 작가가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는지 그리고 글을 쓰게 된 후 있었던 일들, 글을 쓰면서 겪은 다양한 일상과 희로애락에 대해 풀어간다. 그녀는 회사원으로 십 년 넘게 살아오다 네 번째 재발한 갑상선암으로 출퇴근을 할 수 없었기에 차선으로 선택한 글쓰기이지만 재능과 노력, 그리고 운이 더해져 그녀의 글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행복과 욕망

 

행복의 유효기간은 얼마나 될까? 대부분 느끼는 감정이겠지만, 행복은 욕망의 정도에 따라 그 유효기간이 결결정되는 것 같다. 즉 평소 갖고 싶던 반지를 생일선물로 받은 아내는 한동안 행복감에 젖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창 모임에서 만난 대학 친구가 내미는 손에 기고 있는 반지가 이보다 더 멋지다면 그 유효기간은 짧아진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행복과 욕망은 옆에서 각자 따로 평행선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욕망과 행복은 둘 다 인간이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욕망은 욕망대로 최대한 노력해서 추구하는 근력도 필요하고 행복은 행복대로 너그럽게 감지하는 촉도 필요하다. 다시 말해, 욕망을 위해 행복을 포기할 필요도, 행복해지기 위해 욕망을 포기할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솔직하다는 것

솔직함이란 감정에 따라 일어난 생각을 숨기지 않고, 타인을 의식하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성향이다. 그리고 선한 의지를 바탕으로 한 솔직함은 사람과 사람을 보다 깊은 곳에서 연결해준다. 상대로부터 제대로 이해받고 있다고 느낄 때 드는 안도감과 충족감. 이런 감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는 서러에게 깊은 친밀감을 가진다.

 

솔직해짐으로써 타인의 비난을 감수할 것인가, 아니면 하고 싶은 말을 억누르면서 스스로를 미워할 것인가. 가급적이면 전자였으면 좋겠다. 독립된 개개인이 솔직해질 수 있는 힘을 가지기를 바란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솔직한 감정들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다. 확고한 가치관 위에서 심플하게 솔직해지는 것이다.

 

 

연애소설을 쓰는 여자들

현실에서 누군가를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면, 적어도 플라토닉 사랑이라도 소중히 품고 있어야 한다. 혹은 과거에 느꼈던 열정의 불꽃이 아직가지 꺼지지 않아 지금도 그 느낌을 세밀하게 복기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 또한 그녀들은 사랑에 바지면, 그 사랑을 마음껏 표현하고 기록하고 싶은 욕망에 휩싸이기에 그에 관한 글을 쓰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 터질 것 같은 감정을 글로 적절히 소화시켜주지 못하면 미쳐버릴 것만 같다. 그러고 보면 연애소설을 쓰기 가장 좋은 때는 연애가 막 끝났을 때인 것 같다. 열정의 기운도 여전히 남아 있고, 이별 상처로 감각은 예민할 대로 예민해져 있다. 직업 작가라면, 격한 슬픔의 감정이 글을 저절로 쓰게 만들어줄 것이다. 소설을 쓰는 일은 유일하게 연애를 하는 일 만큼의 자극과 충족감을 주는 행위다.

 

연애소설을 쓰는 것만이 실제로 연애하는 상태를 대신한다. 그러니 결국엔 나를 포함한, 사랑에 탐욕적인 여자들이 끝까지 연애소설을 써나가게 될 것이다. 위험하든 아니든 일단 살아야 하니까.

 

 

그 사람을 잊지 못할 때

하지만 대부분의 것들은 시간이 해결해준다. 세상에는 시간이 어느 정도 경과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있는 것이다. 혹은, 세상에는 시간만이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긴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스스로가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싫은 것은 아닌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시간이 이별의 고통을 해결해주기를 기다리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몸을 움직여보는 것. 일상을 지켜나가는 것. 평소대로 규칙적안 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것. 이런 행동들은 나를 추수르고 중화시키는 역할을 하면서 이별의 고통을 서서히 극복할 수 있게 돕는다. 시간을 아군 삼아 버티는 일이 상처 입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최선이다. 그러는 동안 비는 언젠가는 반드시 그친다.

 

 

양자택일의 문제

일 A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그럭저럭 잘하지만 크게 보람은 못 느끼는 일

그렇다고 버리기엔 그동안 해온 게 있으니 좀 아까운 일

 

일 B

내가 하고 싶은 일, 꿈의 일

재미있어 보이는 일

막상 하면 적성에 맞을지,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는 일 

 

아무튼 일은 실제로 경험해보는 것 말고는 결코 그 적성도를 알 방법이 없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무리를 해야 기회가 열린다. 추진 동력을 가지려면 그 일을 해보고 싶다는 간절함 이상으로 내게 주어진 시간은 이것밖에 없다는 절박감을 느껴야 한다. 기회와 타이밍도 제한되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모든 것을 감안해야 겨우 B를 꿈꿔볼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 냉혹한 현실의 모습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글을 쓰는 일

 

아이는 어쩌면 그저 이 세상에 태어나준 것만으로도 부모에게 할 도리는 다한 것일지도 모른다. 혹자는 첫 삼 년 아가 시절의 사랑스러움으로 이미 평생 할 효도는 다 했다고도 한다. 아무튼 아이는 존재 자체가 기쁨이고, 순수한 행복이라는 감정을 가장 자주 느끼게 해준다.

 

가령, 아침에 딸아이가 등교할 때 같이 손잡고 초등학교까지 걸어가는 그 십오 분이 하루 중 가장 순수하게 행복한 시간이다. 아침의 신선한 공기, 하루를 시작하는 설렘, 어린이들이 만들어내는 흥겨운 소음, 희망을 약속해줄 것만 같은 환한 햇살 그리고 꼬옥 잡은 두 손. 소설가 오르한 파묵<다른 색들>이란 에세이집에서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 

 

 

결혼하지 않는 인생

 

간혹 어떤 사람들에게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대로 나 혼자 늙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내 아이, 내 가족이 없으면 노후가 외로울까 봐, 혼자 죽어갈까 봐 두렵다. 하지만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게, 노후엔 결혼 여부, 자식 유무를 막론하고 모두가 공평하게 불안하고 외롭고 서럽고 혼자 죽어간다. 가족으로 보장받는 것은 무엇 하나 없다.

 

결혼해서 아이를 가지는 삶. 결혼해도 아이를 가지지 않는 삶. 결혼하지 않고 연애만 자유롭게 하는 삶. 결혼하지 않고 혼자를 누리는 삶. 동성 친구들과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삶. 현재로서는 그 어떤 방식도 문제가 될 것은 없어 보인다. 단지 선택하는 이가 어떤 삶을 추구하는지에 달린 것이다. 

 

 

글을 쓰게 된 계기

 

"삶은 할 일로 채워지는 것이지 안정과 성취는 실상 존재하지 않는 관념이다"

- <한겨레> 칼럼, 여성학자 정희진

 

멈추고 만족하며 안주할 수 있는 지점은 애초에 어디에도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던 저자는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니 이제 와서 글을 쓰게 된 계기 따위, 작가의 출신 대학만큼이나 하등의 의미가 없었다. 계기가 그럴싸하게 들리지 않아도, 이쪽 일로 넘어오게 된 애초의 목적이 불순했더라도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지금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은 나의 페이스를 지켜가면서 조금이라도 더 깊은 글을 가급적 오래도록 써나가는 일, 오로지 그것만이 누가 뭐래도 설레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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