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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요리노트 -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요리사였다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 지음, 김현철 옮김 / 노마드 / 2019년 7월
평점 :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요리에 대해 쓴 짤막한 글들을 <코덱스 로마노프Codex Romanoff>라는 소책자에 모아두었다. 레오나르도는 그가 살았던 그 시대의 모든 요리를 다루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접할 수 있었던 요리 중에서 특별히 관심이 가는 요리를 최대한 많이 다루고 있다. 식도락가로서 레오나르도의 천재적인 면모는 새로운 요리법을 제안하고 기존의 조리기구를 개선하는 면에서도 확실하게 드러난다. - '들어가는 말' 중에서
당시의 먹거리는 풍요 속의 빈곤이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자신의 노트에 요리에 대한 생각을 꼼꼼하게 정리하던 시기(1481~1500)의 밀라노를 포함한 이탈리아 전역의 요리는 그야말로 끔찍한 것이었다. 종달새 혓바닥, 타조 알 스크램블, 순대와 살아 있는 개똥지빠귀가 가득한 돼지 요리 등이 그 시대를 풍미했다. 화려했던 로마제국의 진수성찬은 이미 기억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당시의 먹거리는 풍요 속의 빈곤이었다. 부자들은 네 발 달린 짐승이나 날개 가진 짐승의 고기를 시도 때도 없이 즐길 수 있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폴렌타(polenta, 죽의 일종) 따위의 희멀건 죽으로 겨우 허기를 때우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일지라도 지중해에 가득한 철갑상어 덕택에 캐비어는 수시로 즐길 수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이 노트를 작성할 당시 그는 스포르차 가문의 궁정 연회담당자로서 부잣집 요리라면 유감없이 음미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따라서 당시에 서민 음식이었던 캐비어 요리는 당연히 그의 노트에 등장하지 않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캐비어 요리를 폴렌타보다 더 못한 요리로 보았던 것이다.
책의 저자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우리들이 익히 잘 알고 있는 이탈리아의 미술가, 과학자, 건축가, 발명가, 사상가로 이탈리아의 피렌체와 밀라노, 그리고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했다. 회화에서는 엄격한 관찰을 바탕으로 한 인체와 공간의 표현, 깊은 정신성으로 르네상스 회화의 최고 클라스를 차지한다. 예술, 인생, 인체 연구, 자연 관찰, 기계설비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가 남긴 소묘나 메모란덤은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천재의 통일적 세계관을 전해준다. 그의 대표작으론 <최후의 만찬>, <모나리자> 등이 있다.
책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엽기발랄 요리 레시피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스파게티, 온갖 발가락 모듬 요리, 돼지고기, 양머리 케이크 등의 그것이다. 스파고 만지아빌레? '먹을 수 있는 끈'이라는 뜻이다. 이게 무얼까?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만든 신개념 국수로 오늘날 우리 모두가 즐겨 먹는 스파게티의 원조다.
온갖 발가락 모둠 요리
양 한 마리, 돼지 한 마리, 소 한 마리, 레몬 세 개, 약간의 후추, 올리브유가 필요하다. 위에 열거한 짐승의 발가락을 모두 잘라내 후추와 올리브유를 섞은 레몬즙에 하루 동안 재어둔다. 은근한 불에 어두운 금빛을 띨 때까지 구워 딱딱하게 굳은 폴렌타에 올려놓고 먹는다. 이 요리는 우리 루도비코 어르신께서 즐겨하시는 담백한 요리 중 하나다.
인간의 진정한 친구 돼지고기
돼지를 한 마리 잡으면 딱 두 부위만 빼고 모두 먹을 수 있다. 돼지 선지를 햇볕에 굳히면 순대 만드는 데 이용된다. 돼지뼈를 녹이면 기름을 얻을 수 있다. 돼지고기 살은 전부 요리가 가능하다. 살코기를 그냥 먹을 수도 있고 돼지고기 케이크를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돼지 머리도 전부 요리할 수 있다. 단 두 개만 빼고는. 나는 여태껏 돼지 두 눈알이 요리로 나왔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내 얘기의 결론은 이렇다. 수많은 짐승 중에서 돼지야말로 우리 인간의 진정한 친구다.
양 머리 케이크
양 머리를 세로로 둘로 쪼갠다. 뇌와 혓바닥을 들어내고 당근 한 개, 파슬리 가지 한 개와 함께 물에 삶는다. 세 시간이 지나면 딱딱하게 굳은 폴렌타가 한 겹 덮인 쟁반 위에 국물과 함께 올려놓는다. 여기에 푸른색 소스를 곁들여 내놓는다. 소스는 먼저 들어낸 뇌와 혓바닥으로 만든다. 뇌와 혓바닥을 잘게 썰어 미나리꽃과 함께 삶아 만든다. 이때 미나리꽃의 양은 뇌와 혓바닥 무게의 두 배가 좋다.
다빈치가 평생 동안 요리에 큰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아마도 그의 유년 시절과 관련이 있는 듯 싶다. 공증인으로 활약했던 다빈치의 아버지 세르 피에로는 결혼한 부인들이 일찍 사망하는 바람에 네 번이나 결혼했는데, 모두 열한 명의 자녀를 두었다고 한다. 다빈치가 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16살의 피렌체 아가씨와 결혼했고, 빈치의 귀부인이었던 어머니 카테리나는 아카타브리가 디 피에로 델 바카라는 과자 제조업자와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다빈치는 아버지 집과 어머니 집을 전전하며 성장했다.
'촌스럽고, 꾀죄죄하고, 먹보인' 아카타브리가(세르 피에로가 묘사한 바에 따른 것임)는 다빈치에게 단것을 실컷 먹이며 섬세한 미각을 키워주었다. 다빈치는 과자 제조업자인 의붓아버지로부터 단것에 대한 취미와 요리에 대한 열정을 전수받아 평생을 갈고 닦았는데, 너무 열중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화가 등 다른 뛰어난 재능을 썩힐 뻔했다.
그는 식도락가였던 프랑스 왕 앙리와 함께 3년을 식도락으로 보내고 1519년에 죽었다(일설에는 프랑스 왕의 품안에서 사망했다고 함). 특별히 다빈치의 스파게티를 좋아했던 젊은 왕 앙리는 왕궁과 다빈치의 집을 연결하는 땅굴까지 파놓고 날마다 다빈치를 찾았다고 한다. 또 얼마나 다빈치가 요리를 사랑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는데, 자신의 전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밀라노 외곽 포도밭을 반으로 갈라 살라이와 바티스타에게 유산으로 남겼다. 바티스타는 그의 개인 요리사였고 살라이는 그의 식사 당번을 겸한 제자였다.
하지만 다빈치의 요리 레시피를 현 시점에서 읽을 때는 유의해야 할 점이 분명 잇다. 요리에 사용되는 재료의 양은 일반 가정식 기준에서 봤을 때 지나치게 많다. 왜냐하면, 다빈치의 요리는 대규모 만찬에나 어울릴 그런 레시피이니까. 양에 대한 표현도 명확하지 않은 편이다. 요즘에는 숟갈도 큰 숟갈, 작은 숟갈로 구분하는 데 말이다.
그리고 재료의 성격도 생각해야 할 문제다. 500여 년 전에 만들어 먹던 음식인지라 식재료가 요즘과는 크게 차이가 난다. 심지어, 현 시점에서 봤을 때 '엽기적'인 재료로 보여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또한, 조리도구도 오늘날처럼 세분화되지 않았기에 보통 냄비, 솥, 프라이팬 정도로만 언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빈치의 레시피 개발이나 기존에 사용하는 조리도구의 개선 등은 요리에 대한 그의 열정을 충분히 느끼게 한다. 심지어 주방 책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까지 언급하고 있으니 말이다.
남자여야 한다~ 여자로는 거대한 요리 무게를 이기지 못한다
단정하고 피부가 맑은 사람~ 장발이거나 청결하지 않으면 손님의 입맛이 떨어진다
건축 지식이 있는 사람~ 장력이나 하중 등을 알아야 제대로 된 케이크를 만들 수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혁신적인 요리사였다
불세출의 명화 <최후의 만찬>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 속에도 요리가 등장한다. 이를 구체적으로 표현할 줄 아는 요리사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사실 우리들은 다빈치하면 떠올리는 게 뛰어난 화가, 그리고 기록으로 남겨 둔 스케치 덕분에 발명가 정도로 이해하기 쉽다. 그런데, 새끼 양 불알 요리, 발가락 모듬 요리, 뱀 등심 요리 등 엽기발랄한 요리들이 그의 손에서 태어났을 정도로 요리에 있어서도 혁신가였으며, 이 역시 레시피 등을 기록으로 남긴 기록의 대가다운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