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받으라
박해로 지음 / 네오픽션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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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스토리는 1876년에 일어났던 일과 1976년에 일어나는 일, 즉 100년이라는 시간의 차를 두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펼쳐진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과거에 장일손이라는 인물이 경상도 섭주의 관아에서 사교邪敎의 교주로 몰려 처형당하는데, 죽기 전 무시무시한 저주를 내린다. 장일손을 직접 칼로 벤 망나니 석발은 그 직후 망령에 시달리며 선녀보살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지만 그 둘은 잔혹하게 죽임을 당한다. 선녀보살은 죽기 직전 "두 개의 해가 뜨는 날에 그들이 돌아올" 거라고 예언하고, 과거의 살육과 공포는 정확히 백년 후 재현된다.

 

 

섭주에서 벌어지는 무시무시한 저주

 

이 책의 작가 박해로는 한국 특유의 무속신앙 전통에 이색적인 상상력을 덧붙인 스타일리시한 소설을 연이어 선보이는 중이다. 첫 번째 무속 공포소설인 <살: 피할 수 없는 상갓집의 저주>의 성공 이후 전작을 뛰어넘을 야심으로 두 번째 장편 <신을 받으라>를 완성했다. 지금은 후속작으로 가상의 지역 섭주에서 벌어지는 세 번째 무서운 이야기 <독생자(가제)>를 쓰고 있다.

 

흔히 우리들은 토속신앙을 미신迷信이라고 폄하한다.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사를 과학이라는 잣대로만 재단할 수 있을까 싶다. 토속신앙이란 고대를 살았던 인간들이 가졌던 종교다. 이를 형태별로 살펴보면 크게 샤머니즘, 토테미즘, 애니미즘으로 분류한다. 종교나 신앙이 왜 생겼는지에 대해선 나약한 인간이 경외시되는 자연현상이나 초월적인 자연의 힘을 숭배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태동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보면 샤머니즘은 현실과 초현실의 세계를 넘나들며 의사소통이 가능한 주술사(샤먼)가 종교의식을 주관했던 그런 신앙이며, 토테미즘이란 신화나 설화에 등장하는 동식물(토템)을 신성시하는 원시 신앙이며, 애니미즘은 자연물에 깃들여있는 초자연적 존재(신, 정령, 요괴, 영혼)를 숭배하는 신앙이다.

 

한국의 샤머니즘은 흔히 무당이라고 표현한다. 무당은 '신내림'이라는 독특한 절차를 거침으로써 신과 직접 대면할 수 있는 초능력을 지닌 것으로 간주한다. 이런 무당을 지역별로 달리 부른다. 즉 경상도에선 무당이나 보살로, 전라도에선 단골, 제주도에선 심방으로 부른다. 무당의 특징으로는 이들은 일반인과의 혼인이 금지되어 있으며, 자기들끼리만 결혼한다. 지금도 그 맥은 이어져오고 있다.

 

 

  

 

 

한국사에는 천주교 박해사건이 있다. 양반문화와 유교를 신봉하던 조선시대에 서양의 문물인 천주교가 잠입함에 따라 이를 부정하고 오랑캐로 매도하려는 그런 사건이었다. 이는 다분히 당시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양반들이 스스로를 지켜내려던 조잡한 정치적 행동이었다. 이 소설의 서두는 1876년에 벌어진 천주쟁이로 몰린 한 사람의 억울한 죽음으로 시작된다. 

 

장일손이 천주쟁이로 몰려 사형선고를 받자 검은 구름이 몰려와 여름의 푸른 하늘을 회색으로 물들였다. 섭주 현령 김광신은 숨 돌릴 틈도 없이 집행 준비에 들어갔다. 사형(死刑)인지 사형(私刑)인지 분간 가지 않는 집행이었다. 김광신은 노기 띤 표정으로 수염을 떨며 망나니 석발을 데려오라 지시했고 명을 받은 군노와 사령들은 지체 없이 도살장으로 달려갔다.(9쪽)

 

당시 사람을 죽이는 일은 백정이 맡았다. 본시 백정은 소, 돼지, 닭 등 가축을 도살하는 일을 했지만 말이다. 장일손의 사형에 동원된 이는 석발이었는데, 그 또한 백정이었다. 사형을 주도한 사람은 경상도 섭주 석하촌石下村의 고을 수령인 김광신이었다. 그런데, 이 두사람의 관계가 장일손은 교주이자 스승이었고, 김광신은 장일손의 제자이자 신도였던 것이다. 말하자면 고을 현령인 김광신도 실은 천주교도 출신이었다. 아무튼 이 날의 사형 집행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어쩌면 이는 사형死刑이 아니라 사형私刑인지도 모르겠다.

 

고을 수령의 명령으로 집행한 살인이었지만 이후 석발은 악령에 시달린다. 그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은 참시 당하던 장일손이 두 눈을 무릅뜨고 자신에게 퍼부은 "망나니 네놈을 먼저 데려가겠다!"라는 저주 섞인 말이었다. 억울한 죽음으로 내 몬 당사자는 따로 있음에도 장일손은 자신의 목을 내리치는 망나니를 희생양으로 삼아 원흉인 김광신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공포감으로 안길 심산이었다. 석발은 연일 이어지는 악령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려고 술에 의지하거나 절에서 가져온 목탁을 끼고 지내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고 갈수록 피골이 상접한 몰골로 바뀌게 된다.

 

"하늘에서 머리통이 떨어지고 땅에는 뱀들이 기어 다닌다.

하늘을 쳐다볼 수도 없고 땅을 디딜 수도 없어"

 

주인 없는 도축장과 텅 빈 움막은 마을에 소문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했다. 음주 만취로 절벽이나 강가에서 발을 헛디뎌 죽었다거나, 도살당할 줄 아는 황소가 날카로운 뿔로 들이받아 죽었다거나, 또 어떤 이는 마을이 싫어져서 제 발로 떠났다는 등의 풍성한 루머를 자아냈던 것이다. 이는 모두 물증 없는 추측일 뿐, 오히려 사람들은 무고한 장일손을 죽였기 때문에 보복 당한다고 믿기 시작했다. 사실 이 말은 마을의 선녀보살이 퍼트렸는데, 무당인 그녀는 자신의 신령님이 이를 가르쳐주었다고 했다.

 

 

1976년, 소설은 현재 시점의 이야기를 펼친다. 석하촌의 들판 구석마다 개구리가 와글거렸다. 한여름인 지금, 이 마을은 반년 사이에 많은 변화를 이루었다. 은혜로움이 넘치고 축복이 범람하는 하나님의 성소가 되었다. 땅은 기름지고 인심은 후해졌다. 온갖 벌레들도 전성기를 맞아 활개를 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모든 공로를 한 사람에게 돌렸다. 바로 서울에서 섭주로 파견된 젊은 목사 김정균이었다. 미신과 우상이 판 치던 원시 마을이 이젠 주님이 인도하는 약속의 땅이 되었으니 말이다. 

"여기 나오는 거 네 엄마는 아니? 네 엄마 말야!"
"어디 무당 딸이 감히 교회를 나와?"
"이 성경 어디서 났어? 훔친 거지?"
"이런다고 목사님이 너한테 눈길이라도 줄 것 같아?"
"부정 탄다, 부정 타! 썩 꺼져!"
"어휴, 냄새. 이렇게 하고 교회에 들어가겠다고?"
"좀 씻어라! 목사님이 이런 꼬라지 좋아할 거 같니?"
"얘네 산신령은 좋아하겠지"

 

위 대화의 당사자는 묘화昴華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로 엄마는 무당이며, 사는 곳은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인데, 실상은 갇혀 지내는 셈이다. 어디론가 떠난 엄마가 소식 없는지 오래였기에 그렇다. 사회는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폭행과 폭언은 여전하다. 주님의 성지로 변한 듯한 이곳에 마을 소녀들은 뻐젓이 묘화를 괴롭힌다. 그리고 이를 목격한 젊은 목사는 모른 채하고 그냥 지나친다.

 

만인에게 평등하게 행동해야 할 목사가 이를 회피하는 데엔 무슨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추후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밝혀지는 사실이지만 그도 어릴 적에 신병을 앓았던 경험이 있었기에 무당을 가까이 할 경우 혹 신병이 도지지 않을까 염려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별로 용하지 않았던 무당 월수보살의 딸이었던 묘화는 어느날 갑자기 금빛 나는 십자가를 품은 후, 마을 사람들에게 기적을 보인다. 자연스레 교회에는 찾아오는 이가 줄어든다.

 

'나 진짜로 예수를 봤다니까!'  

 

앉은뱅이 조필순 할머니를 걷게 하고, 파천댁의 아들을 취직시키고, 어부 이바우에게는 만선滿船의 꿈을 이뤄준다. 이에 반해 평소 묘화를 괴롭히던 사람들은 연이어 악몽을 꾸고, 결국엔 기이한 사고로 죽어나간다. 교회를 중심으로 통일되었던 마을 사람들은 이제 분열하고, 상호 살인을 저지르는 일들이 자행된다. 

 

갈수록 묘화를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지금까지 묘화가 행한 기적은 예수님의 힘이 결코 아님을 직감하고 상대적으로 약화된 교세를 회복하고자 젊은 목사 정균은 그동안 회피로 일관했던 무당의 딸 묘화을 만나는 용기를 낸다. 석하촌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목사였음에도 그는 멀든 가깝든 간에 묘화가 있으면 몸이 쑤셨고, 이상한 환각 증세가 나타날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기에 과거로부터의 공포에 놀라기 일쑤였다. 심지어 마을 사람들 중 일부는 목사가 겁을 먹고 묘화의 행동을 제지하지 못한다고 비아냥댔다. 이제 묘화와 정균의 한판 승부는 불가피하게 되었다. 그 결말은 어떻게 될까?

 

"묘화를 만나자 귀신이 제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겁니다.

묘화가 예수라고 칭한 남자는 천한 백정의 모습이었어요. 아마도 그 석발이란 자겠죠"

 

 

 

과거지사는 현재로 연결된다.

 

100년 전, 무고한 장일손을 무참히 살해한 섭주 현령 김광신은 자신이 예전에 장일손의 문하에서 천주교를 배웠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날엔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장일손의 목숨을 거두기로 작심한다. 100년이 지난 현 시점에 다흥 김씨의 후손인 김동우는 묘화를 죽이려고 계룡산의 법사 세 명(풍백, 우사, 운사)을 몰래 끌어들인다. 금생재륜교는 부활할 것인가?

 

"네오픽션으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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