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 2 - 아모르 마네트
김진명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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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종 최고最古의 목판본 다라니경, 최고最古의 금속활자 직지,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꼽는 최고最高의 언어 한글, 최고最高의 메모리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지식 전달의 수단에서 우리가 늘 앞서간다는 사실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한국문화가 일관되게 인류의 지식혁명에 이바지해왔다는 보이지 않는 역사에 긍지를 느끼게 된다" - 소설가 김진명

 

 

한글 창제는 통치자의 애민愛民 사상에서 비롯되었다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된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 활자본인 '직지', 소설가 김진명은 이와 관련된 문헌들의 조사, 현지 취재 등을 통해 스토리 구성의 뼈대를 세우고 여기에다 현대 과학의 연구 결과와 작가 특유의 상상력을 가미하여 미스터리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방향의 소설 <직지 1, 2권>을 완성했다.

 

소설은 현재를 배경으로 시작되지만 조선 세종 때와 15세기 유럽으로 시공간을 넓혀가며 스토리를 전개함으로써 독자들이 이에 궁금증을 갖고 빠져들게 만든다. 인간 지성이 만들어낸 최고의 유산을 둘러싸고 지식을 나누려는 자들과 독점하려는 자들의 충돌, 그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인물들의 기막힌 운명이 펼쳐진다. 작가는 직지와 한글이 지식혁명의 씨앗이 되는 과정을 추적해 한국인의 정체성을 밝히는 한편, 그 속에 담긴 정신을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제1권이 백주에 서울에서 벌어진 기괴한 살인사건이 범상치 않음을 느끼고 이를 추적해 나가는 한 일간지 기자 김기연의 활약상 위주로 펼쳐졌다면, 제2권에서는 지식혁명의 도화선이 된 문자의 발명에 초점을 맞춰 직지의 탄생 배경과 함께 위대한 성군 세종의 한글 창제 과정을 다룬다. 말하자면 주인공이 한글로 바뀌게 되는 셈이다.

 

 

 

 

2권의 서두는 퍼즐의 마지막 조각으로 시작한다. 사망한 전 교수의 이메일에 도착해 있는 한 장의 답장이 사건 해결의 단초를 제공한다. 답장의 내용은 추기경이 콘클라베를 포기한 이유가 카레나라는 이름의 한 여성의 발언 때문임을 밝히면서 이 여인의 말에 따르면 코리(코리아)의 군주가 백성들을 위해서 글자를 만들었다는 얘기에 너무나도 크게 충격을 받아서 자신의 자리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카레나의 유품을 하나 찾았는데, 이는 요한 22세 성하聖下의 문장이 새겨진 은제銀製 목걸리로 고르드 수녀원에서 성녀聖女로 사망했다는 기록도 함께 남아 있었다는 답신이었다. 이에 기연은 이 메일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토록 추적했던 카레나는 교황청 수장고에서 나온 이름이었다. 콘클라베는 라틴어('열쇠로 잠그다'는 뜻)로, 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들의 비밀투표였다. 이를 토대로 기연은 카레나와 쿠자누스의 연관성을 밝혀낸다.

 

쿠자누스의 본명은 니콜라우스 쿠자누스(1401~1464년)로 독일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인데, 종교가 인간에게 눈을 돌려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근대 휴머니즘 철학의 문을 열었다. 또한, 그는 과학과 천문학에도 조예가 깊었고 추기경으로서 콘클라베에도 참석했던 인물로 밝혀진다. 카레나는 조선 세종 때 유럽으로 건너 간 여성이었는데, 금속활자를 가져갔으며 개인적으로 쿠자누스와 연결 고리가 있어서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를 쿠자누스에 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애민 사상'에 입각한 한글 창제는 인류 정신사에서 찾아볼 수가 없는 획기적인 사건이었으니 깜짝 놀랄 수밖에. 당시의 지식이란 지배계층의 전유물이었으니 말이다.

 

이빨, 발톱, 근력에 의해 짐승의 서열이 결정된다면 사람은 지식과 지혜에 의해 그 힘이 결정된다. 당시 지배층이 사용하던 한자漢字는 너무 어려웠기에 일반 백성에겐 무용지물이나 다름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학문도 지혜도 신분도 벼슬도 모두 다 세습되고 있었다. 글과 학문을 익히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에 가난한 백성이 자식에게 글을 가르친다는 건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라 세습은 점점 굳어지게 마련이었다.

 

"그렇다! 백성에게 글을 만들어주자!"


세종의 이런 위대한 발상에도 불구하고 도처에 이를 막으려는 적들 뿐이었다. 심지어 초기엔 자신의 심복이었던 가장 가까운 집현전 학사들에게조차 함부로 말을 꺼낼 수 없을 정도였다. 이후 설득을 통해 몇몇 학사들을 끌어들였지만 완성되기 전까지 조심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고관대작들은 물론 집현전 학사들 중에도 임금인 자신을 업신여기고 대국인 명나라 눈치를 보는 자들이 태반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소설의 전개는 은수의 활약상에 맞춰진다. 이 여인은 양승락의 외동딸로, 주자간에서 새로 글자체를 만들었다. 조선조에 들어 양승락은 양반은 못 되었지만, 한자엔 능통한 인물이었다. 물론 주자사가 되려면 한자를 알아야 했다. 그는 아는 것을 뛰어넘어 해박하고 이해도가 워낙 깊었다. 남의 눈을 피해 승방으로 위장한 주자간 옆 요사채가 그의 집이었는데, 집 안 가득 서책들로 넘쳤다.

 

세종과 은수는 신미대사를 심판으로 두고서 누가 먼저 글을 쓰는지 시합을 벌이고 있다. 신미대사가 읊으면 세종은 한자를, 은수는 새로운 글을 동시에 써서 빠름의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려고 한다. "돌 석", ';바다 해", "대웅전", "울울창창" 등등 신미대사의 읊조림에 두 사람은 지지 않으려고 신속히 붓을 놀린다. 은수의 빠름이 돋보였다.

 

이 자리에서 신미대사의 건의를 받은 세종은 새 글을 28자, 해례본은 33장, 자신의 어지를 108자로 결정한다. 또 주자소 별감으로 양승락이 내정된다. 하지만 명나라의 간자 노릇을 하는 집현전 부제학 강종배의 지시를 받은 자객의 손에 피살당하고, 딸 은수는 명나라 사신 주구의 손을 거쳐 실력자 유겸의 수양딸이 된다. 이후 생사의 고비를 넘기는 우여곡절 끝에 베네딕트수도회의 도움으로 로마로 건너간다.     

 

 

"이 위대한 기술은 역사를 바꿔놓을 것이다. 저 무심한 필경사들의 손에서 얼마나 많은 문서들의 정신이 사라지고, 얼마나 많은 저자들의 혼이 사라졌을까. 그대의 금속활자는 시저의 갈리아 정복보다, 알렉산더의 동방 정복보다 위대하다" (117쪽)

 

 

금속활자에 대해 커다란 충격을 받은 교황과 추기경들을 보면서 은수는 의문점이 생겼다. 조부와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원나라의 만권당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엄청난 책들이 쌓여 있는 도서관이 도시마다 널렸고, 또한 집채만 한 바윗덩어리들을 줄 하나에 매달아 하늘 높이 끌어올리는 놀라운 기술을 가진 이 세상에 어찌하여 아직까지 금속활자가 없다는 것인가? 이후 교황은 은수의 금속활자를 빼앗으려 한다. 자신들의 권력 유지에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해서다.

 

 

"쿠자누스, 그 여자가 왜 악마의 씨앗인지 모르겠나?"
"그 여자는 책값을 반으로, 아니 반의반으로, 아니 그것의 반으로, 그 결과가 무언지 정말 모르겠나?"
"가난하고 무식하고 저급하고 비열한 자들이 다 책을 보게 된다. 세상은 시정잡배의 성토장이 되어버려. 단 한 자라도 금속활자가 세상에 나오면 너를 파문하겠다"

 

 

 

청주는 그리 큰 도시가 아니다. 하지만 청주의 흥덕사에서 직지를 찍었고, 초정약수터에서 세종대왕이, 복천암에서 신미대사가 한글을 마무리했다. 이리 보면 청주시는 직지와 한글을 모두 키워낸 우리 겨레의 문화 인큐베이터로, 대한민국의 어느 도시보다도 우리 민족의 문화예술에 크게 이바지해 온 셈이다. 그렇다고 이 위대함이 "세계 최고"라는 프레임에 갇혀서는 안 되겠다. 이 소설의 말미에 청주에서의 강의장에서 기연은 이렇게 말한다.

 

"직지와 한글에 담긴 인류의 위대한 지성,

''나보다 약한 사람과의 동행'이라는 정신을 보아야 합니다"

 

 

직지와 한글은 애민 정신의 산물이다

 

세계기록유산 '직지'의 위대한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고, 나아가서 '직지'와 '한글'에 담긴 정신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일깨워준다. 지배층으로부터 지식과 정보를 해방시켜 전 인류가 함께 나아가자는 것이다. 이것이 직지와 한글에 담긴 정신이며, 지식혁명을 이끈 위대한 도구이다. 저자는 소설을 통해 이런 정신을 이어받은 대한민국이 디지털 강국이자 반도체 1위 국가가 된 원동력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위대한 군주 세종의 정신을 되새겨본다.

 

"세월을 흘러도 사랑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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