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X 라이프스타일 - 당신의 취향이 비즈니스가 되는 곳
정지원.정혜선.황지현 지음 / 미래의창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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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발견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는 조금 달랐다. 도쿄에서 만날 수 있는 대표적인 브랜드인 무지와 츠타야로 시작해보자. 두 브랜드 모두 우리가 ‘생활에서 사용하는’ 분야를 다루면서도 자신들의 업을 독특한 관점으로 새롭게 정의했다. 이들이 매력적인 이유는 업을 정의하는 방식과 그 일관성에 있다. - ''업'을 새롭게 정의하다' 중에서

 

 

라이프스타일의 제안

 

이 책의 저자 정지원은 아이덴티티 기획, 브랜딩,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등을 두루 경험하면서 브랜드 기획자로, 브랜드 크리에이터로 살아왔으며, 현재는 브랜드의 맥락을 설계하고 이를 매력적으로 표현하는 제이앤브랜드를 창업해 다양한 산업의 브랜딩 이슈들을 남다른 시각으로 풀어내고 있다. 저서로는 <맥락을 팔아라>, <어바웃 브랜딩>, <히트상품을 만드는 브랜딩 트렌드 30> 등이 있다.

 

공저자인 정혜선은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 에이전시 인터브랜드에서 브랜더로서의 기틀을 다지고, 이후 스톤브랜드커뮤니케이션즈로 적을 옮겨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으로 고민의 폭을 넓혔고, 지금은 이마트 브랜드전략팀에서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에 함께하는 브랜딩을 설계하고 있다. 또 다른 공저자 황지현은 브랜드 컨설팅 회사 브랜드메이저, 메타브랜딩, 그리고 SK텔레콤에서 브랜드를 만들고 키워 왔던 소문난 브랜드 덕후로, 마케터가 탐구해야 할 3대 브랜드로 애플, 도쿄 그리고 방탄소년단을 꼽는다.

 

책은 화和, 본本, 합合, 외外, 호好 등 5개 파트로 구성되었는데, 어떤 사람을 모여들게 하고 싶은가? CD 없이도 음악에 접속할 수 있고, AI가 플레이리스트를 짜주는 시대에 카세트테이프 숍이 주목받는 이유는? 일단 소비자의 발길을 붙잡았다면, 그다음에는 또 어떻게 머물게 할 것인가? 넘쳐나는 재화와 서비스의 홍수 속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브랜드들은 이제 ‘라이프스타일’이라는 화두를 꺼내든다.

 

 

 

 

도쿄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무지의 철학은 심플하고 단순한 삶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다. 한편 츠타야는 서점을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을 파는 곳'으로 재정의했고, 이처럼 스스로 정의한 고객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서점에서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면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고 있다.

 

무지가 호텔로 확장되고 츠타야가 아파트로 확장되는 것을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말해온 라이프스타일의 범주가 이미 호텔이나 아파트보다 훨씬 더 넓었기 때문이다. 즉 수납용품을 판매하던 무지가 호텔을 만들고, 음반과 책을 팔던 츠타야가 아파트를 제안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은 그런 일들이 단순한 시장 확장이 아니라 그 브랜드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충성 고객들을 중심으로 한 확장이었기 때문이다. 

라이프스타일이 거의 동질화된 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해당 카테고리를 장악하고 있는 매출 1위 브랜드를 선택하지만, 지금처럼 라이프스타일이 다양화된 시대에는 인지도나 인기가 아니라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기준으로 브랜드를 선택하게 된다. 특히 지금 소비의 중심이 된 밀레니얼세대Z세대들에게 '변화된 가치와 라이프스타일에 합당하느냐'라는 점은 소비에서 매우 중요한 조건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편견이 없는 세대, 그리고 가장 먹을 것이나 기호에 돈을 많이 쓰는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에게 무언가를 팔아야 하는 시대에, 더 깊어지는 도쿄의 라이프스타일에 집중해보자. 

트렁크 호텔의 브랜딩이 성공한 것은 지역 문화와 딱 맞아떨어지는 타당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밀레니얼세대를 겨냥한 커뮤니티 상업 시설, 라이프스타일 호텔, 혹은 그러한 '공간'을 제공하는 브랜드들이 우후죽순 늘고 있다. 트렁크 호텔처럼 공간을 중심으로 사람을 모으는 브랜드가 되고 싶다면, 고객들의 시공간에 어떤 거부감도 없이 자연스럽게 융화되어야 한다. 그를 위해서는 지극히 타당하되 브랜드의 본질에 충실한 메시지를 설계하고 시공해야 할 것이다.

 

 

 

"트렁크 호텔은 호텔 안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친환경적이며 사회공헌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 호텔이 제공하는 다양한 서비스를 즐기며 투숙객들은 어떤 부담도 없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게 된다"

 

 

패셔너블, 현재를 캐치하는 능력

 

최근 루이비통무선 이어폰을 출시했다. 이런 행보가 가능했던 것은 패션 비즈니스에 대한 루이비통의 정의에 있다. 루이비통이 생각한 패션 비즈니스는 옷을 파는 것이 아니라 '현재 가장 패셔너블하고 트렌디한 무언가를 파는 것'이었다. 지금은 디지털 시대이다.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을 대표하는 가장 핫한 물건은 당연히 디지털 액서서리다.

 

루이비통뿐만이 아니다. 지금 뭔가 가장 잘한다는 브랜드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변화의 시대에 변화가 시작되는 예민한 지점을 짚어내고 이를 현재의 언어, 시각, 문화적 언어로 해석하고 소화하는 것 말이다. 성공하는 마케팅의 핵심은 바로 '현재성'이다. 변화의 속도나 강도가 어 어느 시기보다도 남다른 지금, 우리들이 지금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지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날카로운 판단이 수반되어야 한다.   

단 하나 불변의 진리는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이다. 변화를 마주할 때는 낙관도, 비관도 아닌 실체를 정확히 바라보려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 호텔 코에나 스트라이프 인터내셔널의 CEO 이시카와에게 더 관심이 가는 이유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잘 판단하고 현재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 왜 인기인지 고민해, 여력이 된다면 직접 한번 해보는 것. 물론 그 시도가 모두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시도해보기를 권한다. 왜? 그의 말처럼, 가만히 있으면 죽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변화된 고객에 집중하라 

'마트의 미래가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이런 어리석은 질문은 이미 기존 유통의 '프레임'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지금 1인 가구를 사는 20대의 라이프스타일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고령층에게도 충분히 먹을거리나 즐길 거리가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또 고객을 집단으로 바라보는 것도 위험하다.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의 취향을 맞추고 만족시킨다고 생각할 때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는 새로운 기회를 맞게 된다. 문제는 고객의 변화이고, 이 변화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 상품이다.

 

변화된 고객을 읽고 이해하는 것, 그리고 상품에 반영하는 것이야말로

오프라인 매장이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다.

 

 

의복이 인식을 바꾼다

 

워크웨어 슈트는 의복이 옷을 입은 당사자는 물론 타인의 인식까지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작업복을 남에게 보이기를 꺼려하는 일본의 현장 근로자, 서비스직 근로자들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그러나 복장 하나만으로도 부족했던 자신감을 살리리 수 있고 타인의 시선에서 당장해질 수 있다면 바꿔야 할 충분한 이유가 마련된 셈이다.

 

오아시스 라이프스타일 그룹의 계열사인 오아시스 솔루션의 주요 사업은 수도 공사와 점검이다. 이들의 업무는 주로 야외에서 진행되고, 현장에서 발생하는 먼지나 분진에 노출됨에 따라 온통 뒤집어쓰기 마련이다. 파열된 수도관에서 새는 물로 작업복이 젖는 일은 예사다. 최근 잦은 지진은 오아시스 솔루션과 같은 청소, 설비, 건설업에 더 많은 현장 인력이 필요해졌다. 이에 오아시스는 문제 해결을 '작업복'에서 찾았다. '슈트를 작업복으로 한다'는 컨셉을 정립했다. 

 

   

마케터는 단순히 문화를 넘어 당사자의 인식까지 세심하게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오아시스 라이프스타일 그룹이 이용자의 일상과 업무 공간 모두에 워크웨어 슈트를 녹여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사소한 불만의 목소리도 허투루 보지 않는 세심함 덕이었다. 고객이 가진 불만의 본질을 제대로 들여다볼 때 비로소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다.

 

 

콜라보를 잘하는 집의 비결은 디테일스피릿

 

빔스는 콜라보가 뭔지도 모르던 시절부터 콜라보를 해온 브랜드다. 이들은 나이키, 아디다스 등의 브랜드와 초창기부터 협업을 해왔다. 당시엔 콜라보라는 개념도 용어도 없던 시절이었지만 빔스는 해당 브랜드의 디테일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이를 디자인에 반영해줄 것을 구체적으로 요청했기에 협업이 가능했다.

 

빔스의 CEO 시타라 요의 말에 따르면, 빔스 컬래버레이션의 중심에는 '스피릿'이 있다. 일본 철학에는 형태를 가진 모든 것에는 스피릿, 즉 정신이 깃들어 있다는 믿음이 있는데, 이는 곧 형태 안에 정신이 들어오게 하려면 형태부터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연결된다. 제품은 컬래버레이션을 하는 브랜드의 정신이 깃드는 장소라는 뜻이다.

 

단순히 브랜드 로고나 컬러만 차용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의 정신에 걸맞은 형태와 재질을 선택해야 비로소 컬래버레이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컬래버레이션이 좋은 컬래버레이션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빔스가 제시한 키워드, 디테일스피릿에서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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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요리노트 -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요리사였다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 지음, 김현철 옮김 / 노마드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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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요리에 대해 쓴 짤막한 글들을 <코덱스 로마노프Codex Romanoff>라는 소책자에 모아두었다. 레오나르도는 그가 살았던 그 시대의 모든 요리를 다루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접할 수 있었던 요리 중에서 특별히 관심이 가는 요리를 최대한 많이 다루고 있다. 식도락가로서 레오나르도의 천재적인 면모는 새로운 요리법을 제안하고 기존의 조리기구를 개선하는 면에서도 확실하게 드러난다. - '들어가는 말' 중에서

 

 

당시의 먹거리는 풍요 속의 빈곤이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자신의 노트에 요리에 대한 생각을 꼼꼼하게 정리하던 시기(1481~1500)의 밀라노를 포함한 이탈리아 전역의 요리는 그야말로 끔찍한 것이었다. 종달새 혓바닥, 타조 알 스크램블, 순대와 살아 있는 개똥지빠귀가 가득한 돼지 요리 등이 그 시대를 풍미했다. 화려했던 로마제국의 진수성찬은 이미 기억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당시의 먹거리는 풍요 속의 빈곤이었다. 부자들은 네 발 달린 짐승이나 날개 가진 짐승의 고기를 시도 때도 없이 즐길 수 있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폴렌타(polenta, 죽의 일종) 따위의 희멀건 죽으로 겨우 허기를 때우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일지라도 지중해에 가득한 철갑상어 덕택에 캐비어는 수시로 즐길 수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이 노트를 작성할 당시 그는 스포르차 가문궁정 연회담당자로서 부잣집 요리라면 유감없이 음미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따라서 당시에 서민 음식이었던 캐비어 요리는 당연히 그의 노트에 등장하지 않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캐비어 요리를 폴렌타보다 더 못한 요리로 보았던 것이다.

 

책의 저자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우리들이 익히 잘 알고 있는 이탈리아의 미술가, 과학자, 건축가, 발명가, 사상가로 이탈리아의 피렌체와 밀라노, 그리고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했다. 회화에서는 엄격한 관찰을 바탕으로 한 인체와 공간의 표현, 깊은 정신성으로 르네상스 회화의 최고 클라스를 차지한다. 예술, 인생, 인체 연구, 자연 관찰, 기계설비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가 남긴 소묘나 메모란덤은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천재의 통일적 세계관을 전해준다. 그의 대표작으론 <최후의 만찬>, <모나리자> 등이 있다.

 

 

책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엽기발랄 요리 레시피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스파게티, 온갖 발가락 모듬 요리, 돼지고기, 양머리 케이크 등의 그것이다. 스파고 만지아빌레? '먹을 수 있는 끈'이라는 뜻이다. 이게 무얼까?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만든 신개념 국수로 오늘날 우리 모두가 즐겨 먹는 스파게티의 원조다.

 

온갖 발가락 모둠 요리
양 한 마리, 돼지 한 마리, 소 한 마리, 레몬 세 개, 약간의 후추, 올리브유가 필요하다. 위에 열거한 짐승의 발가락을 모두 잘라내 후추와 올리브유를 섞은 레몬즙에 하루 동안 재어둔다. 은근한 불에 어두운 금빛을 띨 때까지 구워 딱딱하게 굳은 폴렌타에 올려놓고 먹는다. 이 요리는 우리 루도비코 어르신께서 즐겨하시는 담백한 요리 중 하나다.

 

인간의 진정한 친구 돼지고기
돼지를 한 마리 잡으면 딱 두 부위만 빼고 모두 먹을 수 있다. 돼지 선지를 햇볕에 굳히면 순대 만드는 데 이용된다. 돼지뼈를 녹이면 기름을 얻을 수 있다. 돼지고기 살은 전부 요리가 가능하다. 살코기를 그냥 먹을 수도 있고 돼지고기 케이크를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돼지 머리도 전부 요리할 수 있다. 단 두 개만 빼고는. 나는 여태껏 돼지 두 눈알이 요리로 나왔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내 얘기의 결론은 이렇다. 수많은 짐승 중에서 돼지야말로 우리 인간의 진정한 친구다.

 

양 머리 케이크
양 머리를 세로로 둘로 쪼갠다. 뇌와 혓바닥을 들어내고 당근 한 개, 파슬리 가지 한 개와 함께 물에 삶는다. 세 시간이 지나면 딱딱하게 굳은 폴렌타가 한 겹 덮인 쟁반 위에 국물과 함께 올려놓는다. 여기에 푸른색 소스를 곁들여 내놓는다. 소스는 먼저 들어낸 뇌와 혓바닥으로 만든다. 뇌와 혓바닥을 잘게 썰어 미나리꽃과 함께 삶아 만든다. 이때 미나리꽃의 양은 뇌와 혓바닥 무게의 두 배가 좋다.

 

다빈치가 평생 동안 요리에 큰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아마도 그의 유년 시절과 관련이 있는 듯 싶다. 공증인으로 활약했던 다빈치의 아버지 세르 피에로는 결혼한 부인들이 일찍 사망하는 바람에 네 번이나 결혼했는데, 모두 열한 명의 자녀를 두었다고 한다. 다빈치가 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16살의 피렌체 아가씨와 결혼했고, 빈치의 귀부인이었던 어머니 카테리나는 아카타브리가 디 피에로 델 바카라는 과자 제조업자와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다빈치는 아버지 집과 어머니 집을 전전하며 성장했다.

 

'촌스럽고, 꾀죄죄하고, 먹보인' 아카타브리가(세르 피에로가 묘사한 바에 따른 것임)는 다빈치에게 단것을 실컷 먹이며 섬세한 미각을 키워주었다. 다빈치는 과자 제조업자인 의붓아버지로부터 단것에 대한 취미와 요리에 대한 열정을 전수받아 평생을 갈고 닦았는데, 너무 열중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화가 등 다른 뛰어난 재능을 썩힐 뻔했다.

 

그는 식도락가였던 프랑스 왕 앙리와 함께 3년을 식도락으로 보내고 1519년에 죽었다(일설에는 프랑스 왕의 품안에서 사망했다고 함). 특별히 다빈치의 스파게티를 좋아했던 젊은 왕 앙리는 왕궁과 다빈치의 집을 연결하는 땅굴까지 파놓고 날마다 다빈치를 찾았다고 한다. 또 얼마나 다빈치가 요리를 사랑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는데, 자신의 전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밀라노 외곽 포도밭을 반으로 갈라 살라이와 바티스타에게 유산으로 남겼다. 바티스타는 그의 개인 요리사였고 살라이는 그의 식사 당번을 겸한 제자였다.

하지만 다빈치의 요리 레시피를 현 시점에서 읽을 때는 유의해야 할 점이 분명 잇다. 요리에 사용되는 재료의 양은 일반 가정식 기준에서 봤을 때 지나치게 많다. 왜냐하면, 다빈치의 요리는 대규모 만찬에나 어울릴 그런 레시피이니까. 양에 대한 표현도 명확하지 않은 편이다. 요즘에는 숟갈도 큰 숟갈, 작은 숟갈로 구분하는 데 말이다.

 

그리고 재료의 성격도 생각해야 할 문제다. 500여 년 전에 만들어 먹던 음식인지라 식재료가 요즘과는 크게 차이가 난다. 심지어, 현 시점에서 봤을 때 '엽기적'인 재료로 보여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또한, 조리도구도 오늘날처럼 세분화되지 않았기에 보통 냄비, 솥, 프라이팬 정도로만 언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빈치의 레시피 개발이나 기존에 사용하는 조리도구의 개선 등은 요리에 대한 그의 열정을 충분히 느끼게 한다. 심지어 주방 책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까지 언급하고 있으니 말이다.

 

남자여야 한다~ 여자로는 거대한 요리 무게를 이기지 못한다

단정하고 피부가 맑은 사람~ 장발이거나 청결하지 않으면 손님의 입맛이 떨어진다

건축 지식이 있는 사람~ 장력이나 하중 등을 알아야 제대로 된 케이크를 만들 수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혁신적인 요리사였다

 

불세출의 명화 <최후의 만찬>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 속에도 요리가 등장한다. 이를 구체적으로 표현할 줄 아는 요리사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사실 우리들은 다빈치하면 떠올리는 게 뛰어난 화가, 그리고 기록으로 남겨 둔 스케치 덕분에 발명가 정도로 이해하기 쉽다. 그런데, 새끼 양 불알 요리, 발가락 모듬 요리, 뱀 등심 요리 등 엽기발랄한 요리들이 그의 손에서 태어났을 정도로 요리에 있어서도 혁신가였으며, 이 역시 레시피 등을 기록으로 남긴 기록의 대가다운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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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 2 - 아모르 마네트
김진명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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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종 최고最古의 목판본 다라니경, 최고最古의 금속활자 직지,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꼽는 최고最高의 언어 한글, 최고最高의 메모리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지식 전달의 수단에서 우리가 늘 앞서간다는 사실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한국문화가 일관되게 인류의 지식혁명에 이바지해왔다는 보이지 않는 역사에 긍지를 느끼게 된다" - 소설가 김진명

 

 

한글 창제는 통치자의 애민愛民 사상에서 비롯되었다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된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 활자본인 '직지', 소설가 김진명은 이와 관련된 문헌들의 조사, 현지 취재 등을 통해 스토리 구성의 뼈대를 세우고 여기에다 현대 과학의 연구 결과와 작가 특유의 상상력을 가미하여 미스터리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방향의 소설 <직지 1, 2권>을 완성했다.

 

소설은 현재를 배경으로 시작되지만 조선 세종 때와 15세기 유럽으로 시공간을 넓혀가며 스토리를 전개함으로써 독자들이 이에 궁금증을 갖고 빠져들게 만든다. 인간 지성이 만들어낸 최고의 유산을 둘러싸고 지식을 나누려는 자들과 독점하려는 자들의 충돌, 그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인물들의 기막힌 운명이 펼쳐진다. 작가는 직지와 한글이 지식혁명의 씨앗이 되는 과정을 추적해 한국인의 정체성을 밝히는 한편, 그 속에 담긴 정신을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제1권이 백주에 서울에서 벌어진 기괴한 살인사건이 범상치 않음을 느끼고 이를 추적해 나가는 한 일간지 기자 김기연의 활약상 위주로 펼쳐졌다면, 제2권에서는 지식혁명의 도화선이 된 문자의 발명에 초점을 맞춰 직지의 탄생 배경과 함께 위대한 성군 세종의 한글 창제 과정을 다룬다. 말하자면 주인공이 한글로 바뀌게 되는 셈이다.

 

 

 

 

2권의 서두는 퍼즐의 마지막 조각으로 시작한다. 사망한 전 교수의 이메일에 도착해 있는 한 장의 답장이 사건 해결의 단초를 제공한다. 답장의 내용은 추기경이 콘클라베를 포기한 이유가 카레나라는 이름의 한 여성의 발언 때문임을 밝히면서 이 여인의 말에 따르면 코리(코리아)의 군주가 백성들을 위해서 글자를 만들었다는 얘기에 너무나도 크게 충격을 받아서 자신의 자리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카레나의 유품을 하나 찾았는데, 이는 요한 22세 성하聖下의 문장이 새겨진 은제銀製 목걸리로 고르드 수녀원에서 성녀聖女로 사망했다는 기록도 함께 남아 있었다는 답신이었다. 이에 기연은 이 메일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토록 추적했던 카레나는 교황청 수장고에서 나온 이름이었다. 콘클라베는 라틴어('열쇠로 잠그다'는 뜻)로, 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들의 비밀투표였다. 이를 토대로 기연은 카레나와 쿠자누스의 연관성을 밝혀낸다.

 

쿠자누스의 본명은 니콜라우스 쿠자누스(1401~1464년)로 독일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인데, 종교가 인간에게 눈을 돌려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근대 휴머니즘 철학의 문을 열었다. 또한, 그는 과학과 천문학에도 조예가 깊었고 추기경으로서 콘클라베에도 참석했던 인물로 밝혀진다. 카레나는 조선 세종 때 유럽으로 건너 간 여성이었는데, 금속활자를 가져갔으며 개인적으로 쿠자누스와 연결 고리가 있어서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를 쿠자누스에 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애민 사상'에 입각한 한글 창제는 인류 정신사에서 찾아볼 수가 없는 획기적인 사건이었으니 깜짝 놀랄 수밖에. 당시의 지식이란 지배계층의 전유물이었으니 말이다.

 

이빨, 발톱, 근력에 의해 짐승의 서열이 결정된다면 사람은 지식과 지혜에 의해 그 힘이 결정된다. 당시 지배층이 사용하던 한자漢字는 너무 어려웠기에 일반 백성에겐 무용지물이나 다름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학문도 지혜도 신분도 벼슬도 모두 다 세습되고 있었다. 글과 학문을 익히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에 가난한 백성이 자식에게 글을 가르친다는 건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라 세습은 점점 굳어지게 마련이었다.

 

"그렇다! 백성에게 글을 만들어주자!"


세종의 이런 위대한 발상에도 불구하고 도처에 이를 막으려는 적들 뿐이었다. 심지어 초기엔 자신의 심복이었던 가장 가까운 집현전 학사들에게조차 함부로 말을 꺼낼 수 없을 정도였다. 이후 설득을 통해 몇몇 학사들을 끌어들였지만 완성되기 전까지 조심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고관대작들은 물론 집현전 학사들 중에도 임금인 자신을 업신여기고 대국인 명나라 눈치를 보는 자들이 태반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소설의 전개는 은수의 활약상에 맞춰진다. 이 여인은 양승락의 외동딸로, 주자간에서 새로 글자체를 만들었다. 조선조에 들어 양승락은 양반은 못 되었지만, 한자엔 능통한 인물이었다. 물론 주자사가 되려면 한자를 알아야 했다. 그는 아는 것을 뛰어넘어 해박하고 이해도가 워낙 깊었다. 남의 눈을 피해 승방으로 위장한 주자간 옆 요사채가 그의 집이었는데, 집 안 가득 서책들로 넘쳤다.

 

세종과 은수는 신미대사를 심판으로 두고서 누가 먼저 글을 쓰는지 시합을 벌이고 있다. 신미대사가 읊으면 세종은 한자를, 은수는 새로운 글을 동시에 써서 빠름의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려고 한다. "돌 석", ';바다 해", "대웅전", "울울창창" 등등 신미대사의 읊조림에 두 사람은 지지 않으려고 신속히 붓을 놀린다. 은수의 빠름이 돋보였다.

 

이 자리에서 신미대사의 건의를 받은 세종은 새 글을 28자, 해례본은 33장, 자신의 어지를 108자로 결정한다. 또 주자소 별감으로 양승락이 내정된다. 하지만 명나라의 간자 노릇을 하는 집현전 부제학 강종배의 지시를 받은 자객의 손에 피살당하고, 딸 은수는 명나라 사신 주구의 손을 거쳐 실력자 유겸의 수양딸이 된다. 이후 생사의 고비를 넘기는 우여곡절 끝에 베네딕트수도회의 도움으로 로마로 건너간다.     

 

 

"이 위대한 기술은 역사를 바꿔놓을 것이다. 저 무심한 필경사들의 손에서 얼마나 많은 문서들의 정신이 사라지고, 얼마나 많은 저자들의 혼이 사라졌을까. 그대의 금속활자는 시저의 갈리아 정복보다, 알렉산더의 동방 정복보다 위대하다" (117쪽)

 

 

금속활자에 대해 커다란 충격을 받은 교황과 추기경들을 보면서 은수는 의문점이 생겼다. 조부와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원나라의 만권당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엄청난 책들이 쌓여 있는 도서관이 도시마다 널렸고, 또한 집채만 한 바윗덩어리들을 줄 하나에 매달아 하늘 높이 끌어올리는 놀라운 기술을 가진 이 세상에 어찌하여 아직까지 금속활자가 없다는 것인가? 이후 교황은 은수의 금속활자를 빼앗으려 한다. 자신들의 권력 유지에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해서다.

 

 

"쿠자누스, 그 여자가 왜 악마의 씨앗인지 모르겠나?"
"그 여자는 책값을 반으로, 아니 반의반으로, 아니 그것의 반으로, 그 결과가 무언지 정말 모르겠나?"
"가난하고 무식하고 저급하고 비열한 자들이 다 책을 보게 된다. 세상은 시정잡배의 성토장이 되어버려. 단 한 자라도 금속활자가 세상에 나오면 너를 파문하겠다"

 

 

 

청주는 그리 큰 도시가 아니다. 하지만 청주의 흥덕사에서 직지를 찍었고, 초정약수터에서 세종대왕이, 복천암에서 신미대사가 한글을 마무리했다. 이리 보면 청주시는 직지와 한글을 모두 키워낸 우리 겨레의 문화 인큐베이터로, 대한민국의 어느 도시보다도 우리 민족의 문화예술에 크게 이바지해 온 셈이다. 그렇다고 이 위대함이 "세계 최고"라는 프레임에 갇혀서는 안 되겠다. 이 소설의 말미에 청주에서의 강의장에서 기연은 이렇게 말한다.

 

"직지와 한글에 담긴 인류의 위대한 지성,

''나보다 약한 사람과의 동행'이라는 정신을 보아야 합니다"

 

 

직지와 한글은 애민 정신의 산물이다

 

세계기록유산 '직지'의 위대한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고, 나아가서 '직지'와 '한글'에 담긴 정신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일깨워준다. 지배층으로부터 지식과 정보를 해방시켜 전 인류가 함께 나아가자는 것이다. 이것이 직지와 한글에 담긴 정신이며, 지식혁명을 이끈 위대한 도구이다. 저자는 소설을 통해 이런 정신을 이어받은 대한민국이 디지털 강국이자 반도체 1위 국가가 된 원동력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위대한 군주 세종의 정신을 되새겨본다.

 

"세월을 흘러도 사랑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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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 1 - 아모르 마네트
김진명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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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제목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로 상당히 긴 편이라서, 부르기 편하게 줄여서 <직지>라고 한다. 이 책은 고려 말에 국사를 지냈던 백운 스님이 선불교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여러 이야기를 모아 만든 책이다. 책은 원래 상하 두 권이었는데 현재는 하권만 남아 있고 그것도 첫 장은 없어진 상태이다.

 

<직지>는 1377년에 인쇄되었으니, 1455년에 인쇄된 서양 최초의 금속활자인쇄본인 구텐베르크42행 성서보다 무려 78년이나 앞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금속활자 발명은 직지보다 훨씬 앞서서, 기록으로만 그 존재가 알려진 <고금상정예문>이라는 책은 구텐베르크보다 200년 이상 앞선 인쇄물이다.

2001년 유네스코에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데, 이 책을 처음으로 발견하고 이 책이 한국의 것이며 금속활자로 인쇄됐다는 것을 밝힌 분은 박병선 박사님이다. 박사님은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로 계시면서 이 책을 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혼자 노력으로 이 책이 금속활자 인쇄본이라는 사실을 밝혀내었다.

 

 

 

저자 김진명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베스트셀러로 이름을 날린 작가이다. 대부분은 작가들이 신춘 문예나 전국적인 규모의 문학상을 통해서 등단한 반면 그는 그러한 이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장편 소설 두 권으로 문단에 나타나서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이후로도 발표작마다 대중적인 호응을 얻었지만 문학적인 평론에 있어서는 그리 큰 작가로서 취급되지는 않고, '극단적 민족주의자', '과도하고 거친 상상력의 작가'라는 일종의 꼬리표를 달았다.

 

대표작으로는 한일 관계의 새로운 지형도를 펼쳐 보였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일제의 문화재 약탈과 광개토대왕비의 비밀을 파헤친 <몽유도원(구판 : 가즈오의 나라)>, 금융 대란과 함께 찾아온 우리의 정신 문화 위기와 그 극복을 위한 <하늘이여 땅이여>, 10.26을 통해서 미묘한 한미 관계에 대한 작가의 시선을 보여준 <1026(구판 : 한반도)>, 고대사 문제를 새롭게 조명해낸 <천년의 금서>,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나라 고구려의 이야기를 최근의 국제정세와 함께 풀어낸 <고구려> 등이 있다.

 

 

 

일간지 사회부 기자 김기연은 베테랑 형사조차 충격에 빠뜨린 기괴한 살인현장을 취재한다. 무참히 살해된 시신은 귀가 잘려나가고 창이 심장을 관통했다. 놀라운 것은 드라큘라에게 당한 듯 목에 송곳니 자국이 선명하고 피가 빨렸다는 점이다. 피살자의 신원은 고려대에서 라틴어를 가르쳤던 전형우 교수로 밝혀진다. 과학수사로도 용의자를 찾을 수 없는 가운데, 기연은 이 기묘한 사건에 점점 빠져든다.

 

이후 살해된 전 교수의 차량 내비게이션에서 최근 목적지가 청주 '서원대학교'임을 알아내고, 그의 휴대폰에서 '서원대 김정진 교수'라는 사람을 찾아낸다. 김정진 교수는 <직지> 알리기 운동을 펼치는 인물로, 구텐베르크 금속활자의 뿌리가 <직지>임을 확신하고, 이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캐고 있다.

 

바티칸 비밀수장고에서 오래된 양피지 편지가 발견된다. 그것은 교황 요한 22세고려 충숙왕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로, 직지 연구자들은 이것이 <직지>의 유럽 전파를 입증해줄 거라 믿고 편지의 해석을 전형우 교수에게 의뢰했지만 전 교수는 그 가능성을 부정하는 해석을 내놓았고, 연구자들은 그에게 분노한다. 기연은 처음으로 범행동기가 나타났음을 깨닫고 직지 연구자들을 용의선상에 올린다.

 

그러나 범행동기와 살인현장이 전혀 매치되지 않는 모순적 상황에서 고민하던 기연은 전 교수의 서재에서 결정적 단서를 발견한다. 그것은 남프랑스 여행안내서와 책에 적힌 두 사람의 이름, 스트라스부르대학의 피셔 교수와 아비뇽의 카레나다. 기연은 전 교수가 계획했던 동선을 따라가 두 사람을 만나보려고 프랑스로 날아간다. 거기엔 기연이 상상도 못한 반전과 충격적 사실이 기다리고 있는데….

 

가독성이 매우 높은 소설로 마지막 페이지까지 흥미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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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받으라
박해로 지음 / 네오픽션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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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스토리는 1876년에 일어났던 일과 1976년에 일어나는 일, 즉 100년이라는 시간의 차를 두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펼쳐진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과거에 장일손이라는 인물이 경상도 섭주의 관아에서 사교邪敎의 교주로 몰려 처형당하는데, 죽기 전 무시무시한 저주를 내린다. 장일손을 직접 칼로 벤 망나니 석발은 그 직후 망령에 시달리며 선녀보살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지만 그 둘은 잔혹하게 죽임을 당한다. 선녀보살은 죽기 직전 "두 개의 해가 뜨는 날에 그들이 돌아올" 거라고 예언하고, 과거의 살육과 공포는 정확히 백년 후 재현된다.

 

 

섭주에서 벌어지는 무시무시한 저주

 

이 책의 작가 박해로는 한국 특유의 무속신앙 전통에 이색적인 상상력을 덧붙인 스타일리시한 소설을 연이어 선보이는 중이다. 첫 번째 무속 공포소설인 <살: 피할 수 없는 상갓집의 저주>의 성공 이후 전작을 뛰어넘을 야심으로 두 번째 장편 <신을 받으라>를 완성했다. 지금은 후속작으로 가상의 지역 섭주에서 벌어지는 세 번째 무서운 이야기 <독생자(가제)>를 쓰고 있다.

 

흔히 우리들은 토속신앙을 미신迷信이라고 폄하한다.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사를 과학이라는 잣대로만 재단할 수 있을까 싶다. 토속신앙이란 고대를 살았던 인간들이 가졌던 종교다. 이를 형태별로 살펴보면 크게 샤머니즘, 토테미즘, 애니미즘으로 분류한다. 종교나 신앙이 왜 생겼는지에 대해선 나약한 인간이 경외시되는 자연현상이나 초월적인 자연의 힘을 숭배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태동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보면 샤머니즘은 현실과 초현실의 세계를 넘나들며 의사소통이 가능한 주술사(샤먼)가 종교의식을 주관했던 그런 신앙이며, 토테미즘이란 신화나 설화에 등장하는 동식물(토템)을 신성시하는 원시 신앙이며, 애니미즘은 자연물에 깃들여있는 초자연적 존재(신, 정령, 요괴, 영혼)를 숭배하는 신앙이다.

 

한국의 샤머니즘은 흔히 무당이라고 표현한다. 무당은 '신내림'이라는 독특한 절차를 거침으로써 신과 직접 대면할 수 있는 초능력을 지닌 것으로 간주한다. 이런 무당을 지역별로 달리 부른다. 즉 경상도에선 무당이나 보살로, 전라도에선 단골, 제주도에선 심방으로 부른다. 무당의 특징으로는 이들은 일반인과의 혼인이 금지되어 있으며, 자기들끼리만 결혼한다. 지금도 그 맥은 이어져오고 있다.

 

 

  

 

 

한국사에는 천주교 박해사건이 있다. 양반문화와 유교를 신봉하던 조선시대에 서양의 문물인 천주교가 잠입함에 따라 이를 부정하고 오랑캐로 매도하려는 그런 사건이었다. 이는 다분히 당시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양반들이 스스로를 지켜내려던 조잡한 정치적 행동이었다. 이 소설의 서두는 1876년에 벌어진 천주쟁이로 몰린 한 사람의 억울한 죽음으로 시작된다. 

 

장일손이 천주쟁이로 몰려 사형선고를 받자 검은 구름이 몰려와 여름의 푸른 하늘을 회색으로 물들였다. 섭주 현령 김광신은 숨 돌릴 틈도 없이 집행 준비에 들어갔다. 사형(死刑)인지 사형(私刑)인지 분간 가지 않는 집행이었다. 김광신은 노기 띤 표정으로 수염을 떨며 망나니 석발을 데려오라 지시했고 명을 받은 군노와 사령들은 지체 없이 도살장으로 달려갔다.(9쪽)

 

당시 사람을 죽이는 일은 백정이 맡았다. 본시 백정은 소, 돼지, 닭 등 가축을 도살하는 일을 했지만 말이다. 장일손의 사형에 동원된 이는 석발이었는데, 그 또한 백정이었다. 사형을 주도한 사람은 경상도 섭주 석하촌石下村의 고을 수령인 김광신이었다. 그런데, 이 두사람의 관계가 장일손은 교주이자 스승이었고, 김광신은 장일손의 제자이자 신도였던 것이다. 말하자면 고을 현령인 김광신도 실은 천주교도 출신이었다. 아무튼 이 날의 사형 집행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어쩌면 이는 사형死刑이 아니라 사형私刑인지도 모르겠다.

 

고을 수령의 명령으로 집행한 살인이었지만 이후 석발은 악령에 시달린다. 그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은 참시 당하던 장일손이 두 눈을 무릅뜨고 자신에게 퍼부은 "망나니 네놈을 먼저 데려가겠다!"라는 저주 섞인 말이었다. 억울한 죽음으로 내 몬 당사자는 따로 있음에도 장일손은 자신의 목을 내리치는 망나니를 희생양으로 삼아 원흉인 김광신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공포감으로 안길 심산이었다. 석발은 연일 이어지는 악령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려고 술에 의지하거나 절에서 가져온 목탁을 끼고 지내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고 갈수록 피골이 상접한 몰골로 바뀌게 된다.

 

"하늘에서 머리통이 떨어지고 땅에는 뱀들이 기어 다닌다.

하늘을 쳐다볼 수도 없고 땅을 디딜 수도 없어"

 

주인 없는 도축장과 텅 빈 움막은 마을에 소문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했다. 음주 만취로 절벽이나 강가에서 발을 헛디뎌 죽었다거나, 도살당할 줄 아는 황소가 날카로운 뿔로 들이받아 죽었다거나, 또 어떤 이는 마을이 싫어져서 제 발로 떠났다는 등의 풍성한 루머를 자아냈던 것이다. 이는 모두 물증 없는 추측일 뿐, 오히려 사람들은 무고한 장일손을 죽였기 때문에 보복 당한다고 믿기 시작했다. 사실 이 말은 마을의 선녀보살이 퍼트렸는데, 무당인 그녀는 자신의 신령님이 이를 가르쳐주었다고 했다.

 

 

1976년, 소설은 현재 시점의 이야기를 펼친다. 석하촌의 들판 구석마다 개구리가 와글거렸다. 한여름인 지금, 이 마을은 반년 사이에 많은 변화를 이루었다. 은혜로움이 넘치고 축복이 범람하는 하나님의 성소가 되었다. 땅은 기름지고 인심은 후해졌다. 온갖 벌레들도 전성기를 맞아 활개를 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모든 공로를 한 사람에게 돌렸다. 바로 서울에서 섭주로 파견된 젊은 목사 김정균이었다. 미신과 우상이 판 치던 원시 마을이 이젠 주님이 인도하는 약속의 땅이 되었으니 말이다. 

"여기 나오는 거 네 엄마는 아니? 네 엄마 말야!"
"어디 무당 딸이 감히 교회를 나와?"
"이 성경 어디서 났어? 훔친 거지?"
"이런다고 목사님이 너한테 눈길이라도 줄 것 같아?"
"부정 탄다, 부정 타! 썩 꺼져!"
"어휴, 냄새. 이렇게 하고 교회에 들어가겠다고?"
"좀 씻어라! 목사님이 이런 꼬라지 좋아할 거 같니?"
"얘네 산신령은 좋아하겠지"

 

위 대화의 당사자는 묘화昴華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로 엄마는 무당이며, 사는 곳은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인데, 실상은 갇혀 지내는 셈이다. 어디론가 떠난 엄마가 소식 없는지 오래였기에 그렇다. 사회는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폭행과 폭언은 여전하다. 주님의 성지로 변한 듯한 이곳에 마을 소녀들은 뻐젓이 묘화를 괴롭힌다. 그리고 이를 목격한 젊은 목사는 모른 채하고 그냥 지나친다.

 

만인에게 평등하게 행동해야 할 목사가 이를 회피하는 데엔 무슨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추후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밝혀지는 사실이지만 그도 어릴 적에 신병을 앓았던 경험이 있었기에 무당을 가까이 할 경우 혹 신병이 도지지 않을까 염려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별로 용하지 않았던 무당 월수보살의 딸이었던 묘화는 어느날 갑자기 금빛 나는 십자가를 품은 후, 마을 사람들에게 기적을 보인다. 자연스레 교회에는 찾아오는 이가 줄어든다.

 

'나 진짜로 예수를 봤다니까!'  

 

앉은뱅이 조필순 할머니를 걷게 하고, 파천댁의 아들을 취직시키고, 어부 이바우에게는 만선滿船의 꿈을 이뤄준다. 이에 반해 평소 묘화를 괴롭히던 사람들은 연이어 악몽을 꾸고, 결국엔 기이한 사고로 죽어나간다. 교회를 중심으로 통일되었던 마을 사람들은 이제 분열하고, 상호 살인을 저지르는 일들이 자행된다. 

 

갈수록 묘화를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지금까지 묘화가 행한 기적은 예수님의 힘이 결코 아님을 직감하고 상대적으로 약화된 교세를 회복하고자 젊은 목사 정균은 그동안 회피로 일관했던 무당의 딸 묘화을 만나는 용기를 낸다. 석하촌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목사였음에도 그는 멀든 가깝든 간에 묘화가 있으면 몸이 쑤셨고, 이상한 환각 증세가 나타날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기에 과거로부터의 공포에 놀라기 일쑤였다. 심지어 마을 사람들 중 일부는 목사가 겁을 먹고 묘화의 행동을 제지하지 못한다고 비아냥댔다. 이제 묘화와 정균의 한판 승부는 불가피하게 되었다. 그 결말은 어떻게 될까?

 

"묘화를 만나자 귀신이 제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겁니다.

묘화가 예수라고 칭한 남자는 천한 백정의 모습이었어요. 아마도 그 석발이란 자겠죠"

 

 

 

과거지사는 현재로 연결된다.

 

100년 전, 무고한 장일손을 무참히 살해한 섭주 현령 김광신은 자신이 예전에 장일손의 문하에서 천주교를 배웠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날엔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장일손의 목숨을 거두기로 작심한다. 100년이 지난 현 시점에 다흥 김씨의 후손인 김동우는 묘화를 죽이려고 계룡산의 법사 세 명(풍백, 우사, 운사)을 몰래 끌어들인다. 금생재륜교는 부활할 것인가?

 

"네오픽션으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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